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33)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32화(33/547)
(32) 패밀리는 이익 공유로 하나가 된다
1793년 5월, 마르세유의 햇살은 따사롭다.
꿀벌이 꽃을 따라 거닐 정도로.
-왱, 왱, 왱!
그 소리에, 유진은 퍼뜩 잠이 깼다.
낯선 침대, 낯선 공기, 낯선 햇살.
사실 엄밀히 말하면 파리에서 툴롱으로 왔을 때 느꼈어야 했던 감각이다.
허나 지금까지는 전투에 휘말리거나, 혹은 사후처리에 골몰해 미처 느끼지 못했다.
이제야 이곳이 파리가 아니라, 남프랑스라는 게 느껴진다.
일단 늑대 대신 꿀벌이 돌아다닌다는 것만 해도.
순간, 벌이 유진의 손을 쏘았다.
“아야!”
벌에 쏘이니 화끈하게 더 느껴졌다.
어째 별로 위험한 게 아니었는지 백은문자의 알림조차 뜨지 않았다.
포연 속에서는 그렇게 잘 보이던 알림이 말이다.
살짝 부은 벌침의 상처를 보다, 유진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나폴레옹의 상징이 벌이었지.”
꿀벌.
엉뚱하게도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취한 상징이다.
독수리가 가장 유명하지만, 실상 더 많이 쓰인 상징은 황금꿀벌이었다.
황금빛 꿀벌은 풍요와 근면, 달콤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옛 프랑크 왕국과 현재의 프랑스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여겨졌다.
왜냐면 17세기에 무려 천여년 전 프랑크 왕국 왕릉이 발견되면서, 그 속에서 이 벌꿀 모양의 도안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원역사 현대에는 이게 오해라는 걸 안다.
꿀벌이 아니라 실은 매미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직 18세기 말, 지금은 옛 프랑크 왕국의 상징을 꿀벌이라 믿는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옛 프랑스의 전통을 취한다는 이유로 꿀벌을 택한 이유다.
전생에서 기록으로 보았던 것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리고 꿀벌.
“그 벌이 가져온 꿀을 탐하던 가족들.”
아주 달콤한 권력이라는 꿀.
그 꿀에 취해, 꿀이 자기 것인양 다투어 역사에 남은 이들이 있다.
보나파르트 일가.
무능한 조세프, 경쟁심 강한 뤼시앵, 우울한 루이, 엉뚱한 제롬, 배신자 카롤린.
당장 보아르네 일가와 직접 관련된 이들만 꼽아도 이 정도다.
바람둥이 폴린이나 능력자 엘리자는 좀 다르지만.
유진이 나폴레옹의 측근이 되려면, 반드시 넘어서야 할 사람들이다.
“우선 레티치아 님과는 친해진 것 같고.”
사람의 첫 인상은 그 후의 인상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유진은 레티치아의 모성애를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아직 어린애가 전장에 나왔다.
그것도 레티치아의 아들, 나폴레옹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한다.
여기에 레티치아는 그만 감동해 버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혼녀 조세핀을 레티치아가 좋아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최소한 양자가 될 유진을 적대하지 않을 정도로는 만들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유진 입장에서는 레티치아와 물꼬만 트면 친해지기도 쉽다.
“레티치아 님은 저축을 중시하는 분이거든. 저 꿀벌처럼.”
유진은 여전히 아직 창 밖을 날아다니는 꿀벌을 보다 피식 웃었다.
젊은 시절부터 고생한 레티치아는 역사에서 구두쇠로 유명하다.
언제 권력을 잃을지 모르니 저축을 잘해야 한다는 게 레티치아의 지론이라던가.
해서, 은행가들을 늘 측근에 두었다.
그런데, 유진이야말로 지금 잘 나가던 은행가 아닌가?
그러니 일단 레티치아는 손에 넣은 거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다른 가족들이다.
그때다.
“어이! 구시대의 기사! 어딨어!”
“야, 야. 애 자는데 뭐하러 깨워? 나중에 얘기해.”
