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1
지혜영의 입봉작 단막극이 3.5%의 시청률을 내고 성공리에 방영을 마쳤다.
이에 따라 방영 바로 다음 날,
‘지혜영 입봉 단막극’ 품평회이자
품평회를 가장한 ‘지혜영 잡기’ 회의가 열렸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편성 회의’ 였다.
황태수 국장에게 먼저 건의하여 적극적으로 회의 자리를 마련한 사람은 하인혁 PD였고,
동시에 이 회의에 도래원을 제외하고자 발 벗고 래원을 외근 내보낸 사람은 임장호 PD였다.
다른 PD나 CP들은 몰라도 황태수 국장만큼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하인혁과 임장호의 속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지켜볼 뿐이었다.
“내가 혜영이 입사할 때부터 오늘 같은 날을 예견했지.”
“시원시원하게 당찬 자기 성격만큼 연출도 기똥차게 해냈더만.”
선배들이 지혜영을 띄워주려는 심산인지 회의 초장부터 칭찬을 퍼부었고,
“혜영이네 기수가 황금 기수인가? 래원이, 혜영이 줄줄이 능력자들만 뽑혔어.”
“맞습니다. 래원 오빠 조연출이랑 B팀 하면서 배운 게 크죠. 제가 ‘동기’ 복이 좀 있어서요.”
지혜영은 나름대로 선배들에게 엮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일부러 ‘래원’과 ‘동기’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해서 말했다.
과거에 자신을 힘들게 했던 선배들, 임장호나 하인혁 앞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들 들으라는 의도도 있었다.
‘내가 선배 복은 없었어도, 동기 복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거거든!’
지혜영의 이러한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자코 듣던 하인혁이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혜영 피디, 그래서 말인데, 내년에 내 작품 B팀 지원할래요?”
“네···? 제가, 하인혁 선배님 B팀을요?”
“단막극 잘했으니까, 이제 미니 입봉도 준비해야지. 그러려면 먼저 선배들 B팀 두어 개 들어가 보는 게 보통 수순이니까.”
지혜영은 속으로 이미 ‘싫어요!’를 여러 차례 외치고 있었으나,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지혜영이 우물쭈물, 곤란해하고 있는 찰나.
하인혁이 다시 치고들어왔다.
“그러면 한다는 소리로 알고, 내 B팀 자리 비워둘게요. 혜영 씨, 운 좋은 줄 알아요. 내 다음 기획 엄청 빵빵하거든.”
그때,
“죄송해서 어떡하죠? 혜영이는 내년에 저랑 하기로 먼저 이야기가 됐는데···.”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도래원의 등장.
“이런 회의를 저 없을 때 하시다니···. 섭섭한데요?”
래원이 지혜영에게 빙긋 웃어 보이며 빈자리에 앉자,
하인혁과 임장호의 표정이 훅 구겨졌지만,
지혜영의 눈에는 지금 도래원이 구세주였다. 후광까지 비춰보일 정도였으니까.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14화 – 리디북스
미묘한 기류를 감지한 황태수 국장.
자신이 나설 때라고 생각했는지 입술을 열었다.
“혜영이 인기가 많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혜영아?”
“저..저야, 래원 오빠, 아니 래원 PD님 B팀 들어가겠습니다. 서..선약이 되어 있던 거라서요.”
황태수의 물음에,
지혜영은 래원을 힐끔 보면서 슬며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특히 ‘선약’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는 다른 선배들과 래원의 눈치를 보았고,
래원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자 비로소 지혜영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하인혁은 여기서 순순히 물러설 위인이 아니었다.
“혜영 씨···. 래원 후배님 B팀은 전에도 몇 번 하지 않았나?”
“그 때는 다..단막 입봉 전이었으니까. 이번에 미니시리즈 B팀을 다시 하는 건, 또 다를 것 같습니다. 전과는 또 달리 배울 게 있을···”
“그러니까. 그걸 왜 굳이 여러 번 같이 했던 도래원 후배님이랑 또 하느냐는 말인 거죠.”
하인혁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는,
아차 싶었는지 뒤늦게 CP 선배들과 황 국장의 눈치를 살폈다.
“아..아니. 저는 지혜영 후배님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굳이 내 작품을 꼭 시키고 싶다기보다는···. 미니 입봉 전에 다양한 선배들 밑에서 경험하면 좋으니까···.”
이에 황태수 국장이 다시 한번 지혜영의 의견을 물었다.
“혜영이는 어떻게 하고 싶냐? 인혁이 말대로 다양한 선배들을 경험하는 거랑, 래원이처럼 출중한 놈 밑에서 깊게 배우는 거랑. 장단이 있을 거 같은데?”
“저는 변함없이 래원 PD님 B팀입니다.”
이 대답에 하인혁과 임장호의 표정이 구겨지고 있었다.
“서..선약은 중요한 거니까요.”
