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300)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300화(301/547)
(300) 프랑스에 군주제 열풍이 돈다
1801년 10월, 이미 프랑스는 완전한 나폴레옹의 시대다.
“세상에, 갈 때는 금방 다녀올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니? 마리?”
정말 간만에 집에 돌아온 딸을 질책하며, 마리 앙투아네트가 눈을 흘겼다.
엄밀히 말해 마리 테레즈가 프랑스에 돌아온 것은 9월의 일이다.
하지만 그간 보아르네 카르텔의 밀린 일을 마리도 떠맡은 탓에, 여유롭게 집에서 지낼 시간이 적었다.
밤에만 와서 자는 식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이제야 모녀가 마주해 커피를 마실 시간이 난 거였다.
“러시아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만날 사람도 별로 없었고.”
“흥, 그래. 네 동생의 지위나 빼앗는 숙부들 따위, 볼 것 없다.”
“루이의 지위라니, 그런 건 없어요. 어머니.”
살짝 걱정하는 마리를 보며, 앙투아네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없어진 건, 프랑스의 왕위지.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네 동생에게 걸려 있는 생득권은 그것만이 아니야.”
루이 샤를, 곧 마리의 동생이자 루이 16세가 남긴 적자다.
다만 루이 샤를은 현재로서는 왕당파에게도 왕위 후보로 여겨지고 있지 않았다.
예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형 재판 당시, 유진이 일부러 엉뚱한 스캔들을 터뜨려 사형을 막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페르젠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불륜 스캔들이었다.
그때 일을 마리 테레즈는 당연히 또렷이 기억한다.
유진이 전쟁터로 끌려갔던 게 그 때문이었으니까.
앙투아네트는 당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무슨 말이세요, 그게?”
“설마 너도 유진의 거짓말을 믿는 건 아니지? 루이는 네 아버지의 아들이야. 페르젠이 아니라.”
“그야, 저도 알지만. 그걸 지금과 같은 시기에 대놓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반대로 루이 샤를이 살아남은 것도 그 스캔들 덕분이다.
만약에 루이 샤를이 루이 16세의 적자로 공인되었다면 어땠을까?
혁명파 입장에서 반드시 죽여야 하는 상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앙투아네트는 아주 마음 편한 소리만 꺼냈다.
“왜 안 되니? 이제 자코뱅이 아니라 보나파르트파가 권력을 쥐었어. 우리 일가에도 우호적이고, 특히 유진이 있지 않니?”
마리는 무거운 기분에 낯을 흐리며 대꾸했다.
“보나파르트 가문은 저랑 유진이 결혼하는 걸 반대해요. 유진 덕 볼 생각 하지 마세요.”
“그건 나도 반대다, 마리.”
“어머니! 유진은 더 이상 제 시동이 아니에요. 프랑스의 장군이라구요. 저랑 결혼 못 할 이유가, 우리 집안에는 없어요!”
방금 전까지 유진 덕을 보지 말라던 마리가 화를 내자, 앙투아네트는 키득 웃으며 일렀다.
“마리, 나도 유진을 좋아한단다. 그 아이는 너와 날 위해 목숨을 걸었어. 전쟁터까지 나갔지. 운 좋게 영웅이 되었지만, 잘못되었다면 죽을 수 있었던 일이야.”
“그걸 알면서 그러세요?”
“하지만 네가 불행해지는 일은 보고 싶지 않아. 우리 루이도.”
앙투아네트가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이 너와 결혼하게 되면, 넌 자코뱅과 왕당파와 보나파르트 일족 모두의 증오 대상이 될 거야. 난 그런 꼴은 보고 싶지 않구나.”
마리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자코뱅, 왕당파, 보나파르트 가문.
한때 프랑스를 주도했거나, 아직도 막대한 영향력이 있으며, 지금 프랑스를 주도하는 자들.
그 모두가 지금은 유진과 우호적 관계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혁명군의 장군이자, 공주의 기사이며, 보나파르트의 양자일 때다.
자코뱅은 구왕실의 사위가 된 유진을 용서하기 어렵다.
