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173)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173화(173/217)
173화. 태오와의 춤을
무도회 진행요원이 참가자 남녀를 5쌍씩 나눠 4개 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첫 순서로 1조부터 영국 컨트리 사교댄스를 하기로 했다.
일반 무도회장에서는 남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춤출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하루 종일 벽에 기댄 채 다른 사람 춤 구경만 멀뚱멀뚱 쳐다보다 돌아가는, 소위 월 플라워(wall flower: 벽의 꽃)가 되기 일쑤였다.
무도회에 참석한 여성들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부분이었는데, 테오 무도회장에서는 그럴 걱정이 전혀 없었다.
짝을 맞춰 단체로 춤을 추며 서로를 알아가는 사교댄스 위주로 프로그램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느 사교장에서 그렇듯, 춤에 서투른 남자들이 많다는 점에 있었다.
함께 엇갈리면서 단체 춤을 추는 형태라 춤에 서투른 경우, 발을 밟거나 옷을 잡아끌어 대형을 엉키게 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물론 다른 사교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기에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실수마저도 웃음으로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야심차게 소규모 무도회장을 기획한 태오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춤의 재미를 알려면 기본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대부분 따라 하기에 급급하니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밖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 춤 실력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
이 정도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 했다.
1조와 2조 팀이 끝나고 마리아 공주가 속한 3조가 춤을 추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연주단의 음악이 흐르고 곧 댄스가 시작됐다.
3조에 속해있던 여성들은 대체로 춤동작이 간결하고 정확한 것이 노련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마리아 공주는 영국 컨트리 사교댄스임에도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
왕실가의 공주답게 사교댄스의 경험이 많은 듯했다.
하지만, 파트너들이 치마를 밟거나 방향을 잘못 잡아 동선이 여러 번 꼬이게 했고, 결과적으로 앞의 1, 2조보다 더 엉망이 돼 버렸다.
거기다 3조 남자들은 동작을 따라 하는 데 바빠 춤에만 몰두했고, 이것은 상대 여자들에게 예의가 없어 보이게 했다.
단체 사교댄스를 출 때는 파트너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가벼운 농담과 이야기로 흥을 돋우는 게 보통.
하지만 춤에서 실수가 잦고 자꾸 동선이 엉키다 보니 그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고, 그만큼 남자들의 말이 없어지게 되면서 재미없는 사교댄스가 돼버린 것이다.
춤이 끝나자 3조 여성들 사이에서 불만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 아이, 진짜! 난 춤출 때 말없는 파트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 그치? 실수가 있어도 1, 2조 신사분들은 재밌게 말도 해주던데 우리 조 신사분들은 다들 너무 말이 없으셔.
무도회장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데는 춤이 가장 중요한데,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다음은 마지막 4조 차례.
그때 태오의 눈에 4조에 속해있는 소피아 양이 보였다.
태오는 재빨리 춤을 준비하는 신사들의 얼굴을 훑어, 그중에서 가장 초조한 감정을 보이는 남자에게로 곧장 다가갔다.
“스콧 경? 안녕하세요?”
“아, 네! 자작님.”
한 달 전쯤, 여동생과 함께 상담을 받고 있는 그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스콧 경? 제가 이번 조에 들어가서 분위기를 조금 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사교댄스도 많은데 벌써부터 쳐지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러는데, 죄송하지만 스콧 경의 자리에 이번 한 번만 제가 대신 들어갈 수 있을까요?”
태오의 제안을 스콧 경이 오히려 반겼다.
“아, 샌더슨 자작님!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사실 제가 컨트리 사교댄스에는 많이 약해서요.”
실수를 연발하는 3조 신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역시 그런 우스운 꼴을 보일까 내심 걱정하고 있던 스콧 경이었다.
태오가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하고 무대로 향했다.
예상치 못한 태오의 등장에 숙녀들이 술렁였다.
-어머, 샌더슨 경이 춤을 추시려나 본데?
-저 멋진 분이 샌더슨 자작님이셨어?
-응. 그런데 이렇게 직접 무도회에 참석하는 건 처음 봐.
-분위기가 너무 처지니까 나서시려는 건가? 그 정도로 춤을 잘 추시나 보지?
-그런가 봐. 어디서 들었는데 춤을 엄청나게 잘 추신다고 하더라고.
소곤거리는 숙녀들의 말을 엿들은 마리아 공주 역시 관심 어린 눈으로 태오를 지켜보았다.
♪~♩~ ♫~♩♫~♩~♬♬♪♩~
곧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마지막 조의 댄스가 시작되었다.
