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11)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10화(11/547)
(10) 18세기, 바다의 사자는 영국이다
당연히 유럽에서 신대륙 서인도제도로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자, 그럼 서쪽으로! 가자!”
18세기, 유럽 무역선의 주류는 [브릭]이라 불리는 돛대 2개의 범선이다.
유진이 그동안 번 돈으로 사들인 배, 산 마리아 호도 브릭이었다.
전장 30미터, 정원은 대략 50여명, 300톤의 중량.
따지고 보면 신대륙을 처음 발견했던 콜럼버스의 산타 마리아 호보다 2배는 더 큰 배다.
보통 18세기 말, 영국에서 300톤짜리 배 한 척을 만드는데 6200 파운드가 들었다고 한다.
이 배는 그보다는 조금 싼 중고라 4000 리브르쯤 들었다.
그래도 상당히 큰 배인데, 배멀미도 안 하는지 기세 좋게 오슈가 뱃머리에 선 채 외쳤다.
하지만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어요.”
“어디?”
“지브롤터.”
오슈가 눈을 크게 떴다.
“엥? 지브롤터라면 저 남쪽이잖아? 왜 그쪽으로 가야 하는 거야? 게다가 거긴 영국 영토인데?”
지브롤터, 그러니까 에스파냐 남쪽 끝과 아프리카가 마주보는 지중해 서쪽 끝 해협이다.
문제는 이곳이 예전, 에스파냐 왕위 승계 전쟁 때 영국이 점령했다는 거다.
그래서 지브롤터는 1789년 현재, 영국 땅이다.
멀쩡한 프랑스 배인 산 마리아 호가 왜 영국 땅에 간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선장은 얘기를 들은 탓에, 무심히 배를 움직이는 중이다.
니콜라스 쉬르쿠프.
이제 막 20살이 된 남자지만, 원역사 혁명기에 사략선장으로 꽤 이름을 날린다.
아직은 신출내기라 꽤 싸게 고용했다.
사실 동생 ‘로베르’에 비하면 살짝 B급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
니콜라스 쉬르쿠프가 역사에 남은 것은 사실 동생 때문이다.
혁명기, 프랑스 제1의 사략함대 함장 로베르 쉬르쿠프.
하지만 아직은 인도양을 누비는 선원이라, 미처 고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진은 선장 니콜라스의 솜씨를 눈여겨보다, 고개를 돌려 대꾸했다.
“원래 우리 프랑스야 포르투갈 쪽 항로를 이용하기 어려우니 못 가는 거죠. 보통은 카나리아 제도까지 남행한 후에 무역풍을 타고 건너는 게 일반 항로예요.”
“아니, 그러니까 이용하기 어려운 게 맞잖아.”
“틀려요. 지브롤터의 제해권을 차지하고 있는 배들을 이용하면 가능해요.”
유진이 눈을 빛냈다.
“바로, 영국 호위상선단이죠.”
오슈는 기가 막혀 말도 하지 못했다.
18세기 말, 영국은 바다의 재해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재해권은 현대와 달리 폭력적인 형태다.
물론 전쟁중도 아닌데 멀쩡한 프랑스 배를 영국 상선이 노략질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엄연히 타국에 프랑스의 가상적국이 영국이다.
어떻게 호위 상선단을 이용한단 말인가?
이번에는 이폴리트도 놀라 물었다.
“우리가 영국 상선단에 어떻게 합류하는데?”
“잊었어, 이폴리트? 너, 내 심부름으로 꽤 자주 암스테르담 다녀왔잖아?”
“그거야 베어링스 방크와 거래하느라, 아!”
그때서야 유진의 ‘심부름꾼’, 이폴리트가 먼저 깨닫고 손뼉을 쳤다.
“베어링 씨가 도와줄 수 있겠구나!”
그러니까 유진이 가상적국, 영국의 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영국의 거물 은행가, 프랜시스 베어링 덕분이다.
아직도 유진의 가장 큰 채권 중개 거래처는 단연, 베어링스 뱅크다.
이미 베어링스 뱅크가 거래한 채권액이 도합 1천만 리브르를 넘었다.
프랑스 왕실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지만, 민간은행인 베어링스 벵크 입장에서는 엄청난 거액이다.
덕분에 베어링스 뱅크는 아주 빠른 고속성장을 거두는 중이었다.
그러니 큰 손 유진이 움직인다는데 바로 도움을 주고 나선 것이다.
오슈가 옆에서 감탄했다.
“이야, 왕실에 가서 도박만 한 줄 알았더니. 언제 그런 인맥을 쌓았어?”
“인맥이랄 것까지야. 그냥 사업 파트너예요. 어려운 부탁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사람에게는 이 정도는 어렵지도 않을 거구요.”
