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131)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131화(131/217)
131화. 감동받은 조지 왕
◈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정부군 거점.
연대장실.
소령이 태오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템스강 부두와 런던 주요 길목을 지키던 하우 장군의 병력이 페인 백작의 병사들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습니다.”
“하우 장군이 이제 본격적으로 나서려고 하나 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하우 장군은 그동안 방어에 투입됐던 병력을 모두 집결시켰다.
조지 왕과 태오가 이끄는 정부군을 공격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반란군의 공세는 더욱 집요하고 거세졌다.
반면 정부군의 사기는 단숨에 꺾여 버렸다.
몬태규 백작마저 하우 장군 편으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불길한 예측까지 나돌았다.
상황은 점점 조지 왕과 정부군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탕- 타당-
탕탕-
총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어지럽게 골목을 울렸다.
타다닥- 탁-
헉헉-
태오는 다섯 명의 저격수들과 코번트 가든의 막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침투조를 지원하고 철수하는 길에 반란군에게 쫓기게 된 것이다.
앞장서서 달리던 조장이 사색이 되어 돌아섰다.
“연대장님! 길이 없습니다!”
빼곡히 집들이 들어서 있는 골목길이었지만, 모두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창문의 커튼마저 쳐져 있는 상황.
하필 지하 통로와 연결되는 하수구 하나 없는 지역이었다.
타닥- 탁- 탁-
반란군의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이제 곧 그들이 들이닥치면 목숨을 걸고 교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저격조들이 서둘러 화약을 채우며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다.
그런데, 태오는 총을 잡는 대신 앞에 보이는 집으로 달려가 마구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이보세요! 정부군입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두껍고 단단한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대장님! 소용없는 짓입니다. 절대 열어주지 않을 겁니다.”
지금 문을 열어 정부군을 도왔다가는 반란군에게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몰랐다. 목숨을 뺏길 수도 있는 위험한 짓을 누가 감히 나서서 하겠는가.
그래도 태오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의 교전은 개죽음을 의미했다.
쾅- 쾅-
“부탁합니다! 반란군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딸칵- 덜컹-
바로 옆집 대문에서 쇠뭉치 풀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대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끼익-
그리고 머리가 반쯤 벗어진 중년 남자가 얼굴을 불쑥 내밀어 태오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들어오시오! 어서요!”
천국의 문이 열린다면 이런 기분일까?
“네, 네! 어서 빨리 들어가! 어서!”
태오의 외침에 일전을 준비하고 있던 저격병들이 허겁지겁 총을 챙겨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문이 걸어 잠겼다.
철커덩- 쾅-
곧 급박한 발소리가 골목 안을 채웠다. 정부군을 쫓고 있던 이십여 명의 반란군이었다.
타닥- 탁 -탁
탁탁- 타닥-
“어? 중대장님! 없습니다. 분명히 이 막다른 길로 들어갔는데요?”
“주위에 또 무슨 비밀 지하 통로 같은 게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없습니다. 여긴 하수관도 없는 곳입니다!”
“그럼, 여기 있는 집 중 하나로 숨어 들어간 건가?”
“저번에도 수색에 협조해 주지 않아서 애를 먹지 않았습니까? 분위기상 주민들이 절대 열어주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할까요? 그래도 확인해 볼까요?”
잠시 고민하던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 집에 숨어들어 간 것이 확실하다! 문을 열고 한 집씩 다 수색해! 만약 허튼짓하거나 거부하면 죽도록 패버려. 책임은 내가 진다!”
“네! 중대장님!”
대위의 명령에 반란군 병사들이 흩어져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집의 문을 두드렸다.
쾅- 쾅-
“문 열어! 당장 문 열라고!”
그런데 그때 누군가 다급히 대위를 찾았다.
“중대장님! 여기 보십시오! 여기 구멍이 있습니다!”
“구멍?”
중사의 외침에 대위가 달려갔다. 정말 돌담 아래로 깊게 뚫린 작은 구멍이 보였다.
“놈들이 이곳으로 빠져나간 것 같은데요?”
하지만 구멍을 살펴본 대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도 못 빠져나갈 것 같은 이런 작은 곳을 5~6명이 어떻게 빠져나갔다는 거야?”