“형님! 저 녀석도 군인이에요! 군인이 무슨 아침잠을 자요! 어이!”
유진은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깨달았다.
옆 침대에서 여전히 잠에 취해 있던 이폴리트가 하품하다 물었다.
“뭐야, 뤼시앵? 아니, 브루투스인가?”
유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벽에 걸린 군복을 걸치기 시작했다.
“뭐, 조세프도 함께 오신 것 같군.”
그렇다.
이곳은 보나파르트 일가의 집, 2층.
당분간 유진과 이폴리트가 머물게 된 [하숙집]이다.
***
당연히 첫 인상만으로 패밀리가 탄생할 리는 없다.
“이거, 분명히 해두자고. 절대로 우리 형이 너희 엄마와 결혼할 리는 없어. 뭐, 당연한 거지만. 확인차 말해두는 거야.”
역사 속에서 보아르네 ‘패밀리’와 보나파르트 ‘패밀리’의 상호 적대감은 아주 유명하다.
이게 그냥 귀족가 상속 다툼이었다면, 별로 문제가 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름아닌 나폴레옹의 부인과 친족간 다툼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 때문에 두 일족의 다툼은 원역사에서 프랑스 제국의 권력투쟁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어쨌든 눈앞의 뤼시앵이 굳이 나폴레옹의 결혼에 대해 언급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애초에 뤼시앵은 원역사 미래에, 나폴레옹이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 문제가 된다.
유진은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18세 청년, 뤼시앵을 보다 싱긋 웃었다.
“그렇군요. 잘 알아두겠습니다.”
아직 유진은 마르세유에서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
무관 숙소 같은 게 정비된 시대도 아니고, 마르세유 군부대에는 적당한 숙소도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레티치아가 당장 유진을 자기 집에 머물게 했다.
덕분에 유진은 이렇게 아침을 먹기도 전에, 뤼시앵에게 불려 나오는 신세가 된 것이다.
뤼시앵과 달리 예의범절이라는 걸 아는 큰 형, 조세프가 옆에서 입맛을 다셨다.
“뤼시앵, 심하잖아. 말이.”
“형님, 전 브루투스예요. 브.루.투.스! 그리고 하나도 안 심해요. 애 딸린 유부녀 타령이나 하는 형님이 미친 거지. 장군을 좋다고 할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 그야 그렇다만. 뤼시앵.”
아주 현실적인 얘기다.
사실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원역사에서 결혼할 때 모두가 똑같은 소리를 했다.
왜 조세핀인가?
역사가들은 바라스가 이탈리아 원정 대가로 팔아 넘겼다는 당대의 소문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바라스에게는 당시 별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부의 유능한 장군 중, 일단 바라스 파가 별로 없었다.
그럼 대체 왜 나폴레옹은 애가 딸린데다, 나이도 많은 조세핀을 선택했을까?
아주 간단한 설명이 있다.
성적 매력에 반해서.
지금 나폴레옹이 가족들에게 떠들고 다닌 걸 확인한 유진은 확신했다.
물론 그 얘기를 굳이 보나파르트 일가에 떠들 수야 없는 노릇이다.
당장 밥, 아니 빵 신세를 지고 있는 마당이기도 했다.
아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유진이 뤼시앵 대신, 조세프를 보았다.
“그렇군요. 뭐, 제가 결혼하는 건 아니니까. 그보다, 무슈 조세프. 변호사라고 하셨죠?”
조세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나폴레옹 장군의 부관으로서 마르세유에 왔죠. 하지만 원래 하던 본업이 있어서, 마르세유에서도 계속 하고자 합니다.”
“본업이라고? 아니, 자네는 내 보기엔 아직 소년인데. 무슨 본업인가?”
사실 조세프와 나폴레옹은 연년생이다.
무슨 말이냐면 1793년 당시, 조세프도 고작 25살이란 소리다.
