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75)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75화(75/217)
75화 노예 경매
◈ 며칠 후, 세인트 앤드류 해발 600미터, 클라이덴 커피 농장.
태오는 마틴 씨와 함께 다른 커피 농장들을 둘러보고 다녔다.
인맥이 두터운 팔머 농장의 총관리인 마틴 씨 덕에 주변 커피 농장을 돌며 견학까지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자메이카 커피 농장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클라이덴 커피 농장에서 커피 열매 세척 과정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쏴아악- 쓱싹-
바구니에 가득 담긴 커피 열매를 흑인 노예들이 커다란 통에 쏟아붓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그것을 세척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괜찮아 보이는 열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열매, 심지어 다 썩은 열매까지도 한꺼번에 다 따서 사용하고 있네. 저래도 되는 건가?’
커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태오가 보기에도 너무 마구잡이식인 것 같았다.
커피 열매를 따고 모으는 작업에 좀 더 세심한 손길이 필요해 보였다.
‘어디···.’
대형 통 안에 세척을 위해 들어간 열매를 내려다보던 태오는 주위에 떨어진 커피 열매를 하나 집어 올렸다.
확실히 며칠 전 태오의 커피 농장에서 보았던 열매보다 크기도 작고 과육도 부실했다.
‘커피 회사 CEO 회원 말에 따르면, 고도 2천 미터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블루마운틴이 커피 열매가 나온다고 그랬었단 말이지.
그럼, 우리 커피 농장보다 훨씬 고도가 낮아서 여기 커피 열매들이 이 모양인 건가? 주변 커피 농장들 대부분이 품질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은데?’
탁- 탁-
태오는 주위의 땅을 발로 밟아보았다.
‘더구나 비가 오면 배수가 잘 안 되는 곳인데···. 이런 장소에는 어떤 농작물을 키운들 제대로 자랄 수가 없어. 커피나무도 마찬가지야. 좋은 품질의 열매가 이런 땅에서 절대 나올 리가 없지.’
드르륵-
세척을 마친 커피 열매들이 자루에 담겨 건조를 위해 옮겨지고 있었다.
‘저렇게 질이 떨어지는 열매까지 마구잡이로 섞어서 건조해버리면, 양은 많아질지 몰라도 좋은 커피가 안 나올 것 같은데···.
모름지기 어떤 음식이든 좋은 재료가 90%다. 커피도 좋은 질의 열매를 써야 맛도 좋아진다는 건 당연한 이치일 테고.’
태오의 눈썰미는 정확했다.
가치가 떨어지는 커피 열매를 마구 뒤섞어 판매하는 방식 때문에 자메이카 커피는 매우 싼 가격으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거기다 수확하는 양까지 적은 바람에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결국 네덜란드나 프랑스 등의 커피 대국과의 대결에서 이득을 보려면, 그들의 커피보다 훨씬 더 뛰어난 맛을 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단순히 이곳 영세한 커피 농장과의 대결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적은 수확량이라도 아주 좋은 향과 맛을 내는 커피가 필요해. 프랑스의 잘 나가는 커피 농장과 대결해도 확실한 우위를 가질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수익을 낼 수 있어.’
그렇게만 된다면, 커피 산업이 죽어 있는 영국에서 엄청난 이득을 기대해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커피에 대해 정말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건데···.’
커피처럼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작물의 경우, 커피 재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품질은 물론 수확 시간까지 크게 아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의 커피 농장들은 태오가 보기에도 전문성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왜 자메이카 커피가 영세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이었다.
‘수준 낮은 커피 농장뿐인 자메이카에서 커피 전문가를 어떻게 구하지? 영국에서라도 구해봐야 하나.’
하지만, 커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영국에 제대로 된 커피 전문가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점점 고민이 늘어가는 태오였다.
◈ 다음 주, 자메이카 킹스턴 항구 앞.
흑인 노예 경매가 시작된 날.
며칠간 커피 농장을 돌며 경쟁력을 확인한 태오는 고심 끝에 커피 농사를 지어 보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피 농장에서 일할 일꾼이 시급했다.
태오는 농장에서 일할 흑인을 구하기 위해, 2륜 마차를 타고 킹스턴 항구 쪽으로 내려와 보았다.
노예 경매가 시작 날이라 그런지, 항구 쪽은 몰려든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노예 경매는 식민지에 이주해 살고 있던 영국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볼거리로 여겨졌다.
‘경매를 보려고 아침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와 있다니.’
타고 온 마차를 한 곳에 세워둔 태오가 주위를 살폈다.
