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the Sacheon Dang's Swordsmaster-Rank Young Lord RAW novel - Chapter (320)
320화. 뜻하지 않은 만남(1)
마도 이공자 곽연은, 귀주에서 출병할 적에 모친과 나눈 대화를 잊지 않고 있었다.
━군 장로와 은령. 두 분의 말씀을 이 어미가 한 것이라 여기고 잘 따라야 한다. 공명심에 취해 앞서지 말고, 항시 주변을 잘 살피렴. 듣자하니 당가주는 화경에 올라 사천제일미라 불리던 시절의 미모를 되찾았다더구나. 가급적 혼자 다니지 말되, 혹시라도 혼자 다니게 되거들랑 아름다운 여인과 조우했을 때를 조심하려무나.
━사천제일미라면, 어머님과 견줄 만큼의 미인이겠군요.
가벼운 농에 가까운 얘기였지만, 이상하게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근래 여러 번 여인을 취한 까닭일까. 곧 마주할 당가주의 외양이 어떠할지 몇 번인가 상상하긴 했었다.
그래서 정천맹도로 짐작되는 이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여인을 보고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것이었다. ‘당지혜’라고.
아닌 게 아니라, 지금 곽연의 눈에 틀어박히듯 들어온 여인은 몹시 아름다웠다. 순간적으로 천하절색(天下絶色)━ 네 글자가 뇌리에 화인처럼 새겨질 만큼.
긴 머리칼이 방해되지 않도록 뒤로 틀어 올린 덕분에 백옥처럼 고운 목덜미가 시원스레 드러나 있는 것부터가 인상적이다. 순진무구한 소녀의 그것처럼 커다란 눈망울, 오뚝한 콧날, 붉은 과즙이라도 밴 것처럼 생기 있는 입술까지, 얼굴은 전체적으로 앙증맞은 느낌이다.
여인으로서의 매력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게끔 제약하는 수수한 무복 차림에, 급히 달려오느라 그런 것인지 잠깐 동안의 전투 때문인지 흙먼지가 전신 여기저기에 묻어있었으나, 그녀의 미모는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사천제일미(四川第一美), 독봉(毒鳳), 당가주━ 그런 단어들을 곽연이 순차적으로 연상한 것도 당연했다. 그는 태어나 지금껏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본 일이 맹세컨대 없으니까. 젊을 적 귀주제일미(貴州第一美)라 불렸고, 그 후로도 주안술을 익혀 최대한 세월을 피해 왔던 그의 모친 곽화영을 포함해서다.
그러니 곽연이, 섭선(摺扇)을 한 자루 검처럼 들고 선 여인을 당가주 독봉 당지혜라 추측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들은 대로 그녀가 화경에 올라 반로환동한 것이라면 사천제일미라 불리던 시절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되찾았을 테니까.
물론 곽연이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면 여인이 당지혜가 아니라는 것쯤은 금세 깨달았을 것이다. 암기술과 용독술━ 대량살상의 무학을 지닌 당가의 절세 고수가 정말로 이 자리에 현현했다면 악산현 외부를 선회하고 있던 기병들은 그가 당도하기 전에 이미 시체로 화해 있었을 공산이 크니까.
그러나 곽연이 생각을 더 이어가기도 전에 노성이 터졌다.
“뭐냐, 네놈은? 마기를 풀풀 풍기는 것을 보면 곽가의 잡졸인 듯한데, 무슨 연유로 본가 가주님의 성명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이냐?”
나선 것은 외팔의 검객이었다. 오른팔이 멀쩡했다면 삿대질가지 곁들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사나운 기세였다.
곽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럼 그쪽 소저께서는? 인세의 아름다움이 아닌데.”
“뉘신진 모르겠으나 예의가 없군요. 그리고 저 따위는 감히 그분의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거, 결례했군.”
곽연은 쏘아붙이는 듯한 여인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며 안심했다. 어쨌거나 당가주가 아니라면 크게 위험할 일은 없으리라 판단한 까닭이다. 사천 땅에서 주의해야 할 인물은 그녀 하나였으므로.
