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42)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41화(42/547)
(41) 혁명의 지옥에서 지옥종대를 손에 넣다
혁명은 대격변이라고 한다.
그 말은 기존에 있던 모든 것을 뒤엎는다는 뜻이다.
언뜻 듣기에는 좋아 보인다.
세상은 항상 변하기 마련.
인간의 사회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대체로 권력, 구습, 전통으로 변화를 짓누르는 탓이다.
그러나 과연 변화는 좋은 걸까?
그동안 변하지 않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어떤 혁명가도 그런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방데에서도 그랬다.
프랑스 서부, 저 유명한 브르타뉴의 항구 낭트 아래에 위치한 지역.
묻지 않고 파괴하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교회파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국 방데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만든 최종 방아쇠였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불타버린 교회가 그렇듯이.
“와, 여기 왜 이래? 완전히 불타 버렸는데?”
이폴리트가 말을 탄 채 선두에서 움직이다 놀라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서부로 행군하는 길은 본래 풍요롭고 평화로워야 한다.
아무리 빈곤한 시기라도, 지금은 가을이다.
곡창이 곳곳에 널려 있는 기름진 프랑스 남서부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서부 지역에 들어섰을 때, 유진 우편 특수중대가 마주한 광경은 폐허였다.
불타버린 건물을 보며 유진은 미간을 좁혔다.
기록으로 봤던 것보다 실제로 보니 훨씬 을씨년스런 풍경이다.
유진이 타고 온 조랑말을 잡아채며 말했다.
“교회를 불태운 거야.”
“왜? 설마 사제나 수녀들이 총이라도 들었나?”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교회를 중심으로 반란군이 뭉친다는 거야.”
타들어간 교회의 건물 한 구석, 핏자국을 보다 유진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교회가 전장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지.”
아마도 이 근방에서 치열한 격전이 있었을 것이다.
폐허를 뒤지면 시체도 꽤 나올 터다.
그러나 유진은 굳이 시체를 찾는 대신, 신호를 보냈다.
“자, 오늘은 일단 여기서 쉬어갑니다!”
“아이고, 죽겠다!”
“휴, 이거 말을 타고 가는데도 힘들어 죽겠네!”
승마보병.
지금 유진 중대가 이동하는 형태다.
여기에 보급용 마차도 함께 움직이니, 100명이지만 꽤 대부대처럼 보인다.
치안이 불안정한 혁명기지만, 무탈히 서부까지 온 이유다.
이동형 막사를 치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유진이 상사 투르네를 향해 다가왔다.
“투르네, 사병들 상태는 어때요?”
“뭐, 수송을 지금 마차로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나쁘진 않죠. 다만 슬슬 식량과 물이 떨어져 갑니다.”
“근처에서 보급 좀 해야겠군요. 보르도로 가죠.”
가볍게 지시한 유진이 보급마차를 보다 입맛을 다셨다.
생각보다, 식량이 쉽게 상하거나 또는 빨리 떨어진다.
그 때문에 행군하면서 계속 유진 중대는 도시나 농촌에 보급을 위해 들어가야 했다.
특히 지금까지는 돈이 있으면 그래도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데로 들어간다면, 보급이 더욱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이거, 통조림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사실 밀봉 음식 보관용기, 곧 통조림을 생각해낸 장본인이 실은 나폴레옹이다.
다만 나폴레옹은 아이디어만 생각했다.
실제로 만들어 납품한 사람은 니콜라스 아페르라는 제과업자다.
허나 제과업자답게 썩 과학적이진 않아서, 병에다 넣는 바람에 생산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덕분에 실제 전쟁에서는 쓰지도 못하고, 만든 ‘병조림’은 모두 폐기되고 말았다.
이 아이디어를 프랑스 발명가 필립 드 지라르가 영국으로 가져가, 오늘날의 양철 통조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은 사실 하나로 요약된다.
아직 세균, [미생물]이 질병과 부패의 원인이라는 게 입증되기 전이랄까.
심지어 아직 제너의 종두법도 정식 발표되려면 5년은 남은 시기다.
유진이 한 번, 군수공장에서 통조림 정도는 준비할까 생각할 찰나였다.
하얀 빵을 건네며 이폴리트가 유진 옆에 주저앉았다.
“근데, 보르도는 괜찮냐? 그러고 보니 우리 산 마리아 호가 거기 있잖아?”
“남아 있겠어? 어차피 그곳도 봉기 한 번 일어났어. 약했을 뿐이지.”
“진짜? 이야, 다마스와 쉬르쿠프가 마르세유에 온 게 다행인걸.”
보르도, 프랑스의 대서양 방면 최대 항구다.
예전에 유진과 이폴리트가 마르티니크로 갈 때 출발지로 선택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 보르도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서부를 휩쓸고 있는 징병 거부, 경제 대란, 교회 파괴로 이어지는 혼란의 결과다.
특히, 이 지역은 이른바 [지롱드] 파의 핵심 구역이기도 했다.
바로 혁명 온건공화파의 본거지랄까.
현재 파리에서는 국왕의 죽음 후, 강경공화파인 산악파가 주도권을 원역사보다 일찍 잡은 상태다.
