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5)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4화(5/547)
(4) 베르사유의 깜찍한 누나는 공주다
아직 프랑스는 왕정국가고, 궁정은 국가의 중심부다.
“한 탕 하려면, 왕실과 친해져야 하는 거지!”
파리 서쪽, 19 킬로미터 쯤 떨어진 외곽의 숲이 있다.
원래 프랑스 왕실의 사냥터가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100년 전, 저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가 이곳에 버려져 있던 별궁을 개조하면서 역사가 바뀌었다.
베르사유.
원역사 미래에는 매년 무려 1500만명이 방문하는 세계 최고의 관광지다.
물론 지금은 1788년, 당연히 주인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800헥타르, 그러니까 직경 8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부지 위로 거대한 정원, 궁전, 그리고 대분수가 치솟았다.
알렉상드르는 마차에서 내리며 환히 웃었다.
마치 궁전에 입성 성공이라도 했다는 듯한 얼굴이다.
반면에 유진은 가볍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 왕궁은 거대한 만큼, 입성도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가, 그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이군요.”
“그렇지? 하하핫! 숲 속에 갑자기 이런 별천지라니! 파리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깨끗하지 않니?”
“어, 여기도 화장실은 적다던데요.”
후세에 유명한 얘기다.
겉보기에 깨끗해 보이는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이야기.
물론 거짓말이다.
베르사유에도 엄연히 화장실은 있었다.
다만 숫자가 적은 것은 사실이고, 후세에는 박물관으로 대대적으로 개조되면서 사라졌을 뿐이다.
게다가 소수의 화장실 주인은 대체로 왕족인데, 베르사유는 거대한만큼 숙식하는 귀족도 많았다.
그 많은 귀족들이 화장실을 쓸 수는 없는 일.
아주 진지한 얼굴로 알렉상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곳에서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볼 일’을 보는 것도 에티켓 중 하나지!”
“그건 [예절]과는 거리가 먼 거 같은데······.”
“향수를 잘 쓰면 된다! 하여간 이따 오줌 마려우면 정원에 몰래 잘 싸고!”
노상방뇨를 진지하게 교육하는 부친, 알렉상드르가 눈을 빛냈다.
“자, 이제 가자! 오늘 우리 일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거다!”
마차는 베르사유의 외곽까지만 가능하다.
내부에서 마차나 기마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된 대귀족들 뿐.
소귀족 알렉상드르와 유진은 열심히 걸어서 궁전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거대한 정원 중심에는 아폴로 신상이 놓인 분수가 눈부시다.
분수가 뿜어지는 광경을 보다, 유진도 결국 감탄했다.
“와, 진짜 화려하긴 하네요.”
“그럼! 이곳이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분들이, 가장 많은 재화를 갖고, 가장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지!”
“그냥 가장 나라 망치는 곳 같은데.”
아주 낮게 중얼거리며, 유진은 분수 너머 거대한 궁전을 보았다.
“현대에도 못 와봤는데, 엉뚱하게 지금 와보는군.”
모든 궁전이 그렇듯, 결국 베르사유 궁도 왕이 머무는 장소가 핵심이다.
아직 미터법이 나오기 직전 시대지만, 600미터가 넘는 거대한 건물이 보인다.
바로 왕궁의 핵심 베르사유가 이것이다.
다만 여기는 주로 공식 일정이 진행되는 곳이라, 유진이 갈 곳은 따로 있었다.
궁전의 내부, 왕의 ‘아파트’로 불리는 장소다.
“아르투아 백작 각하, 오늘 국왕 폐하를 알현할 알렉상드르와 그 아들이 왔습니다.”
궁전 2층, 유진과 알렉상드르를 안내한 시종이 외쳤다.
멋들어진 의복을 입은 귀족이 시큰둥하게 앉아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반면, 유진은 귀족의 이름에 슬쩍 눈을 크게 떴다.
아르투아 백작, 왕의 둘째 동생.
그리고 후일 원역사의 샤를 10세다.
“흠, 보아르네 후작의 차남인가?”
