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145)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145화(145/217)
145화. 리오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 1주일 뒤, 개럿 공작의 타운하우스.
1780년 1월 중순의 늦은 저녁.
개럿 공작의 서재에는 앨런 법정변호사를 비롯해 사무변호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있을 최후 변론에 관한 논의였다.
“……무엇보다도 윌슨 변호사와 샌더슨 경이 리오 에드워즈가 진짜라며 일을 몰아붙이고 있다고 합니다.”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개럿 공작의 입가가 한쪽으로 슬며시 올라갔다.
“하긴, 지난번 법정에서 보니 리오가 진짜 공작가의 친손자인 줄 알고 떠받드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더군.
쯧쯧, 똑똑하다고 그렇게 잘난 척하던 샌더슨 경이 어쩌다가 그런 어린애의 어설픈 속임수에 넘어갔는지….”
앨런 변호사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공작님. 정말 딜런 경의 아들이 죽은 것이 확실합니까?”
“흥! 물어볼 걸 물어보게. 내가 몇 번이나 확인했던 사실이라니까? 진위 싸움을 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확실한 증거들이 북아메리카에서 도착할 테니 기다려 보라고.
뭐, 그러고 보니 샌더슨 경 덕분에 북아메리카와의 전쟁이 종식되면서 그것이 날 도와주는 셈이 되겠구먼, 후후.”
“그 증거가 일찍 도착했더라면, 이 소송은 볼 것도 없이 바로 이겼을 텐데요. 그것이 정말 아쉬울 뿐입니다.”
“작은 농장 하나 정도야 없어져도 그만이야. 그리고 리오가 가짜라는 사실만 밝혀진다면, 설사 퇴거 소송에서 패소한다 해도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으니 아무 문제 없는 일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중요한 건, 리오 놈이 사기꾼이라는 걸 확인해 줄 더 많은 증거와 증인을 모으는 일이야. 북아메리카도 전쟁을 하도 오래 겪은 터라, 원본 증거자료들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이번 재판도 봐봐.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결국 여론 재판이 돼버리고, 리오 놈이 값싼 동정심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넘어가지 않았나?
아무튼, 딜런 아들이 죽었다는 북아메리카 관계기관의 사실확인과 동시에, 지금 리오의 진짜 정체가 누구인지 밝혀줄 사람이 꼭 필요해.”
“딜런 경의 아들이 죽었다는 기록과 지금 리오 에드워즈의 진짜 신분이 밝혀진다면야, 정말 아무도 반박 못 할 확실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놈이 진짜 딜런의 아들이 아닌 이상, 어딘가에 놈의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일단 자메이카로 사람을 보냈어. 내 생각에 북아메리카보다 거기에 그놈 정체에 대한 단서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잘하셨습니다. 자메이카에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있었다고 하니, 그놈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이쯤 되고 보니, 저 역시 그놈의 진짜 정체가 뭔지 정말 궁금하네요.”
◈ 일주일 후, 런던 민사 법원(The Court of Common Pleas).
“더 이상 내놓을 증거가 없다면 이제 피고 측부터 최후 변론을 시작하시오.”
배심원단의 최종 평결이 내려지기 직전, 브라운 재판관은 피고와 원고에게 각각 최후 변론의 기회를 주었다.
피고 측 법정변호사인 앨런 법정변호사가 최후 변론을 위해 배심원단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대중들이 간사한 무리가 지어낸 얘기에 현혹되어 이 사건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는 믿습니다! 법정 밖에서 떠드는 그 어떤 거짓 선동에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호받아 오로지 확실한 증거와 믿음으로 정의로운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퇴거 소송 재판이 끝난 후 2주 동안, 여론은 리오 에드워즈 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었다.
퇴거 소송이 떠들썩하게 진행되면서, 로건 작가의 소설이 더 크게 주목받고 널리 읽힌 탓이었다.
앨런 법정변호사도 이러한 여론의 추이를 잘 알고 있었다.