대신 지롱드파와 산악파의 피 튀기는 혈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지역 반란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보르도에서도 약하지만 봉기가 일어난 것이다.
원역사보다는 온건하지만 어쨌든 무력 반란이다.
반란과 진압 과정에서 피가 흘렀다.
유진은 그 상황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그래. 남아 있었으면, 아마 잡혀서 죽었을지도 모르지.”
지롱드파가 반란을 일으키는 대신, 일반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니 보르도에서 잽싸게 도망가지 못한 상인들 중에는 죽은 자도 있다.
농민 입장에서는 무역상들은 아주 쉽게, 돈벌이를 하는 귀족과 같은 존재니까.
문득 부대를 정돈한 마르소가 다가와 유진에게 말했다.
“그럼 보르도에 있는 군부대 사령관과 얘기해야겠군.”
“뭐, 그럴 필요도 없을 거예요. 우리 쪽 인사가 파견의원으로 와 있으니까.”
“누군데? 지금 입헌군주파, 아니 [푀양파]는 완전히 짓눌린 상태잖아. 파리에서 내보낼 리도 없고. 그렇다고 지롱드 쪽에서 파견 나올 리도······.”
마르소의 판단이 맞다.
파견의원은 곧 반란을 진압하고, 지역을 통치하며, 나아가 혁명을 전파하는 자다.
요컨대 지방권력.
국왕의 자결과 전쟁이라는 위기 국면에서 주도권을 잡은 산악파가 아무에게나 내줄 리가 없다.
그러나 항상 정치인이란 시세에 따라 입장을 바꾸기 마련이다.
유진은 싱긋 웃었다.
“뇌물 받기를 좋아하는 숨은 전직 입헌군주파가 있죠. 뭐, 지금은 잘 나가는 산악파에 가깝지만.”
본래 라파예트가 발탁했던 인사로, 지금은 로베스피에르에게 붙어 있는 의원이다.
나아가 파견의원으로 보르도에 현재 지사로 파견된 자.
무엇보다 원역사에는 결국, 나폴레옹의 심복이 되는 인물.
“조세프 푸셰.”
바로 푸셰가 이곳, 보르도의 파견의원 겸 지사로 온 것이다.
***
한때는 일개 선객으로 떠났던 보르도로, 이제 군대와 함께 유진이 찾아왔다.
“무슈 보아르네. 오랜만이군요. 아니, 이제는 방크 보아르네의 파트롱이라 불러야겠군. 후후.”
보르도 시청에서 지사, 푸셰가 이렇게 환대할 정도다.
당연히 일개 소령에게 이런 대우를 해줄 리는 없다.
소장 알렉상드르의 아들, 방크 보아르네의 오너, 툴롱에서 이름을 드높인 소년기수라는 명성.
그러나 무엇보다 푸셰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사실상 후견인이 라파예트라는 점이다.
언제든 정권을 잡을 수도 있을 야당 세력의 일인자.
권력에 민감한 전직 입헌군주파, 푸셰를 보며 유진이 마주 앉아 빙긋 웃었다.
“의원 재선을 축하드립니다, 푸셰 의원님.”
“방크 보아르네에서 자금 지원을 해준 덕분이지. 한데, 마르세유에서도 사업 잘한다고 들었는데. 왜 여기까지 왔습니까?”
“보나파르트 장군의 명령입니다. 방데에 가서 우편 시스템을 점검하라고 하시더군요.”
푸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흐음, 군부의 떠오르는 신성이 방데에 관심을 갖는다?”
후세 원역사에 정보경찰 총수의 대명사로 남은 푸셰다.
애초에 유진과 처음 만난 것도, 정보공작을 위한 일이었다.
보르도에 파견 온 상태에서도, 각지의 소식을 끊임없이 모으는 모양이다.
유진을 웃으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며, 푸셰가 입가를 비틀었다.
“원래 난 리옹에 갈 예정이었지요.”
“가지 말라고 조언 드린 걸 들으셨더군요.”
“라파예트 의원님도 권유하시는 바람에. 후후, 리옹은 여기랑 달리 아주 완강하게 반항했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유진은 여전히 소년처럼 활짝 웃으며 무시무시한 답변을 내놓았다.
“아마, 가셨다면 도살자 소리를 들으셨을 겁니다. 지금 프레롱이 그렇듯이.”
역시, 본래 푸셰는 리옹에 파견된다.
리옹은 이 시대, 프랑스 제2의 도시였다.
실크 산업이 발달해 경제와 인구가 넘쳐났다.
초기에는 오히려 혁명을 옹호하는 지지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혁명의 경제적 혼란은 친혁명 도시였던 리옹을 반혁명파의 온상으로 바꿨다.
결국 스위스 인근의 도시, 리옹에서도 반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원래는 푸셰는 이 도시를 아예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야말로 충실히 이행한다.
그 결과 3개월 동안 2천 명이 넘는 시민을 학살한다.
또한 그 죄를 뒤집어쓰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유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리 소식을 알려주는 푸셰에게 보답으로 다른 곳에 가라고 일렀다.
