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88)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88화(88/217)
< 88화 작전 시작 >
한 시간 후.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에반스 자작 저택 주변을 염탐하고 온 관리인이 돌아왔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상황을 보고했다.
“검둥이 놈들이 창고고 공장이고 닥치는 대로 불을 질러 놨습니다. 그런데, 에반스 자작님의 저택만은 멀쩡했어요. 위험을 각오하고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저택 안에 더러운 검둥이 놈들이 득실거리고 있더군요. 마치 지들 안방처럼 설치고 있었습니다.”
보고를 들은 태오가 버틀러 경에게 말했다.
“자작 가족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 은신처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작전을 시작해야죠?”
“네! 준비 마치는 대로 바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반란 노예들이 자작님 가족들을 찾아내기 전에 말이죠.”
*
버틀러 경 저택 앞마당에는 백인 관리인 40여 명과 경험 많은 노예와 물라토 관리인 50여 명이 서 있었다.
그들 모두 어설프게 급조한 영국군의 붉은 군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티가 났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영락없이 레드 코트(redcoat)를 입은 영국 군인처럼 보였다.
태오가 버틀러 부인을 칭찬했다.
“부인께서 정말 빨리 잘 만드셨네요. 영국 군인을 많이 보지 못한 흑인들로서는 저들이 정말 군인들처럼 보이겠어요.”
“네.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극도의 흥분에 사로잡힌 젊은 흑인들에게 어두운 밤, 그것도 횃불 사이로 비치는 붉은 제복의 행진은 공포 그 자체로 다가올 것이다.
태오는 앞마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전체적인 작전 과정을 전달했다.
그리고, 각자의 개별 임무에 관해 설명하기 전에,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약속했다.
“여러분은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 절대 아닙니다. 우린 상당한 거리를 두고서 저들을 상대할 것이기에 대피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제가 설명한 대로만 따라주시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이 작전을 마칠 수 있다는 걸 약속드립니다.
만약, 예상과는 다른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철수할 것이니 조금도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임무에서 지휘관이 던져주는 안전에 대한 확신은 부하들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준다.
“지금부터 임무를 부여할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하십시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는 명확한 임무의 숙지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현장에서 크게 당황하여 작전을 망칠 수 있다.
“우선 지름길로 가서 측면으로 침투하기로 했던 분들 손들어 주세요.”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이들은 전부 말을 잘 다루고 에반스 자작 저택 주위의 길을 여러 번 다녀본 백인 관리인 중심으로 뽑아둔 인원들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을 ‘침투조’라고 부르겠습니다. 침투조는 지금 바로 신속하게 지름길로 빠져 저택 입구 측면 쪽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다 입구 정면의 ‘본부조’에서 공중에 총을 쏘고 북과 나팔을 불며 진군하면, 반란 노예들이 크게 당황해 우왕좌왕하고 나와보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 바로 그때, 똑같은 방식으로 총을 쏘고 북소리를 크게 내면서 내려오시는 척만 하면 됩니다. 절대 숲에서 몸을 드러내지 마시고 내려오는 시늉만 하시는 겁니다.”
침투조에 해당하는 20명의 관리인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침투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에반스 자작 저택으로 향하는 길에 정면으로 진군할 ‘본부조’입니다. 손들어 보십시오.”
태오의 말에 20명의 백인 관리인, 50여 명의 혼혈 관리인 그리고 흑인 노예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네. 여러분들은 ‘본부조’입니다. 일단 마차와 말을 타고 에반스 자작 저택의 인근까지 갔다가, 좁아지고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 모두 내려서 군대식 전투 정렬로 나갈 겁니다.
단, 길이 좁으므로 일렬로 죽 서는 라인 배틀(Line Battle)이 아니라 4명씩 18줄 정도로 서게 됩니다.
훈련된 군인처럼 보이기 위해서 최대한 간격을 맞춰서 일정한 속도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군대의 행군으로 보일 것이니 앞뒤와 좌우 거리를 최대한 잘 맞춰주세요.”
본부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에 총을 들고 있는 관리인들은 제가 신호를 내리면 그때부터 장전 준비를 해주시면 됩니다.”
이 당시 총은 총구 안에 화약을 채우고, 탄환 장착 후 꽂을대로 다져놓은 뒤, 화약 접시에 화약을 채워야 하는 등 발사하기까지 상당히 번거로운 준비 과정을 거쳐야 했다.
