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126)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126화(126/217)
126화. 역사에 없던 반란
“군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니요?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였단 말인가요?”
벤담 제독이 침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윌리엄 하우 전 사령관입니다.”
“네? 하우 사령관이요? 그분이 어찌 그런 짓을… 그럼, 폐하가 계신 세인트제임스 궁도 그들 손에 넘어갔나요?”
“다행스럽게도 반란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성문을 걸어 잠가 궁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폐하께서도 당장은 무사하신 것으로 보이고요.”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 승인과 관련해 영국 국민의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으로 인해 불안정했던 정세가 안정되고, 앞으로 경제적 이익이 더 확대될 것이란 점에서 잘한 결정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연일 조지 왕을 연호하며 그 어느 때보다 인기가 치솟았다.
태오도 독립 승인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에 안심하면서 테오 스트리트를 완성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쿠데타라니.
무엇보다 태오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는 전혀 없었던 사건이다.
조지 왕의 새로운 선택과 함께 역사의 전개가 달라지면서 맞닥뜨린 대형 위급 상황이었다.
‘하우 장군의 쿠데타라면…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되는 거지?’
윌리엄 하우 장군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토머스 게이지 사령관이 해임되고 그 뒤를 이은 인물.
휘그당의 정치적 자산이자 군부 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군인이었다.
그는 여러 면에서 유능한 지휘자임은 틀림없었지만, 북아메리카 식민지 군과의 전쟁에서 강한 압박보다는 설득과 타협을 위주로 작전을 펼치는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다.
결국, 초반 압도적 전력에도 불구하고 북아메리카 식민지와의 전쟁을 조기에 끝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조지 왕은 자신의 지시를 무시하고 느슨하게 전쟁에 임한 하우 장군을 비롯한 식민지 전쟁 지휘관들을 대신과 귀족들 앞에서 맹비난했다.
“하우 장군을 비롯한 북아메리카 참전 지휘관들이 국왕 폐하의 공개적인 질타를 받고 자존심이 무척 상한 듯했습니다. 특히 전쟁 중에 술과 파티를 즐기느라 전쟁을 등한시했다는 비판에 자신들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대단히 억울해했죠.
폐하나 귀족들은 고국에서 편하게 앉아 이래라저래라 말만 했지, 실제 전장의 끔찍한 현실을 하나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인다고 분노했고요.
그러다가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겠다고 선언하자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식민지군에 백기를 든 것이 되고, 그 책임이 고스란히 목숨 걸고 싸웠던 자신과 군부에 돌아갈 것이라고 본 것이죠.”
본래 휘그당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우호적이었고, 하우 장군은 휘그당 소속이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그도 이번 북아메리카 식민지 독립을 반겨야 했다.
하지만, 전쟁을 실패로 이끈 하우 장군으로서는 식민지 독립의 책임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불편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로 독립 승인 시 군인으로서나 정치인으로서 앞길이 막혀 버린 상황이 돼버린다.
전쟁에서 지더라도 최소한 몇 년 더 끌고 가야 자신의 입지를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그를 쿠데타로 이끈 것이 아닌가 했다.
“거기다… 후-”
벤담 제독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 런던탑(Tower of London)으로 폐하의 최측근들을 있는 대로 잡아 가두는 중입니다.”
“네? 런던탑으로요?”
런던탑은 오래전부터 고위 관료나 중요 인사들을 잡아 가두는 감옥으로 유명했고, 실제로 이곳에서 정적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기도 했다.
“사실 제가 이곳까지 뛰어온 것도 샌더슨 경의 안위가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처형자 명단에는 샌더슨 경의 이름이 국왕 폐하 다음으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아마도 메이페어의 집에 있으셨다면 큰 화를 피하지 못했을 겁니다.”
켄싱턴에서의 일 때문에 집에 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 그나마 천운이었다.
“샌더슨 경? 이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게 될까요?”
“…….”
벤담 제독은 그동안 차원이 다른 혜안과 통찰력을 보인 태오에게 앞으로의 일을 묻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 있게 답을 할 수가 없는 태오였다.
이젠 태오도 알 수 없게 돼버린 불확실한 역사의 미래다.
“그런데 제독님께서는 반란군의 눈을 피해 오신 건가요?”