“예, 아르투아 백작 각하. 프랑수아 보아르네 후작이 제 부친이 되십니다.”
“뭐, 좋아. 공작비에게 소개받은 거니까. 자네 부친이 중요한 건 아니지. 어디, 이 꼬마인가?”
아르투아 백작이 턱을 쓰다듬으며 유진을 보았다.
“인사드립니다. [르 그랑 무슈].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의 아들, 유진이라고 합니다.”
유진은 아주 우아한 태도로 정중하게 [라틴어]로 인사했다.
7살.
어린애가 정확한 발음으로 예의를 차리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다.
그것도 ‘라틴어’라면 더욱 그렇다.
언어는 숫자, 음악과 함께 ‘천재성’을 아주 쉽게 보여주는 능력이다.
물론 유진이야 전생에서 프랑스사 전공자라 라틴어도 덤으로 배웠을 뿐이지만.
시큰둥하던 아르투아 백작이 문득 흥미로운 눈빛을 띠었다.
“유진? 아, 영국 취향인가. 자네 집안도.”
“예? 아,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어디까지나,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 놈들을 격파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죠!”
“그래? 뭐, 상관없어. 폐하는 영국 놈들을 싫어하는 거지, 영국 이름을 싫어하는 건 아니거든.”
알렉상드르의 변명에 피식 웃으며 아르투아 백작이 손짓했다.
“자, 따라오게. 신동과 그 아버지.”
르 그랑 무슈.
본래 [무슈]란 현대에서는 미스터와 같은 의미로만 쓰이지만, 이 시대에는 귀족에 대한 경칭이다.
특히 왕의 동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사실 이 호칭은 본래는 아르투아 백작이 아니라, 그 형 프로방스 백작의 것.
하지만 프로방스 백작은 대외활동을 별로 하지 않는다.
이유는?
엉뚱하지만 고도비만이라서 그렇다.
그러니 아르투아 백작에게 아첨하는 이들은 아르투아 백작에게 [르 그랑 무슈], 곧 ‘위대한 왕의 동생’이라 말하는 것이다.
지금 이 호칭 한 번에 아르투아 백작이 기분 좋아진 이유다.
유진은 아르투아 백작을 따라, 2층 베르사유 궁 복도를 걸었다.
황금으로 된 장식.
수없이 많은 거울.
낮이라 촛불은 켜져 있지 않은 눈부신 샹들리에.
바로크 양식이 고스란히 재현된 곳.
거울의 방이다.
유진이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어 중얼거렸다.
“파리 거리와는 완전히 다르군요.”
“응? 그거야 당연하지. 괜히 왕실이 파리 루브르 궁전 버리고 여기 온 게 아니야. 여긴 우리 왕실의 자랑이자 프랑스의 자랑이지!”
“예, 무슈.”
유진은 기분 좋아 보이는 왕의 동생, 아르투아 백작을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파리와 다르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파리는 현대 프랑스든, 18세기 프랑스든, 그 어느 시대든 프랑스의 중심이다.
그런데 파리가 국가 핵심인 왕실과 다르다는 것.
곧 낙후되어 있다는 뜻은 프랑스가 망가져 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왕궁의 화려함만을 자랑스레 여긴다.
이게 100년 전이라면 상관없다.
지금이 1788년이라는 게 문제다.
언제든 이 모든 화려함은 부서질 수 있다.
고작 1년만에.
-철컥.
문득 유진의 상념이 깨졌다.
거울의 방 중앙, 왕의 침실 문이 열린 것이다.
문이 열리고, 자물쇠 격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응? 아, 아르투아 백작인가.”
안경을 쓴 남자, 방의 주인이 앉아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유진은 심호흡을 했다.
이 사람이 바로 루이 16세다.
***
왕의 취미가 국정이 아니라는 것, 국가의 불행 중 하나다.
“폐하. 또 자물쇠 만들고 계셨습니까?”
“지금이 유일한 내 시간이니까. 하핫!”
“흐음, 그럼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을지요? 이전에 지크마링겐 공작비가 얘기했던 아이 있지 않습니까?”
