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41)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40화(41/547)
(40) 보나파르트가 보아르네와 친밀해지다
격변기, 정상으로 질주하는 사람은 그 주변을 돌보기 쉽지 않다.
이를테면, 동생이라든가.
나폴레옹의 셋째 동생, 19세 청년 뤼시앵은 오늘도 울분을 토한다.
“대체 왜! 나랑 약속도 어기고! 방데로 간다는 거야!”
사실 18세기 말, 뤼시앵의 나이는 충분히 성년이다.
이 나이에 결혼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 말은 제 밥벌이, 아니 빵벌이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혹 건강이나 지성에 문제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사람들을 선동할 정도로 똑똑하다.
코르시카에서도 지역공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파울리 반대운동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 지성과 능력을 뤼시앵은 생산적인 일에 쓰지 않았다.
정치, 오로지 지극히 소비적인 분야에만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남쪽 끝 마르세유에서 만날 수 있는 정치인이라곤 프레롱이 전부다.
뤼시앵의 야망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소물이랄까.
해서, 유진이 약속한 로베스피에르와의 만남이 뤼시앵의 요 몇 달간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마르세유에서 사업만 전념하더니, 방데로 간다는 것이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간만에 본가에 돌아와 수프에 빵을 적셔 먹던 새 신랑, 조세프가 혀를 찼다.
“뤼시앵, 철없는 소리 마라. 보아르네 사장, 아니 보아르네 소령은 나폴레옹의 명령에 따라 군의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거야.”
“브루투스라고 불러요! 형님이야 지금 보아르네 방크인지 카르텔인지 법률고문하니까 신났겠죠! 하지만 난, 그 녀석이 약속한 거 하나만 믿고 있었다구요! 로베스피에르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얘기냐? 지금 파리의 정점에 있는 사람인데?”
조세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물론 유진이 마르세유에서 한창 사업을 확장하면서, 조세프도 고문료를 받아 살림이 윤택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 유진을 옹호하는 바는 조세프가 유진의 법률고문인 것과는 별개다.
군인은 당연히 명령을 따라야 한다.
게다가 로베스피에르가 어디, 문지기 이름도 아니고 쉽게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뤼시앵은 눈을 번뜩이며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모를 거 같아요? 유진 그 녀석이 나폴레옹 형 사실상 출세시킨 거?”
조세프는 빵을 먹다 깜짝 놀라, 수프에 그만 떨어뜨릴 뻔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나폴레옹이야 자기가 잘해서 성공한 거지. 툴롱을 점령했잖아?”
“그 전에! 오귀스트와 만나서 작전권을 얻은 거 아니에요? 오귀스트랑 누가 만나게 했겠어요? 나폴레옹 형이나, 아니면 살리체티 의원이 그럴 힘이 있어요?”
“어, 살리체티는 그래도 나름 의원인데.”
본래 원역사에서는 살리체티가 주선하고, 오귀스트가 적극 받아들이는 게 나폴레옹의 출세다.
그러나 오귀스트와 직접 만나는 일은 전쟁이 끝난 후의 일이었다.
요컨대 유진이 개입한 탓에 나폴레옹의 출세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뤼시앵은 오류 속에서도 정확한 포인트를 짚어낸 것이다.
바로, 유진이 영향력이 있다는 진실을 말이다.
“오슈 장군이 여기 온 것도 그렇고! 마르세유에 오자마자 은행 여는 것도 그렇고! 유진, 그 녀석. 틀림없이 파리에 정말 연줄이 있어요. 그런데 왜, 나한테만 약속을 안 지켜!”
물론 열을 올리는 뤼시앵과 달리, 보나파르트 가문은 평온했다.
대가족답게 이제 제법 커진 집에서 식사를 하던 동생, 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모와 함께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레티치아에게 폴린은 슬쩍 물었다.
“왜 저래요, 뤼시앵 오빠?”
