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75
75화. 유령의 축제 (1)
“그만해, 제발! 이민아, 제바아아알!”
나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절규했고.
그 뒤에서 정윤성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푸흣, 크크큭……! 김리듬……! 지금, 나, 크크큭! 웃음을, 참지 못하는, 푸흡! 병이…… 프흐흐흐흐……!]반드시 없애 버리고 말 것이다.
저 뒤에서 미친 듯이 처웃는 망령 자식을.
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웃음을 억지로 참는 게 역력한 AD는, 이제 막 가동된 김리듬 대국민 이미지 공개처형식을 본격적으로 확장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거짓말 탐지기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화면 속의 그녀는 2초는 될까 말까 한 고민 후 AD의 질문에 답했다.
이민아의 말을, 전부 ‘진실’로 단정했다.
그리고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마친 그녀는.
전 국민의 10%가 시청하는 예능 다큐멘터리에서.
내게 당당하게 선언했다.
제안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그렇게, 내 이미지를 난도질한 3화의 전반부가 끝이 나고 중간 광고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미친 듯이 내게로 달려드는 실시간 통화 및 카톡, 문자 메시지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정 마에.”
[아, 미치겠다. 진짜. 유령 되고 이렇게 빵 터져 본 적은 정말 처음이야. 그런데, 왜?]“하아. 저, 내일부터 바깥출입 가능할까요?”
[가능하겠니?]“아니, 이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냐고요!”
[박현성처럼 하고 다녀. 모자에 마스크 하면 되잖아.]“나는 교복을 입고 다닌다고!”
내 이미지 회복을 위해 애쓰는 (척하는) 후반부가 한참이나 이어졌지만.
솔직히, 그게 눈에 들어오겠냐고.
민아는 나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나의 주법을 섬세하게 분석하면서 건반 위에 풀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이런 말까지 빼놓지 않았다.
민아의 마지막 말이 끝나면서.
Lesson 3의 제목이, 처음이 아닌 마지막에 떴다.
* * *
3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 않아서 받을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지만.
― 여보세요.
정확하게 다섯 번째 신호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미리 심호흡을 한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민아 학생님,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 너는 나와의 시간을 소중히 하지 않았지…….
“아니, 제정신이야? 나를 공개 처형 할 생각이냐고!”
― 글쎄. 나는 너를 도와주려고 그런 것뿐인데.
“이건 도와주는 게 아니고 시련이잖아! 내가 타지에서 추석 느낌 나라고 비싼 대천 김까지 보냈는데!”
― 아, 그래서 나도 정기연주회에 네가 연주할 리스트에 대한 조언을 좀 해 주려고.
“아니, 그건 고마운데요.”
그녀는, 내 쪽팔림에 대해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되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정말 지대한 조언을 해 주었다.
― 악보에 있는 음 길이에 집착하지 마. 리스트의 음악에서 정말 중요한 건, 네가 생각하고 네가 느끼는 음의 길이니까.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음의 길이…….”
― 그러면, 끊는다. 김리듬.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민아!”
젠장.
그녀는 전화를 끊으면서 폰을 꺼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선택지가 없다.
조언까지 받았으니 이제는 연습을 해야겠지.
시련은 시련이고, 연습은 연습이니까.
아니, 어쩌면 이런 시련에 굴하지 않고 연습을 해야만 진정한 음악가가 될 수 있는 것일지도.
[이민아가 중요한 얘기를 했네. 연습 시작하자.]정윤성은, 리스트 ≪죽음의 무도≫를 연습해야 하는 내게 색다른 연습 방식을 제안했다.
“이제는 힘을 빼는 연습을 하자고요?”
[그래. 이제 너도 리스트의 스타일을 익혀야지. 그리고…….]“그리고요?”
[이민아가 너에 대한 조언을 했다는 건, 그만큼 네가 더 빨리 크기를 바란다는 얘기니까.]정윤성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영혼에 무게가 실리고 구성 성분이 달라진다.
[자, 그러면 아날리제부터 시작하자.]곡의 구성은, 곡의 첫머리에 제시되는 중세 ≪레퀴엠≫ 모티브에서 따온 죽음의 장송곡의 자유로운 변주로 이루어진다.
죽음의 장송곡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댄 후.
미친 듯한 도약으로 피아노 건반을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오가야 하는 미친 곡이다.
[힘을 빼! 모든 음을 꾹꾹 누르려고 하니까 연주가 안 되는 거야!]“자연스럽게 빼고 있어요.”
[전혀! 아직도 의식을 하고 있어. 프레이즈의 끝에서는 음을 놓아 주어야 한다고!]그게 쉬우면 제가 이러고 있겠습니까.
리스트를 연주하는 애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손가락 사이를 칼로 찢어서라도 억지로 벌리고 싶다. 그래야 연주가 될 것 같으니까.’
그 정도로 어려운 게 리스트의 음악이다.
“후우.”
결국, 나는 손가락에 쥐가 나서 연습을 멈추었다.
라흐마니노프 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힘을 빼는 타이밍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쥐가 나는 거야! 도약 파트에서 자꾸 이상한 인대와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고!]이제 남은 시간은 2주 남짓.
과연 나는 그 시간 안에 이 곡을 완성할 수 있을까.
* *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촬영은 엊저녁에 끝났지만, 드라마 방영은 아직도 계속되는 중이다.
애초에 16부작으로 기획해서 11월 초 종영을 예정으로 편성되었으니, 우리 정기연주회가 끝난 바로 그 주에 드라마가 종영한다.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는.
