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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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도 예고편이 있다면 (1)
* * *
꼭대기 방송탑이 첨예하게 솟아있는 SBC 건물.
어느 월요일의 밤 10시를 앞두고
모니터실의 [ON AIR] 램프가 빨간색으로 점등됐다.
지금 SBC 월화 미니시리즈 의 첫 방송을 목전에 두고
담당 CP인 최지철, B팀 PD 변덕규, 그리고 제작사 MP스튜디오의 대표, 뿐만 아니라 김 부국장까지 모두 모여서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 중이었다.
바로 앞 편성인 시사 프로그램이 끝나고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에이 씨, 우리가 3위네. 앞 프로한테서 시청률 도움받기는 글렀구만···.”
실시간 시청률 집계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화면에, SBC의 현 시각 시청률이 다른 공중파 방송사들보다 한참 아래 밀려있는 것이 보였다.
이때, 모니터실의 문이 열리더니
“정확히 몇 분 남았냐?”
황태수가 들어왔다.
변덕규는 밀리 초까지 정밀하게 들어오는, 전자시계를 힐끔 보고 대답했다.
“13분 50초요.”
“어우, 시간 왜 이렇게 안 가···.”
황태수가 다시 부리나케 모니터실을 문을 열며 나선다.
“형, 어디 가세요?”
“화장실.”
그가 초조해하며 나간 후,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이해한다는 듯 혀를 찼다.
“태수 형 아까도 화장실 다녀온 거 같은데···.”
“자기 작품 첫 방은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떨리는 법이지. 태수 같은 놈이 저렇게 대놓고 떠는 거 보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야.”
드디어.
의 1화 방송이 시작됐다.
실시간 시청률 4.7%로 출발했다.
“좋아. 시작은 나쁘지 않네.”
“네. 오히려 앞에 시사 프로보다 올랐네요.”
“캐스팅도 괜찮고, 하이라이트 티저도 반응 좋았고. 제작비 생각하면 이 정도 출발은 해줘야죠.”
드라마 초반의 실시간 시청률 수치는 완만하게 상승 곡선을 그렸다.
두 주인공 ‘한나은’과 ‘정건후’의 각자 일상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시작한 지 30분쯤 후,
프로그램 회의 장면.
메인 멘토를 누구로 하느냐로 제작진들끼리 옥신각신하던 가운데, ‘여진 선생’이 등장했다.
긴 웨이브 머리칼을 휘날리며, 딱 붙는 바지와 니트로 몸매를 살리고, 기다란 다리를 강조하기 위해 부츠를 신은 모습.
“이야, 이게 엄하늘 효과인가?”
실시간 시청률이 6.5%로 치솟았다.
김 부국장의 탄성.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던 MP 스튜디오 대표도 그를 거들며 소리쳤다.
“오늘 느낌 좋네요. 이대로만 쭉쭉 가즈아!”
모니터실 안에 흥분이 일었다.
김 부국장과 최지철 부장은 함박웃음을 띠며 애청자 모드가 됐고
변덕규는 그 옆에서 상사들의 비위를 맞췄다.
하지만 담당 PD인 황태수는 아직 낙관하긴 이르다는 듯, 굳은 얼굴로 모니터 화면과 실시간 시청률 추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별안간,
“어어···? 뭐야, 왜 이래? 잘 오르다가 갑자기 왜 떨어져?!!”
실시간 시청률 상승 곡선이 멈추더니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6.2%
지금 나오는 씬이나 전개에서는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당황한 변덕규가 폰을 꺼내 검색해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막 M사 드라마에서.. 키스 씬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로 몰린 것 같습니다.”
그러자 다들 수긍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한동안 시청률은 급등하지도 급락하지 않고 평이하게 이어졌다.
어느새 1화 후반부로 치닫는 장면.
양극단의 환경에서 자라 서로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 한나은과 정건후.
서로에게 폭언을 퍼붓다가 급기야 한나은의 손바닥이 정건후의 뺨을 세차게 후려친다.
빨개진 얼굴로 씩씩대며 한나은은 쏘아보는 정건후.