“그럼 미리 얘기를 해놓은 거야?”
유진은 편지 한 장을 꺼내들며 빙긋 웃었다.
“예, 해주겠다고 답신 받고 출발한 거예요.”
분명 영국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원수다.
그러나 바다 위에서는 패권자인 것도 사실이다.
대서양의 풍랑, 바다를 떠도는 해적, 여기에 혹시 모를 영국 함대의 위협까지 모두 해결될 한 수다.
오슈가 호탕하게 웃었다.
“결정됐군. 그럼 지브롤터로 가자!”
물론 아까부터 선장 쉬르쿠프는 힐끗 보기만 할 뿐, 항해사에게 손짓으로 지시한 뒤다.
-스으윽!
일등 항해사의 조타로 쭉쭉 뻗어나가는 배 위.
문득 오슈의 친구 마르소가 저편 항구, 보르도를 보았다.
이미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도시를 보다, 마르소가 한숨을 쉬었다.
“휴, 파리에 별 일 없겠지?”
“왜, 떠나려니까 걱정돼? 프랑수아 세베렝 마르소, 내 부르주아 친구.”
“가족들이 파리 인근 오를레앙에 있으니까. 참, 오를레앙 공작은 대체 뭘하는 거야? 폭동을 진정시키지도 않고.”
마부의 아들 오슈와 달리, 마르소는 나름 중상층 부르주아 집안 자식이다.
특히 프랑스 제일귀족이자 혁명가들의 후원자, 오를레앙 공작의 영지 출신이기도 했다.
그런데 유진이 그 얘기를 듣다 대꾸했다.
“오를레앙 공작이 더 이상 공작일 수 없는 시대가 올 거예요.”
“뭐?”
“이미 세상이 뒤집어졌잖아요. 익숙해지라구요. 마르소.”
이미 혁명은 시작되었다.
곧, 귀족제가 폐지된다.
나아가 만약 유진이 특별히 손을 쓰지 않는다면, 오를레앙 공작도 죽는다.
공포정치 시대, 기요틴에 의해서.
물론 유진은 가능한 한 기요틴을 막아볼 생각이다.
왜냐하면 당장 유진의 부친, 알렉상드르가 걸려 있으니까.
“최대한, 우리가 빨리 다녀와야 하는 이유죠.”
그 모든 미래를 삼킨 채, 유진은 바다를 보았다.
지브롤터로 가는 해양의 길을.
***
18세기 말, 영국이 이제 막 해양패권을 장악하는 시대다.
“그렇다고 해적이 없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고. 하하핫!”
지브롤터는 번영하는 항구 도시다.
수많은 배들이 지중해를 드나들고, 다시 대서양으로 향한다.
당연히 상당수가 영국 국적의 배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배도 꽤 많이 지나는 편이다.
여기에 아직까지 지중해에는 ‘이슬람 해적’이 존재한다.
그러나 영국 해군, 저 유명한 로열 네이비는 아직 해전 때나 소집되는 함대다.
따라서 대부분의 상선대는 민간 호위함대를 고용한다.
대부분 전직 해군으로 구성된 함대라, 전투력도 상당하다.
바로 그 중 하나, 윌리엄 호담 남작의 호위대는 단연 으뜸이다.
오늘도 큰 의뢰를 해줄 고객이 와서 호담 남작은 만족한 얼굴이었다.
물론 호담의 부하 중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문득 호담의 옆에 앉아 있던 청년 부관이 투덜거렸다.
“진실을 말하셔야죠, 제독. 우리는 신대륙을 잃어서 이렇게 실직자가 된 거 아닙니까. 빨리 어디 인도나 가야지, 원. 망할 의회 놈들! 왜 전쟁을 끝까지 하지 않고!”
“어이, 호레이쇼. 정신차려. 자네는 엄연히 카리프해 상선호위대 ‘호담 함대’의 부관일세. 전쟁 얘기는 관둬.”
“흥, 호담 제독. 제독께서도 그립지 않습니까? 대서양을 건너, 바다를 제압하던 그 때가?”
이제 막 30살이 된 청년 부관, 호레이쇼를 보며 호담 남작이 혀를 찼다.
“전쟁이 뭐가 좋다는 건가. 쯧. 평화롭게 돈벌이하는 게 제일이지.”
7년 전쟁과 미국 독립 전쟁, 모두 대서양에서 해전이 있었다.
그때 호담은 항상 배를 타고 누비며 주로 프랑스 해군과 싸웠다.
대부분 이겼지만, 결국 신대륙에서 영국이 물러난 결과로 돌아왔다.
전쟁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
반면 아직 젊은 부관은 열정이 넘치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다 ‘손님’, 프랜시스 베어링이 코트를 벗으며 껄껄 웃었다.
