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22)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21화(22/547)
(21) 1793년, 혁명 프랑스는 전쟁에 직면했다
서기 1793년 1월, 코르시카의 바람은 아직 차다.
“에취!”
추운 겨울 섬바람에 재채기를 하는 청년이 있었다.
삐쩍 말랐지만, 눈빛 하나는 매섭다.
살이 좀 오르면 미남 소리를 들을 청년이 코를 훌쩍이며 매만졌다.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본래 프랑스 군대 중위지만, 지금은 장기 휴가를 쓰고 코르시카에 온 상태다.
왜?
코르시카에 혁명을 전파한다는 명목으로, 실은 코르시카 독립을 꾀하기 위해서다.
물론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코르시카의 독립지도자가 오히려 나폴레옹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때 섬 해안가로 누군가 달려와 외쳤다.
“형!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조세프 형님이 찾아!”
나폴레옹만큼은 아니지만, 꽤 잘생긴 청년이다.
그러나 낯을 찌푸리고 있는 게, 세상에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소년이라기엔 나이가 많고, 아직 어른이기엔 모자란 18세 청년.
후일 원역사에서 나폴레옹의 조력자이자 가장 강한 반대자.
보나파르트 일가의 셋째 아들, 뤼시앵 보나파르트다.
나폴레옹이 흘깃 뤼시앵을 보다 콧방귀를 뀌었다.
“날? 왜. 어차피 파스칼레 파올리 선생이 날 코르시카 의회에서 해임한다고 하던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
뤼시앵이 나폴레옹을 향해 외쳤다.
“왕이 자결했다고! 파리에서 이제야 소식이 왔어!”
이번에는 냉소적이던 나폴레옹도 놀랐다.
“무슨 말이야, 그게? 설마 루이 왕을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맞아. 10월에 자결했대! 의회가 숨겼다가 이 섬에는 이제서야 소식이 온 거지! 그간 [발미] 전투와 벨기에 전역 때문에 덮였던 거 같아.”
“맙소사! 루이가 그 정도의 용기를 가진 남자였나?”
물론 루이 16세의 자결은 정확히는 9월에 있었던 사건이다.
그러나 죽음 직후, 의회는 그 사실을 숨겼다.
왜냐면 루이 왕의 죽음을 전후해 이른바 [혁명전쟁]이 시작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혁명이 일어난 프랑스를 둘러싸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과 전쟁이 벌어졌다.
바로 프랑스의 동북 경계선, 벨기에 지역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왕의 죽음을 숨길 수는 없었고, 결국 10월에 폭로가 일어났다.
파리는 그야말로 뒤집어진 상태다.
꽤 멀고 요새는 영국 함대 때문에 봉쇄된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가 소식이 늦었을 뿐.
나폴레옹은 아침에 면도한 턱을 쓰다듬다 피식 웃었다.
“이거 재미있게 됐군.”
“뭐? 형, 물론 나도 공화파지만 왕이 죽었는데 재미있다니? 무슨 소리야?”
“자결했잖아. 사형이 아니라. 그게 재미있는 상황이 되는 거야.”
아직, 코르시카로 오기 전, 프랑스를 떠올리며 나폴레옹이 눈을 번뜩였다.
“국민의회, 아니 이젠 국민공회인가? 어쨌든 국민공회가 왕을 원래 계획대로 처형했다고 생각해봐. 어떻게 되었겠어?”
“어, 그건. 왕을 죽였으니까, 전쟁이 벌어지겠지?”
“전쟁은 원래도 벌어져! 내전도 이미 예정되어 있어! 문제는 다른 거야.”
전쟁은 불가피하다.
왕실의 처형도, 이에 따른 반발로 일어날 내전도, 수많은 혼란도 예정되어 있다.
남들과 다른 [혜안]을 타고난 남자, 나폴레옹은 그건 예측했다.
그러나 왕의 자결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사람들이 왕에 대해 증오가 아니라 연민을 품게 돼.”
