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10)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9화(10/547)
(9) 삼부회의 폭풍 속, 유진은 신대륙으로 간다
삼부회, 이름처럼 3개의 계급이 모이는 회의체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전부다. 제3신분은 무엇이었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3신분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무엇이든 되기를 요구한다!”
1789년 4월 28일, 화요일은 아침부터 들끓고 있었다.
마침내 삼부회가 소집되는 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혹독한 겨울로 프랑스 전체가 흉작에 휩쓸렸다.
그렇잖아도 힘겹던 삶이 다름 아닌 [빵] 가격 폭등으로 무너졌다.
고기도, 의복도, 가구도 모두 팔아치워야 했다.
문자 그대로 추위 속에서 헐벗고 굶주린 파리 시민들은 눈에 불을 켰다.
그렇다고 왕실과 정부가 대처할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왕실은 굴복했다.
175년만에 삼부회를 소집해,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이, 이번에 삼부회에 나아갈 시예예스 사제의 말이오! 이 나라는 지, 지금 세금도둑들은 필요 없소! 새, 새로운 제3신분의 말을, 시민의 말을 저, 정부는 들으라!”
프랑스 파리, 루이 15세 광장.
왕의 이름이 붙은 광장에서 연사가 외치고 있었다.
삼부회에 나가게 된 의원일 것 같은데 살짝 말을 더듬는다.
그러나 더듬는 말에도 헐벗고 굶주린, 폭발할 것 같은 시민들이 열광해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화려한 귀족의 육두마차, 곧 여섯 말이 이끄는 마차 안까지 들릴 정도다.
현대로 치면 롤스로이스쯤 될 마차 안, 유진이 고개를 돌렸다.
궁전을 향해 출근하던 유진을 만나, 갑자기 태운 마차의 주인을 향해서.
“이미, 파리는 난리군요.”
마차의 주인, 오를레앙 공작이 빙그레 웃었다.
파리가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방금 들려온 시예예스는 오를레앙 공작이 본인의 저택, 팔레 루아얄에 초빙하는 인사다.
세금도둑이니 제3신분의 요구니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와중이다.
성직자, 귀족, 그리고 도시 시민.
3번째 계급.
하층민이나 농민은 아예 발언권이 없는 18세기 말, 유일한 발언권을 가진 이들.
그 중 가장 말단인 제3신분, 시민들이 들끓는다는데 왕국 제1귀족이 여유롭다.
이 상황을 자기가 조종한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오를레앙 공작이 웃는 채로 유진에게 말했다.
“후후, 그대가 어리다는 게 아쉽군. 도박 신동. 10살만 많았어도 삼부회 의원으로 추천했을 텐데.”
“공작 전하도 의원으로 들어가셨나 보죠?”
“그래. 이번 삼부회는 이전 명사회와 다르니까.”
문득 공작이 눈을 번뜩였다.
“나라를 뒤집을 절호의 기회가 될 거야, 도박 신동.”
명사회, 곧 귀족과 성직자를 비롯한 귀족명사들의 회의체다.
2년 전, 1787년에 역시 160년만에 개최되었다.
사유는 이번 삼부회와 똑같다.
세금신설.
그러나 귀족과 성직자들은 신규 토지세와 증서에 붙이는 인지세를 거부했다.
승인된 것은 그 다음 해, 1788년에 간신히 허락된 채권발행 뿐.
바로 지금 유진이 베어링스 뱅크에 팔아치우고 있는 그 프랑스 공채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회의였던 셈이다.
결국 왕은 견디지 못하고 평민유력자들까지 모으는 삼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야심가 오를레앙 공작은 삼부회는 의원으로 참석하기로 한 모양이다.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야 흙 섞인 빵을 안 먹는 걸로 충분합니다. 곧 먹게 될지도 모르지만.”
“후후! 돈 많으면서 웬 엄살인가? 자네가 나를 시작으로 채권 장사하는 거 소문이 자자한데? 내 은혜를 잊지 않았다면 앞으로 잘 도와주겠지?”
“벌써 정치자금이 필요하신가 보죠?”
문득 오를레앙 공작이 마차의 유리창 밖을 보았다.
“거리를 보게, 신동.”
연사는 이미 내려온 뒤다.
그러나 일단 모인 군중은 흩어지지 않았다.
헐벗고 굶주린 시민들이 눈에 불을 켠 채 포효했다.
바로 집 하나를 둘러싸고 태우려 하는 것이다.
“민중을 수탈하는 저 세금도둑을 불태워라!”
“와아아! 불태워라! 도둑! 강탈자!”
“감히 뭐? 유부남 일꾼은 동전 15닢이면 살 수 있다고? 죽일 놈!”
생 앙투안 거리, 벽지업자 레베이옹의 집이 공격을 받고 있었다.
레베이옹은 꽤 잘 나가는 업자긴 하지만 실은 제3신분 옹호자다.
그러나 일꾼 하나는 15수(Sou), 그러니까 동화 15닢이면 쓸 수 있다는 소리를 했다는 소문이 파리시내에 파다하게 퍼진 상태다.
소문에 격분한 군중이 달려와 집을 부수려 드는 중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일꾼, 그러니까 노동자 하루 일당이 대충 30수.
그런데 지금 빵 1파운드가 2수에서 4수로 2배 급증했다.
반대로 말하면 레베이옹이 했다는 말은 일꾼에게 굶어죽으란 소리다.
파리 왕립 치안경찰들이 막아서는 가운데, 아이를 안은 부인이 뛰어다니며 외쳤다.
“빵! 빵을 찾아야 해! 제발!”
밀값폭등.
아주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 사태다.
1789년, 프랑스는 지금 가뭄, 홍수, 한파라는 소빙하기 기상급변 사태를 맞이했다.
여기에 남는 식량은 해외에 수출하고, 파리 성벽 곳곳에서 관세를 걷으니 밀값이 폭등한 것이다.
정부는 재정파탄에 이른지 이미 2년차다.
마차 밖을 주시하며, 오를레앙 공작이 가볍게 보석이 박힌 우아한 지팡이로 마차 바닥을 두들겼다.
