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Napoleon's genius son RAW novel - Chapter (53)
나폴레옹의 천재 아들이 되었다-52화(53/547)
(52) 유진은 방데 왕당파를 파리로 던진다
때로, 승전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순간도 존재한다.
“죽여야 해! 모두! 단 하나도 살려둬선 안 돼!”
한쪽 눈이 날아간 [애꾸], 카리에가 전원살해를 주장하며 포효했다.
마슈쿨 전투가 끝난 지 한 달여.
이제 눈이 내릴 시기가 된 12월이다.
그러나 낭트는 여전히 승전 분위기는커녕 오히려 을씨년스러웠다.
모두 방데 반란 탓이다.
어쩌면 지금 괴성을 지르는 카리에 때문일 수도 있지만.
“카리에 의원. 그렇게 간단히 말할 일이 아니오. 재판을 거쳐야 하오.”
“재판은 무슨! 파리로 보낼 것도 없어. 아니, 파리는 지금 방데 반란의 승전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고. 클레베르 장군, 이게 다 당신이 적군 추격을 게을리한 탓이야!”
“무슨 헛소리요! 적군 수뇌부를 잡는 게 당시에는 중요했소!”
그 순간 낭트의 시장 사무실 책상을 내려치며, 카리에가 고함쳤다.
“그래서 지금 산발적인 ‘도적’들의 습격이 계속되고 있잖나!”
사실 엄밀히 말해, 낭트는 방데가 아니라 그 북쪽 브르타뉴 지방의 중심 도시다.
그러나 방데에 가깝고, 또한 방데 반란군이 주된 목표로 삼은 탓에 내전의 중심이 되어 버렸다.
반대로 혁명군 측이 사령부를 둔 곳도 바로 낭트다.
나아가 카리에가 학살을 주도한 장소도 이곳 낭트의 루아르 강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복한 왕당파 반군, 핵심 3천 명도 모두 낭트 시청의 임시 감옥에 갇혔다.
지금 이 모두를 카리에는 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잡아두었던 왕당파는 모두 죽인 상태다.
“모두 죽여야 해! 그래서 이 방데에 공포를 심어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도 파리에 들고 갈 게 생겨!”
“대체 뭘 들고 간단 말이오? 반란 종료 확인서라도 누가 준답니까?”
“최소한 저놈들의 목은 가져갈 거 아닌가!”
카리에가 클레베르, 르콩트, 르케일을 ‘외눈’으로 노려보며 부르짖었다.
“저놈들은 그냥 반도가 아니야. 외세와 결탁한 매국노라고!”
반대로 말하면, 이번에 잡힌 왕당파는 단순히 반혁명 반란군이 아니다.
외세 결탁 혐의가 있는 ‘매국노’다.
나폴레옹의 포격 당시 한쪽 눈이 날아간 [애꾸], 카리에가 전원살해를 주장하는 배경이다.
이 외눈이 된 원한까지 카리에는 왕당파를 죽여 풀어버릴 생각인 모양이다.
“내버려 둘 거야?”
문득 이폴리트가 유진에게 물었다.
유진과 이폴리트는 이미 시장 집무실에서 나오는 길이다.
어차피 카리에가 관심을 둘 상대도 아니고, 또한 유진도 카리에 의원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카리에가 국민공회가 파견한 [파견의원]인 것은 분명하다.
명목상 이 반란 지구를 책임지는 최고 의사결정권자란 얘기다.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뭘 어떡해? 카리에를 처리하기라도 하라고?”
“그게 아니라. 원래 왕당파 친구들 살려준다고 잡은 거 아니었어?”
“그랬지.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말이야.”
분명, 유진은 로슈자클랭에게 약속했다.
살려주겠다고.
공주의 기사, 그 이름을 걸고.
물론 사실 유진 입장에서는 별로 신경쓰는 이름이 아니다.
어차피 나폴레옹 클럽 핵심인사가 되는 게 유진이 정한 목표다.
