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34)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33화(34/547)
(33) 은행 오너 유진이 보나파르트의 첫사랑을 만나다
1793년 5월, 마르세유에 [방크 보아르네 드 마르세유]가 탄생했다.
“자, 마르세유의 기업가들에게 대출은 저리로, 예금은 고리로 돌려드립니다! 핫핫!”
햇살이 따사로운 마르세유 도심 대로, 카네비에르.
이 이름은 사실 [대마초]라는 뜻이다.
물론 대마초를 이곳에서 팔아서 붙여진 이름은 아니고, 대마 바구니와 밧줄을 생산하던 곳이라 붙은 이름이다.
항만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대로라 상업 활동이 활발하다.
그중 남부 출신 구귀족 명문, 노아유 공작 저택이 마침 비었다.
사유야 당연히 혁명 때문에 망명한 탓이다.
이 틈을 이용해 유진이 마르세유 사령부가 몰수한 저택을 불하받았다
-턱!
10만 영국 파운드의 자금을 기초자본으로 하는 은행 금고가 닫히는 게 보인다.
1층은 단연 방크 보아르네 드 파리와 똑같이 카페다.
은행장은 단연, 피에르 콜로.
지금 점원을 고용하고, 인허가를 내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다.
그럼 누가 은행 개장 소식을 알리며 거리에서 홍보중일까?
다름 아닌 프랑스 혁명군 소위, 이폴리트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사실 군복이다.
그 꼴을 은행 1층, 카페 안에서 구경하던 마르소가 입맛을 다셨다.
“군인이 저래도 될까, 유진?”
당연히 유진도, 마르소도, 그리고 이폴리트도 모두 아직 군인이다.
유진은 나폴레옹 준장의 전속 부관.
마르소는 마르세유 사령부 참모.
그리고, 이폴리트는 부대 병참지원 상사다.
요컨대 지금 군인이 군무는 하지 않고 은행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뒤에 유진이 있어도, 자칫 군 사찰이라도 나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유진은 태연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나폴레옹 장군도 신경 안 쓸 거예요. 오히려 [하숙비]로 집안이 풍요로워져서 더 좋을 걸요?”
“그 하숙비가 20만 리브르라니, 물가 폭등이 실감나는군.”
“뭐, 나폴레옹 [클럽] 가입비라고 생각하면 별로 비싸지도 않아요. 앞으로 자코뱅 클럽보다 더 뜰 걸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유진은 슬쩍 진실을 얹었다.
현재 유진과 이폴리트는 보나파르트 자택에 머무르고 있다.
대저택, 노아유 공작 맨션을 손에 넣었음에도.
꽤 낡고 작은 방 한 칸을 사용하는 대신 유진이 지불하기로 한 ‘하숙비’는 무려 20만 리브르다.
혁명 전이라면 파리 고등법원장의 급여와 동등한 금액이다.
물론 지금은 물가 폭등 때문에 가치가 5분의 1로 줄었지만, 그래도 거액임은 분명하다.
보통 금융가라면 이런 짓은 돈이 아까워서 하지 못한다.
그러나 유진은 아주 손쉽게 행했다.
왜?
그야 보나파르트 가문, 나아가 나폴레옹의 [서클]에 제대로 진입할 절호의 기회니까.
지금이야 자코뱅 클럽이 대세지만, 딱 2년만 지나도 판이 바뀐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를 마르소는 다시, 입맛을 다셨다.
“그거 말인데, 계속 보나파르트 장군 아래 있을 거야? 나야 공화주의 신념에 반했지만, 넌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은데.”
굳이 마르소가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당연히 유진을 보호하고, 보좌하고, 보살피기 위해서다.
유진 스스로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마르소가 보기에 유진은 너무 똑똑한 ‘애’다.
어른으로서 옆에서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척 강하다.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에게 반했기 때문이다.
혁명 정신에 투철한 장군이라는 이유로.
순간, 눈썹을 치켜뜨던 유진이 묘하게 웃었다.
“마르소, 이 시대에는 신념을 보면 안 돼요.”
“왜지?”
“혁명 전에 공화주의 신념, 있었어요?”
마르소는 눈을 깜박였다.
물론 혁명 전에도 마르소는 사회 불만이 많은 청년이었다.