아르투아 백작이 신성로마제국의 귀족, 지크마링겐 공작비를 거론했다.
바로 지금 완전히 굳어버린 채 부동자세로 서 있는 알렉상드르의 애인이다.
반면 유진은 가만히 방 안을 구경했다.
밖의 화려한 장식과 달리 왕의 침실은 꽤 소박한 편이다.
물론 사실 이곳도 국왕이 늘 머무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궁전 밖, 남동쪽 정원에 위치한 프티 트리아농이라는 별궁에서 더 많이 지낸다.
이 베르사유 궁전 자체가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다 루이 14세 탓이다.
따지고 보면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조차도.
유진이 잠시 역사를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아, 그 신동? 어디 있나?”
국왕, 루이 16세가 안경을 치켜 세우며 주위를 살폈다.
루이 16세가 지독한 근시라는 것은 유명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물쇠와 시계를 수리하는 게 취미였다는 것은 유명하다.
책상에도 방금 전까지 만지작거리던 자물쇠가 보였다.
우스워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취미다.
현대에도 사실 시계는 비싼 물건은 천만원을 우습게 넘는다.
18세기의 시계는 말할 것도 없다.
실로 고가일 회중시계를 슬쩍 보며 유진이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가장 고결하고 권능을 가지신 제왕, 신의 은총에 의한 프랑스와 나바라의 국왕이시여. 유진 드 보아르네라고 합니다.”
꽤 길지만, 동 시대 다른 나라 국왕이나 황제에 비하면 아주 단촐한 칭호.
이게 루이 16세의 정식 호칭이다.
루이 16세는 가만히 미간을 좁힌 채 유진을 보다 물었다.
“유진? 영국식인가?”
유진은 슬쩍 놀랐지만, 이건 루이 16세가 화났다는 뜻이 아니다.
지독한 근시 탓이다.
18세기 안경은 21세기와 달리 그리 정교하지 않다.
오히려 국왕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도 있는 아이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뜻이다.
현대로 따지면 유진은 일개 군 부대 대령의 아들, 루이 16세는 대통령보다도 높다.
아무리 후작가 손자라도, 작위 승계권이 없는 귀족 아이야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선량해 보이는 눈을 보다, 유진이 싱긋 웃었다.
“그렇습니다. 제 부친, 알렉상드르 [대령]이 한때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기념입니다.”
“미국 독립전쟁? 아, 그래. 그곳에 군대를 보낸 적이 있지.”
“예? 음, 그렇죠. 그때 제 부친이 승리를 거두었을 때, 미국인들이 제 부친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마치 남의 일인양 말하는 루이 16세에게 살짝 당황한 유진이 말을 급히 이었다.
“신대륙의 유진 공작이라고.”
루이 16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통통한 턱을 쓰다듬었다.
의외로 거구다.
기록에 따르면 루이 16세의 키는 190cm가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슬쩍 위축된 어깨 탓에 그 정도로 큰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무게감 있는 풍채가 더 커보일 정도다.
얄쌍한 아르투아 백작과 대조되어, 더욱 도드라지는 살집이랄까.
퉁퉁한 거구의 근시남, 루이 16세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 순간 루이 16세의 입에서 영어가 흘러나왔다.
“과연, 그래서 영국식, 아니 미국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유진은 살짝 눈을 치뜨다 고개를 숙였다.
“예, 그렇습니다. 영명하신 폐하.”
방금 유진도 영어로 답했지만, 살짝 놀랐다.
프랑스 국왕이 영어로 말하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루이 16세가 외국어 실력이 좋았다는 기록은 본 기억이 있다.
저 유명한 영국인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를 직접 번역했다던가.
그렇지만 지금은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이 불구대천의 원수인 시대다.
심지어 루이 16세가 생전 유일한 군사적 공적을 세운 게 바로 미국 독립전쟁이다.
그런데 남의 얘기하듯, 영어로 말하다니.
분명 바보는 아니다.
그러나 현명하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 이 자리에서 나온 일화가 밖에 퍼진다면, 썩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이다.