아마도 국민공회는 지금쯤 왕비를 죽이려 들 것이다.
왜냐면 왕비라도 죽여야 국민공회가 권위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국민의 지지는 들끓지 않을 게 뻔하다.
왕이 처형당하지 않고, 자결했기 때문이다.
뤼시앵은 미처 이해하지 못해 눈을 깜박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모든 사단은 왕이 무능해서 벌어진 일인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까? 사실 프랑스인은, 아니 우리 코르시카인조차 왕이 그냥 폭군이라고 생각해.”
“그 치가 폭군이 될 능력이나 있으면 다행이지!”
빈정거리는 뤼시앵을 보며 나폴레옹이 낄낄 웃다, 설명했다.
“그래. 그런데 그 폭군이 자결했어. 처형당한 게 아니라. 이렇게 되면 프랑스 인들은 역사적으로 반대로 생각하게 돼.”
“뭐?”
“앙리 4세.”
바람둥이로 유명했던 루이 왕의 조상을 나폴레옹이 입에 담았다.
“생전에 정말 인기 없던 왕이었지. 그렇지만 암살당하자, 여론이 반전됐어.”
앙리 4세, 위그노 전쟁을 끝냈던 프랑스의 명군이다.
하지만 생전에는 신교도 출신인 것도 있어서,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이던 프랑스 인들에게 경원시 당했다.
그런데 정작 가톨릭 광신도에게 앙리 왕이 죽자 여론이 반전되었다.
억울하게 죽은 명군으로 칭송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또한 이게 프랑스인들의 태도다.
루이 왕은 다를까?
똑같다.
“이게 왕의 의지든, 혹은 누군가의 기획이든, 정국을 뒤집어놓을 거야.”
놀랍게도 나폴레옹은 꿰뚫어 보았다.
누군가 이 사건을 [기획]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물론 그게 누군지는 이 섬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여기까지 혜안을 자랑하던 나폴레옹이 혀를 찼다.
“뭐, 우리는 당장 사르데냐를 정복할지, 파올리 선생에게 쫓겨날지가 중요한 거지.”
“응, 그렇지. 일단 코르시카부터 해방시키고 봐야지!”
“지금 파리는 격동하고 있을 텐데 말이지. 참.”
애석하게도 나폴레옹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코르시카의 독립 운동가지만, [친영파]인 파올리 눈 밖에 난 탓이다.
정작 나폴레옹은 파올리 추종자였다.
그러나 파올리는 프랑스 사관학교를 나온 나폴레옹을 친프랑스파로 낙인찍었다.
이를테면 조선의 독립영웅이 자신을 추종하는 청년을 친일파로 몬 상황이다.
덕분에 나폴레옹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궁지에 몰린 상태다.
공적을 입증하기 위해 코르시카 옆, 사르데냐 섬을 정복하거나 혹은 코르시카를 탈주하거나.
낯을 찡그리던 나폴레옹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미녀는 파리로 잘 갔으려나?”
“예?”
“아, 꽤 건방진 꼬마를 아들로 둔 유부녀 있어.”
예전, 마르세유에서 보았던 조세핀과 유진을 떠올리다 나폴레옹이 피식 웃었다.
“그 꼬마도 파리에 잘 있을지 모르겠군. 아, 이런 생각나는 것도 이 섬에는 미녀 하나 없어서야!”
1793년 1월.
아직, 나폴레옹이 비상할 시간은 오지 않은 때다.
***
파리도 여전히 춥다.
“왕비를 죽여야 합니다.”
이곳에도 눈빛이 예리하고, 깡마른 청년이 있다.
로베스피에르의 저택은 그리 크지 않다.
그렇기에 밀담을 나누기에는 오히려 적합한 장소다.
이 장소에서 실로 무시무시한 얘기를 꺼내는 청년의 이름은 생 쥐스트라고 한다.
후세 [공포정치의 대천사]로 기록에 남은 사람이다.