아직 젊기는 매한가지인 조세프가 어리단 얘기를 하니 조금 우스웠지만, 유진은 웃는 대신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러자 역시, 유진과 같이 숙식 중이던 이폴리트가 눈치 빠르게 끼어들었다.
“하하! 모르셨군요. 무슈 보나파르트. 이 친구는 파리에서 유명한 도박신동이자 금융신동이랍니다.”
“도박, 뭐요? 애가?”
“판돈을 걸어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지요. 돈놀이에서도 똑같았습니다. [방크 보아르네]라고 하면, 파리에선 알아줬죠.”
파리 사교계에서야 이미 유명하지만, 코르시카 촌사람인 조세프가 알 리 없는 얘기다.
또한 조세프는 파리가 아니라 이탈리아 피사 대학에서 법학사를 취득했다.
하여, 이래저래 유진의 소문을 전혀 듣지 못했던 것이다.
조세프와 뤼시앵 둘 다 경악한 가운데, 유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은행 지점을 여기 마르세유에서 만들고 싶어요. 도와주실 수 있겠죠?”
당혹한 조세프가 머리를 흔들다 급히 정론을 말했다.
“아니, 그래도. 성년이 안 된 남자 아이는 법인격이 없어. 대표자가 될 수는 없을 텐데?”
“국민공회가 발표한 법에 따르면, 소유권은 가질 수 있죠. 물론 보호자가 대리해야 하지만. 사실 방크 보아르네도 대표자는 제 아버지입니다.”
“그래? 그럼 이미 존재하는 은행법인의 지점 사무소를 내는 형태가 되겠군. 가능할 거 같은데?”
조세프는 그냥 법학대학 졸업자가 아니라 전직 판사다.
비록 고향, 코르시카 아작시오 판사긴 하지만.
최소한 마르세유에서도 변호사로 일할 정도의 경력은 쌓아둔 상태다.
그렇다고 어린애를 돕다니, 조세프도 보통 사람은 아닌 셈이다.
이제는 조세프가 아니라 뤼시앵이 기가 막힌 듯 말리려 했다.
“혀, 형님. 이 꼬마를 도와줄 생각입니까?”
조세프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뤼시앵을 보며 대꾸했다.
“무슨 소리냐? 난 변호사야. 고객이 있다면 당연히 돕는 거지.”
“이 꼬마가 무슨 고객이에요! 돈이나 있겠어요?”
“어, 그런가?”
사실 원역사에서도 조세프는 상당히 고지식한 남자다.
원칙을 중시하며, 주어진 업무를 꽤 정직하게 처리하며, 어려운 자리를 맡아도 최선을 다한다.
애석하게도 조세프에게 나폴레옹이 맡기는 자리가 성실함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일 뿐이다.
지금도 변호사답게 법률업무를 고지식하게 처리할 생각만 한 것이다.
그때 유진이 슬쩍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쩔렁! 쩔렁! 쩔렁!
탁자 위, 리브르 은화가 쌓이는 모습을 보며 조세프와 뤼시앵, 둘 다 눈을 크게 떴다.
“아, 아시다시피 툴롱에서 영국군 금고를 털었거든요. 전리품이죠.”
유진은 이번에는 이번에는 거짓이 아니라 진짜를 말했다.
어쨌든 툴롱에 주둔하던 영국군은 군수물자와 자금을 회수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 결과, 군납업자들에게 지급할 자금마저 두고 간 거였다.
그 중 일부를 유진과 수하들이 가져온 것이다.
은화를 보던 궁핍한 전직 판사, 조세프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특가로 모시겠습니다, 클라이언트 무슈 유진.”
일단, 유진이 마르세유에서 움직일 대리인을 획득한 셈이다.
그것도 나폴레옹의 형으로.
***
사실 조세프도 마르세유에 정착한지는 고작 5개월 째다.
때문에 유진은 그저 법률 대리인으로서 조세프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겸사로 보나파르트 일가와 친숙해지면 더욱 좋은 일이다.
어쨌든 원역사에서 조세프도 황후 조세핀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세프는 유진이 모르던 의외의 일면을 갖고 있었다.
