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214)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214화(214/217)
214화. 런던 대홍수 (2)
◈ 햄스테드 히스(Hampstead Heath), 임시 대피소.
늦은 밤.
낯선 잠자리와 천막의 열기로 인해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더위를 피해 천막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은 덥지만, 밖에는 밤이 되니 그래도 선선하네.
– 더운 것만 빼고는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 그나저나 이 야단법석을 떨고 대피를 하긴 했는데… 비가 오긴 오는 걸까요?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그러게나 말이에요. 샌더슨 백작님 말이라 따르긴 했지만,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어요.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대피를 시킨걸까요? 비가 내리면 뭐 얼마나 온다고.
– 이번에 왕립 기상원인가 뭔가를 런던에 설립했는데, 그 원장이라는 사람이 홍수가 날 거라고 예측을 했다고 해요.
– 그 사람 말에 속아서 괜히 백작님만 곤욕을 치르시는 거 아닌지 몰라.
조금 더울 뿐,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여름밤이 폭우로 잠길 것이라고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토톡- 토도독-
그런데,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천막 위로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 어? 비가 오는데요?
– 그러게. 진짜 비가 와!
날씨가 조금 흐리기는 했지만, 절대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로 인해 대피소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 어라? 제법 비가 내리려나 본데요?
– 이거, 정말 홍수가 날 정도로 많은 비가 오는 거 아닐까?
– 맞아요! 이 많은 사람을 괜히 힘들게 대피까지 시켰겠어요? 이유가 있었겠죠.
– 하긴. 샌더슨 백작님이 나선 일이니 한번 믿어봐야죠.
조금씩 내리던 비가 곧 강한 비로 변해 거세게 내려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놀란 사람들이 각자의 천막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내리는 비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템스강 주변이 전부 물에 잠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게 퍼부었다.
주민들은 역시 샌더슨 백작이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오도 내심 다행스러웠다.
이렇게 대규모 긴급대피를 했는데, 비가 오지 않는다면 그 역시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집중호우를 확신한 태오는 군인들과 함께 배수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대피소의 상황을 면밀히 살폈다.
다행히 아직 별다른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당황스러운 상황이 전개됐다.
30분 넘게 강하게 내리던 빗줄기가 눈에 띄게 약해지더니, 내리고 말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그치고 말았다.
자정을 넘기고부터는 먹구름 사이로 흐릿한 달까지 보이려 했다.
이후, 한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비가 내리지 않자, 대피소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이제 비가 내리지 않을 거라며 집으로 가려고 짐을 챙기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가방 십여 개를 챙겨 천막 밖으로 가장 먼저 나온 이는 모리스 상원의원.
모리스 의원의 짐은 대피소의 다른 사람들보다 유달리 많았는데, 집에 있는 귀중품은 모조리 쓸어 담아 온 것 같았다.
모리스 의원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태오의 천막을 찾았다.
“샌더슨 백작? 이거 비가 그친 거 아닙 니까?”
“의원님, 그게..……”
“백작도 눈이 있으면 하늘을 한번 보세요! 조금 있으면 별까지 보일 것 같습니다. 이제 비가 완전히 그친 것 같으니, 나는 그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신경질적으로 돌아선 모리스 의원을 태오가 붙잡았다.
“의원님! 많은 비가 곧 내릴 겁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내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늦어도 10일 안에는 집들이 잠길 만큼 큰비가 내릴 거예요. 그러니 당분간 여기 계셔야 안전합니다. 내려가시면 위험합니다!”
다시 돌아선 모리스 의원이 따지듯이 물었다.
“샌더슨 백작께서는 분명히 오늘 새벽에 물난리가 날 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게… 솔직히 말씀드리면 언제 폭우가 내릴지는 우리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 다. 하지만 템스강이 범람할 정도의 많은 비가 내린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곧 내릴 수도 있고, 며칠 뒤에 내릴 수도 있고요.”
모리스 의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며칠 뒤? 그럼 오늘 대피하면서 말했던 건 뭐요? 우리를 전부 속인 겁니 까?”
“네?”
“오늘 밤과 새벽에 엄청난 비가 내릴 것처럼 설레발을 쳐서 이 많은 사람이 급하게 대피한 것 아니요? 무조건 대피해야 한다고 하도 난리를 피우는 통에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소중한 물건을 하나도 챙겨 나오지 못했단 말입니다! 우리가 모두 집을 비운 사이에 도둑이라도 들면 책임 지시겠습니까?”