본래, 프랑스 서부 낭트가 고향인 푸셰에게 똑같이 서부인 보르도로 가라고 한 것이다.
비록 반란 진압은 똑같았지만, 반란의 강도가 약한 덕에 푸셰는 여기서는 그리 많이 죽이진 않은 상태다.
물론 위에서 시키면 다하는 남자, 푸셰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반혁명분자를 처단하는 게, 무슨 죄라고?”
“지금이야 그렇죠. 무슈 푸셰.”
“그럼 나중엔 아니게 될 거란 소리요?”
유진은 여전히 웃으며 푸셰에게 대꾸했다.
“내전이 끝나면, 책임소재를 묻기 시작할 겁니다. 아시니까, 제 조언을 들어 여기로 오셨겠죠. 고향에도 더 가깝고.”
바로 로베스피에르와 공안위원회가 다음 수순으로 밟을 일이다.
반란을 진압할 때까지는 파견의원들의 강경한 대처가 유용했다.
그렇지만 사태가 안정되고 나면, 유권자인 시민들이 이렇게 묻게 된다.
꼭, 그렇게 많이 죽여야만 했는가?
정부는 이럴 때 희생양이 필요하다.
푸셰, 프레롱, 바라스.
모두 원래는 공안위원회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하는 이들이다.
이 중에서 유진은 푸셰를 빼준 셈이랄까.
거기까지는 모르지만, 대충 유진의 말은 짐작한 푸셰가 입맛을 다시다 고개를 끄덕였다.
“리옹이나 보르도나. 낭트에선 멀긴 마찬가지지. 어쨌든 좋아요. 파트롱 보아르네. 이번엔 어떤 계획인 겁니까?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일단 방데에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지금 아는 건, 방데 반란이 잘못되면 파리가 위험하다는 것 정도죠.”
“흐음, 나 같으면 안 가겠습니다. 그저 정보 획득이나 상황을 살피러 온 거라면 그냥 보르도에 머무르시지요. 내가 대접은 잘해드릴 수 있는데.”
나름 보답한다는 의미로, 푸셰는 ‘진실’을 말했다.
“거긴, 지금 지옥이오. 전쟁, 기아, 그리고 학살이 벌어지고 있지.”
유진도 이미 조금은 본 바다.
어쨌든 방데가 아직 먼 보르도 인근에서도 교회가 불타버린 꼴은 봤다.
게다가 기록에서도 방데에서 참혹한 학살이 있었음을 전생에서 읽었다.
그럼에도 유진은 가야 한다.
당장 유진 옆에 있는 창백해진 마르소 때문에라도.
“얘기는 들었습니다.”
“흠, 우리 파트롱께서도 이미 전쟁은 경험하셨겠지. 하지만 학살은 못 보셨을 거요. 아무리 멍청한 프레롱이라도 우리 파트롱 보아르네 앞에서 학살은 못 했을 테니까.”
“마르스 광장 때야 운이 좋았죠. 지금과는 다릅니다.”
이미 마르스 학살을 막을 때, 유진은 푸셰에게 솜씨를 보인 바 있다.
반대로 말하면 푸셰는 알고 있다는 얘기다.
유진이 학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게다가, 사실 푸셰는 이미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정보수집의 달인답게, 푸셰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정보력을 과시했다.
“아니, 막았다는 거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데는 다릅니다. 군대의 힘으로도 막기 어려워요. 이미 그곳의 주민 전부가 반란자고, 또 그들 모두를 죽일 생각이니까.”
그 순간 참지 못한 마르소가 물었다.
“어디서 말입니까?”
방크 보아르네의 부행장이었던 마르소와 안면이 있는 푸셰는 친절을 베풀었다.
“파리.”
그러니까, 진실을 말해줬다는 얘기다.
***
그러나 모든 정보를 알아도, 실제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이거, 농담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이폴리트가 입을 쩍 벌리며 중얼거렸다.
병사 한 명이 거칠게 머스킷으로 농민을 후려치는 모습이 보였다.
눈앞에서 반쯤 옷이 찢어진 처녀가 질질 끌려갔다.
방데의 중심지는커녕, 외곽에 해당하는 곳인데도 그렇다.
역사 속에서 한때, 신교도의 거점이었던 항구 도시 라 로셸.
그곳에서 한창 청색 군복의 혁명군이 농민들을 진압하는 중이다.
지극히 피가 튀기는 방식으로.
문득 처녀 한 명이 총검에 찔려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순간, 참지 못한 마르소가 뛰쳐나가 병사의 총검을 잡아챘다.
“그만둬! 비무장 농민이잖아! 저 처녀가 뭘 잘못했다고!”
“넌 또 뭐야!”
“마르세유 주재 사령부, 소령 프랑수아 마르소다! 당장 총검 치워!”
그 순간 병사를 지휘하던 지휘관이 마주 외쳤다.
“이건, 로시뇰 장군의 명령이오!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시오!”
장 앙투안 로시뇰.
사실 마르소는 누군지 모르지만, 유진은 누군지 안다.
이 방데에서 사령관으로 부임해 학살을 지휘하는 장본인이다.
기록으로 읽었기 때문에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전혀 달랐다.
“살려주세요, 아아악!”