“글쎄, 유진이 약속을 안 지키고 출장 간다고 저런다잖니. 참, 애도 다 컸는데 철이 없어. 이제 슬슬 저 애도 제 밥벌이를 해야 할 때인데.”
“조세프 오빠한테 말해서, 유진네 은행에 취직시키면 안 돼요? 근데, 참. 출장 간다구요?”
레티치아가 문득 귀여워하는 ‘하숙생’ 유진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우편부대? 우체부? 그런 사람들 데리고 방데로 간다더구나. 애가 한창 커야 할 때, 맛있는 것도 못 먹고 가게 생겼으니, 쯧. 루이보다 어린 애를 나폴레오네가 왜 그리 굴리는지.”
넷째 아들, 루이 보나파르트는 1778년생, 15살이다.
이제 막 13살이 되기 직전인 유진보다 3살 위랄까.
후일 원역사에서는 다름아닌 유진의 동생, 오르탕스와 결혼한다.
물론 정작 유진은 생각도 없고, 추진할 의사는 더욱 없지만.
그 결혼을 결사반대할 게 뻔할 장본인, 레티치아가 유진을 걱정하는 것 자체가 역사의 변화 중 하나다.
그런데 폴린이 유진의 부임지에 눈을 크게 뜨며 관심을 보였다.
“음, 방데? 거기가 어디지?”
폴린 앞에서 입맛이 없는 듯 가볍게 빵을 씹던 언니, 엘리자가 대꾸했다.
“학교에서 안 배웠어? 프랑스 서부야.”
“내가 학교에서 공부를 했겠어? 엘리자 언니? 서부면 바닷가야?”
“바다도 인접해 있지. 그리고, 지금 반란의 온상이고.”
그때서야 폴린은 놀라 입술을 벌리며 외쳤다.
“반란의 온상? 그럼 싸울 수도 있겠네?”
반란, 그러니까 내전 상황.
폴린도 아예 경험이 없는 게 아니다.
바로 올해 초 코르시카에서 탈출할 때 겪었던 일이다.
총을 들고 알던 사람들이 서로 죽이며, 증오에 찬 얼굴로 노려보는 광경.
끔찍한 산 자의 지옥이다.
물론 엘리자는 냉담하게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군인이 뭘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폴린?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게, 군인이 하는 짓이야.”
폴린은 스푼을 내려놓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평소 바쁘게 오가느라, 얼굴 볼 시간은 가끔 저녁 먹을 때 밖에 없다.
꽤 잘생기긴 했지만, 역시 미남 오빠들이 많은 폴린이야 심상하게 꼬마라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 꼬마가 사람을 죽이는 현장으로 달려간다고 한다.
문득 마음이 조금, 아팠다.
그때다.
“여, 안녕하십니까? 오, 폴린. 아름다운 얼굴이 더욱 아름다워져 가는군요!”
신나게 웃으며 중후한 남자, 스타니슬라스 프레롱이 들어섰다.
이 마르세유의 권력자, 39세의 어른, 그리고 폴린에게 홀딱 빠진 남자.
폴린은 이런 숭배를 사랑한다.
활짝 웃으며, 폴린이 프레롱을 맞이했다.
“어머, 스타니슬라스 지사님. 간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그러나 웃으면서도, 폴린의 머릿 속에서는 한 소년이 떠나지 않았다.
유진 드 보아르네가.
***
그럼, 정작 유진은 폴린을 생각할까?
그럴 틈 따위 없다.
마르세유 외곽 사령부 연병장에서 유진은 최종 점검을 하는 중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퍼거슨 라이플을 잽싸게 돌려, 유진이 장전을 취했다.
나사를 돌려야 해서, 상당히 난이도가 있다.
아직도 병사들 중 일부는 장전 자체를 어려워할 정도다.
원역사에서 퍼거슨 라이플이 대세가 되지 못한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이 라이플이 일반 머스킷보다 유력한 장점이 있다.
출발 전, 이 장점을 최소한 지휘관급은 알아야 한다.