그러니 바스티유 함락까지 달려갔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공화주의를 생각했던가?
그렇지는 않다.
유진은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시대 흐름은 분명 절대군주제의 붕괴가 맞아요. 하지만, 공화제는 섣부른 시대입니다. 그 증거가 지금 파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형들이죠.”
기요틴은 이미 도입되었다.
아직 공포정치 시대처럼 대량으로 죽지는 않는다.
그래도 반역자로 몰린 이들은 끌려가 처형당하고 있다.
그 점을 헤아리다 마르소가 낯을 흐렸다.
“그건, 일시적인 현상 아닐까?”
“곧, 툴롱보다 더 심한 사태가 벌어져도 그렇게 말할 건가요?”
“무슨 말이야, 그게?”
유진은 이제 필연적으로 발생할 사건을 입에 담았다.
“내전이 벌어질 거예요, 조만간.”
바로 방데 내전이다.
프랑스 서남부, 방데 지역에서 곧 반혁명 반란이 일어난다.
사실은 소요사태는 3월, 이미 툴롱처럼 일어난 뒤다.
그러나 본격적인 무력충돌이 벌어지는 게 바로 5월 이후의 일이다.
지금쯤 한창 왕당파 귀족들과 신앙심 깊은 농민들이 봉기 준비를 할 거라, 유진은 짐작했다.
본래는 마르소가 출세하는 게 이 내전이다.
나아가, 연인을 잃는 참극도 겪는다.
자신에게 주어졌을 영광과 비극을 전혀 모를 마르소가 놀라 외쳤다.
“어디서? 어떻게? 누가?”
“그야 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 파리는 혁명가들이 너무 빨리 앞서나가고 있어요. 도시 부르주아나 상퀼로트 들이야 따라가겠죠. 하지만, 프랑스 국민 대부분은 도시민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아.”
마르소는 유진의 시선을 따라가다 납득했다.
“농민이군.”
이폴리트의 외침에 이끌려, 은행을 구경 오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밀짚모자와 허름한 옷을 입은 이들.
도시 부근에서 [대마]를 키우는 농부들이다.
사실 이폴리트는 파리를 생각하고 기업가 대상 홍보를 외쳤지만, 정작 마르세유에서 저금할 여유를 가진 이들은 농민인 것이다.
나아가, 애초에 프랑스 국민 90프로가 농민이다.
물론 이 시대에는 영국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든 그렇지만.
그런데 농민의 특성이 있다.
유진이 가볍게 그 점을 지적했다.
“농민들 대부분은 왕이야 어찌 됐든, 신앙은 돈독하죠. 그런데 혁명이 뭘 하죠?”
“교회를 때려 부쉈지.”
“그것만 한 게 아니죠. 농민들이 삶을 의지하던, 교회 조직을 파괴했어요. 물론 국가가 지방을 통치하는 과정이지만, 농민들 입장에선 삶의 토대가 붕괴된 상황이라구요.”
그게 방데 반란의 진짜 이유다.
무려 30만이 넘는 사람이 학살당하는 내전.
문득 심상히 말을 하던 유진은 손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알고 있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사건.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일단 툴롱으로 갔고, 또 마르세유로 나폴레옹을 따라 왔다.
하지만 그걸로 전부 해결된 걸까?
혹시 구할 수는 없는 걸까?
그때다.
“유진 소령님, 그럼 그때는 어쩌실 겁니까?”
문득 말이 없어, 있던 것도 잊었던 루이 투르네가 물었다.
사실 투르네만이 아니라, 자코프 엘리와 장 고미도 함께 있다.
툴롱 전투 때부터 지금껏 군에 입대하면서까지 유진을 따라온 것이다.
파리 시절에는 보안으로, 지금은 부관 경비병으로 일한다.
마르티니크로 떠날 때부터 따지면, 벌써 4년이나 함께했다.
공기처럼 쉽게 잊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유진은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유진이 경호원격인 투르네를 보며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투르네 소위?”
“여기 고미도, 엘리도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혁명], 분명 위험하다고. 그러나 유진 소령님과 함께라면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고맙군요.”
그런데 단순한 빈말이 아닌 듯, 이제 소위로 진급한 투르네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니 묻는 겁니다. 내전이 일어나고, 시민들은 처형당하고, 전쟁이 벌어집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심지어 소령님이 지키려던 입헌군주제도 무너질 판입니다.”
