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72)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72화(72/217)
72화 알렉 파커의 최후 2
귀족은 귀족을 알아보는 법.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급스러운 차림새와 건방질 정도로 당당한 태도.
그의 시중을 들고 있는 시종과 수행 하인들의 세련된 행색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신분이라는 것을 누가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번즈 백작의 거칠 것 없는 기세에 알렉 파커는 물론 컬프 치안 판사의 눈빛까지 흔들렸다.
누구인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물어보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저벅. 저벅.
털썩-
태오의 옆자리에 앉은 번즈 백작이 다리를 꼬고서 알렉 파커와 치안 판사를 내리깔아 봤다.
“내 들어오면서 듣자 하니 기도 차지 않더군. 당신들 앞에 계신 샌더슨 경이 어떤 분이신 줄 알고 그렇게 함부로 입을 놀리고 있는 것이오?”
‘-경’이란 호칭에 치안 판사가 알렉 파커를 슬쩍 흘겨봤다.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알아챈 치안 판사의 원망 섞인 눈빛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알렉 파커가 괜한 호기를 부렸다.
“샌더슨 경이라니··· 험,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이 누구인지, 또 왜 이일에 이렇게 끼어드는 건지 모르겠으나, 나도 나름의 고급 정보를 가진 백작 가문의 장손이오.
저자는 런던에서 사업을 하는 양 나를 속였으나, 매파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소. 그리고 불과 몇 달 전까지도 평민이었던 것으로 똑똑히 기억하는데, 갑자기 경이라니?
지금 이런 심각한 자리에서 장난을 쳤다가는, 귀족 사칭으로 둘 다 감옥에 들어갈 각오를 하는 것이 좋을 거요. 험-.”
번즈 백작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귀족 사칭? 저 얼빠진 놈이 정말 제대로 모르고 있구만.”
“뭐···뭐요? 얼빠진 놈?”
번즈 백작이 호통치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네놈이 얼빠진 놈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이냐? 여기 계신 테오 샌더슨 경으로 말하자면, 매너스 공작의 생명의 은인이시고, 켄트 가문의 명예를 되찾아 주신 분이자···”
매너스 공작과 켄트 가문이란 말에 고개를 번쩍 드는 치안 판사였다.
“조지 국왕 폐하의 총애를 받고, 몇 달 전 준남작 작위까지 하사받으신 분이란 말이다!”
급기야 조지 3세의 이름까지 튀어나오자, 화들짝 놀란 치안 판사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말씀하고 계신 분은··· 누구신지···?”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사나운 인상의 시종이 치안 판사를 꾸짖듯이 소리쳤다.
“어허- 무례하십니다! 이분은 켄트주의 가장 고귀한 가문인 켄트 가문의 제5대 백작이신 안토니 번즈 백작님이시오!”
“네? 켄···켄트 가문··· 백작님이시라고요?”
“!”
켄트 가문의 백작이란 소리가 나오자 눈앞이 캄캄해지는 알렉 파커였다.
같은 백작이지만 그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미 몰락해버린 파커 백작 가문은 런던의 일개 기사만도 못한 하찮은 존재였다.
하지만 켄트 가문은 유럽 최고의 백작 가문으로 손꼽히는 것은 물론, 웬만한 공작 가문조차 고개를 숙일 정도의 부와 명성을 갖춘 집안이었다.
그런 백작이 테오 샌더슨을 떠받들며 높이 치켜세우고 있었다.
더구나 조지 국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니··· 이게 전부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입술이 바짝 마른 컬프 치안 판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번즈 백···백작님. 익히 존함은 듣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영광입니다.”
못마땅한 표정의 번즈 백작이 치안 판사를 나무랐다.
“그런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저 쓰레기 범죄자 놈부터 제대로 처단해야 하는 거 아니오? 샌더슨 경에게 다 들으셨겠지만, 이자가 행한 만행의 증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분통이 터져 죽을 것 같았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슬픔에 빠져있던 예비 약혼녀에게 와서 행패를 부리고, 약혼식조차 올리지 않은 자가 집안 금고 속에 남아있던 돈을 모조리 가져가, 도박과 내연녀의 집을 사는데 다 써버리다니! 저런 쓰레기 같은 작자가 세상천지에 또 어디 있단 말이오!”
번즈 백작의 험악한 꾸중에 알렉 파커는 식은땀을 흘리며 돌아가는 상황을 재빨리 파악했다.