아직 단두대에 올린 귀족들이 적은 시대임에도, 생 쥐스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으스스했다.
모두 죽음에 대한 얘기다.
“국왕이 자살했습니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여기에 영국까지 우리 프랑스에 대해 선전포고를 이미 했습니다. 발미에서 싸웠고, 벨기에 국경은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마, 마지막은 벨기에의 혁명 동지들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오?”
“지롱드 파벌의 발악에 가깝죠, 데물랭. 우리 산악파를 제압하고 의회를 장악하기 위해서 선수를 친 거니까.”
카미유 데물랭의 반문에 차갑게 대꾸하며 생 쥐스트가 눈을 번뜩였다.
“이대로 가면 프랑스는 망합니다. 혁명은 실패하고, 우리 모두 목이 잘릴 겁니다. 귀족들처럼.”
1793년 1월 현재, 프랑스는 전쟁 위기에 처해 있었다.
본래 원역사에서도 이 시기 프랑스는 전쟁에 돌입한다.
바로 벨기에 전역이 원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래 벨기에 지역은 이 시대에는 오스트리아의 영토다.
그런데 벨기에 영역에 포함된 리에주 공국에서 ‘독립 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에 격동된 시민들이 오스트리아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당연히 오스트리아의 진압군이 이들을 진압했고, 시민들은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라파예트, 그리고 뒤무리에를 출격시켰다.
두 장군의 진격 하에 벨기에 해방은 1792년 5월 성공했다.
하지만 1792년 8월, 이 벨기에를 다시 제압하기 위해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진격해왔다.
위기의 상황, 국왕을 죽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왕이 자결해 버린 것이다.
“작년 그때, 발미에서 라파예트가 이기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죽었겠죠. 하필, 라파예트가 이긴 게 문제지만.”
생 쥐스트가 이를 갈며 내뱉듯 말했다.
발미 전투.
본래 원역사에서는 뒤무리에가 승리로 획득하는 전투다.
허나 유진의 개입으로 라파예트가 기사회생한 덕에, 라파예트가 이 전투를 지휘했다.
프랑스 북방국경군 3만 6천과 프로이센 군 3만 4천이 싸운 전투.
전술적으로는 별 것 없는 전투지만, 혁명정부에게는 첫 승리였다.
혁명이 기사회생한 것이다.
그러나 덕분에 강경파 산악파는 곤란해졌다.
왜?
한 번 이겼을 뿐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정작 승리는 입헌군주파인 라파예트가 획득했고, 경제는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영국도 혁명 프랑스에 적대감을 표시하는 와중이다.
어쨌든 알고 보면 영국도 왕정 국가이긴 하다.
그런데 왕을 죽게 만들었으니 프랑스 국민공회 정부가 좋아 보일 리 없다.
루이 왕의 도주 이후, 혁명정부 주도권을 잡은 산악파가 궁지에 몰린 이유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책으로, 생 쥐스트는 주장한 것이다.
왕비의 죽음을.
그러나 카미유 데물랭과 오귀스트 로베스피에르, 당통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죽이자?”
“국왕과 달리, 왕비는 죽이자는 건 찬반 논란이 있어요. 쉽지 않습니다.”
“맞소. 왕이 예정대로 사형당했다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자결하는 바람에 일이 복잡하게 꼬였소.”
이거야말로 유진이 개입한 탓에 바뀐 상황이기도 하다.
원래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바로 현재 시기에 처형 당한다.
도주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진격이었다.
발미전투로 승리하기 전까지 프랑스 북부군은 작은 패배를 수 차례 겪었다.
이로 인해 파리 인근까지 프로이센 군이 진격하자, 파리 시민들이 공포에 질렸다.
그래서 왕을 죽이자는 여론이 높아졌고, 결국 국왕은 죽는다.
이게 원역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정작 루이 왕은 먼저 죽어버렸다.
그것도 자결의 형태로.