광고지가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고, 노예선에서 일당을 받은 아이들이 북을 치며 연신 ‘노예 팔아요!’를 외치고 다녔다.
퍼벙- 펑-
오늘 경매가 열리는 노예선에서는 축포까지 쏘아 올리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식민지인들에게 노예 경매가 열리는 날은 축제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현대를 살다 온 태오로서는 씁쓸하고 불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태오의 눈에 많은 사람이 줄지어 올라가는 커다란 노예 무역선이 보였다.
‘저 배에서 노예 경매가 이루어지나 보군.’
갑판 위로 오르자 한쪽 구석에 쇠사슬로 묶인 수많은 흑인 노예가 보였고, 가운데에는 노예들이 올라갈 단상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묶여 있는 노예 상당수가 젊고 건장한 흑인 남성들이었다.
자메이카는 사탕수수 등의 재배를 위한 대규모 농장이 많다 보니, 북아메리카 식민지보다 신체적으로 더 튼튼하고 젊은 흑인 남성 노예가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힘 좋고 젊은 흑인 노예들이 자메이카로 많이 잡혀 왔다.
“어서 오세요! 어서들 오셔서 잘 보십시오! 광고지에 실린 대로 이번에는 정말 최고의 검둥이들만을 엄수해왔습니다.”
경매를 맡은 사회자가 능글맞은 웃음과 화려한 언변으로 모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더 이상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자, 드디어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다.
“저기 보십시오. 사내 검둥이들은 이빨도 단단하고 팔다리가 아주 튼튼합니다. 거기다 긴 여행에도 아무 문제없을 정도로 건강하고 순종적이죠. 저 검둥이 한 놈이 사탕수수밭에서 다섯 명의 몫을 해낼 겁니다.
그리고 저기 구석에 있는 계집 검둥이들도 아주 착하고 젊고 활동적이라 집안일이나 밭일도 혼자 거뜬히 해치울 겁니다.”
오늘 처음 본 흑인 노예들을 사회자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떠벌려 댔다.
“자, 오늘 좋은 물건이 너무너무 많으니, 바로 경매를 진행하겠습니다. 페드릭! 준비된 검둥이들을 위로 올려보내요!”
흑인 노예 옆을 지키고 서 있던 백인 남성들이, 족쇄와 수갑을 찬 세 명의 흑인들을 단상 쪽으로 끌고 올라갔다.
쿵쿵- 철커덩- 드르륵- 드르륵-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 크큭. 저것 봐!
– 어머, 망측해라, 호호.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끌려 나온 흑인들이 완전히 발가벗겨진 알몸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는 신체 검증을 용이하게 해 빠른 경매를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갑판 위는 물론 배와 연결된 부둣가까지 구경꾼들로 꽉 들어찼다.
“자! 경매 개시 상품 이벤트로 아주 싼값에 3명의 튼실한 흑인을 올렸습니다. 여러분! 가격을 듣고 너무 싸다고 기절하지는 마십시오! 가격은···”
세 명의 흑인 노예에 대한 저렴한 가격이 발표되자, 여기저기서 경쟁이 붙었고 금세 낙찰자가 선정됐다.
이번에는 흑인 노예 네 명이 한 단위로 묶여 단상 위에 세워졌다.
서인도제도의 식민지에서는 많은 일손이 필요한 대규모 농장이 많았기 때문에 개별 판매보다는 이런 묶음 단위의 판매가 일반적이었다.
이때 좋은 상태의 흑인과 그렇지 못한 흑인을 적당히 섞어서 팔았고, 그렇게 한 묶음 단위의 흑인들이 다 팔려야 다음 흑인 노예들을 단상 위로 올리는 방식으로 경매를 진행했다.
‘어휴···.’
역사책으로만 봤던 흑인 노예 경매 현장을 직접 지켜보는 태오의 마음은 찹찹하기만 했다.
무엇보다도 끌려 올라가는 흑인들의 감정 상태가 말도 안 되게 좋지 못해 많은 신경이 쓰였다.
두려움과 분노, 슬픔과 우울함이 한데 엉켜 보기에도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자아내고 있었다.
‘아··· 감정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울분이 심하게 차 있지만, 강한 두려움이 그 폭발을 간신히 막고 있을 뿐이야.’
과연 저런 감정을 가진 노예들을 사서 제대로 농장이 굴러갈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역사책 속에서 보았던 끔찍한 흑인 노예 폭동이 일어날 만했구나. 저 정도의 감정 깊이라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
경매는 생각보다 신속히 진행됐다.
최근 농장마다 일손이 부족했는지, 흑인 노예들은 단상에 올라가자마자 높은 가격에 바로바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병든 노예나 아이가 있는 흑인 여성 노예들은 잘 팔려나가지 않았다.
