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색칠의 마녀 (4)
“저녁 식사 초대는 시종을 시켜서 알려도 되는데.”
“그랬다간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버릴 거야. 황실은 이런저런 규칙이 많으니까.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너랑 놀 수 있으면 좋겠어.”
데이지는 그 말을 듣고 강아지처럼 코를 여러 번 찡긋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때는 마차를 타고 갈게. 정식으로. 선물도 챙겨서. 기다리고 있어.”
“늦지 않을까?”
“아냐! 기다려 줘.”
“그래! 그럼 서둘러서 와!”
달리아는 말을 마친 뒤 그림자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데이지는 달리아가 사라진 그림자를 보고, 괜히 화들짝 놀라며 걸음을 서둘렀다.
***
“어서 오세요.”
시에라가 무뚝뚝하게 인사했다. 손님을 환영하는 말투는 절대 아니었다.
“오랜만입니다, 글러토니 공작.”
“예에. 달리아의 졸업식 때까지 뵐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요. 이렇게 또 뵙는군요.”
데이지의 시종들이 급히 챙겨온 선물을 공작가에 넘겨주기 시작했다. 인사치레로 무슨 선물을 가져왔냐는 둥, 이렇게 챙겨올 필요는 없었다는 말을 할 법도 했는데 시에라는 꿋꿋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시에라를 달래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을 피핀도 지금은 표정이 어두웠다.
“달리아 아가씨가 집에 계신 건 어떻게 알았죠?”
“학교에서부터 같이 출발했으니까요.”
시에라와 피핀이 흉흉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안, 코카는 알쏭달쏭한 얼굴로 웃으며 뒤를 지키고 있었다. 코카는 그나마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것처럼 연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시에라가 중간에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라고 중재를 하자 그제서야 코카는 부산한 움직임을 멈췄다.
“일단 들어와서 식사를 하죠. 손님을 계속 세워둘 수는 없으니까.”
막상 식사 시간은 화기애애했다. 공작성의 요리는 하나같이 훌륭했고, 낯선 것들이었다. 황자가 왔다는 소식에 주방장은 소싯적 받았던 대회의 배지까지 옷에 주렁주렁 달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요리라는 것은 자부심입니다. 자부심! 글러토니 가문의 식탁에 오르는 재료는 하나하나 제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버터로 향을 입힌 채소구이만 살펴봐도 우리 글러토니 공작령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예술이지요! 저는 우리 영지의 아름다움을 손에 담는 예술가로서!”
주방장은 쉴 새 없이 열변을 토했다. 알베르토 집사장에게 끌려갈 때까지 그는 쉬지 않았다. 끌려가는 동안에도 무언가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일상인 듯했다.
‘하지만 저렇게 자부심을 갖는 이유를 알겠어.’
데이지는 예법에 맞게 우아한 식사를 이어 나가며, 남몰래 감탄했다. 식사 자리가 묘하게 조용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가풍이 이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면 못 넘어갈 것도 아니었다.
이어 메인 요리가 나왔다. 달리아가 그렇게 자랑한 테리폰 스테이크였다. 시종들이 바쁘게 나르는 접시를 보며, 피핀이 어깨를 펴고 말했다.
“제가 직접 잡아온 테리폰입니다.”
얼마 전 마수 토벌에서 글러토니 가문의 기사 피핀이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소식은 들었다. 피핀의 명성은 황실에서도 대단했는데, 그에 관해서는 괴상한 말이 돌았다.
피핀 슬로스가 선봉에 선 전투에서는 절대 마수의 생김새를 자세히 쳐다보지 말 것.
전쟁과 토벌은 미신이 넘치는 무대다. 아마 그런 맥락이겠지. 데이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음식을 맛봤다. 무척 훌륭했다.
“테리폰은 제가 처음으로 발견한 마수입니다. 이 녀석들은 은신하는 습성이 있죠. 그래서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제 부대에 있던 기사 하나가 이놈의 독특한 발굽을 발견했습니다. 참을 수 없었죠. 그날 밤에 저는 막사를 빠져나와서…….”
