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11)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11화(11/217)
11화 그의 마음을 훔친 그녀
남작의 가장 가까운 조카이자 상속인 토마스 클라크라는 남자는 넉넉한 풍채에 온화한 인상을 풍겼다.
“숙부님.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나아지신 것 같은데요?”
“그래, 그래. 요즘 컨디션이 조금 괜찮아진 것 같구나. 기침도 덜 나고.”
“아이구- 그거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하-.”
토마스가 태오를 힐끔거리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 그런데 저분은?”
“아, 그분은 내 손님이시다. 긴히 의논할 것이 있어서 내가 모셨어. 이제 막 나가시려던 참이야.”
태오가 토마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테오 샌더슨이라고 합니다.”
“아··· 네. 토마스 클라크요.”
토마스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정면으로 마주한 그의 표정은 남작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웃음기를 거둔 얼굴은 차갑다 못해 비열해 보이기까지 했다.
보아하니 태오가 누군지 브라운 집사에게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가 귀족 신분도 아니고 중매업자라는 소리를 듣고 저러는 거군. 상대에 따라 표정 바꾸기가 아주 익숙한 자다. 겉과 속이 굉장히 다른 사람이야.’
남작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는 태오에게, 토마스가 들으라는 듯이 지껄였다.
“숙부님. 저런 근본 없는 중매쟁이들은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런던 중매쟁이들은 모조리 사기꾼이라는 소리도 못 들으셨어요? 거기다 남자가 어디 할 짓이 없어 매파 따위나 하고 다니다니, 쯧쯧···.
숙부님 몸이 안 좋을 걸 기회로 신랑 측과 짜고 많은 지참금을 뜯어내려는 뻔한 수작 아니겠습니까? 저한테 모두 상속이 되면, 제가 어련히 사라와 아이들을 돌보지 않을까 봐 그러십니까? 그렇게 돼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 만약 숙부님께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제가 아이들을 끝까지 잘 돌볼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괜히 사라를 급하게 결혼시키려고 저런 저질 매파에게 부탁했다가 그것이 오히려 더 큰 탈을 부추기고 말 겁니다.”
“토마스! 알았으니까 목소리를 좀 낮춰. 샌더슨 씨가 다 듣겠어.”
◈ 이틀 뒤, 테오 샌더슨의 집.
똑똑똑.
“들어와요.”
태오의 서재로 하녀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편지 한 통이 들려있었다.
“로버트 클라크 남작님으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받아든 편지를 펼쳐보니, 태오의 소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짧은 답신을 쓴 태오가 하녀에게 편지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오늘 중으로 전달해 줘.”
“네, 알겠습니다.”
태오는 대니얼 버크 경과 사라 클라크와의 만남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나는 장소가 문제였다.
지난번 버크 경과 만났던 런던 티 가든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혼잡스러웠다.
그래서 좀 더 분위기 있고 조용한 곳을 찾아다녔는데, 최종적으로 템스강 근처의 리치먼드 티 가든이 낙점됐다.
‘분위기가 저번에 확인한 것처럼 좋아야 할 텐데.’
남녀 간의 첫 만남에서 분위기는 무척 중요하다.
서로 긴장된 상태에서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가늘어지고, 또렷하게 들리지 않기 마련.
이때 주위가 어수선하고 시끄럽기까지 한다면 목소리 톤의 변화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의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소통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를 탐색하는 첫 만남에서는 상대에 대한 집중이 필요한데, 번잡한 환경은 집중력을 크게 떨어뜨려 상대방에 대한 매력 발견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아직 18세기라, 만남이나 구혼 과정이 대부분 무도회장이나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연인을 위한 분위기 좋은 카페 거리나 맛집들도 거의 없고. 그러다 보니 주의가 산만하고 상대에 대한 집중이 어려운 곳들 뿐이야.’
아쉬웠다. 성향이 잘 맞는 사람들은 분위기만 좋으면 서로 얘기가 잘 통하면서 친밀도를 금방 끌어올릴 수가 있다.
하지만 이 당시 런던의 환경을 살펴보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직 산업혁명 초입부라지만 많은 공장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이로 인한 각종 환경 오염 문제가 심각했다.
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연이 대기질을 떨어뜨렸고, 이로 인해 거리에는 온통 흑색의 진흙질 퇴적물 ‘흑니’가 생성되어 너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또, 오수저장소에는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에 대응을 못 해 오수가 넘쳐흘렀고, 공동묘지 근처에서는 제대로 처리 못 한 시신들로 기분 나쁜 악취를 풍겼다.
