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disciple of the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584
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 584화(584/587)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인물의 눈을 칼로 찌르는 건 제법 심적인 거부감이 심한 행위였다.
그게 익히 알고 있던 얼굴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단 걸 알기 때문에 망설일 여유도 없었다.
나는 차분한 시선을 보내는 베리타의 눈에 미카엘을 꽂았다.
카각-.
예상보다 거친 소리가 나왔다.
부드러운 눈동자가 아닌 금속을 찌른 듯한 소리, 그리고 감촉이다.
타온의 심장… 라파엘의 그것과는 결이 좀 다른 듯하다.
우리엘의 눈동자는 성유물로서의 형태를 보다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듯하달까?
아무튼 두 유물이 접촉한 순간부터 베리타의 눈동자에선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도 이 녀석은 침음조차 내뱉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통이 없는 건 아닌 듯하다.
신체 증후를 봤을 땐 말이다.
이딴 걸 눈알에 박고 살면 어떤 기분일까. 나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
괜찮으냐고 물으려고 하다가 입을 닫았다. 애초에 대꾸할 여력도 없어 보였고, 이런 상황에선 고개를 끄덕이기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는 게 도와주는 거다. 나는 검신을 타고 팔까지 스며드는 대천사의 권능에 집중하였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베리타에게서 뽑아내는 기분이었다.
생기生氣 같기도 했고, 사기死氣 같기도 했다.
이 권능에선 충만한 생명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베리타가 가진 질긴 생명력과 재생력의 근원인 듯했다.
하지만 그 넘쳐나는 생명력은 지금 날 죽이려 하고 있었다. 화분에 물을 퍼부으면 오히려 뿌리를 썩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투쾅, 쾅, 콰앙…….
등 뒤에서 들리는 마법의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전장은 이제 완전한 혼돈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 순간 무엇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형체가 내 위로 빠르게 날아가는 광경이 보였다.
킨가로드투스였다.
‘설마?’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과 조금 떨어진 장소, 마나가 들끓는 곳─ 킨가로드투스가 마법사 부대로 떨어진 것이다.
“아, 안 돼!”
“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일방적인 대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초조함 때문에 등이 축축해질 지경이다.
마법사는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다. 용병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격언인데, 이 말은 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전략의 핵심이자 중심, 그 때문에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보호해야만 하는 자들.
그런 자들이 무더기로 죽어 가고 있다.
마왕이 한 번 손을 휘두를 때마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허무하게 쓸려 나갔다.
이게 맞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막아야 하는 게 아닐까.
초조함 때문에 갈등이 생기려던 찰나, 하템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래는 못 버텨!”
“…….”
그 말이 망설임을 덜어 줬다.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맞으니까.
최대한 빨리, 이 염병할 대천사의 권능을 다스린 다음, 기운을 벼려서, 마왕 새끼의 뿔을 자르는 게 내 역할이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베리타의 눈동자로부터 흐른 핏물이 지면을 축축이 적셨을 무렵, 나는 미카엘을 회수했다.
베리타가 비틀거리더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괜찮아?”
“잠깐 현기증이…….”
“…….”
“그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게 맞습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그래.”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베리타는, 얼굴의 핏자국을 닦은 다음 전장을 향했다.
전장엔 어느새 합류한 어둠용이 있었고, 공중에서 마법을 퍼붓는 코라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절반 이상이 쓸린 마법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문을 외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마법사를 지휘하고 있는 건 하템이었다.
얼굴의 절반이 핏자국이었는데, 너무 멀어서 정확히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
나는 그 모습을 보았다.
모두 직시하며 미카엘을 벼리기 시작했다.
이런 광경을 눈으로 보면 오히려 집중력이 저하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나는 아니다.
오히려 내 성향을 알고 있기에 저지른 선택이다.
죽어 가는 이들의 모습과 비명, 울부짖음은 오히려 내 감각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 줬다.
그렇다. 다듬는 것이다.
이것은 칼날을 벼린다기보단 날뛰는 기운을 다듬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칼날에 맺힌 채 치솟는 기운을 불꽃이라 여겼다.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성질이겠지만, 내가 다뤄야 할 기운이니 그 근원이 뭐든 상관없다.
어차피 내력이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해석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미카엘의 겉면에 대천사의 기운을 붙잡아 두고.
내가 다루고 있는 일곱 가지 기운을 중첩하듯 둘러야 한다. 모든 부분을 감싸는 게 아닌 부분적으로.
그러면 곁가지처럼 치솟은 검기가, 일시적으로 미카엘의 형상을 칠죄검처럼 만들어 주겠지.
…….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알고 있다.
적천칠검은 원래의 나로선 죽었다 깨도 쓸 수 없는 초식이다.
