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167)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167화(167/547)
(167) 파리가 스캔들 혼돈정국에 빠지다
항상 거대한 댐의 붕괴는 아주 작은 틈에서 비롯된다.
-〈불륜의 옛 왕비, 다시 다이아몬드 스캔들의 연인과 불타오르나?〉
당통은 맛있게 식사를 하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이게, 대체 뭐야!”
이곳은 파리 세느 강 남쪽 중심, 카페 프로코프다.
무려 17세기에 시작된 명물 카페로 구왕실 시절 귀족들도 찾아왔던 식당이기도 했다.
대혁명이 벌어질 시점부터는 주로 온건 혁명파가 모여 작당하는 장소였다.
그러니 당통이 이곳의 단골인 것은 이상할 게 없다.
나아가 식사를 하면서 오늘 나온 조간신문을 펼쳐드는 것도 이 시대 기준으로는 평이한 일이다.
하지만 조간신문 1면에 이런 기사가 나온다면 경악할 문제다.
신문을 가져온 남자, 당통의 최측근 데글란틴 의원이 보고했다.
“지금 파리 전체가 난리가 났습니다.”
당통은 미간을 찡그리다 물었다.
“누구야? 이거 기사로 쓴 자가.”
“모르겠습니다. 익명 제보라고 합니다. 일단, 기사가 나온 신문 자체는 코르들리에 클럽 쪽입니다.”
“우리 파벌이잖아? 설마 데물랭인가?”
르 비유 코르들리에.
곧, 혁명 온건파 본산인 코르들리에 클럽의 일간신문이다.
이 신문은 다름 아닌 데물랭이 사장 자리를 맡고 있었다.
다만 데물랭은 언론의 자유를 신봉하는 의원이라, 데물랭 의견과 무관한 기사도 자주 실리기는 했다.
그럼에도 데물랭이 발간하는 신문에 기사가 나오다니, 이상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데글란틴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지금 다른 모든 신문이 받아쓰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안의 정치적 논란입니다.”
당통은 눈을 깜박이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이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이 당통만 있는 게 아니다.
카페 프로코프를 출입하는 부르주아 손님들 대다수가 신문을 읽으며 개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왕비가 미쳤나! 이 시국에 연애질이라니!”
“나라가 전쟁통에 휘말린 게 다 구왕실 때문인데! 맙소사!”
“페르젠이면 다이아몬드 스캔들의 주인공 아냐? 혹시, 루이 샤를도 이 작자 아들 아닌가?”
그 모습을 슬쩍 보다 당통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이건 또 왜 그렇지? 왕비가 제정신이 아닌 건 알겠어. 조신하게 죽은 듯 지내도 모자랄 판에, 옛 연인과 불타는 만남을 갖다니! 하지만 그게 파리가 난리가 날 일인가?”
“사건이 뜨거운 건 둘째고, 책임 소재가 문제입니다.”
“책임?”
데글란틴이 마른 침을 삼키며 설명했다.
“구 왕실은 적폐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 상징을 살려뒀더니, 연애질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구 왕실 시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옛 스캔들의 주인공과 말이죠!”
확실히 카페의 부르주아들 반응을 보면 데글란틴의 지적이 맞다.
신문을 직접 읽은 부르주아들이 이 정도면, 소문으로 듣게 될 샹퀼로트들은 더욱 난리가 날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왕비의 목을 베자고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
사람 죽이는 것도 싫어하지만, 혼란은 더 싫어하는 상식남, 당통이 무섭게 생긴 볼을 잡아당겼다.
“맙소사. 이제 총동원령도 해제됐잖아. 전시 시절도 아니고, 공포 정치 시대도 아니라고.”
“공포랄 것도 없었죠. 옛날에도.”
“하여간! 플로리다도 얻었고, 이탈리아도 얻었고, 조만간 홀란드도 우리 손에 들어올 판이야. 그런데 구 왕실 따위가 뭐 어쨌다고!”