“이게 바로 현실이야. 이 나라는 갈림길에 섰네. 반란을 맞이하거나, 아니면 왕이 물러나거나.”
바로 이게 유진을 오를레앙 공작이 마차에 태운 이유일 것이다.
최근 유진은 프랑스 채권 거래시장에서 아는 사람은 아는 상당한 큰 손이다.
왜냐하면 프랑스 왕실의 국채를 해외로 팔아치우는 몇 안 되는 중개상이 된 탓이다.
이를테면 채권중개상이랄까.
거래액수는 벌써 1200만 리브르를 돌파했다.
수수료만 120만 리브르.
이 정도면 빚이 해결될까?
어림도 없다.
굳이 누적 채무를 따지지 않아도, 연간 프랑스 왕실 적자가 1억 2천만 리브르가 넘었다.
유진이 혹시 1억 리브르라도 팔아치우지 않는 한,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다.
그러나 정치자금으로는 충분할 돈이다.
돈은 많지만 너무 많이 써서, 자금난에 시달리는 공작이 빙글빙글 웃었다.
그때 유진이 공작을 빤히 보다 물었다.
“왕이 되시고 싶으십니까?”
“어허,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그저 내가 말한 바는 영국처럼 왕이 권력을 내놓는 것을 말한 걸세.”
“삼부회에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거군요.”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리프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라파예트와 미라보가 날 도와줄 걸세. 응?”
그때다.
-콰직!
육두마차가 멈춰섰다.
밖은 흥분한 군중으로 가득했다.
망치, 몽둥이, 쇠붙이 기구를 든 군중들이 밖에서 창문을 때리며 외쳤다.
“귀족 나으리! 제3신분 만세라고 외쳐! 아니면 보내주지 않는다!”
사실 저들 중, 정말 삼부회에 갈만한 제3신분은 적다.
그러나 이 군중의 분노가 귀족을 향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귀족들이 나라를 망쳤기에 밀값이 폭등한 것은 분명하니까.
유진이 어떻게 돌파해야할지 고민할 찰나였다.
공작이 당연하다는 듯 일어났다.
“나가야겠군.”
“전하, 위험합니다. 흥분한 폭도들입니다.”
“아니, 저들은 백성, 나아가 시민들이야. 내가 보듬어 살펴야 할 이들이지.”
문득 공작이 나가자 흉흉하던 군중 중 한 사람이 공작을 알아보았다.
“오를레앙 공작 전하?”
아까 선동하듯 외치던 연사다.
공작은 연사를 보다 빙긋 웃었다.
아는 얼굴이었던 모양이다.
“오, 오랜만이군. 카미유 데물랭. 잘 지냈나?”
“죄, 죄송합니다, 전하. 마차에 계, 계신 줄 알았다면, 제가 마, 말렸을 텐데.”
“아니야. 자네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지. 어차피 끌려왔을 걸. 또한 이 분들이 무슨 죄인가?”
카미유 데물랭, 그 이름에 유진도 살짝 놀라 밖을 흘깃 보았다.
대혁명기, 로베스피에르의 친구.
말더듬이지만 저 유명한 봉기를 끌어낸 변호사.
그리고 원역사에서 로베스피에르에게 처형당하는 자다.
하지만 데물랭을 유진이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군중이 공작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오오, 공작 전하!”
“우리를 대표하실 분이다!”
“전하, 제발 왕에게 전해주소서! 이 참상을!”
공작은 우아한 태도로 인자하게 군중을 향해 고했다.
“친애하는 시민들이여. 조금 더 침착해지시오. 또한 평화롭게 행하시오. 우리는 반드시 더 행복한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유진이 보기에는 하나마나한 소리다.
그러나 지금은 엄연히 신분제 사회, 공작은 왕 다음 가는 최고귀족이다.
흔히 현대에서 생각하는 바로 그 [공작]을 체현한 존재가 바로 오를레앙 공작가다.
왕실의 혈연, 막대한 재화, 귀족의 대표.
그런 최고귀족이 민중을 위해 대화를 해준다.
여기에 절망에 빠져 있던 군중이 열광했다.
“와아아!”
가볍게 손짓을 해주며, 공작은 다시 마차에 탔다.
“저, 그럼 벗어나지. 마부, 출발하게.”
“저들을 이끄시지 않구요?”
“무슨 말인가, 유진. 흥분한 군중을 어떻게 제어해? 게다가.”
공작은 힐끗 밖을 보며 냉정히 말했다.
“곧 저들을 진압하러 근위대가 들이닥칠걸세.”
이것이 오를레앙 공작의 대단한 면모이자, 또한 한계다.
공작은 안다.
세상이 뒤집어질 것을 예감한다.
혁명의 주인공이 될 자들을 미리 선점하고, 친분을 쌓으며, 또한 뒤에서 선동한다.
그러나 제일귀족으로서 그들과 하나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순간 저들을 때려잡을 근위대조차 막아주지 않는 것이다.
-다다다!
저 멀리서 달려오던 근위대와 오를레앙 공작의 육두마차가 마주쳤다.
총검을 든 근위대를 보다 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참극은 피할 수 없다.
아직, 혁명의 시간은 시작되기 전이니까.
또, 시작된다면 더 많은 피가 흐를 테니까.
“비극이군요.”
혁명전야, 이미 파리는 피로 물들고 있었다.
***
1789년 6월 20일, 오늘은 항상 평화롭던 별궁 프티 트리아농조차 소란하다.
“유진! 왜 이렇게 늦게 왔어! 2주 만이야!”
불안에 떠는 얼굴로 공주, 마리 테레즈가 달려왔다.
“아니, 공주님! 좀 천천히!”
뒤에서 수행하던 캉팡 부인이 황급히 뛰어올 정도로 빠르다.
아무리 유진을 보고 싶었다 해도, 다른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유진은 그 모습을 보다 우아하게 공주를 맞이했다.
“요새 파리가 계속 시끄러워서요. 삼부회는 잘 돌아가죠?”