배심원단 앞에서 이성과 명확한 증거에 관한 이야기를 강조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앨런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끝나고, 윌슨 법정 변호사가 배심원단 앞에 섰다.
“에드워즈 가문의 유산에 대한 이 소송은 단순히 한 개인의 권리 찾기에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대중 전체의 관심사가 되었고, 배심원 여러분은 이들 전체의 대표가 되어 아직도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들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더 올바르고 더 정의로운 판결을 위해 온 마음을 쏟으셔야 합니다.
저 창문 밖에 기도하는 소녀를 보십시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노인을 보십시오! 저들의 기도가, 저들의 눈물이, 그 목소리가… 절대 헛되이 되도록 두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마지막 변론까지 끝나자, 브라운 재판관은 배심원단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배심원 여러분. 여러분은 원고와 피고의 최후 변론까지 모두 들으셨습니다. 이제 원고가 피고에게 행한 농장에 대한 퇴거 소송에서, 원고에게 그러한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려줘야 할 시간입니다.
자, 그럼 이곳에서 모두 나가 신중하게 숙고해서 결정하여 결과를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모두에게 공정한 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재판관의 말에 비장한 얼굴을 한 배심원단은 법정을 신속하게 빠져나갔다.
* * *
깊고 어색한 침묵이 원고와 피고석 사이를 오가는 사이, 배심원단이 결정문을 가지고 법정으로 들어섰다.
“배심원단이 내린 결론은…….”
배심원단은 현재 명확한 공식 증거는 없지만, 다양한 증인들의 증언과 정황 증거를 통해 면밀히 검토한 결과, 농장의 정당한 소유권은 원고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퇴거 소송의 최종 승자는 리오 에드워즈 경이었다.
* * *
◈ 개럿 공작의 타운하우스.
앨런 법정 변호사가 고개를 바짝 숙여 용서를 구했다.
“공작님! 정말 죄송합니다.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우리가 당연히 승소할 줄 알았는데, 담당 변호사로서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 신파 소설 따위로 싸구려 감성을 자극해 여론을 바꿀 줄이야 그 누구도 예상 못 했으니… 괜찮네.”
“……?”
의외의 반응에 앨런 변호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공작의 안색을 살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썩 나쁘지 않았다.
“공작님? 혹시… 반격할 강력한 증거라도 찾으셨습니까?”
개럿 공작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후후… 반격할 증거? 글쎄, 아직은 장담할 수 없네.”
“그래도 뭔가 묵직한 증거를 잡으셨군요?”
“뭐, 하나 잡긴 했지.”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식은 차를 마시며 잠시 뜸을 들인 공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린 리오를 북아메리카에서 자메이카로 데려간 노예선 선장을 찾았다는 소식을 이틀 전에 받았네. 노예선 일을 관두고 영국에 살고 있다고 하더군.
거기다 접촉한 정보원 말에 따르면 리오와 관련된 노예계약서까지 그 선장이 가지고 있나 보더군.”
앨런 변호사가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노예계약서요?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리오라는 놈이 정말 백인 노예 출신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닙니까?”
“그렇지. 그리고 정보원 말에 따르면 그 선장이 지금의 리오를 어릴 때부터 봐서 잘 안다는 거야. 자메이카를 들락거리며 성장하는 모습을 틈틈이 계속 지켜봤다는 거지.”
“그렇다면, 그놈의 정체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겠군요!”
“그래, 아직 그 선장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보지 못해 확신은 못하겠지만, 지금 리오라고 떠들고 다니는 놈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죽은 리오와 북아메리카에서 어울렸던 아이 같아. 그리고 자메이카로 팔려 간 이후에, 지가 공작가의 손자인 것처럼 행세했던 거야. 그런 천한 출신이 감히 공작인 나를 상대로 퇴거 소송까지 걸어 이겼단 말이지.”
“이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벌레 같은 놈! 정말 화가 치미는군요! 그럼, 그 선장의 진술만 받아내면, 자메이카로 건너온 리오 에드워즈의 진짜 신분을 밝혀낼 수 있겠는데요?”
