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스타 후원자 박현성
6화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윤성에게 물었다.
“전반부 빌드업 맞죠, 마에스트로?”
[그래. 민한기 PD, 이거 정말 무서운 인간이야. 전반부에 유령이 있는 척 판을 깔아 놓아서, 후반부에 CG로 제작한 ‘유령의 축제’를 강조하기 위한 빌드업을 깐 거야.]“대단하기는 한데…… 나쁜 뜻은 없겠죠?”
[그건 모르지. 방송국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다 시청률의 노예라고.]“그런데 정 마에. 어떻게 방송국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알아요?”
[다른 데는 몰라도 방송 쪽은 내가 잘 알지. 지상파하고 협업한 다큐멘터리가 몇 개인데.]아, 맞다.
이 양반, 생전에 교양 전문가였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가사 번역 오류를 지적할 정도로 독일어에도 능숙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그건 정윤성의 사정이고.
내게는 이제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마에스트로.”
“왜?”
“저, 내일 학교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요?”
윤성은, 즐기는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야 네 사정이지. 안 그래?]* * *
“저기 있다!”
“저놈 김리듬이다! 잡아라!”
아, 역시.
1차 오디션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내게 자연스럽게 들러붙었다.
아니, 이건 들러붙는 게 아니라 포박인가.
“잡았다, 이놈!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야. 난 도망가는 척도 안 했거든?”
“김리듬. 나 깜짝 놀랐잖아! 도대체 언제 그렇게 로시니 서곡을 빠삭하게 공부해 온 거야?”
“뭐, 열심히 했지. 하하하.”
“이야, 이거 잘하면 우리 김리듬의 지휘를 받을 수도 있겠는데? 앞으로 잘 보여야겠어? 응?”
“아직은 모르는 겁니다, 양 선배.”
“그래. 아직은 모르는 거야.”
소리 없이 내게 접근한 플루트 수석 조하란이, 슬그머니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속삭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김리듬. 알지? 만약 지휘자로 낙점되면, 깊은 밤의 유혹 같은 연주로 대중을 홀린 플루트 수석 조하란을 꼭 기억해야 해. 알았지?”
“야. 김리듬한테서 떨어져, 조하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하란만큼은 내년 오디션 때 반드시 가장 어려운 곡을 주어야겠다.
떨어질 정도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극악하게 어려운 그런 곡을.
“그런데 말이지, 김리듬.”
“응?”
“역시, 그랬던 거였어.”
“응. 역시.”
“내 예측도 그랬다.”
“대체 뭐가?”
“6화에서 드디어 너의 정체가 폭로되었지. 네 주위에 귀신이 있다고!”
네. 저도 잘 압니다.
어제도 바톤 테크닉이 잘못되었다고 사람을 얼마나 못살게 굴던지, 원.
“세상에, 세상에. 그러면, 지금까지 김리듬이 친 연주가 전부 귀신의 도우심이었어? 어쩐지!”
“야. 김리듬 상의 탈의시켜 봐! 혹시 우리가 모르는 귀신 들린 표식 같은 거 있는 거 아냐?”
집에 가고 싶다.
얘들을 만나서 반가워진 지, 불과 5분 만에.
나는 정직한 표정으로 뻔뻔함을 연기하기로 했다.
“바이럴 마케팅이야. 민한기 PD님 스타일 알잖아? 나는 결백하다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준비됐어, 란?”
“물론이지, 인!”
김가인과 조하란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용한 무당님에게 귀한 복채까지 드려서 어렵게 구한 퇴마 부적이야. 어렵게 샀는데, 안 쓰고 버릴 수는 없지.”
“그냥 버려, 제발.”
“그럴 순 없다. 각오해라, 김리듬!”
뭘 각오해?
가인과 하란이 스크럼을 짜고, 누가 봐도 사이비스러운 부적을 내 몸에 붙이려는 순간.
“물주 입장에서, 이런 역대급 시간 낭비와 돈 낭비를 더 이상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네.”
“저, 전수정!”
그녀의 손에서 부적을 빼앗은 전수정은, 내용을 슥 보자마자 소재를 알아맞혔다.
“도봉역 근처에 있는 연화신당, 맞지?”
“어, 어떻게 그걸!”
“한때 정치인들이 자주 찾았던 유명 점집. 하지만 일반인 사주팔자조차 전부 틀려서 아무 신통력 없음이 드러난 곳이기도 하지.”