사실 로베스피에르 시절에도 이른바 하루에 수백 명이 죽는 공포정치 시국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공포정치까지 가기 전에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한 탓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만 그 결과, 파리 시민들은 혁명 정국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의 공포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이 형국을 막은 수훈자가 유진이란 사실도.
데글란틴이 그 점을 지적했다.
“그걸 살린 게 보나파르트 장군의 양자, 유진 프라이슈츠 아닙니까? 지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습니다!”
당통이 눈을 굴리다 고개를 모로 꼬았다.
본래는 총재 선거를 위해 유진을 다시 만날 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당분간 유진을 피하는 게 낫다.
“일단, 유진 프라이슈츠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자구. 그리고······.”
그때다.
-덜컹!
카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당통을 찾아 바삐 달려왔다.
“당통 총재, 보셨소? 당장, 추방령을 내려야 하오.”
당통은 미간을 찌푸리다 눈을 크게 떴다.
일단 미간을 찌푸렸던 것은 공개된 장소인 카페에서 이런 정치적 주장을 하는 몰상식한 자 때문이다.
허나 눈을 크게 뜨며 놀란 것은 그 몰상식한 자가 그럴만한 위치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바로 구 입헌군주파, 푀양파의 수장인 라파예트 의원이다.
당통이 나이프를 식탁 위에 내려 놓으며 물었다.
“추방령이라니? 누굴?”
“누구긴 누구요? 전임 스웨덴 대사 페르젠! 그 작자가 다시 파리에 기어들어 오더니 전임 왕비와 연애를 한다지 않소! 이건, 중대한 혁명 모독사건이오!”
“잠깐, 모독이라. 그래. 생각해보니.”
눈을 굴리던 당통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 사건은 라파예트 당신 책임이군?”
엉뚱한 당통의 주장에 상황을 정리하러 왔던 라파예트가 당황했다.
지금 라파예트가 당통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구하기 위해서다.
만약 사태가 불이라도 붙으면, 파리의 불 같은 시민들이 또 왕비의 목을 자르자 날뛸 것이다.
그래서 페르젠을 추방하기 위해 협조를 구하러 왔는데, 책임 소재를 물어오는 거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내 책임이라니.”
“애초에 구 왕실의 왕족들을 책임지는 자가 누구지? 당신 아니오!”
“잠깐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은 구 왕실 인사들이, 국외의 반역자들과 결탁하지 않게 하는 것 정도요.”
라파예트가 어이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나보고 왕비, 아니 마담 카페의 연애사까지 책임지란 말이오?”
그러나 당통은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어야지. 유진 프라이슈츠와 함께, 이 문제를 책임졌어야지!”
“총재!”
“난 지금 총재도 아니오. 정부 구성이 안 돼서 말이지!”
당통이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당당히 선언했다.
“내일 의회 개최를 요구하겠소. 그리고, 의회에서 봅시다. 이 문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거요!”
그러니까 당통은 이 스캔들이 잘하면 정치적 이익을 줄 수 있겠다 판단한 셈이다.
현재 총재 5인 중 3인을 차지해야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
보나파르트파와 입헌군주파가 동시에 걸려드는 게 구왕실 스캔들이다.
하면, 이 기회에 당통파에 유리한 총재 결정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파 이익만 고려하는 당통을 노려보다 라파예트가 콧방귀를 뀌었다.
“좋소. 의회에서 봅시다! 이번에 당통 당신을 정계 은퇴시켜 주지! 아일랜드가 난리가 난, 이 중차대한 시기에 스캔들 책임 논란이라니!”
“그건 내가 할 소리지! 플로리다에 신대륙 대이주를 시작해야 할 판에, 당신이 협조 안 해서 정부구성이 안 되었는데!”
“하, 의회에서 누가 이기나 봅시다!”
카페 프로코프의 시민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정계의 거물 두 명이 서로 등을 돌렸다.
마리의 스캔들이 파리 정국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
이 기사는 실로 선정적인 솜씨로 쓰여졌다.