“그게….”
“됐습니다! 물론 백작께서 어떤 악의가 있어서 이런 무리수를 두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육십이 넘은 저는 이런 천막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군요. 오늘은 일단 집에 가서 제 침대에서 편하게 자겠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 보관 중인 귀중품들도 더 챙겨 나오도록 하고요.”
“모리스 의원님, 위험합니다! 지금 귀중품이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비가 내리면 탈출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물이 차오를 겁니다!”
“아, 됐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씩씩거리며 돌아선 모리스 상원의원은 커다란 짐 가방을 든 하인들을 앞세워 가족들과 함께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모리스 상원의원이 나서자 눈치를 보던 수백 명의 주민도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내려가기 시작했다.
태오가 그들을 잡고 사정을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죄송합니다. 백작님. 정말 중요한 작업을 하다가 그냥 그대로 두고 올라왔거든요. 그것만 얼른 정리해 놓고 다시 돌아 오겠습니다. 이해 좀 부탁드립니다.”
“백작님! 필요한 약을 깜빡했습니다. 그게 없으면 저희 어머니가 숨을 못 쉬거든요.”
천막 주변을 지키던 군인들도 집으로 가겠다고 아우성치는 주민들을 말릴 수 없었다.
대피소를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리아 공주가 태오를 위로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어떻게 정확히 맞히겠어요. 시민들도 혹시나 큰 재난이 닥칠까 걱정하는 당신의 마음만큼은 이해해 줄 거예요.”
태오가 공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큰 홍수가 닥치는 건 확실해요. 단지 내가… 너무 빨리 날짜를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좀 더 오래 대피한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들고요.”
마리아 공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날짜를 너무 빨리 잡았다니요?”
“행여나 내 실수로 인해 저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 닥칠까, 그게 걱정이 된다는 말입니다.”
“……….”
태오는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 주민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
새벽이 끝나가고 동이 트자 간간이 내리던 빗방울조차 완전히 그쳤다.
그리고 새벽에 떠났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주민들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밤을 꼬박 새운 태오는 퀭한 눈으로 잔뜩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먹구름들이 바람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결국 오늘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건가?’
21세기에서 본 기록대로라면, 새벽에 많은 비가 내려 더 큰 피해가 발생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럼 언제라는 거지? 정말 8월 2일 새벽인가?”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태오 옆으로 마리아 공주가 다가와 있었다.
“밤새 주무시지도 못하고, 괜찮으세요?”
“왜 벌써 일어났어요? 잠 좀 더 자지.”
“저도 걱정이 돼서요.”
그때 앞 천막에서 커다란 가방을 든 가족 십여 명이 나오고 있었다.
벌써 천여 명은 대피지역을 떠나 집으로 향한 것 같았다.
“저분들을 안 말려도 될까요?”
아내의 물음에 태오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큰비가 분명히 오긴 하겠지만 언제 내릴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소. 어제 너무나 갑작스러운 대피로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나왔을 테니, 챙길 시간을 주는 게 맞는 것도 같고.
실은 긴급대피가 갑작스럽게 결정되는 바람에 나도 무척 당황스러운 입장이오.”
“아직은 그래도 많은 분이 당신을 믿고 남아있지만, 오늘 밤이 지나면 대부분 집으로 내려갈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럴 테지.”
***
그렇게 또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아침 식사가 준비될 때쯤이었다.
콰콰광-콰르르르-콰광쾅-
콰콰쾅-
비가 완전히 그쳤다고 생각했던 하늘에서 별안간 귀청이 찢길 듯한 천둥이 연달아 내리쳤다.
“어머~!”
너무 큰 천둥소리에 마리아 공주가 태오의 팔을 꽉 붙들었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도 천막 밖으로 나와 웅성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뜬 아침임에도 밤처럼 잔뜩 흐려진 하늘 여기저기서 어지럽게 번개가 번쩍였다.
그리고 아까보다 몇 배는 더 큰 천둥소리가 사정없이 지축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콰르르르-콰콰쾅쾅쾅쾅-
쩌저쩍-
콰콰쾅-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고, 아이들의 요란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놀란 사람들은 황급히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짐을 챙겨 집으로 가고 있던 주민들은 비를 쫄딱 맞으며 허겁지겁 되돌아오고 있었다.
