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member of Top Idol RAW novel - Chapter (66)
66화. 타이틀곡의 방향성
현시점, 최고의 히트곡 작곡가.
빌리빙이어는 3세대 아이돌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주축으로서, 작곡 의뢰가 숨 쉬듯 들어오고 있었다.
한마디로 겁나게 잘나가는 작곡가라는 소리였다.
감각적이면서도 트렌디한 멜로디.
비트를 가지고 노는 듯한 중독적인 후킹이 그녀의 타고난 특기였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 싶은데, 듣다 보면 스르륵 빠져들게 되는 매직이랄까.
요즈음은 이런 까리한 비트가 케이팝 내에서 유행처럼 돌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유영(spacewalk)’는 다소 실험적인 도전이긴 했다.
곡의 메인이 되는 비트는 잘 뽑힌 것 같은데, 도입부와 하이라이트의 밸런스가 잘 맞지 않았다.
파워풀하답시고 뽑아 놓은 멜로디가 생각보다 오래 들으면 귀가 피로해지더라.
어떻게 보면 ‘강강강강!’만 외치다가 끝나버린 노래였다.
여러모로 아쉽긴 아쉬운데….
건드리기는 또 애매하고.
난데없이 나타난 더블즈 대표는 만족스럽다며 곡을 채가버렸고,
뭐, 그래서 준 거였다.
작곡가로서 100프로 만족은 안 되지만, 거래처만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뜰 곡은 아니었는데, 사실.’
빌리빙이어는 그렇게 생각하며 ‘유영’을 더블즈에게 팔아넘겼더랬다.
그리고.
그 뒤로는 그냥 잊고 있었다.
스타프 경연곡 ‘Betters’도 만들었고, 여기저기서 쌓인 의뢰가 한둘이 아니었던 터라 정말 쉬지 않고 작곡해도 일감이 끊일 새가 없었으니까.
팔아넘긴 곡쯤이야 언젠가는 세상에 공개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오늘 낮에 갑작스레 온 연락은 빌리빙이어로서는 상당히 뜻밖의 내용이었다.
“스타더스트 임시 데뷔곡…수정 요청 관련?”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빌리빙이어는 문자를 확인하고는 몇 번이나 두 눈을 비볐다.
수정 요청?
수…정 요청??
아직 매니저도 없는 신인 아이돌이다.
아니, 신인이라는 말도 붙이기 애매한 그냥 연습생들이지.
A&R팀의 김세영 과장을 통해 온 연락에, 빌리빙이어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신인 아이돌 주제에 편곡 방향에 대해 의논해?”
이런 건방진 케이스는 처음이었다.
작곡의 ‘작’자도 모를 꼬맹이 연습생 둘이 뭐를 의논할 게 있다고 제 작업실을 찾아와?
아, 이것 참.
상대가 더블즈라 욕부터 박을 수도 없고.
“오 마이 갓. 존나 골때리네.”
한 성격 하기로 유명한 빌리빙이어였다.
뒷배도 없는 중소 연습생이 저리 패기 넘치게 찾아왔다면 그 잘난 낯짝에 악보부터 집어 던졌을 것이다.
유영의 비트처럼 강강강강!으로 살아왔건만, 돈 앞에서는 강약약강이 되버리더라….
“재수 없는 더블즈놈들.”
어째겠어,
물주님이 만나 달라면 만나줘야지.
물론 곱게 보내줄 생각은 아니었다.
새파랗게 어린 것들한테 작곡이 뭔지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어떤 편곡 방향을 생각해 왔든, 아주 탈탈 털어서 눈물을 쏙 빼놓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안녕하세요, 작곡가님!”
“연습생 차성빈입니다!”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서한을 본 순간.
“…….”
이를 갈고 벼르고 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고 말았다.
빌리빙이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스타더스트…?”
“넵. 연습생 도서한입…니다.”
첫사랑의 기억을 조작한 듯한 부드럽고 앳된 인상에,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훤칠한 키.
아직 데뷔 안 한 연습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미 완성형인 아우라.
이게 실화야?
‘사람이 무슨 저렇게 생겼냐?’
낯선 환경에 눈치를 살피는 건지, 서한의 입꼬리가 수줍게 들썩였다.
순간, 후광이 비친 듯했다.
망설인 것도 잠시.
싱긋.
빌리빙이어는 환하게 웃으며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서 들어와요~.”
아까와는 다르게 사뭇 하이텐션이 된 목소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네요~?”
건방진 거?
그게 뭐가 문제야.
어, 연습생이 자기 곡에 욕심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저렇게 잘생긴 녀석이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는데!
‘열정이 아주 흐뭇하네.’
그렇다.
빌리빙이어는 얼빠였던 것이다.
* * *
“편곡 샘플을… 가져왔다고?”
빌리빙이어의 한마디에, 두 사람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꿀꺽.
서한은 침을 삼키며 빌리빙이어의 눈치를 살폈다.
작곡가들은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편이었다.
지금 자신들이 제시하는 편곡 방향이 빌리빙이어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아마도 꽤 불편해할 텐데.’
협업도 어느 정도 짬빠가 찬 아이돌이나 가능한 얘기지.
대형 소속 연습생이 아니라면 만나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세영 과장이 간곡히 부탁해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눈치가 다소 없는 차성빈이면 몰라도, 서한은 지금 이 순간 순간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네, 한번 확인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서한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지금 빌리빙이어는 상당히 기분이 좋은 상태라는 걸.
“흠흠~. 오케이, 한번 볼까요?”
“넵!”