기본적인 환경이 이렇다 보니 현대의 도시처럼 깨끗하고 분위기 좋은 거리나 카페를 찾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리치먼드 근처에 궁정도 있고 템스강도 있어서, 그래도 어느 정도 관리가 되어 있었어. 그날 날씨만 좀 따뜻하고 시끄럽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만나는 날 제발 좋은 분위기이길 바랄 뿐이었다.
◈ 며칠 뒤, 리치먼드 티 가든.
리치먼드 템스강 주변에는 꽤 고급스러운 저택들이 줄지어 있었고, 수목과 조경 관리가 그런대로 잘 되어 있어 다른 곳보다는 환경이 괜찮았다.
거기다 날씨까지 좋아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태오는 대니얼 버크 경과 함께 티 가든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한창 주고받고 있었다.
“샌더슨 씨가 선뜻 제 사업에 투자를 해주셔서, 클럽의 다른 분들까지도 투자 문의를 하시고 계십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생각 같아서는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싶은데, 제 사정이··· 하하. 아무튼 무조건 성공할 테니 열심히 해보십시오.”
런던 티 가든 보다는 확실히 덜 소란스러웠고, 주변의 전망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의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과 비교해보면 수준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대의 상황과 발전이 다르다지만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아. 연애 결혼에 대한 인식도 점점 바뀔 시기이니 좋은 분위기의 카페 같은 것이 생기면 참 좋을 텐데.’
아쉬운 마음으로 여기저기 살펴보는데, 버크 경이 궁금한 눈으로 물었다.
“샌더슨 씨? 오늘 이 자리에 오신다는 친구분도 런던에 살고 계시나 봐요?”
버크 경은 태오의 친구가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여자가 온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네, 맞습니다. 런던에 살고 있죠. 로버트 클라크 남작이라는 분의 첫째 따님이세요.”
“네?”
“왜 그렇게 놀라세요?”
“따님··· 이라니요? 지금 여성분이 오신다고요?”
“여자라고 우습게 보시면 큰코다치실 겁니다. 대화를 해보시면 제가 왜 이분을 모셨는지 금방 아실 거예요.”
버크 경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합석할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태오는 미리 여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려줄까도 했지만, 버크 경에게는 자연스러운 만남이 더 필요해 보였다.
심적으로 결혼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에게 억지로 소개 자리를 만들면 실제 느끼는 감정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그러면 만남의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지금은 결혼을 위한 자리가 아닌 서로를 알아가 보는 정도의 가벼운 만남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정을 사라 클라크 양에게는 미리 말을 해두었다.
“아, 마침 저기 오시네요.”
티 가든 쪽으로 올라와 두리번거리던 사라 클라크가 태오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짙은 녹색의 프랑스풍 롱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걸어오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로 기품있고 우아했다.
가까이 온 그녀에게 태오가 고개를 숙이자 사라도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클라크 양, 이쪽은 대니얼 버크 경입니다.”
태오의 소개로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주 보고 인사했다.
잠시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버크 경이 사라의 인사에 황급히 뒤꿈치를 붙이고 정중하게 예의를 표했다.
*
남성은 시각에 예민한 탓에 보이는 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감정의 교감을 중시하는 여성들보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태오는 지금까지 수많은 남녀를 매칭해 보면서 성향에 따라 이상형도 매우 다양함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봐도 예쁘고 잘생겨서 모두가 좋아할 것 같은 얼굴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저 평범하게 보인다거나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었다.
그런 다양한 성향의 남녀를 연결해주고 그 결과를 보면서 태오의 머릿속에는 상당한 데이터가 쌓여 있었다.
덕분에 이제는 성향만 제대로 파악되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상대의 성격은 물론 선호하는 외모까지도 자연스럽게 연상될 정도였다.
대니얼 버크 경도 그러했다. 버크 경은 화려하거나 귀여운 외모보다는 깨끗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이성을 선호하는 성향으로 분석됐고, 그것이 제대로 적중한 것 같았다.
또한 사라는 현명함과 감정조절 능력, 그리고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책과 토론을 통해 얻은 지식과 논리적 사고로, 자기에 대한 이해 능력은 물론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까지 탁월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라와 대화를 나누면서 떠올랐던 인물이 바로 대니얼 버크 경이었다.
