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천사의 가면 (4)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결과가 발표된 직후.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나를 바로 뒤풀이 장소로 이끌었다.
“크으! 드디어 김리듬과 마음 놓고 축배를 기울이는구나! 모두 잔을 높이 들어라! 오늘만큼은, 이 김가인이 모두 취하는 것을 허용하겠다!”
“누구 맘대로! 축배는 3학년이 들어야지!”
“아, 진짜 운영 선배! 그러지 좀 맙시다!”
나는, 희재 선배가 따라 주는 사이다를 받았다.
“축하해, 마에스트로 김리듬. 이제 네가 우리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수장이야.”
“마에스트로 김리듬이라니. 많이 부끄럽네요.”
“그러면, 이제 축배를…….”
축배사를 외치려던 희재 선배의 말이 뚝 끊겼다.
이 자리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고.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는 인물이.
저기서 오고 있었다.
그는 지금, 역겨운 가면을 쓴 채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축하한다, 김리듬.”
김조현이 천천히 내게 다가와서는 악수를 청했다.
“기어이 나를 이겼네? 희성예고의 백으로.”
누가 봐도 의도가 분명했다.
이 뒤풀이 파티를 망치러 온 것이다.
내가 이 사이코패스 자식에게 한마디 하려는 순간.
희재 선배가 나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김조현. 너는 여기 오지 말아야 할 인물일 텐데?”
“어째서죠, 희재 선배? 저는 순수하게 김리듬을 축하하러 온 것일 뿐인데.”
“내 경고를 완전히 잊어버렸구나, 너.”
희재 선배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선고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 김조현. 그러면 네가 이 바닥을 영원히 떠나야 할 일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싫다면요?”
“그러면 하는 수 없죠. 김조현 선배.”
나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눈동자에서 하이라이트가 완전히 사라진 전수정의 모습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저렇게 분노한 표정은, 반년 동안 같이 있으면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선배. 지금 여기서 이렇게 한가하게 우리하고 얘기할 시간이 없을 텐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전수정.”
“아. 방금 전에 예고생 몇 명이 인터넷에 무슨 글을 올린 것 같아서요. 보여 드릴까요?”
그녀는 조현에게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내밀었고.
그 글을 확인하는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희성예고 음악천재≫ 보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천사 같은 얼굴에 절대 속지 마세요. 콩쿠르 16회 우승? 그거 다 돈 먹이고 협박해서 얻어 낸 거야. 김리듬. 진심으로 응원한다. 제발 저 악마를 이겨 줘.
전수정이 스크롤을 내리자.
콩쿠르를 앞두고 벌어진 추잡한 거래와.
뒤에서 암암리에 벌어진 협박이.
익명으로 전부 적혀 있었다.
“이런 글이 좀 많더라고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너희들이 짠 거지? 그렇지?”
“그럴 리가 있나요? 그런데 여기 보면 지금 선배에게 당한 사람들이 소송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제 선배가 갈 곳은 학교나 무대가 아니라 법정인 것 같은데요.”
“이 개……!”
그녀의 칼날 같은 목소리에 이어.
내가, 드디어 앞으로 나섰다.
이 자식에게.
조용하지만 잔인한 선고를 내릴 순간이 된 것이다.
“조현 선배. 이제는 인정하세요.”
“뭘 인정하라는 거야. 응?”
“당신이 오늘 연주한 모차르트는 당신이 만든 것이 아니잖아. 누군가의 천재성을 훔친 장물이지.”
“이제 이런 식으로 나를 음해하려는 거야? 어?”
“음해가 아니죠. 엄연한 물증이 있는 사실인데.”
“왜 그래. 다들 무섭게…….”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어느새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끼어들어 나와 김조현 사이에 섰다.
마치 나와 김조현 사이를 막아서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조용히 단원들을 비집고 그와 대면했다.
“마에스트로 정윤성의 영감을 훔친 장물이잖아.”
“흐, 하하하하…….”
녀석이 웃는다.
소름 끼치게.
“하하하. 정말 망상 좀 그만 나불거려. 밥맛 떨어지게.”
“얼룩 하나 없어 보이는 당신의 콩쿠르 도전기에 공백기가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당신은 갑자기 2년 동안 그 어떤 콩쿠르에도 나서지 않다가, 3년 전부터 다시 콩쿠르에 나섰어.”
“개소리.”
“3년 전, 마에스트로 정윤성이 죽었을 때 학교에 있던 정윤성의 악보 일부가 분실되는 일이 있었어. 사실 그런 사소한 분실에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그의 악보는 그것 말고도 천여 권이 넘는데.”
“개소리라고.”
애초에, 천재로 일컬어지던 이 녀석의 음악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그때 희성예고에 몰래 들어와 그 악보들을 훔친 거야. 학생 때부터 이미 천부의 재능을 자랑하던 정윤성의 모든 것을 훔쳐서 표절한 거라고.”
