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154)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154화(154/217)
154화. 스키피오 박사와의 만남
다음 날 정오경.
태오는 콜린 피터슨과 함께 스키피오 마셜 박사가 일하고 있다는 방직 공장을 방문했다.
“샌더슨 경, 저 공장입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는 아니군요?”
“네, 저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근방에서는 꽤나 큰 편입니다.”
공장으로 들어서자, 인부 수십여 명이 작업장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면직물을 밖으로 나르고 있었다.
태오가 알고 있는 역사대로라면, 이 시기의 영국은 여러 국가와의 전쟁으로 수출에 적신호가 켜져야 했다.
하지만 미국 독립전쟁을 조기에 종료시킴으로써 주변국과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되었고, 덕분에 맨체스터 공장을 비롯한 영국의 수출 산업은 크게 호황을 맞고 있었다.
“아, 저기 있네요!”
여기저기 살피며 스키피오 마셜 박사를 찾던 피터슨 경이 공장 구석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한 흑인이 백인 두 명과 서류를 보면서 열심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그들의 말소리가 태오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런데, 영어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옆에 서 있는 백인들도 영국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생김새나 옷차림, 들리는 말소리로 보아 프랑스인 같았다.
다양한 언어에 능통하다는 피터슨 경의 말대로, 스키피오 마셜은 상당히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피터슨 경을 힐끔 쳐다본 스키피오 박사가 프랑스 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돌아섰다.
“아니, 피터슨 경?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저희 대표님께서 마셜 박사님을 한번 뵙고 싶다고 해서요.”
“네? 대표님이라면?”
피터슨 경이 태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테오 샌더슨 경이십니다. 이름은 들어보셨죠?”
“그럼요! 존함은 많이 들었습니다.”
스키피오 박사가 태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태오도 머리를 숙여 답했다.
스키피오는 꽤 잘생긴 얼굴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젊은 흑인 노예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칠고 반항적인 눈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 학대받는 노예 생활을 겪지 않은 데다가 타고난 성향이 긍정적이라 그런 것 같았다.
“샌더슨 경께 박사님 얘기를 했더니 꼭 만나 뵙고 경제 관련해서 조언을 듣고 싶다고 해서요.”
“제가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아무튼 저분들하고 마무리할 얘기가 있으니 사무실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금방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러죠.”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리며 태오가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프랑스어가 무척 유창하신 것 같네요.”
“네, 제가 하는 프랑스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저기 서 있는 프랑스 상인들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이제는 이 공장에서만 물건을 사들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전적으로 마셜 박사님의 공이 크다고 봐요. 아무튼 정말 재주가 많은 분이세요.”
아까 보았던 프랑스 상인들의 표정에서 스키피오 박사에 대한 신뢰가 굳건해 보였다.
흑인에 대한 편견이 심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서, 그것도 프랑스 상인이 저렇게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뛰어난 경제적 지식과 설득력을 갖춘 데다, 자기들의 모국어까지 유창하게 하니 프랑스 상인들로서는 스키피오 박사를 신뢰할 수밖에 없겠지.’
처음에야 해방 흑인 노예라는 점 때문에 꺼렸겠지만, 누구보다 이득과 효율성에 목숨을 거는 상인들인지라, 결국에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상대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통역의 질이 떨어지는 18세기임을 고려해 보면, 누군가를 거치지 않고 직접 모국어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 * *
스키피오가 머무는 사무실은 작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사무실을 둘러보니, 작은 책장에 꽂힌 수십여 권의 두꺼운 책들이 눈에 띄었다.
주로 경제학 관련 책과 과학 서적이 대다수였는데,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표지가 전부 헐어 있었다.
잠시 후, 스키피오가 들어왔고, 피터슨 경의 소개로 태오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셜 박사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샌더슨 남작님.”
친근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스키피오는 이미 태오에 관해 많이 알고 있는 듯했다.
태오가 가져온 원두커피를 마시면서 스키피오가 감탄해 마지않았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T&S 커피군요. 프랑스 상인들도 이 커피 얘기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직접 마셔 보니 향이며 맛이며,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는데요? 하하.”
