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17)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16화(17/547)
(16) 왕국 제일귀족이 바렌느 탈주사건을 일으키다
그럼, 왜 페르젠은 속았을까?
조금 더 냉정히 생각했다면, 사실 유진을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냉정함이 남아 있다면, 국왕탈주 사건 따위를 기획할 리가 없다.
성공하면 왕은 허수아비가 되고, 실패하면 당연히 원역사처럼 죽는다.
어쩌면 페르젠 입장에서는 국왕 따위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왕비만 살 수 있다면.
지금 유진이 공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듯이.
문득 유진을 뚫어져라 보던, 이폴리트가 휘파람을 불었다.
“정말, 볼 때마다 더 무서워지는 것 같군.”
“뭐래? 실무는 다 너랑 마르소가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 손발이랑 머리랑 같냐? 하여간.”
이폴리트는 부르르 몸을 떨다 물었다.
“근데 이래도 되는 거야? 국왕이 탈주한다는 걸 국민의회에서 알면······.”
“당연히 목이 달아나지.”
“헉, 그럼 설마 왕을 고발하려고?”
이번에는 유진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반문했다.
“그렇게 왕을 죽이고 싶어?”
탈주사건이 들키면 왕은 반드시 죽는다.
이미 프랑스는 가상적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혁명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신성로마제국이나 프로이센, 에스파냐 같은 나라들만이 아니다.
정작 혁명을 불러 일으킨 계몽사상의 원천, 영국도 반대다.
그런데 왕이 탈주한다?
아직 왕은 엄연히 국가상징이다.
국가상징이 탈주하려다 잡히면, 이는 반역에 해당한다.
다름 아닌 국가에 대한 반역이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왕정국가라면 상상할 수 없는 논리지만, 현대에는 당연한 이야기.
지금 프랑스 혁명기에 바뀌고 있는 관념이기도 하다.
유진은 복잡하기 그지 없는 상황을 생각하다 입맛을 다셨다.
“사실 나도 사실 이 혁명의 불길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자신하진 못해. 그래도 왕은 무능하지만 선량하고, 왕비는 시야가 좁지만 인자한 어머니야. 가능하면 살려주고 싶어.”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정일 뿐이다.
냉정한 현실이 있다.
만약 왕과 왕비가 원역사처럼 죽는다면, 반드시 도래할 국면이 있다.
공포정치.
구시대 귀족들과 혁명파가 사이좋게 목이 잘리는 시대다.
그때 기요틴에 목이 달아나는 자 중 하나로, 부친 알렉상드르도 있다.
이래저래 공포정치 시대를 막아 보려면, 국왕 탈주 사건을 무산시켜야 한다.
하지만 유진의 말을 듣던 이폴리트가 어이가 없는 듯 되물었다.
“그럼 방법이 있고? 너가 돈까지 줬잖아?”
“저 돈이 없으면, 왕실에서 그 정도도 못 모으겠어? 아직 왕당파 귀족들도 있고, 입헌군주파 의원들은 더 많아. 오히려 내가 안 빌려주면 불안해서 이곳 저곳 쑤시다, 빨리 들키지.”
“어, 그럼 오스트리아로 탈출시켜 줄 생각인 거야?”
유진은 그 말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건 무리일걸. 언제 왕이 사냥 말고 말을 타본 적이나 있을까? 게다가 애들까지 데리고 탈출이라니. 무리야.”
원역사에서 당연히 이 국왕 탈주 사건은 실패한다.
이유가 뭘까?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 때문이다.
여행의 편의성을 위해서 팔두마차를 이용한다.
때가 될 때마다 휴식을 취했다.
망명지에서 꿇리지 않겠다고 옷까지 잔뜩 들고 갔다.
여기에 국왕도 마음이 풀어져서 농민들과 접촉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니 혁명파가 아무리 체계가 없어도 추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국왕 일행은 잡힌다.
바로 바렌느라는 국경지대 장소에서.
여기까지 유진이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다른 이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왕은 어디로 갈 거 같나?”
카페 주인장 겸 보아르네 방크의 부행장, 마르소다.
어느새 카페에 있던 핵심 멤버들, 엘리와 실뱅, 투르네도 궁금한지 구경 중이다.
애초에 유진은 이 카페에 비밀이 새어나갈 인원은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들에게는 조금쯤 비밀을 얘기해줘야 한다.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바렌느. 로렌 공작령이라 신성로마제국 영지와 가깝죠. 아마 그쪽에 왕당파 귀족인 부이예 후작이 지휘관으로 있을걸요?”