그런데 구 왕실 기사 따위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마리는 유진에게 중요하지만, [기사]가 꼭 되고 싶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니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하지만 시기가 확실히 좋은 때는 아니거든. 파리가 슬슬 ‘공포’로 물들 때지.”
유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하자, 이폴리트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야? 공포라니? 라인 전장에서 무슨 나쁜 소식이라도 있냐?”
“그건 아닐걸? 오히려 오슈나 피슈그뤼, 그리고 주르당이 라인 전장에서 소규모지만 승전 중일 거야. 나도 정확한 첩보를 다 입수한 건 아니지만.”
“주르당? 처음 듣는 이름이군. 그쪽 방면 일인자는 뒤무리에 아니었어?”
유진이 거론한 [혁명전쟁]의 승장들 이름에, 이폴리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혁명은 항상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낸다.
왜냐면 구 시대의 유력자들이 실각하거나 죽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가 직면한 전쟁은 그야말로 국가 위기라, 오히려 더욱 ‘영웅’을 만들어내는 측면이 있다.
이전 전장에서 활약하던 구세대 장군들이 몰락하고, 신세대 장군들이 탄생한다는 얘기다.
벨기에를 정복하는 남자, 주르당도 그 중 하나다.
그러면 라파예트가 빠진 상황에서 본래 혁명군 1인자였던 뒤무리에는 어떨까?
유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뒤무리에는 조만간 도망칠 수도 있어.”
“어딜? 아, 그러고 보니 너 오슈한테 했던 말 기억나는걸. 뒤무리에가 배신할 거 같다고?”
“원래 그자는 오를레앙 공작 사람이잖아. 언제 배신해도 이상하지 않지.”
사실 원역사에서는 뒤무리에는 벌써 배신했어야 한다.
서기 1793년 5월에 오스트리아 진영으로 넘어가니까.
그러나 현재, 유진이 왕을 먼저 죽이고, 거기에 툴롱까지 나폴레옹이 본래보다 빨리 끝냈으며, 방데도 성공적으로 종결한 상태다.
그야말로 혁명정부가 내부에서 승리를 거듭하는 상황이랄까.
그래서 뒤무리에가 배신을 하고 도망갈 타이밍을 놓친 상황이다.
그럼에도 유진은 결국 뒤무리에는 배신할거라 생각했다.
결코 로베스피에르와 맞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을지, 성공적으로 도망갈지,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유진이 어떤 수를 쓰든 바꿀 수 없는 절대적 미래가 있다.
이 시대를 덮치고 있는 [소빙하기]의 기후다.
유진은 그 예견을 간단히 입에 담았다.
“게다가 이번 겨울엔 기근이 올 것 같거든.”
“어, 춥긴 춥다. 어쩐지 1788년의 겨울 같은 기분이군.”
“그게 문제야. 항상 강추위가 몰아친 후, 기근이 왔지. 이번에도 그럴 수 있어.”
문득 유진은 하늘을 보았다.
“그럼, 희생양이 필요해져. 어디서든.”
희생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교회를 무너뜨린 혁명정부도 낭트의 유명한 대성당까지 부수지는 않았다.
높다란 교회탑을 보다, 유진이 문득 웃었다.
“그래도, 이제 곧 [노엘]이군.”
노엘, 곧 크리스마스다.
-뎅! 뎅! 뎅!
크리스마스의 도래를 알리듯, 낭트 대성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
그러나 이미 모두가 알 듯, 낭트의 진정한 실권자는 따로 있다.
“툴롱처럼 처리하긴 어려워, 알지?”
낭트 외곽, 임시 사령부는 정작 사령관 클레베르가 없다.
되려 마르세유가 본거지인 나폴레옹의 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시청 쪽을 클레베르가 점유한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폴레옹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방데 내전을 종결지은 장본인으로.
유진은 방데 내전의 종결자, 나폴레옹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알죠. 저도 이제 13살입니다, 장군님.”
