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천사의 가면 (1)
거칠게 쉬어지는 숨이.
도무지 진정되지가 않는다.
방금 전, 아니, 역전된 미래에서.
저 사이코패스가 나를 도로로 밀어 버린 것을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먹은 것을 게워 낼 것만 같다.
“김리듬. 괜찮아?”
조심스럽고,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
희재 선배의 목소리가 얼어붙었던 나를 녹였다.
“네. 괜찮아요.”
선배는 이제 고요한 표정으로 조현에게 물었다.
“왜 밀쳤어?”
“네? 그게 무슨……?”
“아니, 이렇게 묻는 게 더 정확하겠네. 왜 밀치려는 마음을 품었어?”
“선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밀치려는 마음을 품었다뇨.”
사람 얼굴을 보면서 소름이 끼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적지 않지만, 지금처럼 숨 막히는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희재 선배는,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으로 김조현에게 경고했다.
“그래. 밀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밀치지 않았다면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겠지. 그런데.”
그가 ‘그런데’에 강세를 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주위의 공기가 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표정도, 김조현과는 전혀 다른 종류지만.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처럼 보였다.
“나는 네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아주 잘 알거든.”
그의 추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선우철이 2차전 곡의 총보를 보았다는 사실이 과연 누구에게서 유출되었을까?”
녀석의 표정이 순간 흠칫, 하고 굳어졌고.
나는 그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건 선우철의 문제죠.”
“그리고 너는 선우철과 자주 만났지. 아, 부정할 생각은 하지 마. 이건 내가 선우철한테서 직접 들은 얘기거든. 유일하게 너만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전혀 근거 없는…….”
“외삼촌인 상문예고 이사장을 통해 김지희에게 우회적으로 압박을 가해, 어떻게든 파트보를 보게 만든 것도 바로 너지. 사실상 김리듬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지금까지 네 손아귀에서 놀아났던 거였어.”
그 순간, 녀석의 표정이.
정말 손으로 붙잡고 뜯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역겨운 악의의 결정체인 그 무언가가 되었다.
“그러면 어쩌실 건데요, 한. 희. 재. 선. 배.”
나는 순간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주먹을 쥐었지만.
정작 희재 선배는 그런 노골적인 도발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래요. 선우철이 총보를 보았다는 사실을 고발한 게 바로 저예요. 그리고 바로 여기서, 김리듬을 밀치려고 한 것도 바로 저고요.”
“…….”
“그런데 어쩌실 건데요. 전자는 공익 제보고, 후자는 증거가 없잖아요, 아무런 증거가. 설령 제가 그런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들,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저를 범인으로 몰 수 있어요? 전부 오해였고, 사고인데.”
증거가 없다, 라.
나는 주머니 속에 넣은 손에서 천천히 폰을 꺼내서는 버튼을 눌렀다.
― 그래요. 선우철이 총보를 보았다는 사실을 고발한 게 바로 저예요. 그리고 바로 여기서, 김리듬을 밀치려고 한 것도 바로 저고요…….
녹음이 꽤 잘되었다.
몇 번이고 다시 듣고 싶을 정도로.
“너 이 새……!”
녀석이 표정이 바로 일그러지며 내게 덤벼들려 했지만, 희재 선배의 존재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잘했다, 김리듬. 이렇게 완벽한 레코딩은 내가 귀신이 되어 버린 이후로 처음 듣네.]방금 전에, 정윤성은 저 녀석이 내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주머니 속에 넣은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켜 놓으라고 했다.
물론, 그게 나를 도로 한복판으로 밀치는 사이코패스 짓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
희재 선배는 저 사이코패스 자식과 나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보다가 선고했다.
“일단은, 확실하게 경고를 해야겠네.”
“…….”
“잘 들어, 김조현.”
그 순간, 희재 선배가 앞으로 한 걸음 움직였고.
나는 저 사이코패스 녀석이 희재 선배에게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허튼짓할 생각 하나라도 품지 마. 난 네 생각만큼 인내심이 깊지 않거든.”
“……그래서요.”
“얌전히 지휘만 한다면, 나도 오디션 끝날 때까지는 너한테 ‘공정한 경쟁’을 허용해 주겠다는 얘기지. 물론, 네가 지금처럼 또 선을 넘어 버린다면 너는 두 번 다시 음악을 못 하게 될 거야.”
희재 선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거기에는 저 뒤틀린 녀석조차 감히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잠시만요, 희재 선배. 이제부터는 제가 경고할게요.”
나도, 이 사이코패스 자식에게 할 말이 있다.