“호오, 그렇군. 잠깐. 거긴 원래 군사 통행로인데? 도망가는데 그쪽으로 간다고?”
“얘기했잖아요. 왕비에 애들을 데리고 가는 도망길이라구요. 그냥 산지로 갈 수는 없어요. 뭐, 그러니 잡힐 거라고 전 보는 거지만.”
만약 국왕 혼자 도주한다면,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른다.
국왕의 셋째 동생 아르투아 백작이나 둘째 동생 프로방스 백작은 성공적으로 망명했다.
그렇지만 왕비에 왕자와 공주까지 데리고 간다면 어떨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루이 16세는 가족을 버린다는 결단을 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다.
반대로 이대로 파리에 남아 혁명파에 대응한다는 결단을 내릴 남자도 아니다.
그러니 유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실패하게 만들어야 해. 어떻게든. 그러면서도 왕이 드러나면 안 되고.”
그때 이폴리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되물었다.
“혹시 말야. 누가 먼저 도망가면 어때?”
“뭐?”
“아니, 다른 사람이 도망가는 게 발각되면 왕도 못 도망갈 거 아냐?”
그 순간, 유진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바로 그거야. 왕은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작자가 도망간다면!”
“응? 아니, 그냥 말한 건데. 누구 있어?”
“있지. 딱 적합한 자가 막 프랑스로 돌아왔어.”
유진이 눈을 빛냈다.
“오를레앙 공작.”
바로 혁명파의 [대부]이자, 차기 국왕을 노리는 유력한 왕족.
아울러 공포정치 시대에 목이 달아나는 장본인 중 하나다.
***
대혁명 초기에는 놀랍게도 귀족들의 망명과 귀국이 빈번하다.
“하하하! 고맙소, 라파예트 장군. 이 몸을 환영해주다니.”
지금 간만에 팔레 루아얄, 곧 루아얄 궁전에 돌아온 오를레앙 공작도 그 중 하나다.
얼마 전, 런던으로 망명을 떠났다가 다시 귀국한 것이다.
왜 망명을 떠났을까?
엉뚱하게도 국왕 시해 혐의에 빠졌기 때문이다.
서기 1789년 10월, 유진이 마르티니크에 가 있을 때 얘기다.
당시 한창 혁명의 불길에 휩싸여 있던 파리에서 여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빵이 없고, 불안하고, 왕이 다시 귀족들과 결탁해 혁명을 뒤엎는다는 소문이 돌았던 탓이다.
여자들이 무기를 들고 왕궁에 침입했고, 왕실은 강제로 베르사유에서 끌려 나왔다.
이 소동 속에서 왕과 왕비가 죽지 않은 것은 라파예트의 개입 덕분이다.
그런데 후세 ‘베르사유 행진’으로 기록에 남은 이 사건 때 일이다.
「오를레앙을 왕으로!」
누군가 외친 사태가 있었다.
국왕은 행진 뒤에 오를레앙이 있다고 의심했고, 국왕 시해 음모가 있었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당연히 오를레앙 공작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잠시 망명하는 게 좋겠다고 라파예트가 조언했다.
이제 9개월이 넘게 지난 지금, 마침내 공작은 귀국한 것이다.
아직 30대의 젊은 장군, 라파예트는 공작의 앞에 앉아 공손히 말했다.
“공작님께서 돌아와주신 덕분에, 많은 게 편해졌습니다.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의회에서 더 커졌구요.”
“하하, 공작은 무슨! 이제 시민 오를레앙이라 부르시오. 귀족 칭호도 폐지되지 않았소?”
“그래도 사적인 자리에서야 당연히 불러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였다.
“아버지, 잠시.”
아들, 샤르트르 공작 루이 필리프가 다가와 오를레앙 공작에게 속삭였다.
오를레앙 공작은 미간을 찌푸리다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
라파예트는 눈을 크게 떴다.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이다.
그 증거로 공작이 우아하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런, 너무 오래 붙잡은 것 같군.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장군.”
“예? 아, 알겠습니다. 공작님. 저도 곧 국민방위대를 통솔하러 가야 하지요.”
“그래. 파리를 잘 부탁하네!”
귀한 손님, 라파예트를 보낼만한 사건.
이를테면 빚쟁이다.
오를레앙 공작은 다른 손님이 와 있다는 응접실로 향하며 아들에게 되물었다.
“그 도박 신동이라고?”
“예, 아버지.”