바로, [마당발]이라는 거였다.
“찾으시던 베어링스 뱅크는 여기, 마르세유에도 원래 지점을 냈죠.”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조세프 변호사님?”
“후후, 이거 아십니까? 이탈리아 반도, 특히 나폴리 왕국은 영국 은행가들의 무대랍니다.”
프랑스는 원역사 현대든, 18세기 말이든 모두 커피를 참 좋아하는 나라다.
대도시답게 마르세유에도 카페가 있었다.
물론 유진에게는 주스를 내민 채, 혼자 조세프는 커피를 즐겼다.
어쩐지 약이 오르는 유진이었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커피는 좀 무리다.
조세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폴리 왕국의 왕가는 부르봉 가문이죠. 하지만, 경제는 영국인들이 지배합니다. 왜? 지중해의 재해권을 영국이 쥐었으니까요.”
바로 유진도 한 번 거쳐온 지브롤터 해협 때문이다.
7년 전쟁 때 영국은 프랑스, 에스파냐, 그리고 나폴리 왕국의 함대를 격파했다.
그때 본래 에스파냐의 영토였던 지브롤터 해협이 영국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영국은 지중해로 함대 투사가 쉬워졌고, 차츰 지중해의 재해권과 무역을 손아귀에 쥐기 시작했다.
게다가 금융이 다른 유럽 국가보다 발달한 영국이다.
나폴리 경제가 영국의 수중에 들어간 것도 당연한 결과랄까.
자연히 영국에서 급성장 중인 은행, 베어링스 뱅크도 나폴리에 지점을 냈다.
본래 피사 대학 출신으로 이탈리아통인 조세프는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지금도 영국 함대가 나폴리에 주둔할 정도죠. 뭐, 부르봉 왕가도 거기 있긴 하지만, 프랑스 은행가들은 거의 못 들어갔어요.”
“과연, 그쪽을 통해서 마르세유에 진출했다는 거군요.”
“그렇죠. 하지만 시국이 이러니, 당연히 베어링스 뱅크 마르세유 지점은 파산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조세프가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은행 하신다니 아시겠지만, 이런 사업은 파산한다고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니지요. 명의가 바뀔 뿐입니다.”
영국은 프랑스에 대해 아직 정식 선전포고를 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이미 코르시카를 점령했고, 툴롱 반란군을 도왔다.
사실상 교전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따라서 영국 금융가들이 뭘 할 수가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베어링스 뱅크 마르세유 지점은 파산 선언을 했다.
지극히 형식상 파산이랄까.
흥미로운 기분으로 나름 베어링스 뱅크의 사업파트너였던 유진이 물었다.
“그럼, 누가 이어받았습니까?”
조세프는 슬쩍 고개를 들고 외쳤다.
“그 사업을 이어받은 친구가 바로 오늘 만나실 친구입니다. 오! 피에르! 간만이야!”
안경을 쓴 작달막한 사람이 걸어오다 손을 흔들었다.
“오우, 오랜만이야, 조세프. 이 피에르 콜로를 부르다니, 무슨 일인가?”
유진은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피에르 콜로, 곧 나폴레옹의 은행가 중 한 사람이다.
원역사 미래에 콜로는 다름 아닌 이집트 원정에 돈을 대는 자금책이다.
물론 1793년, 이 시기에는 아마 소규모 금융업자 정도였을 것이다.
그 사람이 마르세유에서 일하고 있을 줄은 유진도 미처 몰랐다.
나아가, 조세프와 벌써 친구가 되어 있을줄도.
“정말, 대단하시군요. 조세프 변호사님.”
변호사, 조세프가 눈을 찡긋거렸다.
“나도, 할 때는 하는 사람이랍니다. 무슈 유진.”
아무래도 유진은 꽤 좋은 사업파트너를 엉뚱한 곳에서 만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역사에는 무능한 군주로 남아버렸던, 이 남자 조세프를.