“그래, 아마 며칠 안에는 그 선장을 내가 만나볼 수 있을 걸세.”
앨런 법정변호사가 크게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리오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선장을 찾아내고, 또 딜런의 아들이 죽었다는 공식적인 자료까지 북아메리카로부터 받게 된다면, 앞으로 있을 진위 싸움에서는 우리가 무조건 승리하게 될 겁니다.”
“후후…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지금은 날 칼 위에 올려놓고 마음껏 즐기라고 해. 이제 곧 그 칼끝이 사기꾼 리오와 그놈에게 끌려 다니는 놈들의 목으로 향할 테니.
그나저나 정의로운 척 온갖 일에 설치고 다녔던 샌더슨 경의 꼴이 아주 우습게 되겠구먼. 크크크.”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 대단한 샌더슨이 어린 노예 놈에게 이용당했으니, 부끄러워 얼굴이나 들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퇴거 소송의 뒤를 이을 본격적인 소송은 리오나 개럿 공작 측 모두에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 법정에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특히 이 시대에서는 열악한 통신수단과 교통으로 인해, 진위와 관련된 소송은 3~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개럿 공작 측도 그리고 리오 측도 모두 빨리 이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애썼다.
리오의 일 처리를 위해 북아메리카로 건너간 로빈슨 씨는 가져갔던 로건 작가의 책을 무사히 출판사에 전달하였고, 그곳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태오에게 전달받은 임무를 수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 열흘 뒤, 개럿 공작의 저택.
“그러니까, 선장님께서 리오 에드워즈를 9살 때쯤부터 봤다는 겁니까?”
“네, 공작님. 9살 때 처음 노예로 받아 자메이카로 데리고 갔고, 자메이카에서 커가는 모습을 오다가다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백인 노예가 많습니까?”
“지금은 거의 없어졌어요. 한때 브리스틀에서만 만 명이 넘는 백인 어른과 어린이가 노예 신분으로 북아메리카로 향하는 배를 타기도 했고,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한 인구의 3분의 2가 백인 노예들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흑인 노예로 대체됐습니다.
그래도 십여 년 전에는 백인 노예들이 간간이 있었지만, 백인 아이로는 리오가 유일했었지요. 생긴 것이나 하는 짓이 똘똘하고, 측은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자메이카까지 가는 동안 선장실에서 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이 좀 들었고요.”
하녀가 따뜻한 홍차를 들고 와 앤디 쿡 선장과 공작 앞에 내려놓았다.
쿡 선장에게 차를 권하며 개럿 공작이 본론을 꺼냈다.
“이렇게 선장님을 부른 이유는 리오 에드워즈에 대한 정체 때문입니다.”
“네…. 저도 퇴거 소송 얘기를 얼마 전에 듣고 참 난감했습니다.”
“아마도 리오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 계신 분은 선장님이 유일하지 않나 합니다. 도와주시면 제가 정말 큰 보답을 해드리겠습니다.”
쿡 선장이 커다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보답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저도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공작님이 저를 부르신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동안 그 녀석과의 인연 때문에 많이 망설였지만, 고민 끝에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리오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일이 너무 커져 정말 큰 벌을 받을까 두렵기까지 하더군요.”
개럿 공작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전에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선장님께서 사실대로 리오의 정체를 밝혀주신다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드려야죠.”
“어찌 보면 리오는 제게 있어서 버려진 아들 같은 존재였습니다. 불쌍한 생각에 도와주고 싶었지만, 저도 그때 형편이 좋지 못해 외면할 수밖에 없었죠.
리오는 자메이카에서 참 힘들게 살았어요.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죠. 아마도 너무 힘든 생활에 찌든 나머지 이런 참담한 거짓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공작님… 리오, 알고 보면 참 불쌍한 놈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로 인해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리오의 처벌을 최소한으로 줄여 주실 수 없을까요?”
