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disciple of the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551
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 551화(551/551)
이 년이란 시간을 충분히 체감했다고 느꼈다.
울크아에서, 배드니커에서, 바뀐 가족들의 태도와 가정을 이뤄 낸 한 형제, 그리고 태어난 작은 아이. 나의 이름을 땄던 아이를 보면서…….
이 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며, 그 시간 동안 오직 나의 존재만이 오려 낸 것처럼 따로 놓여 있었구나, 하는 생각.
그 사실이 슬프거나 원통한 건 아니었다.
그냥 그랬구나, 하는 정도의 감상이었지.
그런데 에반 헬빈과 재회한 순간 느끼게 된 심정은, 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었다.
나는 정말 이 년이란 세월을 체감했던 것일까?
그 시간이 사람을 얼마만큼 바꿔 놓을 수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나?
오랜만에 본 에반의 모습은 단순히 초췌하단 말로도 부족해 보였다.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 자국이 자아내는 초췌한 인상,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번들거리는 눈동자였다.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눈동자는 꼭 구정물 속을 헤엄치는 생선처럼 탁했다.
좌불안석에 앉은 듯 눈알을 굴리던 에반이 나를 보더니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
“…안녕.”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서 같은 말을 돌려 줬다.
미약한 램프 불빛이 방 안을 밝히는 가운데, 나는 에반의 맞은편에 앉은 채 동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손톱을 질근질근 씹고 있던 에반이 충혈된 눈동자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용케도 곱게 따라왔네.”
“무슨 말이야?”
“라, 란델을 순순히 따라왔잖아.”
나는 나를 안내했던 자의 이름이 란델이란 걸 깨달았다.
에반은, 습관처럼 말을 더듬으며 다소 알아듣기 어려운 어조로 말했다.
“함정일 수도 있겠단 생각은…… 하, 하지 않았나?”
“했지. 사실 이 건물을 봤을 때까진 거의 함정이라 생각했고. 시설이 좀 허름해야지.”
“그럼 왜?”
의심을 거듭했으면서도 왜 여기까지 가만히 따라왔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사실이라면 잔존 교단의 수장을 만나는 거고, 거짓말이면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때려 팬 다음 캐내면 되니까.”
“너는 여전하구나.”
어쩐지 “난 아닌데.” 하는 뒷말을 숨긴 것처럼 들렸다.
나는 에반이 주기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이 거슬려서 말했다.
“쥐새끼도 아니고 왜 자꾸 손톱은 물어뜯는 거야? 가만히 좀 있어. 정신 사나워 죽겠네.”
“미안해. 습관이라.”
“그런 습관 없었잖아.”
“이, 이 년이면…… 못된 습관이 몇 개 정도 생겨나기 충분한 시간이지.”
“말 더듬는 것도 그런가? 중간중간 기분 나쁘게 웃는 거랑.”
“그렇지.”
낮게 웃고, 말을 더듬으며 에반이 대꾸했다. 그리고 살짝 표정을 바꾼 다음에 물었다.
“루안… 혹시 무채색의 신자와 접촉했어?”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
“이, 이건 그냥 내 추측이야. 무채색의 신자 한 명이 헤로스에 사절로 방문했단 걸 알게 됐고… 때마침 너와 커럽티드도 헤로스에 복귀했으니까. 타이밍이 다소 공교롭다고 생각했지.”
에반의 말을 들으며 살짝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와 커럽티드의 동향을 파악한 건 그렇다 쳐도, 정체를 숨기고 있을 게 분명한 벤자민이 무채색의 신자란 것과 그 행적까지 알고 있단 뜻이었기 때문이다.
에반 헬빈은 지금 어떤 존재가 된 것일까.
나는 문득 이 녀석과 헤어지기 직전 나눴던 약조가 떠올랐으나, 지금의 에반이 영웅 지망생인지 교주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불안정하게 떨리는 눈동자와 태도에선 그 무엇도 엿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꼭 쉴 새 없이 파문이 번지는 호수를 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의문을 곧장 입에 담았다.
“귀가 밝은데. 그간 정보 길드라도 하나 꾸렸나 봐.”
“그렇지는 않고. 그저 교인들은 어디에나 있을 뿐이야. 너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까지… 그들이 자리 잡고 있지. 악기를 품고 있지 않더라도… 혹은 마왕을 믿지 않더라도 말이야.”
마왕을 믿지 않는 자를 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에반의 말이 다소 모순적으로 들렸으나, 굳이 붙잡고 늘어지지는 않고 대신 다른 점을 물었다.
