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81
81화. 5인 5색 오디션 (3)
“후우.”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오를 때도 늘 긴장되지만.
이번의 압박감은, 정말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나는 압박감에 눌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다짐을 하고, 포디엄에 올라서자.
100명의 얼굴과.
200개의 눈동자가.
나를 주시하는 게 보였다.
‘……!’
무언의 압력이, 한층 더 강하게 다가온다.
‘며칠 만에 보는 얼굴들인데.’
이상할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윤성에게 지휘자 속성 강의를 듣는 동안,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나를 만나러 오지도, 내게 연락을 걸지도 않았다.
윤성은 그런 돌변의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아쉬워할 필요 없어. 공정성 때문이야. 저 녀석들도 자기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나갈 새 수장을 결정하는데, 철저하게 공정해야지.’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아주 조금, 아쉽기는 하다.
[떨리니?]‘……아니요.’
[가르쳐 준 대로 지휘봉 쥐는 것 잊지 말고.]윤성이 교습 내내 강조하던 것이 하나 있다.
지휘봉을 쥘 때는, 절대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삐쳐 나오게 하지 말라.
단원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으니, 항상 모아 쥐어라.
“오보에, A음 부탁드립니다.”
유준혁의 정교한 A음에 맞추어 조율이 끝나자마자, 나는 단원들에게 첫 지시를 내렸다.
“네, 그러면 오케스트라 전원. 일단 20초 페르마타 부탁드립니다.”
정윤성의 말이 맞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나의 지시에 맞추어, 모든 단원들이 20초 동안 아주 길게 소리를 내는 동안.
나는 단원들이 들어오는 타이밍과, 현재 그들의 내는 음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단원들이 들어오는 타이밍이 한 번에 들려.’
지금 내 귀에는 1바이올린 주자 16명의 타이밍이 이렇게 들린다.
내가 지시한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는 저 빨간색이, 바로 콘서트마스터 한희재와 부악장 임지호다.
머릿속에서 둘의 음이 하나의 선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간단한데, 정확하게 타이밍이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만 가지 타이밍으로 흩어진 다른 색깔들은 나머지 주자들.
그중, 가장 늦게 들어오는 저 보라색.
1바이올린 맨 뒷줄에서 항상 늦는, 저 배진희가.
나의 첫 타깃이다.
“1바이올린 맨 뒷줄이 조금 늦게 들어오네요. 특히 배진희 선배. 제가 주는 신호를 본 다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신호를 보자마자 들어오세요. 그래야 앞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집니다.”
윤성의 말이 맞다.
[일단 어수선한 합주력부터 정돈해야 리허설을 빨리 진행할 수 있어. 그래야 단원들의 집중력을 하나로 모으고, 너도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으니까.]물론, 내 시선은 진희 선배에게만 향해 있지 않았다.
“자, 그 앞줄의 오윤희 선배도 타이밍을 조금 당겨 주시고요. 네, 다시 한번 1바이올린만 맞춰 보겠습니다. 페르마타로!”
다시 한번, 16명의 주자들이 같은 음을 연주했다.
아까 전의 어수선함에 비하면, 훨씬 깔끔하게 음이 정리되었다.
단번에 1바이올린 주자들의 타이밍을 맞춘 나는 바로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아까 전에 베이스 뒷줄 장건희 학생 타이밍이 조금 늦었어요. 방금 전보다 0.2초 정도 앞당겨서 연주를 해 주시고요. 세컨드 호른 박영민 선배도 0.3초 정도 앞당겨서 들어와 주시고요.”
교습 시간 윤성의 가르침 또 하나.
[지휘자는 기억력도 좋아야 한다. 단원들을 압도할 정도로 말이지.]적어도, 소리에 있어서만큼은.
[베이스 뒷줄 소리가 너에게 도달하는 시간은 0.2초. 호른 소리가 너에게 도달하는 시간은 0.3초다. 대개 그런 녀석들이 늦는 이유는 보고 들어오기 때문이야. 미리 들어오게 만들어야 해.]단원들의 세세한 차이점 하나하나를 숙지해야 한다.
* * *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리허설은 순식간에 현악기 주자들의 운궁법으로 넘어갔다.
