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197)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197화(197/217)
< 197화 재회 >
“카테리나라니요! 말도 안 돼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도제 부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허- 부인! 이 뭐 하는 짓이오! 어서 당장 앉으시오!”
그러나 이성을 잃은 도제 부인의 귀에 남편의 만류가 들릴 리 없었다.
“말이 안 되잖아요! 카테리나는 그날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건 뭔가 잘못된 겁니다! 확실히 잘못된 일이라고요!”
뜻밖의 상황에 베네치아 의원들도 술렁였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카테리나를 발견한 그리말디 대신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 오늘은 있었군요! 카테리나 마노이니 양 맞으시죠?”
“···네? 아, 네.”
“한 달 전에는 자리에 없어서 못 봤는데. 오늘 이렇게 보니까 어린 시절의 모습이 언뜻 생각나는 것 같군요, 허허허-”
“·····?”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카테리나였다.
자신이 결혼대상자로 결정됐다니. 말문이 막힌 그녀는 그리말디 대신을 멍한 눈으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치아 공화국 관계자들은 오히려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비앙카가 결혼 협상 대상자로 결정됐다고 했을 때, 다들 ‘도대체 왜?’라며 의문을 던졌다.
거기다 과연 여러 가지로 부족한 비앙카가 나폴리 왕국으로 가서 제대로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후보 지명자가 카테리나였다고 하자, 나폴리 왕국의 선택이 이제야 이해된다는 표정들이었다.
루도비코 마노이니 도제가 크게 기뻐하며 그리말디 대신에게 물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날 왕자님께서는 우리 카테리나를 보지도 못했을 텐데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어떤 영문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와서 카테리나 양을 보니 개인적으로 우리 왕자님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망연자실한 표정의 비앙카와 도제 부인은 한참을 그렇게 꼼짝도 하지 못했다.
* * *
깊은 밤, 루도비코 마노이니 도제의 서재.
마노이니 도제는 큰딸 카테리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테리나··· 준비도 없이 내일 바로 나폴리 왕국으로 떠나야 한다니, 나도 그렇지만 너는 얼마나 당황스럽겠니? 베네치아를 떠나서 해외로 나가보는 건 처음이지?”
“네, 아버지.”
“가서 있는 동안 쉽지 않은 생활이 될 거야. 이 아버지도 젊은 시절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있어서 조금은 안단다. 정말 지독한 외로움과 향수병에 시달렸었지.
만약 결혼까지 결정된다면, 그곳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타국 생활을 네가 잘 견딜 수 있을지 염려스럽구나.”
프랑스의 침략을 누구보다 걱정했던 카테리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으니, 생소한 환경이라고 해서 마다할 수 없는 처지였다.
도제인 아버지와 공화국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견뎌내야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두려워할 필요 없잖아요? 더구나 우리 공화국 모두를 위하는 일인 걸요.”
의연한 태도에 마노이니 도제는 카테리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베네치아 공화국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구나, 정말 고마워.”
아내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낸 아이였다.
두 번째 아내가 카테리나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늘 일에 치여 딸의 외로움을 제대로 살펴주지 못했고, 그는 그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도 카테리나는 아버지의 일과 마음을 이해해주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자라주었다.
“그동안 새어머니가 너에게 소홀하게 대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몇 번이나 주의를 시키고 부탁도 해보았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더구나.”
“아니에요. 새어머니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이해해주니 내가 더 미안하고 고맙구나.”
카테리나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아버지. 나폴리 왕국에서 비앙카가 아니고 왜 저를 지명했을까요? 저는 소개 자리에 있지도 않았었는데···.”
“글쎄다. 아마도 네가 나의 맏딸이라는 것이 어쩌다 밝혀진 것이 아닌가 싶구나. 전통적인 왕실에서는 장자나 장녀를 무척 중하게 여기는 습성이 있으니까.”
“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아버지? 저번 달에 왕자님도 오셨다고 했는데, 그럼 아버지도 왕자님을 직접 보셨겠네요? 어떤 분이신 것 같으세요?”
“그때는 거의 말씀이 없으셔서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해 봤어. 하지만 외모도 수려하시고, 교육도 잘 받으신 거 같으셨다. 나쁘지 않은 청년이었어.”
“아··· 네.”
그러나 카테리나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아버지가 정해준 결혼 협상 상대, 더구나 나라의 운명이 걸릴 수 있는 일이기에 자기의 사적인 감정은 당연히 배제해야 했다.
하지만 나폴리 셋째 왕자에 관한 좋지 못한 소문에 카테리나의 마음 한구석이 알게 모르게 불안했다.