***
18세기 말, 금융업자는 현대의 벤처사업가들과 똑같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리고 하이 프레셔를 받는다는 점에서.
피에르 콜로도 마찬가지다.
1774년생, 아직 20살이 채 안 된 문자 그대로 애송이 금융업자다.
그저 마르세유에서 돈놀이를 시작한 모험심 강한 청년에 불과했다.
만약 베어링스 뱅크가 갑자기 마르세유를 떠나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해서, 기회를 잡았지만 부담이 장난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안경을 쓴 채, 상대를 노려보는 것도 그래서 생긴 버릇이다.
“이런 꼬마랑 대체 뭘 하겠다고 부른 거야? 조세프?”
본인도 애송이라는 건 신경 쓰지 않는 말투다.
그러나 사람 좋은 조세프는 화를 내는 대신, 친밀하게 달랬다.
어쨌든 콜로가 베어링스 뱅크의 사실상 대리인 것은 사실이고, 또 유진이 너무 어린 것도 사실이니까.
“너무 그러지 말게, 콜로. 이쪽은 유진 드 보아르네일세.”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고. 이 꼬마 말고.”
“라파예트 장군 알지? 그 분의 최측근인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 장군의 장남일세. 이 소년이 말이야.”
그때서야 콜로는 조금 관심 가는 눈으로 유진을 보았다.
라파예트, 본래는 이미 실각했어야 하는 혁명 초기 주도자.
그러나 유진의 개입으로 오히려 발미 전투의 승장이 된 남자다.
아직 프랑스의 야당격인 [푀양]파의 수장으로 활동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라파예트의 최측근 아들이라면, 금융업자라면 조금 관심을 가질 법했다.
그 순간 유진이 소개장을 내밀었다.
“우선, 이 소개장을 보아주시죠.”
카페에 앉은 콜로는 안경을 고쳐쓰며, 유진이 내민 소개장을 보았다.
“흐음, 무슈 레카미에의 소개장이로군? 이 분이라면 나도 알지.”
“파리의 제 자금을 대신 굴려주고 계시죠.”
“금액이 얼마인데? 뭐, 100리브르쯤 되나?”
그 순간 유진이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2천만 리브르.”
순간, 콜로가 입을 쩍 벌렸다.
옆에서 구경하던 조세프도 똑같이 입을 쩍 벌린 모습이란 게 이색적이다.
2천만 리브르는 레카미에도 홀로 굴리기 어려운 거금이다.
당연히 콜로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금이기도 했다.
콜로는 당혹해 말을 더듬었다.
“너, 너, 너 같은 꼬마가?”
“소개장을 잘 읽어 보는 게 좋겠군요. 무슈 콜로. 물론 내가 어리다는 건 알지만, 돈은 나이를 가리지 않아요.”
“아니, 그야 그렇겠지만. 그래도 이게 말이 되나?”
그때 카페 테이블 반대쪽에서 구경 중이던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내가 보증하죠.”
“당신이 누군데?”
“방크 보아르네 전임 부행장이자 지금은 프랑스 혁명군 소령, 프랑수아 마르소라고 하오. 나도 법률학교를 졸업했지.”
프랑수아 마르소라는 이 작자.
정식 군인이 확실하다.
군복과 계급장이 아니라도, 콜로는 그 몸가짐에서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본래 콜로는 이 마르세유 바닥에서 혁명이 시작될 무렵, 돈놀이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혁명 직후, 영국 함대가 지중해를 누비면서 항구가 봉쇄되어 버렸다.
그 덕에 망하는 사업가들이 속출했지만, 콜로는 그 혼란을 뚫고 살아 남았다.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부친의 연줄로, 군납 루트를 뚫었기 때문이다.
군대에 고기를 납품하고, 거래하면서 콜로는 자본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 자본으로 돈놀이를 하다, 마침 폐쇄 직전이던 베어링스 뱅크 지점장과 연이 닿은 것이다.
그게 지금 베어링스 뱅크 지점을 콜로가 넘겨받은 사연이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 콜로는 군인을 한눈에 알아볼 안목이 있다.