거기에, 저 멀리 바다로 흘러가는 강 위로 벌거벗은 사람들이 강제로 던져진다.
-풍덩, 풍덩, 풍덩!
이른바 [낭트 익사]로 불리는 방데에서 벌어진 혁명군의 처형법.
곧, 반란자들을 벌거벗겨 무력화한 후, 익사시켜 처리하는 방식이다.
너무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문득 유진의 옆에서 루이 투르네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이, 이, 이게 무슨 혁명이란 말이야!”
유진의 뒤에 있던 병사들도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대부분 툴롱에서 강제 징집된 병사들이다.
그러니 옛 왕당파가 대부분이다.
평범한 시민이라도 반감을 가질 광경.
이들에게는 거의 극도로 분노할 상황이었다.
그 순간 유진이 나섰다.
-철컥.
피스톨을 장전하고, 쏜다.
-탕!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학살을 총검으로 벌이던 병사들이 멈췄다.
유진은 차갑게 다른 피스톨을 꺼내들며 지휘관을 겨눴다.
지휘관은 물론이고 다른 총검을 든 라 로셸 주둔 혁명군도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화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학살을 총탄이 아니라 총검으로 저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유진은 화약을 마차로 싣고 온데다, 사실 부대원들은 공기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물론 마르소는 오히려 당혹해 유진을 볼 뿐이었다.
차가운 시선으로 지휘관을 노려보며 유진이 말했다.
“지금 이 시각 부로, 이 라 로셸의 지휘권은 우리 마르세유 우편 부대가 접수한다.”
“잠깐, 어쩌려고? 유진! 아니, 유진 소령!”
“마르소, 그 따위로 무르게 행동해서 어떻게 애인을 구하고,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거예요?”
유진이 오히려 마르소를 향해 다그칠 찰나, 지휘관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이, 이건 로시뇰 장군의 명령이오! 이건 항명이란 말이오!”
군에서 항명은 결코 가볍지 않은 사태다.
아무리 혁명군이 군기가 엉망이라도, 파견부대 지휘관이 이 지역 사령관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당장 지위 박탈이 될 수도 있는 사태다.
그러나 오히려 유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지휘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중대장, 이름이 뭐지?”
“나, 나 말이오? 장 바티스트 데마르 대위요. 그, 그리고 내 상관은. 투, 투로 대령이오.”
“꽤 나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대위인가? 잠깐, 투로?”
루이 마리 투로.
이른바 지옥종대의 대장.
원역사에서 방데에 문자 그대로 학살극을 진행하는 장본인이다.
본인 자체는 그리 잔인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부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철저히 이행하는 관료 타입의 군인이었던 게 비극이랄까.
2천 명을 죽여서 원역사에서 푸셰는 학살자라 불리웠다.
투로는 30만을 죽인다.
유진이 차갑게 웃었다.
“과연. 명령에 아주 충실한 친구군. 자네 상관처럼.”
“무, 무슨 말이오?”
“로시뇰 장군의 명령이란 말이지?”
순간, 유진은 마르소를 돌아보며 물었다.
“마르소. 30만을 구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뭐? 그, 그거야 그렇지. 지금 이 상황이면 방데 지역 전부 몰살이라도 시킬 판이고. 또, 안젤리크도, 아마 그 서슬에!”
“좋아요. 그럼.”
문득 유진의 눈앞에 백은문자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방임, 무사. 충돌, 위험. 결단, 성공적.]방임하면 무사할 수 있다.
단순히 충돌하면 아마 감옥에 끌려가거나 죽을 위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단을 내려, 오히려 판을 뒤엎는다면 성공할 수도 있다.
마침 유진은 배운 게 있었다.
사령관 교체.
툴롱에서 있었던 일.
유진은 눈앞의 백은문자를 노려보다, 싱긋 웃었다.
“여기, 사령관부터 끌어내리죠.”
바로, 나폴레옹에게 배운 바다.
***
라 로셸, 16세기 위그노 전쟁 시대에는 프랑스 최고의 항구였던 곳이다.
“이제는 퇴락한 항구죠. 사실, 내가 인도에서 본 퐁디셰리보다 더 작은 항구 같군요.”
라 로셸의 외곽, 방금 전까지 주민 사살을 하던 현장에서 데스마르는 호들갑을 떨었다.
본래 장 바티스트 데스마르는 인도 식민지 주둔군인이었던 남자다.
이미 7년 전쟁 후 프랑스는 영국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 항구는 식민지로 유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도 동남부의 항구, 퐁디셰리다.
데스마르 입장에서는 사실, 퐁디셰리에서 귀국해보니 나라가 혁명으로 뒤집어진 셈이다.
혁명에 휩쓸린 일종의 희생자랄까.
물론 그렇다고 민간인을 죽이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유진이 현장 간이 테이블 위에 지도를 놓고 보다 콧방귀를 뀌었다.
“생각보다 신난 얼굴이군, 데스마르 대위.”
“우리라고 사람 죽이는 게 좋은 건 아닙니다. 명령이니까 하는 거죠.”
“좋아, 대위. 지금까지는 명령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어. 혁명기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못해.”
