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79)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79화(79/217)
79화 스펜서 씨의 꿈
◈ 이틀 후, 자메이카 세인트 앤드류(St. Andrew).
이른 아침, 태오는 스펜서 씨를 이끌고 커피 농장으로 향했다.
한참 마차를 타고 마지막 여관에 도착한 후, 말과 마차를 그곳에 맡기고 다시 걸어 올라갔다.
그렇게 산을 탄 지 몇 시간 후.
스펜서 씨가 빠르게 지쳐갔다.
건강한 체질이라지만, 60대 노인이 몇 시간에 걸쳐 험한 산길을 오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헉, 헉. 이보시오! 이거 너무 고지대 아니요? 이렇게 높은 곳에 커피 농사를 짓다니? 도대체 언제 도착한다는 겁니까? 원-. 당신 말대로라면 이미 도착했어야 하는 거 아니오?”
스펜서 씨의 볼멘 목소리에 태오가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진짜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시면 도착입니다.”
“아까부터 계속 다 왔다고만 하니··· 이거 원.”
태오의 커피농장은 자메이카 섬의 동부 산맥이 가로지르는 세인트 앤드류 지역 해발 고도 약 2,100m의 고지대 비탈면에 있었다.
사실 젊은 사람도 걸어서 올라가기에 힘겨운 산길이었으니, 스펜서 씨의 불평도 이해할만했다.
“헥- 헥-”
태오는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산비탈을 올라가야 했다.
괜히 일을 맡았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민 스펜서 씨였지만, 지금은 화낼 기운도 없었다.
그런데 멀찌감치 앞서가던 태오가 산 능선 위에서 앞을 내다보며 멈춰 서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젊고 튼튼해 보이는 녀석도 힘들어 쉬는 모습에 스펜서 씨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악을 썼다.
“헉, 헉. 아니, 처음부터 이 정도 높이의 비탈면에 있다는 걸 말했어야지! 도대체 무슨 커피 농장을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
그런데 그 순간,
스펜서 씨의 눈앞에 산비탈 아래로 빽빽이 펼쳐진 커피나무의 모습이 들어왔다.
‘···!’
햇볕이 강렬했음에도 산봉우리 정상의 짙은 안개가 뜨거운 해를 가려 서늘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연한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안개는 산 주위를 에워싸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했다.
블루마운틴이라고 불릴만한 멋진 풍경이었다.
하지만 블루마운틴보다 스펜서를 사로잡은 것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커피나무들이었다.
“여···여기인 거요? 당신의 커피 농장이···?”
그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태오는 손을 뻗어 비탈면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여기서부터 저 아래 끝까지 전부 제 커피 농장입니다. 이 커피나무들은 4년 전에···”
후다닥-
태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펜서 씨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겁지겁 비탈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조금 전까지 죽을 듯이 힘들어하던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스펜서 씨! 조심하세요! 미끄러지면 크게 다치세요!”
태오의 외침에도 스펜서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비탈을 뛰다시피 내려갔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자란 커피나무들을 만지고 살피기에 바빴다.
한동안 정신없이 커피나무를 보던 그가 비탈면 안쪽에 있는 키 큰 나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짙은 녹색의 커피 열매를 따서 손으로 이리저리 돌리고 눌러보았다.
그렇게 한참 열매를 살핀 그가 그것을 입에 넣고 눈을 감았다. 커피 열매 맛을 음미하고 있는 듯했다.
태오로서는 무척이나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커피나무를 오랫동안 재배한 농부들은 커피 열매의 맛으로도 그 커피의 품종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열매의 맛으로 로스팅될 원두의 가치까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하니, 어린 시절부터 커피 열매를 다뤄 본 스펜서 씨 같은 전문가는 아마도 이미 그 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퉷-”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던 스펜서 씨가 눈을 뜨고서 커피 열매의 과육을 뱉어냈다.
그리고 커피 열매의 생두 씨앗만 빼내서 손 위에 올려놓고서,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긁어낸 후 다시 자세히 살폈다.