여기에 발미에서 승리까지 해버리니, 시민들에게 여유가 조금 생겼다.
나폴레옹이 남쪽 섬에서 간파했듯이, 파리에서는 동정 여론이 들끓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왕을 다시 세우자는 정도는 아니지만, 남은 왕족 처단은 곤란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죽이자는 여론도 당연히 높다.
왕정폐지와 공화정 수립을 주도해온 산악파라도, 주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생 쥐스트는 강경하게 외쳤다.
“그러니까, 왕비라도 죽여야죠!”
특히 갑자기 온건파인양 돌변한 당통을 향해 생 쥐스트가 포효했다.
“여러분, 이대로 가면 왕정이 복구될 겁니다!”
“생 쥐스트, 말이 심하군. 이미 혁명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야. 왕도 어쨌든 죽었고.”
“무슈 당통, 아직 왕자는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당통은 한때 혁명 시위주도자답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그 왕자는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왕이 유언장으로 선언했잖나. 그건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장이었어.”
국왕, 루이 16세의 유언장.
마지막 순간 서명을 남긴 문서다.
이 문서는 루이 16세가 자결한 현장에서 발견되었기에, 유언장임이 명백했다.
그런데 이 문서에 루이 16세가 루이 샤를이 친자가 아니라 선언한 것이다.
굳이 왕정이 계속된다 해도, 루이 샤를은 치명적인 결함이 생긴 상태다.
친부가 친자가 아님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왕족은 왕자 하나가 아니다.
“아니, 왕자가 아니라도 왕제들은 해외에 있어요! 언제든 왕위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자들을 죽여야지, 왜 오스트리아 여자를 죽여?”
“웃기는군요. 지금 왕비를 옹호하는 겁니까?”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26살짜리 청년, 생 쥐스트에게 결국 당통이 화를 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여론이 안 좋다고! 여론이! 지금 입헌군주파 놈들이 오히려 동정표를 얻는 판이야. 라파예트가 언제 다시 복귀할지 몰라!”
발미 전투 직후, 국민공회는 긴급히 라파예트를 면직시켰다.
당연한 일이다.
미국 독립전쟁 영웅에, 마르스 학살을 막은 민중의 수호자에, 이제 발미 전투의 영웅까지 되었다.
지휘권을 박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라파예트의 영향력은 엄존한다.
다시 정계로 돌아온다면 입헌군주파의 중심이 될 것이다.
여기에 왕비의 죽음으로, 동정표가 몰린다면 막강한 세력이 될지도 모른다.
당통이 우려하는 바가 그거였다.
그때다.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입을 열었다.
“왕비를 죽이면, 무슨 이점이 있지? 생 쥐스트?”
생 쥐스트가 반색하며 답했다.
“혁명을 이익으로 하는 건 아닙니다, 무슈 로베스피에르.”
“그래도 사람들을 설득할 이유는 필요하네. 자네 말대로 곧 전쟁이야. 그것도 우리 프랑스가 선제 공격을 한 전쟁이지. 적들은 막강하고 경제는 더 안 좋아지고 있어. 이 상황을 뒤집을 뭔가가 있나?”
“있죠. 승리입니다. 그것도 혁명파 장군들의 승리!”
생 쥐스트는 평소 생각하던 바를 열렬히 외쳤다.
“지롱드 파벌 장교들 말고, 우리 자코뱅의 대의를 따르는 장교들을 대거 승진시켜야 해요. 그리고, 그 승리를 우리 자코뱅 산악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요컨대 군사적 재능이나 실력, 경험보다 ‘혁명정신’을 따르는 장교가 필요하다는 거다.
이를테면 라파예트 같은 입헌군주파가 아니라, 공화파 장교다.
어처구니 없는 얘기지만 놀랍게도 원역사에서 이런 생 쥐스트의 생각은 성공한다.
왜냐하면, 나폴레옹을 비롯해 평민 장교 중에서 전쟁영웅들이 탄생한 탓이다.
