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disciple of the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549
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 549화(549/551)
나는 유난히 말이 많아진 쿠세트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장본인에게 직접 물어봤다.
“용혈이란 게 뭡니까?”
“문자 그대로 용의 피지. 물론 평범한 생명체의 핏물과는 달라. 그 자체로 하나의 영약에 가깝달까.”
“핏물이 영약이라니 좀 그런데요……. 생피를 그냥 먹는 건 좀 그렇고, 이것저것 섞으면 좀 나아지려나요?”
타온이 픽 웃었다.
“섣불리 손을 대서 순도가 떨어지면 오히려 효력이 떨어질걸. 과거엔 용의 피를 엘릭서(Elixir)라고도 불렀을 정도니까.”
“뭔 뜻이래요.”
“불로불사의 영약. 혹은 만병통치약? 대충 그런 뜻이지. 실제로 그런 건 아니고. 그래도 저속노화의 영약, 혹은 천병통치약 정도는 되겠다. 물론 핵심적인 효과는 고작 그런 게 아니지만.”
“…….”
“고대로부터 용의 사체가 지닌 가치란 천문학적이었다. 지금도 그래. 가끔 용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리가 들리면, 시체에 꼬이는 날파리처럼 별의별 놈들이 다 몰려왔지. 그럴 만도 해. 부스러기 하나만 주워 먹어도 인생이 바뀌니까. 아낌없이 주는 용이랄까?”
용이 직접 저런 말을 하니 다소 시니컬하게 들렸으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용의 뼈나 발톱, 이빨, 심지어는 심장에도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단 건 저도 압니다.”
나는 과거 보석 산맥에서 사파이어 스네이크란 괴물을 토벌하였고, 그놈의 사체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한낱 몬스터의 사체의 가치가 그 정도였는데, 용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아직도 무구점을 차릴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이름이 드래곤일 정도니까.
“그 외에도 용의 가치는 무궁무진해. 눈알이나 혀는 물론이고 꼬리나 내장, 식도까지. 안 쓰는 게 없지.”
“그딴 걸 어디다 쓴대요?”
“용이 내뱉는 숨결은 알고 있지?”
“알죠.”
“종족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불길을 주로 뿜어. 당연히 불길이 지나는 통로인 식도나 구내口內, 혓바닥은 고온이나 극저온을 버틸 수 있는 구조지. 내열성과 내한성 위주의 무구를 만들 때 최고의 소재랄까.”
“아.”
“하지만 내가 단언하겠다. 이런 것들 이상으로 큰 가치를 지닌 것이 바로 용혈이야. 정확히 말하면 용의 생혈生血이지만.”
“생혈이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생맥주처럼, 갓 뽑아낸 피란 뜻이지.”
저렴한 비유였지만, 이해는 잘 갔다.
“하지만 전 용의 피가 귀하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엘릭서라 불릴 만큼 유명하다면 한 번쯤은 들어 봤어야 하지 않을까? 비늘이나 뼈처럼 말이다.
“혈액을 장기간 보관하는 방법은 없어. 뽑아낸 순간부터 시시각각 신선도가 떨어지거든. 당연히 효능도 떨어지고……. 그래서 대다수는 이 사실을 모르지.”
“그래요? 사람 피는 잘만 취급하면 연 단위까지도 보관 가능하다던데.”
“사람이야 뭐 그렇겠지. 네가 말한 건 마법으로 냉동 보존하는 거지? 하지만 용의 피는 달라. 일단 용혈을 감당할 수 있는 병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거든.”
“…….”
“재미없는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용혈의 효능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 기본적으로 용의 피를 마시거나 뒤집어쓴 자는 우월한 항마력을 얻게 되고, 마나에 깃든 성질 또한 강해진다. 물론 용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가령 적룡의 피를 마시면 불 속성이 되고, 녹룡이면 나무, 백룡, 혹은 은룡이라면 얼음. 대강 그런 느낌이지.”
나는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타온의 말이 진실이라면 정말로 무인, 혹은 무인 지망생에겐 그야말로 지고의 영약이란 뜻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영약의 역할이란 타고난 체질, 혹은 심법으로 인해 정제한 내공의 힘을 더해 주는 기능이 전부다.
실은 그걸로도 차고 넘치기도 하고.
그런데 용혈이란 걸 마시면 딱히 내력에 속성을 가지지 않은 경지라도 개성이 생기게 된다는 의미였다.
