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32)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31화(32/547)
(31) 나폴레옹 가족의 마음을 얻어보자
마침내 보나파르트 일가를 만날 때가 왔다.
“마르세유는 참 좋은 곳이더군. 하하핫!”
사실 툴롱에서 마르세유까지는 미터법으로 고작 30킬로미터다.
그러니 거창하게 떠났지만, 나폴레옹 일행은 마차를 타고 천천히 이동 중이었다.
딱히 군대를 거느린 일행이 아니라 아주 간촐하다.
나폴레옹, 쥐노, 마르몽을 비롯한 부관들과 유진의 수하들이 전부랄까.
마르소와 투르네, 이폴리트를 합해도 고작 10여명 안팎의 인원이다.
그 중심에는 단연 나폴레옹이 있었다.
쥐노가 나폴레옹의 수다를 듣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초에 나폴레옹은 마르세유 출신은 분명 아닐 텐데 어떻게 아는 걸까?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장군?”
“그야 우리 일가가 다 그곳에 정착했으니까 알지, 쥐노.”
“허어, 전부 다요? 장군 고향이 어디셨죠? 코르시카였나?”
문득 나폴레옹이 이를 갈며 뱉듯이 말했다.
“그래, 한 푼도 못 건지고 도망쳐 나왔지. 그 놈의 망할 파울리 때문에.”
현재 나폴레옹은 제노바 방면 주재 무관으로 임명되어 이동 중이다.
물론 제노바로 직접 부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까운 마르세유에 머물며, 제노바 방면 군사 동향을 살피는 게 나폴레옹에게 국민공회가 부여한 임무였다.
사실 당장 준장으로 승진시키긴 했지만, 마땅히 지휘할 군단이 없어서 만들어낸 자리다.
그러나 오히려 나폴레옹은 기꺼이 자리를 받아들였다.
왜?
가족이 전부 마르세유에 있었기 때문이다.
코르시카에서 쫓겨난 후, 가족들은 전부 나폴레옹의 월급에 의존 중이다.
그러니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마르세유에 머물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의외로 나폴레옹은 가정에 관심은 많은 남자기도 하다.
정작 절대로 가정을 돌보지는 않지만.
‘어쩐지 전형적인 이탈리아 가부장 같군.’
유진이 마차에 걸터앉아 상념에 잠길 찰나, 엉뚱하게 이폴리트가 불쑥 물었다.
“그럼, 가면 장군님 가족들 보는 겁니까?”
“응? 뭐, 그렇지? 원래 코르시카 인의 미덕은 친한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거라네. 하하!”
“그건 그냥 프랑스인도 그렇긴 합니다만. 뭐, 예쁜 동생 있으신가요?”
누가 원역사 미래의 바람둥이 아니랄까봐, 미녀부터 찾는 이폴리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유진은 그 사실을 깨닫고 나폴레옹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원래 나이 어린 여동생을 둔 오빠는 팔불출이 되기 쉽다.
아주 자랑스런 얼굴로 흐뭇하게 나폴레옹이 손을 저었다.
“내 동생은 안 돼! 아직 어려! 뭐, 곧 시집보내야 할 애도 있긴 한데.”
“몇 살이죠?”
“마리아 안나, 아니 이제 엘리자로 프랑스식으로 개명했지? 16살. 근데, 걔는 음, 썩 예쁘진 않아.”
그러니까, 예쁜 여동생이 있다는 얘기다.
이폴리트가 흥분한 눈을 반짝였다.
유진이 옆에서 보다 쓰게 웃었다.
마리아 파올라, 프랑스식으로는 폴린.
역시, 바람둥이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자 폴린 보나파르트.
아직은 13살, 유진과 거의 동갑내기인 여자아이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미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있다.
유진은 굳이 설명해주는 대신 살짝 양념을 쳐 엘리자를 칭찬해 주었다.
“대신 똑똑하시겠죠. 장군님처럼.”
이건 실제로 그렇다.
엘리자 보나파르트는 보나파르트 가문에서 나폴레옹 다음으로 통치를 잘한다.
지금이야 그냥 여학교를 다니다 만 중퇴생이지만.
그래도 역시 팔불출인 나폴레옹은 기분 좋게 웃었다.
“걔가 좀 똑똑하긴 하지. 뭐, 우리 집안에선 나만한 사람이 없지만. 하하하!”
“장군님 따를 사람은 아마, 이 시대에는 하나도 없을 겁니다.”
“우와, 소년 기수. 돌격만 잘하는 게 아니라 아첨은 더 잘하는구만?”
옆에서 쥐노가 혀를 내두르다, 흘깃 유진이 읽고 있던 편지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어? 그런데 뭘 그렇게 읽는 거야? 혹시 공주님 편지?”
아무래도 지난번에 마리 테레즈의 편지를 본 후, 단단히 놀림감이 된 것 같다.
유진은 손을 내저었다.