“구시대에도 14살은 되어야 결혼 연령인 거 아나? 현재 혁명정부에서는 최소 18세는 되어야 성인으로 쳐주고 있지만.”
“그래서 빨리 크려고 잠은 꼭 8시간씩 잡니다.”
가볍게 농담하는 유진을 향해, 불면남 나폴레옹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잠은 4시간이면 많이 자는 거지, 소년기수. 참, 순정남 마르소는 애인은 찾았다던가?”
“아직 수배 중입니다. 그래도 어디로 갔는지 대충 추적은 되는 상황이라, 곧 찾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아니, 우리 마르세유 우편연대가 그만큼 뛰어나다고 해야겠지? 후후.”
문득 나폴레옹이 사령부 막사 밖을 보며 일렀다.
“파리에서는 저들의 죽음을 원할 거야, 소년기수.”
저 멀리, 시청이 보인다.
시청 외곽의 건물들은 을씨년스런 감옥으로 바뀐 뒤다.
본래 낭트가 한창 평화로울 때는 대검귀족이나 관료귀족들이 살던 저택이었다.
허나 방데 반란이 진압되면서 임시 감옥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카리에는 당장 저 감옥들을 불태우고 싶은 듯, 뻔질나게 클레베르와 나폴레옹을 다그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나폴레옹은 답을 주지 않았고, 파리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나폴레옹이 말했듯, 시간을 끌면 돌아올 답은 분명하다.
즉결처형.
파리가 내릴 결정이다.
나폴레옹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도 10만은 죽이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낭트 감옥에 갇힌 사람들만 벌써 3천 명이야. 알지?”
“압니다.”
“저들 모두를 죽여서 10만을 살리라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지. 클레베르 사령관도 전쟁을 치를 때보다, 지금이 더 골치 아프다고 하더군.”
이것은 원역사에서도 조금 더 늦게 벌어지는 일이다.
1794년 초, 원역사에서도 방데 내전이 일단 1차 종결된다.
그러나 왕당파를 모두 잡지는 못한 상황에서, 카리에와 투로를 비롯한 강경파가 주도권을 쥔다.
그야말로 학살이 벌어지는 와중에 클레베르는 마르소와 함께 반대하다가 쫓겨나게 된다.
지금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훨씬 더 빨리 내전이 끝났고, 군부 신성인 나폴레옹이 온 데다, 카리에가 주도권을 잃었다.
그 때문에 아직 파리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폴레옹이 유진을 정시했다.
“하지만 3천을 죽이면, 다시 또 다른 3만을 죽이자고 하겠지. 그 다음에는 다시 30만을 죽이자고 할 거야. 나도 몰랐는데, 툴롱에서 사람 한 번 죽여본 적 없는 의원들이 그렇게 떠들더군.”
“그게 역사책을 보면, 학살의 속성이더군요.”
“자네도 역사 좋아하나? 난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나 리비우스 로마사를 즐겨 읽었지, 자네 나이 때.”
문득 즐거운 얼굴로 옛 기억을 떠올리던 나폴레옹이 다시 낯을 굳혔다.
“난 최소한 왕당파 지휘부 수괴들은 모두 처형해야 한다고 봐. 그래야 감옥에 있는 3천 명이라도 살지. 로슈자클랭은 당연하고.”
소수를 죽여, 다수를 구하자.
그게 역사에서 결국 영웅들이 다다르는 결론이기도 하다.
영웅들은 대체로 무자비한 학살자는 아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소수를 죽일 결단을 내릴만큼 냉혹한 이들이기도 하다.
3천 명.
결코 적지 않은 숫자.
그러나 방데에서 본래 죽었을 30만에 비하면, 분명 적다.
유진은 잠시 숨을 깊게 들여쉬다 나폴레옹을 마주 보았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장군께서 손에 피를 묻히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도박신동?”
“피는 파리의 정치가들이 묻히면 되는 겁니다. 장군께서 흘리게 만들 피는 적군으로 족합니다.”
