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21)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20화(21/547)
(20) 루이를 죽여야 마리가 산다
이 순간, 프랑스에서 가장 거대한 나락을 경험한 자가 여기 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루이 드 부르봉 카페, 아직은 프랑스의 왕으로 호칭되는 자다.
국왕이 서성이는 장소는 [탕플 탑]이라 불리는 수도원이다.
이름은 저 유명한 [템플] 기사단에서 따온 것이다.
한때는 템플 기사단이 권세를 누리다 국왕에게 멸절당한 장소에 왕이 유폐되었다.
벌써 그게 작년, 1791년 9월의 일.
이제 1792년 3월이 넘은 지금까지 왕은 풀려나지 못했다.
대체 이유가 뭘까?
오를레앙 공작의 옛 대저택, 팔레 루아얄에서 도망가다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파리를 벗어나기도 전에.
“분명 오를레앙이 손을 뻗어왔는데······.”
그저 아무 대책 없이 왕이 도망쳤던 게 아니다.
왕국 제일귀족이자 혁명옹호자, 평등공이라 스스로 일컫던 남자.
공작 오를레앙이 루이 왕에게 밀사를 보내왔다.
그것도 루이 왕이 꽤 잘 아는 귀족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
이 사람은 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후세 3각관계의 대명사로 남은 소설, <위험한 관계>의 작가.
18세기 말,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국왕도 알 수 밖에 없는 문인 귀족이랄까.
나아가 이 작가는 오를레앙 공작의 최측근이다.
루이는 라클로가 접근해 고했던 것을 떠올리며 벽을 서성인다.
「오를레앙 공작 각하가 저를 보내셨습니다. 이미 준비는 되어 있고, 몸만 빠져나가시면 됩니다.」
「나만 말인가? 왕비는? 공주와 왕세자는?」
「폐하, 왕이 빠져나가야 왕비와 왕세자, 공주도 목숨이 안전합니다. 오히려 폐하와 함께 움직이면 잡히기 쉽습니다. 이미 경험하지 않으셨습니까?」
단지, 그것 뿐이었다면 왕은 라클로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페르젠 백작을 믿으시는 겁니까? 이걸 보십시오.」
아직, 왕의 손에 쥐어져 있는 편지를 왕은 부들부들 떨며 손에 들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 없이는 난 안 돼요. 사랑해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필적이다.
페르젠 백작에게 필사적으로 보낸 편지 한 장이 오를레앙 공작의 손에 들어갔던 것이다.
알고 있었다.
이미 혁명이 일어나기 수년 전, 왕비가 페르젠 백작과 심상찮은 관계였다는 걸.
그러나 아이를 낳기 전의 일이다.
모두 끝난 관계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왕비는 페르젠 백작에게 불타는 열정의 편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도주도 어쩌면 페르젠 백작과 함께 있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배신감, 치욕감, 두려움.
편지를 잡은 루이의 손이 떨린다.
“그래. 이건 마리의 필적이었어. 그래서, 믿었는데.”
그게 루이가 결국 홀로 도주를 결정한 이유다.
우선 자신이 도망친 후, 그 뒤에 왕비를 구하겠다는 마음의 변명을 하면서.
허나 실제 이유는 달랐다.
왕비에 대한 배신감.
공작이 안다는 치욕감.
혹시나 마리 왕비가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게 가정적이지만, 또한 프랑스의 왕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군주, 루이 16세를 움직였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도망치다, 잡혀 버렸다.
그 후, 탕플 탑에 반년 넘게 외부와 소통이 끊긴 채 갇혀 있는 것이다.
“대체 왜 실패한 거지? 아니.”
루이 16세는 거구의 몸을 떨며 담벼락을 움켜 쥐었다.
“왜, 왕인 내가 ‘재판’을 받아야 하는 거지?”
절대주의 시대, 18세기.
왕은 주권자다.