일단 마리 테레즈의 편지도 아니고, 연애 편지는 더욱 아니다.
“우편 담당이었으면서, 무슨 소리에요? 앙도슈? 시커먼 남자가 보낸 거예요. 아니, 백발인가?”
“누군데? 어, 혹시 은행 관계자야? 레카미에였나?”
“그랬으면 좀 더 신나게 봤겠지만. 의원이에요. 푸셰라고.”
조세프 푸셰, 원역사 미래에는 나폴레옹의 [사냥개]라 불리는 자다.
지금은 나폴레옹과 아무 접점이 없다.
게다가 특별히 유명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기 고향의 반란을 진압하다 학살자로 악명만 날리는 중이다.
때문에 나폴레옹의 부관과 유진의 수하들은 푸셰 자체보다 [의원]이라는 데 놀라워했다.
물론 유진이야 예전 라파예트를 구출할 때, 거래한 인연일 뿐이지만.
마르몽이 감탄하며 끼어들었다.
“호오, 정말 파리에서 화려하게 살았나 보군요. 소령님. 무슨 일입니까?”
“그냥 정보성 서신이에요. 제 지인인 라자르 오슈 대령이 타오빌과 뒹게르크에서 승리했다는군요. 곧 준장 승진한다는데요.”
“예? 거긴 라인 전역 아닙니까? 좋겠군요. 우리도 곧 그런데 참전해야 할 텐데 말이죠.”
살짝 부러움과 시기를 담아 마르몽이 혀를 찼다.
아직 젊은 장교라 그리 크게 부각되진 않지만, 경쟁심과 상승욕구가 꽤 엿보이는 모습이다.
물론 오슈는 사실 마르몽의 경쟁자가 되기에는 너무 뛰어나지만 말이다.
그때 오슈의 진짜 경쟁자, 나폴레옹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라인은 위험하고 얻을 것 없는 전장이야.”
마차 위, 모두가 나폴레옹을 보았다.
라인 강 전역은 현재 프랑스가 치르고 있는 이른바 [혁명전쟁]의 핵심이다.
수도 파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가 모두 북부에 있다.
또한 혁명군 주력도, 외국 침략군 주력도 모두 라인에 몰려 있는 상태다.
군인이라면 당연히 가장 영광의 전장으로 생각할 곳.
그러나 나폴레옹은 마차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낯을 찌푸리며 말했다.
“거긴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되는 곳이지. 이기는 것 같다가 질 거고, 또 다시 이겨도 진격하기 어려워.”
“왜죠?”
“유진 부관. 자네도 역사책 정도는 읽었겠지? 루이 14세 때, 자연방어선이란 개념이 생겼지. 라인 전선은 딱, 그 방어선에서 싸우고 있어.”
자연방어선.
이른바 산맥, 대하, 바다와 같이 자연의 경계가 국경을 이룬다는 개념이다.
17세기부터 유럽에서 유행했는데, 루이 14세는 이 자연방어선까지 프랑스를 넓히는 게 일생 목표였다.
본래 신성로마제국 독일 제후들의 영토였던 라인 강이 프랑스 세력권으로 들어온 연원이다.
그곳은 2백년 넘게 전쟁이 벌어졌던 장소.
그렇기에 적군의 요새도, 아군의 요새도 꽤 쉴 새 없이 짜여져 있다.
나폴레옹은 창공을 보다 중얼거렸다.
“그걸 깨려면 멋들어진 우회 전략이 필요하지.”
그 순간,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말했다.
“이탈리아군요.”
마르몽, 쥐노, 마르소를 비롯한 모두가 멀뚱히 유진을 보았다.
전혀 생뚱맞은 얘기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현재 혁명군의 주적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배후의 적은 영국이다.
얼마 전, 나폴레옹과 유진이 싸웠던 툴롱도 결국 영국이 점령했던 곳이 아닌가?
그런데 왜 하필 이탈리아를 떠올리는 걸까?
사실 간단한 얘기다.
나폴레옹이 혁명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길이 바로 이탈리아 정복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장의 우회로가 아니라, 이탈리아로 유럽대륙 규모의 우회작전을 펼치는 것.
그게 이 시대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거나 시도하지 못했던 작전이다.
나폴레옹만이 이 작전을 성공시켰기에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몽상에 가까운 전략.
나폴레옹은 빤히 유진을 보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우리 소년기수는 내가 특채할만한 인재야. 하하핫!”
그때 마부가 말을 천천히 잡아 세워 말울음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잇히이이잉!
흘깃 시선을 돌린 나폴레옹이 씩 웃었다.
“여, 드디어 마르세유로군. 평화로운 항구 도시로 온 걸 환영하네, 여러분.”
저 멀리, 언덕이 둘러싼 지중해 항구 마르세유가 보이고 있었다.
유진이 나폴레옹과 처음 만난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
물론 마르세유에는 보나파르트 일가보다 먼저 만날 사람이 있다.