전쟁이 끝나던 그 날부터 생각했던 진심을 유진이 토로했다.
“그게 향후 전장의 영웅이 되실 장군이 가셔야 할 길입니다. 역사 속에서 알렉산드로스, 한니발, 카이사르가 그랬듯이.”
알렉산드로스, 한니발, 카이사르.
서방 역사에 남은 최고의 정복자들.
그중 카이사르는 심지어 황제 일보 직전까지 다다르는 자다.
아직 25살이 채 안 된 청년, 나폴레옹이 입을 쩍 벌리다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정말, 저 나이에 어디서 저런 아첨을 배웠는지 모르겠어. 안 그런가, 마르몽?”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장군.”
“후후! 저 꼬마 도박꾼이 하는 말, 다 맞죠!”
옆에서 듣고 있던 부관, 마르몽과 쥐노가 낄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청년 장군이라도 ‘카이사르’에 비유한다는 건 정말 과도한 아첨이다.
단지 원역사를 아는 유진은 너무 당연해서 입에 올렸을 뿐이다.
바로 카이사르조차 다다르지 못한 [황제]가 되는 이가 나폴레옹이 아닌가?
문득, 아직은 새파란 앳된 청년 나폴레옹이 유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계획이 있나, 소년기수?”
나폴레옹도 결심한 것이다.
방법이 있다면 살려보기로.
유진은 나폴레옹도 심중에 한 번은 떠올렸을 그 방법을 입에 담으며 싱긋 웃었다.
“예, 파리로 전부 던져 버리는 겁니다.”
결정권자들에게 책임을 던져 버리는 것이다.
***
중죄인은 중대한 감옥에 갇히는 법이다.
-똑, 똑, 똑.
시청 아래, 지하감옥은 비좁다.
그래서 3천 명 모두를 가둘 수 없어, 시청 주위의 저택을 개조해 감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중 중대 범죄자는 그래도 지하에 갇혔다.
예컨대 총사령관 로슈자클랭이라든가.
지하수가 범람해 물이 떨어지는 습기찬 감옥.
족쇄를 찬 로슈자클랭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문득 로슈자클랭은 눈을 떴다.
“누구지?”
인기척을 낸 유진이 가볍게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귀가 밝군요. 로슈자클랭.”
로슈자클랭은 유진을 보다 씁쓸히 웃었다.
“공주의 기사인가. 죄수가 있는 곳으로 오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데.”
“전장에 나갔을 때도 그런 얘기 많이 들었죠. 은행을 세웠을 때도, 또 왕실의 도박판에 끌려 갔을 때도.”
“멀리서 본 적 있어. 자네가 아르투아 백작을 대리해서, 프로방스 백작을 카드로 부숴버릴 때 말이야.”
이번에는 유진이 놀랄 차례다.
실로 기억에도 없는 옛날 일.
아직 혁명이 시작되기 전의 사건이다.
왕실 시동으로 기용되어 도박판을 오가던 때의 겜블.
그때 귀족이었던 로슈자클랭도 왕실을 출입하다 봤던 모양이다.
“저도 이젠 기억 못하는 일을 기억하시는군요.”
“자네야 혁명기가 성장기니 당연하지. 난, 혁명 전이 오히려 눈부신 나날이었다네.”
“베르사유는 눈부시긴 했죠.”
유진은 잠시 옛날을 떠올리다 차갑게 웃었다.
“하지만 당시 베르사유 밖, 파리는 이런 감옥 같은 환경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 심했죠. 저도 궁전에서 나오는 길에 늑대에 물려 죽을 뻔했거든요.”
혁명이 나쁘다고 귀족들은 말한다.
그러나 혁명 이전의 세상은 어땠을까?
평민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그때 로슈자클랭이 놀라 물었다.
“파리에서? 맙소사, 그런 일이! 다친 데는 없었나?”
유진은 뚫어져라 로슈자클랭을 보다 한숨을 쉬었다.