“흐음, 내게 미국 채권을 팔아넘긴 그 친구가 어디까지 성장했으려나.”
비밀 응접실에 대기하던 ‘도박신동’, 유진이 오를레앙 공작을 맞이했다.
마치 제집처럼 편안한 태도다.
“간만에 뵙습니다, 공작 전하.”
가만히 유진을 살피던 공작은 입가를 비틀었다.
“그리 많이 자라진 않았군.”
“성장기지만 아직 1년 밖에 안 지났거든요.”
“반대로 눈빛과 태도는 아주 거만해졌어.”
유진도 첫 만남 때와 달리, 여유롭게 웃었다.
“혁명기에는 많은 게 바뀌지요, 공작 전하.”
그때 유진은 그저 팔릴 지 알 수 없는 부실 채권을 팔러온 시동에 불과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유진은 어엿한 은행을 운영하는 은행가다.
그것도 혁명기 물가 폭등과 주가 폭락의 시기를 모두 아는 은행가랄까.
투기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얘기, 공작도 전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라파예트를 치우면서까지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나?”
흥미롭게 묻는 공작을 보다, 유진이 대꾸했다.
“런던으로 돌아가시죠. 아니면 죽으실 겁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칙한 소리다.
오를레앙 공작도, 샤르트르 공작도 기가 막혀 입을 쩍 벌렸다.
최소한 금융 거래나 사업에 대한 얘기를 하러 올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막 귀국한 공작에게 외국으로 꺼지라니.
기가 막힌 얘기다.
“허, 이거야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격이군. 자네 첫 성공은 내가 도와줬다는 거, 잊었나?”
“물론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위험을 고지하러 온 겁니다.”
“위험? 시민의 친구인 내게 파리가 위험하다?”
그 순간 유진이 담담히 말했다.
“곧, 로베스피에르가 정권을 잡을 겁니다.”
그 말에 공작은 주춤거렸다.
아직 로베스피에르가 후세 원역사처럼 [기요틴]의 대명사인 시대는 아니다.
허나 분명 혁명 초기의 광풍에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한 귀족들은 이미 있다.
또한 의회에서 가장 강경하게 구귀족 타파를 주장하는 게 로베스피에르다.
나름 국민의회 의원이기도 한 공작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가 어떻게 정권을 잡는단 말인가?
미라보를 비롯해 엄연히 혁명의 주도자, 거물들이 쟁쟁하다.
오늘 만난 라파예트만 해도 그렇다.
낯을 찌푸리던 공작이 유진을 노려 보았다.
“그 과격한 친구가? 말도 안 돼. 물론 [클레브 데 자코뱅] 내에서 그 친구들 패거리가 점점 커진다고는 들었지만.”
“이미 자코뱅 내에서 [몽테뉴] 파가 한 번 전권을 쥐었죠. 그때 런던으로 가셨고.”
“그래. 하지만 라파예트와 같은 온건한 친구들이 다시 잡았지 않나. 미라보도 있고.”
몽테뉴, 곧 저 유명한 산악파를 의미한다.
클레브 데 자코뱅, 그러니까 자코뱅 클럽은 이미 국민의회의 주류 정파다.
소속된 의원 숫자는 과반이 못 되지만, 모든 의견을 주도하고 있다.
사실은 그렇다 해도 그 주도자들은 아직은 미라보와 라파예트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른바 [산악파]가 점점 주도권을 쥐어가고 있다.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기요틴을 반대파에 선사하다 자기들까지 죽는 산악파 삼거두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시점인 것이다.
유진은 그렇게 설명하는 대신, 이해하기 쉬운 얘기를 꺼냈다.
“미라보는 왕의 스파이입니다, 공작 전하. 그러니 믿으실 자가 못 되죠. 공작 전하께도, 산악파에도, 국민의회에도.”
공작이 입을 쩍 벌리다 감탄했다.
“위험한 말이군. 미라보가 들었으면 죽이려 들겠어.”
“차라리 그럼 다행이죠. 문제는 미라보가 곧 죽을거란 겁니다.”
“뭐?”
미라보, 혁명 초기의 지도자.
그러나 1790년, 이 시기에는 국왕과 의회를 넘나드는 이중스파이에 가깝다.
의회의 강경파인 산악파를 누르고, 국왕의 절대권도 제약하며,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자 음모를 계획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음모를 성공시켰다면 별 문제가 안 된다.
진짜 문제는 미라보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거다.