바로 마르세유 주둔군 사령부, 책임자.
이제 나폴레옹에게 뒷 일을 맡기고 떠날 사람이다.
한데, 의외로 아는 얼굴이 나폴레옹을 환대하며 맞이했다.
바로 툴롱 진압군 사령관, 자크 프랑수아 뒤고미에 장군이었다.
“잘 왔네, 보나파르트 준장! 곧 에스파냐 국경으로 떠나야 할 때, 좋은 무관이 와 줬군.”
뒤고미에 장군도 툴롱 진압 후, 마르세유를 거쳐 새로운 부임지로 가는 중이다.
이미 프랑스는 국경 전체가 전시 상황에 돌입하는 시점.
후세에 유명한 전장은 이탈리아, 라인, 툴롱이지만 그곳만 국경은 아니다.
프랑스와 에스파냐 사이의 국경선, 피레네 산맥도 현재 전시 상태였다.
왜?
에스파냐 왕국의 왕가가 다름아닌 부르봉 가문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루이 14세가 뿌리고 간 씨앗이랄까.
“이번에 툴롱에서 나폴리를 몰아냈고, 다음은 피레네에서 에스파냐를 몰아낸다. 그렇게 되면, 옛 부르봉 가문의 왕정복고를 막을 수 있지!”
확신에 찬 얼굴로 뒤고미에 장군이 외쳤다.
그게 국민공회가 그리는 전략구도기도 하다.
왕정복고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
그러자면 부르봉 왕가가 남아 있는 외국군을 물리쳐야 한다.
툴롱의 승장을 피레네 산맥으로 보내는 것도 그 일환이다.
나폴레옹은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잘 하실 겁니다. 그리고 일전에 툴롱에서는 감사했습니다. 뒤고미에 사령관 각하.”
“감사하긴, 그때는 장군과 라푸아프 장군이 다 했지. 난 장군의 작전대로 싸웠을 뿐이야.”
“애초에 사령관께서 제 작전을 받아주셨으니, 그 모든 게 가능했던 겁니다. 전임 사령관 생각해 보십시오. 고집만 부리다 아까운 병사들만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 순간 떠날 채비에 바쁘던 뒤고미에가 낯을 찌푸렸다.
“보나파르트 장군, 한 가지 충고 해두지. 정계와 거리를 두게.”
아주 엄격한 말에 나폴레옹은 주춤거렸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는 뛰어난 군인이야. 앞으로 이 프랑스를 이끌 사람이 될 수도 있어. 허나, 정치인들은 못 믿을 족속이야. 언제든 말을 바꾸는 자들이지.”
“······그렇군요.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나폴레옹이 툴롱에서 참모장이 된 것은 ‘정치’ 때문이다.
국민공회의 유력자, 오귀스트 로베스피에르와 동향인 살리체티의 힘이니까.
물론 나폴레옹의 실력을 인정한 뒤고미에는 그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툴롱에서 단기간 내 영국군의 수비를 뚫은 것은 나폴레옹이 주도한 [십자포화] 전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생 군인인 뒤고미에는 내내 걸렸던 모양이다.
빠르게 수용하는 나폴레옹을 보다 뒤고미에가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다.
“좋아. 앞으로 자네가 내 후임이 될 수도 있으니, 각오 단단히 해두게.”
“예? 후임이라니요?”
“이탈리아 방면군.”
문득 뒤고미에가 사령부 집무실에 걸려 있던 지도를 보며 눈을 빛냈다.
“지금은 마르세유 주둔 무관으로서, 제노바를 감시하는 게 자네 임무일세. 그러나, 향후 오스트리아 군이 움직이면 방어군이 재편성될 거야. 라푸아프로는 막기 어려워.”
이번 툴롱 진압을 주도한 3인방.
뒤고미에, 나폴레옹, 그리고 라푸아프.
혁명 정부는 이 3명을 남쪽 방면에 흩어 향후 정국을 대비할 작정이다.
그러나 뒤고미에는 라푸아프의 실력으로는 이탈리아 방면을 책임지기 어렵다고 보았다.
툴롱 진압군 사령관에 임명되기 직전까지, 이탈리아 국경을 담당했던 게 바로 뒤고미에다.
그런만큼 어떤 장군이 필요할지 정확히 알아챈 것이다.
탁월한 전술 실력과 용기, 무엇보다 과단성이 요구된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라푸아프는 결격이다.
뒤고미에는 나폴레옹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알겠나?”
나폴레옹은 씩 웃으며 답했다.
“예, 장군. 맡겨진다면 아주 멋지게 해내겠습니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뒤고미에는 툴롱 진압 사령관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피레네 국경을 막기 위해 부임하는 중이다.
만약 이탈리아 방면에 문제가 생긴다면, 혁명정부는 바로 뒤고미에 장군에게 묻게 될 것이다.