왕당파는 감히 왕실의 [유일]한 공식적 적통을 ‘더럽힌’ 기사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또한, 보나파르트 가문은 구왕실과 결합된 유진을 껄끄러워할 게 뻔하다.
마치 눈앞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에 마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앙투아네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를 꺼낸 탓에, 다시 번쩍 떠버렸지만.
“게다가 루이 앞길도 막혀.”
“대체 아까부터 루이의 지위를 얘기하시는 데, 무슨 말씀이세요? 프랑스 왕위 말고 또 다른 게 있나요?”
“있지. 나바르, 사르데냐, 그리고 어쩌면 에스파냐도.”
눈을 깜박이는 마리를 향해 앙투아네트가 신이 나서 설명했다.
“원래, 네 아버지의 왕명이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이었단 거, 아니?”
“그랬어요? 기억이 잘 나진 않네요. 어쨌든 나바르는 없어진 나라 아니에요?”
“프랑스 쪽 영토는 그렇지. 하지만, 에스파냐 나바르는 아직 자치권이 있는 걸로 알아.”
나바르는 프랑스와 에스파냐 접경지대에 있던 왕국이다.
본래 카스티야의 분가가 통치했지만, 14세기에 프랑스 귀족인 상파뉴 가문에 넘어왔다가, 다시 16세기에 프랑스 왕령이 되었다.
그렇지만 앙리 4세 시절, 프랑스 통합 작업을 진행하면서 아예 프랑스와 통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사실 나바르 왕국의 일부, 곧 에스파냐 접경지역은 14세기 당시부터 카스티야에 넘어간 상태였다.
19세기에도 아직 자치의회, 곧 코르테스가 존재하는 자치령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일견 앙투아네트가 과대망상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얘기다.
그러나 고작 20년 전인 1779년만 해도, 아직 바이에른 공령 승계전쟁이 벌어지던 게 유럽이다.
멀쩡한 에스파냐 영토라도 혈통 승계권이 있다면, 여전히 영유를 주장할 수 있는 [클레임]이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사르데냐는 또 어떠니? 그곳의 왕비인 마리 아델라이드 클로틸드는 네 고모야.”
“예? 하지만 거긴 사보이아 가문의 영토잖아요. 본토 영토는 프랑스에 빼앗겼지만.”
“하지만 후계자가 없어. 물론 망명왕의 동생이 있지만, 하기에 따라선 계승권을 주장할 수도 있지.”
1796년, 사르데냐 왕국의 국왕,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는 망명지 사르데냐에서 사망했다.
원역사와 달리, 이탈리아 서북부를 나폴레옹이 프랑스에 합병한 탓에, 사르데냐 왕가는 정말로 사르데냐 섬으로 쫓겨난 상태다.
그런데 뒤를 이은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는 프랑스 왕가와 혼인한 몸이다.
바로 루이 16세의 친동생, 마리 아델라이드 클로틸드가 왕비였다.
문제는 클로틸드 왕비가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거다.
나아가 몸이 비만한 탓에 향후에도 아이를 낳을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왕가의 계승 자체는 사보이아 가문으로 돌아갈 것이고, 원역사에서도 동생인 카를로 펠리체가 승계한다.
그러나 유럽의 왕위 승계는 혼사를 통해 승계권을 주장할 때가 있다.
나아가 사르데냐 왕국의 본토령은 프랑스에 합병된 상태가 아닌가?
프랑스 정부가 주장하기에 따라서는 사르데냐 왕위를 강탈해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모든 것은 당연히 통령 정부가 루이 샤를을 위해 움직여 줄 때 가능하다.
당연히 세상이 앙투아네트 편한대로 돌아갈 리는 없다.
그럼에도 앙투아네트의 발상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에스파냐에서 뭔가를 얻는 거지. 그곳은 본래 루이 14세 폐하 때부터 부르봉 가문이 통치해온 나라니까.”
아연한 기분으로 마리는 모친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 16세가 살아서 국왕이었다 해도 쉽지 않은 계획이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굳이 이런 일을 힘들여 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혹시 유진이 마리와 결혼한 후, 루이 샤를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움직인다면 모를까.