워낙 군인과 많이 거래해봤기 때문에.
문득 어깨에 매달린 계급장을 슬쩍 보이며, 마르소가 웃었다.
“또한 방크 보아르네 드 파리의 부행장 직위를 지낸 몸이기도 하지요.”
같은 소령이라도 어른인 마르소와 아직 어린 유진은 인상이 다르다.
당장 콜로 자신이 압도당할 정도다.
문득 같이 놀라고 있던 조세프도 정신을 수습하고 덧붙였다.
“마, 맞아. 이 소년은 우리 동생, 나폴레옹 장군의 부관이기도 하네.”
안경을 몇 번이나 고쳐쓰며 식은 땀을 흘리던 은행가, 콜로가 유진을 응시했다.
여전히 믿기 어렵다.
그러나 레카미에의 소개장, 혁명군 소령 마르소, 여기에 알고 지내는 변호사 조세프까지 보증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원래 이 소년이 [물주], 베어링스 뱅크의 사업 파트너라 소개장에 적혀 있다.
콜로가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결국 콜로는 한숨을 내쉬며 존대를 취했다.
“좋아, 아니 좋습니다. 무슈 보아르네. 당신의 신용을 인정하죠. 하지만, 여기 마르세유에서는 사업을 하기 꽤 곤란할 텐데? 설마, 파리에서 자금을 갖고 올 겁니까? 이 시국에?”
상대가 보통 애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 마르세유는 이런 어린애가 사업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콜로만 해도 실로 수라장을 거쳐 금융가 한 구석을 차지했을 정도다.
그 순간, 유진의 눈이 빛났다.
“그럼, 자본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콜로가 놀랄 일은 아직도 남은 모양이다.
***
사실 콜로의 지적은 정확하다.
“금괴나 은화를 운송할 상황은 아니죠. 당신 말이 맞아요, 콜로.”
이게 유진이 마르세유에서 새로 은행 지점을 내야 하는 이유다.
어쨌든 이 시대는 전자 송금 같은 게 없다.
돈을 이동시키려면 직접 금화나 은화를 옮겨야 한다.
그런데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는 무려 770킬로미터.
서울에서 부산 거리의 2.5배다.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한 혁명기에 이 거리를 돈을 운송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대에도 방법은 있다.
유진이 싱긋 웃으며 편지로 동봉된 다른 문서를 하나 꺼내 들었다.
-척!
바로 레카미에가 편지로 위장해 보낸 채권이다.
“영국 시티 오브 런던이 발행한 국채입니다. 액수는 10만 파운드.”
시티 오브 런던, 곧 영국 중앙은행이다.
게다가 영국 국채는 이자율이 낮은 대신 안정적이기로 유명했다.
어쨌거나 영국 정부가 지급하는 이자가 후일 전시 때도 끊임없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이 혁명 시대, 유럽에서 가장 신용도 높은 채권인 셈이다.
콜로가 입을 쩍 벌릴 찰나, 유진이 덧붙였다.
“은행을 설립할 초기 자본으로, 꽤 괜찮지 않나요?”
콜로는 뚫어져라 채권을 보다 눈을 번뜩였다.
“이걸 환전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겠군요.”
“당신입니까?”
“내가 바로 베어링스 뱅크 사업을 이어받은 은행가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아주 낮게 콜로가 덧붙였다.
“실은, 베어링스 뱅크 제노바 지점과 밀거래 중입니다.”
제노바, 이 시대에는 독립 공화국인 나라.
나아가 국민공회가 나폴레옹에게 감시를 맡긴 곳이기도 하다.
요컨대 나폴레옹의 부관, 유진에게는 딱 알맞춤인 사업 상대랄까.
유진이 싱긋 웃으며 손을 튕겼다.
“좋아요. 그럼 은행을 설립하죠. 당신에게 10프로의 지분을 주겠습니다.”
“10프로? 아니, 그건 좀 너무 작은데.”
