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279)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279화(280/547)
(279) 북방의 중립국은 유진을 피한다
세상을 재미로 사는 남자가 여기, 코펜하겐에 있다.
“으흥, 내가 이래뵈도 그레이트 브리튼의 제독이라고. 지금은 백수지만.”
무려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태어난 남자, 시드니 스미스는 커피를 홀짝이며 거드름을 피웠다.
사실 알고 보면 부친이 왕실 근위대장 출신이기 때문이다.
허나 아직도 정작 시드니는 영국 작위는 하나도 없다.
가진 작위라곤 스웨덴 국왕이 하사한 기사작위 하나 뿐이라, 가슴에 매달린 것도 스웨덴 훈장이다.
런던에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작위지만, 이곳 코펜하겐은 다르다.
경쟁국 스웨덴에서 인정해준 군인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코펜하겐 항구 카페에 앉아 있던 여자들이 호들갑을 떨며 시드니를 둘러쌌다.
“어머나, 제독님. 그럼, 배도 몰아보셨어요?”
“핫핫! 소싯적엔 그랬다오. 원래 제독은 명령하는 사람이지, 직접 돛줄을 잡는 사람은 아니지. 하지만, 나도 어릴 적엔 일개 선원의 몸. 항해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달렸지!”
“어디까지 가보셨나요, 제독님?”
그러자 시드니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바다 건너편을 짐짓 보는 척 했다.
“글쎄, 내가 이 발트해 앞바다에서 맹활약한 건 들어보셨나? 실은 소년 시절에 저 멀리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까지 갔다 왔다오!”
정말 놀라운 것은 꼭 허풍선이의 거짓말처럼 들리는 이 말이 전부 진짜라는 거다.
시드니는 10대의 나이로 선원이 되어,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다.
20대에는 휴가 기간에 러시아와 스웨덴 전쟁에 참전해,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는 공훈을 세웠다.
러시아측 함대에 영국 장교들이 참전한 탓에, 자국 장교들을 다수 죽인 것은 덤이다.
이후 동지중해와 카리브해를 오가며 때로 패주하고, 때로 승전을 거두며 살아온 게 시드니의 36세 인생이다.
물론 중간에 프랑스 감옥에 갇혔다가 탈주하는 사건도 있었다.
어째 늘어놓는 모험담이 오히려 초라할 정도랄까.
애석하게도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미녀는 썩 믿지는 않는 얼굴로 웃을 뿐이다.
“아메리카라,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영영 못 가보겠지만. 어떤가요?”
“내가 있을 때는 한창 전쟁 중이었다오. 아메리카인들이 독립하겠다고 난리 법석일 때, 난 독립을 압제하러 갔었지. 악당이었소, 하하!”
“어머나, 나쁜 분이셨군요. 그래서 정의가 승리했나요?”
그러자 다른 여자들보다 돋보이는 미모를 지닌 귀부인을 향해, 시드니가 눈을 찡긋거렸다.
“물론, 항상 정의는 승리하지요. 루이즈 아우구스타 전하. 후후.”
미국이 정의였다는 식의 비꼬는 말이다.
런던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당장 해군성에 소환될 소리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시드니가 붙였던 호칭이다.
미녀, 루이즈는 키득 웃을 뿐, 별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이들도 잠시, 예를 표했지만 다시 웃으며 시드니를 볼 뿐이었다.
이곳 코펜하겐, 혹은 덴마크인들의 개인주의적인 면을 보여주는 풍모랄까.
그때 루이즈가 시드니를 향해 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혹시 제독께서 패배하고 돌아오신 이집트도 그런가요?”
“그건 좀 예외요. 내가 패배한 게 아니라, 멍청한 넬슨이 죽어버린 탓이니.”
“다시 싸우면 승리할 자신은 있으신가 봐요?”
시드니는 가볍게 코끝을 긁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야 바다 위에서는 자신 있지요! 단지, 내 적수는 항상 육지에서 싸우는 터라. 하핫!”
“악명이 여기까지 들릴 정도긴 하더군요. 모든 왕들의 적, 혁명군의 마탄.”
“얼마 전에는 황제도 끌어내렸지요. 오, 이런. 생각해보니 부군의 주군 아니십니까?”
루이즈는 새침하게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모로 꼬았다.
“우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님은 사실상 ‘단마르크’ 국왕에게 충성한답니다. 게다가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었잖아요?”
“어째 남 얘기하듯 말씀하시는군요.”
“실제로 따로 산 지 꽤 되었으니까 그렇겠죠?”
커피잔을 놓으며 고혹적인 미소를 띤 루이즈가 속삭였다.
“그러니, 이렇게 유부녀가 제독님을 만나서 노닥거릴 수도 있는 거구요.”
시드니는 커다란 코를 벌름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오늘밤, 제게 시간을 주신다면, 또 다시 멋진 밤을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영국 제독과 덴마크 왕족이 서로 불꽃 튀는 눈빛을 보낸다.
점잖은 덴마크 카페 고객들은 고개를 돌릴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만약 왕궁 대신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대경질색했을 것이다.