“설마 루이에게 그런 말을 하고 다니시는 건 아니죠?”
“왜 안 되니?”
“어머니! 아직 루이는 어려요! 괜히 잘못 떠들고 다니다간, 죽을 수도 있다구요!”
그러자 앙투아네트가 코웃음을 쳤다.
“그 애도 이제 벌써 16살이야. 자기 입단속 정도는 잘할 거다. 어쨌든, 난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 아이의 권리를, 그리고 네 행복을.”
그때서야 마리는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루이 샤를이 아니라, 앙투아네트라는 사실을.
***
그러나 권력자는 세상을 바꾸는 데 바쁘다.
“국민공교육과 엘리트 교육을 별개로! 이게 나의 계획이오!”
퇼르리 궁전 내각 회의실, 나폴레옹은 일장 연설을 외치는 중이다.
오늘 내각 장관들에게 하달하는 것은 바로 교육 문제다.
대혁명이 시작될 때부터 이 교육 문제는 혁명가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초점을 맞춘 것은 조금 다른 부분이다.
“모든 국민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지! 그게 혁명정신이고!”
“맞습니다. 통령 각하. 제가 본래 혁명 초기에 만든 교육 개혁안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얘기는 다 아는 얘기 아닌가, 탈레랑?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통한 엘리트 양성은 필요하다는 거요. 특히 공학 분야! 새로운 19세기를 이끌 군사과학 엘리트가 반드시 필수지!”
원역사 현대로 따지면 이공계 교육이 나폴레옹의 주 관심사였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학교가 있지? 에콜 폴리테크니크. 그곳을 중심으로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시오.”
학창 시절, 나폴레옹이 가장 잘했던 과목은 알고 보면 수학이다.
심지어 내각에도 당시 수학을 가르쳤던 교관,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를 잠시 두었을 정도다.
행정능력이 부족해 유진이 러시아에 다녀오는 사이, 자른지 오래긴 하지만.
내무장관 뤼시앵이 이번만큼은 조금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통령 각하.”
“자, 다음! 법제 개편은 어떻게 되고 있지?”
“그건 캉바세레스 장관의 지휘하에 진행 중입니다.”
나폴레옹이 고개를 휙 돌리며 캉바세레스에게 단언했다.
“내게 과정을 모두 보고하시오. 모든 법령을 내가 확인하고, 진행하도록 하겠소! 만민평등의 법리를 반드시 구현해야 하오!”
저 유명한 나폴레옹 법전 얘기다.
물론 이 법전은 사실 민법전이라서 광범위한 과거의 법과 로마법을 통째로 모아 재편성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형식적 법치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원역사 현대 프랑스에서도 이때 만들어진 기틀이 남아 있으니, 결코 무용한 작업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때 뤼시앵이 다시 끼어들었다.
“법전과 관련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내무장관?”
“교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방금 전, 교육 문제로 끼어들었다가 퇴짜를 맞아 입을 다물고 있던 탈레랑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외교적 문제입니다. 내무장관님.”
그러나 뤼시앵은 전에 없이 열정적인 태도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이거야말로 내정 문제요. 외무장관님! 교회는 현재 토지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아직도 국내에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요. 교회와의 관계 개선 없이, 내정 안정은 없소!”
“하지만 결국 교황청과의 관계 수립이 아닙니까? 이탈리아 반도의 문제도 있지요.”
“이제는 모두 프랑스 국내나 마찬가지 아니오?”
뤼시앵은 다시 나폴레옹을 정시하며 진언했다.
“나아가 이건 행정 개편과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탈리아 반도, 각 위성 공화국을 언제까지고 내버려 둘 겁니까? 결국 지방 영향력이 강한 교회와 연대해야 통치가 가능해집니다!”
교육 개혁, 법전 설립, 행정 재편.
이 모든 것은 결국 중앙집권화된 근대 국가 설립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프랑스가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몇 가지 과제가 있다.
혁명가들은 그중 교회 권력 퇴출을 1순위 과제로 삼았다.
