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120)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120화(120/217)
120화. 공작부인의 손녀
태오는 부동산 중개인 브룩 모건 씨와 켄싱턴 하이 스트리트(Kensington High Street) 사거리 건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절대 안 된다고 했다고요?”
“네, 어제도 집사한테 얘기를 건네봤지만, 씨알도 안 먹혔습니다. 왜 자꾸 그 얘기를 꺼내냐며 짜증을 부리면서 켄싱턴 건물 관련해서 앞으로 찾아오지 말라며 대놓고 화를 내더라고요. 아무래도 공작부인한테 욕을 먹었나 봅니다.”
무도회장으로 사용하기에 최적의 건물이라 시세의 세 배에 달하는 가격을 제시해 봤지만, 이번에도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심지어 10배 이상의 돈을 쳐준다고 해도 팔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더는 문의 말라는 싫은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매도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고생하셨네요. 알겠습니다. 참 마음에 드는 건물이긴 하지만 길 건너 다른 적당한 건물을 알아보는 것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것 같네요.”
“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마음으로 건물 매수를 포기했을 때쯤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 며칠 후.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똑. 똑. 똑.
“네, 들어오세요.”
노크 소리에 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이자벨 무어 매칭 매니저였다.
“대표님, 대표님! 지금 굉장한 분이 오신 거 같아요!”
평소 답답할 정도로 진중하던 그녀가 오늘따라 호들갑스럽게 굴었다.
“굉장한 분이라니? 누군데?”
“처음 보는 분인데, 프라이스 부인이라고만 했어요. 타고 온 마차나 수행하는 하인들을 보면 전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집사로 보이는 사람이 그 귀부인을 계속 공작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작부인?”
“네, 하여간 그 부인께서 대표님과 결혼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일단 1층 VVIP 상담실로 모셨어요.”
조지 국왕과도 수시로 대면하는 태오였기에 공작부인이 왔다고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작 가문을 상대로 한 결혼 상담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알겠어. 우선 쥬바 컬렉션으로 커피를 대접하고 있어. 곧 내려갈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 * *
“여기는 프라이스 공작부인되십니다.”
집사가 공손히 소개한 프라이스 공작부인은 70대의 고령임에도 꼿꼿하고 당당한 위엄을 풍겼다.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값비싸고 화려한 의상보다는 검소하고 차분한 느낌의 드레스와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절제된 권위를 드러내는 듯했다.
태오와 인사를 나눈 공작부인은 커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커피의 향과 맛에 깜짝 놀랐습니다.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와서 향을 맡고 맛을 보니 오히려 소문이 맛을 못 따라간다고 느껴질 정도네요.”
“과찬이십니다.”
태오가 먼저 용건을 물었다.
“그런데, 누구의 결혼 상담 때문에 들리셨는지 물어도 될까요?”
공작부인이 손수건으로 슬쩍 입을 닦아내고 대답했다.
“손녀의 결혼 상대자를 찾아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태오가 상담 내용을 메모하려고 수첩과 펜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때, 공작부인이 알 수 없는 말을 던졌다.
“혹시 내가 누구인 줄 아세요?”
“네?”
“내 이름을 오늘 처음 들어보셨나요?”
“……?”
태오는 혹시 아는 사람인가 싶어 공작부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얼굴이 확실했다.
게다가 공작은 영국 전체에서 30여 명 정도뿐이라 알고 있는 사이라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네, 저는 공작부인을 처음 뵙는 것 같은데요. 혹시 궁에서 뵀었나요?”
궁에서는 많은 귀족과 형식적으로 인사를 하고 지나치는 일이 많아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고요.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지 묻는 겁니다.”
“아… 네. 죄송하지만 저는 처음 듣는 존함입니다만?”
그러자 공작부인이 타박하듯 나무랐다.
“그래요? 그렇게 사고 싶다고 몇 번이나 문의하셨다면서 물건의 주인 이름도 모른다는 게 조금 실망스럽네요.”
“물건의 주인이라니요?”
“내가 바로 켄싱턴 사거리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의 주인입니다.”
“……!”
건물 매수는 브룩 모건에게 모두 일임하고 있었다.