누가 이탈리아 국경을 맡을 만할지를.
그때 뒤고미에는 나폴레옹을 추천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유진만 아는 문제가.
“사령관 각하!”
유진이 자리를 떠나던 뒤고미에의 앞을 급히 가로막았다.
“뒤고미에 사령관 각하. 가시기 전에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지, 소년기수? 자네 공훈은 나도 꽤 인상적으로 읽긴 했네만. 피레네 산맥으로 데려가 달라는 거라면 사양하겠어. 거긴, 아직 소년병에겐 위험해.”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위험하니까요.”
유진은 뒤고미에를 보며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에스파냐 국경선 일대는 지형이 험하고, 소규모 교전이 많습니다. 한데 제가 사령관 각하의 지휘를 살펴보니, 진두지휘하시는 일이 많더군요.”
뒤고미에는 눈을 크게 뜨다 묘하게 웃었다.
“장군이 나서지 않는데, 어떤 병사가 따르겠나?”
“충분히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위치라면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피레네 산맥에서는 기습을 받기 쉽습니다.”
“그만.”
그러나 뒤고미에는 유진의 말을 끊으며, 단호히 답했다.
“잘 알겠네, 소년병. 하지만 자네 같은 소년이 싸우지 않게 만드는 게 우리의 일이야. 그러자면, 더 용감히 싸우는 수 밖에 없지.”
실로 진짜 군인이다.
10대의 나이로 신대륙에서 참전해, 55살이 된 지금까지 전장에서 살아온 군인.
병사에게 돌격하라 명하는 대신, 따르라고 외치는 자.
그러나 이 용기가 독이 된다.
왜냐하면 원역사에서, 뒤고미에는 바로 피레네 전선에서 유탄에 맞아 죽기 때문이다.
충고하고 싶었지만, 결국 뒤고미에 장군은 듣지 않을 모양이다.
물끄러미 떠나는 뒤고미에의 모습을 보는 유진 옆에서, 나폴레옹이 어깨를 으쓱였다.
“군인다운 군인이지만, 성급하군. 자, 여러분! 그럼,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인데? 오늘은 우리 집에서 먹을까?”
“좋죠! 장군님!”
“이야, 어머니 솜씨입니까? 간만에 집 빵을 먹겠군요!”
쥐노와 마르몽이 환호를 올리는 가운데, 유진은 쓰게 웃었다.
“정말 그렇군요. 아쉽게도.”
뒤고미에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유진도 나폴레옹을 따라 나섰다.
어쨌든 오늘 원래 만나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으니까.
바로, 보나파르트 가족이다.
***
마르세유는 저 유명한 [라 마르세예즈]가 탄생한 도시기도 하다.
압제자를 죽이고, 피로 고랑을 채우고, 적과 싸우자.
전년인 1792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첫 전투를 벌일 때 의용병 부대가 만들어 부른 노래.
현재 국민공회는 이 노래를 국가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만큼 화끈한 남부 사람들이 산다는 얘기다.
물론 꼭 이 화끈함이 마르세유 원주민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서, 이주민들도 꽤나 화끈하다.
역사기록에 화끈하게 남은 한 일가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화끈한 부인, 레티치아가 작은 집 안에서 외쳤다.
“들었니? 드디어 나폴레오네가 돌아온다는구나!”
워낙 나폴레옹을 일찍 낳은 터라, 레티치아는 아직도 43세밖에 안 된다.
다만 고생을 많이 한 터라, 주름이 꽤 많았다.
허나 나폴레옹과 폴린의 모친답게 여전히 미모의 기색이 엿보이는 중년 부인이다.
방금 레티치아에게 소식을 전하고 간 병사들도, 잠시 쑥스럽게 말을 건넬 정도였다.
문득 레티치아의 외침에 여동생들이 뛰쳐나와 외쳤다.
“오빠가 돌아온다고? 정말?”
“선물도 가져온대요?”
“우리 집부터 당장 이사가야 할 텐데. 승진했다죠?”
막내 카롤린, 차녀 폴린, 그리고 장녀 엘리자가 흥분해 떠들었다.
어쨌든 지금 집안의 사실상 가장은 나폴레옹이다.
그런데다 마르세유 바로 옆, 툴롱 정복의 영웅이란 얘기는 이미 시내에 파다했다.
마르세유의 유력자들조차 초라한 보나파르트 집안의 자택을 방문할 정도다.
그런데 집안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소년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차피 혁명에 실패한 형이야. 나처럼 포기하지 않고, 도시 조합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소년의 이름은 뤼시앵, 나폴레옹의 동생이다.
코르시카에서 자코뱅 클럽을 가장 먼저 열었고, 혁명의 열기 속에 투신했다.
그러나 파울리의 배신 후, 역시 모든 것을 잃고 뤼시앵도 마르세유로 가족과 함께 도피했다.
그럼에도 아직 포기하지 않고 마르세유 도시 조합에서 활동하며 혁명운동 중이다.