옆나라 영국처럼 의회가 주도권을 잡은 나라조차 왕에게 재판을 요구하지 않는다.
옛날에, 반역자들이 영국의 왕을 죽인 적은 있다.
그러나 그 후 그 반역자 크롬웰조차 부관참시 당했다.
하물며 왕이 한때는 태양이라 불리던 나라가 프랑스다.
그러나 지금 루이 16세에게 던져져 있는 기소장이 있다.
-〈시민 루이 카페, 국가반역죄로 기소한다!〉
이미 해산된 파리 고등법원에서 만든 문서가 아니다.
국민공회.
반년 사이, 국민의회는 해산되고 새롭게 [국민공회]라는 이름의 의회가 만들어졌다.
선거권자가 거의 모든 성인 남성에게 주어진 실로 ‘혁명’적인 의회.
본래 원역사에서는 1792년 9월이 되서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의회다.
하지만 루이 16세의 바렌느 도주 사건 방지와 반대로 퇼르리 궁전 도주 실패가 겹치면서 역사가 뒤바뀐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모르는 루이 16세는 국민공회가 아니라 죄명에 분노했다.
“그것도 국가반역죄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반역은 저들이 하는 것이 아닌가!”
나라의 정부를 뒤엎었다.
국정을 자신들 멋대로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주권자인 국왕을 이렇게 가두지 않았던가?
물론 이미 루이 16세는 삼부회가 국민의회로 바뀔 때, [헌법]을 인정한 뒤다.
왕이 아니라 국민이 [주권자]임을 인정하는 헌법을.
허나 루이 왕의 머릿속에는 당연히 그런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온몸을 떨며 루이 왕이 부르짖었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물론 이 목소리는 탕플 탑 안을 메아리칠 뿐이다.
한때 프랑스 왕에게 배신당한 템플기사단이 질렀던 비명처럼.
***
국민공회(Convention nationale), 혁명기에 가장 급진적인 강경파들의 의회다.
“국왕의 사형을 요구합니다!”
그 선두에 선 자는 단연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다.
사실 국민공회가 탄생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다.
모든 선거는 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데, 초기 입법의회나 국민의회는 일정 수준 이상 재산을 가진 자에게만 투표권을 주었다.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를 비롯한 산악파는 여기에 반대했다.
전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 국민이란 성인 남성까지만 얘기하는 것이다.
당연히 입헌군주파는 물론이고 지롱드를 비롯한 온건파도 반대했다.
그러던 와중에 벌어진 사건이 바로 세 가지다.
바렌느 공작 탈주 사건, 마르스 광장 충돌 사건, 그리고 국왕 탈주 미수 사건.
본래 원역사에서는 왕이 탈주했다가 잡힌다.
마르스 광장에서는 라파예트가 국민들을 총으로 학살한다.
오를레앙 공작은 무탈히 남아 있다가, 이곳 국민 공회에 의원으로 참가한다.
이 모든 게 뒤바뀌었다.
그럼에도 왕은 여전히 죄인이 되어 있다.
의사당 한쪽에 부친 알렉상드르를 따라 들어온, 유진만이 아는 일이다.
의사당에서 산악파와 지롱드가 충돌하고 있었다.
지롱드의 온건파 의원, 장 밥티스트 루베 드 쿠브레가 부르짖었다.
“루이는 유죄요! 참혹한 죄인이오. 외국과 내통했고, 군주의 직위를 버리고 도망치려 했소! 허나, 사형은 반대하오! 그건 우리 의회의 권한이 아니오!”
“천만에! 친애하는 루베 의원. 일반적인 죄라면 그럴 수도 있소. 또한 전쟁이 없다면 자비를 베풀 수도 있을 거요! 허나, 지금 인민은 복수를 외치고 있소!”
“로베스피에르! 정녕 이미 흘린 광장의 피로 부족하다는 건가! 최소한 사형 선고 후, 집행유예는 가능하지 않소!”
그 순간 생 쥐스트가 벌떡 일어났다.