제독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함께 할 것처럼 행동하고서 급히 빠져나왔습니다. 아직은 제가 배신을 했다는 사실을 하우 장군도 모를 거예요. 저는 샌더슨 경의 의견에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전쟁을 끝내고 독립을 승인하는 것이 우리 영국에게도 옳은 길이라고 믿고 있고요.”
얼마나 갈등이 심했을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제독님께서는 두 번이나 제 목숨을 구해주셨군요.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샌더슨 경! 감사 인사는 아직 이릅니다. 일단 여기를 빨리 빠져나가야 합니다. 이곳으로 반란군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요?”
“네! 샌더슨 경은 식민지 독립을 설득한 인물로서 폐하 다음으로 제1순위 숙청 대상입니다. 언제 잡으러 올지 모릅니다. 밖에 비가 그치고 있으니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죠. 지금 반란군 처결 명단에 오른 대신들과 군인들이 템스강 아래쪽에 있는 램버스 궁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도 빨리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 * *
이랴- 이랴-
덜컹- 덜커덩-
켄싱턴 회사를 빠져나온 태오는 벤담 제독의 마차를 타고 템스강으로 달렸다.
그곳에 템스강을 넘어가기 위한 배가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2만 명에 달하는 반란군은 주로 조지 3세가 머물고 있는 세인트제임스 궁(St James’s Palace)을 중심으로 템스강 위로 진을 치고 있었다.
따라서 템스강을 건너 강 아래로는 아직 반란군의 힘이 미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반란군을 상대하기에 강 아래에 있는 램버스 궁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마차에서 내려 배를 타기 위해 템스강둑 근처로 가니, 멀리 정박해 놓은 작은 배가 보였다.
“저기 배가 있습니다! 어서 가시죠!”
“네!”
강둑의 잡초를 헤치며 바삐 배 쪽으로 움직이는데, 별안간 말발굽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따각- 따가닥- 따가닥-
타닥- 탁- 타닥-
그리고, 곧 요란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저기다! 저기 있다!”
“누구냐! 거기 멈춰!”
“누구냐고! 말해!”
“사격 준비! 사격 준비!”
“멈추지 않으면 쏜다!”
정신없는 외침에 태오와 벤담 제독이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따각- 따각- 따각-
말을 타고 있는 장교 하나가 태오와 벤담 제독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뒤이어 레드 코트를 입은 병사들이 횃불과 총을 들고서 태오와 제독을 빙 둘러싸듯 포위했다.
“누군데 이 밤에 강가로 가는 거냐! 사방에 퍼진 전단지도 보지 못했나? 허락 없이 강을 건너려는 자는 사살당할 수도 있어!”
반란군은 도시 곳곳에 수많은 전단지를 살포하면서 자기들이 런던을 손아귀에 넣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다녔다.
“어쭈? 그리고 넌 아군 표식인 빨간 띠도 안 차고 있었네? 이거 정말 수상한 놈들이잖아?”
장교는 살기가 번뜩이는 눈을 치켜뜨고서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갖다 댔다. 언제든지 베어버릴 기세였다.
그때 벤담 제독이 호통치듯 자신을 알렸다.
“자네 몇 연대 소속인가? 나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의 제1함대 벤담 제독일세!”
벤담 제독은 장교의 군복 레이스와 배지를 살피더니 곧바로 그들의 소속을 알아차렸다.
“배지를 보니 8연대 소속인가 보구만?”
말 위에서 거만하게 내려다보던 장교는 ‘벤담 제독’이라는 소리를 듣자 깜짝 놀라,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횃불에 비친 제독의 얼굴을 가까이서 확인하고서 바로 경례를 붙였다.
장교는 벤담 제독의 얼굴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 제독님이셨군요. 어두워 몰라 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밤에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그런 걸 내가 일일이 자네에게 보고해야 하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독님이 지나갈 거라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의심스럽기라도 하다는 소리인 겐가?”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벤담 제독이 옆에 있는 태오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여기 사복을 입고 있는 자는 내 부관일세. 이 부관과 템스강 아래쪽에 기밀 사항을 처리할 것이 있어서 급히 가고 있었네. 이건 시급한 기밀이라 내가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어.”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럼, 허가증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벤담 제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니, 이 사람이? 한시라도 빨리 기밀을 처리해야 하는 이 긴박한 때에, 장군인 내가 일일이 허가증을 끊으며 시간을 낭비하라는 건가? 하우 장군에게 물어보게! 그 친구와 의논한 일이니! 대신 늦어진 것에 대한 책임은 자네가 모두 져야 할 걸세!”