개럿 공작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걱정 마십시오. 저 역시 제 명예만 되찾는다면 굳이 그 아이를 처벌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게 전부 제 동생의 어리석은 욕심으로 벌어진 일이니까요.”
거짓말이었다. 사실이 밝혀지는 대로 가장 혹독한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 형사처벌이 끝난 이후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해 채무자 감옥에 죽을 때까지 처넣을 작정이었다.
“감사합니다. 역시 공작님은 소문대로 고귀한 분이시군요. 그럼 공작님의 약속을 믿고 모든 것을 털어놓겠습니다.”
“…….”
“지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리오 에드워즈는 그 아이의 본명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 리오 에드워즈라고 하고 다니는 그 아이의 본명은 토미 클라크입니다.”
부스럭-
쿡 선장이 품속에서 오래된 문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선장 손에 들려 있는 문서는 토미 클라크에 대한 노예계약 서류였다.
“공작님, 이걸 한번 보시죠?”
문서를 건네받는 개럿 공작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 서류는 백인 노예들이 주로 맺게 되는 노예계약 문서입니다. 보시면, 당시 토미를 넘겨받으며 작성했던 계약서에 그 아이의 본명이 나와 있습니다. 그때 자메이카까지 가는 배 안에서도 계속 토미로 불렀고요.”
“토미? 이 아이가 어떻게 노예 신분이 된 것이죠?”
“서류를 보면 상습소매치기로 북아메리카로 추방형을 당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 또래 빈민 아이 중에 그런 죄목으로 많이들 노예로 왔었지요.”
“그럼 언제부터 리오 에드워즈가 된 겁니까?”
“제가 자메이카 어떤 농장에 토미를 넘겨주고, 그다음 해에 가보니 이름이 바뀌어 있더군요. 내가 왜 이름을 바꿨냐고 물으니 그 이름이 좋아서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뭐, 흑인 노예도 아니고, 계약 기간이 정해진 어린 백인 노예 하나가 이름을 바꾸는 것쯤이야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니 별문제 없이 계속 리오로 불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개럿 공작은 리오 에드워즈의 진짜 이름이 담긴 노예계약서를 입수했다.
거기다 쿡 선장은 리오가 북아메리카에서 노예로 팔릴 때인 어린 시절부터 자메이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모습을 전부 지켜본 유일한 사람으로서, 재판에 나가 증언을 해줄 것까지 약속했다.
이렇게 반격 자료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동안 몇 개월의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 5개월 후. 1780년 7월.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바뀐 역사 속에서 북아메리카 식민지였던 미국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고, 영국 또한 혼란의 시기를 거쳐 평온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원래 태오의 기억 속에 1780년의 유럽은 격동의 해였고,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 중심에는 미국독립전쟁이 자리하고 있었다.
즉, 역사책대로라면, 영국은 미국독립전쟁으로 인해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고, 중립 협정을 위반한 네덜란드와도 전쟁을 치렀어야 했다.
또 1780년 6월에는 가톨릭교도의 신분상 차별이 철폐된 것에 대한 격렬한 반대 시위 운동인 ‘고든 폭동’이 발발했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교회에 대한 반감이 심했던 영국 내에서는 국교도뿐만 아니라 극심한 생활고로 고생하던 서민들과 미국독립전쟁으로 크게 손해를 보고 있던 상인들이 이 ‘고든 폭동’에 대거 참여하면서, 수백 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그런데 이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묘하게도 미국독립전쟁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2년 전 조지 3세가 북아메리카의 독립을 전격 승인하면서 그 뒤에 이어져야 할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 썩은 부위가 잘려 나가버린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고 조용했다.
특히 1780년의 영국이 그랬다.
“……이렇게 해서 영국과 유럽 전체의 커피 판매는 물론 북아메리카 지역의 커피 판매량까지 대폭 증가하면서 순수익은 전년 대비 열 배 이상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역회사 부대표 사이먼 휴즈 자작의 실적 보고에 태오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