“불가능하오, 루베. 우리의 혁명과 국가가 살기 위해서는 군주가 죽어야 하오!”
국왕이 도망치다 잡히지만 않았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반대로 국왕이 도망치는 광경이 원역사처럼 파리 전체가 봤다면, 이렇게 논란이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죽이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단지 집행을 유예하는 형태만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진이 개입한 후, 입헌군주파는 살아남았다.
나아가 전쟁은 불사하지만, 국정은 온건파인 주전온건파 지롱드도 상당히 많다.
요컨대 산악파가 일방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 때문에 이렇게 논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국민공회의 의결을 진행합시다! 사형 찬반에 대해서!”
“시급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소!”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군대가 국경까지 다가온 마당이오! 이 상황에서 왕을 죽인다면, 오히려 전쟁이 격화될 거요! 차라리 국민투표로 정합시다!”
당통, 브리소, 데물랭이 저마다 일어나 외쳤다.
유진은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데물랭이 말한대로 국민투표라도 된다면 결과는 다를 수도 있다.
왜냐면 아직 왕에게 동정심이 있는 국민이 대다수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경한 여론은 주로 파리에 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라파예트가 조금이라도 발언을 해준다면 어떨까.
그러나 라파예트는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그때다.
“하하하하핫!”
못생겼고, 피부가 엉망이지만, 눈빛 하나는 형형한 남자가 일어났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이 마라가 말하겠소. 그간, 나를 죽이려던 왕당파와 입헌군주파 때문에 이제야 인사드리는구료.”
장 폴 마라, 산악파의 세 거두 중 하나다.
그야말로 강경파 중의 강경파로 공화정 도입을 처음부터 주장해온 남자다.
게다가 입헌군주파나 지롱드를 죽여야 한다고 공격해, 법원 기능이 합쳐진 국민의회에 옛날부터 고발된 자다.
그간 고발을 피해 파리 지하도와 런던을 넘나들던 마라가 의사당에 온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음이 이보다 더 극명한 장면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의회는 오로지 국민의 주권에 의해 권한을 갖고 있소. 그러나 반대로 국민이 모든 사안에 대해 투표한다면, 그건 의회의 존재를 잊는 거요!”
마라는 힘 있게, 그러나 교묘한 말을 꺼냈다.
의회가 정해야 한다.
국왕의 죽음을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의원들은 모두 공범이 된다.
왕당파 입장에서는 국왕시해범이, 공화파 입장에서는 함께 혁명의 피를 묻인 동지가 되는 것이다.
사실은 지금 온건파 의원들이 우왕좌왕하는 본질은 따로 있다.
왕을 죽이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
이게 의원들의 본심이다.
해서, 모두를 공범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게 마라의 생각일 것이다.
“모든 결의를 할 때, 국민의 재가를 받을 수는 없소. 폭군을 위해, 시간을 끌려는 자들이나 그런 짓을 하겠지! 지금 내란을 막을 시간도, 외적을 막을 시간도 없소!”
동시에 역시, 강경파 생 쥐스트가 찬동하며 외쳤다.
“밖의 시민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오!”
이 의사당은 퇼르리 궁전에 있는 회의장에서 열리고 있다.
한때 왕궁이었던 퇼르리 궁전은 문자 그대로 파리 중심부와 인접해 있다.
파리의 강경파 시민들, 상퀼로트들이 달려와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이 소리가 프랑스 전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파리의 여론 과반은 넘을 것이다.
설사 넘지 않는다 해도, 폭력으로 과반으로 만들 수 있다.
마라가 승자의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이게 국민의 목소리요.”
그때 라파예트가 입을 열었다.
“국왕의 목소리를 들어봅시다.”
모두의 시선이 라파예트에게 쏠렸다.
투표는 반대하겠지만 감히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던 입헌군주파 의원들도 눈을 빛냈다.
하지만 정작 유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문득 라파예트를 경멸하듯 응시하던 생 쥐스트가 물었다.