혁명기란 옛 사회가 무너지는 시대다.
그 말은 예전에 강고했던 권력이 사라지고, 모든 게 요동친다는 뜻이다.
당장 혁명 전만 해도 하늘 같은 권력자였던 왕이 죽었다.
이런 시국에 유진은 굉장히 현명한 행보를 해왔다.
금융으로 자금을 모으고, 다시 정치권에 비호세력을 만들었으며, 위험해지자 군부로 와서 군공을 세웠다.
분명히 이 혼란기를 헤쳐나갈 [계획]이 있어 보인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확신을 가진 리더를 원한다.
지금, 유진 주위에 있는 이들은 유진을 리더로 여기는 것이다.
그 믿음이 유진의 심장을 격동시켰다.
이 믿음에 정말 부응할 수 있을까?
그때 마르소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아하니 그냥 은행가로 끝낼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유진은 잠시 격동하던 심장을 누르며 피식 웃었다.
“은행가가 어때서요? 앞으로 금융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 텐데.”
“뭐? 언제?”
“글쎄요. 한 백년 내에?”
농담처럼, 역시 진실을 말하며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 말 믿고, 나폴레옹 장군 아래 머물러요. 시대의 격랑, 반드시 뚫을 인물입니다.”
나폴레옹 클럽에 가입해라.
이게 유진의 간명한 해법이다.
모두가 반신반의하며 유진을 볼 찰나였다.
“제발, 도와주게. 조세프!”
문득 은행 쪽에서 터져나온 외침에 모두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보아르네 마르세유 은행의 법률고문, 조세프가 누군가에게 잡혀 쩔쩔매고 있었다.
아마도 조세프가 은행을 구경하러 들렀다가 지인을 만난 모양이다.
그런데 그 지인이 행색이든, 기색이든 범상치 않았다.
혹시 첫 손님이라면, 그냥 서투르게 대할 수 없다.
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가섰다.
“무슨 일이에요? 조세프 법률고문님?”
“아니, 그게. 아시는 분인데. 지금 사업상 엄청나게 곤란하신 상황이라. 하, 이것 참.”
“어떤 일인데 그러세요? 무슈? 무슨 일이십니까?”
옷은 고급이다.
허나 제대로 갖춰입지 못해 추레하고, 안색은 지극히 창백하다.
당장 누군가 잡아주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은 노인.
그런데 눈빛 하나는 형형했다.
확실히 범상치 않은 노인이 유진을 힐끗 보다 낯을 찌푸리며 조세프에게 물었다.
“뭔가, 자네 애인가? 설마, 자네 결혼했나?”
“무, 무, 무슨 말씀을! 전 총각입니다! 게다가 이 분은 여기 은행의 실소유주예요!”
“뭐? 이런 꼬마가? 거, 자네가 총각이라니 다행이긴 한데.”
노인은 허탈하게 웃으며 은행 앞,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가 사위 삼고 싶었거든. 하하! 꼴이 이래서야, 안 될 얘기지만.”
그 순간, 유진은 눈을 크게 떴다.
조세프 보나파르트의 장인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확인 차, 유진이 노인을 향해 정중히 물었다.
“무슈,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응? 나 말인가? 프랑수아 클라리라고 하네. 이 마르세유에서 조그만 커피 무역을 하고 있었지.”
“아니, 작진 않지요. 클라리 상회라고 하면, 다들 알아주지 않습니까? 이 조세프가 보장합니다.”
슬쩍 끼어드는 조세프의 말에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노인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 노인의 자식은 문제다.
유진은 노인, 클라리를 은행 안쪽으로 끌어들이며 싱긋 웃었다.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무슈 클라리. 저희 은행이 도와드릴 수도 있을 테니.”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던 자.
그러나 피할 수 없다면, 직접 부딪칠 수 밖에.
바로, 데지레 클라리의 부친.
그게 누굴까?
나폴레옹의 첫사랑인 여자다.
***
그 어떤 영웅도 첫사랑 정도는 있다.
데지레 클라리, 나폴레옹의 첫 약혼자.
원역사에서 회고록에도 나폴레옹은 데지레를 잊지 않고 남겼다고 한다.