그런 경우 노예 상인이 아닌 선장과 농장 주인 간에 직접 흥정이 오가는 것 같았다.
갑판 위에서의 거래가 끝나고 나면 흑인 노예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매수한 농장 주인의 책임이 돼 버린다.
병에 걸려서 죽든 도망가서 죽든, 모든 것이 농장 주인의 손해로 돌아갔다.
그런 이유로 거래가 끝난 즉시, 불에 달군 은제 낙관으로 주인의 이니셜을 가슴이나 등에 지지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였다.
치이이익-
“끄으아악-.”
자지러지는 비명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팔려나간 흑인의 어깨에 벌겋게 달궈진 은제 낙관이 찍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태오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살이 타오르는 끔찍한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만 같았다.
‘안 되겠어. 아무래도 경매장에서 흑인 노예를 사면 안 될 것 같아. 감정들이 너무 안 좋아. 차라리 돈을 더 주더라도, 영어도 할 줄 알고 이곳 삶에 적응된 노예들을 구하는 게 낫겠다.’
태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돌아서려 했다.
“뭐요? 아이를 낳았냐니?”
그런데, 선장과 농장주 간에 벌어진 작은 실랑이가 태오의 눈에 들어왔다.
“이 여자 검둥이··· 아이를 낳은 거 아니오? 아무리 봐도 딱딱한 가슴이나 처진 아랫배를 보아하니 얼마 전에 출산한 것 같은데?”
선장의 얼굴이 일순간에 험악하게 구겨졌다.
“뭔 아이를 낳았다고 억지를 부리는 거요? 결혼도 안 한 생 처녀구만!”
어떤 젊은 흑인 여자 노예를 두고 벌이는 신경전이었다.
농장주가 사고 싶은 흑인 여자에게서 출산의 흔적을 발견한 듯싶었다.
태오가 선장 뒤에 서 있는 문제의 흑인 여성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은 표현하기 힘든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면서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눈물이 서려 그렁그렁한 큰 눈과 팔자로 접힌 눈썹, 정신없이 흔들리는 불안한 눈동자.
초조하고 미칠 것 같은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태오의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저 흑인 노예는 자기가 팔려나가는 두려움보다 다른 것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있어. 잃어버린 소중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저 농장주 말대로 자신의 아이가 여기 어딘가에 있는 건가?’
그 모습이 얼마나 안 돼 보였는지, 태오는 자기도 모르게 흑인 여자 노예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당장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했던 자메이카에서는 갓난아이가 있는 여성 노예는 잘 팔리지 않았다.
젖먹이가 있는 여성 노예의 경우, 아기를 돌본다고 제대로 일을 못 하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아기를 억지로 멀리 보내버리면, 십중팔구 깊은 상실감에 일이 뒷전이거나 시름시름 앓다 깊은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까닭에 노예 무역선 선장들은 어떡하든 아이를 숨기려 했고, 몰래 바다에 던져버리는 일도 공공연히 자행됐다.
“에이, 아이가 없다고 해도 저런 청승맞은 눈빛이면 일도 잘 못 하겠구먼. 됐수다, 다음번에 사야지, 뭐.”
손을 털고 돌아서는 농장 주인의 모습에 선장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뭐야? 사지도 않을 거면서 왜 시비를 걸고 그런 거야. 나 원 재수가 없으려니.”
화가 잔뜩 난 선장은 옆에 있던 상자를 발로 냅다 걷어찼다.
“에잇, 썅!”
꽈광-
흑인 여자 노예가 깜짝 놀라 움찔했지만, 이내 곧 다시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의 자기 처지보다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 속에서도 꽤 의연하고 섬세한 감정이 읽혔다.
‘슬픈 감정으로 가려져서 그렇지, 심성이 무척 섬세하고 감정이 풍부한 여성이야. 의지력도 아주 강하고. 우리 커피 농장에 데리고 가면 세심하게 일을 잘 할 수도 있을 듯한데···.’
자메이카에 어느 정도 익숙하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노예를 구하려 했지만, 이 여자 노예의 안타까운 사정이 감지된 이상 매정하게 돌아서기가 힘들었다.
태오는 자기도 모르게 씩씩대고 있는 선장에게로 다가갔다.
“저 여자 노예의 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고개를 홱 돌린 선장이 두 눈을 부라리며 태오에게 성질을 부렸다.