그의 잘생긴 얼굴과, 분노로 물기 어린 두 눈이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됐다.
“오오오!!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던 실시간 시청률의 기울기가 확 우상향으로 바뀌더니 9%를 넘겼다.
“캬! 도종건이가 대세긴 한가 봐?”
“역시 요즘 시청자들한텐 이런 자극적인 게 잘 먹히네!”
의 첫 방 무대.
국민 프로듀서들의 투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제 남은 후보는 4명,
다음 라운드 티켓은 단 2장만 남은 상황.
후보 4명 중에는 ‘정건후’도 있다.
그리고 그를 흘겨보며 초조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유하나’.
그녀는 이미 일찍이 다음 라운드 진출자로 지목되어 남은 후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진 선생’과 ‘유하나’ 그리고 ‘정건후’
이 세 명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면서 1화가 끝났다.
짝짝짝짝짝-
모니터실 안의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쳤다.
밀폐된 이곳이 어느새 열기로 가득 찼다.
“1화에 두 자릿수 시청률! 이제 어깨 펴고 다녀도 되겠네, 태수 형.”
“황태수! 수고했고, 앞으로 더 수고해라.”
“그래, 1부 시청률이 이 정도면 완전 선방이지. 원래 이 시간대는 종편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잖냐.”
모두의 얼굴이 밝게 상기됐다.
* * *
“아악! 여기서 끝내는 게 어딨어어어!!!”
첫 방이 이제 막 끝난 래원의 집.
래미의 샤우팅이 거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라고오오오!!! 너무너무너무 재밌어! 오빠가 같이 만들었다니까 더 재밌어!”
래미는 단 1화 만에 드라마에 완전히 과몰입하고는 래원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그래서 정건후는 결말에 어떻게 돼? 끝까지 남아? 한나은한테 저렇게 밉 보이면 런웨이101 에서 짤리는 거 아냐?”
래미가 래원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대답을 보챘다.
하지만 래원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 돼. 스포 금지. 직접 봐. 직업 윤리에 어긋나.”
“치.. 무슨 직업윤리?”
“피디한테도 직업윤리가 있단 말씀이야. 지금 이건 너네 학교 선생님한테 시험 문제 미리 알려달라는 말이랑 똑같은 거야.”
“··· 그걸 그렇게 비유해? 알려주기 싫음 그냥 싫다고 하지. 치사하다 치사해!”
래원은 삐진 래미에게 얄궂게 싱글거렸다.
동생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까똑-!
래원의 폰 속 단톡방에서 난 알림음.
각자 첫 방 모니터를 마친 스텝과 배우들 모두 흥분해서 실시간으로 대화 중이었다.
[제작사MP] 저희 최고 시청률 11.6%로 집계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도종건] 오! 두 자리! 열심히 하겠습니닷 [차CP] 내일 새벽에 닐슨에 뜨는 거 봐야 더 정확한 시청률을 알 수 있긴 하지만 선방하긴 했어. [변PD] 그러네요. 오차 범위 2~5프로 감안해도 우리가 1등! [차CP] 수고들 했다. [변PD] 태수 형 축하드려요! [유하나] 막방까지 쭉쭉 올라가영>_<!!!카톡창에 이모티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야광봉 흔드는 곰, 팡파레 부는 토끼, 춤추는 고양이, 탬버린 치는 강아지 등등···.
[황PD] 이제 시작이다! 긴장 늦추지 말고, 아무도 다치지 말고 막방까지 다들 힘냅시다! [엄하늘] 청춘 런웨이! 파이팅! [찬] 네엡^^ 파이팅 입니다!래원은 기분 좋게 폰을 닫았다.
단톡방에 딱히 대꾸하지는 않았다.
의 조연출로 자기 몫을 잘 해내기 위해 래원이 집중해야할 일은 따로 있었으니까.
래원은 방안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펼쳤다.
“이제 내 몫을 해볼까?”
편집 툴인 파이널 컷을 켜고는, 어제 1차 편집을 끝내놓은 5화 예고편을 점검했다.