“몰라. 다들 서로 소리만 질러. 게다가, 루이가 죽었어. 흑······.”
“예? 왕세자 전하가요?”
유진은 깜짝 놀랐다.
왕세자, 루이 조제프가 죽었다.
물론 혁명 전야에 왕세자가 죽는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니 날짜는 기억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공주도, 캉팡 부인도 검은 상복이었다.
공주는 유진을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응, 2주일 전에. 많이 괴로워하다 눈을 감았어. 흑!”
캉팡 부인도 옆에서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래요, 공주님. 지금은 울 수 있을만큼 우셔요. 으흑!”
앙리에트 캉팡 부인은 왕실 시녀 귀부인 중 가장 정 많은 사람이다.
꼭 그게 아니라도 왕의 후계자가 죽었으니, 슬플 수 밖에 없지만 진심으로 우는 자는 드물 것이다.
후세 원역사에서 모두가 왕실에서 도망갈 때, 딱 두 사람이 왕비 옆에 남는다.
캉팡, 그리고 랑발 공비다.
랑발 공비는 비참하게 죽지만, 캉팡 부인은 간신히 살아남아 엉뚱하게, 학교를 만든다.
바로 그 학교에 다니게 될 학생이 유진 드 보아르네다.
이제는 굳이 학교를 갈 이유가 없는 유진은 가만히 캉팡 부인을 보다, 손에 입을 맞추었다.
“상심 마세요. 부인. 지금은 왕비 폐하를 모셔야 할 때입니다.”
이것은 혹시 유진의 선생님이 되었을지도 모를 여자에 대한 경의다.
캉팡 부인이 눈물을 닦으며 끄덕였다.
그때 트리아농으로 여자들이 들어섰다.
왕비, 랑발 공비, 그리고 폴리냑 백작 부인이다.
상복을 입었어도 여전히 우아한 왕비가 처연히 유진을 보고 슬프게 웃었다.
“우리 시동 왔구나. 우리 시동 나이가 루이랑 비슷하지.”
“예, 한달 정도.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폐하.”
“어쩔 수 없지. 그 아이는 언젠가 신의 곁으로 갈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내겐 어린 루이와 마리가 있으니까. 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작은 주먹을 쥐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 져선 안 돼.”
그 순간, 베르사유 궁전 쪽에서 쇠붙이 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철컥!
궁전의 회의장이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먼 별궁까지 들릴 정도라니, 어지간히 요란한 봉쇄인 셈이다.
유진은 그 소리를 듣다 미간을 좁혔다.
“지금, 회의장을 봉쇄하고 있는 거군요.”
“응? 그래, 우리 시동은 조숙하지. 맞아. 평민 의원들이 못 들어오도록 막는 거야.”
“그래도 떠들게 내버려 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폐하? 거리는 지금 폭동 중입니다. 제가 오는데도 몇 번이나 당할 뻔 했습니다.”
4월에 이미 들끓기 시작한 거리는 삼부회 개최 후 더 심해졌다.
이제는 폭동이 일상이 되었을 정도다.
유진이 중개 사업이 바쁘긴 하지만, 출근을 그간 못한 데는 이런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자 왕비가 유진을 쓰다듬었다.
“우리 시동, 다친 데는 없고? 불쌍해라.”
이토록 왕비는 동정심이 많다.
그러나 그 동정심은 이 국면을 바꿀 수 없다.
왕비는 유진이 미처 말리기 전에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굴복할 수 없어. 그랬다간, 국왕 폐하도, 나도, 아니 우리 애들도 모두 죽게 될 거야.”
“폐하, 하지만 봉쇄는.”
“항복해선 안 돼. 왕실이 반란세력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끝장이야.”
문득 왕비가 유진 옆에 있던 공주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난 이 아이들을 지켜야 해.”
이 말이 단순히 왕실의 오만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프랑스 혁명기, 왕정은 결국 혁명세력에 밀려서 처단된다.
그렇지만 이 시점, 왕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몇이나 될까?
군인의 대부분은 평민이다.
이것은 근위대도 마찬가지다.
그때다.
-쾅!
굉음이 들렸다.
6백 명의 평민 의원들이 베르사유 궁전을 뛰쳐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5월부터 삼부회는 열린 상태다.
그러나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제3신분 평민 의원들은 이 기회를 틈타 [영국식] 개혁을 요구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왕이 아니라 의회가 통치하는 체제를 원한 것이다.
당연히 왕과 귀족, 성직자들은 대경질색했다.
세금을 신설하겠다고 모았더니, 엉뚱하게 체제 변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민 의원들은 그냥 주장한 게 아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이미 축적된 은행가들의 자본, 여기에 행정기구 대부분이 평민 출신들이 장악한 상태.
왕과 대귀족들이 무시하고 있었을 뿐, 사상과 자금, 실행력이 뒷받침된 상태다.
이것을 왕이 계속 무시하자, 평민 의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 맞서 왕실이 행한 조치가 유진이 본 회의장 봉쇄다.
그럼 평민 의원들은 가만 있을까?
누군가 앞장서 부르짖었다.
“죄드폼 구장으로 가자!”
그 순간,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났다.
-타다닥!
600명의 인파가 밀어닥친다.
“막지마! 근위병이여, 너도 시민이 아니냐! 제3신분이라고!”
“어, 어, 어.”
“외쳐! 제3신분 만세!”
당연히 이곳은 궁전.
근위병들이 앞다투어 막았다.
그렇지만 감히 의원들의 기세를 막지 못했다.
근위병 한 명이 얼결에 의원들의 강요를 받고 외쳤다.
“마, 마, 만세! 제, 제3신분 만세!”
유진도 그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
파리에서 보았던 폭동과 군중과 파괴와는 또 다른 열기다.
그들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여기, 600명의 의원들은 다른 류의 열광을 뿜어낸다.
이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열망이다.
선두에 서서 코트로 달려가는 남자를 보다 유진이 파뜩 눈을 크게 떴다.
“저게, 기요틴 박사?”
혁명의 전설 중 하나다.
단두대를 만든 장본인, 조세프 기요틴이 바로 테니스코트로 먼저 달렸다는 전설.