원역사를 아는 자만이 예언할 수 있는 절대정보, 곧 수명.
유진은 이 정보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시죠? 미라보가 제 어머니의 살롱에 드나드는 거.”
공작이 눈을 깜박였다.
분명 미라보가 유진의 모친, 신대륙 여자 ‘마리 로즈 드 보아르네’의 살롱에 드나든다는 얘기는 파리에 파다하다.
실은 여자를 좋아하는 미라보의 새 애인이 로즈가 아닌지 수군대는 소문이다.
한데 자기 모친을 모욕할 수도 있는 얘기를 왜 이 소년이 꺼낼까?
유진은 아주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더했다.
바로 ‘암살 음모론’을.
“곧, 미라보가 살롱에서 파티를 즐기며 놀다가, 죽는 소식을 들으시게 될 겁니다.”
“서, 설마. 암살 모의인가?”
“과격파의 소행이죠. 그 소식을 들으면 기억하십시오.”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얼어붙은 공작에게 일렀다.
“도망가지 않으면, 다음은 오를레앙 공작 전하십니다.”
공작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
오를레앙 공작, 현재는 평등공 필리프를 자처하는 자.
“의심 많고, 우유부단하지만, 또한 겁이 많지.”
그러니 아무리 행동이 느려도 겁을 먹으면 반드시 움직인다.
미라보, 혁명의 초기 주도자.
나아가 현재 국왕을 살리기 위해 공작을 하고 있는 자다.
그런데 미라보의 생명은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왜?
심낭염, 곧 심장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
현대에도 치료하기 어려운 난치병, 이 시대에는 불치병에 걸린 상태다.
팔레 루아얄에서 나오는 길.
유진을 수행하던 비서 이폴리트가 물었다.
“정말이야?”
“뭐, 곧 죽긴 할걸. 건강이 개판이라. 의사 말로는 그래.”
“헉, 그럼 그거 사기 아냐?”
유진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효과가 있는 거지. 모든 게 우연이라기엔 이상한 일이잖아? 뭐, 원래는 왕이 도망가야겠지만.”
어차피 죽을 자다.
그 자의 죽음을 이용해 공작에게 의심을 일으킨다.
바로 과격파, 곧 산악파가 구귀족과 입헌군주파를 무참히 살해하려 한다는 ‘음모론’의 의심을.
문득 유진의 시선이 거대한 궁전, 팔레 루아얄을 향했다.
“오를레앙 공작을, 내 카드로 건다.”
바로 국왕도주 사건을 막기 위한 유진의 카드가 던져진 것이다.
***
혁명은 결코 모두에게 평등한 시간이 아니다.
“와하하! 정말 유쾌하시군요, 마담.”
서기 1791년 1월의 겨울.
아직도 거리에는 굶주리는 빈민이 가득하다.
권세를 누리던 귀족들 다수는 국외로 탈주 중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수도, 파리 곳곳에서는 다시 귀족들이나 즐기던 [살롱]이 열리고 있다.
그 중 하나, 보아르네 전 부인의 살롱이 있다.
살롱의 주인, 로즈 드 파제리 보아르네 혹은 조세핀이 깔깔 웃었다.
바로 방금 조세핀의 유머를 칭찬한 뚱뚱한 남자에게 웃어주는 것이다.
“어머, 미라보 백작님. 과찬 감사드려요.”
“이런, 이런. 마담. 신대륙에서 와서 아직 적응이 덜 되셨군요. 따라해보세요. 시민, 무슈 미라보라고.”
“응? 무슈는 또 귀한 분들께 쓰는 경칭 아닌가요?”
이 살롱의 귀빈이자 혁명 국민의회의 거물 의원, 미라보가 껄껄 웃으며 화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남자 시민이라면 누구나 무슈지요. 하하핫!”
무슈, 영어로는 [미스터]에 해당하는 말이다.
본래 영국이든 프랑스든 하급 귀족 이상에게나 쓰던 경칭.
이제 혁명으로 세상이 뒤집어진 시대, [남성시민]이라면 누구나 [무슈]가 된 것이다.
물론 호칭이 평등해졌을 뿐, 정말 시민들이 평등해진 것은 아니다.
당장 이 살롱에 출입할 자격이 있는 자는 드무니까.
그때 옆에서 술을 홀짝이던 의원, 카미유 데물랭이 흘깃 미라보를 보며 말했다.
“미라보 선생, 괜찮으시겠습니까. 낯이 좀 창백해 보이시는데요.”