“많은 겁니다. 난 지금까지 레카미에 씨와 프랜시스 베어링 씨 말고는 지분을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곳이 마르세유라는 특수성 때문에 당신에게 지분을 허용하는 겁니다.”
자크 레카미에와 프랜시스 베어링.
아직 신출내기 금융업자인 장 피에르 콜로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물들이다.
그런 거물들과 거래하던 소년.
결코 보통 소년이 아닌 게 확실하다.
집안이든 실력이든, 콜로가 감당못할 힘이 있다.
게다가 이 난세, 혁명군 장군의 부관이라는 군대 지위까지 가진 상대다.
콜로는 뚫어져라 유진을 보다 두 손을 들었다.
“아, 알겠소.”
“빠르게 설립해주길 바래요. 첫 사업을 곧 시작해야 하니까.”
“첫 사업? 뭐요?”
그때 카페 구석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뚜벅, 뚜벅, 뚜벅.
은회색의 머리가 도드라진 전직 장교, 브뤼에였다.
“프랑수아 드 브뤼에, 전직 지중해 함대 소령이오.”
“아, 그, 그러시군요. 그런데?”
“여기, 보아르네 군의 의뢰로 무역 일을 시작해보려고 하오.”
콜로는 이번에도 경악해, 입을 쩍 벌렸다.
“무역이라고? 아니, 지금 여긴 영국해군이 봉쇄 중인데?”
유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밀무역을 해야죠. 마침 우리 방크 보아르네에는 밀무역 전문가도 있습니다. 들어봤을 겁니다. 니콜라스 쉬르쿠프.”
콜로는 이제 입을 다물었다.
상상도 못했던 스케일로 전개되는 사업이다.
그저 베어링스 뱅크가 철수할 때, 은행 지점 건물과 거래처 정도만 넘겨 받았던 소금융업자에게 감당키 어려울 정도다.
그렇지만 또한 콜로도 난세 혁명기의 금융가.
장래, 원역사에서는 무려 이집트 원정 자금을 조달하는 업자가 될, 콜로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정말, 이거 대박이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겠군! 좋소! 시작해 봅시다!”
이로써 방크 보아르네 마르세유 지점장을 유진은 획득했다.
또한 덤으로 옆에서 감탄의 눈길로 보는 조세프의 마음도.
***
당연히 남이 승승장구하는 게 배가 아픈 소년도 있기 마련이다.
“빌어먹을, 큰 형이나 작은 형이나 꼬마에게 넘어가서는!”
“왜요, 꼬마가 마음에 안 들어요?”
“당연하지! 구귀족 은수저 꼬마 따위가, 응?”
오늘도 보나파르트 저택 한쪽에서 혁명 팜플렛을 만들던 뤼시앵은 고개를 들었다.
문앞에 마음에 안드는 소년이 싱글싱글 웃으며 기댄 채 서 있었다.
불청객, 유진 드 보아르네다.
“사실 뤼시앵 당신도 그리 나이가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18살이었나?”
뤼시앵은 낯을 찡그렸다.
상대는 이제 곧 13살이 될 소년.
그러나 뤼시앵과 달리 벌써 사회적 지위인 군 지위와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다.
어쩐지 열등감이 치솟아 오른다.
애써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뤼시앵이 축객령을 내렸다.
“건방진 소리하지 말고 나가! 그리고 난, 브루투스다!”
“브루투스는 실패했어요, 뤼시앵.”
“뭐?”
유진은 여전히 웃으며 뤼시앵을 향해 말했다.
“차라리 정말 이름을 바꾸고 싶으면, 페리클레스로 하라구요. 뤼시앵.”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공화정을 복귀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뤼시앵이 자신의 이름을 브루투스로 개명한 것은 이를테면 [중2병] 같은 자아도취의 소치다.
차라리 아테네 민주정치를 성공시킨 페리클레스가 낫지 않겠는가?
물론 감히 페리클레스까지는 꿈꾸지 못했던 게 뤼시앵의 한계기도 하다.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18세 소년, 뤼시앵이 고함쳤다.
