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disciple of the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586
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 586화(586/587)
줄초상이란 걸 단어로만 접했는데, 실제로 우리 집안에 일어날지 몰랐다.
한 집안의 식구들이 같은 사건으로 죽은 셈이니, 장례 또한 동시에 치를 수 있었겠지만…….
배드니커의 집안 사정은 다소 특수한 편이라, 각기 따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일단 고인들의 모친부터 전부 달랐고, 네로와 올리비아의 시신은 최근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헥토르 이후 네로와 올리비아의 장례까지 치르고 나니, 그제야 형제들이 셋이나 떠났다는 실감이 났다.
장례를 치른 이후엔, 이상하게 배드니커 본가에 있기 껄끄러워 다시 제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물가 높은 도시에서도 가장 비싼 숙소를 잡은 채 오랜만에 망나니처럼 살았다.
단언컨대, 무공을 배우고 나서 이토록 방탕한 삶을 산 적은 없었을 정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샀다.
사실 황금 골렘 노렌의 연료값으로 전 재산을 탕진했기 때문에, 빈털터리 신세가 됐지만-.
마왕 토벌 성공 이후 제국에서 넉넉한 포상금이 나왔기 때문에 당분간 또 돈 걱정은 없어졌다.
나는 옷 가게에 와서 입지도 않을 옷을 과도하게 사고, 귀금속이 달린 장신구들을 쓸어 담았다.
겉모습만 요란한지 실용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검도 샀다.
충분한 포만감을 느끼는 상태에서도 배 터지게 음식을 먹었고, 꾸역꾸역 디저트도 챙겨 먹었다.
합법적, 비합법적으로 운영하는 도박장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기도 했다.
이렇게 한심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도 아무도 나를 홀대하지 않았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제도에서 배드니커의 핏줄이 한심한 짓을 한다고 눈총을 보내는 이는 보지 못했다.
오히려 어딜 가든 나를 영웅 취급해 줬다.
“소, 소가주님?! 저희 가게에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음식값이요? 아닙니다! 들러 주신 것만으로 충분한걸요!”
“호, 혹시 사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들놈이 금요정의 열렬한 팬이라…….”
음식집을 가면 값을 받지 않으려 들었고, 옷 가게도 마찬가지.
제도 어디를 가든 호의 섞인 시선과 존중과 존경이 어린 태도가 뒤따라왔다.
나는 그들의 태도가 단순히 가식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영웅으로서의 삶.
망나니 루안 배드니커가 꿈속에서도 그렸던 삶이, 지금 내 삶이 되었다.
딱히 기쁘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걸 죄다 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붕 뜬 상태였는데, 지금 내 기분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자니 울크아에 있을 때보다 좋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단전에 내공 한 줌 남아 있지 않고, 주머니엔 땡전 한 푼 없었던 그때보다도 말이다.
모든 게 풍족한 상황에서 이런 기분을 느낀다면, 실은 가장 중요한 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터다.
삶의 목표나 원동력 말이다.
“아버지에 관해선 나도 들은 바가 없어.”
“…….”
노을이 질 때쯤 숙소로 돌아오니, 루드빅이 있었다.
오랜만에 본 배드니커의 오남은 익숙한 듯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쯤 되면 진짜 이놈의 개인적 취향이 맞는 듯싶다.
여하간 루드빅은 이번 마왕 전쟁에 참전하지 못했다.
워낙 다방면으로 바쁜 녀석인 데다, 이번엔 특히 중요한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별수 없었다.
오랜만에 제도에 들른 루드빅에게, 혹시 철혈공의 행방을 아는가 싶어서 물어봤지만 딱히 아는 게 없는 듯했다.
루드빅은 유난히 가느스름한 눈매로 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다른 형제들에 관한 일은 유감이다. 나도 참전했어야 했는데.”
“됐어. 그보다 세티투스 쪽은 어떻든?”
루드빅의 임무는 세티투스의 사찰이었다.
혹시 이번 마왕 토벌전에서 자각왕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
물론 마왕 토벌 자체는 당연히 비밀리에 이뤄졌지만, 제국 핵심 인물들이 총동원되는 대사大事다 보니 누군가 작정하고 조사하면 꼬리가 밟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자각왕은 인간 시절 마왕의 뒤통수를 친 전적이 있다.
혹 이번 토벌전에서도 은근슬쩍 난입하여 어부지리를 취하려 들지도 몰랐기 때문에, 세티투스도 견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세티투스에 루드빅 배드니커를 비롯한 몇몇 실력자를 은밀히 파견 보냈다.
배드니커의 형제자매 중에선 오직 루드빅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루드빅이 입을 열었다.
“별 소란은 없더라. 오히려 이번 마왕 토벌 건이 발표되자마자 자각왕은 제국에 축하의 뜻을 전했어. 이른바 공식 입장이란 거지. 물론 잔존 교단과 힘을 합친 선택에 대해선 다소 유감이라는 첨언도 있었고.”
“무채색이랑 협력한 건? 새어 나간 것 같아?”