“아, 괜찮아. 그보다, 카미유. 오늘 본 김에 하나 묻지. 요새 우리를 [배신자]라고 부른다고? 정말 너무하는군. 자네 친구도.”
“그, 그게. 막시밀리앙도 원해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시민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슬쩍, 주위의 살롱 손님들을 살피며 데물랭이 낮게 말했다.
“특히, 스스로 상퀼로트라고 부르는 시민들이 어, 언제든 들고 일어나기 직전입니다.”
살롱은 18세기 말, 프랑스의 지도층 인사들이 모이는 장소다.
특히 [마담 로즈]의 이 살롱은 혁명파 지도자들이 많이 몰려든다.
혁명파 장군, 라파예트의 측근인 알렉상드르의 전 부인이자 신동 유진의 모친이니까.
그렇기에 로베스피에르의 친구, 데물랭도 말을 조심해야 했다.
어쨌든 로베스피에르는 이미 ‘강경파’, 곧 자코뱅 [산악파]의 지도자로 올라선 상태다.
그런데 강경파란 뭘까?
혁명의 시대, 강경한 자들은 구시대 모든 것의 혁파를 요구한다.
신분, 구습, 종교에 이르는 모든 것이 때려부술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구시대 정점에 위치한 것은 뭘까?
[왕]이다.요컨대 강경파인 산악파와 강경시민인 상퀼로트가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왕을 몰아내야 한다.
입헌군주제를 원하는 온건한 개혁파, 미라보는 혀를 찼다.
“쯧, 그걸 제어하는 게 정치인인데. 하여간 막시밀리앙도 결혼을 할 필요가 있어. 자네처럼.”
“예? 겨, 결혼이라니요?”
“요새 무슨 말이 나오는지 아나?”
마치 농담하듯 미라보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생 쥐스트, 에베르, 여기에 로베스피에르까지. 결혼 못한 총각들이 짜증이 나서 과격해진단 얘기가 나온단 말이야. 푸흐흐!”
물론 이 말을 듣는 데물랭도 아직 미혼이다.
비록 혼인할 애인은 있는 상태긴 하지만.
다만 미라보의 말이 완전히 농담은 아니었다.
강경파의 지도자급 의원들 중 다수가 이른바 [금욕]주의자다.
금욕의 스트레스를 과격한 정치적 주장으로 해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사실 원역사 현대에도 있을 정도다.
어쩐지 설득력 있는 얘기에 눈을 깜박이던 데물랭이 낯을 찌푸렸다.
“아, 선생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정말 위험해요!”
“위험한 건 그 3인방이지. 쯧, 선동가 없이 민중이 함부로 날뛸 것 같나? 지금 잘못하면 국민위병대와 민중이 충돌할 수도 있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름 산악파지만 그래도 대화가 되는 상대, 데물랭에게 미라보가 일렀다.
“에베르가 실로 지속적으로 민중을 선동하고 있어. 조만간, 이 친구들이 난리를 일으킬 걸세. 주의하게.”
자크 르네 에베르.
후세 이른바 공산주의의 시조로 불리는 바뵈프와 함께 혁명기 초강경 좌파다.
왕족, 귀족, 성직자 모두를 죽여서 프랑스를 정화하는 게 에베르의 정치적 목표다.
단연 왕은 숙청 1순위다.
그러나 왕을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될까?
미라보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왕을 죽이는 것도 간단하지 않지만, 죽음 그 이후가 문제다.
틀림없이 국경 밖, 왕들이 공포를 느끼고 공격해올 것이다.
그 사실을 머릿속에 굴리며 미라보가 가슴을 슬쩍 움켜쥐었다.
요새 스트레스 때문인지, 심장이 가끔 아프다.
“휴, 강경파들 참. 응? 뭔가?”
그때 미남 소년 한 명이 미라보를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 페르젠 백작님 심부름으로 왔는데요.”
“응? 페르젠 백작? 무슨 일이지?”
“백작님이 미라보 백작님께만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소년, 이폴리트 샤를이 미라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만간 국왕 폐하가 탈출하려 하실 겁니다. 그러니, 도와달라고요.”
잠시, 미라보의 두뇌가 정지했다.
지금 들은 말이 너무 경악할 소리라 얼른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혁명 주도자들이 왕이 위험하니 죽이자고 하는 때다.
한데, 정작 왕이 정말로 탈출해서 자신의 위험성을 증명한다?
미라보가 구상해온 입헌군주제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순간이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라보가 부르짖었다.