그게 유진이 마르소와 뒤로크를 바쁜 출발 전야에 특별히 부른 이유다.
시범을 보던 마르소에게 유진이 설명했다.
“후장식 소총은 전장식과 장전 방법이 달라요. 나아가 전투법도 다르죠.”
“어떻게 다르단 거지?”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자세로 연사가 가능하죠.”
순간, 유진이 총을 들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척!
아직 소년이지만 유진도 전장을 뛰어다닌 몸이다.
게다가 성장기라 훈련을 받는 족족 몸놀림도 빠르게 발전 중인 상태였다.
그렇지만 지금 취하는 자세는 18세기 말, 군인들에게는 아주 낯선 자세다.
엎드려쏴, 자세.
그러니까 포복사격 포즈다.
“엎드려서, 총을 쏜다고?”
마르소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 시대 총은 전장식이다.
그 말은 총알을 앉아서 총구 앞으로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 시대에는 엎드려서 쏘는 사격자세가 거의 없었다.
그러면 포복사격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안정적이고, 명중률이 높고, 무엇보다 저격이 가능해진다.
적에게 잘 보이지 않는 낮은 위치나 은폐 위치에서 적을 향해 사격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유진은 마르소 앞에서 바로 그 포복사격의 자세를 선보였다.
-탕! 키릭, 철컥! 탕!
쏘고, 다시 재장전하고, 다시 쏜다.
현대 소총처럼 빠르진 않지만, 이 시대에는 가히 섬전처럼 느껴진다.
이게 후장식 소총이 갖는 최대 이점, 장전속도다.
그러나 유진은 금방 손이 아파 혀를 내두르며 일어났다.
“으, 죽겠군요.”
“네 키만한 총 쏘니까 그렇지. 반동 못 견뎌.”
“전 피스톨이나 훈련해야겠어요. 하여간, 이게 후장식 소총의 장점이에요.”
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마르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단점은 뭐야?”
유진은 퍼거슨 라이플, 장전구를 들어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가스가 쉽게 새요.”
“뭐? 화약연기 말이야? 어, 그러면 화상 입을 거 같은데?”
“퍼거슨 라이플은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괜찮은 편이긴 해요. 그래도 가스가 장전 장치에서 새는 걸 완전히 피할 수는 없죠.”
이것은 후세 원역사에서 드라이제 라이플이 겪는 문제기도 하다.
완전히 해결하려면 금속 탄피와 노리쇠 폐쇄기술이 도입되어야 한다.
아직은 기술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기도 하지만, 필요성 자체를 기술자들이 모르는 상태다.
이게 유진이 영입한 건마스터, 폴리가 향후 해결해야할 문제기도 했다.
그때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뒤로크가 입을 열었다.
“지란도니 빈트부셰는 어떻습니까. 신성로마제국 군이 간혹 사용하는 병기라고 들었습니다.”
빈트부셰, 그러니까 독일어인데 영어로 바꾸면 에어 라이플, 곧 공기총이다.
엉뚱하게도 이 시대에 벌써 공기총이 있다.
심지어 사실은 16세기부터 유럽의 발명가들이 만든 전례가 있을 정도다.
화약 대신 공기의 기압을 이용해 탄환을 발사하는 도구랄까.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의 발명가, 바르톨로메오 지란도니가 만든 지란도니 라이플은 상당히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다.
특히 관형탄창, 그러니까 길다란 관에 일렬로 탄을 넣는 탄창을 처음 도입한 총이다.
한 마디로 연발이 가능한 총이란 얘기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군에서는 1770년부터, 이 총을 정식으로 일부 도입한 상태다.
그러나 현대에도 그렇듯, 이 시대에도 공기총에는 약점이 있다.
유진은 가만히 그 점을 생각하다 어깨를 으쓱였다.
“식견이 넓군요, 뒤로크. 확실히 공기총은 화약식보다 반동이 적죠. 가스 사고 위험도 없고. 게다가 그 총도 후장식이죠.”