‘치안 판사가 완전히 얼어서 저 번즈 백작이라는 놈 앞에 꼼짝도 못하고 있어. 에이씨-, 저 샌더슨이라는 놈하고 백작 놈은 도대체 오스본 집에 왜 있는 거야?
돈이 급한 나머지 제대로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찾아온 게 큰 실수였어.
이거 큰일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어떡하든 일단 여기를 도망가 숨어야 한다. 잘못하다간 정말 감옥에 갇혀 죽을 수도 있어.’
치안 판사는 태오에게도 허리를 깊이 숙여 사죄했다.
“샌더슨 경, 무례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파커 경의 이야기만 듣고 제대로 이 사건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태오의 표정이 냉랭했다.
“네, 확실히 그런 것 같더군요. 무엇보다 오스본 양이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직접 치안 판사실까지 찾아갔을 때도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다가, 저 파렴치한 알렉 파커가 나서니 냉큼 여기까지 달려온 당신의 행동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샌···샌더슨 경, 오···오해십니다. 그게··· 아니고···.”
태오는 블레이크 집사를 불러, 모아 놓은 증거를 모두 가져오게 했다.
곧, 알렉 파커 관련 수많은 증거가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자, 이것만 보더라도, 파커 경이 훔친 돈으로 내연녀의 주택을 사들인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택 매매와 관련해서는 중개사와 매도인의 증언이 여기에 다 있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도박장에서의 증언들도 전부 여기 모아놨으니 확인해 보십시오. 그리고 오스본 씨의 골동품을 팔아치운···. ”
알렉 파커의 행적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 모든 증언과 증거에 따르면 빈털터리 알렉 파커가 몇 달 만에 물 쓰듯 쓴 돈이 훔쳐 간 돈과 엇비슷하게 일치합니다. 금고에서 몰래 훔쳐 간 12만 파운드와 각종 골동품값을 합하면 최소 15만 파운드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놈입니다.”
“아··· 네. 네. 그렇군요.”
“그러니 당장 저놈의 사기 행각을 낱낱이 파헤친 후, 채무자 감옥에 집어넣고 모든 손해를 변상하게 해야 합니다.”
치안 판사가 태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몇 번이나 약속했다.
“네, 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당연히!”
그런데 그때,
불안한 눈으로 기회만 엿보던 알렉 파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팟-
후다다닥-
탁자를 밀치고 튕겨 일어선 그가 입구를 향해 냅다 뛰었다.
그러나 몇 발자국도 못가, 육중한 체구의 번즈 백작 시종이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 들어 올렸다.
“어딜!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알렉 파커는 볼썽사나운 꼴로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컥- 컥-.”
쾅- 콰당탕.
“우어억!”
시종의 우악스러운 손에 내동댕이쳐진 알렉 파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치안 판사는 전에 없던 엄숙한 목소리로 수사관들에게 명령했다.
“뭣들 하나! 당장 저 알렉 파커 놈을 체포해! 당장!”
“네! 치안 판사님!”
수사관들이 잡으러 덤벼들자 알렉 파커가 몸부림치며 악을 썼다.
“아···아니 치안 판사님!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저자들은 진짜 귀족이 아닙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사업가 행세를 하고 다니던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런데 국왕 폐하께 작위를··· 그것도 기사도 아닌 준남작을 받다니요? 절대 말이 안 됩니다. 저 번즈 백작이라는 작자도 완전 사기꾼 같습니다! 속아서는 안 됩니다! 저자들을 붙잡아 조사를 해봐야 합니다! 다 가짜입니다!”
그러나 더는 알렉 파커의 말이 먹히지 않았다.
눈을 무섭게 치켜뜬 치안 판사가 태오와 번즈 백작이 들으라는 듯이 크게 호통쳤다.
“어허- 파커 경의 말이야말로 전부 거짓말투성이 아닙니까! 10만 파운드의 지참금도 그렇고, 가져간 2만 파운드로 마치 오스본 씨 공장을 위해 쓴 것처럼 말하더니 내연녀의 값비싼 저택을 사주고, 도박으로 다 날리고!
조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지금 드러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중형이요. 민사적으로는 채무자 감옥에서 최소 20년은 썩어야 할 것이고!”
채무자 감옥 20년 이란 소리에 턱이 덜덜 떨리고 정신이 나갈 듯한 알렉 파커였다.