“아닙니다! 여기 보면 군복으로 보이는 천 조각도 찢어져 있고, 사람이 빠져나가 쓸린 자국도 보입니다.”
무릎을 꿇고 열심히 구멍을 살피던 중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중대장님! 구멍 방향 쪽으로 가면 사령관실이 있는 거 아닙니까?”
대위가 담 너머를 살피더니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젠장, 그러네! 우리가 또 속았어! 놈들이 우리를 여기로 유인하고 사령관실로 가려 했던 모양이야! 빨리, 빨리, 돌아서 나가! 빨리! 하우 장군님이 위험하시다!”
“네!”
안 그래도 정부군의 총탄에 5연대장이 사망하면서 반란군 측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구멍이 향한 방향은 하우 장군이 머무는 사령관실과 일직선이었다.
집안을 수색하려던 반란군은 재빨리 돌아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 * *
쓰윽-
밖의 동정을 살피던 에드윈 홈즈 씨가 조용히 커튼을 닫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바닥의 양탄자를 걷어 지하실로 연결되는 통로의 덮개를 위로 당겼다.
덜컹- 끼이익-
“다행히 반란군이 모두 돌아갔습니다. 이제 올라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태오를 비롯한 다섯 명의 병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다리를 타고 거실로 올라왔다.
태오는 홈즈 씨에게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아찔할 뻔했습니다.”
뒤에 서 있던 병사들도 홈즈 씨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도 국왕 폐하의 국민이자 정부군의 적극 지지자입니다. 반란군 놈들, 우리나라를 망쳐버릴 작자들이죠.
아 참, 내 정신 좀 봐. 놀라셨을 텐데 차라도 한잔들 하시죠? 지금 바로 나가면 아무래도 위험할 테니까요.”
“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홈즈 씨는 런던의 코번트 가든 시장에서 촛대를 만드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쟁 전에는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비롯한 카리브해의 식민지, 유럽 대륙의 국가 등에 수출하면서 꽤 먹고 살 만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전쟁이 계속되면서 판매량이 떨어져 고생하다가, 최근 북아메리카 식민지와의 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사업을 접어야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서 필요한 물자를 사고팔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같은 무식한 사람들이야 정치적으로 뭐가 득이 되고 실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도 다 먹고 살아야 따질 수 있는 거잖아요?”
“네, 그렇죠.”
태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촛대들이 유달리 많았고 그 모양도 각양각색이었다.
작은 규모의 공장이라지만, 그동안 흔하게 보아왔던 촛대와 달리 고급스럽고 튼튼해 보이는 것이 기술이 제법 좋은 듯했다.
그때 벽 한편에 걸려있는 파란색의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태오의 눈에 들어왔다.
‘웨딩드레스…?’
백색의 웨딩드레스는 19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인기를 끌면서 대중화가 된다.
이 당시에는 순결을 상징하는 파란색이 인기 있는 웨딩드레스의 색깔이었다.
웨딩드레스 아래에는 고급 가죽으로 만든 예식용 여성 신발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따님이 결혼하시나 봅니다?”
태오의 물음에 홈즈 씨가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사실 결혼식이 며칠 전으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망할 놈의 반란군이 난리를 피우면서 결혼식도 못 올리고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그놈들이 쏜 포에 결혼식 장소로 어렵게 구한 예배당 벽이 다 허물어졌고요. 에이- 썩을 놈들 때문에 이 사태가 끝난다 해도 결혼식이나 제대로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속이 무척 상해 보였다.
없는 형편에 딸의 결혼을 위해 큰맘 먹고 준비를 했던 것 같았는데, 하필이면 시기가 안 맞아서 큰돈만 날리고 다 망쳐버린 것이다.
“제가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갚을까 하고 고민했는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네? 기회라니요?”
“혹시 켄싱턴에 있는 테오 결혼식장을 아십니까?”
홈즈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에 딸 결혼식을 올린다고 여러 곳을 알아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결혼하려는 집안이라면 돈이 있는 없든 죄다 줄 서서 기다린다는 곳 아닙니까?”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테오 결혼식장은 벌써부터 유명해져 있었다.