물론 아직 18살이니까, 그럴만한 나이기는 하다.
한숨을 내쉬며 레티치아는 한 마디 던졌다.
“그래, 뤼시앵. 그래도 형이 오면 그런 헛소리 하면 안 된다?”
“브루투스라고 불러주세요, 어머니! 전 혁명 정신에 따라 개명했어요!”
“그런 헛소리도 제발 그만둬주렴. 브루투스인지 블루투스인지 옛날 로마 사람 아니니? 그게 혁명이랑 무슨 상관이니?”
그 순간 뤼시앵이 격분해 열변을 토했다.
“상관있죠! 혁명은 옛 로마 공화정 시대로 돌아가자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1793년 현재, 뤼시앵은 본인을 [브루투스]라고 자칭 개명했다.
카이사르를 죽인 그 브루투스냐고 하면 맞다.
물론 꼭 뤼시앵이 아니라도, 프랑스 혁명 주도자들은 대체로 고대 아테네와 로마 공화정 시기를 모범으로 삼았다.
나아가 뤼시앵만 로마식 이름으로 개명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당연히 나이를 조금만 먹어도 부끄러울 짓은 맞다.
그 사실을 아는 레티치아는 한 마디 타이르려 했다.
사실 레티치아도 혁명에 무지한 그저 가정주부가 아니다.
애초에 남편 카를로 보나파르트와 함께 코르시카 독립운동 참전자가 레티치아다.
“뤼시앵. 혁명이나 독립은 말이야. 이름을 개명한다고 될 일이······.”
그때 불쑥 문을 열고 장남, 조세프 보나파르트가 뛰쳐 들어왔다.
“자자, 곧 우리 자랑스러운 나폴레오네, 아니 ‘나폴레옹’ 준장이 곧 온답니다! 모두 나와서 환영할 준비해주세요. 보나파르트 가문의 자랑입니다.”
“맞아! 신문에도 나왔잖아요! 조세프 오빠!”
“그렇지! 폴린, 바로 그렇게 칭찬하면 돼.”
나폴레옹과 친밀한 폴린이 생긋 웃을 찰나, 막내 카롤린이 먼저 뛰쳐나가 외쳤다.
“아, 저기 온다!”
마르세유 외곽, 보나파르트 가문의 낡은 임시 거처로 마차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보나파르트 일가는 모두 분분히 뛰쳐나가 자랑스런 차남을 기다렸다.
그런데 뭔가 혼자 오는 것 같지가 않았다.
카롤린, 엘리자, 폴린이 서로 수군댔다.
“한데, 웬 사람들이 같이 오네?”
“부하들이겠지.”
“어, 그런데 애가 함께 있는데?”
문득, 폴린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오빠의 숨겨둔 자식 아냐?”
사실 유진이지만, 그걸 보나파르트 일가가 알 리 없다.
게다가 군대에 갔던 아들이 돌아오는데, 왜 아이가 함께 한단 말인가?
화끈하다는 것은 성질이 급하다는 뜻이다.
아주 화끈한 전직 독립운동가, 레티치아가 얼굴이 새빨개져 고함쳤다.
“나폴-레오네!”
유진과 보나파르트 일가의 첫 만남이 한바탕 소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
보나파르트 일가의 소동은 당연히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끝났다.
다만, 문제가 있다.
이게 단순한 오해만은 아니라는 거다.
“흠, 오해해서 미안하군요. 그래, 귀족 나으리시라고?”
아주 퉁명스런 얼굴로 식탁에 접시를 놓으며, 레티치아가 쏘아 붙였다.
분명 이 자리는 나폴레옹 귀환을 환영하는 보나파르트 집안의 식사 자리다.
한데, 묘하게 분위기가 굳어져 있어서 같이 온 부관들도 모두 눈치를 보는 중이다.
대체 왜 이런 걸까?
결국 참지 못한 이폴리트가 유진에게 낮게 물었다.
“야, 분위기 이거 왜 이래?”
“원래 보나파르트 가문은 코르시카의 독립파로, 프랑스 귀족이지. 다만, 하급 귀족이라.”
“흐음, 프랑스 정통 귀족에게는 적대적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거 같은데?”
물론 유진도 조금 궁금하긴 했다.
사실 보아르네 가문은 보나파르트 가문과 원역사에서 아주 사이가 나쁘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나폴레옹의 총애라는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직 그럴 것도 없지 않을까?
그때 문득 신중하게 생긴 청년, 보나파르트 일가의 장남 조세프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 혹시 어머니 이름이 ‘조세핀’인가?”
유진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아십니까? 무슈 조세프?”
“아니, 그야 나폴레오네, 음, 나폴레옹이 늘 편지에 만나고 싶다고 떠벌리고 써서.”
“예?”
애초에 조세핀의 진짜 이름은 마리 조세프 로즈 라 파제리, 그러니까 조세핀이 아니다.