“김조현. 고맙다. 네 덕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어.”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사실 나, 지금까지 오디션을 하면서도 계속 갈등했었거든. 정말 내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도 될까, 하고 말이야.”
지금 계속 얼굴 보고 있기도 역겨운 인간이지만.
그거 하나만큼은 정말 미치게 고맙다.
“그런데, 네 덕에 아주 확실해졌어. 나는 반드시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될 거야. 왜냐고? 너 같은 사이코패스한테는 절대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를 넘길 수 없거든. 절대로.”
“그렇게 될 것 같아?”
“그렇게 돼. 두고 보면 알아.”
나는,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선언했다.
“나는 너를 실력으로 누를 거야. 너처럼 더럽고 비열한 방식을 써서 남을 거꾸러뜨리는 짓은 안 해.”
그렇게, 당당하게 녀석에게 포고를 해 버린 후.
나는 희재 선배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이제 가죠. 희재 선배.”
* * *
“네, 네. 오늘 저녁부터 바로 업무 시작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끊겠습니다.”
희재 선배는 그 사이코패스와 멀어지자마자 바로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어 뭔가를 지시했다.
“누구예요, 대체?”
“오늘 저녁부터 너를 경호할 경호원이야.”
“경호원이요?”
“당연히 있어야 해. 저 싸패 자식도 그렇고, 앞으로 네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경호원이라니.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내게 계속 생기고 있다.
“아우…… 목이야…….”
긴장이 조금 풀어지니,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마치 무심하게 던져 넣은 이물질들이 수도관에서 역류하듯, 터져 버린 피로감이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김리듬.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2차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가 버리면 어떻게 하니. 걱정했잖아.”
“죄송합니다.”
“네가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내가 네 뒤를 급히 밟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났을 거야. 김조현도 마침 같이 사라졌고 말이야.”
희재 선배는 짐짓 슬프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의 시선이, 금이 간 채 멈춘 시계로 내려갔다.
“선배, 시계가…….”
“괜찮아. 리듬이 네가 내게 해 준 일에 비하면, 시계와 거기 담긴 능력은 아무 것도 아니지.”
“시계에…… 능력이 담겼다고요?”
“아, 혹시 몰라서 숨겨 두고 있던 거였는데.”
그는 엷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번에 리듬이 네가 베토벤의 ≪크로이처≫로 나를 구원했을 때, 내게 축복이자 저주가 된 회귀 능력의 일부가 이 시계에 남았더라고.”
“그게 가능해요?”
“이건 가설인데, 이 시계가 나와 정말 오랜 시간을 같이했고, 모든 회귀의 순간을 함께했기 때문인 것 같아.”
평온하기만 했던 그의 눈동자에.
갑자기 격렬한 증오심이 튀었다.
“김리듬. 파멸이라는 건, 파멸시키고 싶은 대상이 가장 높은 지점까지 올라갔을 때 떨어뜨려야 완벽하다는 얘기가 있어.”
나는 그가 어떤 얘기를 할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김조현을 이번 오디션이 끝나는 순간에 파멸시킬 거야. 이미 결정적인 증거들을 거의 모았고, 가장 치명적인 순간에 터뜨릴 거야.”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대답했다.
“선배. 김조현이 저지른 악행을 밝히는 게 파멸이라면, 나도 돕고 싶어요.”
“그럴 필요 없어.”
“아니. 나는 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을 거예요.”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내 실수였어, 김리듬. 네 신변 안전에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지금부터라도 신경 써 주세요.”
“전수정한테 얘기해 둘게. 물론, 너무 신경 쓰지 않는 방식으로만.”
“네.”
“그러면, 오늘은 편히 쉬어. 내일부터 다시 달려야 할 테니까.”
* * *
집에 가는 내내, 윤성은 별말이 없었다.
도착한 후에도 말이 없어서,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 해요, 정 마에?”
[그 미친 사이코패스 놈을 어떻게 지옥으로 끌고 갈지 고민하는 중이었어.]이 짤막한 한마디 말만 들어도.
정윤성이 얼마나 빡쳤는지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녀석이 지휘한 음악…… 그걸로 녀석을 끌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다.]“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어쩌면, 녀석이 지휘한 음악은…….]그의 설명을 전부 듣자, 김조현의 연주에서 느껴진 꺼림칙함이 이해가 되었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역겨운 녀석이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보다 역겨운 녀석은 아마 없을 거다.]“…… 그게 사실이라면, 증거를 모아야겠네요.”
[그래, 바로 그거다.]윤성은 피처럼 빨간 노을을 보며 중얼거렸다.
[한희재, 이 껄끄러운 녀석이 이번에 이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물론, 전적인 신뢰는 별개의 문제지만.]다시 생각해 보니 소름이 끼친다.