다만 그 성공이 생 쥐스트의 몰락 후에 분명해질 뿐이다.
어쨌든 생 쥐스트의 말은 산악파 의원들에게는 그럴 듯하게 들렸다.
지금 문제는 발미 전투의 영웅이 라파예트라는 거니까.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여전히 냉정하게 되물었다.
“그럼, 왕비의 죽음은 무슨 상관이 있나?”
생 쥐스트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대꾸했다.
“군에서 구 왕당파와 입헌군주파를 몰아내는 신호탄이 되는 겁니다!”
왕비는 하나의 상징이다.
구체제 왕정체제를 대표하는 상징.
상징을 죽여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모두가 깨닫게 만든다.
이게 생 쥐스트의 생각이다.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봐. 대신 재판은 에베르에게 맡기게.”
“무슈 로베스피에르! 이런 영광된 일은 제게!”
“안돼. 무슨 변수가 있을지 아직 모르네.”
이를 악물다, 젊은 생 쥐스트가 격분해 뛰쳐 나갔다.
-쾅!
그 모습을 보다, 당통이 쓴웃음을 머금은 채 역시 자리를 떴다.
“그럼, 난 이만. 후폭풍은 자네들이 잘 감당하리라 믿네.”
왕비 사형에 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다.
그 뒷모습을 로베스피에르는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 보았다.
언젠가 저 비겁함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문득 착실한 실무자 동생, 오귀스트 로베스피에르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당통도 발 빼고 싶은 모양입니다, 형님. 한데, 생 쥐스트가 너무 성급한 거 아닐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오귀스트, 군에서 혁명 동지가 될 만한 친구들을 찾아라. 승진 추천을 해야 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아, 오슈는 어떨까요? 형님과 교분이 있고, 위병대 장교로 아는데요.”
로베스피에르는 미간을 좁히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불러. 왕비의 재판이 끝나는 대로.”
오슈라면, 군사적 재능은 어쨌든 간에 용기는 믿을 수 있다.
당장 신대륙까지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다녀온 남자가 아닌가?
게다가 혁명에 공감하는 바도, 매우 크다.
문득 로베스피에르의 시선이 창 밖을 향했다.
“눈이 내리겠군.”
어느새 한 송이씩 눈이 겨울의 파리로 내리고 있었다.
***
거리는 진창이지만, 파리의 하늘은 새하얗다.
“왕비를 죽여야 해!”
“무슨 소리야? 불쌍한 여자인데. 꼭 그래야 하나?”
“오스트리아 여자가 뭐가 불쌍해! 지금 전쟁이 일어난단 얘기 못 들었어? 다 그 여자 때문이야!”
눈이 내리는 가운데, 사람들은 눈을 즐기거나 치우는 대신 논쟁을 벌였다.
만약 아예 기아 상태라면, 이럴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반면 풍요로운 시기라면 당연히 흉흉한 얘기에 열을 올릴 이유가 없다.
가난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닌 빈곤.
지금 파리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격분한 이유다.
구체제 상징, 왕실에 대해서.
물론 동정론도 가끔 떠돌았다.
“아니, 그래도 그건 왕이 자살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 소리를 듣다, 한 소년이 욕설을 뱉으며 돌아섰다.
“빌어먹을.”
소년의 이름은 아르망 가네.
한때는 베르사유 궁전이 집이었던 소년이다.
그러나 이제는 허름한 이곳 파리 교외가 아르망의 삶터였다.
그때다.
“왜 그러지? 넌 왕비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나, 아르망?”
“누가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엉?”
“오랜만이군.”
아르망은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화를 벌컥 내려다 깜짝 놀랐다.
의외의 얼굴이 그곳에 서 있었다.
유진 드 보아르네, 공주의 시동이었던 소년이다.
혁명이 벌어진 후에는 본 적이 없는데, 어느새 꽤 컸다.