보통 조세핀을 아는 이들은 대부분 애칭으로 로즈, 격식을 차릴 때는 마담 파제리라 부른다.
이 조세핀이란 애칭 자체가 본래 원역사에서 나폴레옹이 나중에 붙인 거다.
다만 유진은 그 이름을 알기 때문에 전생자각 때부터 그리 불렀을 뿐.
대체 나폴레옹이 어떻게 알까?
식탁 한쪽에 멀뚱히 앉아 있던 나폴레옹이 짐짓 코웃음을 쳤다.
“흠! 자네 모친 이름이 조세핀이 아닌 건 알아.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안 부르잖아? 그래서 내가 그렇게 부르기로 했지!”
아무래도 원래 나폴레옹의 이름 짓는 취향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나폴레옹은 쥐노에게 붙인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별명 붙이기를 꽤 즐겼다.
다만 [붉은 폭풍]이라는 그 별명에서 역시 알 수 있듯, 네이밍 센스는 그냥 별로다.
잠시 역사의 비밀을 조금 알게 된 유진이 입맛을 다실 찰나였다.
문득 엘리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애 딸린 유부녀에게 반하다니, 미쳤어.”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똑똑하며, 가장 솔직하다던 역사적 평가 그대로다.
요컨대 보나파르트 일가가 보이는 이 적대감은 별 게 아니다.
나폴레옹이 그동안 떠벌리고 다닌 탓이다.
조세핀에게 반했다고.
이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유진이 입을 이번에는 쩍 벌렸다.
슬쩍 눈치를 살피던 이폴리트가 낮게 다시 유진에게 물었다.
“이제야 왜 분위기가 안 좋은지 알겠는데? 어쩌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아예 조세핀을 본 적도 없는 가족들이 벌써 조세핀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된 것이다.
사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소리다.
멀쩡한 총각에 나름 잘 나가는 군인 나폴레옹이 애 딸린 이혼녀에게 반했다?
굳이 권력다툼을 할 게 아니라도 가족이라면 펄쩍 뛸 것이다.
그러나 유진도 아무 생각 없이 보나파르트 집안을 방문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보나파르트 일가와 보아르네 일가의 다툼은 나폴레옹 쇠락의 이유 중 하나다.
유진으로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랄까.
쓴웃음을 머금던 유진은 슬쩍 품 속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뇌물을 좀 써야겠는데.”
“뭐? 무슨 뇌물?”
“이렇게 쓰려고 가져온 건 아니지만, 이럴 때 쓰려고 준비해둔 게 있지.”
아주 딱딱한 [뇌물]을 만지며, 유진이 눈을 반짝였다.
“오늘 식사 자리에서 써야겠어.”
오해와 적대가 가득한 보나파르트 일가의 저녁 환영 식사가 시작되었다.
***
가장 처음 유진을 오해했던 사람은 폴린이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야, 파올라?”
파올라, 곧 폴린의 이탈리아식 이름을 엘리자가 불렀다.
유진을 계속 주시하던 폴린이 낯을 살짝 찡그렸다.
어리긴 하지만, 이탈리아 혈통답게 벌써 꽤 성숙한 풍모가 풍긴다.
사실, 보나파르트 집안을 방문했던 남자들은 다들 폴린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곤 했다.
아직은 바람둥이는 아닌 소녀, 폴린이 언니 엘리자의 호칭을 바로잡았다.
“이거 왜 이래, 마리 언니? 난 이제 폴린이라고. 폴.린.”
“흥, 프랑스 식으로 모두 바꾸는 거. 마음에 안 들어. 우리는 코르시카 인이라고.”
“어차피 쫓겨난 지 오래잖아. 참 언니도 그렇고, 뤼시앵 오빠도 그렇고. 다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
가볍게 웃으며 폴린은 살짝 셋째 오빠, 뤼시앵을 흘겼다.
“뤼시앵 오빠는 이름도 이상하게 바꾸고 말야.”
브루투스라니 부르기조차 어려운데다, 딱히 프랑스식도 아니다.
물론 뤼시앵은 거창한 명분이 있다.
혁명가로서 자신의 의지를 혁명 동지들에게 알리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린데다, 복잡한 일에 무관심한 폴린 입장에선 우습기만 했다.
“바보니까 그렇지.”
물론 현실적인 엘리자도 똑같이 우습게 여기는 것은 똑같지만.
폴린은 피식 웃다, 연신 장교들에게 말을 거는 조세프를 보았다.
아무래도 새로 온 장교들과 친교라도 쌓고 싶은 모양이다.
“참, 조세프 오빠는 일자리 찾았대? 엘리자 언니?”
“아직? 사람은 많이 만나고 다니더라. 얼마 전에는 클라리 집안에 초대도 받았대.”
“정말? 거기 마르세유 최고 부자 아냐? 와.”