“안유경 씨. 당신을 협박 및 모해,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합니다.”
김세린을 없애려다가 실패한 후, 비참하게 몰락하는 안유경과.
“왜 떠나야만 하는 거죠?”
“미안해.”
“떠나지 않아도 되잖아요! 계속 연주할 수 있잖아!”
“……미안해.”
결국, 결별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하는 박현성과 김세린의 슬픈 마지막 2중주를 담담하게 그려 낸다.
“김 선생님. 마에스트로 선생님은 안 오는 거예요?”
“아…… 마에스트로 선생님은 많이 바쁘셔서, 오늘은 제가 여러분들을 대신 리허설 할게요. 괜찮죠?”
드라마를 통해서 보는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는, 너무 익숙해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던 평소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특히, 희재 선배의 바이올린은, 뭐랄까.
달곰씁쓸하면서도, 언어로 정확하게 붙잡아 묘사할 수 없는 묘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지호의 바이올린처럼 사람을 확 잡아끄는 대신.
천천히 다가와서는,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같이, 오래도록 듣고 싶은 그런 소리.’
슬픔을 홀로 오래 겪어야 했던 그의 바이올린은.
그 달곰씁쓸한 음악에, 섬세하면서도 슬픈 데커레이션을 더하고 있었다.
‘자, 과연 이 드라마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아, 물론 나는 드라마의 결말을 알지만.
스포일러는 자제하겠습니다.
* * *
“오랜만이야, 친구들.”
“아이고. 얼굴이 반쪽이 되셨네.”
한울 선배는 없는 시간을 간신히 짜내서 리허설을 하러 희성예고에 들렀다.
선배의 얼굴을 보니, 문득 김가인이 점심시간에 내게 해 준 말이 떠오른다.
‘사실, 나 한울 선배 별로 안 좋아했어.’
‘아니, 왜?’
‘나하고 안 맞거든. 인간적으로 안 맞는 건 아니고, 음악적으로. 나는 템포보다는 소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한울 선배는 반대란 말이야. 임지호처럼.’
아, 그랬지.
여름방학 합숙 때가 떠오른다.
김가인과 임지호는, 템포와 음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놓고 싸웠었다.
‘그래서 임지호가 선배를 묵묵히 잘 따르는 건가?’
지호가 한울 선배의 지휘에 불만을 표한 적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 번도 없다.
무엇보다 한울 선배의 가장 큰 장점은.
‘오케스트라를 조련하는 방법을 잘 안다.’
그는 짧은 순간에 사람만 100명 모였을 뿐인 이 오케스트라를, 진짜 오케스트라로 만들었다.
[너도 강한울의 조련법을 눈여겨보는 게 좋을 거다. 특히, 리허설 시작 전에 오케스트라 전체를 20초 페르마타*해서 소리를 다잡는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야.](*특정 음을 아주 길게 끄는 연주법.)
“어떻게 효과적인데요?”
[첫 번째, 지휘자의 신호에 익숙해진다. 두 번째, 같이 들어오는 타이밍을 익히게 된다. 세 번째, 그러면서 100개의 악기가 하나의 화음이 된다. 알겠지?]정말이지, 평소에는 한량 같다가도.
이럴 때의 정윤성은, 정말 영혼의 구성 성분이 달라지는 느낌이 든다니까.
[좋은 지휘자가 와서 기초 공사를 하고 갔으니, 이제 누군가는 이 오케스트라로 꽃을 피워야 할 거야.]“꽃길을 걸을 사람이 누가 될까요?”
[남 얘기 하듯 하지 마라. 너도 오디션 참가를 해야 한다고. 꽃길이 아니라 불꽃길이 될 수도 있다고.]“네, 네. 새겨듣겠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로 ≪왕궁의 불꽃놀이≫를 연주하면.
그 불꽃놀이가 얼마나 멋있게 들릴까.
‘자, 잡생각 그만하고 이제 리허설에 집중하자.’
이번 정기연주회의 리허설만큼 중요한 순간도 없다.
지금까지, 우리 희성예고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는 드라마와 (예능)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인지도를 한껏 끌어올렸지만.
그 인지도에 상응하는 연주회는 한 번밖에 없었다.
이런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얘네 솔직히 드라마발, 다큐발이잖아?’
그런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이번 정기연주회에 확실히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가 콘서트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말이다.
희재 선배가 리허설에 열의를 보이는 이유 중에는 그것도 있을 거다.
“지휘자님. 이 부분에서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조금 더 급박한 템포로 갔으면 좋겠는데.”
“흐음. 그게 좋겠네. 그러면 여기는 콘마(콘서트마스터) 말대로 메트로놈 포인트를 5 정도 더 올리고…….”
희재 선배가 적극적으로 리허설에 임하니, 소리의 결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음악 외적인 면에서도 변화가 많다.
[리허설 구경 왔어여~] [한희재 씨 바이올린 연주 멋져여~] [김리듬 씨 피아노 연주도 응원할게여~]내 악보 정리 서포트에, 청소 서포트를 맡고.
오늘 아침에도 계란프라이를 잘 부쳐 준.
우리 폭신이 12형제가, 저기서.
내 리허설 응원단 역할에 열심이다.
물론, 여기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녀석들이지만.
“자, 먼저 ≪페르 귄트≫부터 시작하자. 일단은 ≪마왕의 궁전에서≫! 호른, 준비하고!”
한울 선배가 지휘봉을 아래로 내리자.
전수정의 호른에서 음침한 화음이 울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