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13)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13화(13/217)
13화 사라지지 않는 미소
렌드먼드 백작 부인과 아는 사이라는 소리에, 토마스 클라크 부부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아···아니. 자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자네가 어찌 렌드먼드 영부인을 찾아뵈었다는 거야? 내가 아는 영부인님은 말이야, 자네 같은 사람이 알고 있을 만한 그런 수준의 분이···”
“오른쪽 귀밑으로 큰 점이 두 개 있지 않으십니까? 참, 턱 오른쪽에도 작은 점이 있으시고요.”
대니얼 버크 경이 영부인의 정확한 신체 특징까지 묘사하자 토마스 부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부부의 표정에 버크 경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표정을 보니 맞나 보군요. 사실 렌드먼드 영부인께서는 저희 아버지의 먼 친척 되십니다. 백작 부인이 되시기 전에 우리 집과 가까이 살아서 왕래가 잦았었죠.”
토마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뭐라고? 친척? 그게 정말인가?”
“네. 그리고 아주 재밌는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
“사실 영부인께서 작년에 영지의 관리감독관 자리가 비게 되었다고 저희 형제에게 그 일을 권유하셨거든요. 형은 극구 사양했습니다. 저 역시 사양했었고요. 저나 형이나 그런 큰 영지의 감독관 일을 제대로 수행할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였죠.
그래서 다른 분을 모시는 게 좋겠다는 말을 영부인께 드렸었는데, 그게 바로 토마스 클라크 경이였다니. 하하-, 참. 이런 인연이 다 있네요.”
태오의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피어났다.
21세기에도 그렇지만, 18세기에서 인맥의 힘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백작처럼 많은 권력을 가진 이들은 토지나 농장 경영권은 물론 각종 임명권도 함께 가지고 있어 자기 마음에만 든다면 후원의 명목으로 땅이든 직위든 무엇이든 나눠줄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사람이 그 인맥의 끈을 잡기 위해서 권력자에 빌붙어 지냈는데, 토마스도 그런 자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토마스에게 인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렌드먼드 영부인의 친척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먹잇감을 확인하러 기세 좋게 들이닥쳤던 토마스 부부는 스스로 호랑이 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 여우 꼴이 돼 버렸다.
토마스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끄응···.”
보이지 않는 칼자루를 멋대로 휘두르던 토마스 부부의 기세는 순식간에 역전이 되고 말았다.
그 칼자루는 어느새 대니얼 버크 경의 손에 꼭 쥐어져 있었다.
버크 경은 침대에 누워있는 클라크 남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영부인께 듣기론 관리감독관의 자리가 어디냐에 따라 그렇게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토마스 클라크 씨가 맡게 되는 지역은 여건이 굉장히 좋다고 들었습니다.”
“오, 그런가?”
“네. 하지만 형이나 저는 그런 큰 직책을 맡아 본 적도 없고, 영지 전체를 관리하고 감독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 극구 사양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이렇게 아버님의 조카분에게 돌아가게 됐다니, 이보다 더 은혜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클라크 남작도 고개를 끄덕이며 토마스를 쳐다봤다.
“그러게나 말일세. 영부인께서 그런 큰 후원을 해주시다니, 토마스 자네는 참 복도 많네, 그래.”
“아···네. 그···그렇죠.”
버크 경이 토마스를 향해 홱 돌아섰다.
“제가 알기론 관리감독관에게 주어지는 집도 대단히 커서 런던에 웬만한 저택보다도 더 규모가 크다고 들었는데요? 아닌가요?”
토마스는 억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못했다.
그런 토마스의 모습에 태오가 속으로 비웃었다.
‘후후···토마스 클라크가 버크 경에게 강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군.’
두려움은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무언가에 대비하기 위해 나타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숙부인 클라크 남작이 죽고 나면, 숙부의 남겨진 딸들은 토마스에게 처리하기 손쉬운 대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첫째 딸이 데리고 온 예비 사위라는 놈도 행색을 보아하니 크게 다를 바 없는 상대라고 여기고 업신 여겼다.
반면, 렌드먼드 영부인은 토마스가 주님보다 더 숭배해야 할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영부인의 친척이라는 자가 예비 사위로 나타났으니, 토마스 클라크가 느끼는 두려움은 실로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는 숙부가 세상을 떠나는 즉시, 다섯 딸을 당장 다 내쫓고 집을 수리해 임대를 낼 작정이었다.
자신은 어차피 렌드먼드 영부인이 후원한, 여기보다 훨씬 더 크고 좋은 집과 땅이 있었다. 그리고 백작 재산의 관리·감독 관리로서 대접도 받을 수 있다.
“자네, 방금 뭐···뭐라고 물었지?”
