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member of Top Idol RAW novel - Chapter (2)
2화. 회귀(2)
되짚어 생각해 봐도 8년 전으로 돌아온 게 분명했다.
며칠을 정신없이 수업에 끌려다니며 마침내 현실을 자각하게 된 결과였다.
수없이 뉴스 기사를 뒤적여 봤고 날짜를 확인해 봤다. 수업 내용까지 곱씹어 보았으나, 8년 전 내가 배웠던 내용 그대로였다.
물론 이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틀의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연습실 사방에 배치된 거울을 빤히 노려보았다.
얼굴 역시 내가 기억하던 8년 전의 모습 그대로다.
내가 이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어려진 얼굴에 잠시 낯을 가렸다.
혼란스러웠던 생각이 조금씩 가시고, 줄곧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바람이 선명해진다.
이건 기회다.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기회지.”
그저 춤을 추는 게 좋아서.
이게 내 길인 것 같아서 이 바닥에 뛰어들었었다.
실로 대책 없는 도전이었고, 기약 없는 연습이었다. 막연히 버티다가 실패해서 포기했었던 거지.
하지만.
돌아와 보니 알겠다.
잊고 살았더니 뼈저리게 알겠다.
지난 8년간, 잠잠했던 심장이 ‘꿈’이라는 한 마디에 미친 듯이 뛰고 있었기에….
무대에 서지 않는 삶은 죽은 것 같아서. 한 번만이라도 다시 기회를 준 이 삶이 꿈만 같아서.
두 번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8년 전만 해도 연습에 허덕이느라 알지 못했지만, 지금 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기에.
“잘할 거야.”
내가 기억했던 것만큼 치열하기 그지없는 현장이지만, 여기서 살아남아 반드시 데뷔해야 한다.
적어도 이번엔, 무력하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아깝게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주먹을 세게 움켜쥔 채 나직이 되뇔 때였다.
벌컥-
텅 빈 연습실의 문이 열리고, 내 시야에 달갑지 않은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딱 고등학생 전후로 보이는 껄렁껄렁한 페이스의 훤칠한 애들이었다.
“월말 결과 나왔냐?”
“많이 올랐던데. 특히 너.”
“진짜? 야, 빨리 보러 가자.”
얘들을 다시 보게 되네.
뒤편에서 생글거리며 나타난 건 추후 스타더스트로 데뷔하게 될 케빈.
노란 머리로 염색한 녀석이 뭐가 그리고 신났는지 열변을 토해댄다.
껄렁한 애들 사이에선 제법 순하게 생긴 얼굴상이지만, 저 인상에 속아서는 안 됐다.
봐봐, 벌써부터 눈 좀 풀렸네.
마약을 한 것도 모자라 유통까지 하다가 깜빵행, 스타더스트 데뷔 2년 차에 바로 큰 폭탄을 하나 던져놓고 간 녀석이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한 선배들과 함께 몰래 약을 했다가 걸렸다는데,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니….
음, 아무래도 약쟁이는 맞는 거 같다. 애가 확실히 눈이 흐리멍덩하다.
이번엔 우렁찬 목소리의 욕설이 바로 뒤편에서 훅 치고 들어왔다.
“시발, 아침부터 지랄이야.”
“왜? 무슨 일인데.”
“최명환 그 새끼가 갈구잖아. 어제는 지가 새벽까지 굴려놓고서 연습을 할 시간이 어딨냐고. 그 새끼 요즘 나한테 꽂혔다니까?”
“너만 갈구긴 하더라. 찍혔냐?
저놈은 회귀 직전까지 내 열을 올려놓았던 이준혁이다.
걸걸한 욕설을 보니 8년 전에도 성격은 저 모양이었던 듯했다.
여기 깜빵 정모라도 되나.
훗날에 수갑 차고 만날 놈들이 많이 보이는 기분이다.
거기에 더해.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끝나고 오래요?”
말을 얹은 건 훗날 스타더스트의 막내가 될 최한.
…어째 눈을 돌릴 때마다 지뢰들이 보이는 듯하다.
마지막에 혼전임신으로 거하게 사고 쳤던 그 녀석이다.
와, 천천히 둘러보다 보니 이거 참 환장적인 조합이네.
그제야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하.”
맞다.
여기서 사고 치는 새끼들이 한둘이 아니지.
내가 열심히 해서 데뷔하는 건 그렇다 쳐도 이미 데뷔할 놈들은 어쩌란 거야.
[스타더스트 막내 멤버 최한, 깜짝 결혼 발표] [’마약 혐의’ 스타더스트 전 멤버 케빈, 징역 2년 구형] [스타더스트 이준혁, 멤버 폭행. 팬싸인회 현장에서 난동 일어나]앞으로 팡팡 터질 사건사고를 떠올리니 관자놀이를 누른다고 해결될 두통이 아니다.