“호호홋! 어때요, 내 솜씨가? 아주 선동적이지 않아요?”
루실 듀플레시 데물랭.
바로 의원 데물랭의 부인이다.
본래 원역사에서는 데물랭이 처형당할 때 같이 죽는 여자다.
허나 유진이 데물랭을 살리면서, 오히려 더욱 활발하게 언론활동을 펼치는 중이었다.
루실의 자찬을 들으며 이폴리트가 능글맞게 찬사를 건넸다.
“마담 데물랭의 솜씨가 정말 일류시군요.”
“난 원래 일류예요. 요새 마담 스탈이나 프레롱이 설치고 다니지만, 내 펜을 이길 수는 없죠!”
“프레롱이 설치고 다닌다구요?”
루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를 잘라 건넸다.
“그래요, 무슈 샤를. 프레롱이 요새 선동하는 글을 마구 쓰고 다니죠. 특히 보나파르트 장군에 대한 반대 글을 아주 많이 써요. 한때는 보나파르트 장군의 신봉자였던 자가!”
이 자리는 바로 데물랭의 집이다.
마리의 스캔들 명령을 들었을 때, 이폴리트가 찾은 게 데물랭이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보나파르트 파는 아니지만, 데물랭은 예전 마라의 쿠데타 때 보나파르트 치안군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빚이 있다.
나아가 본래 언론인이기 때문에, 스캔들 기사를 만들기도 쉬웠다.
물론 그렇다고 루실이 기사를 쓸 줄은 이폴리트도 몰랐지만 말이다.
반대로 폴린을 쫓아다니던 프레롱은 이제 보나파르트 반대파가 된 모양이다.
그런데 옆에서 식사를 하던 말더듬이 데물랭이 이폴리트에게 말을 건넸다.
“자, 자네도 알고 있나? 와, 왕당파가 요새 부쩍 난리야. 프레롱도 왕당파에게 부, 붙은 것 같고.”
“그것 때문에 제가 파리에 온 거죠. 이 기사를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고. 하핫!”
“이, 이대로는 지난 프뤽티도르 때처럼, 보, 봉기가 일어날지도, 몰라.”
데물랭은 이폴리트를 주시하며 물었다.
“군 내부가 아, 아주, 부, 불온해. 알고 있나? 샤를 대령.”
이폴리트 샤를이 눈을 굴릴 찰나, 옆자리에서 볼멘 소리가 들렸다.
“흥, 이폴리트가 모를 리가 없죠, 데물랭 의원님.”
아주 불만 많아 보이는 얼굴.
어딘가 묘하게 나폴레옹을 닮아 보이는 외양.
그러니까, 나폴레옹의 동생이자 오백인 의회 의원인 뤼시앵이다.
뤼시앵이 이폴리트를 보며 이죽거렸다.
“안 그래? 넌 유진에게 착 달라 붙어 있는 입 안의 혀 같은 존재잖아. 이를테면 왕의 총신 같은 녀석이지.”
“우와, 간만에 봤는데 모욕으로 대화를 시작하다니. 뤼시앵 너도 어지간하다?”
“인사 따위 하려고 온 거 아니잖아? 어떻게 할 거야? [밀라노]는 파리의 상황을 방치할 셈인가?”
그게 뤼시앵이 이폴리트와 데물랭의 식사 자리로 달려온 이유다.
아니, 뤼시앵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는 전직 총재가 데물랭말고도 또 있다.
나폴레옹 파벌이었던 총재, 살리체티다.
요컨대 보나파르트 파벌과 그에 우호적인 정치인 수뇌들이 집결한 것이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비꼬듯 말했지만, 뤼시앵 말대로 이폴리트는 유진의 최측근 부관이다.
또한 유진은 나폴레옹의 양자이자 수석부관이다.
파리가 어지러운 것은 왕비 스캔들 이전에도 그랬다.
이 시국에 과연 밀라노, 곧 밀라노 몸벨로 궁전에 머무는 나폴레옹의 판단이 궁금했던 것이다.