“준비가 끝나면 지시에 따라 거의 동시에 하늘을 향해 발포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반란 노예들이 그 소리에 겁을 먹고 행동을 시작할 거니까요.
그리고 이후에 북이나 나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최대한 큰소리를 내면서 겁을 주면 됩니다. 국기와 깃발도 하늘 높이 들어 요란하게 흔들고요.”
태오는 이후에 에반스 자작 집안의 사람들을 구하러 들어갈 ‘구조팀’에게 임무를 설명하고, 이후 탈주하는 과정에서 각 팀의 역할 등도 간단하게 전달했다.
“제가 말한 것 중에 다른 팀의 임무는 기억하지 마십시오. 오로지 본인이 맡게 될 2~3가지의 임무에만 집중하고, 그것만 하면 되는 겁니다. 아시겠죠?”
인간이 기억에 오류가 생기지 않으면서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5개 이하.
이를 초과하게 되면 실전에서 문제가 생겨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태오는 각 조에 임무를 명확하게 배분하고 그 내용을 최대한 간단하게 숙지시켰다.
*
버틀러 경의 집에는 셋째 스티븐이 남아 지키기로 하고, 버틀러 경과 조나단, 벤자민 등이 에반스 자작 집으로 향했다.
총과 칼, 북과 나팔, 깃발 등을 있는 대로 챙겨 마차와 수레, 말 등에 실었고, 태오도 버틀러 경과 함께 수송용 마차에 올라탔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하죠?”
“앞에서부터 출발!”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마차로 다가와 태오의 팔을 붙잡았다.
내려다보니 에반스 자작의 농장에서 탈출했던 관리인 머피였다.
“샌더슨 경! 저도··· 저도 가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거기서 그렇게 당하고 오셨는데···.”
“아닙니다. 충격은 받았지만, 몸은 멀쩡히 괜찮습니다. 아이작 에반스 자작님이 살아 계실 때, 우리 가족에게 해 주셨던 걸 생각하면 저도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 애들에게 잘해주신 자작 부인도 있으시고요. 거기다 그곳 집안 구조를 정확히 아는 건 여기서 저밖에 없지 않습니까?”
태오가 팔을 내밀었다.
“그래요, 그럼. 같이 가주면 우리야 정말 고맙지요. 어서 같이 타고 가시죠.”
“네.”
늦은 밤 태오를 비롯한 90여 명의 사람이 에반스 자작 집으로 향했다.
*
덜커덩- 덜컹-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태오가 머피에게 물었다.
“혹시 에반스 자작 가족의 은신처가 어디인지 대충 짐작 가는 곳이 있으세요?”
머피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비밀 장소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가족분들과 집사 정도만 알고 있어요. 그런데···”
“?”
“혹시 부엌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작년인가 부엌을 수리한 수리공들의 얘기를 우연히 엿들었는데, 부엌 쪽의 벽이 조금 이상하다고 수군거렸거든요. 그때는 그냥 무심히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거기가 바로 비밀 은신처가 아닌가 합니다.”
“부엌이 다이닝룸에 가깝나요?”
“네, 바로 옆입니다.”
지난번 에반스 자작 부인에게 초대받아 식사하던 다이닝룸 바로 옆을 말하는 것 같았다.
‘···부엌이라.’
◈ 에반스 자작 저택 근처
에반스 자작 저택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목 입구.
저 멀리 보이는 저택 주위로 여기저기 불길이 치솟았고, 반란 노예들이 지르는 고성과 노랫소리로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탕- 타앙-
가끔 총을 발사하는 소리도 들렸는데,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느라 공중에 축포를 쏘는 듯했다.
반면, 눈앞에 화염에 휩싸인 건물들이 보이고 총소리까지 간간이 들리자, 버틀러 집안의 관리인들과 노예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자, 모두 이제 내려서 준비해!”
“다들 내려! 총하고 북하고 다 챙겨서 내려!”
버틀러 경의 지시에 모두 조용히 각자의 무기와 장비를 신속하게 챙겼다.
혼란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태오가 간략하게 주지시킨 임무가 자기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준비를 모두 마친 침투조 20명이 태오에게 알렸다.
“그럼 저희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네. 부디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아까 제가 했던 주의사항들을 잘 숙지하시고요.”
“네, 샌더슨 경!”