“라파예트, 사형 반대요?”
“아니,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 생 쥐스트. 다만 딱 하루, 들어달라는 거요. 마지막으로 왕의 변명을.”
“허, 그럴 이유가 있나?”
눈을 번뜩이며 생 쥐스트가 포효했다.
“루이가 죽지 않으면 혁명이 죽소! 혁명을 유죄로 만들고 싶은 거요!”
이미 국민공회는 루이 왕을 잡아 가두었다.
도저히 왕과 타협이 안 된다.
무엇보다 왕이 도망치려 했던 것은 명백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왕을 다시 풀어준다?
여기 있는 의원들이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나아가 혁명도 끝장이다.
생 쥐스트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아직 라파예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나는 신대륙에서 왕의 지배를 무너뜨렸소. 광장에서 시민들의 죽음을 막았소. 또한, 이제 국경으로 나아가 외적을 막을 거요.”
라파예트는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다.
또한 유진이 개입해, 마르스 광장의 영웅도 되었다.
게다가 현재 전쟁이 시작된 상황, 국민공회에서 라파예트만한 혁명파 장군은 찾기 어렵다.
군 경험이 있는 자는 대부분 구귀족이며, 혁명에 투신한 자는 하급 평민장교들이다.
라파예트가 모든 의원을 돌아보다 단 한 사람에게 시선을 멈췄다.
로베스피에르, 산악파의 지도자다.
“그렇기에 딱 한 번의 기회를 요청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오. 루이는 아직은 프랑스인들의 왕이오.”
그러나 실은 라파예트의 시선은 그 너머에 닿아 있었다.
유진, 라파예트를 이 자리에 올린 소년.
소년을 보다 라파예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광경에 유진은 깨달았다.
왕의 변명까지는 끌어내더라도, 왕을 살릴 수는 없다.
라파예트는 지금 무언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가만히 라파예트를 보던 로베스피에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예트의 생각, 곧 왕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읽었기에.
“좋소. 딱 한 번이오. 내일, 루이의 변명을 들읍시다.”
그 순간, 유진은 결심했다.
이제, 방법은 하나 뿐이다.
***
탕플 탑에 아직 어린 소년의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뚜벅, 뚜벅, 뚜벅.
오늘도 루이 왕은 무료하고, 절망적이며, 구원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하늘만 보는 중이다.
들어서는 소리가 있어도 그저 간수겠거니 하며, 무시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날은 소리가 좀 달랐다.
먹을 것이나 혹은 배설물을 치우는 소리가 아니다.
가만히 서 있는 듯한 인기척에 루이 16세는 고개를 돌리다 눈을 크게 떴다.
“유진?”
유진 드 보아르네.
왕이 직접 채용했던 공주의 시동.
또한 도박에 신기를 발휘하며, 미국 채권을 팔아치우던 신동.
신동, 유진이 가만히 고개를 조아렸다.
“간만에 뵙습니다, 폐하.”
루이 왕은 반가운 마음에 유진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아, 라파예트가 도와준 건가?”
“예.”
“의회는 뭐라 결정했지? 나보고 죽으라고 하나? 그래도, 최후 변론의 기회는 주겠지?”
그러나 유진은 창백한 표정으로 루이 왕을 보다 물을 뿐이었다.
“폐하, 왕비와 공주, 그리고 왕자님을 살리고 싶으십니까?”
“물론이다.”
“그렇다면 폐하가 돌아가셔야 합니다.”
왕은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깜박이다 부릅떴다.
“왜!”
국왕은 바보가 아니다.
단지 상황판단력이 좋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유진이 말한 소리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자결해라.
지금 유진은 그렇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왜 왕이 자살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국왕이 믿는 가톨릭에서도 죄로 여기는 짓이다.
하지만 유진은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폐하께서 도망치셨기 때문이죠. 퇼르리 궁전에서, 또한 팔레 루아얄에서.”