하긴 4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12살 소년, 유진은 이폴리트와 함께 말을 탄 채 아르망에게 다가왔다.
“그럼, 왕비를 살리고 싶나, 아르망?”
아르망은 눈을 깜박였다.
애초에 이 아르망이라는 이름부터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선사한 것이다.
본래 왕실의 마차에 치여 죽을 뻔 했던 아르망이다.
왕비가 구해준 후, 멋대로 양자로 지목해서, 왕실에서 키웠다.
그때부터 인생이 꼬였다고 아르망은 늘 생각해 왔다.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이 너무나 싫었다.
이 싫은 상황을 인생에 강제로 부여한 왕비가 원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던 아르망이 내뱉었다.
“왕비는 말야. 제멋대로야.”
그렇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궁전을 떠났다.
모두가 도망치는 와중이었으니,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왕실이 망하는 꼴을 볼 때마다, 쾌감마저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아르망은 이를 갈았다.
“그저 사람을 애완견 취급하며, 먹이를 주듯 날 길렀지.”
“왕족들이 평민을 보는 시선이 좀 그런 구석이 있지.”
“그렇지만! 그래도, 왕비가 날 그 날 거두지 않았다면!”
그럼에도, 항상 자신을 볼 때마다 미소짓던 왕비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난 이미 저 거리에서 죽었어. 복수는 하고 싶지만, 비참하게 단두대에 날아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진짜가 아니기에 더욱 원망스러웠던 ‘어머니’다.
할 수만 있다면 살리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아르망은 실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다.
그때 유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진짜 복수는 왕비가 죽는 게 아니라, 비참해지는 꼴을 구경하는 거지.”
“뭐?”
“살리고 싶다면, 도와줘야 할 게 있어.”
가볍게 말을 몰아 아르망에게 다가간 유진이 낮게 말했다.
“지금, 루이 전 왕세자가 격리되어 있는 곳 알지?”
“아, 알지. 아, 앙투안 시몽이라고, 우리 옆집에 사는 구두 수선공이지.”
“그래. 딱 좋은 조건이더라구.”
앙투안 시몽, 파리에 있는 흔해빠진 주정뱅이 구두 수선공.
이 이름이 역사에 남은 이유는 하나다.
바로 루이 샤를, 왕세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공회는 왕이 죽은 직후, 왕비를 감옥에 가두었다.
또한 왕자와 공주도 각각 연금 상태로 만들었다.
그 중 왕자를 맡은 자가 바로 앙투안 시몽이다.
마침 아르망의 낡은 집 바로 옆집이기도 했다.
아르망이 눈을 깜박였다.
“그게 왜 좋은 조건이란 거야?”
“탈주.”
“뭐라고?”
입을 쩍 벌린 아르망에게 유진이 안심하라는 듯 옆의 이폴리트를 가리켰다.
“걱정하지마. 왕세자를 데리고 탈출하라는 게 아니야. 딱 하루, 데리고 나오면 돼. 너 혼자 하라는 것도 아니지. 여기 이폴리트가 도와줄 거야.”
“여, 우리 보아르네 보안팀에서 잘 도와줄 거라고?”
“아니, 잠깐! 대체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하라는 거야? 게다가 언제?”
이폴리트의 너스레에도, 아르망은 기가 막혀 소리쳤다.
단 하루라도 왕세자를 멋대로 데리고 나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러야 한다는 말인가?
유진은 아주 간명히 답했다.
“왕비의 재판 당일, 재판장으로, 왕세자를 데려와.”
곧,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형을 정할 재판이 열린다.
본래는 이 재판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고고한 자세를 유지하다 처형당한다.
그렇지만 유진은 그렇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 살린다.
유진의 눈이 빛났다.
“그날, 왕세자는 더 이상 왕세자가 아니고, 왕비는 더 이상 왕비가 아니게 될 거다.”
프랑스가 전쟁에 직면한 시간.
유진도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왕비를, 혹은 공주를 살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