게다가 요즘 많은 건물을 매수하고 있어서, 완전히 계약이 체결돼 서명까지 마친 건물이 아닌 이상, 일일이 주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그 건물이 어느 공작부인의 소유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프라이스 공작부인이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커피 향을 음미하며 몇 모금 더 마신 공작부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켄싱턴 건물을 자꾸 사려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보고만 받았고, 거절하라고 단단히 지시해 두었지요. 가격을 얼마를 주든 팔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네, 저도 그렇게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손녀의 친구 중 결혼한 아이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습니다. 아주 잘 어울리는 남자와 가정을 이루었더군요. 어릴 때 우리 손녀와 친해서 저하고도 꽤 가까웠는데, 솔직히 샘이 날 정도로 부부 사이가 좋아 보여서 참 부러웠습니다.”
“…….”
“도대체 누가 저런 훌륭한 결혼을 연결해 줬을까 해서 알아보니 샌더슨 경이더군요. 또, 샌더슨 경이 결혼 중매로 런던에서 유명하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켄싱턴 건물을 매수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문의했다는 사람인 것까지 알게 됐습니다.”
“하하, 그러셨군요. 그런데 손녀의 친구분이라면…?”
“애슐리 양입니다. 루이스 팔머 경과 결혼한.”
“아- 애슐리 클리포드 양, 아니, 이제는 애슐리 팔머 부인이군요.”
“네, 맞습니다. 아무튼 애슐리가 참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더군요.”
“네, 얼마 전에 예쁜 아기까지 데리고 저희 카페에 놀러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애슐리에 관한 얘기를 하던 공작부인이 하고 싶었던 말을 슬그머니 꺼내 들었다.
“샌더슨 경께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군요.”
“제안이라니요?”
“내 손녀의 사윗감을 구해주면, 샌더슨 경이 그렇게 원하던 건물을 매도하도록 하죠.”
느닷없는 제안에 태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네?”
“대신, 내가 제시하는 조건의 손녀 사윗감을 구해주어야만 합니다.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그에 합당한 충분한 사례금은 물론, 켄싱턴 사거리 건물을 원래의 시세대로 샌더슨 경에게 매도하도록 하겠습니다.”
“……!”
사거리 입구 길목에 위치한 공작부인의 건물은 무도회장으로서 손색이 없었지만, 테오 거리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건물이었다.
그 건물을 포기하고 길 건너편의 건물들을 살펴보고는 있었지만, 매번 거리를 지나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몇 배의 가격을 부르든 팔기만 한다면 꼭 사고 싶어 애가 타는 태오였다.
그런데 지금 2~3배도 아니고 원래 시세대로 주겠다고 하니 마음이 혹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내가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건지 이상한가요?”
“네,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동안 절대 파시지 않는다고 하셔서요.”
“그만큼 나로서는 급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조건의 손녀 사윗감을 구해보려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쉽지 않았죠.”
“어떤 조건이길래…?”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윗감을 찾길래 이러나 싶었다.
공작부인이 담담하게 조건을 읊었다.
“귀족 명부에 올라간 작위가 있거나 받을 예정이어야 하고, 지참금이나 돈에 욕심이 없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내 손녀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 그런 신사여야 합니다.”
마지막 대목이 이상했다.
“손녀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다니요?”
“부모를 모두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너무 곱게 자라다 보니 너무 제멋대로의 성격으로 자랐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방탕하고 난잡한 인생을 살까 현재로서는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에요. 그런 손녀를 꽉 붙잡아 줄 심지 있고 강인한 성품의 젊은이가 필요합니다. 대신 내 손녀를 사랑해서 돈을 한 푼도 원하지 않는 그런 신사 말입니다.”
태오는 자꾸만 돈을 강조하는 것도 이상했다.
이 시대에서 지참금의 요구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브룩 모건의 말에 따르면 공작부인은 엄청난 재력가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지참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지참금을 주지 않겠다고 조건을 거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돈만을 목적으로 사기 결혼을 하려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그런 건 저희가 검증해 드릴 수 있습니다.”
“후후. 나 역시 누구보다 철저한 검증을 거쳤지만, 뒤통수를 맞았죠.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공작부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자세한 사정을 들어봐야겠는걸?’
태오가 자신의 중매 방식을 설명했다.