주눅이 든 장교는 몹시 당황한 눈빛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장교가 차려 자세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제독님! 어서 일 처리를 보도록 하십시오.”
자세를 낮춘 장교는 즉시 병사 둘을 불렀다.
“너희는 선착장까지 제독님을 엄호해 드려!”
“네! 알겠습니다!”
* * *
엄호를 받아 무사히 배를 탄 벤담 제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제독님께서 침착하게 잘 대처하셨습니다.”
“저들이 눈치채기 전에 어서 갑시다!”
“네, 제독님!”
배가 템스강 중간쯤 왔을 때 벤담 제독이 태오에게 넌지시 물었다.
“샌더슨 경은 앞으로 하우 장군이 어떻게 나오리라 예상하십니까?”
안 그래도 역사책에서 본 수많은 쿠데타를 떠올려 보고 있던 태오였다.
“하우 장군도 국왕 폐하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
“하우 장군 측은 최대한 빠르게 반란을 성공시키려 들 테고, 반대로 폐하께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반란을 제압하려 할 겁니다.”
“그거야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단순히 한쪽이 이기면 되는 싸움이 아니라, 누가 이기든 반드시 속전속결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라는 데 이 사태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당연한 듯 보이는 두 진영의 속내에는 각자의 다른 셈이 있었다.
군주의 지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주변 국가의 입장에서는 왕을 향해 반기를 든 하우 장군에 대해서 불편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고, 이 쿠데타가 길어진다면 주변국에게 침략의 명분을 줄 여지가 있게 된다.
따라서 하우 장군과 반란군 수뇌부는 될 수 있는 대로 신속하게 조지 왕을 처단하고, 허수아비 왕을 세워 나머지 충성파를 숙청하면서 쿠데타를 마무리 지으려 들 게 뻔했다.
반면, 조지 왕 입장에서는 반란군 무리를 진압하는 데 긴 시간이 지체된다면, 주변 국가나 식민지국에게 얕잡아 보이게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또 다른 전쟁에 휘말리거나 다른 식민지국들의 독립운동이라는 골치 아픈 일에 직면하게 될 염려가 있었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태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번 사태가 국왕 폐하나 우리 영국으로서는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벤담 제독이 의아해했다.
“좋은 기회라니요? 지금 2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세인트제임스 궁을 중심으로 에워싸고 있고, 런던 시내와 템스강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을 차단해 버렸습니다.
폐하도 지금 궁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신세이시고요.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이 어떻게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겁니까?”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독립 승인으로, 지금 폐하에 관한 관심이 유럽은 물론 전 세계 퍼져있는 영국 식민지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마치 식민지국의 힘에 눌려 독립시켜 준 약한 군주의 모습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죠.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영국 정규군이 무려 2만 명 넘게 런던의 중심부를 에워싸고 있고요.
말씀하신 대로 국왕 폐하가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이러한 때에 폐하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 막강한 반란군을 제압해 버린다면? 그러면 다른 국가나 식민지국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벤담 제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군요. 북아메리카 독립 승인으로 조지 왕의 지도력을 의심하던 주변 국가나 식민지들이 큰 규모의 반란군을 국왕 폐하가 제압해버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렇습니다. 강력한 군사적 도전을 이겨낸 군주라는 인상 자체만으로도 전쟁 억지력을 얻는 동시에, 다른 식민지의 반발을 잠재우고, 북아메리카와의 무역 등에서도 유리한 위치에서 교역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벤담 제독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말씀대로 빨리 진압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하우 장군과 그 무리가 이끄는 병력만 2만 명이 훌쩍 넘습니다. 세인트제임스 궁 안에 지키는 근위병이 있다고 해봐야 기마대를 포함하여 700여 명에 불과한데, 과연 방어할 수 있을까요?”
“현재 궁 안에는 근위병만 있는 게 아닙니다.”
“네?”
태오는 며칠 전에 조지 왕의 초청으로 궁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인트제임스 궁에 있을 행사를 위해 머무르고 있는 군대에 관한 얘기를 들었었다.
“지금쯤이면 왕실 근위병 외에도, 벤자민 프랭클린 북아메리카 대표와 함께 온 식민지군 300여 명, 그리고 조지 3세가 고용했던 헤센 용병 500여 명이 성내에 있을 겁니다. 행여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비밀리에 조용히 들어왔다고 합니다.”