데스마르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진이 물었다.
“일단 작전 브리핑을 시작해 보지. 방데 전역이 지금 어떤 상황이지?”
현지에서 한창 작전을 수행하던 데스마르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방데 전역은 30만 징집령이 직접적인 계기입니다. 현재 유럽 각국이 우리 프랑스를 대상으로 동맹을 맺었고 국경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죠. 그래서, 징집령이 발효된 건데.”
프랑스 서부, 라 로셸 북쪽을 표시하며, 데스마르는 입맛을 다셨다.
“하필 여기 서부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가장 세게 반발했죠.”
이 라 로셸은 사실 그냥 퇴락한 항구만이 아니라, 반란에서도 동떨어진 외곽이다.
1793년 현재, 공화파의 주류는 도시민이고 왕당파의 주류는 농민이다.
프랑스 서부 일대는 꽤 항구도시가 발달했지만, 이 항구도시들의 외곽에는 광범위한 농촌이 퍼진 상태였다.
그런데 파리에 거주하던 귀족들이 혁명 후, 서부의 본인 영지로 귀환했다.
그렇잖아도 왕실 지지가 높은 농민들이, 귀족 영주들을 만났고, 다시 혁명 정부는 교회까지 탄압했다.
혹시 식량 상태라도 좋으면 모르겠는데, 프랑스 경제는 전쟁으로 더 어려워졌다.
데스마르가 주둔했던 무역항 퐁디셰리조차 지금쯤, 영국이 점령했을 것이다.
프랑스 인도 무역이 타격을 입는 사건이다.
요컨대 농민의 불만, 군사 경력 있는 귀족, 신앙심 깊은 이들을 화나게 하는 교회 탄압에 경제적 불만이 겹친 상황이다.
여기에 결정타가 떨어졌다.
30만 동원령.
선별 징집 명령이었던 이 동원령에 서부는 반발했다.
결국 서부 방데 지역 전체를 무대로 하는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데스마르가 손을 꼽으며 말했다.
“자크 카텔리노, 모리스 델베, 샤를 드 봉샹. 반란의 주요 지도자들이죠.”
“살아있나?”
“모두 죽었습니다. 얼마 전, 루송에서 놈들이 대공세를 취하다, 죽었죠. 물론 전투는 혁명군이 패배했습니다만. 지금은 로슈자클랭, 21세짜리 애송이 귀족이 총사령관이랍니다.”
낯을 찌푸리며 데스마르는 타버린 라 로셸 외곽 마을을 보았다.
“뭐, 그게 지금 우리가 보복전을 펼치고 있는 이유죠. 우리가 패배했다는 거.”
이게 내전의 무서운 면모다.
모든 전쟁은 사람을 죽인다.
허나 내전은 특히 자국민을 죽인다는 문제가 있다.
서로 말이 통하고 문화가 같으며 누군지 알기 때문에, 더욱 증오심이 커진다.
카텔리노를 비롯한 방데 반란 초기 지도자들이 죽었어도, 증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친구를 죽이고, 동료를 죽이고, 전우를 죽인 저들에게 복수하라.
아직 데스마르 휘하 병사들은 눈에 핏발이 선 상태였다.
단지 유진의 계급과 설득에 잠시 눌렸을 뿐이다.
유진은 그 모습을 돌아보다 쓰게 웃었다.
이게 바로 아마, 저 유명한 [지옥종대]의 전신쯤 될까.
“해서, 명령자는? 로시뇰 사령관 혼자서 정하진 않았겠지?”
“그, 그렇죠. 파리에서 온 파견의원 카리에의 명령입니다. 로시뇰도 결국 카리에 의원을 따를 뿐이구요.”
“핑계야. 데스마르 당신과 투로 대령이 그렇듯이.”
물론 장 바티스트 카리에, 데스마르와 이름이 같은 이 의원은 아주 악명 높은 학살자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악명을 떨쳤다.
방데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재판 없는 단두대와 처형, 그리고 익사를 실행하는 중이다.
초토화 작전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도 카리에다.
그럼 카리에는 혼자서 사안을 결정했을까?
천만에.
당연히 파리에서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익사를 요구하지도, 재판 없는 처형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적도 없다
나아가 카리에도 무차별적인 학살을 지시한 적은 없다.
다들 알아서 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관료적으로, 기계처럼.
낯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숙인 데스마르를 쏘아보다, 문득 유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군. 대체 저 녀석들 누구를 왕으로 모시는 거야?”
“예? 무슨 말입니까?”
“아니, 왕당파잖아. 죽은 카텔리노도 그렇고, 지금 사령관인 로슈자클랭도 그럴 거 아냐. 그럼 왕을 모셔야 할 텐데, 왕은 죽었잖아? 게다가, 루이 샤를은······.”
루이 16세는 유진이 사실상 죽였다.
그때 루이 왕에게 유진은 유언장 하나를 받아냈다.
루이 샤를, 왕세자는 루이 16세의 아들이 아니라고.
샤를을 살리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 크면 어떤 원망을 받을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렇게 혈통이 부정된 왕자를 지금, 왕당파에서 왕으로 섬길까?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데스마르가 답했다.