“이런, 썅! 오늘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왜 이래. 아니, 이보슈? 도대체 저년의 애가 어디에 있다는 말이요? 그리고 설사 애가 있다고 해도 그게 당신이랑 뭔 상관이요? 엉! 그딴 애새끼야 그냥 바다에다 던져버리면 그만인데!”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의 말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여기는 노예 매매가 합법인 18세기다.
태오는 최대한 차분하게 대처했다.
“그래서, 저 흑인 여자 노예는 얼마에 팔 생각이오?”
태오가 뜬금없이 노예의 가격을 묻자, 선장이 퉁명스레 답했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묻는 것이걸랑 그냥 가시오.”
“사려고 물은 거니 가격이나 말해 보시오.”
선장은 산다는 말에 그제야 조금 누그러진 표정이었다.
“험- 60파운드요! 이것도 정말 적게 부른 거지만.”
“50파운드에 사겠소.”
선장의 입술이 얇아지고 눈꺼풀이 당겨지면서 분노의 미세표정으로 바뀌었다.
“이 양반이··· 열받은 사람 앞에서, 지금 장난하나?”
다시 성질을 부리는 선장의 얼굴에 대고 태오는 태연하게 말했다.
“저 여자의 아이도 포함된 가격이요. 어차피 저렇게 아이를 잃고 슬퍼하는 여자 노예라면 50파운드에라도 데려갈 사람을 찾긴 힘들 거요.”
“뭐···뭐요? 이 사람이! 아이 따윈 없다니까!”
버럭버럭 우기는 선장의 눈을 태오가 가만히 응시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대번에 읽혔다.
선장은 무척 다혈질이긴 했지만, 아이를 바다에 던질 만큼 모진 사람은 되지 못했다.
“아이가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 빨리 아이를 데리고 오시오. 아무리 노예로 팔려 왔어도 엄마랑 같이 사는 게 맞지 않겠소?”
선장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뭐···뭘 다 알고 있다는··· 소리요? 험-.”
선장은 속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한 태오의 눈빛에 이상할 정도로 주눅이 들었다.
태오가 재촉했다.
“어떻게 할 거요? 지금 바로 50파운드에 저 여자 노예와 그 아이까지 합해서 팔지 않겠다면, 나는 그만 가겠소. 다른 곳에 빨리 가봐야 하니.”
선장이 머뭇거리자, 태오가 바로 뒤돌아섰다.
“그럼, 거래는 없던 걸로 합시다.”
그때였다.
“아··· 알겠소! 거참. 이 양반 완전 꾼이네, 꾼이야.”
한숨을 푹 내쉰 선장은 멀찌감치 서 있던 선원에게 손짓했다.
“네, 선장님.”
“이년 애 좀 데리고 와!”
선장의 지시에 선원이 갑판 아래에 창고로 내려가더니, 더러운 천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갓난아기를 안고 올라왔다.
선원이 아이를 데리고 올라오자마자 여성 흑인 노예는 미친 듯이 펄쩍펄쩍 뛰며 오열했다.
“아바! 아바! 흐흐흑-”
태오가 선원에게 말했다.
“어서 빨리, 그 아이를 엄마 품에 안겨주세요.”
여자 노예는 수갑을 찬 손으로 아이를 꼭 끌어안고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도 놀랐는지 덩달아 울음을 크게 터트렸다.
“응애- 응애-”
주위에 구경 왔던 사람들도 모두 그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이것들이 재수 없게!”
선장이 긴 채찍을 들려는 순간, 태오가 버럭 소리쳤다.
“뭐 하는 거요! 내 노예요! 건드리지 마시오!”
역정을 부리는 태오에 움찔한 선장은 헛기침하며 손을 내밀었다.
“험, 험. 그럼 어서 빨리 50파운드나 내고 데려가시오!”
돈을 건넨 태오는 여전히 울고 있는 여성 흑인 노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말을 전했다.
“내가··· 당신을··· 샀어요. 당신의 아이도 함께 갈 테니··· 걱정 말고 그만 울어요.”
그녀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눈치가 매우 빠른 여자였다.
태오가 자신과 아이를 함께 샀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앉더니, 태오의 신발에 대고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생소한 아프리카 부족 언어로 크게 울부짖었다.
당황한 태오가 하지 말라고 말렸건만, 그녀는 계속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바닥에 엎드린 그녀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자 그제야 고개를 들고 태오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눈물 범벅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 이 머나먼 곳으로 끌려왔다는 두려움보다, 아이를 찾았다는 기쁨에 짓는 행복한 웃음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쥬바’라고 칭하고, 아이를 가리키며 ‘아바’라고 했다.
“쥬바··· 아바···.”
태오가 여자와 아이를 손으로 짚으며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