이 추운 겨울에 채무자 감옥에 들어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회적으로 대접받고 살던 귀족에게 채무자 감옥은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든 무시무시한 형벌이었다.
알렉 파커의 귀족 친구도 채무자 감옥에 들어갔다 처참하게 맞아 죽어 나왔고, 또 어떤 이는 1년 만에 정신병에 걸려 정신병동으로 끌려갔다.
알렉 파커는 다급해졌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자신에게 15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빌려주거나 대신 갚아줄 사람은 없었다.
쿵-
알렉 파커가 다짜고짜 무릎이 부서지라고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리고 오스본 씨를 향해 엎드려 싹싹 빌기 시작했다.
“아···아버님··· 제가···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오스본 양과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정말 허튼짓 안 하고 오로지 캐서린만 바라보면서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돈도 필요 없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시고 결혼만 시켜주십시오. 손주를··· 백작의 작위를 받게 될 손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님, 그러니 제발···”
오스본 씨의 입가에 냉소가 흘렀다.
“내가 이 자리에서 너를 때려죽이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해라. 네 놈이 내 목숨보다 소중한 캐서린의 머리채를 붙잡고 돈을 내놓으라고 한 만행을 들었을 때···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너를 갈기갈기 찢어 도륙 내버렸을 것이다.”
“아···아버님.”
“그런데, 허허··· 뭐라? 캐서린만 바라보면서 살겠다고?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어찌 그런 뻔뻔한 소리를 이 상황에서 지껄일 수가 있지? 그것이 네놈이 말한 백작가 귀족의 고귀한 혈통이 보이는 자존심이라는 것이냐?
똑똑히 잘 들어라. 15만 파운드에서 단 1실링이라도 부족하면 절대 채무자 감옥에서 못 벗어 날것이다. 내 모든 것을 걸고서 네놈의 최후를 지켜보겠다.”
수사관에 의해 억지로 일으켜 세워진 알렉 파커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태오에게 다급히 절규했다.
“으허허허··· 살려주세요! 샌더슨 경! 살려주세요. 샌더슨 경, 부디 인정을 베푸세요! 제발!”
“어허- 빨리 나가!”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으어어어-.”
알렉 파커는 실성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르며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 1777년 1월 초
오스본 씨는 떠나갔던 숙련공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에녹 레드먼드씨 공장에서 두 배의 위약금을 물어주고 다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동안 고생했던 켄트 가문의 수공업자들에게는 두둑한 수고비와 보너스, 그리고 훌륭한 만찬을 준비했다.
만찬장 한편에서 태오와 오스번 씨, 번즈 백작, 피터슨 경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에 번즈 백작이 태오에게 물었다.
“갑자기 자메이카로 떠나신다니, 조금 놀랐습니다. 그럼 공장은 피터슨 경에게 맡기는 건가요?”
“네. 사실 애초에 면직업 투자를 해볼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방직 공장의 사장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오스본 씨가 피터슨 경을 도와 운영을 해주신다니, 저는 이 두 분만 믿고, 다른 사업을 일구어보려고요.”
피터슨 경이 궁금한 눈으로 물었다.
“자메이카에서 무슨 사업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물어도 될까요?”
“커피 농사를 해볼 생각입니다.”
커피 농사라는 의외의 얘기에 다들 큰 관심을 보였다.
“커피 농장을 인수하셨나 보군요?”
“네. 어떻게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커피 농장은 여기 방직 공장하고 다르게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아서 제가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번즈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이거. 엄청난 안목으로 유명하신 샌더슨 경이 직접 커피를 언급하신 걸 보니, 앞으로 커피에서 크게 이득이 나올 것 같은데요? 저도 투자를 좀 해봐야겠는 걸요? 하하.”
피터슨 경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커피라··· 제가 프랑스에 유학하면서 커피 산업에 대해서도 조금 들은 게 있는데, 프랑스의 경우 커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전체 국부의 5분의 1이 넘는다고 합니다.
현재 영국의 커피 산업은 거의 미미하니까, 그 막대한 커피 수익의 일부만 가지고 올 수 있어도 엄청난 이익이 생기긴 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 커피는 프랑스하고 네덜란드가 꽉 잡고 있는데, 그 시장을 뚫기가 쉬울지는 모르겠네요.”