영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부대시설.
하지만 말도 안 되게 저렴한 비용 때문에, 오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약이 끝도 없이 밀렸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순서가 아니면 이용할 수가 없는 곳으로 금세 소문이 났다.
시설과 가격에 혹했던 홈즈 씨도 몇 번이나 예약해 보려 했으나,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 일찌감치 포기한 곳이었다.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이번 반란 일이 잘 마무리되면, 테오 결혼식장과 의상실, 피로연을 위한 무도회장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태오의 제안에 홈즈 씨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약이 되어야 누릴 수 있는 곳인데, 저희는 예약조차 못 한걸요?”
“네, 평소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반란군의 사정으로 모든 예약이 전부 취소돼 버린 상황입니다. 반란이 수습되고 안정되면 다시 처음부터 예약을 조정해야 할 겁니다. 뒤로 미루거나 아예 취소해 버리는 경우도 많을 거고요. 반드시 적절한 자리가 생기게 될 겁니다. 제가 그 자리에 넣어드리도록 하지요.”
홈즈 씨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아, 혹시 선생님께서 잘 아시는 분이 그 테오 결혼정보회사 관계자이신가 보군요?”
홈즈 씨의 말에 옆에 있던 조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아니요. 잘 아시는 분이 아니라, 여기 계시는 연대장님이 바로 그 테오 샌더슨 경이십니다. 테오 결혼정보회사의 대표님이시죠.”
순간 멍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는 홈즈 씨였다.
홈즈 씨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연대장님께서 바로 그 유명한 테오… 샌더슨 경이라는… 그런 얘기이신 겁니까?”
태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제가 테오 샌더슨입니다. 하하.”
홈즈 씨의 놀란 입이 한참 동안 다물 줄을 몰랐다.
◈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정부군 거점.
늦은 밤.
연대장실에 태오와 각 조장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한없이 무거운 공기가 방 안을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몬태규 백작님이 이끄는 부대는 빨라야 3일 후에나 도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니, 왜 3일이나 더 걸린다는 겁니까? 비상사태가 터지면 즉각 내려와 지원해야 하는 부대가 이렇게 뭉그적거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죠?”
“페인 백작처럼 반란군에 붙을까 고민하느라 이렇게 늦는 거 아닐까요?”
“그러면 정말 끝장인 거죠.”
페인 백작이 반란군 편에 서면서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어렵사리 점령했던 코번트 가든까지 모두 다시 뺏긴 상황.
이제 거점인 웨스트민스터 사원만을 힘겹게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눈에 불을 켜고 지하 비밀 통로를 뒤지고 다니던 반란군은 템스강 주변에서 지하 통로의 입구를 찾아내 폭발시켜 버렸다.
이제는 꼼짝없이 적진 한가운데에 갇혀버린 꼴이 된 정부군이었다.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폐하가 계신 세인트제임스 궁으로 향했던 포 상당수가 웨스트민스터 사원 인근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내일 우리 쪽에 대한 총공세가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태오가 소령의 보고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이 유서 깊은 사원을 박살 내기로 결정했나 보군요.”
애초 태오의 계획은 지원군으로 가장 먼저 도착하는 페인 백작의 부대와 합치고, 이후 도착하는 몬태규 백작의 부대와 결집해 대반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페인 백작이 반란군과 손을 잡게 되면서, 이제 템스강과 다리, 그리고 각 도로는 한층 전력이 더 강화되었고, 임시 지휘통제실인 램버스(Lambeth) 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비밀 통로까지 막혀버린 상황.
이런 상황에서는 몬태규 백작의 2만여 명의 부대가 온다고 해도 4만에 육박하는 반란군에게 대적하기란 역부족이었다.
탄알과 식량 등도 이제 이틀을 넘기기가 힘들다.
정말 첩보대로 내일 총공세가 펼쳐진다면 오늘이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었다.
태오가 각 조의 조장들을 바라보며 무거운 입을 뗐다.