“헤로스 안에도 교인이 있다는 거야?”
에반은 대꾸하는 대신 웃음을 흘렸다.
“오늘, 널 이 자리에 부른 건 경고하기 위해서야.”
“무슨 경고.”
“앞으로는 이쪽 일에 참견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누군데.”
“너희가 잔존 교단이라고 부르는 이들.”
그렇게 대꾸한다면, 나는 한 번 더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넌 누구야?”
“뭐?”
“넌 여전히 내 동기이자 영웅을 지망했던 에반 헬빈인가? 아니면 잔존 교단을 이끄는 소교주인가.”
“…루안. 내가 지난 이 년 동안 깨달은 진실 중 하나는, 그 어떤 정체성이라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 네 조언대로 말이지.”
“…….”
“나는 네가 알던 에반이 맞아.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어. 변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네 자유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내겐 그 사실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어째서.”
“사, 사명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에반이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우리뿐이야, 다른 세력의 간섭은 원치 않아.”
“말은 쉽구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숭고한 척 내숭 떨어도 너희들의 죄는 사라지지 않아. 내 말은 피해자인 척 굴지 말란 뜻이야. 지금 네가 이끄는 자들은 약자일지는 몰라도, 악하지 않다고는 보기 어려워. 지금 그들이 받는 취급이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
“…….”
“간섭받길 원치 않는다면 해야 할 일이 많아. 너희에게 불손한 의도가 없음을 증명하고,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대가를 치러야지.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는 그다음에나 주어지는 거고.”
문득 이런 얘기를 에반과 하고 있단 사실이 우스워 픽 웃고 말았다.
때마침 에반도 웃고 있었지만, 이 녀석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습관처럼 웃은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좋아. 이 화제가 불편하면 다른 걸로 바꾸자고. 사실 나도 널 만나려고 했어. 정확히 말하면, 잔존 교단의 수장을 말이야.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뭐가 궁금해?”
“지금 교단 상황은 어때?”
“지, 질문이 너무 포괄적인걸.”
“구체적으로는 하덴아이하르 쪽, 핏빛 달 파벌의 상황을 알고 싶은데.”
에둘러 말하려다가 그냥 속 시원히 직구를 던지자 에반이 잠깐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쪽은 왜?”
“짚이는 게 좀 있어서? 설명하면 너무 길어.”
당연히 내가 짚이는 것이란 셋째 사형과 관련된 일이었다.
핏빛 달의 마왕은 현재 대륙이 아닌 다른 우주… 즉 지구 쪽에 침공한 상태였고.
그 괴물과 일대일로 시간을 끌고 있는 게 바로 셋째 사형이었다.
시간 흐름에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각기 다른 장소에 마왕이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
즉 셋째 사형과 하덴아이하르가 얼굴을 맞대고 있는 동안은, 핏빛 달의 마왕이 우리 쪽 우주에서 행세할 수 있는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단 뜻인데…….
정확한 상황을 알려면 역시 그놈을 직접적으로 숭배하던 신자에게서 캐내는 것보다 정확한 게 없다.
이것이 내가 잔존 교단의 수장을 만나려 한 첫 번째 이유였다.
“…….”
에반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뭔가 문제가 생겼단 건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안 것만으로 큰 수확이긴 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도 셋째 사형은 아직 죽지 않은 채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단 의미였으니까.
나로선 가슴속에 있던 납덩이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답하기 어려우면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갈게. 실은 이쪽이 훨씬 핵심일지도 몰라.”
“뭔데?”
“만약 마왕 하나를 죽여야 한다면 누구를 노리는 게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을까?”
“…….”
이 말에 에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다소 과할 정도로 말이다.
다만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뚱이와 달리, 표정은 침착했다. 에반은 정신과 육체가 따로 노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물었다.
“질문의 의도가 뭐야?”
“의도가 필요한 질문인가? 그냥 말 그대로인데.”
“그 말이 얼마나 허황된 건지… 위대한 가문의 일원이자 현역 영웅인 네가 모르지는 않을 텐데.”
“잘 알지. 일반적인 방법으론 마왕을 절대 죽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그러니까 나 이상으로 마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너한테 묻는 거잖아.”
“…….”
잠깐 한숨을 내쉰 에반이 입을 열었다.
“그만둬. 란델.”
동시에 내 후방에 서 있던 란델이라는 존재가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교주님.”