우두두두-쏴아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쉴 새 없이 퍼붓는 굵은 장대비는 두려운 마음이 들 정도로 거셌다.
살면서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폭우에 놀란 사람들은 그저 입만 벌리고 바라볼 뿐이었다.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비는 마치 세상을 다 끝장낼 것처럼 사납게 쏟아붓고 있었다.
꽈꽈쾅쾅- 두두두두-쏴아아아-
사람들은 어젯밤처럼 조금 있으면 비가 그치려니 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폭우는 1시간이 넘도록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 두려운 눈으로 하늘과 비를 살피던 한 늙은 농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뗐다.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수도 없이 많은 비를 봤지만… 이건 절대 그냥 그칠 비가 아니야… 세상을 삼켜 먹을 것 같은 비야. 큰일이네, 큰일이야. 런던이 전부 물에 잠겨버리고도 남겠어….”
그때 또 다른 천막 안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아래! 저 멀리 하늘을 보세요. 세상에!”
사람들의 시선이 언덕 아래 펼쳐진 런던 중심가의 템스강 주변 하늘로 향했다.
그곳 하늘은 어둑한 다른 하늘과 확연하게 비교가 될 정도로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했다.
“저럴 수가! 저 먹구름의 크기를 보세요! 자꾸만 커지고 있어요!”
이미 기괴할 정도로 커진 먹구름이었지만, 런던 중심부를 전부 집어삼킬 태세로 점점 더 부풀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하나님을 찾으며 탄식과 기도를 연발했다.
콰콰쾅광-콰쾅쾅-
우두두두두-쏴아아아-
1799년 7월 22일 아침.
미래의 역사에서 시대의 비극으로 기록하고 있던 ‘런던 대홍수’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다섯 시간 넘게 퍼붓는 빗물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미래의 역사책 속에서 왜 런던 중심부가 수 시간 만에 거대한 강으로 변해버렸다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쪽 배수로가 막히지 않도록 더 깊이 파!”
태오는 군인들과 함께 대피소의 안전을 위해 배수로를 살피고 파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동안 임시피난처의 안전을 꽤 신경 써서 준비했지만, 막상 내리는 비를 보니 이곳 역시 위험해 보였다.
그때 옆에서 태오를 돕던 한 장교가 소리쳤다.
“백작님! 저기를 보십시오!”
대피소 언덕 아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강하게 내리는 장대비 사이로 희끗희끗한 무언가가 보였다.
집중해서 보니, 수천 명의 사람이 언덕으로 힘겹게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놀란 태오는 군인들과 함께 급히 그들을 도우러 달려갔다.
가까이가 살펴보니 새벽에 짐을 싸들고 내려갔던 주민들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기어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비를 뚫고 대피소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흠뻑 젖은 채 손에는 아무런 짐도 보이지 않았다.
노인들과 아이들을 부축해 텐트로 옮기던 태오는 저 멀리 바닥을 기어서 올라오고 있는 모리스 상원의원을 발견했다.
놀란 태오가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십니까? 모리스 의원님?”
“헉- 허억-헉-”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노령의 모리스 의원은 대답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옷이 다 찢긴 채로 팔에는 상처가 나 피까지 철철 흐르고 있었다.
태오가 모리스 의원을 부축해 천막까지 이동했다.
천막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진 모리스 의원은 제대로 입을 떼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의원님! 괜찮으세요?”
“헉헉- 지금… 지금… 런던 시내에 물이 다 차올랐습니다. 템스강… 커억- 템스강에 물이 범람하면서… 저지대 집들은 전부 물에 잠겼어요. 완전히 침수됐습니다… 백작님… 컥- 죄송… 죄송합니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백작님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헉- 허억-”
새벽녘에 떠났던 사람 대부분이 모리스 의원처럼 귀중품이 담긴 짐도 모두 버린 채 몸만 겨우 빠져나온 것 같았다.
숨을 헐떡이며 천막으로 겨우 들어온 한 주민이 템스강 주변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저지대 말고도, 피난 가지 않고 집에 남아있던 지역의 사람들도… 대부분이 탈출해서… 올라오고 있어요. 그 위의 지역으로까지 점점 물이 밀고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허- 헉- 그나마 그동안 템스강에 제방을 높이고… 모래주머니로 막아 놓아서 우리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 준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전부 물에 수장되고… 말았을 겁니다!”