“미친! 멍청한 왕 같으니. 그럼, 안 돼!”
그 순간 모두가 미라보를 쳐다보았다.
창백한 얼굴, 통하지 않는 혈액, 그리고 강렬한 스트레스.
원역사에서 오노레 가브리엘 드 미라보는 심장 염증, 곧 심낭염으로 사망한다.
본래 1791년 4월에 일어나는 일.
그러나 1791년 1월 현재, 이미 심낭염은 지독한 상태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미라보의 심장을 옥죄었다.
카미유 데물랭이 옆에 앉아 있다 미라보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무슈 미라보?”
일순, 미라보가 땅 위에 나뒹굴었다.
“미라보! 맙소사, 의사! 의사를 불러요!”
조세핀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이 날 살롱의 파티는 끝났다.
미라보의 사망과 함께.
***
예고되었던 죽음은 꼭, 다음 사형선고처럼 들린다.
“어서 탈주해야 해. 이제, 모든 게 글렀어!”
오를레앙 공작은 비명을 지르며 짐을 황급히 쌌다.
미라보가 누구인가?
삼부회가 국민의회로 바뀌던 [쥐드폼] 코트의 선언을 주도했던 자고, 그러면서도 왕실의 환심을 샀으며, 나아가 프랑스 혁명을 영국식 의회제도로 만들려던 자다.
그렇기에 미라보는 혁명가임에도 오히려 남은 귀족들을 보호하는 위치였다.
그러나 미라보가 죽었다.
그것도 도박신동 유진이 예고한대로 살롱의 파티에서.
이것은 누군가 미라보를 죽였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오를레앙은 그 다음이 자신이라고 확신했다.
반대로 아들 샤르트르 공작은 오를레앙을 말리려 애썼다.
“아버지, 그래도 한 번 라파예트 백작과 얘기를 해보심이!”
“됐어! 지금은 뒤무리에 장군이 더 믿을만하다. 장군이 지금 벨기에 공략을 위해 나가 있지? 그쪽과 접선해서, 탈주해야 해.”
“하지만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그 어린놈 말만 믿고 움직이기에는, 위험해요!”
유진을 믿을 수가 없다.
고작 이제 10살이 채 될까 말까 한 아이 아닌가?
아무리 신동이고, 신대륙을 다녀왔고, 은행을 설립했어도 애는 애다.
샤르트르 공작은 어린애 말 한 마디에 움직이는 부친이 불만이었다.
그 순간, 오를레앙 공작이 눈을 번뜩였다.
“미라보가 죽었다, 필리프!”
아들, 루이 필리프 샤르트르 공작을 향해 오를레앙 공작이 외쳤다.
“미라보는 왕비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어쨌든 혁명의 거두였어. 게다가, 왕정 존속을 원했고!”
“그래서 제거하시려 했던 거 아닙니까?”
“그건 내 통제하에서 숙청될 때지! 내 손에서 벗어난 사건이 벌어졌다!”
누가 미라보를 죽였는지, 공작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게 있다.
강경파를 제약하던 미라보가 죽었다는 거다.
미라보를 죽인 자가 있다면, 그 자가 정국을 주도할 것이다.
분명 강경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지금 혁명 강경파가 외치는 바가 뭘까?
왕만 죽여라?
그 다음에는 누구를 죽일까?
어쩌면 왕 다음 가는 제일귀족, 비록 혁명에 찬동했더라도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를 죽이지 않을까?
바로 오를레앙 공작이다.
“이젠 피바람이 불 거다. 로베스피에르나 에베르는 내가 통제 못 해!”
사실 원역사에서 오를레앙 공작은 이렇게 빠르게 행동하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국왕을 사형하는데 찬성한다.
그 후에 급변하는 정국 속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곧이어 사형 당한다.
그러나 지금은 유진에게 이미 경고를 들은 뒤다.
경각심이 그야말로 최고조로 다다랐을 때, 정말로 미라보가 죽었다.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급히 팔레 루아얄을 뛰쳐 나오며, 공작이 아들과 시종들을 향해 외쳤다.
“짐은 최소한으로 챙겼지? 현금 위주로, 지폐는 다 버리고 간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루이즈? 이런. 어쩐다?”
그때서야 별거 중인 부인을 오를레앙 공작은 떠올렸다.
루이즈 마리 아들레이드, 한때 프랑스에서 제일 가는 상속녀였던 여자다.
당장 오를레앙 공작이 한때 왕국령 5프로를 차지했던 이유도 반쯤은 부인 덕이니까.