“그야 루이 17세죠.”
“뭐? 왕세자? 아니, 그건 전임 왕이 아들임을 부정했는데?”
“아뇨. 물론 그 왕세자는 안 되죠. 지금 저 왕당파가 모시는 루이는 다른 루이입니다.”
나름 공화파 장교, 데스마르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루이 스타니슬라스 그자비에, 프로방스 백작입니다.”
바로 루이 16세의 첫째 동생이다.
유진은 얼굴만 아는 사이다.
왜냐하면 본래 유진이 한창 왕궁 출입을 할 때는 도박판에서나 본 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진은 프로방스 백작이 아니라, 왕의 둘째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과 인연이 있다.
그러나 역사에 기록된 바는 기억한다.
루이 17세, 실은 18세로 기록된 이 남자는 실로 집요하게 왕위를 요구한다.
끝내 원역사에서 나폴레옹의 몰락이 일어난 후, 왕정복고를 하는 장본인이다.
유진과는 악연이 될 운명이랄까.
쓰게 웃으며 유진이 말했다.
“그래, 그 루이라면, 집요하긴 하겠지.”
“어, 잠깐. 프로방스 백작은 영국으로 망명하지 않았어?”
“그래. 물론 그 후, 베로나나 오스트리아로 갔을 것 같지만. 여기서는 그걸 모르겠지.”
이폴리트의 물음에 유진이 차갑게 웃으며 답했다.
“루이 샤를이 아니라 루이 그자비에라. 이건, 왕당파의 치명적 실수야.”
“엥? 왜? 아니, 부정한 아들인데다, 샤를은 어리잖아. 걔, 아직 8살 아냐?”
“아이인지 성인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상징인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어.”
유진은 지도 위, 섬나라 하나를 가리켰다.
“외세와 결탁했다는 거야. 이건 치명적이야.”
영국.
7년 전쟁 이래, 프랑스의 적대국.
그럼에도 정작 무역이나 교역은 혁명 전까지는 1순위 파트너였던 상대국이다.
영국에 대해 프랑스가 갖는 감정이 이중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영국이 프랑스와 전시에 돌입한 상황이다.
외세와 결탁한 왕족을 상징으로 세운다?
당연히 일반 민중은 물론이고, 반혁명군 내부에도 분열을 일으킬 치명타가 된다.
물론 이 치명타는 아무나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걸 써먹으려면, 멍청한 수뇌부를 먼저 바꿔야지.”
가만히 지도를 뚫어져라 보던 마르소가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할 거지? 유진 소령?”
“간단해요. 마르소. 요체는 파리를 움직이는 거예요. 로시뇰과 카리에를 꺼지게 해야죠.”
“그게 문제잖아. 툴롱하곤 달라. 여긴, 보나파르트 장군 같은 인재가 없다고. 파리의 의원들을 움직일만한 ‘별’이 없어.”
마르소도 툴롱에 있었다.
아예 사령관을 교체해 작전을 바꿔버리는 나폴레옹에게도 감탄했다.
지금 이곳에 온 것은 안젤리크를 구하기 위해서지만, 마음만 급하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도 안다.
허나, 사령관 교체가 그리 쉬운 얘기인가?
하지만 유진은 오히려 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꼭 누가 뛰어나야 사령관이 교체되는 건 아니에요, 마르소. 우리 프랑스 역사를 보면, 사령관 교체는 아주 못났을 때 더 쉬울걸요? 그런데, 선결과제가 있죠.”
“뭐지?”
“여기, 라 로셸 연대 지휘권.”
사실 원역사에서도 방데 사령관은 계속 바뀐다.
다만 그걸 몰라도 지금 프랑스 군부가 아주 불안정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당장 나폴레옹이나 오슈처럼 20대 장군이 탄생하는 것 자체가 그 증거다.
유진이 지금, 아주 발칙한 생각을 해낸 것도 그 때문이다.
“연대 지휘권을 탈취하러 갑시다. 여러분.”
바로 후일, 방데에서 지옥종대 부대로 불리게 될 연대다.
***
누가 지옥을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루이 마리 투로는, 스스로 물었다.
“대령님! 명령하신 대로, 마을 회관 안에 모두 몰아 넣었습니다!”
부관, 루이 그리뇽 중령이 보고했다.
이곳은 라 로셸의 중심부다.
한때는 프랑스 서부 최대 항구였던 라 로셸은 이제 퇴락한 도시에 불과하다.
때문에 회관 수준의 건물만 남아있는 것이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이 강제로 회관에 끌려가는 걸 보다, 투로 대령이 중얼거렸다.
“자크 카텔리노는 죽었고, 샤를 드 봉샹도 생사를 알 수 없지. 이제 우리가 싸울 상대는 고작해봐야 앙리 드 라 로슈자클랭, 애송이고.”
“모두 대령님이 열심히 싸우신 덕이죠.”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방데에 머물러 있고, 사람들은 우리에게 총을 겨누는군.”
방금 전, 도시 주민들에게서 빼앗은 총기를 내려다보며, 투로는 낯을 찡그렸다.
“이유가 뭘까, 루이 그리뇽 중령? 우리의 혁명이 그토록 잘못된 걸까?”