“개소리라니까.”
그는, 정윤성의 악보들을 훔쳐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콩쿠르 심사위원 매수 시도 및 성공까지.
그런데 어째서 들키지 않았던 걸까?
그 대답은 희재 선배가 대신해 주었다.
“지금까지 들키지 않은 이유는, 졸업과 동시에 정윤성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기 때문이지.”
천재를 넘을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뿐이라고 했던가.
그는 이미 찬연하던 고등학생 때의 자신을, 졸업과 동시에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천재가 자아내는 현재의 유산이 더 찬란한데, 누가 천재 자신이 묻어 둔 과거의 찌꺼기 따위에 집착하겠어?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집착하고 표절해야만 하는 보물이었던 거야. 바로, 김조현 너 말이지.”
“증거 있어?”
녀석의 눈동자가 팽팽 도는 게 보였다.
지금 녀석의 상태는, 누가 보아도 정상이 아니다.
“증거 있냐고? 증거 없이 사람 몰아붙이면 위증죄로 고소당할 수 있는 거 알지? 증거…… 그 폰 내려놔!”
녀석이 갑자기 급발진을 해서 깜짝 놀랐지만.
정작 증거를 들어 올린 희재 선배는, 태연하게 이 사이코패스를 피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정윤성의 고등학교 때 지휘 영상이라는 증거가 있더라고. 과거 정윤성의 모습과, 현재 너의 모습을 비교하기 쉽게 누군가 잘 편집해서 올려놨네. 동일한 지휘 동작에, 동일한 해석, 동일한 포인트에 쉬는 모습까지. 이건 좀, 심한 데드카피 아닐까?”
“그 폰 내놓으라고!”
전에 윤성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한희재는 전수정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라고.
그는, 파멸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완성했다.
정윤성과 김조현의 영상을 비교한 학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심각하게 굳어 갔다.
하나둘씩 입을 가리고.
그를 두고 입방아 찧기 시작한다.
“진짜네? 완전히 정윤성 데드카피네?”
“세상에. 그래도 천재인 줄 알았는데, 사실 전부 남의 악보 훔쳐서 만든 이미테이션이었어.”
“어쩐지. 완전히 딴 사람처럼 달라졌다 싶더라니.”
“게다가 콩쿠르 때마다 경쟁자 협박했대.”
“뭐야, 그거. 완전 싸패잖아.”
“이번에도 그랬을 거 아냐.”
수군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정말 무섭네. 그러면 지금까지, 다른 학생들을 뒤에서 조종해 온 거야?”
“김리듬을 해치려고 그랬다며?”
“뭐 저런 새X가 다 있어?”
그의 정신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는, 지금 보여 주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이제 인정해, 김조현.”
“아니야…….”
“오늘 우리 학교에 온 한국예고 아이들이, 어째서 이 자리에 너를 버려 두고 다 떠난 걸까? 이미 너에 대한 소문이 거기에도 다 퍼졌기 때문이야. 너는, 이제 네 학교에서도 철저하게 버림받게 될 거야.”
“아니라고…….”
“고백해. 너의 실상은, 썩어 문드러진 악마라고.”
“나는 완벽해…….”
보통 이런 상황에서, 정상인이라면 소리를 지르거나 이성을 잃고 달려들기 마련이지.
저런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완벽해야만 해…….”
나는 그의 눈동자에서 쏟아지는 외침들을 보았다.
아니야.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어.
그 사랑을 계속 받으려면.
본성을 숨기고, 가면 정도는 써도 되잖아?
어릴 적부터 깨달았어.
‘연기’로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순간.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고.
“……내가 살린 거야.”
녀석의 일그러진 입술에서.
짜내듯 몇 마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뭐?”
“묻혀 있던 당신의 악보를, 내가 발견해서 되살린 거라고! 당신도 아까웠잖아! 자신의 천재적인 결과물이 그냥 묻혀 버리는 게 아까웠을 거 아니냐고!”
그는 지금 사람에게 소리치는 것이 아니다.
“듣고 있지, 마에스트로 정윤성! 듣고 있으면 내 앞에 나타나! 나타나서 나를 변호해!”
그리고, 그의 부름에 응해서.
망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정말 그걸 원해, 사이코패스 씨?]“흐억! 가, 가까이 오지 마!”
망령의 모습은, 마치 학교에 걸려 있는 정윤성의 초상화를 난도질하고 붉은 잉크를 끼얹은 것 같았다.
얼굴 한쪽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고.
몸 곳곳이 파쇄기가 갈려 들어간 듯한.
그런, 끔찍한 형상의 정윤성이.
조현의 눈앞에서, 그를 냉엄하게 내려다보았다.
[끔찍하지? 아마 그럴 거야. 지금 네가 보는 나의 형상은, 바로 네 일그러진 마음의 반영이거든.]망령이 섬뜩한 목소리로 그에게 선고했다.