학문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모험적이고 진취적 성향, 그리고 자기에 대한 이해 능력이 높은 버크 경과 사라는 매우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감정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이 사업을 하는 남자와 만나면 그 스트레스는 훨씬 심해지고, 결국 부부간 불화의 폭도 깊어진다.
반대로 감정을 잘 다스리고 상황에 대한 대처도 좋다면, 남편의 사업에 변동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남편에게도 심리적 안정감을 주면서 사업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주기 마련이다.
‘예상대로 대화가 잘 흘러가고 있군. 다행이다.’
두 사람은 처음의 어색한 분위기에서 태오의 능숙한 리드로 자연스럽게 대화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초반에 이렇게 서로에 대한 감정을 잘 주고받게 되면, 친밀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서로를 탐색하는 불필요한 견제 시간을 크게 줄여줄 수 있다.
태오의 예상대로 시간이 지나자, 버크 경의 호감 신호가 강하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평소 버크 경이 친밀한 사람과 두는 거리는 1m 전후.
태오가 일부러 더 가까이 앉아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여러 번 잡혔었다.
그런데 지금 버크 경과 사라는 거리가 80cm가 조금 안 될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하지만 버크 경의 몸은 뒤로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사라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눈둘레근은 미세하게 상승해 있었고, 사라에게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다른 사람과는 확연히 차이 나게 길어져 있었다.
하지만 버크 경과 달리, 사라에게서는 아직 특별한 호감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여성의 움직임은 남성에 비해 작아서 그만큼 호감 신호도 눈치채기 힘든 경우가 많다.
태오가 바쁘게 두 사람의 감정 신호를 파악하는 사이 대화의 주제가 끊어지면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 간의 친밀도가 올라가면 어색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도 그만큼 빨라진다.
태오는 일부러 개입하지 않고 어떻게 대처하는지 조용히 지켜봤다.
그때 사라가 재빨리 입을 열어 화제 전환을 유도했다.
“전 석탄이 주로 바다가 있는 해안지역에서 채취하는 줄 알았어요.”
역시 사라는 현명한 여자였다.
어색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영리하게도 대니얼 버크 경이 가장 잘 알고 자신 있어 하는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하하, 그렇죠. 보통 이전에는 해탄(seacoal)이라고 해안지역에서 많이 채굴했죠. 하지만 요즘에는 땅속에 수직갱을 뚫어 석탄을 캐고 있어요.”
“아, 그러면 먼 바다에서 캘 때보다 도시에 가까운 산 같은 곳에서 채취하게 되니까 이동 거리도 짧아져서 훨씬 경제적이겠어요?”
“오- 맞아요! 와, 놀랍네요. 그런 경제적 이점을 바로잡아내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버크 경의 진심이 담긴 칭찬에 순간 사라의 볼이 붉어지면서 그녀의 오른손이 귀 옆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가 약 2초간 대니얼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태오의 시야에 잡혔다.
‘아···’
명백한 호감 신호였다.
처음 사라를 만났을 때, 평상시의 태도와 다른 모습으로 포착한 것이 귀 옆의 머리를 매만지는 ‘조절 동작’이었다.
여성은 갑자기 변하는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녀들만의 특이한 ‘조절 동작’을 만들어내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사라가 보이는 머리를 쓸어올리거나 내리는 동작이다.
이 모습이 그녀의 평소 습관이 아니라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던 태오로서는 호감 신호임을 쉽게 알아챘다.
그리고 사라의 ‘시선’은 태오의 확신에 쐐기를 박았다.
여성은 처음에는 마음을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친밀감이 쌓이면 오히려 과감하게 상대의 눈을 지긋이 2~3초간 바라보는데, 이는 강렬한 호감의 신호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탁자 밑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발은 서로를 향해 있었다.
‘좋아. 이제 내가 개입할 필요도 없겠네, 후후.’
붉은 석양이 길게 드리워진 티 가든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두 젊은 남녀는 태오가 보기에도 썩 잘 어울렸다.
늘 우수에 젖은 듯한, 조금은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던 버크 경의 잿빛 눈동자가, 아름답고 사려 깊은 사라 클라크를 만나자 보석처럼 맑게 반짝이고 있었다.
호감이 가는 상대와 말까지 통한다면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흘러간다.
1시간 정도로 예상했던 시간은 어느새 3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