“상냥하시군요, 로슈자클랭 백작. 하지만 그 상냥함은 이 혁명의 파도를 넘지 못합니다.”
사람됨만 따진다면, 혁명에 참가한 카리에보다 로슈자클랭이 훨씬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로슈자클랭이 집권한다면 프랑스는 좋아질까?
이미 원역사에는 예시가 있다.
루이 18세, 현재는 로슈자클랭을 비롯한 왕당파들이 [루이 17세]로 모시는 프로방스 백작.
백작이 왕으로 복귀한 왕정복고 시절, 프랑스 시민들은 다시 비참한 생활로 빠져 버렸다.
결국 다시 프랑스는 혁명에 휘말리게 된다.
그럼에도, 눈앞의 로슈자클랭은 선한 자다.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로슈자클랭이 유진을 향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왕비 폐하를 지켜줘서 고맙군. 루이 왕은 어리석은 자였지. 그러니, 자네들이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 반역이 일어난 거겠지.”
“이제는 당신들의 거병이 반역입니다, 로슈자클랭.”
“패자가 무슨 말을 하겠나? 부디, 나 혼자의 목숨으로 끝내주길 바랄 뿐이네. 그때 말했듯이. 자네가 무슨 힘이 있겠냐만.”
구시대 기사의 미덕을 가진 귀족을 보다,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3가지 길이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뜬 로슈자클랭의 앞에서 유진이 손을 꼽았다.
“하나는 여기서 죽는 겁니다.”
“그렇군.”
“대신 당신만 죽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3천 명 모두가 죽을 겁니다.”
그 순간 로슈자클랭이 경악해 외쳤다.
“그건 안 돼! 임산부도 있어. 최소한 여자들과 노약자들만이라도 살려주게!”
“봤습니다. 하지만 혁명군 입장에서 그 여자들과 노약자들은 반역자들인데다, 증오받을 귀족들이죠.”
“자네도 기사 아닌가!”
물론 기사가 아닌 유진은 냉담하게 대꾸했다.
“그러니 두 번째 길을 제시하죠. 여기서 문을 열어줄 테니, 탈출해 런던으로 가는 겁니다.”
“뭐?”
“대신, 여기 간수들은 처형당하겠죠. 또한 당신들은 매국노가 될 거고.”
유진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명예가 죽는 겁니다. 목숨 대신.”
로슈자클랭은 이를 악물었다.
만약 다른 때묻은 귀족이라면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당장 귀족 중의 귀족, 오를레앙 공작부터 망명을 떠나지 않았던가?
허나, 그럴 거였다면 로슈자클랭은 이미 왕실이 무너졌을 때 떠났어야 했다.
그때도 베르사유 궁전을 지키다가, 낙향한 게 바로 로슈자클랭을 비롯한 방데 반란군 왕당파 귀족들이다.
명예를 목숨 이상으로 중시하는 진짜 기사, 로슈자클랭이 물었다.
“3번째 길은 뭐지?”
유진은 눈을 번뜩이며 로슈자클랭의 어깨를 붙잡았다.
“파리에 가서 혁명정부의 재판을 받는 겁니다. 왕비 폐하가 그랬듯이, 사형이 사실상 정해진 재판이죠.”
로슈자클랭은 그게 첫 번째 길과 무엇이 다른지 물으려 했다.
그러다, 순간 로슈자클랭이 입을 벌렸다.
눈앞의 소년이 가진 별명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공주의 기사.”
그 별명이 어떻게 주어졌을까?
재판에서 왕비를 구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유진은 이렇게 말한 것이다.
파리에서 정식 재판을 받자.
거기서 너희들을 구해보겠다.
순간, 로슈자클랭이 유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세 가지 모두 죽는 길이군. 좋아, 그럴 바에는 재판을 받지. 그대들 [혁명]의 재판을.”
그 순간, 유진과 로슈자클랭이 손을 잡았다.
혁명 종결자의 미래 양자가 왕당파의 수괴와 손을 잡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