“영부인님이 하사하실 집이 굉장히 좋은 곳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더는 웃고 있지 않은 대니얼 버크 경이었다.
미소가 사라진 버크 경의 차가운 얼굴은 토마스에게 경고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저놈이 영부인에게 달려가서, 내가 남작이 죽자마자 집을 빼앗고 그 딸들을 전부 내쫓으려 한다는 얘기를 전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흐르는 토마스였다.
이 시대에서 평판과 소문은 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하물며 백작의 가장 중요한 재산을 살피는 관리감독관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지금의 관리감독관 자리를 얻기 위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었던가?’
토마스는 렌드먼드 영부인 앞에서는 죽는시늉까지도 했었다.
영부인은 토마스를 도덕적이고 인정 많은 사내로 여기고 관리감독관의 자리까지 내주었다.
그런데 저 숙부의 예비 사위란 놈이 여기서 벌어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순간, 격노한 영부인의 명으로 어렵게 차지한 명예와 부를 모두 거두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토마스는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를 궁리했다.
이 저택과 토지도 꽤 돈이 나온다지만, 영부인이 후원해주는 영지의 관리·감독 관리로서 누리는 혜택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정신 차리자! 여기서 망설이면 끝이다. 당장 이 자리에서 인정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해져.’
설사, 저놈이 오늘 바로 영부인에게 달려가 나쁜 말을 전한다고 해도, 이 자리에서 확실한 뭔가를 보여주면 충분한 변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하지만 지금 즉시 이행해야 했다. 그래야 예비 사위라는 놈의 착각이었다고 반격할 수 있다.
목소리 톤을 한껏 낮춘 토마스가 남작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험-험, 숙부님. 제가 사실 오늘 이렇게 연락도 없이 숙부님을 찾아뵈러 들른 것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였습니다.”
“그래? 나한테 할 얘기라니, 그게 뭔가?”
클라크 남작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토마스를 주목했다.
“험험-. 저는 상속법상 정당한 상속인으로서 앞으로 이 집과 토지에 대한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권한에 대해 확실한 제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급히 찾아온 것입니다.”
“····?”
“저는 이제 곧 백작님의 영지 관리감독관으로 일을 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백작님이 내리시는 많은 혜택뿐만 아니라 좋은 집도 있으니 이 저택이나 토지는 제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집을 여기 어린 사촌 여동생들이 앞으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임대할 생각입니다. 최소한 모든 아이가 결혼해서 이 집을 떠날 때까지라도 말입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토마스 부인이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 당신! 미쳤···아악-!”
꽉-
토마스는 끼어들려던 부인의 발을 힘껏 밟아 누르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실 지난번에 건축가를 대동해 이곳저곳 살펴본 것도, 앞으로 오랫동안 이 집에서 지내야 할 아이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거고요. 참, 물론 토지에서 나오는 수확물도 모두 다 생활비로 충당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
클라크 남작과 다섯 딸이 깜짝 놀란 눈으로 토마스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때 버크 경이 웃으며 의견을 건넸다.
“토마스 클라크 경. 여기 아가씨들께서는 책 읽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기왕에 집을 개량해주시기로 했으니, 근사한 작은 도서관도 하나 만들어 주었으면 하네요.”
“으···응?···그···그래, 아하하···그거···좋은 생각이구만.”
버크 경이 클라크 남작에게 말했다.
“아버님, 제가 이 은혜로운 현장을 그대로 렌드먼드 영부인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다음 주에 제 결혼식 초대를 위해 직접 영부인을 찾아뵐 예정이었거든요. 원체 인정 많으신 분이라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시면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쐐기를 박는 대니얼 버크 경의 말이었다.
그의 말은 법적 효력이 있는 두꺼운 계약서 다발보다 토마스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클라크 남작이 손뼉을 치며 응수했다.
“그래, 그래. 꼭 그렇게 해주게. 꼭 영부인께 우리 토마스의 온정을 자랑해주게나. 어찌 이렇게 기쁜 일이 있을 수 있겠어? 허허.”
한껏 들떠 들어왔던 토마스 부부는 침울해져 있었고, 반대로 남작 가족들은 큰 기쁨에 차 있었다.
다섯 자매는 오랜 시간 정들었던 집을 떠나 힘든 생활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사라졌고, 클라크 남작은 자신이 죽은 후, 오갈 곳이 없어질지 모르는 딸들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게 되었다.
‘후후. 영부인이 버크 경의 친한 친척이였다니. 그저 성향이 잘 맞는 두 사람을 연결해준 것뿐인데, 이렇게 운명처럼 일이 잘 풀려가는구나.’
태오는 어깨가 축 처진 채 걸어 나가는 토마스 부부의 뒷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 한 달 뒤.
1776년 모처럼 따뜻한 2월 말.