“흐흐, 호담 남작님. 여전히 지브롤터에서도 신나 보이시는구료.”
“그야 배만 타고 다니면 되거든. 미스터 베어링. 한데 설마 우리 호송단에 투자한 자금 회수하러 오신 건 아니겠지?”
“설마, 내가 투자하는 무역선도 잘 호위해주고 계신데.”
베어링은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계약서를 한 장 내밀었다.
“오늘은 단순한 의뢰가 아니라, 부탁을 하나 하러 왔소. 꼭 들어줘야 할 부탁이오.”
호위 의뢰 계약서.
물론 호담 상선 호송대가 하는 일이다.
허나 베어링과 꽤 거래해본 호담 남작은 눈썹을 치떴다.
이 흥분 잘하지만 잇속은 밝은 은행가가 누구에게 신세를 지려는 자는 분명 아니다.
“별 일이군. 베어링 당신이 누구에게 부탁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나를 위해서가 아니오. 나랑 거래하는 아주 탁월하고 갸륵한 소년을 위해서지.”
“그건 더 별 일이군. 당신이 누구를 위해서 부탁하는 건 더 본 적이 없소. 영국 왕실의 왕자라도 되나?”
그 순간 베어링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틀렸소. 프랑스 왕실의 시동으로 있던 귀족 소년이오.”
“프랑스?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무슨 폭동이 일어났다던데.”
“난리도 아니지. 얼마 전 왕이 결국 파리로 돌아갔다고 하더이다. 그러니 진작에 우리 영국처럼 의회를 도입했으면 될 것을.”
아직 혁명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수입되기 전의 시대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그저 프랑스 ‘대폭동’으로 여겨질 뿐.
그렇지만 곧 시대는 격변한다.
아직 그 모든 것을 모르는 모험은행가, 프랜시스 베어링이 계약서를 툭툭 쳤다.
“그 왕을 바로 옆에서 모시던 소년이 이번에 신대륙으로 간다오.”
호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대륙은 또 왜? 어디요?”
“마르티니크.”
“아니, 거긴 프랑스 영토 아뇨? 물론 그 근방에 우리 식민지들이 있긴 하지만.”
그 순간 옆에서 시큰둥하게 듣던 ‘호레이쇼’가 눈을 번뜩였다.
“마르티니크라면, 카리브해 전투 때 우리가 결국 내줬던 섬 아닙니까?”
한때 카리브해에서 제해권을 두고 영국함대와 프랑스함대가 다퉜던 적이 있다.
1779년, 마르티니크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이 해전에서 영국은 승리하고, 잠시 마르티니크를 점령한다.
하지만 결국 외교적 사유로 물러난 바 있었다.
마르티니크라는 이름에 해전부터 떠올리는 부관을 보다, 베어링이 피식 웃었다.
“자네 머릿속엔 정말 전쟁밖에 없군. 호레이쇼.”
“아,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미스터 베어링. 어쨌든 그 소년은 왜 신대륙으로 간다는 거요? 카리브해의 유명한 해적들도 못 들었단 말이오?”
“들었지, 호레이쇼. 그러니까 그 친구가 호송단을 구하러 내게 의뢰한 게 아닌가?”
베어링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마르티니크에 있는 모친을 프랑스로 데려오기 위해서일세.”
전투에만 관심 있는 호레이쇼도, 돈에 가장 관심 많은 호담도 눈을 크게 떴다.
그야말로 엄마 찾아 삼만 리.
누구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게 베어링이 굳이 몸소 지브롤터까지 온 이유기도 하다.
물론 유진이 큰 고객이긴 하지만, 본래는 대리인만 보내도 될 일이다.
허나 모친을 구하기 위해 저 먼 대서양을 건넌다.
그것도 프랑스에 ‘대폭동’이 일어난 시점에.
18세기, 아직은 낭만을 진지하게 책으로 읽는 영국인들의 피가 끓었다.
“이거, 뭔가 재미있는 사연이 있겠군. 합시다! 호담 제독!”
“어이, 호송단의 리더는 엄연히 나거든? 뭐, 얼마나 준다던가?”
“아, 돈이 문제요! 이거 재밌을 거 같은데!”
여기에 베어링은 현실적인 동력을 덧붙였다.
“1만 파운드.”
1만 파운드.
배 한 척을 6000파운드면 사는 시대다.
분명 호송단을 움직이는 대가로는 시가의 10배는 되는 거액.
물론 베어링에게도 똑같은 돈이 지불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호담과 호레이쇼를 향해 베어링이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돌아오는 데 성공하면, 다시 1만 파운드를 줄 거요.”
그 순간, 호레이쇼는 결국 투덜거릴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 귀족 놈들, 정말 백성을 수탈하는 모양이군? 애새끼가 2만 파운드라니!”