말을 탄 20여 명의 관리인이 각자 두 자루씩의 총과 북, 나팔 등을 챙겨 수풀사이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자, 그럼 우리도 준비하지요.”
탈출할 마차를 돌려놓고, 최소한의 인력만 남긴 상태에서 대열을 만들고 준비를 하는데 이십여 분의 시간이 흘렀다.
**
“조금 뒤면 측면 쪽에 침투조가 도착할 시간입니다. 이제 시작하도록 하죠.”
태오의 지시에 버틀러 경이 모두에게 명령을 내렸다.
“자, 4명씩 횡으로 줄을 이루게!”
총을 든 관리인들과 창을 든 흑인 노예들이 줄을 맞춰 차례로 섰다.
다들 긴장하고 있었지만, 입고 있는 옷과 총 때문인지 그런대로 군인다운 모습이 풍겼다.
“이대로 천천히 걸어가다가 저 앞에 보이는 큰 바위에서부터 총을 장전해 일제히 격발할 겁니다. 긴장하지 말고 아까 말한 각각의 임무에만 집중해 주세요.”
“네!”
드디어 준비가 끝나고 작전이 개시됐다.
선두에 선 태오가 손짓하자 대열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 멀리 들리는 반란 노예들의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소리가, 제식에 맞춰 울리는 일정한 발걸음 소리와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저벅- 저벅- 저벅-
드디어 큰 바위에 다다르자 태오가 짧고 강하게 명령했다.
“제자리에 서! 장전 준비!”
태오의 구령에 걸음을 멈추고 관리인들이 총을 수직으로 세우더니 총구 안에 화약을 채우기 시작했다.
쿵- 투둑-
그렇게 몇번의 과정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화약 접시에 화약을 채워 총을 어깨에 견착하고 총구를 공중으로 향하게 한 채로 발사 준비를 마쳤다.
태오는 준비상태를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고, 그런 그를 모두가 숨죽이며 초조하게 지켜봤다.
긴장도 잠시,
“격발!”
태오의 힘찬 명령과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부싯돌에 스파크가 일었다.
치칫- 치이익-
그리고 화약 접시의 화약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50여 자루의 머스켓에서 불꽃과 연기가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탕- 타탕-
퍼- 벙-
탕- 탕-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요하기만 했던 주변이 머스켓 총에서 터져 나오는 천둥 같은 소리와 불꽃으로 뒤흔들렸다.
동시에 뒤에 있던 흑인 노예들이 있는 힘껏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두둥-두둥- 둥둥-
빠바밤- 빠밤-
그러자 그렇게 소란스럽던 에반스 자작 농장 일대가 거짓말처럼 정적에 휩싸였다.
다시 장전을 마친 관리인들이 총이 태오의 지시에 맞춰 일제히 불을 내뿜었다.
“발사!”
탕- 타탕-
탕- 탕-
타타앙-
버틀러 경이 총소리에 놀라 넋을 잃고 서 있던 흑인 노예들을 다그쳤다.
“뭐 하고 있어? 너희들도 어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야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노예들이 북을 두드리고 나팔을 힘껏 불었다.
둥- 둥- 두둥- 둥-
빠라라- 빠라-빠빠빰-
“이번에는 조금씩 행군하면서 장전하는 대로 그대로 공중에 총을 쏘고 나가세요!”
태오의 명령에 70여 명은 일제히 걸어 나가면서 총을 쏘고 북과 나팔로 시끄럽게 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에반스 자작의 저택 왼편에서 큰 북소리와 함께 요란한 총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탕- 타당-
타탕- 탕-
탕- 탕-
두둥-두둥- 둥둥-
대기하고 있던 ‘침투조’가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침투조의 요란한 총소리에 버틀러 경이 크게 기뻐했다.
“하하하- 침투조의 저 소리가 어찌 이렇게 든든하고 반가울까요? 저거 진짜 20명 맞습니까? 메아리 때문인지 내가 듣기에는 한 200명이 쏘아대고 있는 느낌인데요?”
태오가 목소리를 높여 재촉했다.
“자! 우리도 다시 박차를 가합시다! 장전하고 바로 쏘세요! 뒤에서는 함성과 북소리 나팔 소리를 끊임없이 내보내고요!”
탕- 타당-
타탕- 탕-
둥-두둥- 둥-
빠바밤- 빠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