다만,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렇듯 나폴레옹은 데지레에게 애정보다, 미안함을 가득 담아 썼다.
왜?
버리고 파리로 가서 조세핀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 후 데지레는 스웨덴의 왕비가 된다.
그래서 딸 때문에 역사에 남은 남자가 있다.
바로 유진의 눈앞에 있는 프랑수아 클라리다.
물론, 1793년 현재는 프랑수아 클라리가 훨씬 유명하겠지만.
“휴, 우리 사업이 진짜 힘들다네. 원래 난 무역상이거든. 레반트와 신대륙에서 물건을 수입하고, 또 팔고. 이게 우리 상회 사업이지.”
아주 심상하게 말하지만, 사실 프랑수아 클라리의 사업 규모는 엄청나다.
레반트란 동지중해를 말한다.
요컨대, 프랑스의 지중해 방면 무역 사업가가 프랑수아 클라리의 직업이다.
이곳 마르세유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사업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인자의 지위를 가진 게 바로 프랑수아 클라리다.
마르세유 상인들의 연합체, 상공회의소의 의장을 지내고 있는 인물이니까.
현대 한국에 비유하면 부산 출신 상인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옆에서, 마당발 변호사 조세프가 커피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게, 이 커피 사업이시지. 뭐, 비누도 취급 하시지만 말이야.”
“잘 아시는 것 같군요? 무슈 조세프.”
“당연하지 않나? 이 분은 마르세유 제일가는 부자야. 마르세유 상공회의소의 1인자시라고!”
그러자 클라리가 미소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 정도는 아닐세. 기껏해야 백만 리브르 정도지. 여기, 은행과는 비교할 수도 없어.”
1백만 리브르.
사실 유진이 2천만 리브르를 다루니,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현대에도 그렇지만 은행은 금전이 전부인 사업이다.
그러나 무역상은 금전 외에 부동산과 교역상품, 신용거래를 동시에 소유한다.
그러니 개인 재산이 백만 리브르라고 하면, 그 10배 이상의 거래대금을 취급하는 업자란 얘기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 것이다.
유진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한데, 교역이 막히신 거군요?”
“그렇지. 영국 함대 때문이야. 덕분에 사업 전반이 멈추고 현금 흐름이 막혀 버렸어. 옛날 같으면 비누라도 수제공장을 돌려서 현금을 융통했을 텐데.”
“마르세유 시 당국이 그것도 막고 있다는 거죠?”
흠칫 놀라는 프랑수아를 응시하며 유진이 말했다.
“스타니슬라스 프레롱.”
익숙한 이름에 듣고 있던 마르소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인간, 프로방스의 학살자 아니야? 툴롱에서도 저지르려고 했고.”
“맞아요. 이 마르세유에서도 똑같은 일을 했죠. 문제는, 그 자가 마르세유 시정 감시관 겸 이 지역 지사로 부임했다는 거죠.”
“뭐?”
놀란 마르소를 향해, 유진은 프랑수아를 흘깃 보며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여기, 무슈 클라리가 공화파 지지자가 아니란 거구요.”
프랑수아 클라리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프랑수아는 왕당파 지지자다.
혁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꽤 많이 냈다.
해서, 남부 프랑스에 반란이 일어날 때 프랑수아도 이른바 [불온분자]로 찍혔다.
이미 아들 중 하나는 당국의 낙인과 혁명의 혼란이 괴로워 자살했을 정도다.
은행에 단순히 돈을 빌리러 온 프랑수아가 몸을 떨며 말했다.
“나, 나는, 그러니까.”
“괜찮아요. 무슈 클라리. 당신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소개가 늦었군요.”
“무, 무슨 말인가?”
유진은 싱긋 웃으며, 예법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정식으로 소개하죠. 저는 유진 드 보아르네, 보아르네 자작의 아들이며, 구 왕실의 시동이었던 자입니다. 또한.”
순간, 유진의 말에 클라리는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왕비 폐하를 살린 자로 혁명정부에 낙인찍힌 요주의 인물이죠.”
요컨대 단순히 구 왕실 옹호자인 클라리와 비교할 수 없는 위험분자다.
그러니 왕실 옹호 같은 일은 얘기해도 무방하달까.