물론 유진이 들었다면 아주 억울해 했을 것이다.
고작 2만 파운드에 이런 비난을 듣는다는 점에서 더욱 말이다.
***
지브롤터 항, 호담 호송대의 사무실에서 세 사람이 만났다.
“호오, 이 어린애가 무려 베어링스 은행의 사업 파트너라고?”
당장 아이라고 우습게 보는 얼굴로 보는 것은 단연 ‘호레이쇼’다.
사실 굳이 호레이쇼가 아니라도 호담 남작도 마찬가지로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앞서 소개를 마친 베어링은 뻔뻔히 웃고 있을 뿐이다.
아직 유진이 어린 것도 맞고, 처음 보는 이들이 진가를 모를 것도 맞다.
굳이 베어링 입장에서는 알려줄 이유가 없다.
중요 사업 비밀 중 하나니까.
게다가 어차피 여행을 함께 하다 보면 결국 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진의 비범함을.
그때 유진이 눈을 반짝이며 호담에게 손을 내밀었다.
“윌리엄 호담? 세인트루이스의 승장이시잖아요?”
“오, 나를 아나?”
“반갑습니다. 저는 대대로 프랑스 해군에 복무해온 보아르네 가문의 자손, 유진이라고 합니다.”
사실 해군이란 점에 방점이 찍혀 있었지만, 정작 호담은 다른 쪽에 눈을 번뜩였다.
“영국식 이름이군. 영국 문화를 좋아하나 보지?”
현재는 18세기, 영국이 막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는 시기다.
그 말은 사실 영국이 신흥부자란 얘기다.
신흥부자는 고금을 막론하고 칭찬에 목말라 있다.
아직 후진국이었던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영국 문화가 최고란 소리를 들으면 모든 영국인이 좋아한다는 얘기다.
호담 남작도 똑같았다.
당연히 유진의 이름 유래를 아는 심부름꾼, 이폴리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건 사실 신대륙······.”
“예, 18세기에 유럽 최고 선진국은 역시 영국이 아닐까요? 영국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 아버지도 늘 말씀하시죠.”
“엥? 영국 스코틀랜드 산 위스키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윽!”
유진이 헛소리를 하는 이폴리트의 발을 밟을 찰나였다.
“하하핫! 입에 발린 말을 잘하는 걸 보니. 진짜 프랑스 귀족은 맞군. 왕에게 하던 솜씨인가!”
호레이쇼가 비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첨이라는 걸 꿰뚫어 본 것은 날카롭지만, 굳이 그걸 드러내는 것은 예의없는 짓이다.
유진은 흘깃 호레이쇼를 돌아보았다.
“그쪽은?”
호레이쇼가 거만하게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대꾸했다.
“상인 호송단의 2인자, 전직 해군 장교시다. 네 목숨을 지켜줄 사람이지.”
웃으며 보고 있던 베어링이 혀를 찼다.
아무리 애라도, 베어링 입장에서는 소중한 사업 파트너다.
게다가 유진은 보통 애랑 달리 자신을 무시하는 어른의 말을 다 알아들을 것이다.
결국 베어링이 먼저 나섰다.
“아, 호레이쇼. 자네가 귀족 싫어하는 건 알지만, 애한테 이게 무슨 짓인가?”
“아니, 되도 않는 말을 하잖아요. 그냥 아첨인 게 보이는데.”
“예의를 차린 거지! 좀 배우게, 저 애한테!”
그러나 이번에도 유진은 무례가 아니라 다른 곳에 꽂혔다.
1789년, 지브롤터에 있는 전직 해군 장교.
퍼스트 네임이 ‘호레이쇼’인 남자.
유진의 눈이 커졌다.
맞아 떨어지는 조건을 가진 자가 전생 기억 속에 있다.
“호레이쇼? 설마?”
순간, 백은문자가 눈앞에 선명히 떴다.
[호레이쇼 넬슨, 동행 선택 여부 결정.]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무래도 이번 항해는 확실히 안전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유진은 지금 세계 최고의 전직 해군 장교를 항해사로 얻었으니까.
***
마르티니크, 카리브해에 있는 남미대륙 북쪽에 있는 섬이다.
“아, 오늘도 힘드네. 왜 이렇게 요새 사탕수수 농사가 안 되지?”
구슬땀을 흘리며, 모자를 쓴 미녀가 운동장보다 훨씬 큰 밭을 보며 한숨 쉬었다.
이 섬의 크기는 대략 원역사 한국으로 치면 춘천시 정도다.
인구는 대략 12만 명 정도.
그 중 노예가 무려 7만 5천 명이다.
지금 밭에서 일하는 것도 사실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이다.
미녀, 조세핀은 그저 감독을 위해 나왔을 뿐이다.
