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a golden spoon songwriting genius RAW novel - Chapter 153
154. 돌아가기금수저 작곡천재가 되었다
그래미 (2)
#
브루스와 나는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사실 오늘 시상식이 열리기 전, 나는 이곳에서 여러 유명인들을 많이 마주쳤었다.
그래서 지금 그를 만난 게 놀랍지는 않았지만······.
“······지나갈게요.”
“······.”
입구에서 꿈쩍도 안 하는 건 뭐 하자는 건가 싶다.
어깨 조금 부딪힌 걸로 이러는 건 아닐테고.
인상이 슬슬 찌푸려지는데, 브루스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김도하, 맞죠? 반가워요.”
화장실이 인사를 나누기에 그렇게 적절한 곳은 아니겠지만.
“반갑습니다.”
나는 그에게 마주 인사를 해주었다.
그때 밖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장르별 시상이 시작된 모양.
하지만 브루스는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서 말했다.
“앨리스 덕을 많이 보셨던데.”
“네?”
“앨리스의 작업에 참여하신 거, 정말 행운이었죠?”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브루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그렇게 쳐다보진 마세요. 그냥 행운도 실력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동의합니다. 아무리 좋은 곡을 냈다 해도 행운이 없었다면 4관왕은 힘들었겠죠.”
브루스가 4관왕을 거머쥐었을 당시의 음반.
들어봐서 안다.
그건 명음반이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여러 행운이 없었다면 얻지 못할 영광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국적 혹은 인종 같은 것 말이다.
내 말에 브루스는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뭐,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이야, 그땐 어떻게 상을 다 휩쓸었는지. 영화를 그렇게 만들어도 비현실적이라고 욕먹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가 재미있다는 듯 말하고서 내게 물었다.
“그럼 본인은 어떨 것 같아요? 그 정도의 행운이 따라줄까요?”
“글쎄요.”
시상식장의 분위기가 더더욱 뜨거워졌다.
희미하게 들리는 노랫소리는 나도 아는 해외 가수의 것이었다.
장르별 후보로 나왔던데, 이번에 상을 타갈 수 있을런지 궁금해진다.
“운도 실력이라면, 제가 수상하겠죠. 저는 그걸 이미 넘치도록 받았거든요.”
“그래요? 나중에 자서전이라도 쓰면 되겠네요. 멋진 타이틀이 뽑힐 것 같은데.”
브루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농담으로 넘기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죽었다 깨어났더니 새인생을 살 기회가 주어졌더라, 같은 사실 말이다.
브루스의 말대로, 영화 각본으로 나와도 욕먹을 정도였으니까.
브루스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렇게 말하시니 다행이네요. 맞아요, 운도 실력이죠. 결과가 나왔을 때도 이 마음 그대로 순응할 수 있길 바랍니다.”
심사위원이면서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나는 황당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브루스는 전혀 개의치 않아하며 내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만나보기 의심이 조금 들었었는데······이제는 없어졌네요. 안에서 봅시다.”
이 말 한 마디를 남기고서 밖으로 나갔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손도 안 씻고 나갔네.”
브루스와는 악수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사실을.
나는 대충 매무새를 정리하고서 다시금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관객석에서 조정우와 하나연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간이 작아서야.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언젠가 하나연은 연말 시상식에 주인공으로 서게 될 텐데, 벌써부터 그때가 걱정 되기 시작했다.
둘을 무시하고서 앉으려는데 누나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수상 소감문, 가져왔어?’
그래도 가족이라 이건가.
내 수상을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한 차례 흔들어준 뒤 착석했다.
애초에 소감문 같은 준비하지 않았다.
제이든이 기껏 전해주긴 했지만, 사실 나는 첫 줄만 읽고 말았다.
확신이 없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제이든과 내 경우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너무 성실하다니까.’
나는 팔짱을 끼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
“무슨 화장실을 그렇게 오래 가요?”
제이든의 물음에 브루스는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변비가 심해서.”
“······전처럼 손도 안 씻고 나온 건 아니겠죠?”
“당연하지.”
브루스가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굉장히 건조했지만, 무대에서 불빛이 번쩍거리는 통에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제이든은 순순히 믿으며 말했다.
“아무튼 조금 있으면 본상 시상 시작할 것 같으니, 그냥 자리에 붙어있는 게 나을 겁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어차피 결과는 다 정해져있잖아.”
“우리는 모르잖아요.”
“모른다고? 난 아는데.”
제이든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거짓말.”
“에이, 안 속네. 그런데 진짜로 예상 가능하지 않나? 해봤자 앨리스잖아.”
“그쪽이 궁금한 게 아니에요.”
“올해의 노래상은 뭐······하늘에 맡기는 거고.”
“말이 이상한데. 존 찍었어요?”
“나 말고도 찍을 영감들 많은데 내가 뭐하러.”
브루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한 뒤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지. 그 영감들이 기적적으로 생각을 바꿨을 지도. 대중들한테 욕먹는 건 또 싫어하거든.”
“하아, 기적 같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 결과에 납득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제이든이 한숨을 쉬었다.
브루스가 그를 곁눈질했다.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있을 수도 있지.”
“그런 걸 믿는 타입인 줄은 몰랐는데요.”
“얼마 전부터 바뀌었어.”
브루스의 대답에 제이든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무시하고서 브루스가 생각했다.
‘사실 답은 이미 다 정해져 있었지.’
누가 들어도, 이번 본상 세 개 부문의 수상곡은 ‘Riddles’ 하나밖에 없었다.
그건 그가 ‘영감들’이라고 칭한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럼에도 존 테일러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건, 그들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그러니.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봅시다. 하비, 당신 귓구멍이 꽉 막히지 않은 건 확실해요?’
‘뭐, 뭐?’