반면에 방금 전까지 신나게 떠들던 조세프는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우리 고용주님 위험분자였어? 갑자기 우리 동업, 취소하고 싶어지는데?”
“어이, 무슈 보나파르트. 그냥 요주의 인물이기만 했으면 죽였지, 이 애가 소령이 됐겠어요? 12살 짜리가 소년병으로 군대 뛰는 것도 이례적인데.”
“어, 그러네? 이폴리트 자네 말이 일리가 있는데?”
설득된 조세프가 고개를 끄덕일 찰나, 클라리는 기대에 찬 눈으로 유진을 정시했다.
“그럼, 도와줄 건가?”
순간, 유진이 손뼉을 쳤다.
-짝!
이곳, 마르세유 지점은 파리 본점처럼 1층에 카페를 만들었다.
손님이 없는 카페 한쪽,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시던 한 30대 남자가 일어났다.
군복을 입고 있지 않지만, 태도에서 군인임이 역력히 드러나는 절도 있는 몸가짐.
전직 지중해 함대 소령, 프랑수아 드 브뤼에다.
유진이 브뤼에에게 물었다.
“무슈 브뤼에, 쉬르쿠프 선장은 어떻습니까? 며칠 전에 왔다고 신고하던데.”
“배 타는 솜씨 시험해 봤습니다. 괜찮더군요. 해군에 있을 때 그런 부하가 있었다면, 내가 툴롱에서 잡히지 않았을 것 같던데요.”
“좋아요. 첫 번째 사업 시작합시다.”
유진이 클라리를 돌아보며 일렀다.
“클라리 상회에서 커피가 필요하다고 했죠?. 밀수입 루트를 알려주면, 그걸 여기 브뤼에 함장이 가져올 겁니다.”
“뭐, 뭐라고? 밀수입?”
“무슈 브뤼에는 지중해 함대 엘리트 장교 출신입니다. 지중해 함대가 어떤 함대인지는 아시죠?”
당연히 지중해 거물 무역상이었던 클라리가 알 수 밖에 없다.
프랑스 제일함대이자 지중해 방면 최고 바닷사람만 모이는 곳.
영국의 함대가 봉쇄를 펼친다 해도, 그 틈을 반드시 뚫고 이탈리아까지 도달할 선수들이다.
전직 해군장교, 브뤼에가 정중히 인사했다.
“잘 부탁합니다, 무슈 클라리.”
눈을 굴리던 클라리는 벌떡 일어나, 브뤼에의 손을 마주 잡았다.
계산이 끝난 것이다.
이 정도의 도움이라면 무역 사업 재개가 가능하다.
비록, 불법 밀수입이겠지만.
“고, 고맙소!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소!”
그때, 문득 은행 1층 문을 뚫고 한 사람이 달려왔다.
바로 은행 지점 책임자, 콜로였다.
이미 클라리와는 안면이 있는 콜로가 클라리를 향해 외쳤다.
“클라리 씨! 큰일났어요!”
“무슨 일인가? 사업상 급한 자금이라면, 여기 무슈 보아르네가 해결해주기로 했는데?”
“어, 아직 그 얘기는 안 꺼냈는데요? 물론 그렇게 되긴 하겠습니다만.”
유진이 피식 웃으며 대꾸할 찰나, 콜로가 비명처럼 부르짖었다.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에요! 당신 아들, 에티앙이 잡혀갈 판이라구요! 군인들한테!”
요컨대, 학살자 프레롱이 움직인 것이다.
구 왕당파 마르세유 최고 부자를 작살내기 위해서.
***
도시 최고 부자도 혁명기에는 공평히 죽는다.
“살려줘!”
에티앙 클라리, 36세의 상인이 병사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클라리 상회에 남은 재고품을 처리하느라 바쁜 하루였다.
그런데 갑자기 군인들이 쳐들어 오더니 강제로 감옥에 끌고 가려는 것이다.
평소라면 오해라고 풀려나거나, 혹은 법률 절차에 따라 구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혁명정국, 그것도 국민공회 파견의원이 도시를 지배하는 시기다.
연초에도 프레롱의 지시로 ‘불온분자’들이 감옥에 끌려갔다가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때문에 클라리 일가는 필사적으로 병사들에게 매달렸다.
“안 돼요! 오빠 데려가지 말아요!”
