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member of Top Idol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명곡이었던 것
더블즈의 빠른 일 처리에 깜짝 놀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벌써 컨셉이 나왔다고요?”
“네, 프로그램 전부터 구상해둔 컨셉입니다!”
진세현은 충격받은 얼굴로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와….”
대형 기획사면서 일 못 한다고 가루가 되도록 까이던 것이 더블즈인데,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빠른 일 처리라니.
아무래도 프로그램빨 떨어지기 전에 데뷔시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뭐야, 더블즈.
웬일로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
“이게 기획서인가요?”
강시우는 열심히 훑고 있던 계약서를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놓인 컨셉기획서로 시선을 돌렸다.
“으음.”
한눈에 봐도 복잡해 보이는 설정이 가득해 보이는 세계관이었다.
나는 컨셉기획서를 조심스레 펼쳐 첫 번째 장을 확인했다.
바로 그때,
“잠시만요. 제가 설명드릴게요!”
살짝 광기라고 해야 할까 .
좋은 쪽으론 눈빛에 생기가 넘치는 앨범기획팀의 직원이 입을 열었다.
긴 갈색의 생머리.
김세영 과장 옆에 앉아 있던 신지예 사원이었다.
아마도 이번 컨셉 앨범이 그녀가 정식으로 참여한 첫 앨범인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유난히 들뜬 목소리가 입을 열었다.
“프로그램 컨셉 자체가 우주였기 때문에, 데뷔 앨범도 비슷한 컨셉으로 갈 예정이거든요.”
기본 골조는 스타더스트 프로젝트의 세계관과 유사했다.
스타더스트 월드에 갇혀 있는 일곱 명의 소년들, 그들이 지구에 불시착하면서 시작되는 스토리였다.
“스타더스트 월드에 살던 여러분들이 우연히 지구라는 땅에 도착하게 되는데, 거기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는 거죠!”
“아.”
여기까지는 꽤 흔한 외계인의 불시착 러브스토리 느낌이었다.
헌데,
“다들 아시다시피 우주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다르게 가잖아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다들 아시죠?”
“재밌겠다.”
“……”
“네?”
천상이과 진세현은 두 눈을 반짝였고, 서하임의 눈빛은 이미 초점을 잃은 뒤였다.
아무튼, 대체 무슨 세계관이길래 상대성이론까지 나오나 싶었더니….
여기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컨셉이 끼얹어졌다.
신지예는 심각한 얼굴로 컨셉서의 첫 번째 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지구를 떠난 소년들은 그 소녀를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 돌아오는데… 그사이에 지구가 개박….”
“…?”
“크흠… 다소 무너져 있는 관계로 절망하게 되는 컨셉입니다~”
방금 개박살…까지 나왔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신지예는 김세영 과장의 눈치를 살피며 하하, 하고 웃어넘겼다.
그다음으로는 평행우주니 뭐니, 꽤 복잡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결론은 멸망한 지구에서 다시 소녀를 찾기 위해 평행우주를 떠돌아다닌다는, 애틋한 세계관이 기본 배경이었다.
아이돌 세계관이 으레 그렇듯 이번에도 스케일 하나는 상당했다.
뭐, 나도 이쪽은 문외한이라서.
더블즈의 기획팀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던 강시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예전이라면 저 형 화났나? 싶을 텐데.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만족했네.
“너무 좋습니다.”
역시나.
강시우의 입에서 흔쾌한 대답이 나왔다.
“다행이에요! 그러면 다음은요~.”
신지예의 열정적인 세계관 설명이 끝나자, 김세영 과장이 넌지시 말을 던졌다.
“두 번째 장은 앨범 컨셉 기획인데, 한번 확인해 주실래요?”
휘리릭-
다음 장을 넘기고 나니, 신지예가 설명한 내용의 세계관이 주르르 기술되어 있고,
“아, 이게 미니 앨범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미니 앨범 1집의 이름도 ‘Parallel universe’로 정해져 있었다.
앨범명부터 평행우주라….
우주 컨셉에 진심이군.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는데….