“그, 그건!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잊었니? 라파예트가 날 잡았어. 아무 짓도 결과적으로 저지르지 않았는데! 그 오슈였나? 무뢰배가! 그래서 불안해져서 어쩔 수 없이 혼자 탈주하다, 그만!”
“그 오슈라는 무뢰배는 제가 보냈던 겁니다.”
유진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고백했다.
“폐하께서 페르젠 백작과 모의한 도주를 막기 위해서.”
왕은 눈을 깜박이다, 다시 부릅떴다.
일부러 유진이 왕을 붙잡았다는 얘기다.
대체 이유가 뭘까?
유진이 공화파와 손잡고 배신한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순간, 유진이 왕을 향해 소리쳤다.
“왜 도망가셨습니까? 왜! 폐하를 살리기 위해서 제가 어떤 위험을 무릅썼는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십니까?”
“사, 살려? 나를? 자, 잡은 게?”
“그래야 폐하가 의회와 군중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요! 시대는 이미 바뀌었습니다! 그걸 왜 모르십니까!”
아직도 국왕은 유진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유진은 국왕의 편이다.
어쩌면 탈출이라도 도와줄지 모른다.
루이 왕이 유진을 달래기 위해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그, 그래. 그럼 이제라도. 다시, 탈출을 하거나, 아니면 의원들을 설득하면.”
“이젠 늦었습니다. 폐하.”
“뭐?”
유진은 이를 악물다 내뱉듯 말했다.
“이제 의회는, 시민들은, 프랑스는 외세와 싸울 겁니다. 공화정으로 나아갈 겁니다. 그런데 폐하가 살아계시면 결국, 군주제 부활의 빌미가 되죠.”
국왕은 혁명이 일어난 순간부터, 아무 힘도 없었다.
때문에 국민의 신뢰만이 왕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도주의 길을 선택하면서, 신뢰는 붕괴되었다.
이제 의회는 살기 위해서라도 왕을 죽여야 한다.
시민들은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서로 죽이고, 또한 외국과 싸울 것이다.
왕은 어떻게 될까?
걸림돌이다.
죽을 수 밖에 없다.
“폐하를 오늘 살리면, 내일 왕비와 왕자, 공주 모두 죽여야 합니다. 의회의 공화파들 입장에서는.”
그게 더 이상 왕을 도망치게 할 수 없는 이유다.
국왕은 판단이 느릴 뿐, 바보는 아니다.
한때는 <로마제국 쇠망사>를 직접 번역한 적도 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왕이 쓰게 웃었다.
모두가 도망칠 길은 없다.
왕은 도망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후 왕비, 왕자, 그리고 공주는 죽는다.
길이 하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오를레앙의 음모 따위 수준을 넘어선 거군.”
“그 자가 음모를 꾸몄나요?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그 자는 왕이 되지 못할 테니까요.”
“그래, 이제 알겠어. 무슨 말인지.”
이제야 루이는 깨달았다.
페르젠에게 왕비가 보낸 편지는 진짜일 것이다.
그러나 그 편지를 보여준 것은 오를레앙 공작의 음모다.
국왕이 죽어야 공작이 왕이 될 길이 열릴 테니, 일부러 격동시키고 잡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공작의 음모 따위 아무 상관 없게 되었다.
왜냐면 프랑스에 왕이라는 자리 자체가 없어질 테니까.
문득 확인하듯 루이가 유진에게 물었다.
“내가 죽으면 왕비는 상관없다는 건가?”
“어차피 오스트리아의 왕녀일 뿐입니다. 왕권을 주장할 수 없죠.”
“그럼 왕세자는? 아니, 내 아들 루이 샤를은 어떻게 되나?”
왕이 죽더라도 왕세자가 살아 있다면, 역시 위협이 아닐까?
원역사에서 루이 샤를은 그 이유로 방치되고 학대받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
그러나 유진은 아주 간단하다는 듯 답했다.