그 전설이 지금 유진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후일 자신이 만든 기요틴 단두대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거라는 걸 모른 채로.
코트장이 열리고 의원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시민들이여, 때는 왔다! 닻줄을 자르고 일어나라!”
중앙에서 사제복을 입은 의원이 외치고 있었다.
시예예스.
혁명 초기의 거두.
그 중에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우리는 국민의 대다수를 반영하는 국민의회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밤을 샜는지 더욱 창백해진 얼굴로, 로베스피에르가 부르짖고 있었다.
저들에게도 이 순간은 생사가 교차하는 순간일 것이다.
만약에 당황한 근위병들이 정신을 차린다면, 모두 총살감이다.
그럼에도 이미 열기에 찬 비무장 상태의 의원들은 코트장에 모여 부르짖고 있었다.
“시대는 바뀐다! 변혁을!”
“무슨 소리야! 폭동을 일으키자는 건가? 어디까지나, 우리는 국왕 폐하께 시민들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모인 거다!”
“자, 자! 하나의 의제를 모읍시다!”
그때 문득 퉁퉁한 살집이 유난히 돋보이는 한 남자가 일어났다.
옷은 고급이라 꽤 부자들이 많은 평민 의원들 사이에서도 돋보인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이 남자는 귀족이니까.
“장 실뱅 바이이 의장! 제안하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루소가 말한 바,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 기본법이오!”
바로 혁명 초기, 진짜 거두.
오노레 가브리엘 리케티 드 미라보.
미라보의 외침에 의원들이 모두 동감했다.
“기본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물러나지 않을 것을 결의합시다!”
“옳소! 찬성하오!”
“제청이요! 오늘, [국민의회]의 정식 출범을 알립시다!”
요컨대 [헌법]의 탄생이다.
“테니스코트의 서약이 탄생했어.”
멍하니 유진이 그 광경을 밖에서 보며, 중얼거릴 때였다.
“유진, 무서워.”
언제 달려온 걸까.
어쩌면 유진이 달려가길래 같이 따라온 것인지도 모른다.
3살이나 유진보다 많지만, 반대로 말하면 아직 12살이 이제 막 될 어린애.
공주, 마리 테레즈가 옆에서 떨고 있었다.
저 열기가 왕족에게는 실로 끔찍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사실 틀린 것만도 아니다.
결국 왕족들의 목을 베어 버리니까.
“제가, 지켜드릴게요.”
유진은 마리를 꽉 안았다.
아직, 어린 팔로.
이 폭풍 속에서 지키기 위해서.
***
혁명은 이를테면 파도 같은 것이다.
-쏴아아!
비바람이 베르사유 궁전을 몰아치고 있었다.
6월 23일.
저 유명한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 이루어진 후, 3일이 지났다.
아무리 평민 의원들이 [의회] 설립을 선언했어도, 그건 그저 선언일 뿐이다.
법적이든, 실질적이든, 명분상이든 프랑스의 주권자는 국왕이다.
왕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3일.
무려 왕의 궁전 베르사유에서 왕과 의원들이 대치하고 있는 시간이다.
여기에 불안에 빠진 파리 시민들이 군중이 되어 몰려왔다.
병사들은 막아섰지만, 또한 물리치지도 못했다.
“왕이 들어줄까?”
“부르주아들에게 물러가라고 했다던데.”
“제길,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빵은?”
시민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비가 퍼부어지는 와중에도 아무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더 지친다면 둘 중 하나다.
물러나거나, 혹은 궁전으로 진격하거나.
흉흉한 분위기 속, 문득 궁전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네케르, 왕의 수석 고문이자 재정 담당이며, 삼부회를 소집한 장본인이다.
얼굴을 알아본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네케르! 우리를 버릴 겁니까!”
네케르가 시민들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버리지 않소! 시민들이여, 곧 국왕 폐하가 나오실 거요.”
“드디어!”
“오, 왕께서 응답하시는 것인가!”
그 모습을 보다, 유진이 슬쩍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긴장돼요?”
근위병이자 유진의 모친의 전 애인, 라자르 오슈가 비를 훔쳐내며 피식 웃었다.
“뭐야, 유진. 언제 나왔어?”
“집에 못 간 거죠. 보시다시피 시민들이 잔뜩 둘러싼 상황이라.”
“아이고, 나도 이 인파를 뚫을 자신이 없는걸. 못 데려다 주겠는데 어쩌지?”
그 순간이었다.
“저기, 국왕 폐하가 나온다!”
베르사유 궁전, 정전 발코니로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왕이다.
그 옆에 미라보가 서 있었다.
미라보는 우렁찬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시민들이여! 폐하께서 국민의회를 인정하셨소! 귀족과 성직자들도 모두, 해산하여 국민의회로 집결할 것을 명하신 것이요!”
왕은 말 없이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왕이 나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한 가지는 명백하다.
허락없이 궁전 앞에 몰려든 군중을 학살하지 않을 것이다.
비에 젖은 시민들이 울부짖으며 외쳤다.
“오! 국왕 폐하 만세!”
오슈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군. 이제 폭동은 안 일어나겠어.”
“그 반대죠.”
“뭐?”
유진은 발코니의 국왕 루이 16세를 보며 말했다.
“폐하는 파리로 군대 소집을 명했어요. 오슈.”
오슈는 눈을 크게 떴다.
군대소집령.
그렇다면 어쩌면 왕은 파리를 제압하려 드는 것일까?
근위대 소속 병사, 이제는 하사관으로 승진 예정인 오슈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급히 오슈가 물었다.
“그럼, 어쩌지?”
“뭘 어째요? 적당히 싸우는 척 하다 빠지거나, 아니면 형세를 봐서 항복해요.”
“뭐?”
왕의 시동답지 않은 냉담한 눈으로 유진이 오슈를 보았다.
“이미 근위대의 기강은 깨져 있어요. 오슈 당신이 더 잘 알 거 같은데요.”
사실 군중을 제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오슈가 쓰게 웃을 찰나였다.