그래도 파리 사교계보다 덥고 힘든 것은 당연하다.
조세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옛날보단 확실히 어려워졌어. 농사가.”
본래 마르티니크는 사탕수수 농사가 아주 잘 되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기후가 풍토가 좋아 사탕수수, 바나나, 카카오까지 잘 자라는 풍요로운 섬.
그 때문에 한때 프랑스가 신대륙 진출이 활발할 때, 첫 손 꼽히는 요충지였다.
일단 식민지에 투입한 돈을 다 뽑을 정도의 사탕수수, 곧 설탕 수확이 되니까.
문제는 이 시대가 이른바 소빙하기란 거다.
프랑스 본토에서도 가뭄과 홍수, 한파라는 전혀 상이한 이상기후가 발생했다.
그러니 마르티니크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조세핀과 농장주들은 이상할 뿐이다.
그때 저 멀리서 황급히 하녀 멜라니가 달려와 외쳤다.
“아이고, 마님!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무슨 말이야, 멜라니? 사탕수수 농장 딸이 농장에 있지 않으면 어디로 가라고?”
“얘기 못 들으셨어요?”
어쩐지 조세핀과 닮아 보이는 살짝 검은 얼굴.
실은 그럴 수 밖에 없다.
멜라니는 조세핀의 부친, 조세프 가스파르의 노예 사생아니까.
하지만 멜라니는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을 흘깃 보며 속삭였다.
“요새 파리에서 난리가 나서, 노예들이 서로 몰래 모여 모의하고 난리도 아니래요.”
조세핀은 깜짝 놀라 농장 쪽을 보았다.
비록 혼혈 사생아라도, 나름 부친의 핏줄이라 노예 취급은 안 받는 멜라니다.
그러니 농장에서 감독관의 감시하에 일하는 노예과는 다르다.
반대로 말하면 멜라니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실제 노예들 사이에 분위기가 흉흉하단 것다.
말로만 듣던 ‘노예 반란’이라도 일어나는 걸까?
건장한 남자 노예들을 보다, 조세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 설마. 저 사람들 아버지 한창이실 때부터 일해온 사람들인데.”
“그래봤자, 야만적인 노예죠. 빨리 들어오세요.”
“으, 응.”
조세핀은 황급히 멜라니를 따라 농장을 벗어났다.
아직, 미터법이 제정되기 직전 시대지만 보르도에서 마르티니크까지는 6500킬로미터.
그러나 혁명의 불길이 닿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자유, 평등, 우애.
이미 마르티니크에도 불길은 닿았다.
노예들이 들끓을 정도로.
황급히 조세핀이 [라 파제리] 일가 자택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모친, 클레르 라 파제리가 화를 발칵 냈다.
“로즈! 왜 이리 늦게 오니? 지금 너희 아빠가 쓰러졌다는 걸 잊었니?”
엄밀히 말해, 조세핀의 본명은 마리 로즈 조세프 타셰 드 라 파제리다.
때문에 친한 이들은 모두 조세핀을 로즈라 부른다.
정작 조세핀이라 부르는 사람은 이 시점에는 한 명이다.
바로 유진 드 보아르네다.
하나뿐인 아들이 부르는 ‘애칭’이라 조세핀도 그 이름을 특별히 여기고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사람 좋은 조세핀은 웃으며 모친을 달랬다.
“아이, 엄마. 농장 좀 보러 갔어요. 올해 수확이 안 좋은 게 왜 그런가 해서.”
“어차피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날씨가 너무 안 좋아. 여기 생 피에르만 그런 게 아니라, 마르티니크 전체가 다 그래.”
“정말요? 올해 수확은 어쩌나?”
마르티니크는 프랑스 식민지가 된지 벌써 150년이 넘은 섬이다.
그러다 보니 제법 도시도 발달한 상태인데, 생 피에르는 ‘카리브 해의 파리’로 불리는 섬의 중심부다.
반대로 말하면 생 피에르에서 수확량이 모자란다는 건, 섬 전체가 안 좋다는 얘기다.
걱정하는 얼굴로 조세핀이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네요. 그렇잖아도 제가 진 빚을 못 갚으면 파리로 못 돌아갈 텐데.”
클레르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었다.
“파리로 돌아갈 생각이니? 얘기 못 들었어? 왕이 폭도들에게 잡혔단다.”
“그러니까 더 돌아가야죠. 제 아이가 파리에 있다구요. 유진이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요.”
“그거야 잘난 보아르네 집안이 알아서 하겠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클레르의 호통에도 조세핀은 낯빛을 흐렸다.
남편은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다.
한때 파제리 집안이 망했을 때, 돈 때문에 팔려 나가다시피 결혼한 게 알렉상드르다.