“1바이올린은 계속 내림활로 연주하다가, 9마디에 들어가서 내림-올림-내림-올림으로 전환해 주세요. 다음 부점음표는 올림활로 올라가다가, 가장 높은 A음을 내림활로 긋고 내려갈 때는 다시 올림활로……”
당연히, 단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뭐야, 이거?’
‘지금까지 지휘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애가…….’
‘언제 이렇게 완벽한 운궁법을 공부해 온 거지?’
‘진짜 독하다.’
이 와중에 웃는 이는 희재 선배뿐이었다.
짧은 순간에, 그는 부악장 임지호와 조용히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우리 리듬이, 생각보다 능숙하게 하네?’
‘계시를 받은 거겠죠.’
‘전혀 떨지도 않아.’
‘떨면 김리듬이 아니죠.’
희재는 씩 웃으며 생각했다.
이 녀석도 나만큼 김리듬에게 미쳤구나, 라고.
* * *
바이올린, 비올라 연주자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충격으로 멍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직감했다.
‘일단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 기세를 그대로 밀고 나가 굳혀야 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음악 만들기 시간이다.
“로시니의 8분음표입니다! 무조건 가볍고! 짧게 처리하세요! 다아~처럼 늘어지지 말고! 단. 단. 단. 단. 하고 짧게 끊어지도록!”
마치,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덩어리가 살풋한 봄바람에 녹아 달콤한 과즙이 되는 것처럼.
“플루트 솔로! 조금 더 가볍고 산뜻하게 해 주세요! 로시니입니다, 로시니!”
악보를 휘릭휘릭 넘긴 나는, 이제 리허설 시간을 10분 남기고 막바지 부분에 돌입할 수 있었다.
희재 선배와 지호가 시선을 공유하는 게 보인다.
‘생각보다 시간 배분을 너무 잘하는데?’
‘그러게요, 선배.’
분명히 이런 뜻이 담긴 시선이리라.
그리고, 정확히 40분이 지났을 때.
“자, 끝났습니다.”
“정확히 40분이네요. 이제, 바로 연주 시작하세요.”
이제는 실전이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조언을 해 주마.]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윤성의 마지막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교습 때 내가 했던 말들은 다 잊어. 그냥, 흐름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몸을 맡기고 즐겨. 음악이란 억지로 틀을 잡아서 욱여넣는 게 아니라, 느끼고 즐기며 사랑해야 하는 거니까.]‘알겠어요, 마에스트로.’
자, 일단은 마장조의 느긋한 서주를 시작하다가.
‘주요부 시작. 알레그로 콘 브리오(빠르고 격렬하게)의 짜릿한 속도감을 발산할 타이밍이다.’
시끌벅적, 복작복작, 우당탕탕 하는 맛이 있는.
사랑을 얻고 사랑을 빼앗기 위해 사기치고 작당하는 이 연애조작단 오페라의 서두를 장식하는 서곡으로.
오케스트라가 한껏 달릴 수 있도록 풀어 준 후.
‘다시 속도를 늦추고, 이번에는 사장조의 우아한 음악을 펼치자.’
음악을 바짝 조였다가, 풀어 주고.
다시 바짝 조였다가, 풀어 주면서.
곡은, 마침내 마지막 질주를 향해 나아간다.
마지막 투티를 터뜨리는 순간, 직감했다.
‘해냈다.’
환호성이 터졌다.
* * *
오디션 1라운드의 전 과정이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30분의 채점 시간과.
송수현 이사장님의 순위 발표 시간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새 지휘자 오디션 1라운드 순위 발표가 있겠습니다.”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이사장님의 입에서 떨어질 다음 말만을 기다렸다.
“먼저 4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4위는, 장현예고의 선우철 학생입니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선우철 선배는, 착잡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예의상 치는 박수에 인사했다.
“그 다음은 3위입니다. 3위는, 상문예고의 김지희 학생입니다.”
나름 분전했지만, 세컨드 플루트의 대형 실수로 점수가 팍 깎인 김지희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그 다음은 2위입니다.”
2위.
윤성과 내가 1차 목표로 잡은 지점이다.
큰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세세한 바통 테크닉에서 벌어지는 차이는 아직 넘기 힘드니까.