유진이 간명히 제안을 던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돈 지급할 테니 군에서 곧 나와요.”
“뭐냐. 전부터 나 보자고 했단 얘기는 들었지. 부자가 됐다는 얘기도 이폴리트에게 들었지만, 하필 지금? 왜?”
“엄마를 구하러 가야 해요.”
유진은 비에 젖은 채 환호하는 군중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곧, 이 파리, 아니 프랑스가 뒤집어지는 혁명의 시대가 올 겁니다. 그때 마르티니크라고 무사할 수는 없어요.”
대서양 한복판이라도, 이미 항로로 연결된 시대가 18세기다.
마르티니크도 혁명의 불길이 밀어닥치게 될 것이다.
이미 혁명은 피할 수 없다.
오슈는 눈을 굴리다 말했다.
“그건, 단순히 네 직감만이 아니겠구나.”
“왕실도 똑같이 판단하겠죠. 단지 나랑 다른 건 저 시민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보는 거고.”
“나보고 도박을 하라는 거지? 지금.”
왕실, 혁명, 그리고 유진.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다.
그 순간 오슈가 씩 사람좋게 웃었다.
“넌, 항상 도박에서 이겼지. 좋아, 네게 걸겠다. 조세핀을 구하러 가지.”
서기 1789년 6월 23일.
유진은 오슈를 항해의 동료로 얻는 데 성공했다.
혁명의 기수라 불리게 될 명장을.
바로 어머니, 나폴레옹의 부인이 될 조세핀을 구하러 가기 위해서.
***
혁명은 모든 게 매 순간 뒤집어지는 격변의 연속이다.
“배신이다!”
1789년 7월 14일, 운명의 날이 밝았다.
국왕은 군대를 소집했다.
제3계급을 옹호하던 왕의 수석고문, 네케르는 해임되었다.
모든 신호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왕이 파리 시민을 무력으로 제압할 것이다.
루이 14세가 옛날에 프롱드의 난을 제압했듯이.
“어떻게 되는 거야. 네케르가 해임당하다니. 그럼, 다시 귀족들이 득세하는 건가?”
“지금 그게 문제야! 군대야! 국경지대의 군대가 왔다고! 파리에 총을 들고 진입할 거야!”
“국왕폐하가 파리를 점령한다고? 세상에, 그럼 어쩌지?”
팔레 루아얄.
이곳은 오를레앙 공작의 저택이지만 동시에, 단순한 저택이 아니다.
마치 호텔처럼 저택을 둘러싼 외곽 건물들은 모두 개방되어 있다.
극장, 가게, 그리고 카페.
이 시대, 카페는 단순한 잡담의 장소가 아니라 정치적 클럽의 집회소다.
-탁!
카페 드 푸아.
그곳에 모여서 불안에 떨던 시민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탁자 위로 올라섰다.
말더듬이 변호사, 카미유 데물랭이다.
“무기를 들자!”
데물랭은 이 순간 말을 더듬지 않았다.
흥분한 군중, 그러나 갈 길을 모르는 시민들이 시선을 돌렸다.
격분한 데물랭은 옆에 있던 마로니에 나무를 움켜쥐며, 주먹을 휘둘렀다.
카페의 개방된 문 밖을 향해, 데물랭이 포효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시민들이여! 나는 변호사 데물랭이오! 지금 군대가 파리를 둘러싼 상태요!”
“무기를! 시민의 자유를! 맞서야 한다!”
“그렇소! 네케르를 지킵시다! 파리를 지킵시다! 시민을 지킵시다!”
60만 인구의 도시, 파리가 들끓었다.
“싸우자!”
흥분한 군중이 앞다투어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것은 데물랭을 비롯한 ‘부르주아’ 지식인 연사들이다.
그들의 모자에는 마로니에 잎 하나가 붙어 있었다.
표지다.
시민을 지키고 군대와 싸우려는 자들의 표지.
반대로 국왕이 파리를 진압하기 위해 소집한 군대는 당황했다.
독일 용기병대의 지휘관, 샤를 외젠 드 랑베크가 부르짖었다.
“저 놈들이 미쳤나? 샹젤리제 도로를 막아! 루이 국왕 폐하의 광장까지 밀리면 끝이다!”
이 시점, 파리 내부에는 병력이 많지 않았다.
3개의 독일 용기병 연대, 3개 스위스 연대, 그리고 기마순찰대.
18세기에는 현대와 달리 1개 연대는 약 8백명이 정원이다
여기에 재정 부족으로 정원을 다 채우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수만 명의 군중 앞에서 고작 2천 명의 병사들이 맞서게 된 것이다.
그것도 외국인 용병 부대다.
“와아아!”
외국인, 특히 독일인에게 적대적인 파리 시민들이 이를 갈며 달려들고 있었다.
총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어, 어, 어.”
“쏴!”
“빌어먹을, 맞서라고!”
지휘관의 비명 소리에 독일 용기병 부대원 한 명이 놀라 총을 쐈다.
-탕! 탕! 탕!
총 소리가 요란하게 광장을 뒤덮었다.
이 광장의 이름은 루이 15세, 그러니까 전대 국왕의 이름과 같다.
왕의 이름을 딴 광장에 피가 뿌려졌다.
국왕의 군대가 쏜 총에 맞은 시민이 죽은 것이다.
“으아아!”
격분한 3만 명의 군중이 밀어닥치자, 용병들은 질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시청으로 가자! 그곳에 무기가 있다! 화약과 총, 대포가 있어!”
“세관을 부숴! 전부터 저 놈들 때문에 밀값이 올랐어! 술값도!”
“빵! 밀가루!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제, 더 이상 군중은 소수가 아니다.
파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기웃거리다 나오기 시작했다.
단지 연사들의 선동에 휩쓸려 나온 게 아니라, 기회만 노리고 있던 분노가 터진 것이다.
“우리는 먹을 것을 원한다! 마실 것을 원한다! 입을 것을 원한다!”
“빵! 빵! 빵!”
“대체 왕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제3신분 만세!”
파리 시청이 부서졌다.