조화경의 고수 당지혜━ 그녀의 부재가 확인된 이상, 공격을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절세 고수가 없다면 병력 차이를 극복하기란 지난한 일이므로. 적의 인원은 고작 일백이니, 악산현 내를 휘젓고 있을 병력이 집결 명령을 듣고 모두 모인다면 이쪽의 머릿수는 무려 사백에 달하게 된다. 그야말로 압도적 우위.
여유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곽연이 입을 열었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미모에 놀라 소개를 잊었소. 본 공자는 귀주 곽씨세가의 소가주요.”
“그럼, 당신이 곽연인가요?”
“날 아는군? 이거 영광이오. 소저 같은 미녀가 본 공자의 이름을 불러주다니. 자, 이제 소저의 방명(芳名)을 들을 차례가 아닌가 싶소만.”
“글쎄요. 우리가 통성명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무엇보다 당신━ 지금 시간을 끌려는 것 아닌가요? 저 뒤로 속속들이 합류하는 병력들이 보이는데.”
섭선을 든 여인━ 제갈영영이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곽연과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 그가 이끌고 온 자들 외에도 십여 명의 기병이 더 불어나 있었다.
“흠. 그건…….”
“단주.”
제갈영영은 즉답하지 않고 어물쩍거리는 곽연을 더 기다리지 않고 곧장 고개를 홱 돌리며 모용휘를 불렀다. 지금 당장 적들의 수를 줄여 놓아야 한다는 뜻을 담아서.
그녀의 눈빛을 받은 모용휘 역시 바로 입을 열어 진기를 실은 음성을 토했다.
“공격을 재개하라!”
그의 명이 떨어지는 즉시 채챙하며 병장기를 다시금 뽑아드는 소리와 쿵! 땅을 세게 박차는 소리 따위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놀란 말들이 히히힝 울어대며 앞발을 치켜세우고, 완전히 접근한 이들은 그 틈을 타 푸르스름한 검기(劍氣)나 도기(刀氣) 따위를 두른 병장기로 말의 다리를 썰어버리거나 배를 갈라버렸다. 곽연의 등장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기 전 잠깐의 전투로 말을 탄 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제법 까다롭다는 것을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이쪽은 병장기의 길이가 대부분 짧아 하반신을 공략하는 것이 최선인데, 적들은 말을 타고서 갑주까지 걸쳐 상반신의 안전을 어느 정도 확보한 채로 장창(長槍)을 강맹하게 찌르고 휘둘러 댔다. 태창마 군천악이 직접 훈련했다더니 창술의 숙련도가 범상치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상대하기 까다로울 터인데, 적들은 평범한 병사도 아니었다. 말을 타고 있는 전부가 상당한 수준의 마공 기파를 자아내는 마인들이며, 나름대로 무림에서 고수라 불릴 만한 실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내지르는 창날에 마기(魔氣)를 두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단순히 내공을 쌓아 신체를 강화하는 것과 아예 체외로 발출시켜 날붙이에 둘러 살상력을 높이는 것은 천양지차인 까닭이다.
그래서 일단 수맹단 인원들이 말을 공략한 것이었다. 갑주까지 걸친 적들을 단번에 쓰러뜨리긴 어려우니 일단 그들이 타고 있는 말부터 무력화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푸푸푸푹━!!
곽가의 기병들은 말이 놀라고, 그 틈을 타 수맹단 인원들이 말을 공격하리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태연히 상반신이 뒤로 한껏 젖혀진 채로 창을 내질렀다. 허점의 허점을 노린 공격━ 반응하여 회피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수맹단 병력 중 십여 명이 경악한 표정으로 꿰어 죽었다.
“멍청한 것들. 네놈들의 얕은 수작 따윈…….”
내지른 창을 회수하며 득의한 웃음을 흘리던 곽가 기병 중 한 사람이 말을 채 맺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의 목은 이미 베어진 뒤였으니까.
‘……쉽지 않군. 이런 자들이 더 있다니.’
수맹단주 모용휘는 가전 무학인 참풍분운검법(斬風分雲劍法)의 쾌속한 검로 중 몇몇을 떼어 휘두르며 생각했다. 또 한 명의 목이 뎅겅 떨어진다. 갑주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건곤백절심법(乾坤百絶心法)으로 쌓은 내력을 이용해 구현한 검기(劍氣) 앞에서는 종잇장처럼 쉽게 잘려나갈 뿐이었다.