“잉? 그러면 내 대운은? 올해 초 사주에서 그랬단 말이야! 올해 예술의 신을 만나 대운을 타고 날아오른다고 했어! 김가인도 같이!”
“그건 다 헛소리야, 조하란.”
[조하란, 생각보다 심각한데? 쟤는 도대체 왜 뇌를 점쟁이 따위한테 위탁 맡기는 건데?]윤성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니, 다들 정신 좀 차려. 음악가에게 도움이 되는 영험함이라면, 이깟 부적 따위보다는 차라리 악보에 더 많을 거라고.”
“전수정, 그것만은 제발!”
찌익.
김가인과 조하란의 절규 2중창에도, 불구하고, 전수정은 그녀의 부적을 냉혹하게 찢었다.
“아아악!”
“그러니, 이런 헛짓거리는 이제 그만하고.”
찌익.
한 번 찢어진 부적이 다시 한번 찢어졌다.
“연습 열심히 하고, 내신 잘 쌓으세요. 여러분.”
찌익. 찌익. 찌이익.
부적이었던 무언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린 수정은, 그 잔재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막타를 꽂았다.
“장학금 많이 받고 싶으시면 말이죠. 알겠죠?”
“끄어어어…….”
전수정을 옆에서 몇 개월 지켜보니 알겠다.
지금 그녀는, 눈빛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다들 좀, 꺼져 주겠니?’
라고.
그렇게, 우르르 몰려왔던 아해들을 깨끗하게 보내 버린 후, 나는 전수정과 둘만 남았다.
“하여간. 예술 하는 애들이란.”
“다들 어딘가 좀 미쳐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런데 김리듬. 정말 놀랐어. 1라운드에서 네가 2위를 하게 될 줄이야.”
“고마워, 전수정.”
“생각보다 오디션이 흥행하는 중이야. 1차 영상 조회수가 벌써 5만을 넘었거든. 2차도 기대하고 있을게. 물론, 난이도는 1차보다 훨씬 높겠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네.”
나는 더 이상, 전수정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사실, 오늘 김리듬 너한테 온 건 더 기쁜 소식을 공지하기 위해서였는데.”
“기쁜 소식이라니?”
“이제 자금 흐름이 원활해져서, 앞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해도 될 것 같아.”
“오, 그렇군요.”
“크게 기대하지 않고 넣었던 천연가스 관련 주식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게 유럽발 에너지 위기하고 겹쳐서 초대박이 터졌지 뭐야.”
무슨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오케스트라에 이득이 되는 좋은 얘기라는 건 잘 알겠는데.
묵묵히 듣고 있던 윤성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야, 전수정 대단하네. 천연가스 관련 주식에 레버리지를 붙여서 초대박을 터뜨린 거야.]“레버리지가 뭐예요?”
[그런 게 있어. 같은 상승폭이어도 수익이 몇 배로 늘어나는 악마의 마법이.]“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내 수익률의 비밀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아, 미안. 전수정.”
그녀의 시선은 정확하게 윤성을 향해 있었다.
나도, 윤성도 그녀가 귀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묘하게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늘 묘한 통찰력을 보여주니까.
“사실, 요즘 귀신 씨의 활용 방안도 모색하는 중이거든. 귀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바이럴 마케팅이라거나, 아니면 폴터가이스트 연주라거나…….”
둘 다 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요.
“물론 둘 다 나름의 문제가 있으니, 무난하게 빙의 연주회 정도로 거래하는 건 어때?”
“그건 무리야. 거절할…….”
“내 수익률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싶지 않아?”
우와.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마법 같은 수익률의 비밀을 알고 싶지 않아? 약간의 시드머니와 몇 주의 기간만 있으면, 세상이 조금 많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텐데.”
[김리듬. 정신 차려.]그래. 윤성의 말이 맞다.
이런 자본의 유혹에 빙의 연주회 같은 중요한 이점을 멋대로 팔아넘길 수는 없…….
“우리만 아는 거야.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최소 수익률 30배의 놀라운 마법을 경험…….”
[빨리 종목부터 부르라고 해. 당장.]야, 이 망할 잡귀야!
물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더 많은 경험과, 가치를 환산하고.
엄마를 더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는 돈.
“좋아. 거래하자.”
그녀의 도도한 표정이 조금 풀어지며, 입술이 살짝 미소의 윤곽을 그렸다.
