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419)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419화(420/547)
(419) 에스파냐는 게릴라들의 시초다
그렇다면, 전쟁은 모두 끝난 걸까?
“피해라! 성벽이 무너진다!”
아직 승리의 영광이나 축하 리셉션, 혹은 개선식 따위를 꿈꿀 수 없는 군대도 있다.
사라고사 공략군, 사실 본래는 에스파냐 해방군을 자처하는 마세나 군단이다.
피레네 국경을 기세좋게 돌파한 것은 좋았지만, 사라고사에서 막혀 공방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특히 영국의 신병기, [로켓] 때문에 반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참이다.
그러나 1807년 2월, 드디어 사라고사도 뚫렸다.
-쿠쿠쿵!
지뢰가 터지고 성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다, 참모장 세르보니 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피해가 막심하군요, 원수 각하.”
“오늘 전위에서 싸운 친구들은 제법 잘 싸웠어. 누구라고 했지? 마르크?”
“장 막시밀리안 라마르크입니다. 원래 모로 장군 아래 있었던 친구인데, 이번에 에스파냐 군단에 자원해 배치됐습니다. 용맹하더군요.”
라마르크, 1770년생으로 이제 36세의 장군이다.
본진을 맡은 쉬셰나 후위를 맡은 오노레 레유보다는 전장에서는 덜 화려하지만 건실한 장군이었다.
다만 후일 원역사에서는 쉬셰나 레유, 아니 어쩌면 마세나보다도 유명하다.
왜냐하면 레 미제라블에서 라마르크의 죽음이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지는 탓이다.
물론 지금은 그저 공성전에도 성실하게 임하는 장군일 뿐이지만 말이다.
덕분에 드디어 마세나의 에스파냐 군단도 사라고사의 철벽 같던 방어선을 뚫었다.
마세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망원경을 들었다.
“우디노를 못 데려와서 아쉬웠는데, 충분히 대신할 만하군.”
“이제, 영국놈들도 물러나겠죠?”
“그래. 게다가 사라고사 남쪽은 자연방어선이 없으니, 마드리드까지 단번에 갈 수 있게 되지. 후, 정말 까다로운 적이었어.”
성벽 방향을 자세히 살피던 마세나가 원수봉을 들었다.
“그럼, 진입한다! 사라고사로!”
본진 사단장 쉬셰의 진두지휘 하에 기병연대와 전열보병들이 진격했다.
-두두두!
그런데 사라고사 성채 남문이 시끄럽다.
기실 마세나는 공성전을 벌이면서 기본인 포위망을 일부러 펼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적군을 궤멸시키기보다 사라고사를 점령해 [진군로]를 뚫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중유럽에서 펼쳐진 나폴레옹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 셈이다.
때문에 성벽이 뚫려도 적군은 손쉽게 전장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마세나가 의도한 바이긴 했지만.
저 멀리 남쪽으로 사라지는 병력을 확인한 후, 세르보니가 보고하며 혀를 찼다.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는군요. 저럴 거, 진작에 후퇴하지.”
“아서 웰즐리든, 로마나 후작이든 모두 한계일 테니까.”
“우리 군은 북이탈리아와 남부에서 군수품을 공수해 온 덕에 겨우 버텼군요.”
어쨌든 전쟁은 돈 먹는 하마다.
특별히 패전 따위를 겪지 않은 마세나 군단이지만, 교전이 계속되면 식량과 화약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
아직은 칠레산 초석이 개발되지 않은 시기라, 인도를 차지한 영국보다 프랑스제 화약이 비싼 것도 한몫했다.
다만 유진이 이탈리아 원정 초기에 만들어둔 북이탈리아 보급 시스템이 빛을 발했다.
밀라노를 축으로 토리노의 공업 단지와 제노바의 해상 물류 체계가 연계되어, 니스와 마르세유, 그리고 툴루즈를 지나 사라고사로 보급 물품이 들어온 것이다.
물론 그 말은 마세나 군단이 그간 맛없는 밀라노 [마리 테레즈 콤파니아]의 통조림으로 배를 채웠다는 뜻이다.
마세나가 고개를 내저었다.
“다시는 통조림은 꼴도 보기 싫군. 단검으로 따는 것도 힘들어! 빨리 마드리드나 가자고! 응?”
그때 시가지로 들어서던 마세나는 눈을 부릅떴다.
-키릭, 탕!
실로 밀수꾼 시절 발휘하던 순발력이 없었다면, 마세나는 총구를 보았을 때 이미 절명했을 것이다.
창가 한복판 빛나는 총구에서 발사된 총탄이 고개를 숙인 마세나를 지나쳤다.
바로 사령관 근위대가 총격을 가했다.
-탕! 탕! 탕!
그러나 피탄에도 불구하고 총격은 멈추지 않았다.
-키릭, 탕! 키릭, 탕! 키릭, 탕!