황태수 선배한테 받은 파일들. 영상과 사운드 소스들을 나란히 띄워놓고, 더 나은 선택은 없을까 머리를 굴려본다.
“아··· 이대로는 뭔가 아쉬운데···?”
드라마 편집은 그저 컷을 자르고 붙이는 게 다가 아니다.
기계적인 접근 그 이상으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다.
편집자의 씬에 대한 해석, 시퀀스에 대한 해석이 묻어나온다.
특히 지금 같은 예고편 편집의 경우는, 더 나아가 5화 전체에 대한 편집자의 해석이 녹아들기 마련이다.
예고편은 일종의 광고다.
시청자들을 후킹(Hooking) 하기 위한 유인책.
는 ‘패션계’ 라는 특수 업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이를 잘 드러낼 수 있는 화려한 편집이 요구된다.
골똘히 생각하던 래원은,
“좋아. 그 방법이 있었네.”
마음에 쏙 드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피곤이 싹 가신 듯이 신명 나게 수정 편집에 몰두했다.
* * *
“여어, 지철이 형. 얼굴이 활짝 폈네 폈어.”
드라마국 화장실.
최지철 부장이 볼일을 본 후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이 국장이 들어오며 장난스레 말을 걸었다.
“청춘 런웨이 성적 잘 나와서 좋겠수?”
“말했잖냐. 태수가 이번에 독기 품고 찍는다고.”
“촬영장 분위기는 어떻대?”
“괜찮대.”
“그렇겠네. 시청률도 그렇고 나쁠 게 없으니, 지금으로선.”
“근데 우리 예고편. 태수 녀석이 인혁이 냅두고 도래원한테 맡기고 싶다고 난리다.”
“이번 신입 도래원 한테?
“어. 제발회 때 도래원이 만든 하이라이트 티저가 전화위복이었잖냐.”
“하이라이트. 잘 뽑긴 했지.”
“아무리 그래도 인혁이처럼 제대로 된 선배가 있는데, 경우 없게···. 나 그 꼴 못 봐.”
이 국장은 잠시 황태수 편을 들며 최지철의 의중을 살폈다.
“뭐, 그렇다고 고작 예고편 같은 걸로 기수 파괴 따지는 것도 웃긴데···.”
이 국장이 팀에 이처럼 요상한 관심을 보이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국장, 김 부국장, 그리고 최지철 부장,
이 셋 사이의 묘한 줄다리기 때문.
직급은
이 국장 > 김 부국장 > 최지철 부장(CP)
순이었으나,
나이는
김 부국장 > 최지철 부장(CP) > 이 국장
순으로 많고
기수는 김 부국장이 선배,
동기인 최지철 부장과 이 국장이 후배였다.
때문에 현재 드라마국은 자연스럽게
이 국장 라인과, 김 부국장 라인으로 갈려있었다.
그중 하나는 먼저
이 국장 – 문 부장(CP)이 중심이 되는 라인이었다.
이 국장이 이번 신입 중 가장 성적이 좋은 지혜영을 문 CP에게 배정해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국장은 다시 최지철의 의견을 거들어주며,
“근데 뭐, 너무 신경 쓰지 마. 사실 그냥 예고편이야, 조연출 중에 아무나 만들면 되지 뭐. 안 그래 형?”
그를 들었다 놨다 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말했는데, 태수 녀석이 마지막 연출작이라고 예민해져서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하겠다잖냐.”
“태수가 재롱 피우는 거라 생각해. PD 관두고 CP 달기 전이 한창 그럴 때잖아. 형까지 장단 맞추지 말고 그냥 쉽게 쉽게 가쇼.”
적진의 근황 파악 후 이 국장은,
이제 최지철에게는 볼일이 끝났다는 듯 변기 앞에 서서는 지퍼를 내려 진짜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까똑-!
마침 최지철에게 온 메시지.
[지금 바로 옥상으로]‘무슨 일이시지?’
최지철은 곧장 화장실을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 * *
SBC 건물에서 애연가들에게 자유가 허락되는 유일한 곳.
옥상 흡연 구역이다.