잊힌 무신이, 천하를 오시했던 한 명의 무인이, 영웅 하로스 엘이, 오직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오랜 세월을 걷고, 걷고, 또 걸어서, 비로소 정상에 다다른 이후에야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그러니 내가 훔쳐본 이 풍경에 대한 감상은 분명히 무신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다를 수밖에 없다.
산봉우리에 다다른 자가 정상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기쁨을 느끼는 건, 수만, 수십만 발걸음을 내디뎠던 기억 덕분이다.
그러한 족적이 없던 나로선 어딘가 동떨어진 심정으로 이 풍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걸로 좋아.’
그러한 감동은 무신 혼자만의 것이다. 그 권리를 침범하는 건 나로서도 바라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광경에 압도되고 말았으니까.
츠즛.
츠즈즛-.
검기가 차츰 그 형상을 이룬다.
하나씩, 하나씩.
검기의 곁가지가 자라는 광경은 천천히 만개하는 꽃봉오리를 연상케 했다. 내 손으로 봄을 부르는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이러한 초식을 창안한 무신이란 존재에게 또다시 감탄이 생겼다.
…당신이 이룬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그 길이 비록 내 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존경한다.
만약에 내가 백노광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인생의 또 다른 밑바닥을 헤매다가 당신이란 존재를 알게 됐다면…….
그렇다면 루안 배드니커는 당신의 제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
그제야 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작업이 진행되는 이유를 깨달았다.
무신은 과거에 말했다.
칠죄검의 형태는 적천칠성赤天七星에서 따왔다고…….
이 성군은 노을이 질 무렵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들이다.
무신은 그 일곱 개의 별을 종족에 대입하였다.
무명 제국의 근간이 되는 일곱 종족 말이다.
일추一樞, 인간.
이선二璇, 요정.
삼기三璣, 거인.
사권四權, 난쟁이.
오형五衡, 수인.
육양六陽, 천익.
칠광七光, 용족.
“…….”
이 전쟁엔 그들 모두가 있다.
인간이 있고, 요정이 있다. 거인이, 난쟁이가, 수인과 천익이, 용족마저 모두 참전하였다.
그리고 나는 미카엘을 다듬으면서 그들 전부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기이하고도 기쁜 일이 아닌가.
나는 칠죄검의 모든 조각을 모으지 못했으나, 이곳엔 모든 견본이 있었다.
적어도 우리는 힘을 합쳐서 마왕과 싸우고 있다.
이것은 우연 따위가 아니다.
이들 모두의 맹세와 의지가 맞물려서 생긴, 하나의 기적이다.
‘조금만 더.’
확신이 든다.
앞으로 일 분.
일 분 정도만 더 검기를 벼리면, 확실히 마왕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검이 완성된다. 적천칠검을 완벽히 구사할 수 있다.
흥분에 차 있던 나는, 어느 순간 불현듯.
“…….”
소란스럽던 주변이 무서울 만치 고요해진 걸 깨달았다.
두 눈을 몇 번 깜박인 순간, 환상과도 같았던 감동과 은은한 광채가 모조리 사라졌다.
남은 건 피와 시체, 흙먼지의 냄새와 함께 이미 죽어 버린 듯 거무칙칙한 황야라는 배경.
그 중심에 서 있는 유일한 존재.
건들건들 웃고 있는 듯한 낯짝의 킨가로드투스가 보였다.
킨가로드투스는 문득 손을 뻗어 누군가를 들어 올렸다. 하템 굿스프링이다.
푹.
그 명치를 꿰뚫은 마왕은 쓰레기처럼 아무 곳에 던졌다. 하템은 피를 흩뿌리며 날아가더니 바닥을 나뒹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목소리를 내뱉지 않은 놈은 행동으로 말을 걸었다.
양팔을 좌우로 펼치며 주변 풍경을 조명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더니,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전부냐?
마치 그리 묻고 있는 듯했다.
“…….”
머리가 차갑게 식었고, 반면 심장 박동은 더욱 거세졌다.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킨가로드투스가 지금 느끼는 심정이, 꼭 놀이 시간이 끝나 아쉬움을 느끼는 것과 흡사하단 걸 말이다.
꿈만 같았던 여행이 끝나고 돌아갈 시간이 된 것처럼.
끝내주게 즐거웠던 여행이 끝나고 귀갓길에 오를 때처럼.
이 녀석은 한바탕 즐긴 다음 느끼는 여운에 진한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웃기지 마, 개자식아.
그게 수천 명을 죽이고 느낄 감상이냐?
우린 목숨을 걸었다. 만약 살아남더라도 병신이 될 각오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네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 느끼지 않은 채, 이곳에서 즐거움만을 느낀 채 떠난다고?
안 될 일이다.
그것만은 안 된다.
하나씩 쌓은 연합군의 성과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그렇다면 그 열매를 따는 것이야말로 나의 역할이 맞다.
고작 열매를 따는 것이다.
흙을 파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으며,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잖아.
저벅.
킨가로드투스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
휘두르면 되나?