구식 화승총이 분명한 총이 시가지 곳곳에서 튀어나와 저격이 펼쳐진 것이다.
때아닌 맹공에 시가지로 위풍 당당하게 행진해 들어서던 병사들이 일제히 산개했다.
기마에 타고 있던 군단 지휘부도 일거에 물러나야 했다.
군단장 보좌 겸 직할 사단장, 가브리엘 쉬셰 소장이 달려와 외쳤다.
“시가지에서 총격이 쏘아집니다!”
“이런, 군대는 분명 모두 후퇴한 걸 확인했는데, 무슨 일인가!”
“시민, 시민들입니다!”
상황을 돌파하진 못했지만 빠르게 파악한 쉬셰가 고함쳤다.
“시민들이 시가지에서 총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시가전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18세기 말을 겪어온 유럽 군인들은 이런 시가전에 익숙하지 않다.
회전에서 승부를 내거나 아니면 요새 주위에서 싸우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다만 프랑스 혁명기, 내전을 겪었던 군인 마세나는 다른 이유로 놀라 외쳤다.
“이건 말도 안 돼!”
“예? 어, 그렇죠. 시민들이, 완전무장한 군대에 저항하다니!”
“그거야, 우리도 혁명기 때 자주 봤고!”
당황한 쉬셰를 향해 마세나가 부르짖었다.
“지금 말이 안 되는 건, 우리 [해방군]을 공격한다는 거야! 대체, 어째서 에스파냐 시민들이, 우리를 공격하나? 귀족들도 아니고?”
프랑스군은 에스파냐를 침략하기 위해 침공한 게 아니다.
정당한 국왕이자 추방된 카를로스 4세를 다시 세우고, 침략자 영국을 쫓아낸다는 명분이 있다.
카탈루냐 지방에서 호응한 것도 이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시민들이 해방군인 프랑스군을 공격한다?
“누가, 에스파냐어를 할 줄 아는 통역관 데려와! 당장!”
마세나가 다급히 외쳤지만 총성은 멎지 않았다.
-탕!
결국, 에스파냐 군단은 공성전 이상의 피해를 시가전에서 입어야 했다.
***
퇴각하는 군대가 이토록 여유로운 일은 역사에도 드물 것이다.
“이건, 그러니까 [게릴라]입니다.”
사라고사 남쪽으로 가는 길, 비포장 도로가 가득한 산지를 지나며 아서 웰즐리가 말했다.
물론 웰즐리에게 이 정도 길은 완전포장 도로나 다름없다.
어쨌거나 웰즐리와 직계 부하들이 싸워온 장소는 남인도와 데칸고원, 그리고 북인도를 넘나든다.
남부의 마이소르, 북부의 마라타 동맹을 연파한 군대가 바로 웰즐리의 [레드 코트]다.
특히 마라타 동맹과 맞붙은 아사예 전투에서는 5천 명으로 5만을 격파하기도 했다.
다만 에스파냐에 들어온 영국군 다수는 인도 주둔군은 아니라서, 웰즐리 입장에서는 부족함이 많은 신병들이긴 하다.
허나 그럼에도 에스파냐 육군보다는 군기가 바짝 들어, 로마나 후작이 보기에는 정예처럼 보였다.
영국군의 악명 높은 채찍질의 효과로 고분고분해진 병사들을 둘러보다, 말 위에서 로마나 후작이 물었다.
“그, 그게 뭡니까?”
“스페인어로 작은 전투란 뜻이죠. 맞죠, 로마나 후작님?”
“어, 그, 그렇게 해석되나요?”
웰즐리는 껄껄 웃다 눈을 빛냈다.
“제가 힌두인들과 싸울 때 본 건데, 일반 주민들이 무기를 갖고, 시가지나 산지에서 공격을 하면, 아무리 대단한 정규군이라도 격퇴하기 어렵습니다.”
“어, 그건, 확실히 보급에 문제가 생기죠.”
“그런데, 제가 이곳에 와서 보니 마이소르나 코티오테의 전장과 비슷한 구석이 있더군요. 그곳은 열대 밀림이고, 여긴 건조지대인 건 다르지만.”
슬쩍 자신의 승전을 자랑하며 웰즐리가 웃었다.
“충분히 이 방식으로 프랑스를 소모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다 완전히 소모되면 퇴각하겠죠. 단 하나의 요소만 포기한다면, 가능합니다.”
이른바 [게릴라]는 웰즐리가 처음 원역사에서도 만든 용어이긴 하다.
에스파냐에서 프랑스군과 싸우며, 웰즐리는 정면승부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워낙 정예로 다져진 그랑다르메에 비해 영국 본토 육군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스파냐 군대는 더욱 지리멸렬했다.
그래서 웰즐리는 인도에서 보았던 저항군의 전법을 이베리아 반도에 도입했다.