당시 알렉상드르의 부친이 마르티니크 총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상드르는 바람을 피웠고, 지금도 애인이 따로 있다.
무엇보다 오르탕스가 자기 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래저래 정나미 떨어지는 작자다.
하지만 저 멀리 파리에 두고 온 아들은 매일 걱정된다.
제법 똑똑하지만 아직 어린애.
무사하긴 한 걸까?
그때 칭얼대며 옆에서 딸, 오르탕스가 클레르의 옷깃을 붙잡았다.
“할머니, 엄마랑 싸우지 말아요.”
화를 내던 클레르가 오르탕스를 보자 활짝 웃었다.
“아이고, 우리 귀여운 오르탕스. 오늘은 글자 배웠니?”
“예, 할머니.”
“그래, 엄마처럼 귀여운 숙녀로 자라야지?”
조세핀은 그 모습을 보다 미소를 머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도 걱정은 끝이 없다.
그래도 파리와 달리 귀부인들의 비아냥도 없고, 바람피는 남편도 없다.
여기서 생활을 다져서 다시 아들을 데리러 간다.
그게 조세핀이 지금 꾸는 소박한 꿈이다.
하지만 격동기란, 젊은 이혼녀의 소박한 꿈을 꿀 수 없게 만드는 시대다.
또 다른 사생아 겸 하녀, 펠리시테가 뛰쳐 들어왔다.
“큰일 났어요, 주인 어른!”
하지만 설명하기도 전에, 집 밖에서 불길이 일렁이는 광경이 보였다.
-화르륵!
불길 자체는 멀다.
그러나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 부수고, 파괴하고, 죽이는 소리다.
펠리시테가 애타게 외쳤다.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어요! 피하셔야 해요!”
마르티니크에 [노예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
파제리 일가는 옛날에는 마르티니크의 대농장주였다.
“난, 두고 가. 클레르.”
한때는 마르티니크를 지키는 프랑스 해군 장교였던 강건한 몸은 온데 간데 없다.
이제는 늙고 병들어 죽음을 기다리는 몸.
파제리 일가의 가장, 조제프 가스파르 라 파제리는 기침을 토하며 부인에게 말했다.
옛날 대농장주 시절에는 거느린 노예만 200명.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다행이다.
200명의 노예가 저택에 쳐들어오지는 않았으니까.
콧방귀를 뀌며, 클레르가 마차에 매달린 말에게 채찍질을 했다.
“미친 소리 말아요. 가스파르. 당신을 어떻게 두고 가요?”
“어차피, 난 이미 글렀어. 쿨럭!”
“멜라니! 저 노망난 노인네 무시하고 고삐 붙잡아! 펠리시테? 넌 뒤를 잘 보고! 루이제는 나와 함께 말을 몰자!”
마차에 탄 채 불안하게 그 모습을 보던 조세핀을 딸 오르탕스가 붙들었다.
“엄마, 무서워. 하인 아저씨들이 우리 죽이는 거야?”
조세핀은 모친과 달리 그리 강인하지는 못하다.
그래도 딸 아이는 지켜야 한다.
오르탕스를 바싹 껴안으며 조세핀이 속삭였다.
자신도 믿지 않는 거짓말을.
“괜찮아, 오르탕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마차는 숲길을 거세게 달렸다.
그러나 여자들과 노인이 탄 마차다.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문득 마차 뒤에서 갈퀴와 칼을 든 노예들이 나타났다.
“저기, 노예주들이 보인다!”
이 마르티니크는 번영하던 프랑스의 식민지다.
하지만 그 번영은 모두 사탕수수 농사로 인한 것.
다름아닌 노예노동으로 뒷받침되던 게 마르티니크의 번영이다.
그러니 노예들은 분노로 가득했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왔거나, 혹은 그 후예들이 노예주를 보며 외쳤다.
“혁명의 이름으로! 압제를 물리치자!”
“라 파제리 농장을 부숴라! 얼마나 많은 우리 딸과 부인이 놈에게 강탈당했나!”
“죽여! 파리에서 왔다는 그 여자를 찢어 발겨!”
그때 마차 위에서 뒤를 지키던 펠리시테가 떨어졌다.
“아악! 마님, 살려주세요!”
분명 펠리시테는 가스파르의 사생아지만, 또한 흑인 노예의 딸이다.
그렇지만 분노한 노예들은 펠리시테의 검은 피부가 아니라 옷차림을 보고 공격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광경을 뒤로 한 채, 클레르가 말을 급히 몰았다.
“어서, 마차를 몰아! 빨리!”
하지만 노예들은 길을 훨씬 잘 알았다.
마차가 뒤집힐만큼 달려도 곧 따라잡힐 상황이었다.
조세핀과 오르탕스가 서로 껴안은 채 눈을 질끈 감았을 찰나다.