지혜영이 마지막 쐐기를 박고는, 래원과 눈을 마주치며 웃어 보였다.
“그럼 1차 편성 회의는 이걸로 마치지.”
황태수는 회의 시작 전부터 상석에서 이상 기류를 모두 간파하고 있었기에,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모두가 차례로 회의실을 나서는데,
돌연 하인혁이 화장실을 가는 래원을 따라 나가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말을 걸었다.
“래원 후배님, 올해도 연기 대상 전 부문 노미네이트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슬카생’도 노미네이트 축하드립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하인혁은 주위에 누가 오는지 흘깃 살피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본론을 꺼냈다.
“··· 우리 오늘 술 한잔 어때요?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래원 후배랑 단 둘이.”
* * *
래원과 하인혁은 퇴근길에 SBC 근처 포장마차로 들어섰다.
식사 겸 안주와 소주를 시켰다.
“래원 후배님이 입사한 지 얼마나 됐더라?”
“곧 4년 됩니다.”
둘은 빈속에 소주부터 땄다.
쪼르르—
하인혁이 래원의 잔을 채워주었고,
래원이 이를 두 손으로 받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드라마 하나하면 1, 2년은 후딱 가는 게 우리 일이라, 시간 가는 게 너무 빠르네요.”
“그러게. 벌써 그렇게 됐나?”
짠 —
둘은 잔을 부딪친 후, 소주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럼 이제 나 말 좀 편하게 해도 되나?”
“어우, 그럼요, 인혁 선배. 다른 선배들은 놓으신 지가 언젠데요···.”
“그래? 아니. 내가 원래 후배들한테 말 잘 안 놓잖아. 선배라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싫고 해서.”
“에이. 진작 놓으셔도 됐었는데 편하게 말씀하세요.”
“래원이는 게다가 나랑 동갑이고 하니, 아무래도 더 어렵더라고.”
“하하···.”
저 새끼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렇게 밑밥을 까나 싶었다.
“영 불편해서 말이지···. 그래도 오늘은 말 놓고, 선배 노릇도 좀 할게.”
“······.”
“래원아. 나 네 작품 되게 좋다. 특히 이번에 페르소나 하면서는 일도 많았잖냐. 지협이 형 일도 그렇고. 근데 네가 처세를 참 잘하더라고. 누구 하나 불평불만 안 나오게.”
“하하. 과찬이십니다.”
“시청률만 잘 나오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작품성까지 홈런치고. 진심 감명받았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네?”
“내년도에 혜영이는 내가 데려갈게.”
“그건 아까 다 끝난 이야기···”
“내 차기작이 혜영이 취향에 맞을 거 같아서 그래. 걔가 얼굴은 청순해서 천상 여자인데, 성격이 시원시원하잖냐. 딱 그런 스타일이거든, 내 차기작이.”
“··· 아, 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지혜영 외모, 성격이랑 드라마가 대체 뭔 상관인가?
“래원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부탁 좀 하자. 내가 굳이 동갑인 너한테 말까지 놓으면서 이러는 거는 처음이잖냐.”
이에 래원은 남은 소주를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소주 2병을 더 시켰다.
“인혁 선배. 그럼 나도 동갑인 선배한테 굳이 말까지 놓으면서 한마디만 할게.”
“···? 너 취했냐, 도래원?”
“아니. 혜영이를 데려가고 싶으면 이런 말은 나 말고 혜영이를 앉혀놓고 했어야지, 선배.”
“너.. 너! 혜영이랑 선약했던 거 아니잖아! 괜히 나한테 뺏기기 싫으니까 즉석에서 말 지어낸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내가 방송국 밥을 너보다 몇백 끼를 더 먹었는데!”
“아는 사람이 이래, 선배?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두 사람 모두 흥분하려는 찰나,
마침 주문했던 우동과 닭갈비가 나왔다.
래원과 하인혁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각자 이성을 되찾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윽고, 다시 입을 연 것은 하인혁이었다.
“··· 그럼. 내가 B팀 할게, 도래원.”
“······?”
“내가 너 차기작 B팀 하겠다고! 혜영이는 C팀으로 밀든 하고, B팀은 나 시켜달라고.”
래원은 하인혁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껌벅이며 머리를 굴렸다.
“설마, 선배···. 나랑 혜영이한테 복수하려고 B팀 하겠다는 거야? 선배 이렇게 유치한 사람이었···”
“날 뭐로 보고! 진심이야. 혜영이랑 차기작 못할 바에야 그 기획은 미루고, 내년에는 너네 B팀 들어가서 배우고 싶다고.”
“지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현상 유지는 퇴보라잖아. 나도 퇴보하기보다 진보하고 싶어서 그런다! 왜!”
지금 이 순간. 래원은 하인혁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헷갈렸기에,
술도 들어간 김에 능글맞게 되받아쳐 보았다.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인혁 선배, 퇴보라뇨? 이번에 슬카생도 그렇게 잘 찍으셔놓고.”
