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disciple of the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585
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 585화(585/587)
무명 제국은 공식적으로 마왕 토벌이 성공했음을 천명하였다.
무려 연옥제가 직접 말이다.
“짐의 치세에 이와 같은 경사가 일어남을 크나큰 경하로 여긴다. 이번 대전大戰에 몸과 뜻을 바쳐 헌신한 충의로운 자들과 호국영웅, 나아가 조국을 위해 장렬히 순국한 이들의 이름을 길이 기릴 것이니, 이제 짐과 백성들은 다가올 시대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갖추었노라.”
장기간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연옥제는, 병세가 꽤 호전됐는지 차분한 안색으로 직접 선포하였다.
연옥제는 유약한 인상과 달리 특유의 언변과 카리스마로 승전을 알린 뒤, 곧 순국자들을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할 것을 명하였다.
일곱 종족은 물론이고 이종족, 심지어 교인마저 가리지 않고 말이다.
대단히 파격적인 조치였기에 당연히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연옥제는 그들의 불만을 어렵지 않게 잠재웠다.
무엇보다 이번 전쟁 최대 공훈자로 알려진 하템 굿스프링의 존재가 컸다.
순혈주의자의 선두라 할 수 있는 하템이 납득하니, 그보다 신분이나 위세, 영향력이 밀리는 귀족들도 대부분 주둥이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눈치가 털끝만치라도 있는 자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왕 토벌은 제국 평생의 숙원이다.
그러한 숙원을 달성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세운 하템은 앞으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비로소 굿스프링의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했다.
“…….”
나는 호국 묘지에 안장된 헥토르의 산소에 꽃을 두며 생각했다.
라몬 때도 그랬지만, 고인의 묘소에 들러 성묘할 때의 감정이란 참으로 복합적이었다.
잘 싸워 줘서 고맙다느니, 편히 쉬라느니, 그런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때와 달리 쉽게 입이 열리지도 않았다.
나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 들렀다가, 하늘에 노을빛이 번지기 시작할 때쯤에야 국립묘지를 떠났다.
1,318명.
마왕 전쟁으로 전사한 자들의 숫자였다.
* * *
이 나라가 가진 이름이 없어 무명無名이라 불리는 것처럼, 수도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제도帝都라고 하면 어차피 황혼강이 물결치며 흐르는 제국 중심지를 떠올리니 큰 상관 없는 문제기도 하다.
새벽의 도시. 황혼의 도시. 내일의 도시. 신혼晨昏의 도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장소지만, 나도 이제는 이 도시에도 어둠이 도사리고 있음을 안다.
그러한 장소는 심지어 황성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도 도사리고 있다.
나는 노을빛이 닿지 않는 그늘진 장소를 지나 약속했던 술집으로 향했다.
음침한 곳에 자리 잡은 술집엔 점원으로 보이는 이도 없었고, 술자리마다 개별적인 방이 준비된 특이한 구조였다.
미리 들었던 여섯 번째 방문을 열고 안으로 입장하니, 나른한 인상의 레오네가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다.
전쟁이 끝나고, 물론 나도 바빴지만 이 녀석만큼은 아니었겠지.
여하간 서로 간에 나눠야 할 상황 공유 같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우리 둘 다 바쁜 몸인데도 불구하고 친히 왕래하였다.
나는 레오네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제도에 널린 게 술집인데, 왜 하필 이런 허름한 곳을 잡은 거야?”
“그다지 허름하지는 않다만. 조명이 어두울 뿐이지.”
“말이 그렇단 거지.”
“시끄러운 곳은 옛날부터 딱 질색이었다. 지금은 어딜 가든 연회가 열리고 있으니까 더욱 그렇고.”
“그렇긴 하지.”
연옥제는 사흘 전부터 일주일 동안을 제국 축하 기간으로 선포하였다.
마왕 토벌이 어마어마한 업적인 것은 맞았으므로 타당한 조치다. 자연스레 제국민의 환호와 기쁨도 어떤 역치를 넘어선 듯했는데, 그 때문에 지금은 제도 어디를 가든 축제 분위기다.
나는 아직은 텅 빈 테이블 위를 보다가, 곧바로 궁금한 걸 물었다.
“무채색 쪽 상황은 어때?”
“좋지는 않지. 녹턴은 아쉽게도 죽었다. 나이가 좀 있는 편이라서 회복이 더디더군. 루트도 마찬가지. 체격에 비해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베리타와 어둠용은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둘 다 희망적이지는 않다. 그나마 멀쩡한 건 카엘라 정도? 물론 이 녀석도 위험한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정도지만.”
“너는?”