“예, 총알을 여러 개 쓸 수 있다고 합니다. 탄창이란 물건을 끼워넣더군요.”
“20발쯤 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수백번, 아니 천 번 이상 펌프질을 해야 장전이 되죠.”
바로 공기 가스를 충전해야 하는 약점이 있다.
“급박한 전장에서 쓰기 어려워요. 훈련하기도 어렵고.”
“화약이 없을 때는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특수작전이기도 합니다. 또, 폴리도 긍정적이더군요.”
“예?”
문득 연병장의 병사들을 헤치고, 사무엘 폴리가 다가오며 말했다.
“뒤로크에게 들었어. 내전에 간다고? 그럼, 화약 공급이 어려울 수도 있어.”
아무래도 장비를 발주하다가 얘기가 나간 모양이다.
어차피 폴리도 이제 보아르테 카르텔의 일원.
뒤로크의 입장에서는 그리 큰 기밀도 아니니 말해준 모양이었다.
유진은 폴리를 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해줄 수 있어요? 시간이 별로 없는데. 아무리 늦어도, 이번 달, 10월 안에는 출발해야 해요.”
“이미 있어.”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그러자 폴리의 동업자, 프랑수아 프렐라가 껄껄 웃으며 폴리의 어깨를 쳤다.
“아, 몰랐군요? 파트롱. 우리 폴리가 후장식 머스킷 개발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입수하라고 지시하더군요. 그 중에서 우리가 역설계하려고 입수한 게 있습니다. 어이, 마차도 갖고 와봐!”
곧이어, 폴리와 프렐라의 군수공장 직원들이 마차를 끌고 왔다.
-잇히이이잉!
수송마차 20대를 준비했다고 뒤로크가 보고한 적이 있다.
당연히 혁명기 마르세유 사령부에서 이런 마차를 준비할 수 있을 리 없다.
모두 보아르네 군수공장에 ‘외상’으로 발주해 마련한 것이다.
그중 하나, 특별한 장치가 설치된 마차가 있었던 것이다.
공기 펌프가 들어 있는 짐마차를 툭툭 치며 프렐라가 껄껄 웃었다.
“그 문제의 공기 펌프질을 해줄 펌프 마차지요. 오스트리아 군에서 빼돌리느라 고생 좀 했소. 하핫!”
기술 전문성은 없는 대신, 수완 좋은 프렐라가 한몫한 것이다.
유진은 휘파람을 불다 시선을 돌렸다.
문제는 이 총을 병사들이 쏠 수 있느냐다.
“마르소, 우편 특수중대 훈련은요?”
“이미 좀 해놨지. 포복 사격은 오늘 처음 봤지만.”
“이것도 무슈 폴리의 생각인가요?”
마르소가 진중한 얼굴로 유진을 보며 말했다.
“내가 생각했어, 유진. 결국 내 일이니까.”
언뜻 침착해 보이지만, 초조한 눈빛이 보인다.
하루가 늦어질수록 안젤리크의 목숨이라도 위태로워질거라 생각하는 걸까.
그렇지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혼자 가봐야,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마르소도 안다.
그러니 거의 2주 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이제는 한계다.
유진이 가만히 마르소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는 신병기를 도입할만큼, 마르소도 급하고 또한 필사적인 것이다.
“하루빨리 가고 싶은 거군요. 좋아요, 마르소. 내일 출발합니다.”
마침내 출발일이 다가온 것이다.
***
출발 전야, 유진은 당분간 입을 군복과 내복, 양말을 챙기며 지도를 보았다.
“그러니까, 작전 목표가 중요해.”
보나파르트 자택 2층, 하숙방 중앙 테이블에 지도가 펼쳐졌다.
18세기 말쯤 되면 지도도 꽤 정확한 편이다.
특히 프랑스 전도는 도로망까지 어느 정도 그려진 상태다.
행군 계획을 짤 때,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한창 유진이 지도를 보고 있을 찰나, 이폴리트가 옆에서 한가하게 누워있다가 물었다.
