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Opened a Matchmaking Agency in 18th Century London RAW novel - Chapter (92)
18세기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92화(92/217)
< 92화 약혼 >
◈ 4개월 후, 1777년 8월.
자메이카 에반스 자작 저택.
태오는 스펜서 씨와 함께 에반스 자작 집에 와 있었다.
레오나드 에반스 경과 엘리사 버틀러 양의 약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노예 반란으로 엉망이 됐던 에반스 자작 저택은 그동안 많은 수리와 보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말끔하게 정리가 끝나, 거의 예전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자메이카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라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 보군요.”
에반스 자작 집에 처음 와보는 스펜서 씨는 농장의 규모와 저택의 크기에 놀란 표정이었다.
“농장에 일하는 흑인 노예만 천 명이 넘었을 정도니까요.”
“허- 그래요?”
그때 팔머 농장의 관리인 세바스찬 마틴 씨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샌더슨 경! 오래간만에 뵙네요? 스펜서 씨도 오래간만이고요.”
“아, 마틴 씨. 마틴 씨도 잘 지내셨죠?”
“네, 저야 뭐 늘 그렇죠. 하하. 그레이 경께 들었는데, 요즘은 계속 커피 농장에 계신다면서요? 그럼 런던에는 예정보다 더 늦게 가시는 건가 봅니다?”
“네. 원래는 몇 달 전에 런던으로 돌아가려 했었는데, 아무래도 농장 일을 옆에서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몇 달 더 뒤로 미루게 됐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던 마틴 씨는 뭔가 생각이 난 듯 태오에게 말했다.
“아, 참! 며칠 전 영국 맨체스터에서 샌더슨 경 이름으로 커다란 짐이 상선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오, 그래요? 부탁했던 면화인가 보네요.”
“네, 네. 그런 것 같았습니다. 혹시 그걸 커피 농장으로 가져가실 건가요?”
“네. 아무래도 언제 다시 내려올지 모르니, 약혼식이 끝나고 올라갈 때 가져가야겠네요.”
“그러면, 제가 함께 갈 노예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양이 꽤나 많아서 못 들고 가십니다. 올라가실 때 노예들을 붙여 드릴 테니 데리고 가세요.”
“아이고, 이거 매번 폐를 끼쳐 너무 죄송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아닙니다. 하하.”
인사를 마친 마틴 씨가 다른 사람에게로 가자, 스펜서 씨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샌더슨 경, 면화라니요? 혹시 노예들 옷감 재료라도 주문하신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 기억나십니까? 원두를 로스팅한 후에 커피를 내릴 때 쓸 천이 필요하다고.”
이 당시 커피는 주로 물에 원두 가루를 넣고 끓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것을 보통 터키식(Turkish) 커피라고 불렀는데, 구리주전자에 원두 가루를 부어 거품을 휘저어 가라앉히면서 끓이는 방식이었다.
현대의 맑은 원두커피에 익숙했던 태오로서는 18세기로 와 처음 먹어본 이 터키식(Turkish) 커피의 쓴맛과 원두 가루의 텁텁함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었다.
에스프레소 머신과 같은 기계나 종이 여과지가 있을 리 없는 시대라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이때 태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융드립’ 커피였다.
‘융’이란 것은 플란넬(Flannel) 소재의 천을 말하는데, 마침 태오가 사들인 오스본 방직 공장에서 잘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융’ 소재의 천이었다.
현대에 있을 때 원두커피의 향은 좋아하지만, 맛은 크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태오가 처음으로 그 맛에 감탄했던 것이 바로 ‘융드립’ 커피였다.
이 천을 사용해 드립 커피로 내려 먹으면, 원두에 있는 오일 성분도 함께 섞여져 깨끗한 원두커피의 맛을 한층 더 부드럽고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면의 종류에 따라 커피 맛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 천 선택 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아니, 원두 가루를 여과할 수 있는 천을 그새 주문했다는 말씀이세요?”
“예전에 스펜서 씨가 커피 농장을 보시고 올해 안에 상품화할 수 있다고 얘기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연락을 취했지요.”
“원두를 융으로 여과해보자는 샌더슨 경의 말을 들었을 때, 끓인 물을 부어 우려내는 ‘침지식’ 방법과 비슷한 것이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은 했소만··· 아까 마틴 씨가 물건 양이 꽤 많다고 하던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많이 주문하신 거 아닙니까?”