서기 1777년생으로 뤼시앵과 2살 어린 동년배, 이폴리트가 히죽 웃으며 반말로 대꾸했다.
“보나파르트 장군님의 원래 주둔지는 사실 토리노인데?”
“밀라노에 사실상 머문다는 걸 누가 모르냐? 장난치지 말고 대답해! 그게 아니면, 내가 제노바의 의견을 물어야 하냐!”
“뭐, 유진이라고 보나파르트 장군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어쩐지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이폴리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만 이폴리트는 자신의 주제를 안다.
어디까지나 유진의 대리인으로 왔을 뿐, 눈앞의 거물들을 직접 상대하는 것은 이폴리트의 몫이 아니다.
입 안의 고기를 삼키며, 이폴리트는 혀를 놀렸다.
“좋습니다. 밀라노의 의견은 간단합니다, 보나파르트 파 여러분.”
데물랭의 식탁에 앉아 있던 모두가 주시할 찰나, 이폴리트가 단언했다.
“지금 쿠데타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럼, 제압해야지!”
“무슈 살리체티, 쿠데타 처음 보십니까? 지금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세력이 있나요?”
살리체티에게 면박을 주며, 이폴리트가 모두에게 일렀다.
“프랑스는 지금 동원령이 해제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군 주력은 어차피 국경지대에 있다는 겁니다. 치안군 사령관은 마르소, 우리 파벌이죠.”
“그래서?”
“그럼에도 이 모든 장애물을 이겨내고 쿠데타를 일으키려면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폴리트는 손을 꼽으며 눈을 빛냈다.
“군사력, 정치력, 여기에 자금력.”
지금껏 이폴리트가 보았던 정변들이 모두 그랬듯이.
그런데 유진과 이폴리트가 쉬르테의 요원들을 통해 추적해온 왕당파는 그게 전부 모자란다.
누군가 뒤에 있다.
“왕당파만으로는 이 모든 게 불가능합니다.”
문득 데물랭이 다시 침착하게 말을 더듬지 않고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아니, 유진 프라이슈츠 장군의 전언은 뭐지?”
이럴 때 데물랭은 아주 극도로 긴장한 상태다.
이폴리트는 말을 돌리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이제, 알아야 할 때가 됐다.
“영국이, 이번 쿠데타 모의의 뒤편에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기회를 노리겠죠.”
바로 이게 유진이 데물랭과 살리체티, 뤼시앵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다.
영국, 프랑스의 숙적이 이번 정변의 배후일 거라고.
***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적국의 수도에서 영국이 움직일 수 있을까?
“유진 프라이슈츠 장군을 만나게 해준다더니, 어떻게 된 겁니까? 미스터 베어링?”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별로 없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면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을 보는 게 프랜시스 베어링의 세계관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과연 돈을 더 투입해도 성공할지, 베어링도 알 수 없다.
때문에 눈앞의 협상가, 탈레랑을 직접 보러 온 것이기도 했다.
“상황이 달라졌소, 미스터 탈레랑.”
“어떻게 말이죠?”
“본국에서 정권이 뒤바뀔 위기가 찾아왔단 얘기요.”
탈레랑을 향해 은밀한 목소리로 모자를 눌러쓴 베어링이 말했다.
“영국은 이번 전쟁에서 얻은 게 없소. 신대륙에서 거의 획득했던 생 도맹그도 잃었고, 플로리다를 프랑스에 내줬지.”
“그건 미스터 베어링, 당신의 솜씨 아닙니까. 게다가 인도의 퐁디셰리는 얻지 않았습니까?”
“동인도회사만 이익을 얻었다는 거요. 그간 동인도회사를 지지해 온 피트 총리가 위험해졌지.”
베어링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한때 오를레앙 공작의 궁전이었던 팔레 루아얄의 카페, 드 푸아다.
예전에 이 카페에서 데물랭이 혁명을 이끄는 연설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쇠락해, 이렇게 은밀한 밀담을 나눌 정도로 손님이 없다.