특히 미독립 군은 게릴라 전투에 능하기로 유명했고, 헤센 용병은 용맹하고 잔인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물론 1,500여 명 정도의 병력으로 13배가 넘는 반란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성안에서 버티면서 지원군을 기다린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사실이라면, 세인트제임스 궁은 어느 정도 방어가 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독님, 이곳에서 더 왼쪽으로 들어가면 하운슬로 막사가 있지 않습니까?”
하운슬로 막사 (Hounslow Barracks)는 1688년의 명예혁명 이후 상비군의 필요에 대한 응답으로 17세기 후반에 설립된 부대로, 런던 서쪽으로 한참을 가면 있었다.
이들은 외부침입 방비는 물론 내부 봉기에서 런던을 지키기 위해 기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속 타격부대였다.
“네, 있긴 하지요.”
“제가 알기론 그들은 런던 시내의 지리도 상당히 잘 알고, 시가지 전투에도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들도 이제 소식을 들었을 테니 곧 도우러 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지금 당장 저렇게 많은 반란군이 런던 입구를 막고 있다면 하운슬로의 부대가 출정한다 해도 쉽사리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 겁니다.”
태오도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독님. 지금 우리에게 지원군 말고 꼭 필요한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지원군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그게 누굽니까?”
“토마스 르웰린 경입니다.”
벤담 제독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르웰린 경이라면 유명한 건축업자가 아닙니까? 지금 같은 긴박한 비상시기에 건물을 건축할 것도 아닌데, 왜 르웰린 경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르웰린 경은 단순한 건축업자가 아닙니다. 미로와 같은 런던 지하 거리와 하수도, 지하 통로 등을 세밀하게 설계했던 크리스토퍼 렌 경의 수제자였으니까요.
르웰린 경의 도움을 받아 지하 통로를 이용해 중심부로 침투하여 반란군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황한 반란군들이 중심부로 모여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런던으로 들어오는 경비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두 눈을 껌뻑이며 얘기를 듣던 제독이 손뼉을 치며 대꾸했다.
“아! 그러니까, 하운슬로 막사의 병력이 허술해진 틈을 뚫고 들어올 수 있게 해보자는 그런 말씀인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하운슬로뿐만 아니라 남부 지역의 페인 장군과 북부의 몬테규 백작도 소식을 듣는 대로 올라오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적은 병력으로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지하 통로가 필요하고요.
다행스럽게도 런던의 도시 설계에 관여했던 주요 사람들은 템스강 아래쪽에 살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르웰린 경을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태오의 수에 벤담 제독은 탄복한 눈빛이었다.
“오-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배에서 내리는 대로 제가 바로 다녀오죠.”
* * *
태오와 벤담 제독은 무사히 템스강을 건너 램버스 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램버스 궁은 영국 성공회의 수석 주교이자 주요 지도자인 캔터베리 대주교의 주요 거처이기도 했다.
템스강을 넘어올 때 들었던 벤담 제독의 말에 따르면, 당분간 이곳이 반란군에 대항하기 위한 정부군의 임시 지휘통제실 역할을 할 모양이었다.
램버스 궁 입구에 이르자 주변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벤담 제독이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을 따라서 들어가 계세요. 전 샌더슨 경이 말씀하신 르웰린 경을 데리러 다녀오겠습니다.”
“네, 조심하십시오.”
벤담 제독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샌더슨 경이시죠?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테오는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램버스 궁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덜컹-
병사가 그레이트 홀의 문을 밀고 들어가자, 탁자 위에 펼쳐진 커다란 영국 지도 옆으로 적지 않은 대신과 귀족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샌더슨 경!”
“아-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허허.”
그레이트 홀 안 여기저기서 익숙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인텔리젼스 클럽 회원이기도 한 귀족들은 태오의 손을 붙들고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평소 못마땅해하던 대신이나 귀족들까지도 진심으로 태오가 살아있음에 안도하고 반가워했다.
이곳 램버스 궁에 숨어있는 사람 대부분은 반란군 처결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
언제 런던탑으로 끌려가 처형을 당할지 모를 운명이었다.
삶과 죽음이 경각에 달린 긴박한 시기.
천재적 지략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태오의 등장은 이들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큰 위안을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