요컨대 지형지물과 도시, 그리고 민심이반을 이용해 적을 괴롭히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프랑스군의 오만함과 결부되어 더욱 효과적으로 발휘되었다.
물론 웰즐리가 유럽에는 처음 [양식화]하여 도입하는 방식이니, 로마나 후작은 처음 듣는 용어다.
“포기? 뭘 말입니까?”
“수도, 왕실, 정부입니다.”
“하나가 아니군요. 잠깐, 뭐라구요?”
로마나 후작이 입을 쩍 벌릴 찰나, 웰즐리가 자기 아버지 연배인 후작을 보며 웃었다.
“나폴레옹을 보십시오. 모든 전쟁에서 단 하나의 요소, 적군에만 집중합니다. 지금은 신세기, 19세기입니다. 19세기 [현대전]은 오직 군사력의 궤멸에 초점을 맞춰야 하죠!”
물론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전쟁의 트랜드가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로마나 후작은 프랑스군과 꽤 자주 접촉한 신식 군인이다.
허나 왕을 포기하자는 소리에 후작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적군을 격파하려고 우리 국왕을 포기하자구요? 정부도? 수도까지?”
“이거 왜 이러십니까, 후작. 어차피 새로운 국왕 따위, 영국과 대귀족, 거기에 프랑스 망명 왕족들이 세운 허수아비 아닙니까?”
“어흠! 그건, 함부로 내가 말할 게 아니로군요.”
너무 노골적인 웰즐리의 말에 로마나 후작은 헛기침을 했다.
그렇지만 사실 새로운 왕, 페르난도 7세가 허수아비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게다가 영국조차도 아니고 프랑스 망명 왕족인 자칭 루이 17세가 섭정처럼 앉아 있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건 프랑스를, 나폴레옹을 스페인에서 물리치는 겁니다. 그러자면, 프랑스의 핵심, 군사력을 격파해야 합니다. 하지만 스페인에는 그럴만한 군대가 없죠!”
결국 로마나 후작은 웰즐리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군요.”
“그럼 주민들을 이용해야죠! 프랑스에 적개심을 불태우게 만들어야 합니다. 힌두인들은 종교적 모욕감을 받으면 날뛰더군요!”
“어, 확실히 프랑스인들은 교회를 무시하죠. 또한 우리 농민들은 신실한 가톨릭 교도들이고.”
나름 계몽주의 교육도 받아 로마나 후작은 딱히 광신도가 아니다.
사실은 귀족들쯤 되면 후진국으로 유명한 에스파냐도 제법 근대화된 교육을 받은 상태다.
그렇지만 농민층은 상황이 다르다.
프랑스 농민보다도 더욱 신심이 깊고, 더욱 강고한 광신도들이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적들은 불신자다. 그러니,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워라! 가톨릭의 수호자, 페르난도 7세를 위하여!”
정작 페르난도 7세는 생각도 하지 않을 말을 떠벌리는 웰즐리를 보다, 로마나 후작이 감탄했다.
“영국이 정말 대단한 장군을 보내주셨군요.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마드리드는 포기하기로 했죠? 그 남쪽, 안달루시아에서 군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적당한 곳이 있군요.”
문득 로마냐 후작이 휴대용 지도를 펼치며 답했다.
“발데페냐스, 이곳에서 적을 기다립시다.”
이제 에스파냐 육군은 왕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
다만, 후세 원역사에서 에스파냐의 승리로 남을 발데페냐스까지, 프랑스군은 가지도 못했다.
“마드리드에서 도망치는 국왕을 잡았습니다!”
선두로 달려온 마세나가 라마르크의 보고를 듣다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어쨌든 수도 마드리드를 정복했고, [가짜] 왕도 잡았다.
프랑스 왕위 주장자들은 놓쳤고 영국인들도 도망갔지만, 이것만으로도 일단 임무는 완수한 셈이다.
“이대로, 왕을 붙잡아서 파리로 압송하지.”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각하.”
“뭔가?”
라마르크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했다.
“마드리드 시민들이 지금 흥분 상태로 대로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도심 곳곳에서 나타나는 무장 시민들을 보다, 마세나가 입가를 비틀었다.
“이것까지 계산했다면, 정말 아서 웰즐리는 대단하군.”
“예? 원수 각하, 어떻게 하시려구요?”
“여기서 내가 물러날 수 있나? 그랬다간, 내 군사경력도, 프랑스도 끝장이야.”
마세나는 폭동에 익숙하다.
아니, 프랑스 제국군 중 베테랑은 대부분 그렇다.
왜?
그야 대혁명 때 승리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폭동인 일이 빈번했으니까.
“포격한다. 절대로 폭도 앞에서 제국군은 물러나지 않는다!”
당시, 나폴레옹이 썼던 수법이 있다.
-쉬익, 쾅!
포도탄이 마드리드에서 쏘아지기 시작했다.
1807년 2월 12일.
에스파냐가 프랑스 제국군을 피로 기억하게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