스키피오는 신기하다는 듯 여러 번 맛을 음미했다.
그때, 태오의 눈에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공장 안전 수칙이 들어왔다.
스키피오 박사가 직접 만들어서 붙여놓은 듯했는데, 그 속에는 공장 내에서의 각종 안전 수칙과 준수사항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해 놓고 있었다.
‘기계와의 접촉 시 손이나 발을 조심할 것… 기계 소음에 대비해 귀마개를 장착, 청력 보호를 할 것…’
그 외에 섬유 먼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환기와 코와 입을 막는 등의 다양한 내용이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들어있었다.
현대화된 공장 안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인지라 태오가 한참을 관심 있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피터슨 경이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 공장 안에 들어가 보면 저런 안전 수칙들이 곳곳에 붙어있습니다. 박사님이 일일이 쓰고 그림을 넣어 붙여둔 것이죠. 작업 전에 아침마다 크게 읽고 모두 따라 하게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림까지 그려 넣고, 정성이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피터슨의 말에 스키피오 박사가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대단하긴요. 사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림을 넣은 것뿐입니다.”
태오가 의중을 물었다.
“박사님? 그런데 왜 이런 걸 굳이 써 붙여놓은 것이죠? 또, 말씀하신 대로 글을 모르는 노동자들이 태반이니, 작업 전에 말로 전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네, 많은 분이 이런 행동을 시간 낭비이고 쓸데없는 노력이라고들 하지만, 확실히 일하기 전에 주의를 환기하면 안전사고가 확연히 줄어들게 됩니다.
여기 공장 대표님도 처음에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반대하시다가 사고가 줄어들고 생산량이 올라가니까 이제는 별말 없으시고, 도리어 권장하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눈에 띄게 붙여놓으면, 글을 읽지 못하더라도 한 번이라도 자각하게 돼서 위험을 줄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업혁명에 불이 붙기 시작한 이 당시 영국 공장의 최우선 과제는 최대의 수익 창출.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생산량과 효율성이 훨씬 더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안전을 강조함으로써 노동자를 보호하고 생산성까지 향상할 수 있다는 설명에 태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키피오 마셜 박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혜안이 뛰어난 학자 같았다.
그의 다른 생각도 궁금해진 태오는 현재 영국의 산업발전과 앞으로의 미래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한참 동안 설명을 들었다.
태오가 스키피오 박사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박사님도 지금의 영국 산업이 더 크게 발전하기 위해 기술혁신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시는 거군요?”
“음… 당장의 발전을 보기 위해서라면, 기술혁신이 가장 필요하겠죠. 하지만 영국 산업 전체가 더 크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교육입니다.”
“…….”
“일부의 뛰어난 능력자에 의해 기술이 혁신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일반 대중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야 산업 전체의 폭발적인 성장을 끄는 힘이 생긴다고 보거든요.
우리 공장에서도 보면, 확실히 글을 읽을 줄 알고, 깨어진 머리를 가진 노동자일수록 안전사고도 적고 생산량도 확실히 더 좋았습니다.”
“하지만 노동자가 교육받게 되면, 지나치게 자기 권리를 찾으려고 해서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까?”
“네, 그분들 말대로 교육 수준이 올라가면 그만큼 요구사항도 많아지고 권리를 찾기 위한 각종 시위도 벌어질 수 있겠죠. 하지만 이것이 산업 전체의 생산성 감소로 이어진다고 보는 건 지나친 억측입니다. 오스트리아와 급부상한 프로이센만 보더라도 십여 년 전 포괄적인 초등교육시스템을 확립하면서…….”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노사관계에 대한 철학, 국제 정세의 정확한 분석, 그리고 교육에 대한 열정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18세기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지식과 의식을 갖추고 있었다.
피터슨 경이 왜 그렇게 칭찬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런던에 전문 교육기관의 설립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태오에게 스키피오 박사는 최고의 적임자로 여겨졌다.
‘흠… 학교를 세운다면 그곳 학교장으로 마셜 박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겠어.’
향후 교육기관을 설립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곳의 수장으로 스키피오가 1순위 후보가 될 듯싶었다.