“2위는, 희성예고의 김리듬 학생입니다.”
짧은 정적이 있은 후.
내 옆에 앉아 있던 정선율이 크게 외쳤다.
“오! 김리듬! 우와!”
“크으! 역시 믿고 있었다고, 지엔장!”
나는 순식간에 정선율을 비롯해, 나를 격려 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였다.
‘내가 2위다.’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내가 1라운드 2위를 기록했다.
물론, 내 위에 버티고 있는 김조현이라는 압도적인 존재가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고무적인 결과…….
[좋아하기는. 이제 1위로 올라갈 생각을 해야지!]하여간 이 양반은 잔칫상에 초 치는 데는 뭐가 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1위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손톱을 까득 소리 나게 씹으며 긴장하는 한동우와.
여유롭게 관전하는 김조현.
“영광의 1라운드 1위는, 축하드립니다! 한국예고의 음악과 2학년, 김조현!”
조현은 긴장하는 표정 하나 없이 여유롭게 일어서서는,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했고.
당연히 꼴찌가 확정된 한동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두 손으로 싸쥐었다.
“그러면, 이제 2차 오디션 일정과 과제 발표가 있을 예정이오니, 참가자분들은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공지를 받으러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나는 몇 자리 떨어져 있던 김조현과 눈이 마주쳤고.
이상할 정도로 서늘한.
적의와 악의가 담긴, 그의 눈빛이.
나에게 잠시 꽂혔다가 거두어지는 것을 보았다.
* * *
“마에스트로.”
[왜, 또.]“조현 선배의 그 눈빛, 대체 뭐였을까요?”
[뭐긴 뭐야. 이 나이대 음악 하는 애들의 흔한 질투, 시기. 그런 거 아니겠어?]“아니. 질투, 시기치고는 좀, 뭔가가…….”
[그럴 수도 있지.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고.]드디어, 우리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를 촬영한 6화가 방영되는 날인데.
이런저런 일 때문에, 영 기쁘지가 않다.
그렇게, 6화가 시작되는데.
“힉.”
시작부터, 뭔가가 다르다.
이 음침한 BGM에.
이 음침한 내레이션까지.
화면은 나를 찍은 영상들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 주고.
영상 곳곳에 찍힌, 윤성의 형상을 클로즈업해서 비추었다.
[아니, 이런 젠장.]화면은 용한 무당이 있다는 곳으로 전환되고.
화면을 눈여겨보던 그는, 딱 잘라 대답했다.
아, 기가 세기는 하지.
성격도 좀…….
[아니, 저 돌팔이 박수무당이 지금 뭐라고 말을 내뱉는 거야, 대체.]정곡을 찔린 윤성은 바로 발끈했고.
이제 내레이션은, 본격적으로 나를 파헤쳤다.
마지막으로, 나의 연주 영상을 보여 준 후.
그렇게, 묘한 느낌을 주면서 6화 전반부가 끝났다.
[…….]“…….”
[아니, 뭔데 이거! 왜 찍어 맞히는데 맞는데!]민한기 PD, 이 무서운 인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나 참, 기가 막혀서. 민한기 이 인간 무섭네. 야, 김리듬. 다큐 끝나면 민한기 이 인간 멀리해라.]“뭐, 그럴 것까지야…….”
[인마, 내가 인생 선배로서 충고하는 거야.]“오, 정기연주회 나오네요.”
충격적인 전개로 정윤성의 속을 뒤집어 놓은 전반부만큼은 아니지만, 후반부 전개도 만만치 않았다.
“유령 CG가…….”
[이걸 노린 거였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희재 선배의 바이올린 연주와.
한울 선배의 지휘.
그리고, 나의 피아노 연주에 따라.
연주회장은 완벽한 ‘유령의 축제’가 되었다.
제작진이 특수효과팀의 지원을 빌려, 깔끔한 CG로 귀신이 가득한 연주회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야. 상상력이 덧붙었지만 나름 깔끔해.]그렇게 재구성된 CG들은, 완벽한 ‘유령의 축제’로 재탄생해 시청자들에게 시청각적인 효과까지 140%로 만끽하게 만드는 데 대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