“이, 건방진, 꼬마가!”
“로베스피에르와 친해지고 싶지 않아요?”
“당장 꺼지지, 뭐?”
말을 하다 말고 뤼시앵이 유진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날 여기로 보낸 게 로베스피에르예요.”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기수, 단두대의 처형자, 이 시대 혁명을 이끄는 선도적 지도자.
공화파 지지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추앙하는 국민공회 산악파의 리더다.
당연히 자코뱅 클럽 회원인 뤼시앵에게도 선망하는 [영웅]이었다.
사실 나폴레옹의 동생이 로베스피에르를 추앙한다는 게 웃기는 얘기긴 하지만.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지금은 나폴레옹도 공화파를 찬양하는 팜플렛을 쓰는 시절이 아닌가?
어쨌거나 로베스피에르와 친해질 수 있다는 말에 두근대던 뤼시앵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건 왕비를 살린 널 죽이려는 게 아닌가?”
“반대죠. 살리려는 거죠.”
“어째서 그렇다는 거지? 전쟁터로 보내는 게?”
유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난 파리에 있었으면 자코뱅들의 테러로 죽을 몸이었다구요. 또, 툴롱에선 본래는 전투에 참가할 예정이 아니었죠.”
“그럼 왜 전투에 참가했지?”
“그야, 당신 형 때문에.”
문득 유진이 차갑게 웃으며 뤼시앵에게 쏘아 붙였다.
“당신 형은 당신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거든.”
뤼시앵은 불시에 찔린 기분으로 눈을 깜박였다.
그러나 유진은 굳이 더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뤼시앵은 아직 어리다.
혁명의 이상에 도취해 있고, 또한 탁월한 형 나폴레옹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득하다.
괜히 강제로 설득한다면 더 엇나갈 가능성이 높다.
원역사에서도 나폴레옹이 강압한 결과, 뤼시앵은 나폴레옹 반대파로 활약한다.
유진은 가볍게 뤼시앵을 향해 말했다.
“뭐, 어쨌든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요. 당신이 언제 로베스피에르와 얘기라도 해보겠어요?”
“그, 그건. 그분은 진정한 혁명가라면 만나주실 거다!”
“천만에요. 지금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운운하던 사람 목 자르기 바빠요.”
진실을 농담처럼 입에 담으며 유진이 눈을 찡긋거렸다.
“그래도, 파리에 가면 소개는 시켜줄게요. 어때요?”
혁명의 우상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이것은 현대로 비유하자면, 아이돌 광팬이 아이돌을 만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뤼시앵 보나파르트는 결국 굴복했다.
짐짓 퉁명스런 태도로 뤼시앵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분간, 마르세유에서 어떻게 하나 지켜보겠어.”
다시, 뤼시앵의 방 밖으로 나올 찰나, 수행하듯 유진을 따르던 이폴리트가 휘파람을 불었다.
“와, 완전히 자존심 엄청난걸.”
“저래뵈도 할 때는 하는 사람일걸. 할 때만 하는 사람일거라 문제지만.”
“그런 걸 언제 또 간파했냐? 도박사의 감이냐?”
유진은 피식 웃다 고개를 저었다.
“진짜는 그게 문제가 아냐.”
“뭐가 문제인데, 그럼?”
“이폴리트, 나폴레옹 장군이 우리 어머니를 노래 불렀다고 했던 거, 잊었어?”
툴롱에서 결심했던 게 살짝 흔들리는 걸 느끼며, 유진이 낮게 말했다.
“우리 어머니를 나폴레옹 장군과 정말 다시 만나게 할 것인가, 그게 문제지.”
결국 문제의 관건은 하나다.
조세핀을 나폴레옹과 결혼시킬 것인가.
이 모든 난관을 뚫고서라도.
어쨌든 유진이 조세프와 뤼시앵, 두 보나파르트의 마음을 조금, 얻은 날이었다.
바로, 각자가 원하는 [이익]의 공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