태오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숨죽이고 지켜봤다.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낙이 없어 보이던 스펜서 씨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모든 걸 다 귀찮아했다.
커피로 큰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커피가 세상에서 젤 지겹다는 말까지 했었다.
그런 그의 눈에서 생기가 돌았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뜨거운 열정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태오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다가가 물었다.
“스펜서 씨, 어떻습니까? 상품성이 있어 보입니까?”
태오의 물음에 스펜서 씨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
“으흐흐흐···”
“?”
그는 대답 대신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푸른 안개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태오에게 나직이 입을 열었다.
“샌더슨 경··· 내가 40년 넘게 커피 무역 일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뭔지 아시오?”
“?”
“그건 바로 사업에서 원하는 것 이상을 욕심내면 반드시 탈이 생긴다는 거였소.”
“······.”
“커피가 그랬지요. 커피로 아주 떼돈을 벌면서 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을 벌 것 같았소. 그 빌어먹을 사탕수수 대농장을 가진 의회 의원 나리들도 내 앞에서 돈 자랑 못 할 정도로 말이요.”
그는 손수건을 꺼내 목과 이마의 흥건한 땀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원하고 목표로 삼았던 것 이상을 욕심내면, 그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서 절제력을 잃기 십상입디다.
자기가 가진 패의 힘은 사실 그 패에 딱 정해져 있는데, 일단 절제력을 잃고 전체를 보는 눈이 사라지면 말도 안 되는 무리수를 두게 돼 버리거든.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곧 후회할 일을 벌이는 것이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은 스펜서 씨가 주위의 커피나무로 고개를 돌렸다.
“난 자메이카에서 커피를 재배해 품질 좋은 커피 원두에 나만의 가공법을 적용하면, 금세 영국을 다 휘어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지요. 나를 배신한 프랑스 동업자 놈에게도 보란 듯이 성공해서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리고 네덜란드나 프랑스도 내 커피 맛에 노예가 될 정도로 난 강한 패를 손에 쥐게 될 거라고 확신하면서 내 인생의 모든 노하우를 자메이카에서 쏟아부었소, 큭큭.”
“······.”
“근데 막상 패를 열어 보니 아니더라고. 영국은 중국이나 인도의 차(Tea)로 내 패를 엎었고,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내 패를 막았소.
내 커피는 분명 훌륭했지만, 현 커피 시장을 뒤엎을 정도의 대단한 원두는 아니었거든. 그저 조금 더 나은 맛을 가진, 하지만 더 싸거나 더 입맛에 맞는 것이 등장하면 미련 없이 버려질 그저 그런 커피.”
“······.”
“그걸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나는 모든 의욕을 잃고 말았소. 커피에 자신도 없어지고. 결국 내 어리석음을 후회하면서, 그 이후로 난 커피 사업을 그만두었소. 다신 하고 싶지 않더라고.”
“······.”
“그런데 말이요···.”
스펜서 씨가 태오를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해 다신 도박하지 않겠다던 도박쟁이들이 늘 하는 상상이 하나 있다고 하지요. 그때 내 패가 그 어떤 패에도 밀리지 않을 아주 강력한 것이었다면, 그러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헛된 상상 말이요.”
스펜서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태오에게 커피 열매의 씨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런데, 샌더슨 경! 지금 아무래도 내 손에··· 그런 패가 쥐어진 것 같소.”
기대 이상의 말에 태오가 반색했다.
“그럼, 우리 농장의 커피 열매가 그렇게 좋다는 뜻입니까?”
태오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진짜 커피 전문가의 극찬을 들으니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일시에 걷히는 기분이었다.
태오가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여기 커피나무의 상품 가치가 확실히 있다는 말씀이시죠?”
“상품 가치가 있냐고? 으흐흐흐···”
비웃는 듯한 웃음을 흘린 그가 산 정상을 감싼 안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샌더슨 경. 저기 저 산맥의 짙고 푸른 안개를 보시오. 오늘처럼 햇볕이 강렬한데도 저 안개가 커다란 가림막처럼 여기의 커피나무를 직접 내리쬐지 못하게 하고 있잖소?