“아, 저 질문이 있습니다.”
서하임이 번쩍 손을 들었다.
“네, 하세요!”
데뷔 얘기에 잔뜩 설레 보이는 얼굴.
아까 아인슈타인 얘기가 나올 때에는 생기를 잃었던 두 눈동자가 다시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저희가 외계인인가요?”
“으응?”
이 질문은 예상 못 했지.
신지예는 몹시도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네. 컨셉상으로는 그렇긴 한데요….”
“와, 특별해. 내가 외계인이라니.”
컨셉이 만족스러웠는지 해맑게 중얼거리는 서하임과….
“외계침공… 뭐 그런 컨셉이네요.”
1집 컨셉을 이상하게 정리하는 진세현.
“하하… 얘들아?”
하준서는 난처한 얼굴로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저 형,
벌써부터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다.
나는 하준서를 돌아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형, 혹시 벌써 커피 땡겨요?”
“…살짝?”
어쩐지.
아까부터 계속 홀짝이더라.
* * *
쉬는 시간 이후, 2차 회의를 위해 모두들 회의실에 착석했다.
꽤 길어진 회의 시간에 다들 지쳤을 법도 하건만….
저쪽은 지친 게 맞고,
반짝반짝-
우리는 생기가 넘쳤다.
서하임은 쉬지도 않고 종알대며 양팔을 휘저었다.
“나 뭔가 벌써 데뷔한 기분 든다니까?”
“으음~ 차성빈은 무대를 찢어~.”
“이안 형은 어때요?”
“으응… 나도.”
거기에 능청스레 말을 얹는 차성빈과, 서하임의 집요한 물음에 어색하게 웃는 서이안까지.
같은 팀이 된 사람들이지만 참.
어디로 튈지 모르겠긴 해.
아무래도 당분간은 하준서 혈중 카페인 농도가 상승할 듯싶었다.
이를 어쩌나 하고, 걱정하고 있던 그때.
두 시간 사이에 급격히 피곤해진 듯한 신인개발팀 송진하 실장이 지친 발걸음으로 걸어와 착석했다.
그는 다크써클이 아래까지 내려온 얼굴로 입을 떼었다.
“네, 회의 이어갈게요.”
아마도 아까 스킵했던 계약 관련 사항을 마무리할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화제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실 저희 타이틀곡 후보도 나왔거든요.”
“네에?”
“타, 타이틀곡이요?”
이건 예상을 못 했다.
더블즈 대체 뭐야.
일 왜 이렇게 잘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간 더블즈 하면 떠돌았던 무수한 악명들….
욕 안 먹는 대형이 어디 있겠냐마는, 더블즈도 살벌한 댓글들을 많이 받고는 했었더랬다.
-더블즈 이 새끼들 우리 애들 컴백은 언제 시키는 거야
└아티스트 보호 없죠? 컴백 계획 없죠? 뭘 하든 쳐느림
└더블즈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이 정도면ㅋㅋㅋ 얘네는 엔터사업을 할 생각이 없는 거야
└더블즈가 어떻게 대형된 건지 난 가끔 궁금해
└티플 컴백 몇 년째 안 시키실거면 월급도 그냥 몇 년 받지 마세요ㅠㅠ
└우리 티플 방치하지마 더블즈 팬들 돈 그렇게 받아처먹고도 피드백이 안되니?
└ㅇㅈ 컴백이 얼마남았다고 왜 아직도 떡밥이 없냐 더블즈 색기들아
└이 회사에서 일 똑바로 하는 건 자컨팀 뿐임 나머지는 다 월급 뺏어도 무방함
그랬던 더블즈가….
벌써 타이틀곡 후보를 뽑아뒀다니.
다들 긴장한 기색으로 숨을 죽였다.
일은 못할지언정, 늘 돈냄새 나는 비트를 기가 막히게 뽑아왔던 더블즈였다.
우리 팀의 편곡 담당.
차성빈은 능글맞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와아, 기대되는데요?”