“그것까지는 모르겠고. 너도 잘 알겠지만, 자각왕의 정치력이 좀 출중해야지.”
그렇긴 하다.
그 능구렁이 연옥제를 상대로도 정치 싸움에서 딱히 밀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으니.
아니지. 살아온 세월을 감안하면 오히려 연옥제가 대단한 건가?
아무튼 무채색과 자각왕의 관계는 견원지간이란 말로도 부족할 정도다.
무채색과의 협력 사실을 기를 쓰고 감추고 있는 이유기도 한데…….
세티투스의 목적은 아직 불분명하며, 믿을 수 없는 놈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척질 필요까지는 없는 것.
“그나저나 넌 괜찮아?”
“나? 뭐가?”
“초췌해 보여서.”
“그럴 리가 있나. 최근에 얼마나 잘 먹고 다녔는데. 몸도 거의 안 움직이고, 돼지처럼 처먹고 바로 자고, 오히려 살이 올랐을걸?”
“배드니커가 그 정도로 살이 찔 리가 있나.”
“…….”
부정하기 힘들구만.
체지방과 근육이 잘 안 붙는 체질이라 전생에 방탕한 생활을 할 때도 돼지 꼴이 된 적은 없었다. 못 먹어서 삐쩍 마른 적은 잦았지만.
“건강 좀 챙기고 살아.”
“알았어. 형님도 조심하고, 혹 가주님에 대해서 뭔가 들으면 말 좀 해줘. 아참, 그리고.”
“그리고?”
“미카엘을 깨부수고 말았는데, 이걸로 혹시 원로회에서 잔소리를 듣게 될까?”
내 말에 루드빅이 픽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이미 가주 대행이다. 미카엘은 물론 가문의 보검이며,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재긴 하지만 별 신경 쓸 건 없어. 허투루 쓴 것도 아니고, 마왕 토벌 도중에 깨졌는데 뭐라 하면 그게 너무한 거지.”
“그렇긴 해.”
미카엘을 부숴 먹고도 이런 취급이라니.
회귀 전에 보검을 훔쳐 판 걸로 호적에서 파인 걸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루안.”
떠나기 직전 루드빅이 나를 보며 말했다.
“다른 형제자매들의 일은 유감이지만, 모두 목숨을 걸 각오를 마쳤을 거야. 만약 내가 전쟁에 참전했고 죽었더라도 후회는 없었을 거다.”
“…….”
“나 간다.”
“그래.”
루드빅을 보낸 다음, 나는 창문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이 불며 머리카락을 어지럽혔다. 봄이 오기 직전에 느낄 수 있는 기분 좋게 서늘한 바람이다.
오늘은 제국특별축제기간의 마지막 날이다. 대화하다 보니 해가 완전히 저물었는데도, 거리는 아직 환하다.
사람들은 축제가 곧 끝나는 걸 아쉬워하면서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저들의 행렬에 몸을 묻어야 할까?
축하와 애도를 마친 제국민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이제는 나도 답답함을 억누른 채 다시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일까.
레오네도, 루드빅도,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그러고 있었다. 그러길 바라는 듯했다.
그렇다면 내 상태가 멀쩡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더 이상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은 이유는, 나의 방황이 일시적이라 여겼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들이 알고 있는 루안 배드니커는 무언가에 오랫동안 얽매이는 성격은 아닐 테니까. 그리고 이번 희생은, 거둔 성과를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수준이니.
하지만 내가 한심하게 구는 이유 또한 명백하다.
결국 내겐 다시 시도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너무 미친 짓인가…….”
[무엇이 말이냐?]“깜짝이야.”
나는 갑자기 들린 쿠세트의 목소리에 놀라고 말았다.
“뭐야. 선조님 살아 있었어?”
[당연하지. 그럼 이 흑요정 쿠세트가 죽었다고 생각한 것인가?]“뭔가 흐름상 죽었어도 안 이상했을 것 같았는데. 시간을 끌기 위해서 모든 힘을 동원한 끝에 장렬하게 전사하고, 나는 처음으로 댁을 존경하게 되는 거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네가 죽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죽을 일은 없다.]“문신을 지우면 죽잖아.”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제외하고.]“그래? 그래서 여태까지 뭘 하고 있었는데?”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지친 건 사실이라서 좀 잤다. 그러는 김에 네 기억도 이제 거의 다 엿봤지.]“수치심이 느껴지는군……. 관음죄로 고소하겠어.”
[그게 뭐냐?]“있어. 그런 게.”
나는 실없는 소리를 덤덤하게 나불거리다가 다시 창문 밖 풍경을 보았다. 의외로 쿠세트도 곧장 말을 걸지 않은 채 침묵했다.
바람이 다소 차가워졌다고 느낄 때쯤 창문을 닫았는데, 그때쯤 쿠세트가 입을 열었다.
[회귀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것이냐?]“…뭐, 그렇지.”
내 기억을 거의 엿봤다면, 이젠 쿠세트는 정말 나에 대해 거의 모르는 게 없게 됐을 터다.
이래서 인생을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다.