부관, 그리뇽은 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투로와 그리뇽은 단순히 주민들을 가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밖에서 병사들은 불을 지를 준비를 하고 있다.
집단화형.
이게 오늘 투로가 본보기로 라 로셸의 반란자들에게 보일 징벌이다.
주위는 무장한 병력들이 뛰어다니며 진압된 반란군을 무차별적으로 폭행 중이다.
연대에 소속된 자신의 부하, 중령과 대령들을 보며 투로가 중얼거렸다.
“프랑수아 듀발, 장 피에르 부크레, 조세프 크루자, 장 바티스트 물랭. 그리고 에티엔 프랑수아 코르델리에. 모두 훌륭한 군인들이지.”
“대령님이 이끌어 주신 덕분이죠.”
“그 훌륭한 군인들이 전투에서 거듭 패했고, 또 이제는 보복전을 하고 있네.”
잘생긴 청년 중령, 듀발이 거칠게 주민을 총기로 내려찍는 모습을 보다 투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과연 좋은 걸까? 응?”
문득 도시 외곽에서 정체 모를 부대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투로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지만, 부대원들의 군복은 청색이다.
혁명 정부가 정한 정식 프랑스 군복이니, 정해진 복장이 없는 반란군과는 다르다.
일단 경계 태세를 취하도록 지시하며, 투로가 부관에게 물었다.
“뭔가, 저 부대는?”
그때 부대의 선두에 선 낯익은 부하 한 명이 경례를 취하며 보고했다.
“대령님! 대위 데스마르입니다!”
“뭔가, 대위? 자네에겐 라 로셸 외곽을 진압하라 일렀을 텐데.”
“그게, 마르세유에서 우편 특수중대가 파견되어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그때서야 투로는 얼마 전, 보르도에서 날아온 한 서신을 기억했다.
“아, 그 툴롱의 영웅이 만들었다는 장난감? 왜 왔지?”
툴롱의 영웅, 나폴레옹이 우편 특수부대를 만들었다는 군 내부 소식.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는지 비웃을 뿐이었는데, 그 부대가 방데에 왔다.
대체 이유가 뭘까?
그때 투로의 앞에 마르소가 다가와 웃으며 경례를 취했다.
“공화국에 영광을! 안녕하십니까, 투로 대령님. 소령 마르소라고 합니다. 보나파르트 장군의 명령에 따라 이 지역에 파견되었습니다.”
마르소 옆에는 ‘소년병’으로 보이는 군복을 입은 소년 한 명이 함께 했다.
부대원들은 우편배달부처럼 보이기보다 꽤 단련된 정예병으로 보인다.
투로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다시피 이곳은 우편을 발송할 사람도, 전달할 우편도 없다네.”
“그건 잘못된 것 같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 순간, 마르소 옆에 있던 ‘소년병’, 실은 유진이 피스톨을 겨눴다.
-철컥!
아이가 겨눠도 총은 살인병기다.
“이 라 로셸의 학살극을 중단하고, 사령관을 바꿉시다. 대령님.”
오히려 반란군과 싸웠던 방데 진압군이 더 잘 아는 사실이다.
모두가 경악해 잠시 멈췄다.
황급히 투로의 부관, 그리뇽 중령이 호통쳤다.
“이게, 무슨! 당장 대령님을 놓아줘! 이건 항명이다!”
그리뇽의 호통과 함께 주위에서 주민들을 죽이려던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때 마르소의 수신호와 함께, 유진 특수 중대가 총을 들었다.
퍼거슨 라이플, 그리고 지란도니 라이플이 병사들을 향했다.
-탕! 타탕! 타타탕!
갑작스런 총소리에 투로의 부하들이 멈췄다.
“저, 저게 뭐야! 여, 연발이 된다!”
“마, 맙소사. 겨, 겨냥을 정확히 했으면! 우, 우리 모두 죽었어!”
“지금 저게 대체 무슨 총이야?”
이 시대, 보통의 총은 연발도, 속사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퍼거슨 라이플은 1분에 6발 사격이, 지란도니 라이플은 20발까지 연사가 가능하다.
문득 유진이 얼어붙은 투로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대화를 시작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대령님?”
총 앞에서 대화를 거부할 사람은 세상에 없기 마련이다.
***
본래 투로가 지휘하는 이 부대는, 후일 [지옥종대]가 된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이건, 반역행위야!”
지옥종대, 그러니까 방데 반란군이 진압된 후 반란 지역을 휩쓰는 초토화 부대다.
초토화 작전은 오히려 반란 때나 혹은 무단처형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1794년, 아직 다다르지 않은 미래에 벌어질 일이다.
그때 결과적으로 죽는 사람은 최소 30만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이제 막 반란군과 싸우는 부대, 그것도 외곽의 라 로셸 부대다.
유진은 별로 잔인해 보이지는 않는 지친 중년 장교, 투로를 보다 말했다.
“대령님, 착각하지 마시죠. 전 위법행위를 중단시킨 겁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민간인 사살? 그건, 파리에서 명령한 거야! 공안위원회의 엄명이라고!”