반대로 루이 16세는 유진이 마음에 든 듯 껄껄 웃었다.
“좋아. 이 아이가 신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똑똑한데? 이 나이에 영어도 이렇게 유창하다니.”
“그럼 시동으로 뽑으시겠습니까? 마침 이번에 공주님을 모실 아이가 필요하다고 들었는데요.”
“음, 어린 건 괜찮은데. 이건 나보다 ‘마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해.”
아르투아 백작의 말에 루이 16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시동.
왕실 사람들을 모시는 소년에게 주어지는 칭호.
바로 알렉상드르가 원했던 바로 그 자리다.
유진이 슬쩍 고개를 들고 루이 16세를 살피려던 찰나였다.
불쑥 국왕의 방으로 성직자 한 사람이 들어섰다.
“폐하, 잠시 재정 문제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브리엔 추기경?”
“그게, 이번 달에 막아야 할 채권 때문에······. 아무래도 새로운 세금을 도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프랑스 왕국의 수석고문, 혹은 국무대신.
로메니 드 브리엔 추기경이다.
아마도 재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급하게 온 모양이다.
난처한 얼굴로 루이 16세가 한숨을 쉬다, 대신과 함께 나섰다.
“일단 다음에 얘기하지. 휴, 오늘도 문제로군.”
국왕이 수석고문과 함께 집무실로 향해 버리자, 왕의 침실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
알렉상드르, 아르투아 백작, 그리고 유진.
주인 없는 방에서 유진은 방금 본 추기경을 생각했다.
브리엔 추기경은 이를테면 야구의 구원투수 같은 사람이다.
아주 잠시 불을 끄기 위해 등장했다가, 다시 퇴장하게 된다.
문제는 이 브리엔 추기경이 아니라 추기경이 수석고문직에 올랐다가 퇴장하게 된 이유다.
재정파탄.
시시각각 프랑스 왕실은 파멸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시동’이 정말 좋은 걸까?
그때였다.
“흐음, 그건 그렇고. 알렉상드르, 자네 [쥐드폼] 좀 치나?”
“예? 아, 잘 치지는, 아니! 물론이죠 칩니다!”
“그래? 그럼 코트에 가서 나랑 한 게임 하겠나? 요새 살 좀 빼야 해서. 내 애인들이 만날 때마다 난리야. 쯧.”
가볍게 담소를 나누며 아르투아 백작이 알렉상드르와 함께 나갔다.
유진은 방금 들은 말에 슬쩍 눈을 크게 뜨다, 쓰게 웃었다.
쥐드폼, 그러니까 프랑스식 테니스.
그 말에 테니스코트의 서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왕의 동생이 테니스 코트 타령이라.”
테니스 코트의 선서.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다.
그 선서가 이뤄진 테니스 코트가 실은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코트였다는 건, 그리 유명하지 않긴 하다.
지금만 유진만 알 수 있는 역설이다.
홀로 남은 유진은 왕의 책상 위를 흘깃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시계인가? 꽤 정교해 보이는걸.”
“당연하지. [쉬스]에서 직접 공수해온 거거든. 훗!”
“응? 그게 무슨, 헉!”
언제 나타난 걸까.
연한 금발의 소녀가 푸른 눈으로 빤히 유진을 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당황한 유진이 한 발 물러날 찰나, 소녀가 낯을 바싹 들이대며 물었다.
“안녕, 난 마리라고 해. 넌 누구니?”
나이는 유진보다 3살쯤 많을까.
푸른 눈에 새하얀 피부가 시선을 단번에 빼앗는다.
아직 어린 아이일 텐데도 눈부셔 숨이 멎을 것 같다.
간신히, 숨을 쉬며 유진이 입을 열었다.
“전, 어, 그러니까. 유진이요.”
유진이 마리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
아이는 거대한 왕궁 안에서도 활발하게 뛰노는 존재다.
“이건 옛날 로마에서 프랑수아 1세 폐하가 가져오신 거야! 로마 시대 조각상이지!”