영약 자체가 속성을 가진 경우는 많지만, 복용한 자의 체질을 아예 바꿔 주는 영약에 간해선 나도 들은 바가 없다.
나는 잠깐 타온의 머리카락을 확인하였다. 흐릿한 인상과 달리 유난히 번쩍이는 금발이 눈에 들어왔다.
“적룡이 불이고 녹룡이 나무면 황룡은 뭐죠? 황금 속성입니까? 앞으로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그러면 내가 이렇게 궁상맞게 살겠어? 미안하지만 내 용생은 황금과는 인연이 없었단다.”
“…….”
“내 속성은 이거야.”
타온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 파직- 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어쩐지 노르스름한 형태의 전류였다.
“번개?”
“맞아.”
황룡이 번개라니…….
살짝 뜬금없는 것 같기도 하였으나, 어쩐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애초에 남부에서 유명한 13용왕 중에서도, 수장인 인물은 뇌신룡 유피테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을 곧장 물어봤다.
“혹시 본부장님도 뇌신룡과 아는 사이였습니까?”
“오호.”
드물게도 감탄한 타온이 씩 웃으며 말했다.
“흥미로운 질문인데? 왜 갑자기 그런 걸 묻게 된 거야?”
“레드 님은 불카누스와 꽤 연이 있는 것 같았거든요.”
타온은 흐리멍덩한 눈동자를 몇 번 깜박이더니 중얼거렸다.
“그 녀석이 그런 걸 떠들고 다닐 성격은 아닌데…….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으음.”
이쯤 되면 숨기기도 어렵기 때문에, 나는 슬쩍 진실을 밝혔다.
“실은 이 루안 배드니커가 바로 불칸이었던지라.”
“내가 꽤 열린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넌 도무지 리자드맨으론 보이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나는 남부에서 벌어졌던 일을 간추려서 설명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타온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범상찮은 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정체를 숨기고 있었을 줄은.”
“저도 루자드가 이 정도로 영향력이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활약에 비해 이상하게 과대평가된 느낌이랄까요. 생긴 게 멋있어서 그런 걸까요?”
“아니. 내 견해론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이 원래 그렇더라. 실력이나 업적은 둘째고, 가장 중요한 건 시기지.”
영웅 기관의 본부장이 정의하는 영웅치고는 다소 냉소적이었지만, 나 또한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의견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불칸이라면……. 그래. 레드 녀석에겐 꽤 특별한 의미로 다가갈 수밖에.”
“좋은 의미로요?”
“그렇지 않을까? 제국 최강의 대마법사와 척을 안 진 것만 해도 어디야.”
“그러게요. 그래서 13용왕은 대체 뭡니까? 단순히 신이 된 용은 아닌 것 같은데.”
“흠.”
턱을 긁적거리던 타온이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13용왕은 뭐랄까. 우리에게 있어선 존경하는 선조야. 너희 배드니커에게 있어선 꼭 쿠세트 같은……. 표정이 왜 그래?”
“잠깐 날파리가 왱알거려서……. 계속 말씀하시죠.”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들과 실제로 알고 지냈다는 것이겠지.”
사실 나도 지금은 쿠세트와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긴 했지만, 굳이 그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과거야. 13용왕이 신좌에 오르기 전, 그들이야말로 대륙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태초의 용이었다. 가장 순수하고, 또 강력했던 존재. 까놓고 말하면, 지금 우리도 그들과 비교하면 아룡亞龍 수준이야.”
“어…….”
놀라운 발언이었다.
타온이나 레드는 그야말로 초월적인 존재다.
만약 악마가 없는 세상이었다면 모든 종족의 꼭대기에서 군림하며 대륙을 지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그런 위인들도 고대의 용과 비교하면, 현재의 용족과 드레이크 정도의 격차가 있단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에게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어. 사실 이 감정을 정확히 설명하는 건 어려워. 신앙심과 효심, 그리고 스스로도 정확히 모르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으니까.”
나는 잠깐 레드를 떠올렸다.
그 오만한 존재에게 신앙심과 효심이라니……. 화룡신 불카누스는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였나 보다.
“용의 피는 아주 진하지. 지금 대륙에 존재하는 와이번이나 드레이크처럼, 아룡이라 불리는 것들은 죄다 과거 용의 사체에 영향받거나 혹은 섭취한 새, 도마뱀 따위가 단시간에 진화를 거친 모습이니까 말이야. 리자드맨이나 용인도 같은 맥락이고.”