“내 듣기론 나폴리 왕국의 왕비님이 무척 엄하고 까다롭다고 들었다. 그래서 아마 결혼 협상 조건으로 널 먼저 초대해서 살피려고 하는 듯해.
현명한 너니까 잘 대처하겠지만,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너무 걱정 마세요.”
훌쩍 커서 어느새 시집갈 나이가 된 딸아이를 보자 마노이니 도제는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 전 고리대금업자의 이중계약 증거 건도 그렇고, 성당이나 이런 곳에서 네가 열심히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다. 정말 기특하고 고맙더구나.”
“······.”
도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번 결혼이 너를 위해서도, 우리 베네치아를 위해서도 둘도 없는 기회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너를 팔아 나라의 안위를 지키려는 것 같아 아비로서 마음이 몹시 괴롭구나.”
“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절대 그런 거 아니니 자책 마셨으면 해요.”
아버지의 진심 어린 마음에 카테리나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였다.
“가서 왕자도 마음에 안 들고, 왕비도 무서우면 그냥 돌아오려무나. 결혼 허락받지 못했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돌아오면 이 아버지와 함께 우리 베네치아를 가꾸면서 행복하게 살자꾸나. 응?”
“네··· 그럴게요, 아버지.”
◈ 1797년 4월 중순. 나폴리 왕국의 항구.
영국의 군함을 타고 카테리나는 그리말디 내무 대신과 나폴리 왕국으로 향했다.
열흘이 넘는 항해는 카테리나로서는 태어나 처음 겪는 긴 여행이었다.
아버지가 말했던 외로움.
베네치아 항구에서 배를 탈 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간 드넓은 아드리아해(Adriatic Sea)를 지나 멀리 나폴리 왕국의 항구가 눈에 보이자 갑자기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두려운 마음과 함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왔다.
다른 나라처럼 공주도 공녀도 아니다.
도제의 딸. 나폴리 왕실의 시선에서는 그다지 매력이 없는 신분이었다.
겉으로는 결혼 협상 상대자로 초청했다지만, 실상은 나폴리 왕실의 시험대라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카테리나였다.
특히 카롤리나 왕비는 나폴리 왕국의 실질적인 지도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권세가 대단하고 실리를 잘 따지기로 유명했다.
아마도 매의 눈으로 자신을 살피면서 왕국의 입장에서 별 이득이 없다고 여기면 가차 없이 내치려 들 것이다.
“하-”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울적한 마음 때문인지, 곁을 주지 않던 새어머니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마음이 왜 이렇게 싱숭생숭할까? 외국으로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어서 심란한 건가··· 벌써 향수병이라니 정신 차려··· 고통받을 우리 공화국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는 카테리나였다.
프랑스 혁명군이 침공하여 들어오면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가장 힘들어지게 되는 계층은 가난한 국민이다.
자기의 결혼으로 조금이나마 베네치아 공화국이 보호받을 수 있고, 몇 사람이라도 덜 고통스러울 수 있다면 자기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각오였다.
‘······.’
하지만, 카테리나의 외로운 마음은 굳은 다짐과 달리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는 심적으로 의지하던 아버지마저도 곁에 없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국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꼭꼭 숨겨두었던 어린 시절의 지독한 외로움을 다시금 깨우고 있었다.
여러 생각으로 복잡해진 카테리나에게 그리말디 대신이 다가와 전했다.
“잠시 뒤면 항구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녀의 심정도 모른 채, 그리말디 대신은 먼 항구 쪽을 가리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허허- 저기 보십시오. 왕궁에서 이미 사람을 보낸 듯하네요.”
카테리나가 대신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 그의 말대로 항구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꽤 많은 사람과 여러 대의 마차가 보였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괜스레 더 부담스럽고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그리말디 대신이 다른 짐을 살핀다고 내려간 사이, 카테리나는 두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은총 가득한 성모 마리아여! 나약한 제 앞에 펼쳐질 미래를 위해 빛을 밝혀주시옵시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기도하는 카테리나의 두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가슴은 먹먹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떠나기 전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의연함도,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하고, 많은 지인 앞에서 보여주었던 여유로움도,
지금의 카테리나에겐 찾아볼 수 없었다.
팔려 가듯 고국을 떠나 모르는 이들에게 둘러싸여야 할 현실은 아직은 어린 그녀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
4월답지 않게 쌀쌀한 날씨.
피에트로 왕자는 항구의 찬바람을 맞으며 멀리서 들어오는 영국 군함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왕자님! 바람이 차갑습니다. 마차 안에서 기다리시지요. 저 배가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한참은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시종의 말에도 왕자는 요지부동이었다.