“아, 그렇군요. 전리품이라 해야 하나?”
“참 멋지지 않아? 벌써 천년도 넘는 옛날에 만들어진 게 이렇게 살아 숨쉬다니.”
유진은 마리에게 끌려 베르사유를 탐방하는 중이었다.
사실 왕의 방에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 나와야 했던 상황은 맞다.
하지만 이렇게 끌려다니는 건 잠시 넋을 잃은 탓이다.
아무리 지금 유진의 나이가 7살이라도, 나름 환생자인데 아이를 보고 당황하다니 실수다.
스스로 자책하며 유진은 눈앞의 로마시대 조각상을 감상했다.
옛날에 프랑스 국왕들이 이탈리아 원정을 다니던 시절, 로마에서 가져온 옛 유물이다.
현대에도 루브르 박물관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유진에게 천천히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마리는 재빨리 유진의 손을 잡고 끌어 창 밖을 가리켰다.
“저긴 분수야! 최신 기술이 적용된 거지.”
“아, 예.”
“우리 아버지가 가끔 수리하기도 해!”
그 순간, 얼결에 끌려다니고 있던 유진이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가 누구신데······.”
그러고 보니 이 왕궁에 아이가 있다니 이상하다.
혹시 시녀인 걸까?
그런데 분수 수리공의 딸이 왕실의 시녀가 될 수 있을까?
어쩐지 옷차림이 하녀라고 보기에는 조금 고급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그때다.
-왕! 왕! 왕!
문득 갑자기 복도 저편에서 개 한 마리가 뛰어왔다.
“어, 디스비가 갑자기 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기는 푸들 정도일까.
스페니엘과 비슷하게 생긴 개가 이를 드러냈다.
순간, 유진은 미간을 좁혔다.
개가 마리와 유진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피해요!”
“꺅!”
“이런!”
순간적으로 유진은 마리를 껴안고 개를 피하려 했다.
어느쪽으로 피해야 하는 걸까?
오른쪽으로 피하면 유진이 다치고, 왼쪽으로 피하면 마리가 개에게 물린다.
그 순간 백은문자가 허공에 떴다.
[오른쪽.]유진은 이를 악물고 오른쪽으로 몸을 뒤틀었다.
-컹!
개가 튕기듯 유진의 팔을 긁으며 달려갔다.
다시 개가 유진에게 달려들려 할 찰나였다.
유진에게 안겨 있던 마리가 개를 향해 호통쳤다.
“디스비! 그만 멈춰!”
그 서슬에 ‘디스비’라는 개가 움찔거리며 멈췄다.
아무래도 마리와 안면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디스비가 달려든 이유는 낯선 유진 때문이었던걸까.
유진이 쓰게 웃을 찰나, 마리가 유진의 팔을 보았다.
“아니, 괜찮아? 피가 나!”
“예, 긁힌 거예요. 괜찮아요. 다친 데 없죠? 누나.”
“맙소사, 갑자기 디스비가 왜 이랬지? 순한 애였는데. 많이 다쳤어?”
디스비를 쏘아보며 마리는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물론 광견병이라도 걸렸다면 골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고 유진이 말하려 할 찰나였다.
길다란 궁전 복도 저 편에서 시녀들이 달려오며 부르짖었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그 순간 유진은 눈을 크게 떴다.
“공주님?”
생각났다.
분수를 수리할만큼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아버지’를 둔 딸.
그러면서도 왕궁을 제집처럼 안내할 수 있는 소녀.
여기에 왕실에서 키우는 개의 주인.
시녀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어야 했다.
마리가 눈을 깜박이다 활짝 웃었다.
“아, 내 이름 소개가 늦었구나? 난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라고 해. 네 이름은 뭐야?”
바로 루이 16세, 그리고 더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큰 딸.
프랑스의 공주, 마담 루아얄.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 드 프랑스 부르봉.
유진은 소녀를 홀린 듯 보다 싱긋 웃었다.
“유진, 유진 드 보아르네요.”
아무래도, 왕실에 남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유진의 심장이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