“적이 아니야. 함정도 아니고. 애초부터 그럴 의도였다면 혼자 오지 않았을 거고, 이렇게 마주 앉아 대화할 일도 없었을 거야. 그런 녀석이니까.”
“옳으신 말씀.”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참고로 더 말해 주자면 그 이쑤시개 같은 비수를 들고 한 발짝만 더 다가 왔다면 댁 턱은 깨진 사과 같은 꼴이 됐을 거야.”
“…….”
란델이란 놈은 내 도발적인 말에도 별다른 대꾸 없이 다시 물러났다.
감정이란 게 없는 듯한 태도였다.
나를 여기까지 안내했던 녀석이기도 한데, 사실 오는 길에 몇 가지 질문을 던졌을 때도 사무적인 대꾸만 돌아왔을 뿐이라 의외는 아니었다.
에반이 탁한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여전히 의도를 모르겠다.
이 녀석에겐 자신의 속마음을 밝힐 생각이 없어 보여서, 나는 멋대로 추측하며 이야기를 이어 갈 수밖에 없었다.
나까지 주둥이를 닫는다면 언제까지고 대화에 진전이 없을 테니까.
“곧 대대적인 마왕 토벌단이 결성할 거야. 단언컨대 악마와 교단이 대륙에 출현하고 최대 규모로.”
“실패할 거야.”
“뭐 그럴 수도. 하지만 여태까지의 마왕 토벌 중에선 가장 할 만한 전쟁이 될 거야.”
“철혈공이라도 직접 참전하나?”
“아니.”
“그러면 누가 참전하길래 그렇게 확신하는 거지?”
“그 이외 전부.”
에반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표정이 아니라서 표정을 덧붙였다.
“일곱 종족과 이종족의 힘을 합칠 거야.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예를 한 자리에 모으는 거지. 가능하다면 용족과 황실의 정예 기사, 마탑, 헤로스의 영웅, 용병… 그 외에도 전력만 될 수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어. 예를 들어 잔존 교단의 교인조차도.”
“교인에게 신을 죽이는 전쟁에 참전하란 거야?”
“아직도 그들을 신으로 여기나?”
“…….”
나는 대수롭지 않게 질문했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에반의 대답에 따라선 곧바로 이곳에서 혈투가 시작되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질문의 무게를 아는 건지, 이번엔 에반도 곧장 대꾸하지 않다가 기이할 정도의 긴 침묵 끝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그렇다면 참전해야지. 아까 말했지? 간섭을 원치 않는다면 너희의 의도가 결백하단 걸 증명하고, 저지른 일에 관한 처벌도 받아야 한다고…….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는 그다음에나 주어질 거야. 그리고 이것이 그걸 증명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교인이었던 너희가 과거를 뉘우치고, 마왕을 죽이는 전쟁에 참전해서 공을 세운다면, 제국에서 너희를 보는 시선이 어떻게 전과 같을 수 있겠어?”
그러니 이번 전쟁은 선조치 후보고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게 끝난 다음에 세상에 알려야 그나마 소란이 적을 테니까.
“터무니없는 얘기의 연속이네…….”
에반이 다시 한숨을 내쉬며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도 이번엔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쥐새끼처럼 엄지손톱을 씹어 대던 에반은, 그러나 눈동자만큼은 형형할 정도로 번뜩이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는 동기의 처음 보는 모습에 다소 소름이 끼쳤지만, 집중력을 극한으로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방해하지 않았다.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에반이 입을 열었다.
“…현존하는 마왕은 총 여섯. 그러나 종말의 짐승인 베헤모스는 불가능해. 전 교주인 네벨릭 이외엔 그 존재와 소통할 만한 인물도 없지.”
“…….”
“하덴아이하르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아홉은 침묵을 지키고 있어. 탕타타는 죽었고, 자각왕을 토벌하는 건 당장은 어렵지. 그는 이미 일국의 군주가 되었으니까……. 무채색 같은 경우엔 그 신자들이 반대할 것이고. 그러니까 우리가 토벌을 시도할 만한 마왕은 하나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빛 뿔의 마왕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킨가로드투스.”
여기까지 말한 다음,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년 만의 재회인데도 우리는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잘 지냈냐, 뭐 하면서 살았냐, 얼굴이 반쪽이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냐…….
그런 대화는 단 한 번도 오가지 않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엔 즉시 자리에 앉아 공적인 얘기를 시작했고, 이어 갔다.
이 자리에 있는 건 더 이상 영웅을 지망하던 철부지 소년들이 아니라…….
대가문의 소가주와 교단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쩐지 그 사실이 불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