“큰일 났네.”
같이 데뷔할 멤버들 중에 쓰레기가 너무 많다.
* * *
스타더스트 프로젝트. 스타더스트를 데뷔시키기 위해 더블즈 엔터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망할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대히트를 쳤고, 해당 프로그램에서 순위권에 들었던 일곱 명이 스타더스트로 데뷔하게 된다.
그나마 스타더스트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이라 다행이다.
앞으로 녀석들을 제치고 나갈 기회는 충분히 남아있으니까.
“후우. 이것들을 어떻게 하지?”
노트 위에 메모를 끄적이며 볼펜을 돌렸다.
이준혁은 비교적 낮은 순위권으로 간신히 최종 때 나를 앞질렀으니, 마음만 먹으면 잡을 수 있다.
더러운 인성을 카메라 앞에서 증명할 기회가 있다면 그게 베스트겠지.
“이 인간은 그렇다 치고.”
마약유통을 한 케빈. 월말평가 상위권에 이어 데뷔 순위도 2등.
이 녀석이 가장 문제다.
턱을 쓸어내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약하는 걸 잡아내야 하나?”
제법 신빙성 있는 증거만 찾아내도 바로 나가리긴 할 텐데.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상 온갖 가십거리들이 바로 데뷔로 직행되니 말이다.
“하기야 대놓고 티 내고 다니진 않겠지. 미치지 않고서야.”
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는 연이 없다.
내가 형사나 기자가 아닌 이상, 녀석의 꽁무니만 따라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일단은 보류다.
심지어 겉으로 보기엔 꽤나 유쾌하고 정상적인 성격이라, 나도 연습생 당시에 저 녀석이 약쟁이일 줄은 모르고 살았으니까.
그리고, 또 남은 사람이….
멘탈 개복치 자진탈퇴 한 명이랑.
스타더스트 막내 최한.
[스타더스트 막내 멤버 최한, 깜짝 결혼 발표]어차피 저 녀석은 스타더스트 데뷔 프로젝트 당시에는 데뷔를 못 한다.
추가 영입되는 멤버니까, 순위권으로 치고 올라오는 일만 없다면 당분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고민한 결과, 어느 정도 결론은 나왔다.
“일단 내 데뷔가 먼저야.”
나는 살아남고, 쳐낼 애들은 쳐낸다.
두 배로 어려워진 계획이지만… 해볼 만했다.
나는 저놈들이 무슨 사고를 칠지 미리 알고 있으니까.
분명 내가 뉴스로 봤던 지식들이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있을 오디션에 사활을 거는 수밖에….
“야, 서한아!”
그 순간,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으며 얼굴을 들이민 것은 하준서였다.
나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아, 깜짝아.”
“놀랐어?”
“인기척을 못 느꼈어요.”
스물다섯의 시선으로는 완전 어려보이는데, 이래 봬도 나보다 세 살이나 많은 형이다.
이때는 이 형이 스무 살이었던가?
실수로 반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집어 넣었다.
스타더스트의 원래 리더.
잘못한 것도 없는데 허구한 날 기자들 앞에서 고개 숙이고, 이준혁한테는 팬싸인회 현장에서 얻어터지고….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가던 형이다.
스타더스트에서 저 형이 가장 불쌍했는데.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낮게 깔린 목소리가 담담하게 물어왔다.
“근데 오늘 전부 집합하라는 거, 실장님이 부르신 거 맞지?”
“맞을걸요?”
“뭐지? 월말평가 결과는 어제 나왔는데?”
짚이는 게 하나 있긴 하다.
이맘때쯤이라면 스타더스트 프로젝트 건으로 불렀을 확률이 높았다.
덕분에 온 연습생들이 널찍한 더블즈 엔터의 연습실에 모여앉아 있었다.
“그러게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하준서는 얼음이 동동 띄워져 있는 아메리카노를 흔들거리며 물었다.
“피곤하지? 마실래?”
“아, 괜찮아요.”
저 형은 천성이 저랬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연습생들한테도 오지랖 삼아 말을 걸어오곤 했다.
분명 스타더스트에서도 사고 치는 멤버들 사이에서 치이고 치여서 얼굴이 반쪽이 됐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기사 사진보다….
“이땐… 젊었구나.”
“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련한 눈빛으로 하준서를 돌아보았다. 리더라는 직책 때문에 멤버들 뒷사고에 허구한 날 고개를 숙였던 모습만 기억나서 그런가, 이렇게 혈색 도는 얼굴은 뭔가 낯설다.
맨날 초췌한 얼굴로 방송국 뒤편으로 숨어들어 가더니만. 본인의 미래를 새파랗게 모르고 있는 하준서는 왠지 조금은 신난 얼굴이었다.