“그게 한 종류의 천이 아니고 다양한 종류의 천을 보낸 것이라 양이 좀 많은 겁니다. 말씀대로 직접 걸러보지 못했으니, 다양한 입자 크기의 플란넬(Flannel)을 종류별로 만들어서 보내달라고 부탁했었죠. 그중에서 가장 적합한 맛을 내는 천으로 드립커피를 만들어 보려고요.”
“맨체스터 방직 공장에다 종류별로 천을 부탁해서 자메이카까지 보내달라고 했다니··· 돈이 꽤 들었을 텐데요?”
맨체스터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방직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는 사실을 스펜서 씨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공장들이 고작 커피 여과 천을 만들어서 태오에게 보냈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기다 종류별로 여러 개로 나누어서 실험해보라고 이 먼 자메이카까지 천을 보낸다는 건 더더욱 이상했다.
“그런 큰 공장으로서는 번거롭기만 하고 크게 남는 것이 없을 터라, 설사 물건값을 배로 쳐준다고 해도 보내주려 하지 않으려 들 텐데···. 맨체스터 방직 공장에 잘 아시는 분이 계신가 봅니다?
하지만 여과해서 맛이 좋아도 걱정입니다.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제작해 보내달라고 하면 과연 보내줄까요? 또 처음에는 보내준다 쳐도 중간에 이득이 없어 못 보내겠다고 어깃장을 부릴 수도 있을 테고요.”
스펜서 씨는 한때 큰 무역업을 운영했던 사업가답게, 당장 맛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사업의 유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하. 그 점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천을 보내온 방직 공장은 사실 제가 운영하는 공장이거든요. 지금 받은 플란넬 천도 제 지시에 따라 공장 지배인이 보내온 물건입니다.”
순간 멍한 표정의 스펜서 씨였다.
“샌더슨 경의 공장이라니요? 설마 맨체스터에 방직 공장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씀은 아니겠죠?”
“하하. 제 공장이 맞습니다. 어쩌다 보니 방직 공장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커피 원두 여과 천의 품질이나 지속적인 제공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스펜서 씨는 그저 이번에 온 여러 개의 천으로 걸러보고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니, 더 다른 형태의 천을 요구하셔도 괜찮고요.”
스펜서 씨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태오를 쳐다보았다.
방직 공장을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그리고 공장 운영에 있어 기술적으로나 경영적으로 꽤 복잡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는 스펜서 씨였다.
‘자기 방직 공장을 가지고 있다고? 허, 이 사람 진짜 뭐지?’
*
곧 화려한 약혼식이 거행되었다.
제이콥 에반스 자작은 약혼식을 진두지휘하며 싱글벙글했고, 이날 하루 농장의 모든 노예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특별 지시를 내렸다.
버틀러 경과 버틀러 부인은 에반스 자작 부인과 마주 앉아 경사스러운 날을 축복하며 정다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건강을 되찾은 엘리사는 몇 달 사이에 살이 올라 몰라보게 예뻐져 있었다.
‘내가 처음 봤을 때의 엘리사가 아니네. 저렇게 아름답게 활짝 피다니···. 정말 사랑의 힘이 대단하긴 하구나.’
멋진 정장을 차려입은 레오나드가 엘리사의 손에 직접 반지를 끼워주며 환하게 웃었다.
와-
짝짝짝-
더없이 아름다운 연인들이었다.
태오가 직접 연결해 준 커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 사이를 이어주는 작은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약혼식을 지켜볼 수 있었다.
‘후후··· 정말 보기 좋군.’
박수를 쳐가며 한참 약혼식을 축하해 주다 무심코 뒤돌아본 태오는 화들짝 놀랐다.
언제 왔는지 태오 바로 뒤로 십여 명의 부인들이 부채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태오는 어색한 미소로 살짝 고개를 숙이고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자 부인들이 재빨리 길을 가로막고 인사를 건넸다.
“샌더슨 경?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부인들이 금세 태오 주변을 에워싸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히는 신세가 돼버렸다.
“샌더슨 경, 얘기 다 들었습니다.”
“네? 무슨··· 얘기를요?”
“엘리사와 레오나드. 저 두 커플을 이어준 사람이 바로 샌더슨 경이시더군요?”
“아, 아닙니다. 제가 이어준 게 아니라, 원래 서로가···”
“에이- 왜 그러세요? 에반스 자작 부인께 다 들었다고요. 샌더슨 경이 직접 찾아오셔서 둘 사이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그러셨다면서요?”