물론 이곳의 주인 자체가 베어링의 뒷돈을 받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런 위험한 얘기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피트 총리를 지켜줄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오.”
피트는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동인도회사의 지지자다.
인도 무역 독점권을 박탈하려는 세력에 맞서, 동인도회사의 독점 특허장을 지켜주었다.
물론 그게 인도 정복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긴 하다.
허나 동인도회사 이사회와 피트 정권이 서로 이익이 맞아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플로리다 사건 후, 피트의 정권이 위태로워졌다.
동인도회사가 원했던 대로, 신대륙을 차지한 미합중국은 불리해진 상황이다.
당장 프랑스 마르티니크 군이 플로리다로 진주하면서, 미국 정부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가 플로리다를 획득했다는 것 자체가 영국 귀족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때문에 휴전조약을 승인한 피트는 극도로 불리해진 상태다.
상황을 뒤집을 반전이 피트에게 절실한 것이다.
피트와 공생관계인 동인도회사에도 말이다.
탈레랑이 혀를 차다 물었다.
“혹시 그래서 구 왕비의 스캔들을 일으킨 겁니까?”
“아니, 그건 정말 우리가 한 게 아니오. 오히려 페르젠 백작이 표면에 드러나 당황하는 중이오.”
“그건 또 무슨 말씀이, 잠깐. 페르젠 백작이 당신들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입니까?”
문득 베어링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전에, [우리]가 누구인지부터 소개해야겠군.”
그러자 카페 깊숙한 곳에서 세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탈레랑은 그들을 보며 눈썹을 슬쩍 치뜨다 다시 우아한 태도로 평정을 되찾았다.
저 자들이 베어링과 손 잡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잡을 자들이다.
“보블랑, 바라스, 프레롱. 당신들이 손을 잡다니 놀랍기 그지없군요.”
“탈레랑 그대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도 그렇죠. 후후. 한때는 당신 목을 날리는 게 내 임무였는데.”
“달갑지 않은 만남도 감수하는 게 정치이긴 하겠지요, 바라스. 당신이 여기 있는 걸 보니 미스터 베어링의 임무가 뭔지는 알겠소.”
한때 온건파의 목을 자르러 다니던 바라스를 비꼬며, 탈레랑이 베어링을 돌아 보았다.
“쿠데타로군. 그럼 실행자는 누구입니까?”
확실히 탈레랑은 혜안이 있다.
그게 베어링이 탈레랑을 만나러 온 이유기도 하다.
어쨌든 비록 이용할 자에 불과하다 해도, 그 자가 바보라면 거래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전에, 협력하겠다는 약조가 필요하오. 미스터 탈레랑.”
“협력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우리도 목숨을 걸고 하는 일 아니겠소? 특히, 외국인인 나는 더욱 그렇지.”
가만히 베어링을 응시하던 탈레랑이 우아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프랑스에 새로운 정부가 필요한 건 현실이오. 영국과의 평화는 더욱 필요하고. 하지만, 내가 왜 필요한 거요?”
“그야 신정권이 출범하면 표면에 내세울 사람이 필요하니까.”
“과연, 협상파가 권력을 잡았다는 걸 영국 의회가 알게 해야 한다는 거로군.”
커피를 한 잔 들이키던 탈레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누구요, 실행자는?”
베어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피슈그뤼.”
“예상한 자는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 범위로군. 하면, 때는?”
“글쎄, 원래는 곧 있을 개선식 때 하려 했으나 더 좋은 기회가 왔군요.”
문득 베어링이 묘하게 웃었다.
“곧, 5백인 의회가 전임 왕비 처벌과 스웨덴 대사 추방을 결의하기 위해 모인다고 하오. 그때, 북방군이 움직일 거요.”
마리가 모친을 지키기 위해 쏘아 올린 스캔들의 공이 구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쿠데타의 음모를 향해서.
물론 유진이 쉬르테를 움직였다는 사실만은 아직, 쉬르테 밖의 사람은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