“누가 그렇게 말했죠? 로시뇰 사령관이? 아니면, 카리에 의원이? 그것도 아니면, 당통이 보낸 베스테르만 장군입니까?”
유진의 지적에 투로는 잠시 멈칫거렸다.
방데 진압군의 사령관 로시뇰, 파견 의원 카리에, 파리와 연결된 실세 장군 베스테르만.
현재 이 방데 전역을 주도하는 인물들이다.
모두 단호한 반란자 척결을 주장하고 있다.
투로는 그 명령에 따라 반란지역 주민들을 본보기로 죽이는 중이다.
그런데 유진의 말은 뭔가 이상하다.
파리가 내린 명령이 아니라는 투다.
유진이 투로를 정시하며 말했다.
“파리에서 온 정확한 명령을 말씀드리죠. ‘도적들’을 근절하고, 방데를 진정시켜라.”
“뭐? 잠깐, 그건 뭔가 이상한데?”
“아니오. 로베스피에르의 정확한 명령입니다. 단지, 여러분은 이 [도적]을 아주 확장한 의미로 받아들일 뿐이죠.”
투로는 눈을 크게 떴다.
눈앞에 있는 소년이 이제 일개 소년병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공주의 기사.
왕비를 감히 로베스피에르의 뜻에 반해 살렸다는 그 대담한 도박신동.
게다가 툴롱에서는 영국 해군의 깃발을 빼앗는 공훈을 세웠다던가.
과장이 있는 소문이겠지만, 그 소문이 조금이라도 맞다면 이 소년은 그저 허언을 말할 자가 아니다.
왜냐면 파리의 권부, 국민공회에 직접 연결되는 연줄이 있을 테니까.
물론 유진은 사실 그냥 원역사의 기록을 얘기하고 있는 거다.
“이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열심히 ‘도적’을 죽인 결과, 그 후에는 파리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우, 우리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천만에요. 파리에서는 정반대로 평가할 겁니다.”
유진이 역사에서 이미 언제나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일을 읊었다.
“당신들의 독단으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희생양.
파리는 원역사에서 지옥종대와 로시뇰, 그리고 카리에를 모두 희생양으로 삼는다.
심지어 실권자 중 하나인 당통의 친구, 베스테르만까지 처형해 버릴 것이다.
그 결과 당통은 실각하고, 동인도회사 스캔들과 엮인 후, 처형당한다.
그게 원역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유진은 부들부들 떠는 투로를 향해 외쳤다.
“투로 대령, 프랑스 혁명군은 군법부를 따로 마련할 정도로, 합법을 중시하는 군대임을 잊지 마십시오!”
동시에 유진은 주위에 있던, 우편 특수연대의 총에 겨눠진 연대 지휘부를 돌아 보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미 궁지에 몰려 있는 겁니다. 여기, 그리뇽 중령을 비롯해서, 라 로셸 전체를 위압 중인 듀발, 부크레, 크루자, 그리고 물랭 중령 모두 말이죠.”
지금껏 라 로셸 연대의 부대원과 지휘관들은 협박에 못 이겨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모두가 깨달았다.
폐허가 된 라 로셸, 나아가 방데에서 벌인 민간인 살상.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거라는 사실을.
멍하니 주저 앉아 있던 투로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좋지?”
죄책감, 불안감, 공포감.
이 세 가지 감정이 뒤엉켜 투로가 무너진 것이다.
원역사에서도 투로는 자신의 죄를 책임지기 위해 직접 감옥에 간다.
그러나 또한 명령이 내려졌을 때, 기계적으로 수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유진은 가만히 투로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합니다. 성인 남자들이 불안한 건 확실하죠. 남자들은 따로 회관에 가둬요. 여자들과 아이들은 풀어주십시오.”
“하, 하지만 그러면 탈주의 위험이 있어!”
“감수하세요. 어차피 곧, 왕당파 군대 본체가 곧 붕괴될 거니까요. 올해 안으로.”
놀란 투로가 유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유진이 하필 지금 방데에 온 이유가 있다.
유진의 기억이 맞다면 아직 마르소의 ‘애인’은 죽지 않았다.
나아가 방데는 1793년, 12월에 1차 전쟁이 종결된다.
모든 게 빨라지고 있는 지금, 10월이면 충분히 전쟁을 끝낼 시도를 할 만한 때다.
유진은 간명하게 말했다.
“사령관이 교체될 겁니다. 또한 새로 임명될 사령관이 이 전장을 지배하게 될 겁니다. 당신도, 내게 협조만 해준다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게 해주죠.”
투로는 자각했다.
유진의 말이 틀리든 맞든, 분명한 것은 유진만이 자신을 구해줄 수 있다는 거다.
왜냐면 다른 이들은 모두 투로에게 책임을 떠넘길 테니까.
“내가 무엇을 하면 되나?”
유진이 빙긋 웃었다.
“우선, 선전 홍보 전단지를 만들죠. 라 로셸에도 인쇄소가 있겠죠?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이 순간, 유진은 후일 지옥종대가 될 부대를 손에 넣었다.
명령이 떨어지면, 악마가 될 수 있는 지휘관과 그 병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