태오는 커다란 외투를 들고 가서 피에트로 왕자에게 건네주었다.
“계속 이렇게 찬바람을 맞으면 감기에 걸립니다. 그러니 이 옷이라도 걸쳐요.”
멀리서 오는 배에 집중하던 왕자가 태오가 건넨 옷을 받아들고 고마워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삼십여 분 뒤.
카테리나를 태운 군함이 항구 쪽으로 들어왔다.
곧 간이 다리가 연결되고, 분주하게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그리말디 백작과 함께 내리는 카테리나 양의 모습이 드디어 보였다.
피에트로 왕자가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반겼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카테리나 양! 하하-”
갑작스레 등장한 피에트로 왕자와 태오의 모습에 카테리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어리둥절해했다.
“어머! 아니, 두 분이··· 두 분이 어떻게 여기에?”
“하하- 기억 안 나세요? 저희가 나폴리 왕국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러긴 했지만··· 그런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나오신 거예요? 절 기다리신 건 아니시겠죠? 여기에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요? 설마··· 나폴리 궁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세요?”
영문을 몰라 하는 카테리나의 표정에서는 반가워하는 감정이 한가득 묻어났다.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에 크게 위축되었던 카테리나는 두 사람을 보자, 마치 이국땅에서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맞습니다. 우리가 카테리나 양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태오의 말에 카테리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럼 정말 두 분이 궁에서 일하시는 분이셨군요? 그래서 오는 사람이 저인 것을 알고 일부러 이렇게 마중 나와 주신 것이고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지금 제 마음이 얼마나 안심되고 위안이 되는지 두 분은 절대 모르실 거예요. 혹시 궁전에도 같이 들어가 주시나요?”
카테리나의 물음에 피에트로 왕자가 환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네! 물론이죠. 저는 궁에서 생활하니까요.”
“너무 잘됐네요! 제가 왕실 가문이 아니라서 궁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옆에서 도와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왕자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네, 걱정하지 마세요. 왕실 생활은 제가 전문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주 자세하게 제가 전부 알려드리겠습니다. 자! 어서 마차로 가시죠? 바람이 불어 날씨가 춥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왕자의 안내를 받아 마차로 간 카테리나는 마차 크기에 또 한 번 놀라는 눈치였다.
“세상에! 이런 큰 마차는 태어나 처음 봐요.”
“왕실 마차입니다.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그때 시종이 마차 입구에 나무 계단을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먼저 타십시오.”
“네.”
계단을 밝고 카테리나와 왕자 그리고 태오가 차례로 올라탔다.
잠시 뒤 마부 옆에 앉은 시종이 큰소리로 알렸다.
“왕자님!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쾌한 채찍과 함께 힘차게 마차가 움직였다.
그러자 카테리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왕자와 태오를 바라보았다.
“저기··· 방금··· ‘왕자님’이라고 한 거 같은데? 아닌가요?”
나폴리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문장이나 단어 정도는 알고 있던 카테리나였다.
태오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왕자를 쳐다보았다.
“이제는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피에트로 왕자가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카테리나가 태오에게 물었다.
“뭘 말씀하신다는 거죠?”
태오가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니게 그동안 신분을 제대로 말씀 못 드렸습니다.”
“?”
“사실 옆에 앉아 있는 분이, 바로 피에트로 드 부르봉 왕자입니다. 저는 영국에서 온 샌더슨 백작이고요.”
태오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던 카테리나가, 잠시 뒤 턱에 힘이 빠지듯 벌어지고 눈썹이 위로 상승했다.
“지···지금··· 이게 다··· 무슨 소리죠?”
왕자는 행여나 카테리나가 오해할까 봐 급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처음 배에서 만날 당시에는 우리 신분을 제대로 설명할 시간도, 기회도 전혀 없었습니다. 왕자라고 말해도 믿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절대 속이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니 오해 마셨으면 하네요.
그래서 다음날, 카테리나 양을 만나 정식으로 인사하기 위해 궁을 찾아갔었지만, 그날 카테리나 양이 자리에 없어서 보지 못했던 겁니다.”
한참을 혼란스러워하던 카테리나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여기 이분이 나폴리 왕국의 피에트로 왕자님이시고··· 이쪽이 샌더슨 백작님이시라면··· 그 유명한··· 영국의 테오 샌더슨··· 백작님이시라는 건가요?”
태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미소 짓고 있는 태오와 피에트로 왕자를 번갈아 보면서 벌어진 입을 한참 동안 다물지 못하는 카테리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