“김리듬. 이건 우리만 아는 거다?”
“그래. 약속할게.”
그녀의 표정은, 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아, 그리고 마지막 공지사항이 있는데.”
“뭔데?”
그녀의 입술에서, 조용한 폭탄이 터졌다.
“박현성 씨가, 우리를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싶대.”
* * *
“여기야, 김리듬.”
오랜만에 에서 만난 박현성의 마스크는 전보다 한결 더 밝았다.
그는, 그 발광체 같은 미소로 나를 반겼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얼굴이 어두워? 혹시 학교에서 힘든 일이라도 있어? 나한테 다 얘기해.”
“저를 힘들게 하는 요인은 따로 있는데요.”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은 당신이라고.
드라마 종영하고 영화 촬영 일정이 바빠 안 보나 싶었는데, 이렇게 일찍 재회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작정하고 왔는지 옆에는 변호사까지 대동한 상태였다.
“유오운이라고 합니다.”
뭐, 변호사와의 인사는 그렇다 치고.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현성의 시선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심하게 답답해서 커피만 호로록 마셨다.
물론, 전수정에게는 그런 거 없고.
그저 최고의 후원자를 얻었다는 기쁨이 가득하다.
“반갑습니다, 박현성 씨. 이렇게 먼저 제안해 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사실 더 일찍 보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좀처럼 허락을 하지 않아서요.”
전수정과 박현성의 얼굴만 보면, 마치 우연히 10년지기라도 만난 것 같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둘 다 복잡한 계산 중일 것이다.
“구체적인 지원 플랜은 여기 정리해 놓았습니다. 매니저님을 통해 다른 자료들도 보내 드릴 테니, 돌아가서 천천히 보고 추가 지원을 의뢰하셔도 됩니다.”
박현성은 대동한 변호사와 함께 플랜을 천천히 살폈고, 변호사는 곧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현성 본인의 표정은 불만족스러웠다.
“음반 제작 플랜이 없네요. 이쪽에서 원한다면, 내가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는데.”
급발진하지 마!
“박현성 씨.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
“그건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을 것 같아요, 박현성 씨. 김리듬이 더 유명해진 다음, 크라우드 펀딩 같은 쪽으로 진행시키면 좋을 것 같아서요.”
“흐음. 아쉽지만, 아직은 일반적인 지원 쪽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네요.”
어이, 이보세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정말 감사합니다, 박현성 씨. 앞으로, 김리듬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당신의 도움을 받게 될 겁니다.”
“고마운 건 제 쪽이죠. 누군가의 음악을 듣는다는 게, 이렇게 기쁜 경험이라는 걸 얘가 나한테 알려줬으니까요.”
그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네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 라고.
“흔히들 그런 말을 하잖아요? 사람의 감정은 아주 쉽게 마이너스로 흐른다고요. 쉽게 우울해지고, 지치고, 슬퍼지고, 좌절하게 된다고 하죠.”
그의 투명한 시선이.
어느새, 나에게 닿아 있었다.
“그런데 리듬이의 음악은, 그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돌려놓는 힘이 있거든요.”
그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불면의 마수로부터 자신을 구해 준.
쇼팽 ≪자장가≫의 황홀한 선율을.
“사실, 그런 음악을 나 혼자 차지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음악은 모두의 것이며, 모두의 것이어야만 하죠.”
“바로 그거예요. 나는, 그 구원의 경험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될 수 있으면, 모두에게.”
전수정은, 웃으면서 지원 서류를 꺼냈다.
“천천히 확인하신 다음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 * *
사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수정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가 못 하는 일을 해, 김리듬.”
“응?”
“나라면 박현성을 절대 설득하지 못했을 거야. 직업윤리와 계약서만으로는, 절대 저런 사람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거든.”
세단 뒷좌석의 그녀는, 내 어깨에 몸을 기대면서 말을 이었다.
“네 음악이 그걸 해낸 거야. 너만의 음악이, 너만 할 수 있는 음악이 박현성의 마음을 움직인 거야.”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얼어붙은 스타의 마음을 스르르 녹인 음악.
그녀는, 지금 내가 그것을 해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고 싶어.”
따뜻한 피가 돌고.
심장이 부드럽게 고동치는.
그런 음악을, 앞으로도 계속 연주하고 싶다.
할 수 있는 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