만약, 희재 선배가 없었더라면.
나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다시 목이 뻐근했다.
‘피곤함과는 별개로, 오늘 잠이 오려나?’
그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내 폰의 바흐 음악.
번호를 보니 전수정이었다.
“여보세요?”
― 내일 저녁에 뭐 할 거야, 김리듬?
평온한 목소리.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은, 아직 모르는 듯하다.
나는 평온을 연기하며 대답했다.
“아, 나는 연습실에서 연습을…….”
― 그러면 잘됐네. 내일 나하고 같이 백화점에 가자.
“잉?”
이건 전혀 예상을 못 했는데?
도대체 왜?
* * *
“어서 타, 김리듬.”
티 하나 없는 깔끔한 중형 세단이 집 앞에 와 있다.
그 안에 앉아 있던 전수정이, 안에서 내게 손짓한다.
내가 홀린 듯 뒷좌석에 앉자마자 차가 출발했다.
“전수정. 도대체 백화점은 왜?”
“이제 곧 3차전이 시작되면, 너와 김조현을 스타일링할 거야. 그 전에 미리 몇 벌 입어 보자는 거지.”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재벌가 따님의 재력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아, 오셨습니까.”
이미 백화점에는 언질이 다 전해진 모양이다.
딱 봐도 높으신 분이 우리를 에스코트하는 걸 보니.
“이제 곧 문 닫을 시간이니, 한 층을 전부 빌렸어.”
“…….”
“자, 지금부터 네가 입을 옷들을 고르자.”
이건 미친 짓이야.
“수트 입는 것도 지금부터 익혀 두는 게 좋아, 김리듬. 너는 잘만 입히면 옷태가 사는 타입이니까.”
윤성도 가만히 있지 않고, 나를 적극적으로 코디하기 시작했다.
[톰포드 수트 한 벌 입어 보자고 해. 나름 캐주얼하고 편하게 입을 수 있어서 너의 첫 정장으로 잘 어울릴 거다.]“마에스트로. 왜 이렇게 정장을 잘 알아요?”
[내 스승이라는 양반이 워낙 정장에 미쳐 있던 인간이어서. 음악은 설렁설렁 가르치던 인간이 가봉 과정 때는 완전히 악귀가 따로 없었다고.]“마에스트로 노이만이요?”
[그래. 그러다 보니 나도 미쳤지. 원래, 같이 있다 보면 닮는다고 하잖냐.]그의 입에서 나오는 정장에 대한 지식은.
절대 단순한 자랑이 아니었다.
[나는 출국하면 무조건 테일러에서 옷을 맞췄어. 정장을 만드는 과정이 어떻게 돌아가냐면, 일단 비스포크를 하러 가면 먼저 원하는 스타일과 원단을 정한 후, 사이즈를 측정해. 그리고 사이즈대로 틀을 잡고 가봉을 해 보는데, 이때 재단사가 직접 보면서 어디를 더 줄여야 할지 늘려야 할지 확인하고 디자인도 어느 방향으로 손볼지 서로 확인하지. 그다음에 2차 가봉에서 재확인을 끝내고, 여기서 컨펌하는 대로 최종적으로 옷이 나온다고. 원단의 종류는…….]이건 광기다.
옷에 미친 귀신이 발산할 수 있는 최대치의 광기.
[영국 원단 없는지 한번 물어봐. 옷이 튼튼한데 이태리 원단 같은 맛이 없어서 ‘대충’ 입을 때 주로 찾거든. 너한테는 좋을 거다.]들으면서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심지어, 그는 타이 하나도 까다롭게 굴었다.
[타이를 맬 때 딤플이 들어가면 스타일에 신경 쓴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사소한 것 하나도 흠이 될 수 있는 이 바닥에서 네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면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전수정은 계속 다른 옷을 보여 달라고 하지.
윤성은 옆에서 쉬지도 않고 떠들어 대지.
문자 그대로 정신 나갈 것 같다.
그렇게, 수십 벌의 옷을 입어 본 후에야.
광기 어린 백화점 쇼핑이 끝이 났다.
[음. 드디어 옷태가 사네.]“괜찮아 보이네.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이거 우리 집에 다 안 들어갈 것 같은데요.”
“흐음. 그러면 옷만 보관할 원룸을 하나 사줄까?”
“아니, 아니야! 제발 그러지 마! 제발!”
“좋아. 그러면 그 건은 보류하고. 어머님께 드릴 옷도 봐야겠지?”
그렇게 나는.
어머니가 입으실 옷까지 전부 구매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