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83)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83화(83/217)
83화 커피 농장의 활기
◈ 테오 커피농장
땅땅-
퍽-퍼벅-
커피 농장은 여기저기 들리는 망치질과 삽질 소리로 분주했다.
스펜서 씨의 지시로 농장 바로 옆에 생두 가공시설을 짓는 중이었다.
태오는 한쪽 구석에서 쉼 없이 소리치고 지시 내리는 스펜서 씨를 발견했다.
6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력이 넘쳐흘렀다.
“스펜서 씨!”
태오가 부르자 열심히 잔소리 중이던 스펜서 씨가 고개를 돌렸다.
“어이구, 샌더슨 경! 허허- 언제 오신 거요?”
서로 인사와 안부를 나눈 후, 태오가 건축 중인 시설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스펜서 씨. 대부분 커피 농장들은 항구 근처에 생두 가공시설을 짓고, 거기로 열매를 옮겨서 작업을 하던데요. 그래야 수출할 때 힘도 덜 들이고 빠르게 선적할 수 있어서 비용도 적게 든다고.”
스펜서 씨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멍청한 생각 때문에 커피 열매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질 나쁜 커피가 만들어지는 거요.
좋은 원두를 만들려면 생두 가공시설은 커피 농장 바로 곁에 둬야 합니다. 커피 열매를 수확하자마자 곧바로 가공 처리를 시작해야 최상의 품질의 유지할 수 있는 법이거든요.”
스펜서 씨의 말대로 수확한 커피 열매는 즉시 가공 처리를 해야 신선도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메이카 커피 농장 대부분은 항구 근처에 생두 가공시설을 두고 있었다. 비용 절감과 운송의 편리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가공 처리를 위한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항구로 이동 중 불가피하게 열매에 손상이 갈 수밖에 없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스펜서 씨가 짓고 있는 시설물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생두 가공시설을 지으려면 경험 많은 목수와 인부 등이 필요한데, 섭외도 어렵거니와 이 높은 산맥까지 과연 올까 싶어서 걱정을 좀 했었소. 무엇보다도 어서 빨리 커피 농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아주 힘들었지.
근데 저기 샘슨이랑 노예들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더라고. 일반 목수들보다 실력이 더 좋더군요. 내가 이런 시설 형태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하면, 샘슨이 나서서 내가 원한 것 이상으로 뚝딱 만들어 버리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구만. 허허.”
“그것참 다행이군요.”
“게다가 피터라는 친구는 기계가 고장 나면 요리조리 기계를 살펴보더니 대충 원리를 파악하고 금세 고쳐내더군. 지금까지 많은 노예를 부려 봤지만 이렇게 똑똑한 노예들은 처음이었소.”
노아의 조언을 듣고 샘슨과 피터 등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당시 샘슨을 판 농장 주인은 그가 한쪽 발이 없어 쓸모없다고 여겼고, 피터는 허약한 몸 때문에 싼값으로 넘겼었다.
사실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사탕수수즙을 짜내는 일을 하는 데는 샘슨의 목수 실력이나 피터의 기계를 다루는 기술은 별 쓸모가 없다.
덕분에 태오는 커피 농장에 딱 맞는 인재들을 손쉽게 얻은 셈이었다.
“아무튼 여기 노예들은 성격도 밝고 머리 회전이 참 빠른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연습 삼아 커피 열매를 따는 요령을 가르쳐주고 시켰더니, 정말 괜찮은 열매들을 잘도 골라왔소.
경험상 착한 흑인 노예들은 바보처럼 웃기만 하고 일을 잘 못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일도 잘하면서 마음들이 잘 맞으니 뭔가 나도 함께 일할 맛이 납디다. 잔소리도 덜 하게 되고 말이요, 허허.”
“하하, 그거 다행이네요.”
잔소리 덜 하는 게 이 정도라면, 그전에는 얼마나 대단한 잔소리꾼이었을까 싶었다.
“이것 봐! 거기를 더 내리라고! 그래야 빗물이 제대로 빠지지! 답답하긴!”
스펜서 씨는 겉으로는 역정을 냈지만, 자기 말에 따라 척척 일해내는 농장의 노예들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때마침 절뚝거리며 지나가는 샘슨에게 태오가 소리쳤다.