이른바 무신론자들이 혁명기를 지배했다는 얘기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성직 귀족들이 권력과 부귀를 독과점했던 게 혁명의 원인 중 하나이니, 결코 틀린 생각만은 아니다.
문제는 아직도 교회의 영향력이 민중 사이에 상당하다는 점이었다.
나아가 롬바르디아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로마냐 공화국, 나폴리 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위성 공화국도 문제다.
그곳은 특히 교황청의 민중 영향력이 강하니까.
나폴레옹은 맨들맨들하게 면도가 잘 된 턱을 쓰다듬다 씩 웃었다.
“그건 일리 있는 말이야.”
“하면, 교회와 협약을 체결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지만 또한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나지? 혁명의 시발점 중 하나인데.”
반색하는 뤼시앵에게 손가락을 내밀어 보이며, 나폴레옹이 일단 보류를 명했다.
“이건 좀 더 두고 보지.”
“언제까지 두고 보실 겁니까? 지방에서는 여전히 불만이 많습니다. 왕당파가 준동하는 이유도, 교회 때문입니다!”
“교회가 과연 우리 통령 정부를 믿고 협약을 체결할까?”
순간, 뤼시앵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나폴레옹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두들겼다.
“우리는 언제든 임기가 끝나면 바뀌는데 말이야. 안 그래? 좀 두고 보자고. 내무장관. 자, 그럼 다음 과제는, 도로망 건설인가?”
임기 2년 차, 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권력자 나폴레옹은 여전히 바쁘다.
교회 문제는 뒤로 미뤄둬야 할 정도로.
***
하지만 그게 더 이상한 얘기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군. 빨리 해결해야 하는 일인데. 수석보좌관, 뭔가 아는 게 있습니까?”
법무장관 캉바세레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진에게 물었다.
물론 유진은 캉바세레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웃기만 했다.
동성애 대상으로 혹시 볼까 하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진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캉바세레스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뇨, 저도 아직.”
사실 캉바세레스가 이상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다.
나폴레옹은 일반 혁명가들과 달리, 교회 문제를 상당히 세심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또한 이복 외숙부인 페슈가 코르시카를 교구로 하는 사제로, 교황청에서 벌써 우대를 받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성지 회복]이라는 ‘보나파르트’ 가문의 업적 때문에 교황청도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왜 교회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뒤로 미룰까?
자코뱅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 강경파의 반발이 있겠지만, 나폴레옹 입장에서 손해가 날 이유가 없는 문제다.
원역사에서도 나폴레옹은 [정교협약]을 결국 체결하기도 한다.
그런데 휴게실로 나서던 뤼시앵이 뭔가를 꺼내 던졌다.
“이것 때문이겠지! 임기 운운하는 게 괜히 그러시겠어?”
“뭡니까, 그게?”
“보라구. 유진. 이 끔찍한 소리를!”
유진이 얼결에 뤼시앵이 던진 종이를 받아들다 깜짝 놀랐다.
-〈보나파르트 통령, 부르봉 왕가의 복위를 계획 중?〉
팜플렛.
그것도 혁명 초기에 난무하던 강경한 문구의 선동 팜플렛이다.
하지만 내용은 더욱 무시무시하다.
나폴레옹이 왕을 복위시키려 한다는 중상모략이니까.
“저런 끔찍한 얘기가 왜 도는 걸까, 유진?”
“글쎄요. 숙부님. 제가 쓴 게 아닌 건 확실하군요.”
“그렇지만 우리 ‘보나파르트’ 가문에서 부르봉 가문과 가장 연관이 깊은 건, 바로 너지!”
내무장관이자 치안 최고 책임자, 뤼시앵이 눈을 번뜩였다.
“이 팜플렛의 배후, 반드시 밝히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유진은 팜플렛과 뤼시앵을 번갈아 보다, 차갑게 대꾸했다.
“말하실 필요 없습니다, 숙부님. 반드시 찾아내죠.”
1801년 가을.
프랑스에 엉뚱한 군주제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배포한 루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