감탄하는 폴린을 보다, 엘리자는 낯을 찌푸렸다.
“그럼 뭐해? 돈 한 푼 못 벌어 오는데. 우리 전부 나폴레오네 오빠 아니면, 다 굶어죽을 판이야. 장남이 가장 노릇도 못하고.”
그때 누나들의 옆에서 빵을 서투르게 자르던, 막내 제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나들, 싸워?”
“아냐, 우리 귀여운 제롬. 그럴 리가 있겠니? 자, 이거 먹어.”
“와! 스튜다! 맛있겠어!”
활달하게 스튜를 먹는 제롬을 보며, 폴린은 생긋 웃었다.
이제야 평화를 찾은 것 같다.
코르시카에서 바삐 탈출하던 4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때만 해도 모두 죽는 줄 알았다.
반대로,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지금 벌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때 폴린의 옆에 불쑥 나폴레옹이 다가왔다.
“참, 루이는 없나?”
폴린의 낯에 웃음꽃이 피었다.
같은 형제 자매라도 사람은 모두 성격이 다르다.
또한 서로 잘 맞는 사람도 다르기 마련이다.
딱히 이유랄 것은 없지만, 묘하게 폴린은 형제자매 중 나폴레옹을 가장 좋아했다.
특별히 능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달까.
어쩌면 가장 잘생긴 오빠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참, 오빠도. 오빠가 포병학교 보낸다고 데려가서 아직 안 왔잖아. 지금쯤 샹파뉴쯤 있지 않아?”
“이런, 포병학교에서 아직도 졸업을 못했나? 지금쯤 집에 돌아왔을 줄 알았더니. 확인해 봐야겠군.”
“기왕 군에서 복무할 거면 오빠 아래서 복무시켜 줘. 참, 쟤가 그 [조세핀] 아들인 거야, 그럼?”
문득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폴린이 물었다.
유진 드 보아르네.
식탁 한쪽에 앉아 가족들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다.
눈치 못 채게 한다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역시 눈치 빠른 폴린의 눈에는 다 보였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계속 생각하던 중이었다.
반면 나폴레옹은 낯을 굳히며 손을 저었다.
“저 애는 안 된다.”
“흥, 뭐래. 내가 누굴 사귀든 무슨 상관이야?”
“나이도 어린 게! 하여간 저 애는 내가 찍은 여자의 아들이야. 게다가, 이미 순정을 바치는 상대가 있던데.”
남의 연애사가 가장 흥미진진한 13세 소녀, 폴린이 눈을 반짝였다.
“정말? 재밌겠다. 무슨 사연이야? 응?
그때 폴린은 기억이 뭔가 떠오를 것 같아 손에 입을 가져다 댔다.
실물을 본 게 아니다.
신문에서 삽화로 보았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나, 어디서 쟤 본 거 같아.”
“편지에서 봤나 보지? 우리 나폴레오네 오라버니께서 아주 길게 써주시긴 했지.”
“아냐, 엘리자 언니. 그게 아니라. 신문에서. 아!”
그 순간, 폴린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다.
“공주의 기사!”
이 남쪽 마르세유에도 신문으로 보도된 세기의 재판.
공주를 위해 왕비를 살렸다는 바로 그 소년이었던 것이다!
***
18세기 말, 이 시기는 낭만주의가 태동하던 시대다.
“맞지! 마리 테레즈 공주를 위해, 전 왕비를 구했다는 그 소년!”
“어머? 정말? 저 애가? 그렇게 우락부락하게 안 생겼는데?”
“잘 생기긴 했네, 흥.”
한 마디로 [로맨틱]한 게 먹히던 시절이다.
낭만을 위해 목숨을 걸고, 또 그런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괜히 뤼시앵이 ‘브루투스’라는 병맛스런 예명을 택한 게 아니다.
그런데 낭만주의의 궁극이 뭘까?
단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이다.
소녀들이 떠들썩 할 수 밖에 없다.
이 자리에는 마침 소녀들이 셋이나 있었다.
폴린, 카롤린, 엘리자.
특히 공주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일화는 소녀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진은 뻘쭘한 얼굴로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기사는 아니지만, 그 소년은 맞습니다.”
“어머, 어머! 진짜야!”
“와, 신문에서나 보던 사람이 우리 집에 오다니! 나폴레옹 오빠, 진짜 출세했구나!”
어째 장군 승진보다 유명인사가 함께 온 게 더 놀랄 일인 모양이다.
나폴레옹도 쓴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도 분위기가 좀 나아진 것 같다.
슬슬 손을 풀며, 유진은 한숨 돌렸다.
“분위기가 조금 좋아진 거 같지, 이폴리트?”
그런데 이번에는 이폴리트가 멍하니 폴린을 보고 있었다.
“저 애, 예쁜데?”
“야, 정신차려.”
“이름이, 아까 뭐라고 했지?”
그 순간 쥐노가 먼저 선수를 쳤다.