“지금 나 놀리냐? 난 진심이라니까! 더 도태되기 전에 너나 혜영이나, 너네 기수는 대체 무슨 비법을 갖고 있어서, 손대는 것마다 다 잘되는 미다스의 손인 건지 배우고 싶어서 그런다고!”
래원의 의문이 이제야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아, 지혜영을 그렇게 데려가려던 이유가 이거였어? 스파이 마냥 우리 기수의 비법을 빼내 보려고?’
래원이 빙긋 웃으며 새 소주를 까서 하인혁의 빈잔을 채워주었다.
“난 또. 선배가 혜영이 좋아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이 말에 하인혁의 동공이 흔들리며 래원의 눈을 피하더니,
혼자서 소주를 들이켜는 게 아니겠는가.
“뭐..뭐야. 진짜로 혜영이 좋아해, 인혁 선배?”
래원은,
몇 년 전 하인혁이 자기 메인 연출 입봉작, 송년 특집 4부작에 지혜영을 조연출로 데려가서 치근덕댔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래원은 임장혁의 B팀으로 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전생에는 그때 하인혁 때문에 지혜영이 드라마국에 학을 떼고 입사 1년 만에 사표를 썼더랬다.
그때 하인혁이 지혜영에게 품었던 마음이 진심이었을 줄은, 게다가 그 마음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래원이었다.
물론 하인혁의 진심이 어떠하든, 그의 구애 방식이 졸렬하고 치졸하기 그지없었던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 씨. 내가 뭔 소리를 한 거야···. 빈속에 술부터 마신 내 잘못이지···. 술이 원수다.”
안주가 들어가니 술이 조금씩 깬 듯한 하인혁.
자조 섞인 말투로 고개를 가로젓더니, 래원을 노려보며 한 마디 더 건넨다.
“비밀 지켜라.”
이에 래원은 피식 웃음이 나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B팀은 나도 더 생각해볼게. 선배가 후배 B팀 서포트 해주던 전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선배가 굳이 내 B팀을 들어와야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서···.”
래원은 오늘의 반전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았다.
* * *
며칠 후.
12월답게 또 다른 술자리가 생겼다.
띵동—
래원과 유찬은 간만에 함께 차여름과 차가을의 작업실 벨을 눌렀다.
양손에는 각종 술이 가득하였다.
작업실 현관문이 열렸다.
“타이밍 잘 맞추셔서 오셨네. 음식 시킨 것도 방금 딱 왔거든요.”
“안 그래도 엘리베이터에 피자랑 치킨 냄새가 진동하더라고요.”
“와아, 이게 다 뭐예요? 와인, 샴페인, 맥주 ··· 종류별로 많이도 사 오셨네요?”
“자고로 술은 모자란 것보다는 남는 게 낫잖아요.”
“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역시 뭘 좀 아시는 분들이야.”
송년회 겸 차기작 회의로 모인
두 명의 작가와 두 명의 감독.
네 사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우리의 차기작을 위하여!”
네 개의 와인 잔이 식탁 위에서 머리를 맞댔다.
“우리는 제목 어떻게 가죠, 도 감독님? 제목 짓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요.”
“가을 작가님이랑 찬이 건, 로 가기로 픽스 된 거예요?”
“네. 너무 긴가 싶었는데, 문장형 제목이 요새 유행이기도 하고, 유찬 감독님도 좋다고 하셔서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요즘 제목은 아예 문장으로 길거나, 핵심 단어거나 둘 중 하나인 거 같아요.”
유찬이 이처럼 말하며 펜과 종이를 꺼내더니, 갑자기 의욕적인 자세를 보였다.
“래원이 형, 작가님들, 그거 로그라인이 어떻게 됐었죠?”
“100만 구독자와 골드 버튼을 먼저 따내기 위한, 실버 유튜버 3인방의 좌충우돌 도전과 성공기.”
이렇게 갑자기 브레인스토밍을 하게 된 네 사람.
– 슬기로운 유튜버 생활
– 오! 나의 골드 버튼
–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골드 버튼이 들어왔다
– 미스 골드버튼
– 미스터 골드버튼
– 골드 버튼을 훔치다!
– 어쩌다 골드 버튼
– 골드 버튼을 찾습니다
– 선배, 그 골드 버튼 갖지 마요
– 디어 골드버튼
.
.
끝없이 나온 제목 아이디어들.
“아, 이러다 끝도 없겠네. 언니 그냥 이 중에 하나 골라잡자.”
차가을이 투덜댔고, 차여름이 재밌겠다는 듯 제안했다.
“그럼, 도 감독님이랑 저랑 이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거를 동시에 말해 보는 거 어때요?”
“좋은데요?”
유찬도 신이 나서 주도했다.
“좋습니다.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두 분이 같이 소리치세요.”
“뭐가 될지 기대되는데요?”
“자아. 하나, 둘,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