그녀는 서한이 내민 USB를 쿨하게 받아 들고는 컴퓨터 본체에 꽂았다.
“누가 편곡했어요?”
“제가 했습니다.”
“이름이?”
“차성빈이라고 합니다.”
“툴은 만질 줄 아나?”
마우스를 더블클릭하여 [유영 가이드음원 편곡 ver.] 파일을 연 그녀는 별생각 없이 턱을 괴었다.
패기 어린 연습생들의 장단을 맞춰주고 있지만 단지 그뿐, 크게 기대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대형에서는 데뷔 전에 작곡도 알려주곤 한다던데, 그래 봤자 작곡가의 눈에는 아마추어 수준일 뿐이었다.
어느 정도 연차 쌓인 작곡돌도 그러한데, 얘네는 아직 연습생에 불과했다.
적어도 시간 내어 조언해줄 결과물은 나왔으면 좋겠는데.
빌리빙이어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자신의 가이드 음원에 임시로 가사를 붙인 듯한 노랫말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서한이 직접 녹음해 온 나직한 음성이었다.
This is my universe
나는 우주를 헤엄쳐-
500광년 넘는 먼 거리에
닿을 수 있는 건 only light and me
우주를 반으로 접어
흘러간 시간을 따라잡을게
“으음?”
빌리빙이어의 두 눈이 번뜩 뜨였다.
과하지 않으면서 원곡을 살려낸 비트. 파워풀하면서도 청량감이 살아있는 딥하우스 베이스 리듬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까닥인 것이다.
한번 닿아본 utopia
그 행성은 시리도록 푸르잖아
잊을 수 없어 아름다우니까
I’m stuck in you
너에게로 spacewalk
가지 못해 죽어도 난 괜찮아
그 행성으로 run in
닿지 못해 쓰러져도 난 괜찮아
뭐냐, 이 싸비.
내가 처박아 두고 방치했던 그 노래가 맞나?
코드는 그대로 차용하였는데, 베이스가 되는 분위기를 바꾸었더니 완전히 다른 노래가 되어 있었다.
강약조절 확실하고.
임팩트도 살아있고.
게다가 귓가에 은근히 맴도는 중독성까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비트에 함몰되어 큰 그림을 보지 못했었다.
조금 더 붙잡고 있었다면 더 나은 방향을 찾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방치하듯 치워버린 노래였다.
빌리빙이어는 확신하고 말았다.
이게 제가 만들었던 원본보다 훨씬 나았다.
더블즈 대표가 귀가 달려있다면 공감하겠지.
그녀는 다급히 노래를 끄고선 몸을 돌렸다.
아까까지는 그저 가벼운 풋내기로 보였던 연습생이 사뭇 달라 보였다.
“잠깐만. 이름이 뭐라고요?”
“저요? 차성빈이요.”
빌리빙이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차성빈을 다시 찬찬히 훑었다.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에 묘하게 날티가 느껴지는 얼굴.
도서한이 정석적인 연하남상에 가깝다면, 이쪽은 요즘 애들이 좋아할 법한 까리한 스타일 그 자체였다.
생긴 건 가벼워 보이는데 의외로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혼자서 다 편곡한 거예요?”
“아, 방향성은 이쪽이 잡아줬어요.”
차성빈은 도서한을 조심스레 가리키며 싱긋 웃었다.
빌리빙이어는 두 눈을 끔뻑이며 서한을 돌아보았다.
“어떤… 방향성을?”
“뭐, 대단한 건 아니었고요….”
서한은 조심스럽게 방향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맨 처음, 하이라이트 싸비의 악상을 제시한 것은 지난밤의 차성빈이었다.
덕분에 방향성이 잡히고 나자, 서한은 편곡이 가능한 차성빈을 붙들고 아이디어를 쉼 없이 쏟아내었다.
“원래는 굉장히 빠른 edm 템포의 노래였는데, 도입부의 비트를 조금 덜어내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그랬어요?”
“앨범 컨셉만 놓고 보면 이 트렌디한 리듬을 살리면서 청량한 사운드가 조금 들어가는 게 어울릴 것 같았고, 장르 자체는 딥하우스 베이스로 형에게 요청을 했었어요. 데뷔곡이라고 해서 마냥 청량한 느낌을 살린다기보다는, 대중을 겨냥해서 살짝 어른스러운 청량감으로…?”
뭐지?
빌리빙이어는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린 채 서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마치 머릿속에 확고한 기준이라도 미리 잡아둔 것 마냥, 제가 생각한 곡의 방향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놀라운 건 넌지시 던진 그녀의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친구도 편곡 좀 할 줄 알아요?”
“배운 적 없어요.”
“프로그램 만질 줄은?”
“…몰라요.”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
편곡도 할 줄 모르는 애가 마치 들어본 노래처럼 술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되니 내가 원래 작업하려던 노래가 이런 느낌이었던가? 슬슬 헷갈릴 지경이었다.
빌리빙이어는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일단, 좋아요. 나는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 완벽한 가이드 음원을 들고 왔는데, 작곡가의 자존심을 논하면서 걷어차 버리는 건 제 커리어적으로도 너무 큰 손해가 아닌가.
아니, 오히려 이 두 녀석들이 예뻐서 목마를 태워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목 나가겠구나.’
그런 현실적인 생각은 뒤로하더라도, 이건 이 애들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저를 빤히 돌아보는 서한의 깊은 눈동자.
그 눈빛에 확신이 있었으니까.
“바로 작업 들어가죠.”
그녀는 곧바로 작곡툴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