“대체 우리 에티앙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제발!”
“이렇게 빌게요! 감옥만은!”
에티앙의 모친, 모친 프랑수아즈 로즈 소미.
여동생 줄리 클라리.
그리고, 데지레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책임자인 전직 국민위병이자 현직 하사관, 필립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이 자는 반혁명분자들과 접촉한 혐의가 있어! 프레롱 지사님의 명이다! 물러나지 않으면 쏜다!”
총을 들이대는 병사들 앞에서 여자들이 얼어붙을 찰나였다.
“머, 머, 멈춰!”
갑자기 사람 좋게 생긴 청년이 뛰어들어 여자들과 병사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총이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청년, 조세프는 찾던 사람을 찾았다.
클라리 집안의 딸, 줄리를 발견한 조세프의 눈이 빛났다.
“주, 줄리. 괜찮소?”
“조, 조세프! 에티앙 오빠를 지금 군인들이!”
“거, 걱정마시오!”
조세프는 배에 힘을 주며 목청을 높였다.
“난 나, 나폴레옹, 아니 보나파르트 장군의 형이다! 당장 물러나!”
그러나 완강한 병사, 필립이 콧방귀를 뀌며 마주 고함쳤다.
“아니, 보나파르트고 뭐고. 지금 프레롱 지사님 명령이라고!”
병사들은 나폴레옹의 이름에도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그만큼 프레롱의 위세를 믿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탕!
난데없는 총소리에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길 저편, 소년 한 명이 군인들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피스톨을 들고 있던 유진이다.
유진은 다른 피스톨을 꺼내들며, 냉담하게 말했다.
“보나파르트 장군의 부관, 소령 유진 드 보아르네다.”
“초, 총이다! 지, 지금 이게!”
“다음은 너희 머리통이다.”
단 한 발만 장전된 플린트락 피스톨.
그러나 사정거리 내에서는 사람을 즉사시킬 수 있다.
총구가 필립을 향했다.
“명령불복종은 군법상 즉결처형이다. 모르나?”
어쩐지 본 적 있는 듯한 얼굴.
사실 필립은 정말로 본 적이 있다.
왜냐하면 예전에 유진이 마르세유에 왔을 때, 처음 위세를 부리다 나폴레옹에게 쫓겨났던 바로 그 병사니까.
그러나 유진은 그 사이 훌쩍 컸고, 필립은 기억력이 썩 좋지 않았다.
결국, 총구와 유진 뒤에 있는 다른 장교들의 계급장을 본 필립이 이를 갈며 돌아섰다.
“이, 일단 물러가지만 이 책임, 보나파르트 장군이 져야 할 거요!”
병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자리를 떴다.
유진은 냉랭한 눈으로 그 병사들을 쏘아볼 뿐이었다.
문득 소령 마르소가 머리를 긁적이며 유진에게 물었다.
“괜찮겠냐, 유진?”
“상관 없어요. 프레롱이 감히 보나파르트 장군에게 손은 못 대요. 오히려, 친해지려고 할 걸요?”
“그건 또 왜 그렇지?”
유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 탐욕스런 자가 바라는 게 있죠.”
바로 아직 13살 어린애, 폴린 보나파르트다.
아동 소녀 애호가인 프레롱은 폴린을 탐욕한다.
물론 절대로 내줄 생각은 없다.
사실 나폴레옹도 별로 내줄 생각이 없겠지만 말이다.
그때 이제 막 풀려난 에티앙과 줄리, 그리고 데지레가 유진에게 다가왔다.
“고, 고맙소. 도와줘서.”
“저 애가 장군의 부관이라고? 세상에.”
“어머, 나 본 적 있어요! 아빠 탁자 위에 있던 신문에서!”
문득, 데지레가 유진을 향해 외쳤다.
“공주의 기사, 맞죠!”
아무래도, 이 마르세유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신문에 유진의 삽화가 실렸던 모양이다.
유진은 쓰게 웃다, 소녀 데지레를 보았다.
선량한 눈이 반짝거려, 악의를 품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소녀는 존재 자체로 유진에게 골칫거리 문제다.
“맞습니다. 마드모아젤 데지레.”
바로, 나폴레옹의 첫사랑을 양자가 만났다.
아직, 둘 다 이뤄지지 않은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