뜻밖에도 나는 여러 종족의 기원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이 진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아마도 쿠세트의 실험으로 탄생한 배드니커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얘기는 잘 알겠습니다만, 그거랑 제가 용혈을 마시는 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용의 피는 순도에 민감하니까. 루쿠루쿠를 제어하려면 용혈이 흐르는 자가 직접 간섭할 수밖에 없어.”
“그럼 그냥 본부장님이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쉽게도 불가능해. 내가 간섭하는 즉시 루쿠루쿠의 육체는 망가질 테니까.”
“그건 또 왜 그렇게 되는 걸까요.”
“말했잖아. 용의 피는 순도에 민감하다고……. 이걸 바꿔 말하면 서열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해. 간섭할 수 있는 건 한 등급 차이일 때뿐이라는 거지.”
“설명이 다소 모호한데, 예시를 좀 들어 주십쇼.”
“에휴. 설명하는 건 정말 귀찮다니까…….”
한숨을 내쉰 타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령 아까 말했던 13용왕을 편의상 [왕]이라 치자고. 그럼 왕이 간섭할 수 있는 건 현재로선 순혈이라 불리는 고룡뿐이야. 나나 레드 같은 녀석 말이야. 이들은 [귀족]으로 치고……. 그럼 [귀족]은 우리보다 한 단계 아래인 [기사]에게만 간섭할 수 있어. 특히 용혈이 짙게 발현한 돌연변이 아룡이나, 혹은 어린 용 말이야. 그 밑에 있는 [평민]이나 [노예]에겐 명령을 내릴 수가 없어.”
무슨 게임의 규칙 설명을 듣는 기분이었다. 이해는 잘 됐지만.
“거기서 말한 [평민]이나 [노예]가 드레이크나 드라칸 같은 존재고요?”
“그렇지.”
나는 그제야 타온의 말이 이해 갔다.
“그러니까 지금 본부장님의 피는 너무 진하기 때문에, 제 몸을 필터 삼아서 한 단계 정수淨水한 다음 누님에게 간섭하라는 뜻이네요.”
“오. 그게 더 비유가 좋은데?”
실실 웃은 타온이 말했다.
“정수라……. 적절한 표현이야. 네 말대로 그렇게 정수를 거친 피는 순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루쿠루쿠 같은 드라칸에게도 딱 적절하게 간섭할 수 있겠지. 문제는…….”
“평범한 인간인 제가 용혈을 받아들였을 때의 부작용?”
“그렇지. 넌 참 이해가 빠르구나. 대화하기가 편한 점이 델락을 꼭 닮았어.”
저런 말은 처음 듣는구만.
“부작용은 뭡니까?”
“죽는 거? 운이 좋으면 전신 화상 정도고.”
딱히 운이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죽는 것보단 낫긴 하지만.
“실은 원래는 용혈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서 겁이나 주려고 했지만……. 네가 불칸으로서 불카누스의 힘을 받아들였다면 확률은 꽤 높아질 거야.”
“그런가요.”
“물론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적성이지. 네 능력은 불에 근원을 두고 있지? 불카누스도 화룡신이었고……. 그러니 속성이 다른 내 용혈을 잘 받을 확률은 잘 쳐도 반반이야.”
얘기를 들으니 사실 가장 좋은 전개는 레드에게서 용혈을 받는 것 같긴 했는데.
실현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다.
당장 그 양반을 찾는 것부터가 일이고, 막상 만난다고 해도 순순히 용혈을 줄 것 같지도 않았다.
타온도 그걸 알기 때문에 굳이 적마법사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는 것 같았고.
하지만 사실 뇌기雷氣도 내게 나쁘지 않았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되는 정도의 느낌?
[거절하는 게 좋다.]전략을 수정한 것인지, 쿠세트가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용혈을 받으면 네 존재 자체가 용에게 얽매인다. 방금 황룡黃龍이 말한 용의 지배 체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저자가 네게 죽음을 명령하면 넌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단 뜻이지.]“용혈을 받으면 저는 본부장님의 권속이 되는 겁니까? 제 생사여탈권을 쥐게 되신다거나.”
나는 쿠세트의 말을 고자질하듯 곧바로 타온에게 일러바쳤고, 이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네가 루쿠루쿠처럼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었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평소엔 무리야.”
“어쨌든 죽일 순 있단 거네요.”