“내일 반란군의 총공세가 시작된다면, 더 이상의 지휘는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대항하는 것이 작전의 전부가 될 것 같네요. 따라서 내일 06시를 기해, 모든 작전 명령은 각 조의 조장들에게 위임할 것입니다.”
한 침투조 조장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위임이라니요? 모든 부대원이 연대장님의 지휘에 힘을 얻어 버티고 있습니다. 끝까지 저희를 지휘해 주십시오!”
태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공세가 시작되면 자리를 지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작전이 없습니다. 제 지휘를 받을 수도 없고요. 그리고 내일 저 역시 저격조들과 함께 저격수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포사격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도록 말이죠.”
“연대장님! 저격수라니요? 너무 위험합니다. 연대장님이 굳이 그렇게까지 나서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격수가 한자리에서 지속하여 포사격을 방해하면 그 위치가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
발각을 피하려면 그 위치를 계속 바꿔야 하지만,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저격수가 또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반란군에게 그 위치가 노출되면서 공격을 당해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연대장이 가장 위험한 곳에서 총을 들어야 부하들도 따르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퇴로가 모두 막힌 상황입니다. 집중 포격이 시작되면 어디에 있든 위험하기는 모두 마찬가지일 거고요.”
태오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희생하려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21세기 현대 문명에서 살다 넘어온 사람에게서 어떤 대단한 신념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저 당장은 이들을 이끌어야 하고, 여기서 목숨을 내걸고 앞장서지 않는다면 그동안 열심히 자기를 따라주었던 부하들이 느낄 좌절감이 안타까웠다.
거세게 흘러가는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돛단배처럼, 그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감동적인 영웅들의 일화도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 휩쓸린 결과물에 불과한지도 몰랐다.
◈ 세인트제임스 궁(St James’s Palace)
같은 시각.
조지 왕이 마일스 제너 국무장관의 이야기를 담담히 듣고 있었다.
“……그렇게 샌더슨 경은 직접 저격수 역할까지 자청하면서 밤낮으로 괴롭혀, 지금 반란군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다는 정보입니다. 덕분에 폐하가 계신 이 궁전에 대한 공격을 저지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옵니다.”
국무장관은 첩보원을 통해 들은 정보를 조지 왕에게 소상히 고했다.
테오 샌더슨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소식이었는데, 그가 직접 부대를 이끌고 적진 한가운데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얘기는 놀라움을 넘어 조지 왕의 가슴에 적지 않은 감동을 안겼다.
2만에 달하는 병력임에도 성에 대한 공격이 생각보다 약하다고 여겨졌는데, 그것이 태오의 보탬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조지 왕이었다.
“아직도 샌더슨 경은 도망가지 않고 적진 한가운데서 버티고 있다는 말인가?”
“네,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동안 하우 장군의 은근한 회유와 설득이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자기 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살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높은 직위까지 준다고…”
“더러운 역적놈….”
“심지어 내일 반란군의 대대적인 포격 예고 선언과 항복 요구가 있었음에도, 샌더슨 경을 중심으로 한 800여 명의 정부군은 국왕 폐하의 이름을 외치며 단 한 명도 항복하지 않고 의연히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고작… 800명이 4만에 가까운 적진 속에서, 짐과 조국을 위해 죽음으로 맞서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들이…그들이 진정한 충신들이로다!”
페인 백작의 변절 소식을 듣고 깊은 충격에 빠졌던 조지 왕이었다.
이쯤 되면 태오가 도망을 간다고 하더라도 아무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음에도 도망은커녕 목숨을 걸고 항전태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에 울컥함까지 밀려왔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조지 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이런 큰일을 겪고 보니… 이제야 그동안 누가 나의 충신이고, 누가 이 영국을 해하려 들었는지 명명백백해지는구나. 국무장관! 몬태규 백작은 도대체 언제 도착한다는 건가?”
난감한 표정의 제너 장관이었다.
“그것이… 내려오던 중간에 비가 많이 와 이동에 문제가 생기면서 며칠 지체되고 있다고 하옵니다.”
“허- 하늘도 날 돕지 않는다는 말인가! 한시가 급한 마당에, 이리 답답할 수가….”
조지 왕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하는 대신들의 얼굴 역시 걱정과 답답함으로 어둡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