루이즈의 신분은 고귀하며, 그 핏줄은 자칫 덴마크 왕실 승계권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덴마크 남쪽의 중요한 영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국 후계자가 될 수 있다.
볼에 홍조를 띤 채 시드니를 응시하던 루이즈가 살짝, 시드니의 뺨을 밀어냈다.
“흐응, 그건 좀 미뤄야 할 것 같네요. 제독님. 저기, 배가 한 척 들어오는 게 보이네요?”
“이 코펜하겐 항구에 배는 늘 들어오는 거 아니오? 어디더라, ‘노르웨이’였나? 그곳에서 목재나 금속이 잔뜩 들어오던데.”
“호호호! 제법 상세히 아시네요. 하지만 저 배는 특별한 것 같아요.”
루이즈는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머금었다.
“칼레에서 오는 배거든요. 아마, 기다리시던 배 같은데.”
시드니가 시선을 항구로 돌렸다.
거대한 전열함 한 척이 덴마크 측 함선의 인도를 받으며 입항하는 게 보인다.
선루 위에 펄럭이는 깃발은 도드라진 삼색기다.
누구라도 어느 나라의 배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을 보다, 시드니가 씩 웃었다.
“드디어, 왔군.”
기다리던 손님이 마침내 코펜하겐에 들른 모양이다.
***
전열함, 호루스의 선상에서 내려서지도 못한 채 당통이 뱃전에 누워 부르짖었다.
“아이고, 죽겠군. 북해는 왜 이리 험난하고 파도가 높은가!”
어쩐지 북해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지만, 전열함은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또한 꼭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도, 국가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외교적 목적으로도 이용하곤 한다.
이를테면 군사 동맹을 추진하기 위해 가는 길일 때도 그렇다.
유진이 피식 웃으며 배에서 내리다 대꾸했다.
“원래 바다는 다 그렇죠. 이폴리트, 넌 의외로 견딜만한가 보지?”
“기분 탓인가? 어째 지중해보다 멀미가 덜한데. 대서양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고.”
“비람 자체는 훨씬 일정하긴 하더군. 맞나, 니콜라스?”
그러나 선장 니콜라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날씨가 좋을 때 오셔서 그렇습니다, 파트롱. 날씨가 안 좋을 때는 해일과 폭풍이 엄청나지요.”
이른바 잔 파도는 지중해도 극심하다.
그러나 북해는 예로부터 험한 바다로 이름이 높고, 심지어 원역사 현대에도 가끔 조난사고가 발생할 정도다.
다행히 유진이 기동할 때는 별 일이 없었지만, 돌아올 때도 그러리란 법은 없다.
항구에 발을 디디던 이폴리트가 불현듯 생각난 문제를 물었다.
“어이, 우리 돌아갈 때는 겨울 아니야?”
“러시아의 차르가 무사히 돌려보내 준다면 그렇지.”
“제발 육로로 돌아가자고. 죽고 싶지는 않아.”
그때 유쾌한 영어가 갑자기 들려왔다.
“이런, 바다에서 날 이긴 유일한 남자들이 파도 따위를 무서워하다니! 내가 낯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군!”
유진은 시선을 돌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신지?”
“이럴 수가! 아무리 승자는 모든 영예를 갖고, 패자는 바닥에 처박히는 게 세상 이치라지만! 어떻게 목숨을 걸고 맞싸운 상대방도 몰라 보나!”
“저와 싸우신 적이 있다구요? 영국인이신 거 같은데.”
난생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이 아는 영국인이라곤, 따지고 보면 베어링 정도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외국인을 만났지만, 의외로 영국인을 직접 본 적은 거의 없다.
순간, 남자의 뒤에서 백금발의 미녀가 걸어오다 킥킥 웃었다.
“쿡쿡, 너무 놀리지 말아요. 미스터 스미스.”
미녀는 일순, 유진의 뒤에서 따라 내리던 마리 테레즈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마리 테레즈 공주.”
“절 아시나요, 마드모아젤?”
“어머나, 어리게 봐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결혼한 지 오래됐답니다? 난 루이즈 아우구스타라고 해요. 공주님의 얼굴은 옛날, 초상화에서 봤어요.”
그 순간, 마리 테레즈가 놀라 물었다.
“혹시, 홀슈타인 공작부인이신가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
후세 원역사에서는 프로이센이 덴마크와 싸워 빼앗는 영토로 유명한 땅이다.
중세 시절부터 덴마크 왕이 공작위를 차지하는 형태로 지배해 왔다.
이런 중세식 지배 형태는 19세기 초반에도 유럽에 많은데, 이를테면 노르웨이 땅은 덴마크 왕의 개인 영지로 덴마크에 귀속된 상태다.
그렇지만, 1800년 현재 홀슈타인 공작부인이 갖는 함의는 따로 있다.
루이즈 아우구스타 덴 올덴부르크.
바로 덴마크의 ‘광인왕’ 크리스티안 7세의 딸이자, 섭정 왕세자 프레데리크의 하나뿐인 동생이다.