레오네가 피식 웃으며, 왼팔의 장갑을 벗고 소매까지 걷었다.
옷 아래의 피부가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뜨거운 물에 오래 담근 것처럼 쭈글거리기도 했는데, 웬만한 화상보다 더 흉한 흔적이었다.
“팔부터 어깨 근처까지 이 모양 이 꼴이야. 의원 말로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다가 변색이 어깨 너머까지 침범할 것 같으면 자르는 편이 나을 것이라더군.”
“그렇구만. 고생했어.”
“뭘. 나보단 에반 헬빈이 훨씬 더 고생했지.”
“…….”
나는 잠깐 침묵했다.
에반은 결국 죽었다.
전쟁 도중에 죽은 건 아니었지만, 전신이 악기에 침식당한 상태라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지금 레오네의 한쪽 팔에만 적용된 상태가 몸뚱이 전체에 번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에반의 마지막 모습은, 안면이 있는 인물이 본다면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끔찍한 몰골이었다던데.
…물론 나는 에반을 끌어들인 책임이 있으므로, 그 녀석의 마지막을 지키려고 했으나 제사장 란델이 거절했다.
그렇게 에반은 떠났고, 국립묘지에 묻혔다.
듣기로 죽기 직전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고 했지만, 그 사실이 딱히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았다.
레오네가 나를 보며 물었다.
“네 팔은? 너도 좋아 보이진 않는데.”
사실 나도 오른팔을 붕대로 감싼 채 단단히 부목하고 있는 상태긴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너에 비하면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아. 좀 복합적인 상태라 포션이 안 먹히는 것뿐이지. 재활만 잘하면 된다더라.”
“그렇군.”
잠깐 침묵하던 사이, 음식이 나왔다.
특이한 방식이었는데 노크 소리 이후 문을 열고 확인해 보면 문 앞에 음식이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밀회를 자주 나누는 술집이라 이런 구조를 채택한 듯했다.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먹도록. 듣기로 사과주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특별히 시켜 놨다.”
“됐어. 입맛이 없어서.”
“그런가?”
흥이 식은 얼굴로 레오네가 침묵하더니, 다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배드니커 쪽은 어떻지?”
“히이로 형님은 어떻게든 목숨은 건졌어. 두 눈을 실명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저께 전장에서 올리비아 누님과 네로 누님을 발견했다더라. 다행히 시신은 온존된 상태라더군.”
“그런가.”
이후로는 잠시 대화가 끊겼다.
레오네는 기품 있는 태도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는데, 먹을 땐 물론이고 식기를 움직일 때조차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먹는 모습을 보면 식욕이 돋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미식가가 시식이라도 하듯, 깨작깨작 음식을 먹는 모습에 있던 식욕도 달아나는 듯해 빈속에 냉수만 퍼부었다.
테이블 위의 음식이 어느 정도 사라졌을 무렵, 나는 레오네에게 물었다.
“우리는.”
“…….”
“해낸 건가?”
레오네가 살짝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뭘 그렇게 봐?”
“아니… 네가 그런 걸 물을 거라곤 예상 못 해서.”
“물을 수도 있지. 많이 죽었잖아.”
“천삼백 명으로 마왕을 죽인 거면 적은 피해다만.”
“…….”
살짝 한숨이 나왔다.
레오네의 말은 진실이지만, 긍정하기는 싫다는 모순이 가슴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녀석은 내가 딱히 듣고 싶지 않았던 말, 내가 듣고 싶었던 것과 반대되는 말을 이어 갔다.
“인류 역사상 마왕 토벌을 시도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을 것 같으냐? 악마는 언제나 우리를 절망과 공포의 구덩이로 밀어 넣었고,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자들은 어디에나,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리고 모두 실패했지. 지금보다 좋은 상황, 훨씬 많은 병력이 있었음에도 결과는 늘 같았다. 그저 마왕의 놀잇감으로 발버둥 치다가 죽었지.”
“그렇겠지.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죽은 자들은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들이 잔뜩 있었어. 마왕과 최전선에서 싸울 수 있을 만한 영웅들이었다고. 실제로 수백 년을 살아 온 자들도 있었고……. 이번 대전으로 그들 대부분을 잃었는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남은 마왕과 싸워야 하지? 그놈들은, 아직 다섯이나 남았는데.”
이레귤러인 대사형, 혹은 자각왕을 제하더라도 셋이나 있다.
그리고 마왕 중에서도 특히 강하고, 위험하며, 실질적으로 재앙 그 자체로 분류되는 베헤모스가 남아 있다.
내가 킨가로드투스의 토벌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그러자 레오네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네가 이런 성격일 줄은 몰랐는데.”