피핀이 주절거리기 시작하자, 조용히 식사를 하던 시에라가 코카를 향해 손짓했다. 코카는 웃으면서 피핀을 끌고 나갔다. 아까 주방장이 당한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하, 피핀 경은 바쁜 일이 있습니다. 어서 가실까요? 참, 그렇게 중요한 일을 깜빡하시다니. 피핀 경답지 않군요.”
“이거 놔! 새로운! 마수를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입니다……!”
“저항하지 마세요. 빨리 오시죠.”
“아가씨! 아가씨! 우리 아가씨를 위해 잡아 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피핀이 끌려가는 모습을 애써 무시하며 데이지가 달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달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먹으며 능숙한 솜씨로 콩을 골라내고 있었다. 골라낸 콩은 접시 밖으로 떨어뜨렸는데, 그때마다 달리아의 발치에 있던 페임스 네 마리가 돌아가며 받아먹었다.
“어때?”
달리아가 돌연 데이지를 쳐다보며 물었다. 데이지는 화들짝 놀랐다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수십 번 끄덕였다.
“맛있어.”
“피핀은 은퇴하면 요리사가 될 거래. 그때도 내 밑에서 일하겠다고 했어.”
“그렇구나.”
달리아와 데이지가 퍽 다정하게 대화하는 걸 보던 시에라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단델은 물잔을 계속 채우다가, 아예 주전자까지 바꿔 들어야 했다.
“달리아. 머리 모양이 바뀌었구나.”
한참 하마처럼 물만 마시던 시에라가 입을 열었다. 달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단발이 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웃었다. 데이지는 음식을 먹던 것도 잊고 달리아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그동안 시에라는 달리아가 아닌 데이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이거, 이건……. 유행이라서 그래요! 수도에서는 이런 느낌이 유행이거든요. 친구들을 따라 살롱에 다녀왔어요. 하하하하!”
“그래, 그렇구나.”
“네! 어떤가요? 저한테 잘 어울리나요?”
“그럼 잘 어울려. 너한테 어울리지 않는 게 뭐가 있겠니. 거짓말 빼고 말이야.”
“헉.”
시에라는 물을 또 한 잔 마셨다. 그는 처음부터 달리아가 뭔가 사고를 쳤겠구나 눈치채고 있었다. 얼마 전, 거베라가 달리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보내온 덕분이었다. 천으로 된 요란한 머리 장식이었는데, 긴 머리카락을 땋고 묶는 용도였다. 수도에서는 이런 게 유행이라면서…….
“달리아.”
“네.”
시에라가 은은하게 웃었을 때, 달리아는 자신의 거짓말이 들켰음을 알아차렸다.
“지금은 손님이 있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자.”
“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달리아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참! 그거 아세요? 학교에서 재밌는 일이 많아요. 지난번에는 연애편지를 받았어요! 아직 안 읽어봤지만, 어떤 내용인지 궁금…….”
달리아는 말을 하다가, 시에라와 데이지의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으로 변하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것도 아닌가 봐…….’
달리아는 얼굴을 괜히 긁적인 뒤에 식사에 집중했다.
***
“원래는 유쾌하고 다정한 분인데, 오늘은 피곤하셨나 봐. 우리 오라버니 말이야.”
데이지를 배웅하는 길에, 달리아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를 보자마자 나한테 달려오셨어. 집사장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일을 다 미뤄버리신 모양이야. 덕분에 나랑 하루 종일 같이 있었지. 나는 오라버니가 주는 방학 선물을 잔뜩 받고, 간식을 먹고, 정원을 산책하고……. 오늘 저녁에는 악단을 부르려고 하셨는데 그건 말렸지. 내일은 같이 나들이를 갈 거야. 아마 일주일은 바쁠걸.”
“즐거워 보인다.”
“응! 집에 돌아와서 아주 좋아. 오라버니는 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주시는걸. 그러니까 아마 은둔자의 땅에 가는 것도…….”
달리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잠시 고민했다.
“허락해 주시겠지?”
“은둔자의 땅은 위험하니까 쉽게 허락받기는 어려울 거야.”
“다음 마수 토벌에는 나도 가고 싶어. 매일 상상해. 그곳을 어떻게 가꿀 수 있을지.”
달리아는 데이지를 포함한 친구 몇 명과 공유하는 아지트가 있었다. 아지트 안에는 은둔자의 땅을 그린 지도와 러스트 성에 관한 자료가 잔뜩이었다.