반쯤은 썩되 반쯤은 썩지 않은 형상으로.
얼굴 한쪽은 짓뭉개져 검붉은 덩어리로 보였고.
빠져서 흔들거리는 눈이 거기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이 세상에 망령을 불러내는 것은 바로 살아 있는 자들이다. 김리듬의 정직함과 순수함이 나를 순수한 유령으로 보이게 하듯, 너의 추악하게 일그러진 본성이 나를 소름끼치고 섬뜩한 망령으로 보이게 하는 거다.]“저, 저리 꺼져!”
[너 같은 사이코패스도 두려움은 느끼나 보지? 하지만 진짜 두려움은 이제부터일 거야. 심판의 시간이 곧 네게 도래할 테니까.]망령의 마지막 선고가, 그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너를 심판하는 건 바로 너 자신이 될 거다. 이제부터 네가 음악을 연주하려 들고 음악을 들으려 하면, 그 음악이 너의 지옥이 될 테니까.]* * *
“마에스트로. 그날 밤에 김조현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내가 뭔 짓을 해. 그냥 독설 좀 퍼부었을 뿐이야.]“마에스트로.”
[알았어, 알았다고.]그날 파티는 최악의 형태로 끝나 버렸다.
김조현은 그날, 계속 ‘제발 사라져’를 중얼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도망쳤고,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
집에서 피아노를 치려다가 괴성을 지르며 피아노 덮개로 손가락을 찍어 버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신이 완전히 무너진 그를, 유력 사업가인 그의 부모가 반강제로 해외 출국 시켰다는 소문도 돌았다.
전부 풍문일 수도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가 국내에 있든 해외로 도피했든.
이제는, 두 번 다시 음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사람 본성에 따라서 망령이 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악용했을 뿐이야.]“그게 무슨 소리예요?”
[크흠. 그러니까 네 눈에는, 내가 좀 투명하기만 하지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잖아. 안 그래?]“그렇죠.”
[그런데, 김조현처럼 일그러진 놈한테는 전혀 안 그렇거든. 아마 그놈에 비친 내 얼굴은, 정말 끔찍한 모습으로 비쳤을 거다. 마치…….]“비행기 사고를 당한 모습처럼요?”
무거운 침묵이 몇 초나 흘렀을까.
망령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래.]“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사람의 눈에 보이는 망령은 내면의 거울이니까.]축제의 마지막에 얼룩이 묻었지만.
축제가 끝난 지금은,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민한기 PD가 마지막 화를 어떻게 만들까요?”
[진실을 방영하겠지.]민한기 PD는 그 진실의 일부를 카메라에 담았고.
진실의 최대치를 마지막 화에 담았다.
천사 같은 얼굴의 조현이 지휘를 하다가.
화면에 노이즈가 끼고 흑백이 되면서 멈춘다.
천사의 얼굴 화면이 돌연 쩌적, 쩌저적 소리를 내며.
파삭 깨져 버리는 장면이 냉혹하게 재생된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추잡한 모습들이.
그의 연주와 교차 편집 되어 나타난다.
경쟁자를 협박해서 콩쿠르를 포기하게 만들고.
압박을 가해 본선 연주를 망치게 만든 의혹들이.
지금까지 민한기 PD가 만든 것과는 전혀 다른.
즐겁지도, 기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냉혹한 이야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마지막 화의 방영을 원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화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김석희 대기자의 내레이션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마지막 사람이 연주회장의 불을 끄고 나간다.
이제, 송출되는 화면은 컴컴한 정적뿐이다.
그렇게 연주회장은 어두워지지만.
영원히 암흑 속에 잠기는 결말은 아니다.
[잠깐만. 뭔가가 움직이는데?]검은 바탕 위에 순백의 글자들이 새겨진다.
나의 모차르트 연주를 배경음 삼아.
송수현 이사장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녀의 표정은 유쾌하게 상황을 즐기던 1화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던지는 메시지만큼은 달랐다.
이제 내레이션은 모두 사라지고.
나의 모차르트 연주가 계속 이어진다.
눈물 같은 빗방울로 깨끗하게 씻어 낸.
그 투명하고 영롱한 세계의 음악으로.
아, 카메라에 담기지 못한 뒷이야기가 하나 있다.
마지막 화의 송출을 막으려고 민한기 PD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 왔지만, 그는 깔끔하게 그 협박을 씹었다.
‘바쁘니까 앞으로는 전화하지 마십시오.’
심지어 그 ‘외부 세력’은, TBS에 대한 투자 중단을 들먹이며 양일기 사장까지 압박했지만.
양일기 사장은 끝까지 민한기 PD를 지켜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회가 TBS 교양 프로그램 역대 최고 시청률인 16.1 퍼센트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뜬 날.
민한기 PD는 TBS에서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