쏴아아아-
폭우는 몇 시간째 런던을 집어 삼켜버릴 기세로 무섭게 내리고 있었다.
마리아 공주의 안전이 걱정된 태오는 천막으로 돌아와 보니 하워드 기상원장이 와 있었다.
두려움에 떨며 멍하니 폭우를 바라보는 마리아에게 옷을 걸쳐주고 다독인 태오가 하워드 원장에게 다가갔다.
“이 비는… 얼마 동안이나 내릴까요?”
멀리 보이는 시내 중심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하워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렇게 많이 품은 습기를 다 뱉어내려면, 오늘 하루 종일 쉼 없이 쏟아부을 겁니다. 그리고 며칠간 산발적으로 폭우를 더 쏟아 낼 것이고요.”
◈ 한달뒤
7월 22일 새벽에 내린 폭우는 하워드 기상원장의 예상대로 10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퍼부었고, 24일 저녁까지 불규칙적으로 쏟아졌다.
첫날 온종일 퍼붓던 비는 다음 날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하지만, 또다시 폭우가 몇 시간 간격으로 내리면서 런던 중심가를 완전히 잠기게 한 후, 나머지 지역을 빠르게 잠식해 들어갔다.
템스강의 범람 이후 만들어진 거대한 급류는 목재가옥과 벽돌집들을 사정없이 부숴버렸고, 끝까지 대피하지 않고 있던 일부 사람들은 여기에 휩쓸려 실종되고 말았다.
제방이 붕괴한 지역에서는 물이 최대 7~8m까지 들어차면서 거대한 저수지로 변했고, 내리다 말고를 반복하는 폭우로 인해 산사태와 땅 꺼짐 현상 등이 벌어지면서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오가 준비해 둔 모래주머니와 차수벽 덕분에 남아있던 상당수의 주민이 피난처로 대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었고, 그 때문에 희생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폭우가 그친 후, 거대한 강으로 변했던 런던 중심가의 물은 예상보다 빠르게 빠져나갔다.
1년 동안 부지런히 정비한 하수관 시설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덕분에 내린 폭우에도 불구하고, 런던이 정상화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1799년 9월.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St. James ‘s Palace).
상상도 못했던 커다란 재난으로 낙담에 빠져있을 때, 런던 시민 사이에서는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뻔한 일을 막은 영웅들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것은 템스강의 제방을 강화하고, 유사시 주민 대피를 위한 대피소와 대피 작전까지 준비한 샌더슨 백작의 놀라운 선견지명과 기록적인 폭우를 예측한 루크 하워드 원장의 탁월한 예보 능력에 관한 청송이었다.
이 칭송은 런던 시민 사이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영국 국민 전체가 이들이 그동안 준비했던 과정과 희생을 이야기하면서 크게 감동하고 열광했다.
그리고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한 샌더슨 백작과 루크 하워드 원장에게 국왕 폐하가 직접 상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조지 왕은 국민의 바람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세인트제임스 궁에서 특별한 보상을 준비했다.
『프랑스와의 전쟁을 대승으로 이끌고, 반역자들을 처단했으며, 대형 재난으로부터 시민들을 구한 테오 샌더슨 백작에게 공작의 작위를 수여하고자 한다!
오늘부로 테오 샌더슨 백작은 위대한 영국의 공작이 되어 테오 샌더슨 공작이라고 불리게 됐음을 세상 모두에게 공표하노라!』
태오에게 프랑스와의 전쟁 승리와 런던 대홍수에서의 공로를 인정해 공작 작위가 수여됐고, 왕립 기상원장인 루크 하워드에게는 뛰어난 예보 능력으로 많은 시민의 목숨을 살린 것을 높이 사서 기사 자격이 주어졌다.
– 샌더슨 공작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공작님! 축하드려요!
– 축하합니다! 공작님!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축하받느라 정신없는 태오.
하지만 태오는 다른 사람의 칭송이나 공작 작위보다는, 18세기로 다시 돌아와 사랑하는 마리아 공주와 수많은 런던 시민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 크게 안도하고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