“아니···그게, 그게 아니고···”
그러나, 부인들은 태오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떠들기에 바빴다.
“대단하세요. 원수처럼 등을 돌린 저 두 집안을 어떻게 연결해주신 거죠?”
“그러니 런던 최고의 중매사업가라고 불리시는 거 아니겠어요? 호호.”
“샌더슨 경? 우리 딸은 언제 상담할 수 있나요?”
“이제 곧 가신다는 말씀이 있던데, 너무 하세요! 약속하셨잖아요?”
“제발 상담만이라도 받게 해달라고요!”
태오가 진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했다.
“네, 네. 제가 예정보다 조금 더 늦게 런던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제가 시간이 될 때 꼭 상담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인사드려야 할 분이 저기 계셔서요···.”
서울에서도 그랬듯이 진땀을 흘리며 겨우 빠져나오는 태오였다.
◈ 1777년 9월 초, 테오 커피 농장.
스펜서 씨의 참여 아래 시작된 커피 농장은 6개월의 시간이 흘러 어느새 수확 철이 다가왔다.
비록 노예 대부분이 커피 농사는 처음이었지만, 천혜의 환경 요건과 스펜서 씨의 노련한 지휘 덕분에 테오 커피농장은 여기저기 빨갛게 잘 익은 커피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아침부터 농장 곳곳을 돌며 커피나무를 꼼꼼히 살펴본 스펜서 씨는 크게 만족하는 눈치였다.
폭-
그는 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따서 손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려보면서 태오에게 말했다.
“샌더슨 경, 처음에 와서 내가 이 커피 열매를 보고 무척 놀랐던 것 기억나시오? 그런데 우리가 신경 써서 키운 지금의 열매들 좀 보세요. 그때보다 얼마나 좋아졌는지 느껴지실 겁니다.”
커피나무의 열매는 아주 잘 익은 체리처럼 빨갛고 탱글탱글했다.
“네, 확실히 좋아졌네요.”
태오가 보기에도 예전보다 더 단단하고 색이 선명했다.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스펜서 씨가 말을 이었다.
“이곳은 험준한 경사면에 위치한 덕에 비가 많이 와도 물이 잘 빠져나가는 구조요. 거기다 2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라 낮과 밤의 온도 차가 10도 가까이 나고.
그러다 보니 열매가 낮에는 팽창하고 밤에는 수축하는 운동을 반복하면서 더 단단하고 더 크고 특별한 맛이 나는 이런 열매로 성장하는 것이지요.”
스펜서 씨는 손에 올려 두었던 열매를 입 안에 넣어 맛을 보았다.
“오!”
요즘 들어 거의 매일 맛보는 것 같은데도, 그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어제랑 또 맛이 다릅니다. 거참, 일주일 뒤에 수확해서 가공에 들어가면 정말 어떤 향과 맛이 날지 나도 너무 기대되네요.
어떻게 보면 운도 참 좋았습니다. 팔머 남작님이 심어놓은 여기 커피나무들은 대부분 4~5년산들이라 지금이 가장 풍부하고 맛이 좋은 열매가 열릴 때거든요.
거기다 특별히 관리를 안 했음에도 훌륭한 자연이 스스로 이런 멋진 열매를 가져다주었으니 말이죠, 허허.”
스펜서 씨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커피나무 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노아에게 큰소리로 지시 내렸다.
“노아! 그 일은 그만하고, 지금 당장 수확조를 창고 앞으로 집합시키게.”
“네, 알겠습니다!”
싱긋 웃으며 스펜서 씨가 태오에게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우리의 결실을 맺으로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요?”
*
창고 앞에는 커피 열매를 따기 위해서 미리 교육한 수확조 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목에 끈을 단 형태의 커다란 바구니를 허리 앞에 차고 있었는데, 수확한 커피 열매를 담기 위해서였다.
모두 모이자 스펜서 씨가 사뭇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계를 꼽으라면 바로 이 수확 단계야. 아무리 나중에 가공을 잘하고 잘 볶은 원두라고 해도 이 첫 단계인 수확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면, 그 맛과 향기 50%는 잃게 된다는 것을 꼭 명심해.
그러니까 지난주에 연습해본 대로 손의 감각을 최대한 집중해서 가장 좋은 열매만 따고 나머지는 그대로 둬야 해. 다들 알겠지?”
“네!”