“샘슨! 이렇게 멋지게 짓느라 고생했어. 자네 방에다 따로 먹을거리와 건축 공구를 챙겨 왔으니 필요할 때 쓰도록 해!”
“아이고, 주인님. 그렇게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요.”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을 휘저으며 황송해하는 샘슨을 보니 든든하면서도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서른 중반의 샘슨은 이곳의 노예들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잘린 발 때문에 흑인 여성 노예들 누구도 그와의 결혼을 꺼렸다.
‘저 친구에게 적절한 짝을 맺어주면 좋을 것 같은데···.’
*
커피 농장 점심시간.
공동 식당의 테이블에는 태오가 가지고 온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들이 아주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태오의 짐을 들고 온 팔머 농장 흑인 노예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껏해야 카사바(길쭉한 고구마처럼 생긴 덩이뿌리 식물)나 플랜테인(바나나 비슷한 열매) 같은 것으로 요리한 음식일 줄 알았다가 기름지고 잘 차려진 요리에 깜짝 놀란 표정들이었다.
스펜서 씨까지 오자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흑인 노예들이 만든 음식이었지만, 백인 농장주의 부엌일을 담당했던 메리와 베키 덕에 꽤 근사한 요리들을 맛볼 수가 있었다.
일하느라 허기져 있던 커피 농장의 노예들은 허겁지겁 입에 떠 넣었고, 팔머 농장의 흑인 노예들도 정신없이 먹기 바빴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고, 태오가 흑인 공동거주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몇 주 사이이지만, 이곳이 많이 변했네요.”
원래 있던 건물들도 이미 정비를 해 놓아서 나쁘지 않았는데, 여기에 보완까지 하니, 거주지 전체가 매우 단단하고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과일을 먹고 있던 스펜서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날씨도 좋고, 샘슨이 워낙에 꼼꼼하게 잘하니까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같소. 아주 큰 농장에 가봐도 노예 거주지는 죄다 형편없는데, 이곳은 아주 별세상이 된 것 같다니까, 허허.”
스펜서 씨의 말대로 식민지의 노예 거주지는 어디를 가든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오두막이나 판잣집 같은 허술한 외형에, 침대는 받침목 위에 널빤지 두세 장을 걸쳐 놓고 쓰는 것이 전부였다.
가축이 머무는 축사와 다를 바 없는 공간이 이 당시 식민지 흑인 노예들의 집이었다.
이에 비해 태오의 커피 농장 공동거주지는 주거 공간과 부엌 시설은 물론 기타 생활공간도 꽤 그럴싸하게 꾸며져 있었다.
게다가 각자 사용할 수 있는 푹신한 이불까지 태오가 특별히 사다 넣어두었기 때문에, 커피 농장 노예들로서는 사치스러운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다른 농장의 흑인 노예 거주지에서는 제대로 된 이불 없이 마니옥 짚으로 짠 거적때기를 이불 삼아 자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천으로 만든 이불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백인이나 혼혈 관리인에게 몸을 파는 흑인 여성 노예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환경에 살았던 노예들에게 태오의 커피 농장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다운 보금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에 저는 샌더슨 경이 검둥이 노예들 생활에 왜 이리 신경을 쓰나 했습니다. 제가 살면서 이렇게 대접받는 노예들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노예들의 표정이 다르고 행동도 무척 의욕적이더군요. 열매를 살피고 딸 때도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때 제가 무릎을 쳤죠. 아- 샌더슨 경이 이걸 생각하신 거구나. 때리고 욕해서 일을 시키는 것보다 어쩌면 이렇게 잘 대접해줘서 일하면 훨씬 더 좋은 성과가 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저도 잔소리를 많이 줄였습니다, 허허.”
“네, 그렇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그 손에서 행복한 물건이 나오는 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노예들이지만, 저들이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해야 스펜서 씨나 제가 그토록 원하는 최고의 커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하하.”
스펜서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생두 가공시설이 커피 농장 바로 옆이라 위치도 좋고, 공장 크기도 널찍해서 생두를 세척하거나 가공하기에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건조장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햇빛이나 통풍 등이 원활한 구조라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샌더슨 경 덕분에 노예들이 저렇게 활력이 넘쳐서 알아서 일하려고 하니 일을 시키는 저도 편하고요.
모든 것이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아주 흡족합니다, 허허.”
“네, 정말 다행입니다.”