-탕!
총소리와 함께 앞에서 말을 타고 군인 복장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괜찮으십니까, 숙녀분들!”
클레르가 낯선 무장병력을 보며 놀라 외쳤다.
“어디서 온 거예요?”
“총독부에서 왔습니다. 앙투안 오귀스트 드 다마스라고 합니다. 샤를 총독 각하의 아들입니다.”
“천만 다행이군요. 이대로 죽는 줄 알았어요!”
샤를 드 다마스, 현재 마르티니크의 총독이다.
나름 대농장주였고, 이전 총독의 며느리인 조세핀이 있는 파제리 집안이다.
반란 소식에 총독이 구원군을 급파한 모양이었다.
아직, 20대 초반 청년인 앙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 피에르 총독부로 가시죠. 지금 섬 전체로 폭동이 번지고 있습니다.”
그때 조세핀이 다급히 물었다.
“포트 루아얄은, 항구는 무사한가요?”
“예, 아. 혹시 본국으로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안 가시는 게 좋을텐데요. 어차피 불가능하기도 하구요.”
“왜죠?”
앙투안은 입맛을 다시며 답했다.
“지금 항구에 배가 없습니다.”
마르티니크는 카리브 해 한복판에 있는 외딴 섬이다.
배가 없으면 아무 곳도 갈 수가 없다.
본국 프랑스는 물론이고 근처에서 가장 큰 유럽 세력인 쿠바도 멀다.
절망에 빠진 조세핀을 보다, 앙투안이 황급히 외쳤다.
“일단 가시죠!”
그러나 너무 지체했던 모양이다.
“여자들이다! 잡아!”
“총이 있는데?”
“우리가 숫자가 10배는 많아!”
순식간에 샛길로 달려온 노예들이 조세핀 일행을 포위했다.
앙투안은 아직 젊고 경험이 없어 당황했다.
총을 쏜다 해도 상대방의 숫자는 거의 20명이 넘는다.
“어, 어, 어!”
막 달려드는 노예를 보며 앙투안이 기겁해 머스킷 총을 들 찰나였다.
-탕! 탕! 탕!
저 멀리서 들려온 총소리에 놀란 노예들이 달아났다.
최소 30명이 넘는 무장 인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아직도 군복을 입고 있는 한 남자가 번쩍 손을 들며 반갑게 외쳤다.
“이야, 마담 로즈. 고생 많이 한 얼굴이십니다?”
조세핀은 화들짝 놀라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아는 얼굴이다.
무엇보다, 그토록 바라던 얼굴도 있다.
“오슈. 응? 유진!”
1789년 10월.
3개월 만에 유진이 대서양을 주파해 마르티니크에 도착한 것이다.
유진은 활짝 웃었다.
“어머니!”
조세핀의 위기 일발 직전, 유진과 조세핀이 상봉한 순간이었다.
***
비록 노예반란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무장병력은 총독부가 단연 우위다.
“흠, 라 파제리 일가가 오셨군. 안심하시오. 우리 생 피에르 총독부만은 안전할거요.”
총독, 샤를 드 다마스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이미 반란을 막지 못한 상황이지만, 아주 여유롭기 그지 없다.
사실 총독의 책임을 추궁할 본국 정부부터 붕 떠서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이기도 하다.
문득 그 말에 답하듯 밖에서 굉음이 일었다.
-쾅!
바로 대포가 쏘아지는 소리다.
놀란 귀부인들이 밖을 바라보았지만, 총독은 태연했다.
노예 반란을 일으킨 반란군이 접근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쏜 것이다.
샤를이 거만하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화약도, 반란 폭도들보다 우리가 훨씬 많이 보유하고 있소. 수비대는 아직 멀쩡하고.”
분명 반란은 쉽게 제압될 것이다.
유진은 이미 마르티니크 반란의 결과를 알고 있다.
노예 반란에는 일부 혼혈 집단, 그리고 불만을 품은 식민지 병사들이 합세한다.
그렇지만 결국 18세기 말은 화력이 전쟁을 지배하는 시대다.
더 많은 총, 더 많은 포, 더 많은 화약을 가진 총독군이 승리한다.
단지 혁명의 불길에 휘말려, 총독의 끝이 썩 좋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대로 가면 반란이 끝날 때까지, 발이 묶일 판이다.
유진은 슬쩍 오슈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오슈가 빙긋 웃으며 다마스 총독에게 물었다.
“오는 데 보니까 [부르봉] 요새 쪽 병사들이 없던데요?”
“응? 그걸 어찌 아나, 그대는?”
“실례했습니다. 왕실 근위대 소속 하사, 라자르 오슈라고 합니다. 원래 이쪽에 파견될 예정이었거든요. 지금은 난리가 나서 못 오게 되었지만.”