“그냥 마르소 애인 구해서 복귀하면 끝. 아니었어?”
“그 애인이 어디 있는 줄 알고? 게다가 원래 출병 명분은 그 지역 우편 상황 점검이라고.”
“어,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유진은 방데와 파리, 그리고 마르세유를 회전하듯 보며 답했다.
“오귀스트에게 편지는 보내놨어. 그쪽, 사령관에게 소개장을 보내 달라고.”
“거긴 좀 멀쩡한 사령관이야? 카르토 같은 사람은 사양하고 싶은데.”
“더 심한 인간도 있을걸? 하지만 그 중 정상적인 사람이 있어. 라인에서 활약한 클레베르라는 사람인데.”
본래는 다름아닌 마르소가 모셔야 할 상관이다.
후일 원역사에서는 무려 이집트까지 나폴레옹, 그리고 유진과 함께 가는 장군이다.
심지어 나폴레옹이 내뺀 뒤에도 이집트 전역을 맡는 책임감 넘치는 인격자다.
그렇기에 학살은 싫어하고, 그 때문에 방데에서는 곧 쫓겨나기도 한다.
일단 유진이 의지하려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때 불쑥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우리 뤼시앵 오빠 얘기는 안 썼다는 거네?”
유진은 깜짝 놀라 문쪽을 보았다.
폴린이 잠옷만 입은 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잘 때라 속옷만 걸치고 있던 유진과 이폴리트 둘 다 당황했다.
게다가 사실 유진이야 아직 애지만, 이폴리트는 20살 청년이다.
그런데 13살 여자애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남자들 하숙방에 들어온 것이다.
당혹감을 감추며 유진이 정중히 물었다.
“마드모아젤 폴린? 무슨 일입니까? 이 야심한 시간에.”
“밤이 깊었으니까 왔지. 음, 무슈 이폴리트? 잠깐, 자리 비켜줄래요?”
“예? 어, 그, 그러죠.”
아예 얼이 빠진 이폴리트는 멍하니 시키는대로 나가 버렸다.
유진과 폴린만 방에 남게 된 것이다.
어쩐지 뭔가 어색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이다, 유진은 슬쩍 셔츠를 걸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폴린?”
그때 폴린이 불쑥 물었다.
“죽으러 가는 거예요, 죽이러 가는 거예요?”
“예?”
“그냥 출장이 아니라면서요. 거의 전쟁이 벌어지는 반란 현장. 그속에 마르소 소령의 애인을 구하러 간다구요?”
어느새 폴린은 유진의 앞에 한 발, 다가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사서 해요? 왕비 재판도, 툴롱도, 그리고 이번 방데도.”
살짝 갈색 기운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가 반짝인다.
유진은 폴린의 별명을 기억한다.
아마도 나중에 붙을 별명이겠지만, ‘하얀 여신’이라고 불리웠다고 하던가.
당연히 폴린의 자유분방한 행실을 비아냥거리는 일화와 함께 붙은 칭호다.
그럼에도 이 순간, 폴린의 아직 어린 얼굴은 그런 얘기를 들을 만 하다.
나폴레옹처럼 꼭, 고전조각 같은 미모다.
살짝 홀린 듯 보다, 유진이 싱긋 웃었다.
“왜요. 친구의 애인을 구하러 가는 게 그렇게 이상합니까?”
“아니, 우리 공주의 기사님은 생각보다 낭만적인 분은 아닌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말이죠?”
폴린은 묘한 미소를 띤 채 입술을 살짝 핥았다.
“난 정치나 군대처럼 성가셔 보이는 건 잘 몰라요. 하지만 우리 기사님이 우리 가족에게 의도적으로 잘해주고 있다는 건 보이거든요.”
반대로 유진은 흠칫 놀랐다.
꼭, 조세핀 같다.
그리 식견이 넓거나 생각이 깊지는 않지만, 눈치가 참 빠르다.