상이군인들을 위한 보훈 병원이 털려, 쌓여 있던 3만 정의 소총이 시민들의 손에 들어갔다.
이 모든 것은 왕이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국민의회를 무시했다.
수석고문 네케르를 잘라 시민의 말을 들을 의지가 없음을 보였다.
무엇보다 국경군대를 소집하고 파리 포위의 뜻을 비추었다.
사실, 그저 위협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은 겁먹고 격분해 봉기한 것이다.
그야말로 순식간, 단 하루만에 사태가 급진전되어 버렸다.
하지만 3만 정의 소총을 든 시민들은 도리어 목말라하며 원했다.
무엇을?
무기를, 더 많은 병기를.
“무기가 더 필요해! 저 독일 용병들을 봐라! 스위스 놈들은 어떻고?”
“저 놈들과 맞서 싸워야 해. 랑베크라고 했나, 그 오스트리아 여자 친척 놈?”
“죽이자, 외국인 귀족들!”
문득 선두에 여전히 서 있던 데물랭이 부르짖었다.
“바스티유에 무기가 있을 거요! 탄약과 대포가!”
바스티유.
원역사 현대에는 구체제 폭압의 상징으로 유명한 곳.
이 시대에는 사실 고위 정치범 수용소로 알려진 감옥이다.
고작 7명만 갇혀 있는 장소.
저 유명한 ‘변태’, 사드 후작이 실은 그 죄수 중 하나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그렇듯, 파리 시민들도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왕의 병기가 있고 왕권에 반하는 이들을 가두는 압제의 장소로 기억할 뿐이다.
소총을 든 3만 시민들이 외쳤다.
“가자, 바스티유로!”
이제, 막을 수 없는 불길이 파리를, 그리고 프랑스를 덮치기 시작했다.
***
아직 새벽, 동틀 시간이지만 왕은 눈에 핏발이 선 채 깨어 있었다.
“브로이 원수는 뭘 하고 있나? 브장발 남작은? 랑베크는 왜 보고가 없지? 대체 왜 파리가 진압되고 있지 않은 거야!”
국왕, 루이 16세는 초조하게 왕의 방을 거닐었다.
국민의회가 [쥐드폼의 맹세]를 한지 한 달.
왕은 일단 의회의 탄생을 받아들이는 척 했다.
그러나 동시에 국경지대 군대를 불러들여, 파리를 진압하고자 했다.
브로이 원수를 중심으로 하는 군대가 외곽에 있는 상태다.
반대로 브장발은 내부에 진입했지만, 뜻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랑베크는 시민들에게 쫓겨 달아난 상황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루이 왕은 아직 보고를 듣지 못했다.
왕의 방에 모인 왕비와 왕실 식구, 시종들이 불안에 떨며 그 모습을 보았다.
오직 유진만이 예외로 차분했다.
문득 황급히 대귀족 프랑수아 로슈푸코 리앙쿠르 공작이 뛰어들었다.
파리의 소식을 들고 온 것이다.
“폭도들이 이미 파리를 장악했습니다. 아르투아 백작과 콩데 공작, 브로이 원수는 이미 폭도의 표적이라고 합니다.”
“적들의 수괴는 누구지? 오를레앙인가? 아니면 라파예트?”
“폐하,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오를레앙, 왕위를 항상 노린다고 알려진 왕국 제일귀족이자 불온집단 프리메이슨의 수장.
라파예트,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국민의회에서 유일한 장군급 30대 의원.
국왕에게 가장 두려운 두 명의 존재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옛날의 일이다.
어제까지, 시민들이 직접 무기를 들기 전의 일.
바스티유를 향해 달려가기 이전의 관념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리앙쿠르 공작은 필사적으로 말했다.
“파리 시민, 아니 프랑스의 인민입니다. 지금 프랑스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나름 대귀족이지만, 삼부회 의원으로 왕과 의회를 중재하려던 리앙크루 공작이다.
그러나 중재는 실패했고 결국 파리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2500만 프랑스인 중 파리의 인구는 고작 60만.
그렇다 해도 이 60만은 프랑스 중핵을 움직이는 도시민들이다.
문득 공포에 떨며, 공주 마리 테레즈가 의지할 곳을 찾았다.
아직 어린 소년, 그러나 침착해보이는 얼굴.
바로 유진이다.
유진을 향해 다가서며 마리 테레즈가 속삭였다.
“어떡해? 파리 사람들이 우리 다 죽이러 올까? 마망도, 파파도 죽일까?”
“걱정마세요. 공주님. 아직, 문제 없어요.”
“정말? 괜찮을까? [쉬스] 병사들이 다 무찔러 주겠지?”
쉬스, 그러니까 스위스의 프랑스어다.
저 유명한 프랑스 용병대가 왕실을 지킬 수 있을까?
당연히 반대로 몰살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유진은 마리 테레즈의 손을 꽉 붙들어주며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공주님.”
마리가 눈을 깜박일 찰나였다.
“폐하! 급보입니다!”
황급히 밖에서 또 다른 귀족이 뛰쳐 들어왔다.
바로 왕의 막내동생, 아르투아 백작이었다.
어제까지도 도박 파티에 몰두한 듯, 술에 취한 붉은 얼굴로 아르투아 백작이 부르짖었다.
“바스티유가 점령되었습니다!”
바스티유, 파리의 감옥 요새.
사실 이곳에 있는 죄수는 7명, 수비병은 200명이 채 안 된다.
물론 탄약과 대포가 있지만, 그렇다 해도 엄청난 양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요새는 오랫동안 하나를 의미해 왔다.
왕에게 반하는 자는 파리에 있는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다.
곧 왕권의 사법권 상징인 것이다.
바로 국왕의 권위를 ‘폭도’들이 무너뜨린 셈이다.
국왕 루이 16세가 결국 평온을 깨뜨리며 울부짖었다.
“이건 반란이야! 역모라고!”
그 순간 유진이 한 걸음 나섰다.
“아닙니다, 폐하. 이건 [혁명]입니다.”
혁명, 곧 레볼루숑.