전에 하비도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한창 앨리스와 하비가 신나게 싸울 때.
브루스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존을 찍는단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정말로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그럼 브루스 자네는 웬 들어보지도 못한 동양인 작곡가한테 상을 줘야한다고 생각하나? 전통성도 다 무시하고서?’
‘아이고, 그딴 게 무슨 상관이라고요. 노래는 눈으로 듣는 게 아니잖아요. 안 보이면 누가 누구든 어떻게 알아요?’
‘그러는 자네야말로 그가 레이블의 대표라거나,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 평가하는 건 아니고?’
브루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설령 그가 가진 것 하나 없다고 해도 그를 찍었을 겁니다. 대표니 대중이니 해도, 내가 듣기에 좋으면 그만이죠. 그리고 장담하는데, 저런 사람들은 언젠가는 인정받게 되어 있어요. 굳이 이런 무대가 아니더라도요.’
그의 말에 하비는 대답이 없었다.
브루스가 계속해서 말했다.
‘어차피 그는 그래미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가치를 보여줄 겁니다. 그리고 시대를 못 따라가는 시상식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겠죠.’
그러고서 그는 한 마디를 더 했다.
‘하비, 당신도 그나마 가지고 있는 권위를 망치고 싶진 않을 거 아니에요. 한국의 기획사들이 모두 김도하를 밀어주던 건 봤겠죠. 다들 우리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에요. 내년부터는 양상이 확 바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이런 시상식을 보는 사람도 없어질걸요.’
우리에 대한 비난은 덤이고요, 라고 덧붙인 말에 하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앨리스만 미친 줄 알았더니, 자네도 비슷하군.’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은데요.’
그러면서도 그는 웃는 낯이었다.
‘그래도 제일 미친 건 제이든이겠죠. 제이든이 아니었다면 나도 나서진 않았을 테니까.’
그 말대로 그는 제이든 덕에 김도하라는 후보를 알아보게 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누구보다도 고지식한 제이든이 특정 후보를 응원하는 걸 보며 호기심이 생겼었으니까.
브루스가 봤을 때, 그런 제이든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도 김도하의 운이자 실력이었다.
‘그래서 아까 물어봤는데, 본인도 당당하게 대답했었지.’
대체 스스로 무슨 확신이 있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 덕에 괜한 짓 한 건 아닐까 싶던 생각도 사라졌고 말이다.
어쨌든 그는 할 만큼 했다.
하비도 결국 ‘자네 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 믿어보지. 나 하나 설득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 테지만.’이라며 수긍했으니 말이다.
‘이래도 안 된다면, 그냥 아직 때가 아니라는 거겠지.’
브루스는 가볍게 생각하며 시상식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제너럴 필드 시상이 시작되었다.
#
한국 시간으로는 아직 정오를 지나지 않았을 때.
DH 엔터 휴게실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중에는 손여울과 박석훈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상식이 생중계되는 화면을 쳐다보던 박석훈이 참다참다 결국 하품을 했다.
“아, 본상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그 말을 내뱉자마자 손여울이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술에 갖다댔다.
“쉬잇! 다른 상들도 봐야죠. 다들 열심히 노력해서 맺은 결실인데.”
“여울아, 너도 솔직히 지루하잖아. 여기서까지 천사처럼 굴지 않아도 돼.”
박석훈이 이해한다는 듯 말하자, 손여울이 고개를 갸웃했다.
“천사처럼 군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와 친해지기 전까지는 분명히 컨셉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는 연예인들의 다른 모습들을 많이 봐왔으니까.
하지만 ‘김도하 없는 김도하 생일파티’를 계기로 손여울과 친해진 뒤.
그는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은 걸 꾹 참아야 했다.
‘천국에서 떨어질 때 아프지 않았냐?’
한물 간 작업멘트였지만, 진심으로 묻고 싶을만큼 손여울의 인성은 훌륭했다.
덕분에 그 또한 달에 한 번은 봉사를 가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물론, 아직 실행은 안 하고 결심만 했다.
“아, 이제부터인가 봐요.”
사람의 탈을 쓴 손여울이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화면을 보니, 신인상부터 발표가 되고 있었다.
얼마나 기쁜 건지 눈물까지 흘리며 수상하는 가수는, 그도 즐겨듣던 노래를 부른 아티스트였다.
“노래 좋더만 잘됐네.”
“와, 스물 하나? 좋을 때다.”
손여울이 아련한 얼굴로 말했다.
박석훈이 그녀를 어이없이 쳐다봤다.
그러고서 얼마 뒤 곧 올해의 레코드와 앨범상 수상자까지 호명되었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뭐, 예상했지.”
“저도요.”
앨리스 워커.
그녀는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서 시원한 웃음을 지은 채 화면에 등장했다.
짧은 소감을 마친 그녀는 곧바로 이어진 퍼포먼스에서 ‘아직 안 끝났으니 이따 다시 봐요’ 라는 말을 남기고서 무대를 내려갔다.
손여울이 대단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환호성이 엄청나네요.”
“지금 제일 인기있는 가수니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지.”
박석훈의 말에 손여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석훈이 망설였다가 덧붙였다.
“있잖아, 만약 안 되더라도 격하게 환영을······.”
“아, 진짜 그러기에요?!”
손여울에게 한바탕 혼이 나고서야 그는 입을 완전히 다물었다.
두 사람은 물론, 다른 직원들까지 화면에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드디어 올해의 노래상 시상이 시작되었다.
-올해의 노래상 부문에는······.
모두가 긴장한 와중, 곧 결과가 발표되고.
“······.”
휴게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건 박석훈이었다.
“······봐봐, 될 놈은 된다니까.”
그는 멍하니 생중계 중인 화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하단에 큼지막하게.
‘Riddles / DoHa Kim’
······이라고 적혀있는 화면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