하준서는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아, 이거 그거 같은데? 새로운 연습생 들어오나?”
“새로운 연습생이요?”
“인사시키려고 부른 거 아닐까?”
많이 들어오지. 한 열댓 명 통으로 들어오지.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하준서가 급격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을 더했다.
“아니면 혹시 퇴출…이냐.”
하준서의 추측이 이어지던 순간.
벌컥-
실장님이 오셨다. 오랜만에 봐도 더없이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송진하 실장이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다 모였나?”
“네에에에!”
연습생들의 대답을 끊고, 송진하 실장이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달할 게 있다.”
* * *
송진하 실장은 별다른 설명 대신 커다란 벽보를 연습실 거울 위로 붙였다.
“음음.”
그리고는 쏜살같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표정을 봤을 땐 자신도 이 소식을 전달하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우르르.
그와 동시에 뒤편에서부터 연습생들이 몰려나왔다. 그 인파에 섞인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준혁은 앞쪽에서 거칠게 몸싸움을 하며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야, 비켜봐.”
“뭔데? 뭐라고 써있는데?”
“스타더스트 프로젝트….”
“이게 뭐냐?”
결론이 나왔다.
“미친. 오디션이야?”
“에?”
월말평가에서 줄곧 상위권이었던 연습생들에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소리다.
[100프로 시청자 투표로 선정되는 최종 데뷔 멤버 >< 스타더스트 월드에 입성할 여러분의 소년을 뽑아주세요!]"뭐?"
“…이걸 나가라고?”
“뭔 지랄이냐 저건 또.”
벽보에는 웬 하트와 함께 사뭇 뽀짝한 문구들이 줄줄이 적혀있었고, 그 내막을 확인한 연습생들의 입에서 연신 한숨이 튀어나왔다.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애들을 몇 년을 굴려놓고 데뷔조 뽑기 직전에 오디션으로 돌려버리는 클라스. 여느 대형 엔터가 그러하듯, 연습생들더러 알아서 살길 찾으라는 거지.
가족 같은 분위기는 기대한 적도 없으니 놀라지도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 문구를 두 번째 보고 있는 나같은 케이스고. 다른 연습생들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파격적이지.
정신 나갈 것 같지.
당연하다.
뒤편은 이미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벽보를 보겠다고 밀고 당기며 몸을 구겨넣으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자, 뒤로 물러나라!”
“실장님, 잠깐만요. 이거 뭐예요?”
“오디션이야. 이번에 TBN랑 합작으로 진행하는 데뷔 오디션. 참가 신청서는 저쪽에 있으니까 차례로 가서 접수 받아라.”
“아니,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은 해주셔아죠!”
기존 더블즈 엔터 연습생 22명에 프로그램에서 섭외하는 개인 연습생 12명.
총 34명이 일곱 자리를 놓고 싸운단다.
빡세기로 유명한 더블즈 엔터에서 살아남았는데 여기서 개인 연습생을 받는다고?
당연히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미친 거 아니냐. 저럴 거면 뼈 빠지게 월말을 왜 봐.”
“개인 연습생? 걔들은 어디서 주워온 애들이야?”
“돌아버리겠네.”
“진짜 100프로 투표야?”
"시발, 진짜…."
상위권은 이미 죽상이 되어 있고, 중위권과 하위권은 그나마 희망이 생겼는지 두 눈을 반짝이고 있다.
100프로 시청자 투표.
무서운 소리긴 하지. 그간의 실력이고 경력이고 싸그리 지워지고 카메라 뒤편의 이미지만 남을 테니까.
"웬 난리래."
하준서는 심각한 얼굴로 그새 한 컵 가득 있던 아메라카노를 원샷해 버렸다.
비교적 담담한 반응이었지만, 그 역시 상위권에 위치해 있기에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와, 큰일 났네. 뭐 준비하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차분히 수립하는 중이었다.
100프로 시청자 투표. 엔터에서 직접 진행하는 터라 악마의 편집은 비교적 덜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없다고 볼 수도 없다.
밀어줄 애들은 밀어주고,
버릴 애들은 버리겠지.
늘 더블즈 엔터가 하는 짓을 조금 더 공개적인 현장에서 할 뿐이었다.
통편집? 일상이다.
남 띄워주는 도구로 쓰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살벌한 세계임을 이미 경험했기에 입안이 쓰다.
“오디션, 확실히 오랜만이네.”
오디션은 냉정하게 봤을 때 양날의 검이다.
PD픽이 절대적인 사회생활 프리뷰.
어떻게 편집되냐에 따라 인지도에 극단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죽어라 맞을 수도 있고, 잘못한 놈이 승승장구하는 꼴을 볼 수도 있는 법.
뭐, 이미 알고 있었던 얘기다.
여기서 내 관건은.
“첫 번째 평가가 뭐였지?”
회상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연습부터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