이미 정복된 지역과 탐사하지 못한 지역, 그곳에 사는 마수들에 관한 정보를 조합하며 달리아는 새로운 터전을 상상했다.
“마수를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코스모도 본래 마수였고, 페임스도 일종의 마수인걸.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수를 분류해 목장을 만들 수도 있겠지. 빈민가에는 먹을 것도 일도 없이 떠도는 사람이 너무 많아.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나중에 산적이 될 수도 있어. 은둔자의 땅을 개발할 때 이런 사람들을 데려다 일을 시키고 돈을 준다면……. 곤란한 사람들이 새 터전을 얻을 수도 있겠지.”
달리아의 계획은 구체적이고 선명했다. 달리아는 시에라에게 제출할 기획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오라버니는 내가 예술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셔. 내 예술 과목 성적을 보시고도 그런단 말이지. 하지만 난 예술보다는 개척이 더 좋아. 졸업하면 오라버니를 도와 은둔자의 땅을 일굴 거야.”
인간의 문명을 배우기 시작한 코스모는 달리아에게 은둔자의 땅에 관한 많은 정보를 알려왔다. 시에라가 종종 러스트 성을 방문해 이것저것 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오라버니도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
달리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데이지가 한숨을 쉬며 걸음을 멈췄다. 멀지 않은 곳에 황실의 마차가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으라 명령했던 시종들이 저기 모여 황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미래를 봤어. 네가 은둔자의 땅을 누비는 미래를.”
“아! 정말?”
“네 마력으로 세운 구획들, 네가 길들인 마수와 사람들…….”
데이지는 불퉁하게 중얼거렸다.
“그곳에 나는 보이지 않았어. 어째서일까. 내 능력이 부족했던 걸까? 형님께서 내게 은둔자의 땅을 맡기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데이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미래 예지는 모든 걸 선명하게 보여주지는 않잖아.”
달리아가 데이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확 놓았다.
“내가 그리는 미래에 너도 포함돼 있어. 물론 카멜리아랑 다른 친구들도 있지. 하지만 너는 나처럼 주인공이야.”
“정말? 약속할 수 있어?”
“물론이지!”
달리아가 활짝 웃었다. 데이지는 넋을 놓고 달리아를 쳐다보다가,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뭔데?”
“아까 식사 시간에 말했던 편지. 그 편지 안 읽고 버렸으면 좋겠어. 버려줘. 그러면 믿을게. 대신 다음에 올 때 내가 더 길고 멋진 편지를 써 올게. 더 예쁜 종이에…….”
데이지의 발밑을 오가던 페임스 네 마리가 쩝쩝거리기 시작했다. 달리아는 낮에 피핀이 했던 말을 생각하며 웃었다.
“다들 바보야. 그건 아홉 살짜리 후배가 준 편지인걸!”
***
똑똑. 달리아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있던 시에라가 반갑게 달리아를 맞이했다.
“친구는 집에 보냈니? 친구는 집에 가야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아직 해도 안 졌는데요?”
“곧 질 거야.”
시에라의 책상에는 어린 달리아가 그린 낙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달리아, 미리 알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시에라가 달리아를 자신의 책상 쪽으로 끌어왔다. 책상 위에 흩어져 있던 서류를 본 달리아의 눈이 커졌다.
“오라버니, 이건……!”
“네가 아주 어릴 적 했던 말이 있어. 은둔자의 땅에 별장을 짓고 싶다고 했지. 코스모는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해.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어.”
달리아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번 생일 선물은 별장이야. 생일 축하해, 달리아. 물론 지금 당장 너를 그곳에 관리로 보낼 수는 없……!”
달리아는 폴짝 뛰어들어 시에라를 끌어안았다.
“그곳은 완전히 새로운 땅이 될 거예요.”
달리아의 머릿속에 어릴 적 봤던 풍경이 일렁였다. 그 땅에 자신은 새로운 세상을 그려낼 것이다. 마치 황제라도 된 듯이.
– 완-
악역 영애의 오빠가 되어버렸다
지은이 : 란트
제작일 : 2023년 03월 15일
발행인: (주)에이시스미디어
편집인 : 에이시스미디어 편집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428 11F 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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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은 (주)에이시스미디어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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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76-0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