커피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인 스펜서 씨와 의욕에 넘치는 일꾼들. 그리고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커피 재배지.
과연 이곳에서의 커피는 어떤 향과 맛이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태오였다.
◈ 그레이 경 저택
커피 농장을 둘러본 태오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따각. 따각.
태오의 마차가 정원 한편에 멈춰 섰다.
그런데 누군가 정원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태오가 마차에서 내리자 서성이던 남자가 황급히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샌더슨 경!”
엘리사의 큰오빠인 조나단 버틀러였다.
“아, 버틀러 경? 안녕하세요?”
“농장에서 내려오시는 길이군요?”
인사를 건네는 그의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아, 네. 농장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혹시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요?”
“···네.”
“버틀러 양에게 무슨 일이 생겼군요?”
조나단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죠?”
“오늘 오후에도 레오나드가 집으로 와서 엘리사를 돌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에반스 자작 댁의 집사가 들이닥쳤습니다.”
“!”
“레오나드가 우리 집에 드나드는 걸 제이콥 에반스 자작이 알게 되어 노발대발했다는군요. 그리고는 레오나드를 억지로 끌고 갔습니다. 이것 때문에 엘리사는 또 몸져누웠고요.”
“저런.”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조금만 더 치료하면 급성으로 찾아왔던 엘리사의 전환장애 증상이 많이 호전되고, 그러면 혼자서도 이겨낼 힘이 생겼을 텐데.
태오는 본 적도 없는 제이콥 에반스 자작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나저나 직접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을 엘리사의 감정 상태가 걱정이었다.
“먼저 집에 가 계십시오. 정리하는 대로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미안해하는 조나단 버틀러를 보내고, 태오는 곧 따라갈 채비를 했다.
**
버틀러 경의 거실.
불행 중 다행으로 엘리사의 상태가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저번처럼 시력이 상실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고, 밝아졌던 감정이 다시 우울한 감정으로 바뀌어 갔다.
태오는 마음을 다스릴만한 얘기를 나누면서 엘리사의 감정을 다독여줬고, 잠이 든 그녀를 본 후에 다시 거실로 나왔다.
수심에 찬 버틀러 가족에게 태오가 말했다.
“한동안 엘리사와 레오나드를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서로 굉장히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사 런던을 다 뒤진다 해도 이 정도로 걸맞은 상대를 찾기는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버틀러 경의 가족들 역시 태오의 말에 동의했다.
이들도 레오나드를 오랫동안 보아왔고, 누구보다 괜찮은 남자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작 에반스 자작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엘리사는 자작에게 많은 이쁨을 받았고, 레오나드 집안 식구가 모두 그녀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제이콥이 에반스가 집안의 가장이 되고 자작의 지위를 받으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버틀러 부인이 힘겹게 입을 뗐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잘 어울린다는 건 저희도 알고 있지만, 제이콥 에반스 자작이 과연 우리 딸을 자기 동생의 결혼 상대자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우리 큰아들 때문에 장애를 입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런 사람이 가장으로 있는 집안에 우리 엘리사를 보내고 싶지도 않고요.”
태오도 부인의 마음이 이해됐다.
“네,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따님의 건강을 되찾는 것 아니겠습니까? 집안 간에 문제가 있어서 서로 멀리하게 됐지만, 일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님의 건강을 회복하고 난 뒤에 다른 일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큰아들 조나단이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렇긴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제이콥 에반스가 레오나드를 끌고 간 이상, 우리 집에 레오나드를 절대 보내지 않을 겁니다. 그 포악한 성격에 어쩌면 레오나드를 가두고 있을지도 몰라요.”
무언가를 고심하던 태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제가 빠른 시일 안에 에반스 자작 댁을 방문해 보겠습니다.”
버틀러 가족이 일제히 태오를 쳐다보았다.
“가서 제가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엘리사가 저렇게 다시 아프도록 놔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샌더슨 경.”
별다른 대책이 없어 한숨만 내쉬던 버틀러 집안 식구들은 태오의 마음 씀씀이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태오가 나선다고 제이콥이 마음을 돌릴지는 의문이었다.
“이런 때에 아이작 에반스 자작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자작님이 우리 엘리사를 얼마나 예뻐하셨는데···.”
안타까운 상황에 눈물짓는 버틀러 부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