4조 남자들은 이내 태오의 빼어난 춤 실력을 알아채고, 열심히 곁눈질해 가며 동작을 흉내 냈다.
실력자가 가운데서 주도를 하니, 막힌 물꼬가 트이듯 4조의 컨트리 댄스는 매우 신나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덕분에 여유가 생긴 신사들은 파트너와 가까워질 때마다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를 더했다.
소피아와 짝을 이룬 태오는 그녀의 춤 선을 유심히 살폈다.
가까워진 그녀에게 손끝을 살짝 걸어주고 리드를 하자, 소피아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유려한 움직임을 보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소피아의 실력을 판단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행이다. 예상대로 춤을 아주 잘 추는 아가씨였어. 그렇다면, 내 작전이 먹히겠는데?’
사교댄스에서 숙련된 남자의 리드가 편하고 부드럽게 전달되면 따르는 여성의 경우 춤을 추면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소피아도 조금 전 신사들과 춤을 출 때 받았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에 살짝 놀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파트너가 계속 바뀌는 춤의 특성상 더 깊은 맛은 느끼지 못했다.
– 와, 샌더슨 자작님, 춤 솜씨가 보통이 아니지 않아요?
– 그러게요. 다른 남자들은 앞 조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샌더슨 경이 잘 이끄니 다들 더 잘해 보이는 것 같아요.
짝짝짝-
와- 짝짝-
4조의 사교댄스 타임이 끝나자 처음으로 주위에서 박수가 크게 터져 나왔다.
4조 회원들은 주위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각자의 자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 첼로와 바이올린, 그리고 플루트의 소리가 바뀌더니, 아주 우아한 미뉴에트 풍의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태오가 미리 지시해 둔 연주였다.
♫♬~♫♪♩ ♫♪♩~♪~
흥겹고 가벼웠던 무도회장이 갑자기 우아하고 황홀한 분위기로 전환됐다.
바뀐 분위기에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텅 비어버린 무도회장 한가운데로 태오가 나오더니 들어가던 소피아 양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한 곡 추시겠어요?”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고, 느닷없는 상황에 소피아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촛불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이는 조명과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태오의 깍듯한 매너에 소피아는 홀린 듯 무대로 이끌려 나갔다.
♬~♩~ ♫~♪♩
흘러나오는 미뉴에트 곡에 살짝 무릎을 굽히고 예의를 표한 두 사람은 마치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춘 커플처럼 멋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반응에 슬며시 미소가 흘러나오는 태오였다.
‘역시… 후후…’
이 당시 귀족들은 미뉴에트 곡에 맞춰 추는 춤을 다른 춤보다 훨씬 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춤 자체가 수준이 높은 이유도 있었지만, 가발과 드레스 등의 불편하고 요란한 치장들이 미뉴에트 곡과 만나게 되면 우아하고 격식 있게 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춤은 파트너와 가까워졌다가도 다시 거리를 띄워 유지하는 것이 리드미컬하게 반복되어 고귀한 귀족의 품위와 냉정함을 잘 보여준다고 여겨졌다.
♪♫~♬♩~♬♩~♪♪
태오의 부드럽고 섬세한 리드는 소피아를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돋보이게 했다.
춤을 모르는 사람들은 소피아가 잘 춘다고 여기겠지만, 춤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지금 태오의 리드가 얼마나 훌륭한지 감탄했을 것이다.
마리아 공주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이유도 바로 태오의 그런 실력 때문이었다.
♬♩~♪♩~♪
서로를 향해 몸을 숙이고 회전하면서 무대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추는 춤은 부드러운 음악과 완벽하게 녹아들면서 모두를 숨죽이게 했다.
손짓이나, 발끝의 움직임 하나에도 아름다운 선율 위에서 춤을 추듯 보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두 사람의 움직임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연주가 끝나가면서, 소피아의 손 등에 태오가 살짝 입맞춤하는 것으로 춤이 끝이 났다.
그러자 무도회장이 떠나갈 듯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와- 부라보! 진짜 멋집니다!
– 짝짝작- 마지막까지 너무 감동적이에요!
–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춤은 처음입니다!
– 난, 눈물 나올 것 같아.
근대사회에서 사교 무도회는 귀족들의 결혼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만큼 사교댄스로 주변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관심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태오 덕분에 무도회의 주인공이 된 소피아는 뜨거운 반응에 수줍은 미소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가 자리로 돌아오자 무도회에 참석한 숙녀와 신사 모두가 소피아를 둘러싸고 큰 관심을 보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뿌듯하게 지켜보는 태오 곁으로 마리아 공주가 조용히 다가왔다.