◈ 열흘 뒤. 1781년 7월 중순, 폴 오스본의 저택.
늦은 저녁.
태오는 맨체스터에 오기 전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씩 점검하고 있었다.
피터슨 경이 사전에 준비를 잘해준 덕에 일 처리 속도가 매우 빨랐다.
새롭게 사들인 공장에 제임스 와트의 최신식 증기기관을 설치하고, 향후 50년간의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다는 심정으로 공장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원두커피 드립용 융 천의 수요량이 앞으로 폭발적으로 더 늘어날 거야. 새로 사들인 공장에다 기존의 면직물 생산을 하도록 하고, 기존의 제2공장을 커피 전문 융 천 전용 생산공장으로 만들어야겠어.’
공장과 관련된 구상을 모두 마친 태오가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다른 노트로 눈을 돌렸다.
그 노트에는 앞으로의 역사에 관한 예측이 나열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변하기 시작한 역사는 태오가 알고 있던 역사 지식보다 빨라지거나 없어지는 일이 생기고 있었다.
더불어 역사에는 없던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는 일들도 조금씩 늘어갔다.
‘휴- 쉽지 않네.’
역사를 좋아했지만, 세부적인 사건들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향후 벌어지는 굵직한 일들에 대한 변화가 걱정되었다.
특히 조지 왕이 1778년 미국의 독립을 조기에 승인해 주면서 세계의 역사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지금이 1781년 7월. 역사를 뒤흔드는 프랑스 혁명이 원래대로라면 8년 뒤인 1789년이야. 하지만 아무래도 프랑스가 미국독립전쟁에 개입을 많이 안 했으니, 대혁명의 등장도 그 시기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겠는데….’
태오가 기억하고 있는 역사 속에서의 프랑스 정부는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무리를 하면서까지 미국독립전쟁에서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지원하게 된다.
이렇게 전쟁에 들인 천문학적인 재정지원은 가뜩이나 어려웠던 프랑스 내부의 경제 사정을 급속히 붕괴시키면서 굶주린 민중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이것이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하게 한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미국 독립전쟁에 썼을 재정을 아꼈으니 프랑스 혁명도 늦어지게 되는 걸까? 흠… 그러면, 그 사이에 영국에서 있었던 중요한 일이 또 뭐가 있었지?’
이제 역사는 바뀌고 있고, 거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정해지지 않은 역사라면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변화를 예측하고 설계를 해나갈 사람이 필요하다.
‘스키피오 마셜 박사….’
복잡해진 머릿속에서 또다시 스키피오 박사가 생각났다.
지난 며칠간 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가 쓴 논문이나 잡지의 기사를 구해 읽어보면서 태오는 무척 감탄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교육기관의 설립은 필요하고, 그전에 새로운 인재를 모아서 싱크 탱크(Think tank) 연구소를 먼저 운영해야 할 거야. 박사는 거기에 적격인 인물이고. 일단, 내일 만나서 내 생각을 전해보자.’
스키피오 마셜 박사와 같은 인재를 그런 작은 공장의 관리원으로 두는 것은 크나큰 인력 낭비다.
켄싱턴에 회사 근처에 매입해 둔 건물이 많기 때문에 경제연구소를 개설하는 것쯤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일.
‘스키피오 박사를 우선 연구소장 자리를 맡게 해야겠어. 그리고 차차 교육기관을 설립하도록 하자.’
* * *
다음 날.
“네? 며칠째 안 나오고 있다고요?”
스키피오 마셜 박사가 일하는 방직 공장에 들른 태오가 당황해했다.
워낙 성실한 성품이라 지각 한 번 한 적이 없다던 스키피오였는데, 벌써 며칠 동안 공장에 출근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도 처음 봅니다. 마셜 씨가 이렇게 길게 출근하지 않는 건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 무슨 병에라도 걸린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태오가 물었다.
“공장에서는 찾아가 보시지 않았습니까?”
“오늘까지도 출근하지 않으면 저녁에 가보려고 했습니다.”
“혹시 마셜 씨의 집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제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얼굴을 익혀서인지 관리인은 순순히 스피키오 박사의 집 주소를 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