그렇지만 공작은 바람을 많이 피웠고, 부인은 혁명이 일어나자 공작을 떠났다.
한 마디로 이혼 직전인 상태다.
그래도 부인은 부인이고, 공작이 이대로 도망간다면 자칫 부인은 위험하다.
사랑하지는 않지만, 공작의 정치적 약점이 된다.
그때 누군가 팔레 루아얄 앞에서 공손히 공작에게 말했다.
“부인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공작님.”
깜짝 놀란 공작이 뒤로 물러났다.
꽤 잘생긴 활달한 청년이 일단의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혹시 국민의회 강경파 쪽 사람들일까?
그러나 흉흉한 기색은 없다.
공작은 조심스레 물었다.
“자네는 누구지?”
“설마 혁명의 끄나풀이겠습니까? 공작님께 은혜를 입은 소년의 충복으로, 마르소라고 합니다.”
“아, 들은 기억이 있어. 방크 보아르네의 부행장이라고 했던가?”
바로 유진의 심복이 된 프랑수아 마르소였던 것이다.
현재 보아르네 은행의 부행장으로 일하며, 미성년자라 한계가 있는 유진을 보좌중이다.
또한 지금도 오를레앙 공작을 감시하다, 이렇게 나선 거였다.
복잡한 기분으로 공작은 마르소를 보았다.
과연, 이 모든 것은 함정이 아닐까?
그렇지만 유진이 설사 함정을 팠다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미라보, 국민의회 온건 개혁파의 거두가 죽었다는 거다.
결국 공작은 결단을 내렸다.
“좋아, 그럼 루이즈는 그대들에게 맡기지.”
황급히 길을 나서는 공작의 뒤에서, 문득 마르소가 물었다.
“가시기 전에, 행선지는 어디로 하실 겁니까?”
순간, 말을 타던 공작이 말고삐를 멈췄다.
왕실과 달리 공작 일행은 성인 남자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기동성 있게 움직일 수 있고, 산야 기동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굳이 탈주로를 정한 상태는 아니었다.
단지 벨기에로 달아났다가 영국으로 간다는 도피처만 결정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하필 마르소가 묻자 궁금해졌다.
유진의 수하를 자처하는 이 청년이 왜 그걸 물을까?
“그걸 왜 묻지?”
“아, 걱정되시면 말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한 곳으로는 가지 말라고 말씀드리려고.”
“어디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마르소가 말했다.
“바렌느. 위험한 곳이죠.”
마르소를 뚫어져라 보던 공작은 말고삐를 잡아챘다.
순식간에 이동해 파리를 벗어나자, 공작이 기수를 동북으로 향했다.
이제 어느 길로 가야 할까?
공작은 아들과 수하들에게 선언했다.
“바렌느로 간다.”
“예? 아버지. 유진 보아르네 놈의 부하인가가 경고했잖습니까?”
“천만에. 그 놈을 정말 믿는단 말이냐? 필리프, 정신 차려라!”
사전에 살인 경고를 던지는 대담함.
마침내 죽음이라는 결과.
이후에 수하를 보내서 던진 경고.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결론이 있다.
유진의 천사 같은 얼굴을 떠올리며 공작이 부르르 떨었다.
그 얼굴 뒤에는 악마가 있는 게 확실하다.
이제 의문이 확신이 된 공작이 단언했다.
“유진, 그 놈이 미라보를 죽인 놈이야.”
그 순간, 공작은 유진이 만든 함정에 완전히 빠졌다.
***
함정은 꼭 짐승을 잡아야만 성공한 것은 아니다.
-다다닥!
바렌느, 프랑스 동북의 국경 부근 마을이다.
이곳에 갑자기 일단의 말을 탄 용기병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마을의 주민들은 깜짝 놀라 군인들을 맞이했지만, 군인들은 행패를 부리지는 않았다.
대신에 누군가의 종적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마을의 촌장이 당황해 군인에게 답했다.
“아, 훤칠하게 생긴 중년 남자와 청년? 여기 지나가긴 했소만. 왜 그러쇼? 군인 나으리?”
국민위병대 용기병 대위, 장 루이 로메프가 이를 갈며 상관에게 보고했다.
“이런, 빌어먹을! 놓쳤습니다!”
상관, 곧 국민위병대 사령관 라파예트가 탁자를 내리쳤다.
-쾅!
반드시 잡아야 했을 사람을 놓쳤다.
오를레앙 공작.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입헌군주 개혁을 대표하던 자.