오늘도 김 부국장과 최지철 부장은 함께 이곳에서 자욱한 근심거리를 내뿜으며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최지철에게 모든 것을 전해 들은 김 부국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으음, 아냐. 잘 생각해보면··· 네가 그 사이에서 하인혁 편을 든 건 잘 한 거야.”
드라마국의 또 다른 라인은,
‘김 부국장’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최지철CP – 황태수 – 변덕규 – 하인혁
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김 부국장은 이 끄트머리에, 뜻밖의 복덩이 ‘도래원’을 추가하고자 하는 계획을 이제 막 갖게 된 것이다.
그가 담배꽁초를 끄며 말을 이었다.
“지철아, 투견을 강하게 키우는 법이 뭔지 아냐?”
“···네?”
“새끼 때부터 서로 쌈박질시키는 거야.”
“···?”
“도래원, 하인혁. 투견으로 잘 키워보자구.”
“아···.”
“애들끼리 계속 치고받고 싸울수록 우리가 길들이기 좋지.”
“그 말씀은 그럼 예고편을···.”
“어차피 태수는 도래원을 끝까지 밀 거니까, 이 국장한테는 네가 나섰다고 하지 말고 태수 핑계 대면서 적당히 둘러대라고.”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최지철은 김 부국장의 의중을 파악하고는 그와 눈길을 주고받았다.
* * *
며칠 후, 드라마국의 한 회의실.
최지철 CP와 황태수 PD 그리고 변덕규 PD까지 셋이 모여 난상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도래원과 하인혁이 만든 4화 예고편과 5화 예고편을 셋이 함께 본 후,
나머지 6화부터 16화까지는 둘 중 누구에게 맡길지 결정해야 하는 자리였다.
“하아. 둘 다 나쁘지 않아서 어렵네요. 우리 삶도 예고편이 있다면 좋겠네. 한 치 앞을 모르겠으니···.”
먼저 변덕규가 투덜거렸고,
황태수는 누가 몇 화 예고편을 만들었는지 답을 알기에 자신을 제외한 두 사람의 토론을 유도했다.
“예고편은 본편보다 빠른 호흡감, 리듬감 있는 편집이 필요하죠.”
“음, 그 점에 집중하면··· 5화가 컷 넘어갈 때마다 자주 클로즈업인 액션으로 포인트를 줘서, 텐션감을 잘 살리긴 했네요.”
변덕규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진지하게 의견을 냈다.
최지철은 이에 자신의 감상을 보태며,
“5화는 캐릭터 매력이 강조가 잘 됐고,
4화는··· 상대적으로 드라마가 돋보이는데?”
계획했던 대로 중립을 지키는 척 황태수의 얼굴을 살폈다.
‘5화가 더 짜임새 있고 완성도 있어. 아무래도 이게 도래원이 만든 거 같은데···. 태수 녀석 표정을 읽을 수가 없네.’
잠자코 듣고만 있던 황태수가 입술을 뗐다.
“제가 담당PD로서 하나 말씀을 드리면···.”
최지철과 변덕규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흐음. 5화 예고편에서 유하나 컷은 본편에 쓴 테이크 말고 다른 테이크를 갖다 쓴 게··· 선배 입장에서 기특했습니다.”
5화의 백미(白眉).
여진 선생을 통해 이제야 자신의 진짜 꿈이 뭔지 이제야 들여다보게 된, 유하나의 감정 씬.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대본상의 앞뒤 컷과 감정선이 잘 이어지는 것은 본편에서 사용한 테이크였다.
하지만 예고편은 작품의 결과 텐션, 호흡, 리듬을 극대화 시켜야 하기에,
래원은 유하나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컷을 본편과 다른 테이크로 5화 예고편을 만들었다.
“그러네요. 저 테이크는 감정이 크게 찍혀서 한 컷으로도 유하나를 잘 보여주는데, 아쉽게도 앞뒤랑 너무 튀어서 본편에서는 못 썼잖아요.”
변덕규PD가 거들었고,
최지철CP는 반신반의하며 황태수PD에게 물었다.
어쩌면 답이 돌아오지 않을 질문.
“그래서. 5화 만든 게 누군데? 인혁이냐, 래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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