“와우, 미녀 아가씨.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나폴레옹 소장 각하의 부관, 앙도슈 쥐노라고 합니다, 하핫!”
그때서야 유진은 역사 속 일화를 하나 떠올렸다.
폴린, 보나파르트 일가의 최고 미녀.
아직은 13살이지만, 쥐노를 비롯한 나폴레옹의 부관들도 모두 줄줄 따라 다녔다던가.
어쩐지 더 나이 많은 마리 테레즈보다 확연히 [성숙]한 외양이긴 하다.
프랑스 미인과 이탈리아 미인의 차이점에 대해 잠시 고찰하던 유진이 피식 웃었다.
“손이 참 빠르군, 쥐노도.”
“이익, 내가 앞섰어야 하는데!”
“걱정마, 어차피 ‘폴린’ 취향은 쥐노가 아닐 테니까. 너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폴리트가 눈을 크게 뜨며 따졌다.
“그걸 유진, 네가 어떻게 알아?”
왜냐하면 정작 폴린이 결혼하는 사람은 모두 더 나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진은 폴린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 느꼈다.
어린 애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귀엽게만 보는 그 눈길을.
마리 테레즈와는 정반대랄까.
어쩌면, 그건 워낙 뛰어난 오빠 나폴레옹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자 취향이 나이 많은 남자가 된 게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폴린이 아니다.
유진은 슬쩍 이 가족의 핵심을 찾았다.
레티치아.
보나파르트 일가의 가장 웃어른.
또한 원역사에서 조세핀을 가장 싫어하는 여자다.
이제 손을 쓸 때가 되었다.
아주 정중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이 음식을 식탁 위에 놓던 레티치아를 향했다.
여전히 못마땅한 눈으로 보는 레티치아를 향해, 유진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부인, 우선 갑자기 저녁 식사에 참석하게 되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단다. 다만, 친한 척은 말아줬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선물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문득 유진의 손에 반짝거리는 보석이 들렸다.
“이게, 뭐니?”
눈부시게 빛나는 세공된 반지를 보며 여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유진은 싱긋 웃으며 레티치아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아주 익숙한 솜씨, 게다가 어린애의 손이라 미처 피하기 어려운 점을 이용한 것이다.
“전장에서 획득한 전리품이죠. 영국인들이 놓고 간 것입니다. 인도 특산.”
눈부신 반지를 뚫어져라 보는 레티치아에게 유진이 속삭였다.
“다이아몬드 반지입니다.”
사실은 전리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엄밀히 말하면 툴롱을 재점령한 후, 약탈이 벌어질 때 유진이 헐값에 사들인 물건이다.
그러나 전쟁 와중에 주인을 잃고 툴룽 항구를 떠돌던 보석인 것은 맞다.
후일 전장의 영웅이 가져올 전리품들로 장식될 귀부인.
그러나 지금은 아직 고향에서 쫓겨나 모든 장신구를 잃어버린 여자.
레티치아가 멍하니 반지를 보다 속삭였다.
“세상에, 이런, 귀한 걸. 내게? 그것도 전리품이면.”
그때 이폴리트가 귀신같이 눈치 빠르게 끼어들었다.
“목숨을 걸고 얻어온 거죠! 보셨어야 해요. 이 꼬마가, 글쎄 영국군을 돌파하고 깃발을 빼앗아 왔어요. 여기, 나폴레옹 장군을 위해서!”
“뭐라고? 이 아이가? 맙소사!”
“아니, 정말이야, 나폴레옹?”
레티치아와 조세프가 놀라 묻자, 나폴레옹이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 사실이긴 하지, 조세프 형.”
모두 사실이긴 하다.
유진이 툴롱을 돌파한 것도, 깃발을 빼앗아 온 것도, 나폴레옹의 눈에 들기 위해 달린 것도.
이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때의 전리품이 아닐 뿐.
뚫어져라, 레티치아가 유진을 보았다.
“네가, 우리 아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그 순간, 레티치아는 나폴레옹의 앞에 놓았던 접시를 빼앗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갓 구운 고기 요리다.
모두가 눈을 깜박이는 가운데, 레티치아가 접시를 유진의 앞에 다시 놓았다.
-탁!
엄숙한 얼굴로, 레티치아가 유진을 향해 선언했다.
“우리 부오나파르테, 아니 보나파르트 집안은 절대로 은혜를 잊지 않아. 오늘 가장 좋은 식사는, 여기 유진 군이 받아야겠어.”
음식을 주는 것은 이탈리아 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
절대로 적에게는 음식을 주지 않는다.
본래는 정적으로 만났을지 모를 귀부인, 레티치아가 유진에게 자신의 가장 좋은 음식을 내준 것이다.
유진이 싱긋 웃으며 접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마담, 레티치아.”
찰나, 역사가 바뀐 것을 유진은 느꼈다.
레티치아가 유진에게 호감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