그런데 이 자가 국민의회에 허가도 받지 않고 국외 출국을 했다.
누가 봐도 도망, 아니 망명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의회 내 강경파, 곧 산악파들이 기세등등해질 수 밖에 없다.
「거 봐라! 대귀족들은 모두 국가의 배신자들이다! 죽여야 한다!」
에베르가 떠들 소리가 귀에 벌써 선하다.
라파예트는 깊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 뒤에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 소령, 아니 이제는 준장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큰일이군. 자네 아들이 알려줬는데, 이걸 어쩐다?”
“장군님의 책임은 아닙니다! 공작이 갑자기 국외도주를 선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천만에. 민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이제 자신의 최측근이나 마찬가지인 알렉상드르를 향해 라파예트가 진심을 토로했다.
“분노로 들끓을 걸세! 왕과 귀족, 구체제의 모두를 쓸어버리라고!”
그 구체제에는 후작인 라파예트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나마 왕이 도망가려 했던 게 아니라서 다행일까.
어떻게 싸워볼 방법은 없지 않다.
문제는 이게 전부 무력충돌이 예상된다는 거다.
혁명이 내전으로 빚어질 판이다.
라파예트가 낯을 찡그릴 찰나였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문득 노새를 탄 소년이 다가오며 낭랑하게 말했다.
마르소, 이폴리트, 그리고 투르네를 호위처럼 끌고 온 모습이었다.
라파예트와 알렉상드르가 놀라 유진을 맞이했다.
“자네가 왔군, 유진?”
“아니, 유진! 네가 왜 여기까지 온 거냐? 위험하게.”
“혹시 몰라서요. 놓치면 바로 하셔야 할 게 있어서.”
문득 유진이 싱긋 웃으며 무시무시한 말을 던졌다.
“왕을 체포하십시오.”
기가 막힌 얼굴로 라파예트가 입을 쩍 벌렸다.
공작을 놓쳤다고 왕을 체포하라니, 꼭 산악파 같은 소리 아닌가.
알렉상드르도 경악해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버지는 몰라도 장군은 아실 걸요. 지금 민중의 분노가 얼마나 들끓는지. 게다가 왕을 죽이라는 목소리가 의회에 높습니다.”
“지금, 국왕 폐하를 팔아넘기라는 거냐! 이 녀석, 네가 아무리 어려도!”
그 순간 유진이 알렉상드르에게, 실은 라파예트를 향해 호통치듯 외쳤다.
“그게 아니에요, 아버지! 폐하를 살리려면, 아니 왕비 폐하와 왕자님, 공주님이라도 살리려면 먼저 ‘우리’ 쪽에서 선수를 쳐야 합니다!”
유진은 라파예트를 정시하며 또박또박 말에 힘을 주었다.
“우리 [입헌군주파]에서!”
아직 어려 유진이 사람을 압도하는 힘은 부족하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결코 범상치 않았다.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라파예트조차 잠시 질릴 정도로.
정신을 찰린 알렉상드르가 라파예트에게 황급히 말했다.
“장군, 이 애 말은 듣지 마시고. 일단 파리로······.”
“아니, 맞아. 파리로 가서, 폐하를 체포하지.”
“장군?”
라파예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단언했다.
“먼저 우리가 폐하를 잡아야, 공화파 놈들이 폐하를 죽일 명분이 사라져!”
유진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바로 이게 유진이 공작을 먼저 도망치게 만든 이유다.
왕이 도망치면 아예 손조차 쓸 수 없을 정도로 민심이 격분한다.
허나 공작이 도망친다면, 시민들은 왕이 도망쳤을 때만큼 분노하지는 않는다.
그럴 때 안전을 이유로 왕을 ‘입헌군주파’로 지목되는 라파예트가 잡는다면 어떨까?
민심은 일단 갈리게 된다.
여전히 강경하게 밀어붙이자는 강경파와 사태를 지켜보자는 온건파로.
딱, 그 정도만 되어도 최소한 후대 유명한 위험한 사태는 막을 수 있다.
바로 줄줄이, 특히 알렉상드르까지 죽을 [공포정치]를.
유진은 이 모든 것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 고했다.
“맞습니다. 그래야, 이 혁명에서 흐르는 피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겁니다.”
이것이 바로 유진의 카드다.
혁명의 역사개변을 위해서, 왕을 감옥에 가두는 것.
본래 6월에 발생할 국왕의 바렌느 탈주가 무위로 돌아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