대니얼 버크와 사라 클라크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한 시골 별장에서 조촐하게 진행됐다.
메리엔 렌드먼드 영부인은 버크 경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크게 기뻐하며, 자기 소유의 별장 하나를 빌려주어 결혼식을 올리게 했고, 비용의 상당 부분을 대신 부담했다.
결혼식장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온 클라크 남작을 비롯해 많은 지인이 참석했다. 물론 결혼의 일등 공신 태오도 함께였다.
결혼식에 참석한 토마스 부부는 렌드먼드 영부인이 버크 경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행여나 자신들의 행실이 알려질까 노심초사했다.
즐겁고 행복한 결혼식 막바지.
오늘의 주인공인 사라와 대니얼 단둘이 손을 맞잡고 무대 한가운데에 올라섰다.
그리고, 감미로운 연주에 맞춰 서로의 눈을 응시한 채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
사랑스러운 딸과 사위의 모습에 클라크 남작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쳤고, 여동생들은 큰 언니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행복한 앞날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
5일 뒤.
로버트 클라크 남작의 침실.
클라크 남작의 침대 주위로 다섯 명의 딸들이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아버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침대 아래쪽에는 집안의 집사와 하인들, 그리고 태오를 비롯한 캐링턴 경, 몬슨 자작 등 십여 명의 지인들이 슬픔 가득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아버지.”
무릎을 꿇은 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남작을 불렀다.
클라크 남작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우리 큰딸. 결혼식 날 정말 천사처럼 아름다웠어···. 이 아비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흑-, 아버지···.”
클라크 남작은 책 읽기를 좋아했고, 자신이 죽는 그 순간에도 책을 읽고 싶다고 늘 말해왔었다.
그것을 기억한 딸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날, 예전에 행복했던 시절에 그러했듯 모두 모여 책을 읽어 주기로 결심했다.
눈물을 닦은 사라가 둘째 엘리자베스에게 눈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엘리자베스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작이 평소에 가장 좋아했던 로크의 ‘인간 지성론’의 일부였다.
“지성의 기능은··· 순전히 사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인도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흐흑-, 인간이 자신을 인도함에 있어서 기대는 마지막 의지처는··· 그의 지성이다. 으흐흑.”
엘리자베스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자 클라크 남작의 입술도 함께 따라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조용한 흐느낌이 침실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마지막 의지처’라는 대목에서는 다섯 딸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흘러내렸다.
“대니얼···대니얼···”
숨이 가빠진 클라크 남작이 사위의 이름을 불렀다.
“네, 아버님.”
대니얼 버크 경이 급히 침대로 다가가자 남작은 마지막 힘을 짜내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가냘픈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뗐다.
“대니얼, 난··· 자네가 자랑스럽네. 고마워··· 내 사위가 돼 줘서. 내 딸과··· 내 보석 같은 아이들··· 부디···불쌍히 여겨 내 대신··· 꼭 좀 살펴주게··· 내 하늘에 가서도···그 고마움을··· 절대 잊지 않을 걸세.”
“걱정 마세요, 아버님. 제가 아버님 대신 끝까지··· 끝까지 처제들을 책임지겠습니다.”
입을 살짝 벌린 남작은 더는 말할 기운이 없는지 허공을 잠시 바라보다, 침대 아래에 서 있던 지인들을 한 명, 한 명 쳐다보며 보일 듯 말듯 눈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오와 눈이 마주치자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입술을 달싹였다.
태오는 고개를 숙여 정중히 예의를 표했다.
잠시 후···
“아버지! 아버지!”
“으아앙!”
“아빠! 안 돼!”
“주인님! 으흐흑-”
큰딸 사라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친 닷새 뒤.
로버트 클라크 남작은 사랑하는 딸들과 사위, 지인들에 둘러싸여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여기저기서 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사라는 주저앉아 구슬피 통곡했다. 버크 경은 그런 아내를 옆에서 꼭 안고 위로했다.
8살 막내딸은 자꾸만 아버지의 가슴을 파고들려 했고, 하녀들은 눈물을 삼키며 그런 막내딸을 떼어내느라 고생했다.
주변의 큰 슬픔 속에서 태오의 눈은 클라크 남작의 입꼬리에 머물렀다.
남작을 처음 보았을 때, 그의 미소는 걱정과 불안에 파묻혀 금방 사라졌었지만, 오늘은 마지막 순간까지 희미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가슴 속의 큰 걱정이··· 이제 다 사라지셨구나. 정말 다행이야.’
시한부 판정을 얻고 난 후, 남작의 마음을 항상 억누르고 있던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미소 지은 채 두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지막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 한 사람의 마지막을 조금이나마 행복한 마음으로 떠나보낼 수 있게 한 것에 대해 태오는 진심으로 신께 감사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