“샌더슨 경?”
“아, 네.”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춤을 잘 추시네요?”
“아닙니다. 그냥 다른 남자들보다 춤에 조금 관심이 있는 것뿐입니다.”
“아, 네….”
마리아 공주가 몇 번을 주저하다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샌더슨 경?”
“네.”
“괜찮다면… 저도 한 곡 출 수 있을까요?”
“…네?”
“너무 오랫동안 춤을 안 췄더니, 오늘 꼭 한번 제대로 추고 싶어서요. 여기 분위기도 너무 근사하고요. 그런데, 다른 신사분들은 리드를 잘못하실 것 같더라고요.”
“…….”
태오는 난감했다.
사실 어찌 보면 오늘 무도회는 소피아 양을 위한 무도회였다.
여기서 춤 실력이나 외모가 출중한 마리아 공주가 나서버리면, 소피아 양의 빛이 바래질 염려가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태오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원래 이 무도회는 단체 사교댄스 위주로 진행돼서요.”
“그럼, 방금 춤은 뭐죠?”
“오늘따라 참석하신 분들의 춤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분위기를 조금 띄울 필요가 있었고, 소피아 양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제가 일부러 나선 것뿐입니다. 소피아 양의 숨겨진 매력을 다른 신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공주가 몹시 무안해했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춤을 신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해를 좀 부탁드릴게요.”
“아, 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잘 알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짓는 마리아 공주였지만, 돌아선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 다음 날 늦은 오후.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덜컹-
노크도 없이 대표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대표님! 대표님!”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루시가 태오를 찾았다.
“왜 그래? 무슨 사고라도 났어?”
“헉- 헉- 그게… 그게 아니고요….”
가쁜 숨을 고르고 나서야 루시가 말을 이었다.
“좀 전에, 소피아… 소피아 아가씨 어머니가 오셨거든요!”
“근데?”
“오전에 글쎄… 세 사람이나… 신사분 세 명이… 꽃과 선물을 들고 소피아 아가씨의 집에 와서… 정식으로 만나보고 싶다고 찾아왔다는 거예요! 부인께서 어찌나 방방 뛰면서 좋아하시던지. 너무 기쁜 나머지 한걸음에 달려왔답니다.”
태오가 너털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허- 난 또. 무슨 일이라고. 그럼 잘된 일인 거네?”
“대표님은 놀랍지 않으세요? 아니, 도대체 어제 무도회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멜라니가 있었으면 물어라도 보는 건데….”
멜라니는 어제 일을 마치고 며칠간 휴가를 갔다.
“후후, 그럴 일이 있었지. 참, 루시는 소피아 양 어머니에게 길버트 화이트 재단사와 의상실을 소개해 드려.
그곳에서 옷을 골라 입게 하고, 우리 헤어살롱에 가서 화장과 머리를 하게 해. 소피아 양 담당 매니저가 모두 체크하도록 하고.”
루시는 메모지를 꺼내 지시한 사항을 빠르게 적어 내려가며 기뻐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대표님 말씀대로 올해가 가기 전에 소피아 아가씨가 결혼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호호.”
◈ 보름 후. 1789년 1월 중순, 세인트제임스(St. James) 거리.
오전 이른 시간.
태오는 마차를 타고 세인트제임스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마리아 공주가 머물고 있는 저택으로 가는 중이었다.
지난번 피카딜리 무도회장에서 본 이후로 보름이 넘도록 공주를 볼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들르던 켄싱턴의 T&S 카페에도 나오지 않았고, 결혼정보회사에도 따로 방문하지 않았다.
연말부터 연초까지 여러 집안의 귀족 자제들과의 만남을 계획하고 있어 사람을 보내 연락을 취해봤지만, 답이 없었다.
처음에는 연말이라 바빠서라고 여겼다.
하지만 새해가 되어서도 여전히 연락이 없어 걱정되는 마음에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설마 무도회장에서의 일 때문에 그럴 분은 아니고…. 나폴리 왕국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건가? 그렇다면 통보라도 해줬을 텐데….’
석 달째 적당한 신랑감을 찾지 못해 조바심이 생긴 태오였다.
한 나라의 공주라는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정략결혼이라면, 그래도 마음에 맞는 최고의 상대를 찾아주고 싶었다.
예기치 못하게 첫눈에 반해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지만, 그만큼 좋은 남자를 연결해 주자는 마음도 커졌다.
하지만 당사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맺어주는 입장에서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
‘집에 계셔야 할 텐데….’
그저 큰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