커피 열매를 수확할 때 열매의 익은 정도는 커피의 향과 맛, 그리고 품질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스펜서 씨는 지난주 내내, 어떤 열매가 좋은 것인지 하나하나 보여주고 손으로 직접 만져보게 하면서 채집 방법을 집중적으로 교육했다.
커피나무는 한 품종의 나무라도 열매가 익는 정도가 다 달랐는데, 대체로 빨간색에서 보라색으로 갈수록 더 잘 익은 경우가 많았지만, 반드시 색깔로만 잘 익은 정도가 결정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채집하는 사람이 손끝의 촉각을 통해 잘 익은 열매를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바구니에 채우는 양은 중요하지 않아. 바구니를 조금 채워도 상관없으니 최상의 품질의 커피 열매만 따도록 해. 그리고 조금 더 익어야 하는 것들은 절대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주에 다시 와서 따는 거야. 다들 알겠지?”
“알겠습니다!”
최고의 품질을 얻기 위해서는 잘 익은 열매만을 선택해서 수확한 후, 8일에서 10일의 간격을 두고 여러 번 와서 다시 잘 익은 열매를 골라 따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아주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커피 농장에서의 노예들은 나뭇가지의 끝을 잡고서 한 번에 쭉 훑어 따는 방법을 선호했다.
많이 따지 않으면 관리인들의 심한 매질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열매가 제대로 익었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바구니를 가득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스펜서 씨는 최고 품질의 커피를 생산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따라서 수확 단계에서부터 다른 농장의 방침과는 확실히 달랐다.
일하는 흑인 노예들 역시, 오로지 최상품의 커피 열매를 따서 고마운 농장 주인을 기쁘게 하고 소중한 보금자리를 지켜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이따 오후 동안 따서, 가공 공장 앞으로 모이도록 하지. 수고들 하게!”
“네!”
노예들의 얼굴에는 전쟁에 임하기 전에 출정식을 하는 군인들처럼 비장함마저 흘렀다.
‘모두 정말 진지하고,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하네. 후후, 좋아.’
농장 관리인과 노예들 간의 보이지 않는 끈끈한 신뢰와 유대감을 기대했던 태오로서는 기분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
몇 시간 뒤.
처음 수확한 커피 열매를 바구니에 가득 담은 흑인 노예들이 가공 공장 앞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수확조 인원이 모두 모이자, 노아가 공장 안으로 들어와 태오와 스펜서 씨에게 보고했다.
“채집을 모두 마쳤습니다.”
“좋아! 샌더슨 경 나갑시다.”
“네.”
공장 밖으로 나간 스펜서 씨가 흩어져 있는 노예들에게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자! 자! 다들 채집한 열매들을 내 앞으로 내려놓도록 해!”
툭-
투둑-
노예들은 수확한 열매 바구니를 스펜서 씨 앞에 차례로 내려놓았다.
흡족한 표정의 스펜서 씨가 노예들이 수확해 온 열매를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샌더슨 경, 이 열매들을 좀 보시오.”
태오가 바구니에 가득 담긴 커피 열매들을 보았다.
정말 그의 말대로 보기에도 탐스러울 정도로 탱글탱글했고, 빛깔도 뛰어났다.
“흐흐, 이 크기 하며 빛깔. 다른 사람들 눈에 그저 흔히 보는 빨간 열매 정도로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이 열매가 가진 가치가 전부 상상이 된단···”
그런데 수확 바구니를 살피며 신나게 떠들던 스펜서 씨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에 가득했던 미소도 지워진 채, 어느 노예의 바구니를 뚫어지라 살펴보고 있었다.
투두둑-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열매를 아무 바구니에나 던져 놓고는 문제의 노예 바구니 앞에 꿇어앉아 한참을 뒤적이며 살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한 움큼 움켜쥐더니, 킁킁거리며 냄새까지 맡기 시작했다.
‘왜 저러시지? 무슨 문제가 있나?’
스펜서 씨가 살피던 바구니는 흑인 여자 노예 ‘쥬바’ 것이었다.
그녀도 갑작스러운 스펜서 씨의 행동에 무척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태오가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니 다른 노예들의 바구니보다 양이 훨씬 적어 보였다.
‘혹시 채집한 양이 너무 적어서 저러는 건가?’
잔소리가 심한 스펜서 씨에게 제대로 혼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스펜서 씨가 미간을 구긴 채 머리를 번쩍 들어 소리쳤다.
“이거··· 누구 바구니야? 누가 이 열매를 딴 거지?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