설마 다른 누구도 아닌 흑요정 쿠세트가 내 가장 큰 비밀을 공유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마왕은 우리가 인지하는 시공간의 바깥에 놓인 존재라더군. 실질적으로는 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야.]“맞아. 그게 제일 골치지. 솔직히 시간을 되돌렸을 때 어떻게 일이 전개될지 예상 가지 않으니까.”
가장 희망적인 전개는 죽었던 이들은 모두 되살아나고, 마왕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다다르는 것이겠지만.
평소 지랄맞은 내 운과 상황을 봤을 때 그렇게 일이 좋게 풀릴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가장 최악의 상황은 뭘까?
기껏 회귀했더니, 마왕만이 살아나고 전쟁에서 죽은 자들은 그대로인 것.
사실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의문을 풀어 줄 사람이라면 알고 있지.”
[…무채색인가.]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채색의 마왕이 만약 과거의 무명왕이라면 이 쿠세트와도 아예 무관한 존재는 아니지.]“안면이 있어?”
[아니. 하지만 하로스에겐 있었지.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무명왕 또한 무신武神의 가능성을 품었던 존재로 알고 있다.]“…….”
[어쩌다 무신이 될 수도 있었던 존재가 왜 마왕이 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위험한 사상을 지니고 있단 사실은 변하지 않지. 네가 과거에 그와 어떤 관계였든 간에…….]“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서 몇 가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너도 내가 미친 짓을 하려는 것 같아?”
[너는 아직도 이 쿠세트를 모르는군.]“뭐?”
[내 사상을 잊은 것이냐? 루안 배드니커. 마왕을 정말로 잡기 위해선 무엇을 저질러야 하는지.]나는 잠깐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멈칫한 뒤 중얼거렸다.
“미친 짓이랬지.”
[그래.]“하지만 이미 마왕은 죽었어. 어떻게 보면 마왕을 살릴 수도 있는 미친 짓을 저지르려는 걸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네 사상과도 모순되는 것 아닌가?”
[네가 죽인 건 고작 한 놈뿐이지. 아직 남은 놈들이 더 많아. 그리고 결국 멸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베헤모스를 죽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마왕을 다시 죽이기 위해서 다시 살린다……. 백 명이 들으면 백 명이 말릴 것이고, 천 명이 들으면 천 명이 미쳤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나는 어쩐지 테이블의 맞은편에 쿠세트가 앉아 있는 듯한 환각을 보았다.
천 년을 산 존재.
그 과정에서 사상이 심하게 뒤틀려 버린 고대의 흑요정은 드물게도 곧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만 명 중 한 명은 그 말을 긍정할 수도 있겠지. 소위 말하는 미친놈이라면 말이야.]“…….”
[하고 싶은 대로,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라. 그것만이 네게 해답이 될 수 있으니까. 어차피 너나 나나 누군가의 충고나 조언 따위로는 삶의 방식을 바꿀 순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진실로 올바르다고 믿는 길을 걷는 수밖에. 그 길이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났든, 도의를 저버렸든, 그딴 건 중요치 않아.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가다. 우린 그런 존재야.]흑요정 쿠세트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나는 너의 선조로서 너를 긍정하마.]이상하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줄곧 뻣뻣했던 몸의 긴장이 풀렸다.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내 최초의 긍정자가 쿠세트라는 것과…….
단 한 명의 긍정에 줄곧 혼란스러웠던 마음속 실타래가 풀렸단 사실에 말이다.
나는 딱딱한 의자가 소파라도 되는 것처럼 등을 파묻었다.
확 실감이 났다.
나나 쿠세트나 뒤틀린 사람이라는 게 말이다.
결국 내가 가장 크게 망설였던 이유는, 이미 죽은 자들조차 되풀이하는 걸 바라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죽기 직전 헥토르가 보였던 미소였으며, 그 미소에 깃든 감정이 만족감이라 느꼈기 때문일 터.
하지만 쿠세트 말대로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남 생각이나 시선 따위를 신경 썼다고.
헥토르가, 네로가, 다른 죽은 놈들이 죽을 각오를 마쳤든, 만족스럽게 죽었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의 납득이다.
이것에 진실로 납득하지 못한다면, 사람은 평생 마음속의 부조화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쿠세트.”
[뭐냐.]“나 잠깐 마실 좀 갔다 온다.”
쿠세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든가.]화아아악-!
망설임이 사라진 순간, 정수리가 뜨거워지며 시야 전체를 안개가 뒤덮기 시작했다.
돌연 모습을 드러낸 안개는 내 몸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기도 했고, 어딘가 숨어 있다 출현한 것 같기도 했다.
순식간에 주변 사물을 확인할 수 없어진 순간, 나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던 쿠세트의 기척마저 희미해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나는 실로 오랜만에 영산靈山에 당도하였고.
그 중심엔 예상대로의 인물이 서 있었다.
사형제 중 아직 영산에서 만나지 못한 마지막 인물.
백노광의 첫 번째 제자이자 무채색의 마왕.
“대사형.”
“…….”
“저 왔습니다.”
하루가 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