지금 이 상태로?
망설임이 생긴 이유는, ‘다듬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단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휘두르더라도 이 검은 마왕에게 닿는다.
이 개새끼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만들 수 있다고. 그 사실이 마왕이란 존재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흔을 남길까? 이놈은 얼마만큼 큰 굴욕을 느낄까?
…하지만, 죽이진 못한다.
그렇게 해서, 방심이 완전히 사라진 킨가로드투스가 어떤 행동을 저지를 것인가.
일단 후퇴한 것일까. 아니면 완전히 냉정해진 상태로 인류를 짓밟은 것인가.
어느 쪽이든 최악이다.
‘시발…….’
약 삼십 초.
마왕의 모습은 지척까지 이르렀다.
앞으로 조금이면 되는데.
몇 초라도 좋으니까, 시간을 끌어 줄 만한 사람은 더 없나? 가혹한 요구라는 걸 알지만, 뻔뻔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좋다.
하지만 이 전장엔, 더는 아무도.
“여기 아직 남았다! 이, 개새끼야─!”
깜짝 놀라 언덕을 본 순간, 그곳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욕설을 내뱉는 게 누구보다도 어색한 남자는 만신창이가 된 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헥토르 배드니커.
대체, 뭐 하는 거야, 저 멍청이는.
네가 마왕의 공격을 어떻게 막겠다고?
기껏해야 몇 초쯤 버티는 게 전부인─.
‘──.’
나는 생각을 멈추고 말았다.
기껏 몇 초가 아니다.
무려 몇 초다.
일 초란 시간이 확보할 때마다 저놈을 죽일 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하니까.
지금 내가, 우리가, 연합군이 모든 결실을 맺기까지 필요한 짤막한 시간.
벼리기를 마칠 시간 말이다.
헥토르는 그 사실을 모를 테지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왕은.
[…….]잠깐 물끄러미 헥토르를 보았다.
어쩐지─.
지금 킨가로드투스가 하고 있을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이 존재가 전장에서 쭉 적용했던 규칙.
딱히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놀이’를 좀 더 즐겁게 누리기 위해, 자기 혼자서 멋대로 내세웠던 모종의 룰.
한 명씩 평등하게 공격하는 것.
푹.
“…….”
헥토르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순식간에 그 앞에 이른 마왕이 그 몸뚱이를 꿰뚫었다.
뿔은 정확히 헥토르의 급소를 꿰뚫었다.
허물어지기 직전, 헥토르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입가엔 자랑스러운 듯한 미소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 미소는 나를 향하는 것인가. 자신을 향하는 것인가.
빠드득.
알 수 없었다.
어금니가 부서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내 입에서 어마어마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차라리 악을 지르는 듯한 고함에 가까웠다.
지면을 박차고 달려 나간 나는 순식간에 킨가로드투스의 코앞까지 이르렀다.
그때까지도 마왕은 느긋하게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그러나 미카엘을 확인한 순간, 처음으로 마왕의 낯짝엔 균열이 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빠른 것은 느린 것보다 약하네.
…조금은 알겠다.
무신이 내뱉은 말에 담긴, 적천칠검의 묘리가.
뇌리에서 벼락이 치며, 그 평범한 말에 담긴 의미가 진실로 이해됐다.
접근은 빠르게, 공격은 느리게.
나는 구결을 되새기는 것처럼, 그 두 문장을 머릿속에서 떠올렸고.
콰가가가가가각!
순식간에 일곱 번의 검격이 킨가로드투스의 뿔을 후려쳤다.
그 순간까지도 마왕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깨닫지 못한 얼굴이었다.
우직.
흔들리지 않았던 뿔에 금이 간 순간, 그 낯짝은 처참하게 일그러졌고.
우지지지지지직!
균열이 뿔을 타고, 전신을 향해 번졌을 때엔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여태까지 이 녀석이 괴성을 내질렀을 땐 항상 끔찍한 일이 터졌지만, 이번만큼은 아닐 터다.
이것은 단말마의 비명이다.
쨍그랑-!
유리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미카엘이 깨지듯 부서졌다.
그것에 공명하듯, 킨가로드투스의 몸 또한 산산이 부서졌다.
일순 강한 회오리가 휘몰아치더니, 마왕의 육신을 이루던 금빛 파편이 사방을 향해 펼쳐졌다.
이 아름다운 금빛은 죽은 황야의 사방으로 널리 퍼지며, 전장의 어둠을 잠시나마 몰아냈다.
마치─.
마치 쏟아지는 유성우처럼.
끔찍한 재앙을 남긴 존재의 죽음엔 과분할 만큼 아름다운 광경.
“아…….”
나는 탄식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킨가로드투스.
금빛 뿔의 마왕.
앙신이 가졌던 최후의 뿔이 마침내 부서졌다.
.
.
.
마침내, 마왕이 죽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자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