그럼 커피나무의 성장은 자연히 느려지게 되지요. 그러면서 커피나무의 열매는 그 밀도가 월등히 높아지게 되는 거고.”
그랬다. 커피나무에 직접 내리쬐는 햇볕은 커피나무에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보통 커피 농장에서는 햇볕이 강할 때는 임시로 가림막 등으로 막으려고 애썼지만, 광활하게 퍼져있는 커피나무를 일시에 가리고 또다시 필요할 때 걷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블루마운틴 산맥의 비탈길에 위치한 태오의 농장은 짙은 안개가 자주 끼면서 직사광선을 적절히 막아줬고, 그 덕에 커피나무의 성장이 더디게 이루어졌다.
다른 농장의 커피와 비교해 품질이 월등히 좋았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휙-
스펜서 씨가 이번에는 왼팔을 쭉 뻗어 하늘로 들어 올렸다.
“샌더슨 경, 바다에서 불어오는 이 해풍을 한번 느껴보시오.”
태오도 그를 따라 팔을 뻗어 보았다.
정말 바다 쪽에서 밀려오는 잔잔한 바람이 육지 쪽으로 불어오는 게 느껴졌다.
“지금 불어오는 이 바람은 카리브해의 무역풍이오.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해풍이 불고, 밤에는 반대로 불게 되지요.
그러면서 아침, 저녁으로 온도 차가 벌어지게 되니, 커피 열매의 풍미는 그만큼 더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되고.”
손을 내린 스펜서 씨가 태오를 돌아보며 말했다.
“커피란 작물은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잘 키울 수 없다는 말이 있지요. 예민한 식물이라 제대로 맛을 내려면 환경이 잘 받쳐줘야 합니다. 특히,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커피를 만들려면 말이오. 그런데 난 이런 곳이 자메이카에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
그는 두 손을 들어 커피나무를 감싸듯 가리켰다.
“아까 상품 가치가 있냐고 물었소? 흐흐··· 여기의 커피나무들은 상품 가치가 있는 정도가 아니요. 엄청나요, 엄청나! 바로 올해 수확해 특급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네? 이 농장은 4년 동안이나 방치됐는데, 올해 수확이 가능하다고요?”
스펜서 씨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커피나무들이 20피트(약 6m)씩 자라있는 걸 보니, 정말 방치한 게 확실해 보입니다. 보통 농장에서는 수확을 편하게 하려고 7~9피트(약 2~3m) 정도로 계속 가지치기를 하거든요.
거기다가 수확 철이 훨씬 지나 여기저기 썩은 열매가 천지고요. 그런데 어떤 보살핌도 없이 자란 이 커피나무에 아직 달려 있는 열매들을 좀 보시오.”
그는 나무줄기에서 커피 열매 하나를 땄다.
“원래 최고의 상품을 위해서는 최소 5개월 전에 땄어야 해요. 그런데도 이렇게 깨끗하고 부드러운 커피 열매가 많이 남아 있다니. 40년 넘는 세월 동안 이렇게 좋은 커피 열매를 나는 본 적이 없소.”
“···그럼?”
“그렇소. 이런 커피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볼 것도 없이 최고의 커피가 될 수밖에 없어요. 이곳은 커피나무에 천국과도 같은 장소인 셈이오. 그리고 이 열매들은 하늘이 자연의 힘을 빌려 만들어 준 아주 특별한 선물인 거고, 큭큭.”
녹색의 커피 열매를 손바닥 위에 올려 눈앞으로 가져간 스펜서 씨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 열매들을 황금알로 만들 겁니다. 크크크.”
“황금···알이요?”
“그래요. 내가 장담하겠소. 이 농장 크기의 커피양이라면, 샌더슨 경의 커피 농장 전체를 은화로 가득 채우고도 남을 거요! 어디 두고 보시오! 으하하하-.”
“······.”
스펜서 씨가 웃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태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