“혹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집안의 사연이나 당사자의 사정을 세세하게 듣고 그에 맞는 상대를 찾아주는 중매를 합니다. 그래야 서로의 성향을 알 수 있고, 서로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을 찾아낼 수 있거든요.”
“뭘 알고 싶으신 거죠?”
“손녀분의 자세한 성장 과정이나 부모님 얘기 등, 많은 것을 알수록 어울리는 상대를 찾기가 수월해집니다. 물론 여기서 들은 개인적인 사연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처음 겪는 일이었는지 공작부인이 헛웃음을 지었다.
“중매업자가 세세한 성장 과정을 듣는다니, 정말 소문대로 특이하긴 하군요. 그게 정말 좋은 상대를 찾는 데 도움이 되긴 하는 건가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많은 분이 만족하신 것 같습니다.”
공작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 집안에 나름의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부인이 할 수 없다는 듯이 외손녀의 부모 얘기를 꺼냈다.
“손녀의 아버지인 로버트 라일리 자작을 처음 봤을 때, 심성이 유하고 욕심이 없어 보였어요. 거기다 데릴사위로 들어오면서 마치 나를 친 어머니처럼 모시고 살 듯이 살갑게 행동했었죠.”
하지만 결혼 후 사위는 180도 돌변했다. 펑펑 돈을 써대며 도박과 술, 여자 문제로 하루가 멀다고 말썽을 일으켰다. 자작 작위도 알고 보니 가짜였다.
그렇게 사기꾼 사위로 인해 딸은 물론 공작부인의 속까지 하루하루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하지만 하나뿐인 딸과 외손녀를 봐서 어쩔 수 없이 참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위가 치명적인 전염병에 걸려 죽어 버렸는데, 자기의 하나뿐인 외동딸마저 그 병에 옮아 세상을 떠나버렸다.
공작부인은 졸지에 부모를 잃은 외손녀를 딸 키우듯 애지중지 키웠다.
불쌍한 마음에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것을 항상 최고로 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할머니 손에서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것이 화근이었는지, 외손녀는 점점 안하무인으로 행동했고, 사람들의 입에 안 좋은 얘기로 자주 오르내리곤 했다.
“이젠 머리가 커서는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뭐라고 해도 찬바람을 일으키며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리죠.”
공작부인은 외손녀를 정신 차리게 하려고, 또 자기 엄마와 같은 불행한 삶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괜찮은 신랑감을 물색했다.
이름 있는 매파를 총동원해 돈에 욕심 없고, 심지가 곧은 귀족 남자를 찾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버릇없는 손녀의 성격과 행동을 한 번에 고쳐 잡을 정도로 강인한 성향의 신사를 찾았다.
하지만 인정받을 만한 귀족의 작위를 가지고 돈 욕심도 없으면서, 손녀의 억센 성격까지 잡을 만한 남자를 찾는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 지참금을 거의 주지 않을 거라는 공개적인 선언이 있자, 대부분의 귀족은 손녀와 만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간혹 가다가 정말 돈에 욕심 없는 젊은 귀족 남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런 남자는 또 손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설사 조금 마음에 든다고 해도 손녀의 강한 성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많은 매파를 동원해 우리 손녀의 짝이 될 만한 남자들을 샅샅이 찾아보았죠. 하지만 지참금을 줄 수 없다는 조건이 들어가자 거의 대부분이 외면하더군요.
게다가 거친 성격의 손녀를 잡을 만한 더 강하고 훌륭한 성품의 귀족 집안의 남자를 찾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고요.”
프라이스 공작부인에게 외손녀는 죽은 외동딸의 남긴 유일한 혈육이라 더 애틋하고 절절한 것 같았다.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그저 내가 죽기 전에 손녀를 사람답게 만들어 좋은 가정을 이루게 해놓고 죽고 싶습니다. 그래야 죽어서 내 딸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을 것 아닙니까?”
내용을 정리한 태오가 수첩을 덮으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시간을 내서 방문하도록 하죠. 손녀분을 직접 만나보고 얘기를 들어봐야 하거든요.”
조금은 후련한 표정의 공작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요. 빠른 시간 안에 들러주세요. 그리고… 솔직히 큰 기대를 안 하고 왔는데, 직접 뵈니 작은 희망이 생기는 것 같군요.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