착지로 검을 휘두르고 남은 힘을 자연스럽게 흘려버리면서, 모용휘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선 당계중이 살벌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 역시 어렵지 않게 기병들의 목숨을 거두고 있었다. 맹주이자 사형인 당연명이 직접 검을 가르치긴 했지만 당계중은 제대로 된 검법을 익히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저만한 무용(武勇)을 보인다는 것은 확실히 그가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겠지. 좌수검(左手劍) 자체가 지닌 의외성 따위에 당할 만큼 상대의 실력이 얕지는 않았다.
‘……제갈 소저도 무사하고.’
한 번 더 눈을 굴린 모용휘는 비로소 안심했다. 제갈영영 역시 섭선에 선기(扇氣)를 두른 채로 쏟아지는 창격을 이리저리 걷어내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무사하리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제갈가의 핏줄로서 몹시 명민한 여인이니, 적들이 허점의 허점을 노리고서 공격을 가해오더라도 그것 역시 변수로 예측하고 있었겠지. 모용휘 자신이나 당계중처럼 순간적인 반응만으로 회피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나 그럼에도 모용휘는 그녀의 안위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스걱━
또 한 번 벼락처럼 검을 휘둘러 한 명의 목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한 모용휘는 제갈영영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았다. 그녀는 단순히 공격을 걷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방향을 교묘히 틀어지게 만들어 기병들이 서로를 공격하게끔 하고 있었다. 변(變)과 환(換), 유(流) 따위의 묘리를 깊게 궁구하더니 완전히 체화한 것일까.
한편, 적들이 서로를 공격한다 해서 그게 대번에 목숨을 앗아갈 만한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갈영영이 노린 바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휙━
휙━
제갈영영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서로를 공격하게 된 기병들이 작게나마 당황하는 찰나지간, 그녀는 몸을 확 낮춘 채 섭선을 이리저리 뒤집어댔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때마다 말들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단순히 쓰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배를 내보일 정도로 크게 뒤집어졌다. 제아무리 고명한 기마술을 익히고 있더라도 낙마를 면치 못할 정도로.
푸푹━
낙마한, 혹은 낙마하는 도중인 적들을 난자하는 것은 제갈영영 주변의 수맹단원들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오백에 달하는 수맹단 인원 중에서도 가려 뽑은 정예였으니까. 애초에 수맹단으로서 맹지에 남게 된 자들은 정천맹 내에서도 무공 성취가 얼마간 뒤처지는 면이 있었으나 당계중, 제갈영영을 비롯해 불철주야 수련에 임한 이들 수십 명은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낸 참이었다.
‘이렇게 곽가 군세와 조우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사실 맹지에서 남하를 시작한 수맹단 일백의 목적은 사천의 위기를 틈타 양민들을 수탈하려 북상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파 세력을 물리치고자 함이었다. 흑사련 멸망 이후 패잔하여, 지리멸렬한 채로 운남으로 쫓겨 간 것들.
━조금 돌아서 내려가는 것이 좋을 거예요. 북상하는 귀주곽가 병력이 약간이라도 서쪽으로 치우친다면 남하하는 이쪽과 조우할 공산이 있으니까요.
제갈영영의 조언을 따라, 모용휘는 수맹단 일백을 이끌고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남하했었다.
그렇게 아미산 인근에 다다랐을 무렵.
그들은 멀리 악산현 쪽에서 불길한 빛깔의 연기가 여러 줄로 치솟는 것을 발견했다. 방화의 흔적.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파 놈들이 이곳까지 다다른 건가?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당 형.
━아마 곽가 군세일 거예요. 준마를 타고 질주하는 그들의 기동력이면 지금쯤 이 부근에 당도할 수 있었겠죠.
제갈영영의 예상대로였다.
기척을 숨기고 접근해보니 악산현을 둘러싸고 거의 일백에 달하는 기병이 선회하고 있었다. 그러다 안쪽에서 양민들이 튀어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몰고 가서 푹 찔러 죽였다. 아이와 노인, 여인을 가리지 않는 잔혹한 손속이었다. 천인공노(天人共怒)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수맹단주로서, 미안한 명을 내려야겠소.
모용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가 시간을 끌수록 더 많은 양민들이 죽어갈 것이 뻔했으므로.
━전투 준비.
……. (계속)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