“뭔 의미야?”
“이미 지나간 일엔 연연하지 않을 줄 알았다.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들이랬나? 알고 있다. 그건, 실은 너보다 내가 훨씬 더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그래서 뭐? 그들을 그리워하고, 잃은 것에 속상해한들 무엇이 달라지나? 이미 벌어진 일이고, 죽은 자들인데.”
“…….”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남은 전력으로, 어떻게 남은 마왕들을 토벌할 것인가. 이것이 아닌가? 제국은 넓고, 강자들은 그 밖에도 많다. 어쩌면 너도, 나도,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신분과 정체를 감춘 채 은둔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물론 뼈아픈 일이다. 많은 인재가 죽은 것도, 대천사의 유물을 소모한 것도… 그런데 그게 어쨌다고. 어찌 됐든 성유물도 한 개는 남았고, 그러한 신위를 가진 도구가 또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반박할 말이 없다.
레오네의 말대로다.
이미 지나간 일로 늘어지는 건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이며, 남은 전력으로 어떻게 다른 마왕을 박살 낼지 고민하는 게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화제로 끈덕지게 늘어지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만약에, 다시 마왕 토벌전을 진행할 수 있다면.”
“…….”
“이 기억과 정보, 킨가로드투스의 성향 따위를 모조리 꿴 채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전보다 더 잘 싸울 수 있을까? 더 많은 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레오네는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붉은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고개가 살짝 기운 순간,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내려앉는다.
이윽고 속삭이는 듯한 대꾸가 돌아왔다.
“그건 누구도 모를 일이지.”
“…….”
“하지만 나는 이번 전투가 백 번에 한 번 나올 정도로 잘 싸운 것이라 여긴다. 마왕을 상대로 사전 정보 같은 건 큰 상관이 없어. 킨가로드투스는 이번에 ‘못 싸운 편’일 수도 있으니까. 그놈이 이번 전투에서 드러내지 않은 권능이 얼마나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이 전쟁에 따라 줬던, 우리가 감히 계산하지 못한 범위에 놓여 있던 운적인 요소는 또 어떻고.”
“…….”
“내 의사가 궁금하다면 대답해 주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 내게 전쟁을 반복할 기회가 주어져도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다시 냉수를 마셨다.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누르기 위해서 말이다. 레오네라면 이렇게 대꾸할 거라 예상했다.
그래도 굳이 이 녀석에게 이런 질문을 꺼낸 건, 지금 딱히 내 주변에 의견을 묻거나 의지할 만한 인물이 없는 이유도 있었다.
‘…이 양반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나는 짜증과 함께 분노를 느끼며 한 남자를 떠올렸다.
헥토르 배드니커가 평생을 존경한 인물. 경배해 마지않았던 존재.
원래라면 가주로서 상주가 되어 장례를 주관해야 하지만, 장례식장에 낯짝조차 드러내지 않았던 인간을 말이다.
* * *
온통 안개에 둘러싸인 바위산맥엔 온갖 상흔이 새겨져 있었다.
드높은 바위산은 무너지거나, 거대한 무언가가 꿰뚫고 지나간 것처럼 뻥 뚫린 상태고 대지엔 거대한 균열이 거미줄처럼 번져 있었다.
마치 산처럼 커다란 짐승 수십 마리가 난동을 부리며 바위만 한 발톱으로 일대를 할퀸 듯한 모습이다.
물론 이 참극을 만든 건 커다란 짐승이 아니었고, 하물며 수십이나 되는 숫자도 아니었다.
이 신화적인 참극을 만든 게 고작 세 존재였단 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
숨을 몰아쉬고 있던 델락은 잠깐 일대를 지켜보다가 금방 호흡을 되찾았다.
곧 그늘이 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가온 무채색의 마왕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
델락은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일어섰다.
무채색의 마왕 또한 멀쩡한 꼴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남루하던 갑옷은 거의 누더기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된 상태.
델락이 문득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다.”
“그건 오만한 말이군.”
투구를 벗은 무채색이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말했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평소였다면 아무리 너와 내가 힘을 합쳤어도 온전한 마왕 하나를 없애는 건 불가능했을 터.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었겠지.”
“내가 좀 더 강했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 터. 연합군에 합류하여 킨가로드투스를 없애고 많은 자들이 살았을 거다.”
“…….”
무채색이 침묵했다.
한 번 함께 싸웠기 때문일까.
이제는 저러한 발언이 오만이나 겸손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이 남자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판단은 내렸나?”
눈을 감은 채 침묵하던 철혈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마침내 바라던 대답을 들은 무채색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무채색의 마왕이 철혈공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