다른 멤버들 역시 얼마나 기깔나는 노래가 나올지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건 스타더스트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을 알고 있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이틀곡의 제목은….
“아직 가제긴 한데, 유영(spacewalk)입니다.”
“아, 명곡이지.”
“……?”
너무 심취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버렸다.
그 당당함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흡.”
하준서는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 넌지시 물었다.
“서한아, 명곡이야?”
“그, 일단 제목만 들어도 명곡이에요.”
나는 얼레벌레 수습하며 능청스레 웃어 보였다.
“유영…? 아, 벌써부터 느낌 오는데?”
“서한아, 그만하자.”
“네….”
다들 믿지 않는 것 같지만 영혼리스가 아니라 진심이었다고!
아무튼 유영(spacewalk)이 얼마나 대단한 곡이냐고 한다면….
데뷔 초부터 스타더스트를 대박 신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갓곡이지.
저 노래 하나로 상을 몇 개를 탔더라.
그해의 신인상을 전부 쓸어버린 것은 기본이고, 음악방송 1위 트로피까지 안겨주었었다.
공중파 1위까진 아니었는데, 엥간한 케이블 방송은 다 쓸었었을걸?
데뷔 앨범치고는 엄청난 성적이었을뿐더러, 훗날 역주행까지 해주시는 노래였다.
그런 노래를, 내가 이 자리에서 데뷔조로 들을 수 있게 되다니.
새삼 데뷔가 실감이 났다.
“후우….”
자꾸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경건한 자세로 노래를 기다렸다.
그리고.
딸깍-
A&R 팀의 김세영 과장이 노래를 튼 순간.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유영의 도입부와는 다소 다른….
콰콰쾅!
“깜짝아.”
생소하게 하드한 비트가 울려 퍼졌다.
“뭐, 뭐지?”
도입부부터 냅다 때려박는 비트에 서하임도 깜짝 놀란 얼굴로 자세를 고쳐앉았다.
끝날 줄 알았더니….
콰콰광!
다시 웬 천둥이 쳤다.
뭐지, 보다도 더 난해한 듯한 이 비트는?
돈냄새 나는 비트가 아니라, 돈으로 뺨 때리는 비트만이 남아있었다.
유영이라며.
내가 아는 유영의 정의가 바뀐 게 아니라면….
이건 유영이 아니라 전력질주 아니냐?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어, 잘못 트신 거 아니에요?”
“아, 이 곡이에요~.”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아는 갓곡은 이런 도입부가 아니었는데?
내가 현실을 부정하며 앉아 있는 동안.
하필이면 가이드 음원인 터라, 제대로 가사가 완성되지 않은 노래가 울려 퍼졌다.
으에에-에에에엥-
나는 우주를 헤엄쳐-
으에에-에에에엥-
조금 먼 거리에-
“으에에엥?”
완성되지 않은 가사가 내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아.
또르또르 빗 또르
그 행성은 시리도록 푸르잖아
또르르르 또르르르
또로또로로돗돗…
또르르르 또르르르
또로또로로돗돗…
콰콰쾅!
마지막까지 임팩트가 넘쳐흘렀던 비트.
끝까지 비트는 우리의 뺨을 돈다발로 후려치고야 말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1절이 마무리되고.
회의실 내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음.”
하준서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별달리 덧붙일 말이 없는 표정이었다.
강시우 역시 오늘따라 유난히 살벌해 보이는 얼굴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듯했고,
늘 능글거리던 차성빈도 굳게 입을 닫았다.
그 사이에 껴서 눈치를 살피던 서이안만이 기어들어 갈 듯한 목소리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었다.
“조, 좋네요.”
“와앙, 좋아요. 또르르르….”
서하임도 흔들리는 동공으로 말을 얹었다.
저 두 사람이야 애국가로 데뷔하라 해도 거절 못 할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
나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서한아, 어떤 것 같아?”
하준서가 입 모양으로 속삭이는 말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게….”
유영은 분명 케이팝 역사에 남을 명곡이 맞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내가 아는 그 명곡이, 조금 이상해져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