“미련한 질문을 하는구나. 지금 네 말은 중상을 입은 상태로 의사에게 ‘내가 당신의 뭘 믿고 수술을 맡겨? 도중에 수술칼로 날 찍어 죽일 수도 있잖아…….’라고 소리치는 격이야.”
“…….”
그렇긴 하다.
쿠세트도 할 말이 궁색해졌는지 입을 닫았다.
어쩐지 이놈은 뚜렷한 이유 없이, 그저 내 몸에 용의 피가 섞이는 게 싫어서 반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온이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정확히 어떤 작용이 일어날진 몰라. 네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리고 난 용혈의 하사下賜를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지, 실제로 시행한 적은 없어.”
“하지만 이것 이외엔 방법이 없는 거죠?”
“내가 아는 바로는 그래.”
나는 짤막한 고민을 마친 다음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해봅시다.”
“흠.”
타온이 나를 보더니 픽 웃었다. 어쩐지 나를 좋게 봐준 듯한 태도였다.
“언제 할래? 준비할 시간 같은 게 필요하면 기다려 줄 수도 있어.”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는데, 본부장님만 괜찮으면 당장 시작하죠.”
“속 시원하구만. 좋아.”
픽 웃은 타온이 내 앞에 있던 컵을 잡았다.
“거기 담게요?”
“응.”
“아까는 뭐 용혈은 보관할 병부터 찾는 게 일이라더니.”
“곧바로 마시면 괜찮아. 말해 두는데, 마시는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고통이 네 전신에 몰아칠 거다. 혈관을 타고 불길이 달리는 느낌일 수도 있고, 작은 얼음 조각들이 피부 아래를 끝없이 할퀴는 느낌일 수도 있어. 혹은 벌레 수천만 마리가 네 몸속을 기어 다니며 갉아먹는 느낌이 날 수도. 그 과정에서 미치거나 목숨을 끊는 사람도 적지 않아.”
“아하. 빨리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하여튼 물러날 기회는 지금뿐이란 거야.”
“됐으니까 빨리 갑시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타온이 검지를 펼쳤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딱히 자상이 생긴 것도 아닌데, 손가락 끝에 핏물이 맺히더니 주르륵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평탄한 어조였으나 평소보다 말이 빠르다.
나는 잽싸게 컵을 잡았는데, 그 순간 전류가 흐르는 금속과 접촉한 것처럼 머리털이 쭈뼛 섰다.
‘이걸 마시라고?’
꼭 번개를 마시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물을 씹고, 불을 삼키라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말처럼 다가왔달까.
지금이라도 무를까 하는 생각이 스쳤으나, 망설일 틈은 없었다.
아직은 강대한 기운이었지만, 계속 이 상태는 아닐 거란 확이 들었기 때문.
나는 즉각 컵에 든 용의 피를 목구멍에 때려 박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곧 들이닥칠 고통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손에서 느껴졌던 전류의 짜릿함이 이제는 목구멍을 통해 밀려들어 왔다.
번개의 맛은 파인애플주스와 흡사했다. 생각해 보니 이 컵은 방금까지 파인애플주스가 들어 있었다.
파인애플주스가 아니라 애플주스라면 좀 나았으려나.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는데, 어디선가 천둥소리 같은 게 들리더니 전신의 감각이 선명하게 일깨워졌다.
머리털은 물론이고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 나 있던 솜털까지 빳빳하게 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
이상하게 딱히 고통이랄 게 느껴지지 않았다.
살짝 실눈을 뜬 채로 앞을 보니, 타온은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 실눈을 눈치챘는지 다소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너 뭐야?”
“예?”
“왜 멀쩡한 거야?”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이상한데? 잠깐 확인 좀 할게.”
성큼 일어난 타온이 한달음에 달려오더니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이 남자의 표정이 점차 괴상해졌다.
“용혈을 완벽하게 흡수했잖아? 이게 뭐야. 뇌기를 타고난 존재도 이 정도 적합률을 보이진 못할 텐데.”
“…….”
“…너, 혹시 예전에 길 가다가 벼락이라도 맞았어? 아니지. 이 정도면 내성이라면 한 번 맞은 정도가 아니라 백 번, 천 번, 아니. 만 번은 맞아야…….”
일만 개의 번개.
즉 만뢰萬雷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퍼뜩 지구에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던 것 같기도.”
“뭐?”
“일만 번 내려친 번개요. 맞았던 것 같다고요.”
타온의 표정이 실로 황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