“왕자는 부정한 관계에서 낳은, 가짜 아들이라고 하면 됩니다.”
“뭐?”
“한스 악셀 폰 페르젠. 그 자의 아들이라고 유언장에 적으십시오.”
루이는 이 말에 격분했다.
“말도 안 돼! 물론, 그런 소문이 돌았고. 아니, 페르젠과 왕비 사이에 관계도 있었어! 그러나 애들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왕자까지 죽일 셈입니까!”
“그건!”
루이는 확신한다.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아이다.
날짜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왕비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대로 간다면 유진의 말대로 왕자는 죽는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자식을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유진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폐하. 국왕 폐하께선 좋은 분입니다. 전 아직, 이 시계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국왕이 직접 만들어 선물했던 회중시계다.
-째깍, 째깍, 째깍.
왕은 초침이 돌아가는 시계를 보다,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준 시계구나.”
“하지만 폐하는 나라를 망쳤습니다. 왕실을 망쳤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족까지 망치실 생각이십니까?”
“······통렬하구나.”
시계만 만들 수 있었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는 프랑스의 국왕이었다.
그것도 이 시대, 순위를 다투는 강대국이지만 시대에 뒤쳐진 대국의 군주였다.
자신의 실패를 돌이키며, 루이가 쓰게 웃었다.
“그래, 처음 봤을 때부터 넌 범상찮았지. 이것도 운명일지도.”
느리지만, 한 번 결심하면 행하는 게 루이와 같은 사람의 특징이다.
유진이 가져온 펜과 잉크를 받아든 국왕이 자신의 옷을 찢었다.
옷감 위에 루이가 직접 친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서다.
-슥, 슥, 슥.
서명을 남긴 국왕이 고개를 들었다.
“받아들이겠다. 어떻게 죽일 생각이지?”
여전히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로 서 있던 유진이 고개를 돌렸다.
“이폴리트.”
어둠 속, 긴장한 얼굴로 이폴리트가 들어섰다.
이폴리트의 손에는 수정으로 된 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얼마 전, 남몰래 구한 독약이다.
독을 받아든 국왕이 심호흡을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유진. 한 가지만 약속해다오.”
“말씀하십시오.”
“마리와 테레즈. 두 마리는 네가 지켜다오.”
문득 루이 국왕이 유진을 우묵한 눈으로 보았다.
“그건 할 수 있겠지? 유진 드 보아르네.”
저 눈, 실로 선량하고 남을 잘 믿는 눈이다.
맹세는 덧없는 것.
그럼에도 죽는 이 순간까지 루이는 사람의 약속에 모든 것을 기댄다.
그러나, 그럼에도 유진은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맹세합니다, 폐하.”
다음 순간, 루이가 독을 삼켰다.
-꿀꺽!
모든 독은 사람을 고통 속에서 죽게 만든다.
편안히 죽이는 독 따위는 없다.
부들부들 떨며 거품을 물고, 땅 위에 쓰러져 죽어가는 왕을 내버려둔 채, 유진은 밖으로 나섰다.
유진의 뒤를 말없이 따르던 이폴리트가 문득 눈을 깜박였다.
“유진?”
탕플탑, 벽에 기댄 채 유진이 온몸을 떨고 있었다.
“이러고 싶지······, 않았어!”
이 시대, 프랑스에, 조세핀의 아들로 태어난 후 유진은 운 적이 없다.
원래 도박사는 고난을 겪으면, 우는 대신 다른 도박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 순간 유진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살리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결국 실패했다.
만약 조금 더 유진이 철저했다면, 목숨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순간, 비명 같은 소리가 안에서 울려 퍼졌다.
“큰일이다! 폐하가, 돌아가셨다!”
이폴리트가 유진을 잡았다.
“가야 해.”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섰다.
아직 승부는 끝난 게 아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리 테레즈.
두 마리를 살리기 위해 대결해야 한다.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국민공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