북유럽의 미녀로 유명한 덴마크의 공주, 루이즈 아우구스타가 화사하게 웃으며 마리를 맞이했다.
“그래요. 혁명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세상에, 어떻게 여기까지. 수행원도 없이 오셨어요?”
“수행원이라면, 여기 유쾌한 ‘기사’님이 있잖아요?”
그러자 시드니가 거드름을 피우며 끼어들었다.
“우후후! 그래, 이 몸은 무려 스웨덴 국왕께서 인정해주신 기사님이지. 내가 소싯적에 러시아 함대를 깡그리 부쉈다는 거 혹시 아시나? 뭐, 고작 2번째 만나는 사이니 모를 수도 있지만.”
유진은 시드니를 보다 쓴웃음을 머금었다.
세상에는 꼭 정말 대단한데도 본인이 그걸 떠벌려서 저평가를 받는 이들이 있다.
아마 원역사에서 넬슨보다 늘 낮은 평가를 받은 시드니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숫자는 틀렸다.
“그렇군요. 이번이 알고 보면 세 번째로 보는 거겠네요.”
“응? 세 번째? 우리 시리아 말고 또 본 적 있어?”
“툴롱에서.”
유진은 시드니를 응시하며 입가를 틀어 웃었다.
“당신이 불태우려던 지중해 함대를 내가 살렸죠.”
반대로 시드니는 눈을 크게 뜨다 유쾌하게 유진의 어깨를 쳤다.
“오늘 할 얘기가 많겠는데? 푸하핫!”
오랫동안 서로 전장에서 맞서온 유진과 시드니가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
코펜하겐은 덴마크의 진정한 중심부, 셀렌 섬 동쪽에 위치한 수도다.
“근데 왜 우리가 여기 온 거야?”
이폴리트가 고개를 갸웃거릴 찰나, 앞에서 인도하듯 걷던 루이즈가 깔깔 웃었다.
“그야, 덴마크는 프랑스의 우호국가니까 그렇겠죠?”
“혁명 프랑스에 동맹이 있단 얘기는 못 들어봤습니다만, 마담.”
“호호, 그렇게 불리는 것도 신선하네요. 무슈 샤를이라고 했나요? 우리 덴마크는 중립국이에요. 하지만 봉쇄된 프랑스의 유일한 해양 출구기도 했죠? 전쟁 내내.”
그러자 수행원으로 따르던 니콜라스 쉬르쿠프가 덧붙였다.
“북해에서 러시아로 갈 때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이 지배하는 해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덴마크는 불가피하지요.”
“그럼 스웨덴으로 바로 가도 되는 거 아냐? 쉬르쿠프?”
“스웨덴 왕실은 프랑스 혁명에 적대적입니다. 저야 정치는 잘 모릅니다만.”
루이즈 공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멈췄다.
“그래요. 페르젠 백작이 곧 수상이 될 거란 얘기도 있죠?”
순간, 마리가 흠칫 놀랐따.
페르젠, 마리 앙투아네트의 애인이자 전임 프랑스 주재 스웨덴 대사.
스웨덴 왕국에서는 국왕에 버금가는 명문가의 후계자기도 하다.
여전히 파리에 올 때마다 앙투아네트를 보는 모양인데, 자국에서는 벌써 권력의 정점으로 달리는 모양이다.
문득 마리의 시선이 유진을 향했다.
혹시 스웨덴을 피한 이유가 마리 때문일까?
그때 루이즈 공주의 말이 들려왔다.
“자, 이곳이 여러분이 지내실 숙소랍니다. 아말리안보로, 우리 왕국이 자랑하는 왕실 별궁이죠.”
일순, 모든 일행이 감탄했다.
“와!”
한때 베르사유 궁전에 살았던 마리에게는 어떤 건물이든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곳, 아말리안보로도 마찬가지다.
허나 운하가 둘러싼 궁전의 풍경은 사람을 경탄시킬만큼, 아름다웠다.
벌써 눈이 내려 새하얗게 물든 궁전이 도드라진다.
루이즈가 마리의 곁에 선 채 생긋 웃으며 물었다.
“아름답죠?”
“멋지네요.”
“소략하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그래도 즐겁게 지내시다 가길 바래요.”
그 순간, 유진이 루이즈를 보며 말했다.
“공식 일정이 없다는 뜻이군요, 공작 부인.”
모든 외교사절이 그렇듯, 유진도 배 하나만 끌고 온 게 아니다.
사전에 육로로 교섭단이 덴마크로 파견되었다.
덴마크의 왕실도 프랑스 통령의 아들과 전직 공주, 그리고 전직 총재가 온다는 사실을 통지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중나온 사람은 내각의 외무장관이나, 대귀족이 아니라 이미 출가한 공주다.
덴마크의 미녀, 그러나 유부녀인 공주 루이즈 아우구스타가 여유롭게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도, 영국 눈치는 봐야 하니까요.”
1800년 10월.
북방의 왕국 덴마크의 공주가 유진을 맞이했다.
덴마크는 중립을 지킨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유진의 첫 외교행이 의외의 암초를 만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