물론 직위는 이제 이탈한지 오래고, 파견 예정이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6천 킬로미터 밖, 마르티니크에서 본국 사정을 알 수야 없는 노릇.
근위대란 말에 총독은 관심을 보였다.
“근위대라. 폐하는 무사하신가? 그러고 보니 배를 타고 들어왔겠군.”
오슈는 어깨를 으쓱였다.
“무사하십니다. 최소한 저희가 출발할 때, 3개월 전까지라면.”
“다행이군. 그런데 자네들이 타고 온 배는 어떤가? 얼마나 탈 수 있겠나?”
“작은 상선입니다. 선원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한 10여명 더 탈 수 있으면 다행이죠. 혹시 노예라도 꽉꽉 채워서 태운다면 모를까.”
다마스 총독이 입맛을 다셨다.
“과연, 그렇군.”
그 순간, 유진은 눈을 반짝였다.
[총독의 마음. 잡으면 회항, 잡지 못하면 고립.]백은문자가 번뜩인다.
선택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일종의 ‘예지’다.
전생의 겜블러 시절부터 늘 함께하는 유진의 능력이랄까.
이번에 조세핀을 항구에서 찾으러 갈 때도, 갈림길마다 떠올라 도와주곤 했다.
지금이 나서야 할 시기인 모양이다.
총독의 마음을 돌리면 다시 파리로 간다.
유진이 슬쩍 나섰다.
“아드님과 부인, 혹은 따님 정도라면 모시고 갈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전 어머니를 모시러 온 거니까요.”
“응, 이 꼬마는 누군가?”
“헛, 저희 고용주입니다. 총독 각하.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 자작의 아들이죠.”
오슈의 호들갑어린 설명에 총독이 아는 척을 했다.
“아, 알렉상드르의 아들이군. 얘기는 들었지. 도박 신동이라고? 흠.”
예전에 알렉상드르는 마르티니크의 주둔군인이기도 했다.
괜히 조세핀과 결혼한 게 아닌 셈이다.
어쨌든 그 연으로 다마스 총독도 알렉상드르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지연’이 있으면 상대를 설득하기 쉬워진다.
유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시간만 있다면 카드 게임이라도 한 판 보여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좀 급하군요.”
“나도 도박이나 할 시간은 없네. 하면, 어떻게 하려고?”
“일단 탈출하고 싶은 이들이 많이 있겠죠?”
다마스 총독은 머뭇거리다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래. 최소 부녀자 1백 명 정도는 파리로 보내고 싶네.”
유진이 슬쩍 눈썹을 치뜨다 웃었다.
상당히 뻔뻔한 총독이다.
그러니 이 자리를 차지했을지도 모르지만.
한 마디로 유진의 배를 이용해 총독부 부녀자를 모조리 파리로 피신시킬 생각 아닌가.
그게 아니면 승선 허가도 안 내줄 기세다.
강제로 출항할 수도 있겠지만, 이래저래 무력 충돌은 골치아픈 일.
유진은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숫자가 좀 많군요.”
“방법이 없어. 지금 우리 함대는 대부분 본국에 있고, 또 이 근방의 제해권은 영국에 있네.”
“그럼, 영국 함대를 이용하죠.”
그러자 총독이 낯을 찌푸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영국은 우리의 사실상 적국이야! 우리 군을 영국 함대에 승선시키겠나?”
“호위병만 보내실 거 아닙니까? 또, 아직 전쟁 중은 아니니까요. 가능한 함대가 있죠.”
“뭔데, 그게?”
유진은 가볍게 뒤를 돌아보았다.
“영국 상인 호송단입니다. 저희와 함께 왔죠.”
실은 아직 항구에 입항하지 않은 함대.
영국 국적 상선대라 근처, 영국 식민지이자 예전 호담 선장의 승전지인 세인트 루시아에 입항한 함선대다.
허나 이 자리에 딱 한 사람은 유진의 산 마리아 호에 함께 타서 왔다.
오직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31세의 청년 부제독, 호레이쇼가 휘파람을 불며 뒤에서 웃었다.
“흐음, 이 분들이 자네 어머니와 여동생인가? 3000마일을 항해해온 보람이 있는 미녀들이군!”
유진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요. 미스터 넬슨.”
나폴레옹의 악몽, 영국 로열 네이비의 전설, 불굴의 애꾸눈 제독.
호레이쇼 넬슨.
물론, 아직은 두 눈이 멀쩡한 [넬슨]이 씩 웃었다.
“우리가 마르티니크의 귀부인들, 아주 안전히 프랑스로 모셔다 드리지!”
실로 18세기 말, 가장 안전한 항해가 보장된 순간이었다.
유진과 조세핀의 귀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