아직 이 단어가 갖는 의미는 그저 [대격변] 정도의 뜻이다.
허나, 유진만은 이 말이 갖는 진짜 의미를 알고 있다.
그것은 왕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다는 뜻이다.
입 속으로 진의를 삼키며, 왕실과 대귀족들이 보는 가운데, 유진은 국왕을 향해 말했다.
“세상이 바뀔 겁니다, 폐하.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무슨 말이냐, 시동? 너마저 우리 왕실을 배신하는 거냐? 네 아비가 그러고 보니 보이지 않는구나! 왕실을 지켜야 할 군인이!”
“그게 아닙니다, 폐하. 군대가 저 시민들을 제압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유진은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오히려 저 혁명의 파도에 올라타소서. 그렇지 않으면, 왕실이 위태롭습니다.”
이곳, 베르사유 궁전에는 아직 국민의회 의원들이 모여 있었다.
사실 유진의 부친, 알렉상드르는 진작에 국민의회 쪽에 선 뒤다.
당장 소식을 갖고 온 리앙쿠르 공작도 왕에게 충성하지만, 의회 친화적인 인물 중 하나다.
여기 상당수의 대귀족들이 곧 도망가거나 혹은 왕에게 항복한다.
이미 대세가 넘어간 것이다.
상황을 뒤집고자 한다면 사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루이 16세의 조상들이 그랬듯이, 수도에서 도망쳐 지방군을 끌고 재정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루이 16세에게는 그럴 능력도, 담력도, 의지도 없었다.
따라서 인정과 순응만이 유일한 방책이다.
국왕은 가만히 침묵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이길 수 없다면 적어도 왕실을 지켜야겠지.”
왕은 잠시 후, 궁전 밖으로 나서 국민의회 의원들이 모인 회의실로 향했다.
“아직, 여기 남아 있었군.”
한때는 삼부회 희의장이었던 곳.
그러나 이제는 평민 유력자들이 대다수인 국민의회의 임시의사당이 된 장소다.
미라보, 콩도르셰, 시예예스를 비롯한 의원들이 왕을 응시했다.
그들 중에는 에기용 공작과 같은 대귀족들, 특히 오를레앙 공작도 함께 한다.
국왕은 굴욕에 잠시 치를 떨다, 힘을 내어 외쳤다.
“짐은 국왕의 백성들과 의원들에게 고하네. 오늘 일어난 사태는 심히 유감이네. 허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말하겠네.”
600명의 의원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왕은 선언했다.
“언제나 프랑스의 왕은 프랑스의 백성을 위해 있을 것이며, 백성을 뜻을 따르리라고.”
이것은 진정한 항복선언이다.
예전, 국민의회가 처음 성립할 때와 다르다.
국왕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지방군을 동원한 상황에서 무려 바스티유가 점령되었음에도 항복을 선언했으니까.
심지어, 사실 아직 왕은 모르지만 바스티유 사령관 르네 후작은 이미 죽음을 당했다.
시민군의 손으로.
한 순간, 의원들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국왕 폐하 만세!”
“우리의 뜻이 받아들여졌다! 왕을 속이던 간신들을 몰아내자!”
“파리로, 가자!”
그 모습을 보다, 문득 마리 테레즈 공주가 옆에 선 유진에게 물었다.
“이제, 괜찮은 거지? 유진.”
“당분간은 그래요. 하지만 여기서 못 지내실 거예요.”
“응?”
유진은 차분히 열기에 가득 찬 회의장을 보며 속삭였다.
“파리로 가셔야 할 겁니다. 마음 굳게 먹으세요, 공주님. 해치는 자는 당분간 없겠지만, 계속 위험한 시기가 있을 거예요.”
아직 왕실이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돌아갈 때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미 파리의 민중, 이른바 하층 계급 시민들은 자신들의 힘을 자각했다.
나름 상층 부르주아 시민들인 여기 의회 의원들조차 통제할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은 왕궁으로 달려올 것이고, 강제로 왕실을 파리로 끌고 갈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유진은 함께할 수 없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른 채, 마리 공주가 유진에게 매달렸다.
“왜, 왜 그래. 나랑 같이 안 있을 거야? 나 무서워.”
“전 이제 엄마를 구하러 가야 해요.”
“엄마?”
오직 유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마르티니크에 엄마가 있어요. 그곳도 여기처럼 난리가 날 거예요. 엄마 곁에는 스위스 병사도, 근위대도 없으니까 제가 가야 해요.”
그렇지만 마리 공주는 유진에게 매달렸다.
놓으면 헤어져 영원히 못 볼 듯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때다.
가만히 마리의 손을 떼는 손길이 있었다.
똑같은 마리의 이름을 가진 여자,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용감하구나, 우리 시동.”
왕비는 가만히 마리 공주를 껴안으며 유진을 향해 말했다.
“너무 걱정말고, 꼭 돌아와라. 우리는 무사할 거야.”
이 온정을 좀 더 현명하게 베풀었다면, 혁명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직 어린 유진으로서는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러 갈 뿐이다.
굳게 마음을 다잡으며, 유진은 예를 표했다.
“예, 왕비 폐하.”
다시 돌아올 때까지, 왕비와 공주가 무사하기를 기원하면서.
***
다시, 유진은 보르도 항구에 섰다.
“휴, 이렇게 되면 당분간 평민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오는 건가? 하하핫!”
문득 옆에서 라자르 오슈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뎅! 뎅! 뎅!
승선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다.
보르도 항구는 파리와 달리 평화롭게 보였다.
배를 타고 영국으로 도망가려는 귀족과 부자들이 언뜻 보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 보르도에서 출항하는 무역선들이 여전히 수없이 많다.
아직 혁명은 프랑스 전체를 휩쓸고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물론 고작 3개월만 지나도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유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닐걸요, 오슈.”
“왜? 일단 국민의회를 인정하기로 했다잖아. 옆나라 영국처럼 왕과 의회가 서로 타협하는 국면, 오지 않겠어? 팜플렛(소책자) 봐도 다 그런 얘기던데.”
“영국은 왕을 죽였어요, 오슈.”