유진이 일부러 보나파르트 일가에 접근하고 있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문득 폴린이 손을 입가에 갖다 대며 깔깔 웃었다.
“호호호! 걱정 마요. 알아도, 얘기 안 할 거고. 또 우리 엄마도 기사님이 마음에 드는 것 같으니까.”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엄마도 온갖 일 다 겪은 사람이에요. 눈치가 없겠어요? 그래도.”
폴린은 눈을 찡긋거렸다.
“기사님이 착한 사람인 건, 보이잖아요.”
비록 의도가 있어서 접근한다고 해도, 사람됨은 보이기 마련이다.
폴린이나, 혹은 레티치아가 보기에 유진은 꽤 괜찮은 사람이란 얘기다.
지금껏 주로 능력을 칭송받아온 유진에게는 아주 생경한 칭찬이었다.
실은 보통의 소년이라면, 이런 성품에 대한 칭찬을 더 좋아할 텐데 말이다.
유진은 어쩐지 겸연쩍어져, 머리를 슬쩍 긁적였다.
“고, 고맙습니다. 마드모아젤, 폴린.”
“그냥 말로만? 뭔가 진심이 없어 보이는데? 오늘 프레롱조차도 나한테 선물을 갖고 왔단 말이에요? 물론 쥐노나 당신 룸메이트 이폴리트도 매일 그렇고.”
“예? 아니, 제가 달리 드릴 선물이. 아.”
다시 당황한 유진이 머뭇거리다, 주머니에 있던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이건 어떻습니까?”
은제 자물쇠가 반짝이는 모습에 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물쇠?”
“무려 루이 왕께서 만드셨던 자물쇠입니다. 옛날에 제가 그 분의 방에 들어갔을 때, 주머니에 넣었던 거죠.”
“어머, 그런 귀한 걸 줘도 되요?”
유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빙긋 웃었다.
“마드모아젤의 환심을 살 수 있다면야. 읍.”
찰나, 폴린이 유진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었다.
아주 따뜻한 감촉이 입술 위를 핥는다.
말캉한 느낌이 입 안으로 새어 들어와 살짝, 입 안을 감싸고 젖힌다.
달콤하기 그지 없는 묘한 향기가 코끝을 알싸하게 괴롭힌다.
분명 서로 물기가 오가는데, 기이하게도 목이 타들어간다.
정신을 차렸을 때, 폴린의 혀가 이미 유진을 떠난 뒤였다.
눈을 깜박이며, 새빨개진 유진을 폴린이 재미있다는 듯 본다.
살짝 붉어졌지만, 오히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라, 당당하기까지 하다.
폴린이 유진의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지금은 여기까지. 다음은, 돌아온 다음에 해줄게요. 무사히 돌아와요, 기사님.”
전장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놀란 유진이 털썩, 침대에 주저 앉았다.
그야말로 포탄이 터진것마냥 귀가 멍멍하다.
심장소리가 요란하게 울린 탓이다.
그 순간, 폴린이 나가기 무섭게, 이폴리트가 뛰쳐 들어왔다.
“야, 너 뭐 했어? 이건 배신이야. 알아?”
“아무것도, 안 했다고. 어, 그러니까.”
“너 공주님 배신할 거 아니지? 한눈 팔면 내가 이른다? 응? 나한테만 배신인게 아니라고!”
이폴리트가 펄펄 뛰는 가운데, 유진은 그때서야 상황을 인지했다.
그러니까, 이건 저 유명한 ‘프렌치 키스’다.
죽을지 모를 전장에 가는 유진에게 폴린이 선물을 준 걸까.
실은 폴린은 프랑스 사람도 아닌데도 말이다.
가만히 입맛을 살짝 다시다, 유진이 쓰게 웃었다.
“정말 화끈하군, 이탈리아 여자는.”
유진이 방데의 전장으로 떠나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다음 날, 유진은 마르소, 이폴리트, 뒤로크와 함께 방데로 떠났다.
1백명의 공기총 무장 특수중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