“네, 그래서 자메이카 커피 농장의 상황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결정하려고요.”
“그렇군요.”
그렇게 사업에 관한 얘기가 끝날 때쯤, 오스본 씨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참, 오늘 아침에 시장님께 들렸다가 알렉 파커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모두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그 나쁜 자식은 어떻게 됐답니까?”
“결국 이틀 전에 채무자 감옥으로 이송됐다고 합니다. 아버지인 파커 백작은 돈이 없다면서 아들과 의절했다고 하네요. 주변에 누구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최소 25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라고 시장님이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컬프 치안판사는 판사직을 박탈당했고요.”
올해 흉년이 들면서 채무자 감옥 안의 생활 역시 더욱 곤궁해졌다.
마셜시에 있는 채무자 감옥에서는 3개월 만에 300여 명이 굶어 죽거나 전염병에 옥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게다가 혹독한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추위에 얼어 죽는 죄수들도 속출할 예정이었다.
살아있는 지옥이라 불리는 곳으로 끌려간 알렉 파커는 제 발로 오스본 씨 집으로 찾아간 일을 죽을 때까지 후회하겠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돈 한 푼 없이 가족마저 등을 돌린 그에게 남은 것은 감옥 안에서의 쓸쓸하고 비참한 죽음뿐이었다.
◈ 며칠 후, 오스본 씨 저택.
번즈 백작과 켄트 가문의 수공업자가 모두 떠난 후, 피터슨 경과 캐서린의 성대한 약혼식이 열렸다.
며칠 후에 런던으로 떠나는 태오를 배려해 봄에 하려던 약혼식을 오스본 씨가 일부러 앞당긴 것이다.
피터슨 경의 부모와 담소를 나눈 오스본 씨가 태오의 자리로 건너와 합석했다.
♪~♬♪~♪♪~♬~
경쾌한 연주에 맞춰 피터슨 경과 캐서린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오스본 씨가 입을 열었다.
“저 모습을 보니, 저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샌더슨 경과 함께 본 그날이 문득 생각나는군요.”
오스본 씨가 자기의 생일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알렉 파커를 선택했던 일이···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고,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너무나 아찔하네요.”
“사람은 누구나 욕심에 눈이 어두워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되고 괜찮다고 싶을 때, 욕심이라는 불청객이 늘 속삭이기 마련이죠.”
“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그릇된 욕심을 살아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요.”
오스본 씨가 태오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결과가 샌더슨 경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리카도 경과 피터슨 경, 번즈 백작님, 그리고 캐서린과 블레이크 집사님···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인 덕분이죠.”
“곧 자메이카로 가신다고요?”
“네. 런던으로 가서 준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자메이카로 건너갈 예정입니다.”
“공장일은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와 피터슨 경이 열심히 돌보고 있겠습니다.”
“하하, 걱정이라니요? 오스본 씨 공장이었으니, 오히려 제가 더 부탁을 드려야죠. 솔직히 지금도 오스본 씨가 땀 흘려 일군 공장을 제가 하루아침에 뺏은 것은 아닌지 죄송한 마음이 더 큽니다.”
오스본 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일군 건 맞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공장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살려주신 것은 샌더슨 경입니다. 샌더슨 경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무참히 헐려 나갔을 공장입니다. 제게는 정말 자식 같은 공장이었습니다. 샌더슨 경이 제 자식을 살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죠.”
“······.”
“이 공장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다른 사업에 전념하십시오. 제가 죽는 그 날까지 공장 지배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대신 월급은 확실히 챙겨 주셔야 합니다. 허허허.”
말만 들어도 든든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럼요. 업계 최고의 직원인걸요? 제가 업계 최고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그때 캐서린이 환하게 웃으며 오스본 씨 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
“응?”
캐서린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랑 한 곡 추세요.”
“녀석아. 이 좋은 날에 술 취한 노인네랑 무슨 춤을···.”
캐서린이 오스본 씨의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렸다.
“어서요. 아버지랑 꼭 추고 싶었단 말이에요.”
태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오스본 씨 안 계실 때, 따님이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춰본 지 너무 오래됐다면서 그걸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모릅니다.”
“허허··· 그랬습니까?”
“연주곡이 바뀌었어요. 빨리 나가요, 아빠!”
“허허, 이거 참.”
♪~♬♪~♪♪~♬~
아름다운 연주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부녀의 행복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태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