찰스 1세, 영국 의회가 참수한 왕이다.
1789년 현재는 국왕을 [수상]이 모시는 체제다.
그러나 영국도 수상이 왕을 떠받들며 실권을 가진 체제가 될 때까지, 무수한 피를 흘렸다.
국왕권력이 영국보다 훨씬 강한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다.
피는 불가피하다.
굳이 원역사를 모른다 해도.
유진은 질린 얼굴의 오슈를 향해 피식 웃었다.
“우리도 불가피할 걸요. 다만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죠.”
후일, 원역사에서 왕당파가 일으킨 방데 반란을 유혈진압하는 장본인이 오슈다.
지금은 왕이 죽는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는 전직 근위대 하사관이지만.
그때 유진이 구입한 배를 향해 일단의 청년들이 짐을 들고 다가왔다.
그 중 선두에 선 자는 단연 이폴리트 샤를이다.
이폴리트가 비명을 지르며 자루를 털썩 땅에 놓았다.
모두 은화가 든 자루다.
이폴리트는 유진을 향해 투덜거렸다.
“아이고, 힘들어! 왜 이렇게 많이 가져가?”
“그야 인터넷 송금, 아니 돈을 서인도제도에서 조달할 수단이 없으니까 그렇지. 참, 오슈. 사람은 준비됐어요?”
“응? 아, 물론이지.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야.”
오슈가 낄낄 웃다 청년들을 향해 턱짓했다.
청년들, 모두 군인이었는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피와 얼룩이 묻어있는 상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다들 바스티유 함락 때, 시민군에 합세해 날뛰었던 이들이니까.
“오슈 상등병님은 믿을 수 있죠! 뭐, 월급도 안 주는 왕보다 낫습니다!”
“이야, 한 달에 50리브르라니! 차라리 그냥 계속 보아르네 집안에 복무하는 게 낫겠는걸?”
“혹시 사병 안 키우쇼? 하하핫!”
자코프 엘리, 장 마리 실뱅 고미, 루이 투르네.
모두 바스티유 함락 때 활약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유진은 이들로서는 거액일 봉급을 제시했고, 그 봉급에 혹해 유진을 따라온 거였다.
문제는 이들이 아니다.
이 셋과 하인들을 끌고 온 남자다.
“마르소? 당신이 여기 왜 왔죠?”
프랑수아 세베르 마르소.
오슈의 친구로, 왕실 근위대 하사인 남자다.
문제는 마르소는 바스티유 함락 때 활약했다가, 대위로 승진해 혁명에 참가할 사람이란 거다.
그러나 마르소는 검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껄껄 웃었다.
“아, 오슈가 간다잖아. 지금 꼴을 보니 파리도 말이 아니고.”
“당신은 바스티유에 갔을 거 같은데. 라파예트 장군이 승진 안 시켜준대요?”
“하하핫! 너, 나에 대해 되게 잘 안다? 유진? 그래, 갔지. 갔으니까 더 진저리가 나더라고.”
문득, 마르소가 혀를 찼다.
“거기, 딱 7명 있던데. 죄수는.”
원역사에서 마르소는 오슈와 함께 혁명전쟁의 영웅 중 하나다.
그러나 바스티유 함락 때, 일단 물러나 자신의 고향으로 귀향한다.
바로 오를레앙 공작의 영지, 오를레앙의 샤르트르 시로.
아마도 바스티유를 함락하며 보았던 참상에 질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유진이 오슈를 데려간다면서 사람을 모은다니, 울적한 마음에 달려온 것이다.
마르소가 낯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 프랑스, 개떡같긴 한데. 지금 파리 시민들은 폭도와 뭐가 다른가 모르겠어. 그러다 다 불태울 거야.”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일걸요, 오히려.”
“응? 아, 왕을 죽인다고? 그건 그럴 수도 있지.”
아까 한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서 혁명은 끝나지 않는다.
“아니, 전쟁이 일어날 수 있어요. 아주 참혹한 전쟁이 말이죠.”
이미 질려 있던 오슈도, 방금 온 마르소도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유진은 알면서도 전쟁을 막을 방법은 아직 알지 못한다.
사실 조금이라도 깨어 있는 자라면, 향후 전쟁이 벌어질 것은 예측할 수 있다.
단지 막을 수 없었을 뿐이다.
문득 유진이 가볍게 손을 가슴에 대며 예를 표했다.
“어쨌든, 우리 어머니를 모셔오는 여행길, 잘 부탁드립니다.”
이폴리트, 오슈, 마르소가 마주 외쳤다.
“좋아! 신대륙으로 가자!”
“아, 거기 대륙 아니고 섬 아닌가?”
“배는 좀 괜찮으려나? 아, 괴혈병 걸리면 곤란한데.”
유진은 마르소를 보며 피식 웃었다.
“걱정마요. 양배추 들고 가니까.”
“응? 그게 무슨 상관인데?”
“영국인들은 장기간 항해 때 양배추로 비타민, 아니 괴혈병 방지 양분을 흡수하죠.”
제법 철저한 대비를 해놓은 것이다.
어쨌든 이 시대는 범선으로 대양을 건너는 시대다.
프랑스에서 서인도제도까지 가는 길도 최소 3개월이다.
그 사이 괴혈병이라도 걸리면 골치니, 미리 준비해놓은 거였다.
마침 승선하다 오슈는 그때서야 생각난 것을 물었다.
“참, 너희 아버지한테 말은 했냐? 반대할 거 같은데?”
눈앞의 소년이 천재라는 것 때문에 잊고 있었던 바다.
아직 성년이 되려면 먼 아이라는 사실을.
특별히 보호자 제도가 완비된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는 당연히 부모의 허락 없이 먼 길을 떠나면 안 된다.
물론 유진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배에 올라탔다.
“당연히, 내 맘이죠. 자, 신대륙으로 가죠!”
바스티유가 함락되고 혁명을 돌이킬 수 없게 된 때.
1789년 7월.
유진은 신대륙을 향해 떠났다.
엄마, 그러니까 나폴레옹의 부인이 될 조세핀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